현실로 돌아와도 자신과 무진은 두 평행선처럼 영원히 서로 교차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성연은 수년 간의 감정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게 달갑지 않은 듯했다.“언니, 저는 원래 5년 동안 언니가 모든 걸 내려놓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왜 또 돌아오겠다는 건가요?”“언니는 무진 씨 아이를 잘 키우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언니 회사는 이미 그렇게 잘 발전했는데, 왜 다시 돌아와서 나와 무진 씨 생활을 방해하려는 거예요?”“더군다나 지금의 언니는 이미 예전과 달라요. 독립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언니는 수많은 신세대 여성들의 본보기가 됐잖아요?” “언니가 이렇게 아름다우니까, 언니 주변에도 구애하는 뛰어난 남자들이 부족하지 않겠지요. 왜 아직도 무진 씨를 놓지 못하는 거예요?”예민주는 마치 광기에 사로잡힌 것처럼 온갖 말을 가리지 않고 했다. 그저 성연을 영원히 철저하게 무진의 시선에서 사라지게 만들고 싶었다. 만약 성연이 하루라도 무진의 옆에 있다면, 자신은 정말 영원히 무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미련하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다만 성연과 무진은 더 이상 조금의 가능성도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그게 뭐 어때서? 내가 돌아오고 싶어서 돌아온 건데. 예민주, 너는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내가 빼앗을까 봐 두려워?”“하지만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건 원래 나 송성연의 것이라는 걸 잊었어?” “너는 짝퉁에 불과해. 네가 무슨 자격으로 여기서의 내 생활을 간섭하는 거야?”성연은 예민주가 걱정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성연이 생각지도 못한 것은, 자신이 오늘 무진을 보자마자 예민주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성연의 예상을 뛰어넘는 광기였다.‘지금의 예민주는 완전히 미친 X 같아.’ 성연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조차 완전하게 가질 수 없는 예민주가 좀 불쌍하다고 느껴졌다.“언니, 왜 그러는 거예요? 무진 씨는 이미 언니를 잊어버렸어요. 언니를 기
예민주는 이번에 성연을 건드려서 화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성연이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꺼지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아하니 송성연은 여전히 무진 씨를 신경 쓰는 모양이야.’“송성연, 무진씨가 나를 데리고 낭만의 도시 파리에 간 적이 있다는 거 알아?” “우리는 천천히 거리를 거닐다가 하나씩 음식을 맛보았어. 그곳에서 정말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지.” “또 거기서 무진 씨가 내게 청혼했어. 우리는 지금 약혼한 상태야.”“우리 웨딩 사진을 찍을 날도 이미 정했어. 무진씨가 많은 얘기를 한 것도 넌 모르겠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멋진 바다 구경을 하기로 했어.”“즐겁게 살면서 아이를 낳고 일생을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말이야...”예민주는 여세를 몰아서 성연을 계속 압박했다. 자신이 말한 걸 성연이 믿을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해야 누구도 자신과 무진을 갈라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성연이 깨닫게 될 것이다.“그만해! 더 이상 말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자신을 빨리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 예민주가 격장지계를 쓰고 있다는 것을 성연이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성연은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일단 무진에 대한 일을 접하기만 하면, 자신의 생각처럼 그렇게 냉정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예민주가 내뱉는 말이 마치 칼날처럼 성연의 마음속에 단단히 박히는 듯했다. 성연의 머리속은 온통 예민주와 무진이 손을 잡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성연은 두 사람의 모습으로 가득한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마침 웨이터가 성연의 곁을 지나가자, 술잔을 집어 든 성연은 망설임 없이 예민주의 얼굴에 술을 뿌렸다. 이렇게 해야 예민주의 말을 멈추게 하고, 성연 자신도 평온한 마음을 회복해서 다시 걸출한 사업가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아!? 송성연, 무슨 짓이야? 너 미친 거 아니야?”와인이 예민주의 어여쁜 얼굴에 뿌려지자 예민주는 비명을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밤 자선 경매의 사회자입니다. 이번 경매의 수익금은 모두 빈곤한 지역의 아이들 교육 자금으로 기부할 예정입니다.” “네, 그럼 함께 첫 번째 경매물을 볼까요.”“미스 왕이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성연은 망설이지 않았다. ‘미스 왕은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어. 이 그림을 통해 미스 왕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성진그룹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거야.’“오늘 처음 입찰하신 분이 성진그룹의 송성연 회장님이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자 숫자 세겠습니다. 하나.”“셋...”“축하합니다. 성진그룹 송성연 회장님께서 미스 왕의 그림을 낙찰 받으셨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송 회장님의 경매 참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송 회장님께서 꼭 좋은 보답을 받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네, 그럼 다음 경매물을 보도록 하겠습니다.”바깥을 한 바퀴 돈 무진은 자선 경매가 시작될 무렵 돌아왔다. 예민주의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자 위로하며 말했다.“내가 왔으니까 좋아하는 물건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예민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에, 성연은 이미 이번 첫 경매물을 낙찰 받아서 이미 충분히 체면치레를 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성진그룹의 자금 능력과 성연의 선량한 마음을 알아차렸다.성연은 일거에 많은 것을 얻은 셈이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은 데다가 미스 왕의 작품을 낙찰 받아 목적을 달성했다. 또 가난한 아이들에게 더욱 좋은 교육 환경도 줄 수 있는데, 왜 기꺼이 참여하지 않겠는가?다음 몇 개의 경매물은 명문가의 자녀들이 기부한 작품들로 모두 평범한 작품들이다. 성연은 하나를 낙찰 받아 체면치레를 했기에, 그다지 개의치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다음 경매물은 서예의 대가로 명성이 널리 알려지신 황 교수님의 작품입니다.”“황 교수님의 작품은 서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소장하고 싶어하는 보물이지요.”“이제 경매를 시작합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성연은 입찰 팻말을 들었다. 비록 성
그 목걸이를 보여주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이 목걸이가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걸이의 형상과 제조 기법 모두 가히 최고라고 할 만했다.목걸이가 눈부신 빛을 발하자, 그 순간, 예민주의 눈이 빛나면서 아름답게 반짝거렸다.이를 알아차린 무진이 웃으면서 물었다.“맘에 들어? 맘에 들면 사.”예민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진은 바로 입찰 팻말을 들었다. 그러나 무진이 팻말을 들자, 이 목걸이를 주시하던 성연도 곧바로 팻말을 들었다.두 사람이 연이어 가격을 올려 입찰했다.가격은 이미 이 목걸이의 원래 가치를 훨씬 넘어섰다.“오, 이 목걸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모양이네요. 다들 서두르세요.”무진을 힐끗 보는 성연의 모습은, 마치 이 목걸이는 자신이 반드시 가져가겠다고 말하는 듯했다.그러나 무진은 어쩐지 성연이 자신을 겨냥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번 경매 행사에서 자신은 딱 한 차례 경매에 참여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성연이 자신을 물고 놓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가격은 완전히 무진의 예상을 벗어났다.예민주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연은 조금 전 자신에게 와인을 뿌린 데다가, 지금은 또 노골적으로 이 목걸이를 차지하려고 한다. 예민주 자신의 체면을 완전히 깔아 뭉갠 것이다.예민주가 무진의 옆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무진 씨, 저 목걸이는 정말 예뻐요, 마음에 쏙 들어요.”다른 말은 없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무진이 왜 모르겠는가!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맘에 들면 가져야지.”가격이 계속 상승하자, 다른 사람들은 이미 손을 놓았고 성연과 무진만 남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무진은 뭔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성연이 왜 자신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게다가 성연도 끝까지 자신과 경매를 하려는 모양이야.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데.’ ‘자신의 회사가
경매가가 2천억 원에 달하자, 장내는 모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무대 위의 경매사도 그저 입만 벌린 채 어안이 벙벙했다. ‘오늘 밤 이 경매가 끝나면, 내일 뉴스 헤드라인은 틀림없이 이 경매 소식이 될 거야.’새롭게 엄청난 가격에 직면하자, 화가 난 예민주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성연이 고의로 자신에게 싸움을 걸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죽일 년...”작은 소리로 욕을 하면서, 주먹을 쥔 손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예민주는 성연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이 목걸이 때문이 아니라, 경매 시작부터 지금까지 줄곧 성연에게 눌리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예민주는 성연과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했다.예민주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3천억 원으로 가격을 올리려고 했다.그러나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무진의 따뜻한 손이 예민주를 붙잡았다.“이제 그만해.”무진의 목소리는 나지막하면서도 묵직했다.‘목걸이 하나가 2천억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이 되었어. 이건 비정상인 게 분명해.’‘그런데 민주는 지금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느라, 전반적인 형세와 이해득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어.’“왜요? 아직은 패배를 인정할 때가 아니에요!”무진이 계속 가격을 올리는 걸 막자,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불쾌한 기색이 가득했다.무진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예민주는 작은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불평했다.“저 천한 년이 마지막에 승자가 되는 꼴을 볼 수는 없어요. 우리 WS그룹을 너무 깔보고 있고요!”이렇게 말은 했지만, 예민주가 정말로 신경 쓰는 것은 자신의 체면이다.무진은 그래도 예민주가 멋대로 성질을 부리게 내버려두지 않고 설득했다.“그저 목걸이일 뿐이야. 보석에 관심이 있다면, 더 좋은 걸 사 줄게.”“난 이게 마음에 들어요!”예민주의 목소리는 더욱 고집스러웠지만, 화가 나서 입술을 꽉 깨문 채 무대 위의 경매사가 카운트다운을 하는 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다.곧 경매사가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날 저녁 경매가 끝난 후 무진과 예민주는 주최측이 기획한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참석한 손님들은 대부분 방금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이었고, 특별히 초청한 게스트들도 약간 있었다.북적거리는 연회장에서 무진은 가끔씩 다른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예민주는 그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잠시 후 무진이 사업을 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자, 예민주는 뷔페 테이블로 가서 음식을 좀 먹겠다고 핑계를 댔다.무심한 척 가장한 채, 예민주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연회장을 누볐다.“술 두 잔 주세요!”마침 한 종업원이 접시를 들고 오는 걸 보고, 예민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종업원을 불렀다.곧 손에 칵테일 한 잔을 든 예민주는 겉으로는 내키는 대로 다니는 척하면서, 눈으로는 열심히 성연을 찾았다.오래지 않아 성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성연은 젊은 남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오늘 밤 성연은 줄곧 환영을 받았고 연회에서도 남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멀리 성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예민주는 하찮게 여기는 듯한 표정이었다.“여우 같은 년!”낮은 목소리로 욕을 하더니, 시기하는 기색을 감추고 가볍게 성연의 곁으로 걸어갔다.그러나 손에 술 두 잔을 들고 있는 예민주의 모습을 보자, 성연은 예민주가 입을 열기도 전에 곧바로 그 의도를 알아차렸다.“죄송합니다. 저 아가씨가 사적인 일로 저를 찾아왔네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남자들에게 스스럼없이 인사를 한 성연은, 사람들을 피해서 조용한 구석 자리로 향했다.성연을 보자 여전히 좀 꺼림칙했지만, 예민주는 자신을 본 성연이 켕기는 게 있어서 저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눈을 부릅뜬 채 성연을 따라갔다.연회장 구석에 도착하자 성연이 먼저 걸음을 멈추었다.그리고 침착한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예민주를 주시했다.“사매, 무슨 일로 나를 찾았어?” 성연이 먼저 입을 열고 물었다.예민주는 겉으로라도 공손한 척하지 않았다. 곧바로 냉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 나는 단지 오늘 밤
그윽한 푸른색 액체를 힐끗 쳐다보던 성연은 천천히 눈앞의 칵테일을 받았다.“당연히 거절하지 않지...”그리고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술잔을 들고 있는 성연을 보자, 예민주의 눈에는 음험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러나 마치 성연과 다시 사이가 좋아진 것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선배가 마음이 넓군요. 후배인 나는 정말 자괴감이 드네요.”예민주는 칭찬을 하면서 곧바로 재촉했다.“그럼 빨리 술을 마셔요. 앞으로 우리는 여전히 좋은 자매가 되는 거예요.”예민주의 시커먼 속내를 간파했지만 성연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대범한 모습으로 술잔을 들고 단숨에 마셨다.이어서 눈썹을 세운 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이 칵테일의 맛은 그래도 괜찮네. 순수한 향기 속에 상큼함이 배어 있어.”성연이 칵테일을 마시는 모습을 보자, 예민주는 마음속으로 환호하면서 득의양양한 심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방금 화장실에서 예민주는 독이 든 가루약 두 개를 배합해서 감쪽같이 칵테일에 첨가했다.‘이 독약은 사람을 죽게 하지는 않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있어.’‘지금 송성연이 칵테일을 마셨으니, 기껏해야 반 시간 뒤에는 약효가 발휘되겠지.’‘그러면 송성연은 마치 수많은 개미들이 몸을 갉아먹는 것처럼 극한의 고통을 느낄 거야.’이렇게 생각한 예민주는 좋은 구경을 하려고 앉았다.그리고 일부러 친절하게 성연에게 술을 권했다.“술이 맘에 들면 더 마셔요.”“그래!”생각해 보지도 않고 대답한 성연은 다시 잇달아 세 모금을 마셨다.곧 술을 다 마시자, 예민주의 눈에서는 악독한 기색이 드러났다. 성연은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결정했다.팍!성연은 전혀 구속됨이 없이 자연스럽게 술잔을 바로 땅으로 던졌다.술잔이 바닥에 떨어져 부서지자 성연의 눈빛도 싸늘해졌다.“사매, 내가 술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셨으니 마음이 아주 기쁘겠지?”성연은 예민주의 진면목을 바로 폭로할 생각으로 또 다른 깊은 뜻을 품고 반
성연이 자신의 앞에서 해독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예민주는 멍해졌다.자신이 온갖 계략을 다 세웠지만, 성연이 일찌감치 준비를 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당신...”예민주는 뭔가 말을 하려고 입술을 움직였다가 곧 멈추었다.사실 예민주가 지금 말하든 말하지 않든 결과는 모두 같았다. 그저 굴욕을 자초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예민주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본 성연은 싸늘하게 웃었다.“의외였던 모양이지? 너도 잘못 계산할 줄은 몰랐던 거야?”예민주는 눈빛을 반짝였지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성연은 예민주의 반응에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이 기회를 통해서 자신이 할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모든 건 끊임없이 변하는 법이야. 애초에 네가 나를 어떻게 함정에 빠뜨렸으니, 이제는 내가 더 심하게 네게 돌려줄 차례야.”또박또박 예민주에게 경고를 보낸 뒤 성연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네가 말끝마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데, 너한테 충고하겠어.”“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면 반드시 스스로 무너지는 법이야. 네가 한 악행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한다 해도, 하늘은 장님이 아니야. “네 스스로 알아서 잘 처신해!”할 말은 다 했기에, 성연은 더 이상 예민주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떠나기 전에 예민주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어깨를 토닥인 뒤 냉담하게 가버렸다.성연이 막 떠난 뒤, 무진이 황급히 예민주에게 다가왔다.그는 원래 예민주를 찾던 무진은, 성연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순간 무진의 머릿속에 깨진 기억 조각들이 스쳐 지나갔다.“아가씨...”무진이 무의식적으로 불렀지만, 그 소리는 곧 시끄러운 소리 속에 잠겨버리고 말았다.성연은 전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성연의 나풀거리는 모습은 점점 멀어지면서 곧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무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마치 보이지 않는 바늘로 머릿속을 세게 찌르는 것처럼 머리가 은은하게
눈썹을 찌푸리면서 이마를 짚은 채 입으로는 무정하게 말하면서도, 그 처량한 모습을 보자 결국 예민주에게 다가갔다.“됐어, 내 잘못이야. 나는 네가 접근하는 걸 거절한 게 아니야. 내가 결벽증이 있다는 걸 알잖아.” “젖은 옷을 휴지로 닦는 것보다는 차라리 옷을 갈아입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야.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응?”예민주를 한 손으로 감싼 무진의 눈빛은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목소리도 조금 전처럼 뻣뻣하고 직설적이지 않았다.다른 한 손으로는 휴지로 예민주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가만히 위로했다.“오빠는, 오빠는 내가 다가가는 걸 거부했어요. 여자의 젊은 시절이 얼마나 가겠어요?” “나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모두 오빠에게 줬지만, 오빠는 결국 나를 이렇게 대했어요.”예민주는 말을 할수록 억울한 모습이었고, 눈가의 눈물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무진은 이런 상황을 그저 조용하게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우는 걸 좋아하지 않아도...어쩔 수 없이 눈길을 떨어뜨린 무진의 입가에 냉담한 기색이 스쳐갔다. 예민주의 어깨에 두 손을 가볍게 걸친 채 다독이면서 말투도 그다지 차갑지 않았다.“이렇게 소란 피우지 마. 아직 할 일이 많아. 늦게까지 일해야 하니까, 내 말대로 빨리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오빠는 매번 이럴 때마다 도망가려고 해요. 왜 매번 그러는 거예요!”예민주는 눈썹을 찌푸린 채 계속 눈물을 흘렸다.방금 전의 눈물이 연기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정말로 억울한 심정이었다.‘여자의 청춘은 천금으로도 살 수 없어. 처음에 무진 오빠에게 접근한 목적이 단순하지 않았다 해도, 요 몇 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함께 지냈어.” ‘어떻게 진실한 감정이 조금도 생기지 않는 거야?’‘안 돼, 지금 이런 형세에서는 더 이상 무진 오빠가 도망가게 놔둘 수 없어!’이렇게 생각한 예민주는 두 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다음 순간, 두 손으로 무진의 허리를 감싸 안고 흐느꼈다. 시선을 늘어뜨린 예민주의 모습은 무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우리가 이렇게
책상 앞으로 다가온 예민주는 손에 든 우유를 놓고 두 손으로 책상을 가볍게 잡았다.“오빠도 아직 자지 않았잖아요. 나도 아직은 졸리지 않아요. 이쪽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오빠가 또 야근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그윽한 향기가 사방으로 풍기는 듯했다. 냄새에 무척 민감한 무진은 눈썹을 가볍게 찡그렸다.그러나 눈썹만 찌푸릴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응.”단지 간단하게 대답만 하고 다시 눈앞의 서류로 눈빛을 돌렸다.예민주는 할 말을 잃었다....‘이렇게 유혹하는데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고?’남자가 전혀 눈길을 돌리지 않자, 마음속에는 불만이 가득했다.“이렇게 늦게까지 일했는데, 우선 좀 쉬면서 우유를 좀 마셔요.”예민주는 다시 책상에 놔둔 우유잔을 무진의 앞으로 밀었다.무진은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빠. 좀 있다가 마실 테니까 일단 한쪽에 둬.”하지만... 예민주는 무진의 말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내밀었다.무진의 눈앞에 놓인 우유!“잠깐만요.”탁- 무진은 무의식적으로 거절하려고 했다. 눈앞을 가리는 우유잔을 자기도 모르게 밀쳐내는 순간, 무진의 가슴팍은 쏟아진 우유로 흠뻑 젖었다.우유 때문에 무진의 가슴이 축축하게 젖은 모습을 보면서, 예민주는 이미 다음 준비가 되어 있었다.다음 순간.자책하는 표정으로 휴지를 찾다가 무진의 오른쪽 옆에 있던 휴지에 시선이 닿았다.“어머, 무진 오빠, 컵을 잘못 놓은 제 잘못이에요... 내가 휴지로 좀 닦아 줄게요.”말을 마치고는, 반대편의 휴지를 잡은 척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무진에게 몸을 숙였다.지금 자신의 행동이 어떤 상상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 채.예민주의 행동을 본 무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눈빛 속에 피곤한 기색이 스쳐가더니, 곧바로 의자에서 일어서서 예민주의 접근을 차단했다.“옷을 갈아입으면 돼. 휴지로 닦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무진은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갑자기 처량한 여자의 목
무진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어?”예민주는 아주 똑똑한 여자다. 무진의 표정을 주시하면서, 적당한 선에서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오빠가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럼 나는 샤워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 이미 조금 전의 느끼함은 사라졌고, 예민주는 곧바로 자기 방으로 갔다.무진을 등지는 순간, 생긋 웃던 미소는 이미 사라졌다. 입술을 꽉 다문 채, 예민주의 눈빛에는 교활한 기색이 번뜩였다.방에 온 예민주는 곧장 옷방의 가장 안쪽에서 옷 하나를 꺼냈다.이 옷은 자신이 일찌감치 준비해 둔 ‘비밀무기’다. 예민주는 빼어난 몸매를 자랑했다. 외국의 풍만한 글래머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바디 라인도 절대적으로 아름답다.무진이 5년 동안 줄곧 자신과 교재하면서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선을 넘는 일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그전까진 그렇다고 쳐. 틀림없이 무진 씨가 내게 최고를 주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으니까.’‘그러나 오늘 연회장에서 송성연을 봤을 때, 무진 씨의 눈빛과 반응은 여전히 당황스러웠어.’‘아무래도 좀 더 일찍 행동해야 할 것 같아.’몇 분 뒤.예민주는 잠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아래층.“프로젝트 계획서는 바로 내 이메일로 보내고, 내일 아침 9시에 회의를 하기로 하지.”“오후에 처리하지 않은 서류도 함께 보내도록 해.”투명하고 거대한 통유리창을 통해서, 실내에서도 파도치는 바다의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지금 그 창가에는 무진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통화하고 있지만, 무진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집에서 식사하던 중에 전화로 대표의 지시를 받게 되자, 상대방은 곧바로 수저를 내려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최근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세력이 WS그룹의 사업을 줄곧 비밀리에 차단해 왔지만, 누군지 파악하려고 해도 언제나 실패해서 기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이런 의미 없는 일은 사람을
해변의 별장.‘모든 일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법이야. 누구라도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쉽지 않아.’오늘 성연을 보자, 순간 예민주의 마음은 흐트러졌다.‘송성연이 돌아온 목적이 뭘까? 나를 겨냥한 걸까?‘그 당시 송성연은 단지 조금밖에 몰랐잖아...’돌아온 후부터 예민주는 줄곧 소파에 앉아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자신의 기억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느라, 뒤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무진은 약간의 결벽증이 있다. 밖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첫 번째 하는 일은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다.지금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소파 앞에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앉아 있는 예민주를 발견했다.“민주, 오늘 돌아온 뒤로 왜 좀 이상한 거야?”예민주의 소파 옆에 앉은 무진은 아주 자연스럽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성연을 겨냥할 방법을 찾던 에민주는 무진의 말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와, 왔어요?”긴장한 탓에 살짝 떨리는 목소리.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돌아온 후에 줄곧 여기에 앉아 있었어.”예민주는 눈썹이 움츠러들면서 순간 당황했다.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성연의 잘못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만약 송성연이 갑자기 돌아오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긴장했겠어?’‘외국에 잘 처박혀서 살다가, 왜 계속 외국에 있지 않고 꼭 돌아와서 내 행복한 생활을 방해하겠다는 거야!’마음속으로 한바탕 욕을 하자, 마음은 오히려 아까보다 많이 상쾌해졌다.약간 굳은 표정의 예민주가 서글픈 표정을 하고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탄했다.“무진 오빠, 단지 오늘 연회에서 감정이 좀 복받쳤을 뿐, 아무 일도 없어요.”보아하니 오늘 연회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호기심 때문인지 지금 무진은 뜻밖에도 이에 대해서 흥미를 보였다.“무슨 감정이 복받치는 일이 있었는지 한번 말해 봐.”무진이 뜻밖에도 먼저 자신에게 고민을 말해보라고 하는 말을 듣자 예민주는 다소 의아했다.요 몇 년 동안 둘이 사이
성연은 원래 안금여와 아이들에게 이 만남의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오늘은 아이들이 ‘아빠의 신분'을 묻지 않았지만, 앞으로 할머니와 자주 만난다면 오늘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을 거야.’하지만... 지금 성연은 약간 망설였다.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세 사람의 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안금여의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그리고 머리도 잘 보이지 않는 두 아이가 각각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정말 마음이 아팠다.“우리 손자놈이 귀신에 홀렸는지, 그런 황당한 행동을 해서 정말 네게 죄를 지었어!”안금여는 지금 이미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양심의 가책이 가득한 눈빛으로 성연을 바라보면서 작은 소리로 무진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성연이 급히 일어나 막으려 했지만, 결국 발걸음을 살짝 움직였다가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지금 성연의 과도한 반응은 단지 자신이 너무 절박하게 보일 뿐이다.한참 뒤.결국 모질게 마음을 먹지 못한 성연은, 안금여에게 두 아이를 자주 보러 와 달라고 부탁하며 타협해야 했다.산 중턱 별장 대문 쪽.성연은 양쪽에 두 아이를 데리고 문 앞에 서 있었다.“돌아가신 뒤에는 건강에 주의하시고 너무 과로하지 마세요.”성연은 노부인에 대해서 여전히 약간의 애틋함을 가지고 있었다.결국 자신이 강씨 가문에 들어온 순간부터 할머니는 성연을 정말 아꼈다. 비록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시절에 무진이 이혼을 결정했을 때도, 안금여는 여전히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서 말리려고 했다.비록...결국 효과는 없었지만.“엄마, 앞으로도 증조할머니를 자주 볼 수 있을까?”검은색 벤틀리가 점차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서 시선에서 멀어지자, 사진이 고개를 들어 성연을 바라보았다.“너는 증조할머니가 좋아?”딸아이의 이 말을 듣고도, 성연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고개를 까닥거리는 아이의 두 뺨이 반짝거려서 정말 손에 꼭 쥐고 싶었다.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복잡함에 입술을 살짝 오므
한 시간 후.성연이 서재로 걸어 나왔다. 계단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아래층에서 전해지는 즐거운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성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깊고 맑은 눈동자는 아래층을 향했다. 세 사람의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자, 마음속에 다소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증조할머니, 빨리 보세요. 사진이가 만든 게 이게 뭔지 아세요?”“증조할머니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우리 귀여운 사진이가 작은 호랑이를 만들었을 걸.”아이들도 어른이 자신에게 맞춰서 노는 걸 좋아했다. 노는 이 시간이 두 아이에게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안금여가 그렇게 진지하게 대답하는 걸 듣자, 사진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작은 얼굴은 이미 안금여의 품에 거의 파묻힐 정도였다.“맞아요, 증조할머니는 너무 똑똑해요. 이거, 이거, 이거는 작은 호랑이고, 사진이는 몽둥이에요. 아주 비슷하게 만들었지요.”자상한 표정의 안금여는 한 손으로 사진의 이마 위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세심하게 어루만졌다.“우리 귀염둥이 사진이가 하는 건 뭐든지 최고야. 증조할머니는 가장 맘에 들어.”이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든 사진은, 포도처럼 동그란 큰 눈을 반짝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히히히.”소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성연은 한참동안 있었다. 앞으로 나가고 싶어도, 세 사람이 그렇게 즐겁게 노는 모습을 어떻게 깨뜨려야 할지 몰랐기에.지금 이 조그만 녀석이 줄곧 강씨 가문의 할머니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자, 정말 견딜 수 없게 될까 봐 두려웠다.“사진아. 계속 증조할머니한테 기대면 안 돼. 할머니가 힘드셔서 안 돼.”갑자기 엄하면서도 가볍고, 화를 내지 않으면서도 위엄이 있는 목소리가 뒤에서 흘러나왔다. 성연도 이미 소파 앞으로 다가왔다.“엄마!” 엄마를 본 사진이 달콤하게 소리쳤다.성연의 차분한 얼굴에는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약간 느슨해 보이는 입꼬리는 오히려 친근감을 주었다.그러나 성연은 맞은편을 바라보는 순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증조할머니는
두 아이가 지금 자신의 옆에서 즐겁게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안금여의 그윽한 두 눈에 서글픔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결국 안금여는 감정은 잠시 가슴속에 담아두기로 결정했다.잠시 후, 안금여는 다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얘들아, 증조할머니하고 함께 노는 건 어때?”“좋아, 좋아요, 증조할머니 너무 예뻐요. 사진이는 예쁜 증조할머니와 같이 노는 게 좋아요!”사진은 아주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눈빛에는 흥분이 가득했고, 안금여에 대해서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진이 방금 전 안금여를 보자마자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기 때문이다.자신에 대한 아이의 이런 열정을 알게 되자, 안금여의 마음도 당연히 즐거웠다. 눈가의 미소도 끊임없이 이어졌다.옆에서 줄곧 말수가 적은 사무도 비록 말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성실하게 안금여의 옆에 있으려고 했다. 안금여가 자신을 계속 안고 있어도 전혀 거절하지 않았다.“증조할머니. 이게 무슨 모양인지 보실래요?”“이거? 이런 추상적인 도안은 정말 증조할머니한테는 어려운 걸. 증조할머니가 한번 생각해 볼게.”안금여는 일부러 생각하는 척하면서 장난감을 쥐고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게 되자, 안금여의 마음도 한결 밝아졌다.그렇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마음속에 궁금하던 걸 물어보았다.“우리 귀염둥이들, 너희들은 요 몇 년 동안 외국에서 잘 지냈니?”사진은 아래턱을 약간 치켜세우면서 엉뚱한 대답을 했다.“아니요, A국에 있을 때는 이렇게 재미있는 장난감도 맛있는 것도 없었어요. 모두 단 음식만 있었어요.”어린 사진은 작은 소리로 항의하듯이 말했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항의했지만, 점점 흥분하면서 점차 소리도 커졌다.작은 입으로 계속 재잘거리면서 사진의 눈꼬리는 목소리에 따라 움직였다. 눈살을 찌푸렸다가 웃으면서 너무나 사랑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증조할머니, 운성에는 맛있는 게 너무 많아요!”사진은 잔뜩 뾰로통한 모습으
‘전혀 감정이 없다면, 아이의 이름도 그렇게 짓지 않았겠지.’이렇게 생각하자, 안금여는 셩연의 눈을 보면서도 마음이 아팠다.안금여의 품에 안긴 사진은 아주 여유 있는 자세였다. 한쪽 손은 허리춤에 걸치고 한쪽 손으로 즐겁게 간식을 먹으면서도 아주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다.갑자기 고개를 든 사진이 뭔가 탐구하려는 욕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안금여를 바라보았다.“증조할머니, 우리 아빠 할머니가 맞아요?”눈에 한껏 미소를 짓고 있던 안금여는 사진의 이 말을 듣자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 갑자기 멍한 눈빛으로 변하면서, 입은 천근만근인 것처럼 전혀 입을 뗄 수가 없었다.입술을 벌린 채 안금여의 눈길은 맞은편의 성연에게 향했다.성연도 아이가 지금 이런 말을 물을 줄은 몰랐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하지만 잠시 생각을 멈추고 한순간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우리 귀염둥이, 엄마하고 오빠, 이렇게 셋이서 약속했잖아? 잊어버린 거 아니야?”성연의 눈길에는 온정이 어려 있었다.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이, 태연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갖추고 있었다.‘마치... 마치 이미 어떤 약속이 있었던 것 같아.’과연 성연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안금여의 품에 안겨 있던 사진의 얼굴에서는 이미 조금 전의 궁금하던 기색이 없어졌다. 눈동자를 살짝 굴리는 영리하고 귀여운 사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랑스러웠다.“아, 내가 잊었다. 엄마하고 우리 사이의 약속인데, 사진이가 반드시 지켜야 해!”‘마치 선서라도 하는 것처럼 진지한 아이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탄복할 수밖에 없어.’‘이렇게 어린 아이인데 정말 훌륭하게 교육을 받았어.’“성연아, 요 몇 년 동안 너 혼자 이 두 아이를 돌보느라 정말 고생했어.”성연이 아이에게 말을 걸 때의 그 기세와 아이의 반응을 보자, 안금여의 눈에서는 복잡한 감정들이 반짝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안금여의 말을 듣자, 테이블 위에 놓인 성연의 손가락이 살짝 멈칫했다. 마치 명치 부분을 은은하게 건드린 듯한 느낌이었다.5년 동안 자신이 아이를
“안녕하세요, 증조할머니, 저는 송사무입니다.”남자아이는 여전히 냉담한 표정이지만, 뜻밖에도 손을 뻗어서 자신의 태도를 나타냈다.바로 앞에 있는 증손자의 작은 손을 멍하니 보던 안금여는, 재빨리 손을 내밀어 답하면서 사무를 품에 안았다.“이름이 뭐라고?”주변에 어떤 시끄러운 소리도 없고 방해받지 않았는데도, 안금여는 결국 자신이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만약 이전에 이런 상황이었다면 사무는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그러나 안금여가 말을 하자마자 사무는 어떤 감정도 없이 다시 대답했다.“송사무요.”“사무, 사무라! 그래, 아주 좋은 이름이구나!”안금여는 한없이 기쁜 표정으로 어린 증손자의 손을 끊임없이 어루만졌다. 심지어 꿰뚫어 보듯이 사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뜨거운 열정이 담겨 있었다.아까는 좀 거리가 있었지만 지금 자신의 품 안에 아이를 안고 보니, 사무의 이목구비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 모습은 완전히 무진이 축소판이잖아!’‘이 녀석은 완전히 자기 아버지하고 판박이야.’‘무진이 어릴 때 사진하고 지금 안고 있는 아이를 비교해도 전혀 차이가 없을 거야!’“그래, 이 아가는 이름이 뭐야?”사진이 맞은편에 할머니 품에 안겨 있는 오빠를 보자, 할머니와 증손자 두 사람의 모습은 아주 온화하고 따뜻해 보였다. 성연의 품속에 안겨 있던 사진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성연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한이 가득한 성연의 눈은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사진이 츤데레한 말투로 퉁명스럽게 말했다.“흥, 할머니는 오빠만 좋아하고 나는 안아주지도 않으니까, 내 이름을 안 가르쳐 줄 거야!”성연은 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야말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딸을 안고 있던 손에 힘을 약간 주면서 ‘귀염둥이’를 가볍게 끌어당겼다.“흥!”“아이고, 우리 증손녀 아가야! 증조할머니가 잘못했어. 증조할머니 잘못이야! 같이 안아 줄게. 자, 할머니한테 이리 오렴!”말을 하면서 안금여는 온통 기대하는 표정으로 두 팔을 활짝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