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푸른색 액체를 힐끗 쳐다보던 성연은 천천히 눈앞의 칵테일을 받았다.“당연히 거절하지 않지...”그리고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술잔을 들고 있는 성연을 보자, 예민주의 눈에는 음험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러나 마치 성연과 다시 사이가 좋아진 것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선배가 마음이 넓군요. 후배인 나는 정말 자괴감이 드네요.”예민주는 칭찬을 하면서 곧바로 재촉했다.“그럼 빨리 술을 마셔요. 앞으로 우리는 여전히 좋은 자매가 되는 거예요.”예민주의 시커먼 속내를 간파했지만 성연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대범한 모습으로 술잔을 들고 단숨에 마셨다.이어서 눈썹을 세운 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이 칵테일의 맛은 그래도 괜찮네. 순수한 향기 속에 상큼함이 배어 있어.”성연이 칵테일을 마시는 모습을 보자, 예민주는 마음속으로 환호하면서 득의양양한 심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방금 화장실에서 예민주는 독이 든 가루약 두 개를 배합해서 감쪽같이 칵테일에 첨가했다.‘이 독약은 사람을 죽게 하지는 않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있어.’‘지금 송성연이 칵테일을 마셨으니, 기껏해야 반 시간 뒤에는 약효가 발휘되겠지.’‘그러면 송성연은 마치 수많은 개미들이 몸을 갉아먹는 것처럼 극한의 고통을 느낄 거야.’이렇게 생각한 예민주는 좋은 구경을 하려고 앉았다.그리고 일부러 친절하게 성연에게 술을 권했다.“술이 맘에 들면 더 마셔요.”“그래!”생각해 보지도 않고 대답한 성연은 다시 잇달아 세 모금을 마셨다.곧 술을 다 마시자, 예민주의 눈에서는 악독한 기색이 드러났다. 성연은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결정했다.팍!성연은 전혀 구속됨이 없이 자연스럽게 술잔을 바로 땅으로 던졌다.술잔이 바닥에 떨어져 부서지자 성연의 눈빛도 싸늘해졌다.“사매, 내가 술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셨으니 마음이 아주 기쁘겠지?”성연은 예민주의 진면목을 바로 폭로할 생각으로 또 다른 깊은 뜻을 품고 반
성연이 자신의 앞에서 해독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예민주는 멍해졌다.자신이 온갖 계략을 다 세웠지만, 성연이 일찌감치 준비를 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당신...”예민주는 뭔가 말을 하려고 입술을 움직였다가 곧 멈추었다.사실 예민주가 지금 말하든 말하지 않든 결과는 모두 같았다. 그저 굴욕을 자초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예민주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본 성연은 싸늘하게 웃었다.“의외였던 모양이지? 너도 잘못 계산할 줄은 몰랐던 거야?”예민주는 눈빛을 반짝였지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성연은 예민주의 반응에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이 기회를 통해서 자신이 할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모든 건 끊임없이 변하는 법이야. 애초에 네가 나를 어떻게 함정에 빠뜨렸으니, 이제는 내가 더 심하게 네게 돌려줄 차례야.”또박또박 예민주에게 경고를 보낸 뒤 성연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네가 말끝마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데, 너한테 충고하겠어.”“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면 반드시 스스로 무너지는 법이야. 네가 한 악행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한다 해도, 하늘은 장님이 아니야. “네 스스로 알아서 잘 처신해!”할 말은 다 했기에, 성연은 더 이상 예민주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떠나기 전에 예민주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어깨를 토닥인 뒤 냉담하게 가버렸다.성연이 막 떠난 뒤, 무진이 황급히 예민주에게 다가왔다.그는 원래 예민주를 찾던 무진은, 성연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순간 무진의 머릿속에 깨진 기억 조각들이 스쳐 지나갔다.“아가씨...”무진이 무의식적으로 불렀지만, 그 소리는 곧 시끄러운 소리 속에 잠겨버리고 말았다.성연은 전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성연의 나풀거리는 모습은 점점 멀어지면서 곧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무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마치 보이지 않는 바늘로 머릿속을 세게 찌르는 것처럼 머리가 은은하게
“왜 찾았겠어요? 나한테 도발하려고 찾은 거지요!”예민주는 정말 괴롭힘을 당하는 것처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하소연했다.그러나 무진은 시종 납득이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전혀 관계가 없는데, 송성연이 왜 민주를 괴롭히는 거지?’“서로 아는 사이야?”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예민주를 통해 좀 더 정보를 알아내서, 그 여자에게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예민주는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아는 사이는 아니에요. 그 여자가 아마 질투하는 것 같아요. 어떤 여자들은 그래요.”무진이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이제 무진은 그 신비한 여자가 어쨌든 다시 나타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그날 저녁 파티가 끝나갈 때쯤 정신을 딴 데 파는 무진의 모습을 보자, 예민주는 속이 안 좋다고 거짓말을 하고 먼저 파티장을 나가려고 했다.또 다른 쪽. 성연은 이미 소리 없이 파티장을 떠났다.떠나기 전에 고개를 돌려 보다가, 무진이 예민주에게 얽매인 모습을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지만.무진의 차가운 표정을 통해서, 성연은 무진이 예민주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서 단지 겉으로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사람이 자신을 속일 수는 있지만, 잠재의식 속의 기억은 변하지 않는다.그래서 성연은 일단 서두르지 않았다. 예민주의 비열하고 추악한 가면을 조금씩 벗겨서, 위장한 모습을 숨길 수 없게 만들려는 것이다.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눈길을 돌린 성연은 평온한 모습으로 경매 파티장을 떠났다.입구에 나서니 바깥은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잠시 조용히 서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던 성연은, 자신의 차가 길가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성연이 나오는 걸 본 서한기가 곧바로 차에서 내려 차문을 열었다.돌아가는 길에 창밖의 야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성연은, 이따금씩 위장에서 이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휴...”독주와 해독제가 위에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
일을 할 때는 서로 도왔고 생활에서도 그렇게 잘 맞았다.원래 그 동안은 아이를 가질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올 일은 아무 예고도 없이 오고, 때로는 미리 예측할 수도 없었다.성연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두 사람도 한순간 망설였다. 하지만 곧바로 새 생명을 맞이하는 기쁨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그때 시절에는 그랬지...’갑자기 소리가 들려오면서, 조용한 차 안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보스, 산기슭의 별장에 도착했습니다.”한 손을 미간을 댄 채 피곤해 보이는 모습의 성연을 백미러로 보면서, 서한기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문득 귓가를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자, 꿈속에 잠겨 있던 성연은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번쩍 눈을 뜨자, 성연의 눈빛에는 어리둥절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응? 뭐라고 했어?”운전석에 앉아 있던 서한기는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 마음속으로는 성연이 왜 그런지 알고 싶었지만, 그래도 잠시 신중하게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산기슭의 별장에 도착했습니다.” 서한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성연은 이미 어둠이 깔린 정원을 바라보았다. 흐릿한 불빛에 몽롱한 느낌이 더 많아졌다.‘방금 잠든 것 같은데 집에 도착했네...’“앞으로 며칠 동안은 상대적으로 좀 바빠질 거야.”성연은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종일 분주하게 뛰어다니느라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다.“오늘 밤은 별다른 일이 없으니까, 돌아가서 빨리 쉬도록 해.”차에서 내린 성연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차 안을 바라보았다.서한기는 전혀 다른 생각 없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보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응.”성연은 짧게 대답했다.차에서 내리자, 마침 저녁 바람이 불어왔다. 아직 여름의 더운 열기를 담고 있었지만, 저녁 무렵에는 그래도 좀 더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찰칵’ 현관문이 열리고 성연이 안으로 들어서자, 온 방을 가득 채운 강렬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과연 거실의 소파에 시선을 돌리자, 비로소 그 이유를 알
“할머니.”살짝 눈을 내리깔면서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온 성연은, 얼른 소파 앞으로 가서 할머니를 마주보며 앉았다.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지만, 그 간격은 그들 두 사람만이 알고 있을 듯했다.안금여는 이전에 성연과 자기 손자가 찰싹 붙어 있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매번 본가로 돌아올 때마다 다정하게 내 팔장을 끼면서 할머니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그렇게 공손한 모습이야.’ ‘비록 여전히 할머니라고 불렀지만, 정답던 사이는 많이 줄어들었어...’지금 이 순간,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을 분명히 만났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안금여의 입안에서만 맴돌았고, 아무리 해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이렇게 성연이를 보고 있으니 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야. 하지만 좀 더 확고하고 성숙해진 모습이야.’‘그래,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 단란한 가정에서 편안하게 지내야 할 때 그런 일을 겪었어.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야.’‘임신한 아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아빠가 자신을 잊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이혼을 당할 처지가 되었지...’ ‘그 일로 성연이가 무너지지 않은 것만 해도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야.’‘그때의 일은, 정말 우리 강씨 가문은 성연이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어.’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를 쳐다보면서도 서로 말이 없었다.과거의 일에 대해서 성연은 다시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다. 비록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자신의 마음속의 아픈 부분이다. 누가 다른 사람에게 계속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싶을까?몇 분 뒤.안금여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성연이 천천히 일어섰다.“할머니, 아직 아이들을 보지 못하셨지요. 제가 지금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보여 드릴게요.”말을 마친 성연은 벌써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하얀 부드러운 손으로 계단 손잡이를 잡고서 천천히 올라갔다. 가벼워 보이지만 성연의 발걸음은 다소 초조했다.‘아이들을 본다고?’‘아이가 여기 있다는 거야?’‘그래. 성연이가 비행기에서 내
사무는 순간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낑낑거리면서 문을 열고 있는 여동생을 보면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사진이가 어디서 그런 인터넷 유행어를 배운 거야!’‘사진이 인터넷 사용 시간을 엄격하게 통제해야겠어!’찰칵! 문을 여는 순간, 엄마의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오빠가 자기하고 놀아주지 않는다고 식식거리던, 사진의 작은 얼굴에 순식간에 웃음이 가득했다.“엄마! 사진이는 엄마가 보고 싶었어!”팔을 벌리고 위로 치켜세우는 사진의 눈에는 순수한 사랑이 가득했다.‘이렇게 애교가 넘치는 아이를 누가 거부할 수 있겠어?’ 성연은 능숙한 동작으로 바닥에 있는 아이를 바로 품에 안았다. 얼굴을 맞댄 채 두 사람은 서로 뺨을 비볐다.“우리 사진이, 엄마도 보고 싶었어.”“엄마도 내가 보고 싶을 줄 알았어!”성연은 미소를 지으면서 검지로 아이의 코끝을 살짝 두드렸다.“요 장난꾸러기, 집에 있으면서 오빠 말을 잘 들었어?”가슴에 안고 있던 사진은 성연의 이 말에 살짝 찔리는 모습이었다. 눈동자에도 잠시 긴장한 기색이 스쳐갔지만, 곧바로 다시 변하면서 정상으로 돌아왔다.“당연히 잘 들었지, 사진이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인걸!”눈썹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래?”사진은 오늘 엄마가 다시 되물을 줄은 몰랐다. 이렇게 엄마가 평소대로 행동하지 않자, 사진은 몸을 살짝 움츠렸다. 입을 살짝 삐죽거리면서 엄마의 눈빛을 슬그머니 피했다.“응, 응, 그랬어.”“호호호, 이 장난꾸러기 녀석. 자, 가서 얼른 오빠한테 오라고 해. 우리 같이 내려가서 만날 사람이 있어.”성연은 자연스럽게 딸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미소를 지었다.몇 분 후.한바탕 장난치는 소리와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소파 쪽으로 다가왔다.줄곧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안금여는, 아이들이 계단 입구에 왔을 때 이미 놀라서 온몸이 굳어져 있었다.‘아이가 둘, 둘이야?’쌍둥이 남매인 두 아이는 멀리서 봐도 그 빼어난
“안녕하세요, 증조할머니, 저는 송사무입니다.”남자아이는 여전히 냉담한 표정이지만, 뜻밖에도 손을 뻗어서 자신의 태도를 나타냈다.바로 앞에 있는 증손자의 작은 손을 멍하니 보던 안금여는, 재빨리 손을 내밀어 답하면서 사무를 품에 안았다.“이름이 뭐라고?”주변에 어떤 시끄러운 소리도 없고 방해받지 않았는데도, 안금여는 결국 자신이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만약 이전에 이런 상황이었다면 사무는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그러나 안금여가 말을 하자마자 사무는 어떤 감정도 없이 다시 대답했다.“송사무요.”“사무, 사무라! 그래, 아주 좋은 이름이구나!”안금여는 한없이 기쁜 표정으로 어린 증손자의 손을 끊임없이 어루만졌다. 심지어 꿰뚫어 보듯이 사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뜨거운 열정이 담겨 있었다.아까는 좀 거리가 있었지만 지금 자신의 품 안에 아이를 안고 보니, 사무의 이목구비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 모습은 완전히 무진이 축소판이잖아!’‘이 녀석은 완전히 자기 아버지하고 판박이야.’‘무진이 어릴 때 사진하고 지금 안고 있는 아이를 비교해도 전혀 차이가 없을 거야!’“그래, 이 아가는 이름이 뭐야?”사진이 맞은편에 할머니 품에 안겨 있는 오빠를 보자, 할머니와 증손자 두 사람의 모습은 아주 온화하고 따뜻해 보였다. 성연의 품속에 안겨 있던 사진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성연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한이 가득한 성연의 눈은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사진이 츤데레한 말투로 퉁명스럽게 말했다.“흥, 할머니는 오빠만 좋아하고 나는 안아주지도 않으니까, 내 이름을 안 가르쳐 줄 거야!”성연은 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야말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딸을 안고 있던 손에 힘을 약간 주면서 ‘귀염둥이’를 가볍게 끌어당겼다.“흥!”“아이고, 우리 증손녀 아가야! 증조할머니가 잘못했어. 증조할머니 잘못이야! 같이 안아 줄게. 자, 할머니한테 이리 오렴!”말을 하면서 안금여는 온통 기대하는 표정으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전혀 감정이 없다면, 아이의 이름도 그렇게 짓지 않았겠지.’이렇게 생각하자, 안금여는 셩연의 눈을 보면서도 마음이 아팠다.안금여의 품에 안긴 사진은 아주 여유 있는 자세였다. 한쪽 손은 허리춤에 걸치고 한쪽 손으로 즐겁게 간식을 먹으면서도 아주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다.갑자기 고개를 든 사진이 뭔가 탐구하려는 욕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안금여를 바라보았다.“증조할머니, 우리 아빠 할머니가 맞아요?”눈에 한껏 미소를 짓고 있던 안금여는 사진의 이 말을 듣자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 갑자기 멍한 눈빛으로 변하면서, 입은 천근만근인 것처럼 전혀 입을 뗄 수가 없었다.입술을 벌린 채 안금여의 눈길은 맞은편의 성연에게 향했다.성연도 아이가 지금 이런 말을 물을 줄은 몰랐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하지만 잠시 생각을 멈추고 한순간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우리 귀염둥이, 엄마하고 오빠, 이렇게 셋이서 약속했잖아? 잊어버린 거 아니야?”성연의 눈길에는 온정이 어려 있었다.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이, 태연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갖추고 있었다.‘마치... 마치 이미 어떤 약속이 있었던 것 같아.’과연 성연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안금여의 품에 안겨 있던 사진의 얼굴에서는 이미 조금 전의 궁금하던 기색이 없어졌다. 눈동자를 살짝 굴리는 영리하고 귀여운 사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랑스러웠다.“아, 내가 잊었다. 엄마하고 우리 사이의 약속인데, 사진이가 반드시 지켜야 해!”‘마치 선서라도 하는 것처럼 진지한 아이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탄복할 수밖에 없어.’‘이렇게 어린 아이인데 정말 훌륭하게 교육을 받았어.’“성연아, 요 몇 년 동안 너 혼자 이 두 아이를 돌보느라 정말 고생했어.”성연이 아이에게 말을 걸 때의 그 기세와 아이의 반응을 보자, 안금여의 눈에서는 복잡한 감정들이 반짝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안금여의 말을 듣자, 테이블 위에 놓인 성연의 손가락이 살짝 멈칫했다. 마치 명치 부분을 은은하게 건드린 듯한 느낌이었다.5년 동안 자신이 아이를
말을 마친 사무는 옆의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던 뚱뚱한 남자를 재빠르게 발견했다.“아저씨, 바로 저 사람이 사진이를 이렇게 다치게 했어요!”사무는 우렁찬 목소리로 방금 엘리베이터를 나온 남자를 가리켰다.팍!쿵!서한기가 재빨리 깔끔하게 손을 쓰자, 남자의 커다란 몸은 바로 바닥에 쓰러졌다.심지어 미처 반응하지도 못한 채, 남자는 온몸의 뼈마디가 어긋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 아이들은 네가 감히 건드릴 수도 감당할 수도 없어! 꺼져!”피에 굶주린 듯 핏발선 눈으로 쏘아보면서, 서한기가 나지막하게 외쳤다.쓰러져 있던 남자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온몸의 통증을 느끼면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다.그러나 막 일어나려던 남자는 등줄기의 시큰한 통증에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아!”다시 몇 번이나 일어나려고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결국 주저앉은 채 고통스럽게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다른 쪽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오던 무진은 자연스럽게 이쪽의 소동에 시선이 향했다.사람들 속에서 처참한 모습의 마케팅팀 팀장과, 그 앞에 서서 온몸에서 싸늘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미간을 찌푸린 무진은 고개를 살짝 돌려서 뒤를 바라보았다.“아이들이 아직 안 갔어?”그리고 무진이 엘리베이터 문을 나설 때, 손건호는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던 서한기를 알아차렸다.두 사람은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그들 두 사람은 예전 진성 조직의 공동 대장이었다. 여러 해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전우인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지난 일 때문에 서로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이 가슴이 찢어질 듯한 느낌도 그들 두 사람만 알 수 있을 뿐...왜인지는 모르지만 서한기의 망설임이 느껴지자,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약간 초조한 기색으로 말했다.“아직도 안 가보고 뭐 해?”‘저 두 아이는 뭔가 나와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머릿속에서 어떤
아직도 물린 곳에 통증을 느끼고 있던 마케팅팀 팀장은, 갑자기 사무가 이런 모습으로 자신에게 다가오자 무의식적으로 심적으로 위축되었다.‘어린 애가 어떻게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지?’‘방금 전에 행동은 치밀하게 생각하고 한 건가?’자신도 모르게 당황했던 마케팅팀 팀장은 곧 한숨을 돌렸다.‘내가 뭘 무서워하는 거야? 기껏해야 아이일 뿐인데 뭐 별다른 일이야 있겠어?’이렇게 생각하자 곧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변했다.“이 조그만 녀석이 어른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이렇게 버릇없게 말이지!”사무는 코웃음을 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너는 그런 말 할 자격 없어!”“이 버릇없는 새끼가 감히 욕을 해! 보아하니 너는 혼나는 걸로도 부족하겠어!”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을 때, 줄곧 말을 하지 않던 무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됐어, 너희 두 아이는 빨리 나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때문에 너희 엄마가 회사의 징계를 받게 돼.”사무는 무진의 얘기하는 모습을 힐끗 보았다. 전혀 감정이 없는 눈빛으로 볼 뿐.‘자기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맞는’ 걸 보면서도 이렇게 냉정할 수 있는 이런 아버지라니! 얼마나 마음이 독한 사람인지 충분히 알겠어.’‘오늘 아버지를 찾아온 건 결코 잘한 선택이 아닌 것 같아.’사무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저 마케팅팀 팀장을 흘겨보기만 했다. ‘얼마나 더 웃을 수 있는지 보겠어. 조금 있다가 한기 아저씨가 시원하게 혼내 줄 테니까!’조심스럽게 여동생을 일으켜 세운 사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여동생을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사진아, 가자!”사진도 지금은 여기에 더 있고 싶지 않았기에, 이를 악문 채 오빠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입구로 걸어가던 사진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상 앞에 앉은 남자를 쳐다보았다.무진도 마침 사진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무진은 왠지 가슴이 아팠다.그러나 무진이 움직이기 전에, 고개를 돌린 사진은 오빠와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마침내 소동이 마무리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 두 아이는 쌍동이겠지. 한 네다섯 살 정도 된 것 같아.’‘아이들 나이와 지금 상황을 보면...’‘혹시 이 두 아이가 정말 보스와 사모님 사이의 아이인 거야?’‘사모님이 낙태한 뒤 출국한 게 아니라, 모두를 속이고 아이들을 낳은 건가?’너무나 엄청난 상상이라서, 손건호는 곧 뭔가 큰일이 닥칠 거라는 느낌마저 들었다.지금은 원래 마케팅팀 팀장이 보고하면서 무진의 눈에 들 기회를 찾던 중이었다.그러나 오늘 보고는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 무려 30분 동안이나 저기압인 대표의 기세에 눌려 있던 상태였다.‘지금 대표의 골칫거리를 해결하면 칭찬을 받겠지.’눈빛을 빛내던 남자는 손을 비비면서 재빨리 앞으로 나왔다.“너희들 여기가 어딘지는 알아? 빨리 나가지 않고 뭐 해!”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면서, 마케팅팀 팀장이 사진의 여린 팔을 꽉 쥐었다.“어린 애들이 함부로 아빠라고 거짓말이나 하다니, 도대체 부모가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이게 얼마나 심한 장난인지 알기나 해?”마케팅팀 팀장은 거칠게 아이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무방비 상태였던 사진은 그저 팔이 꽉 잡힌 채 끌려갈 뿐이다.사진은 본능정으로 몸부림쳤다.하지만 어린아이가 어떻게 어른의 힘을 당해낼 수 있을까?사진의 발버둥은 결국 전혀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했다.“오빠, 오빠, 사진이 너무 아파!”“아아, 아파...”팔의 통증에 몸부림치던 사진은 기어이 기회를 틈타서 남자의 팔을 물었다.갑작스럽게 팔에 통증을 느끼자, 남자는 아이들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두 아이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면서 나뒹굴었다“아! 이 계집애가 감히 나를 물었어!”잔뜩 살이 찐 남자가 불쾌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으름장을 놓았다.갑자기 바닥에 떨어졌지만, 사무는 별다른 이상 없이 일어섰다.하지만 팔을 물린 남자는 사진을 떨쳐내려고 거칠게 밀쳤다.결국 힘에 밀린 사진은 의자에 이마와 팔을 부딪혔다. 부딪친 곳은 바로 빨갛
사진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어제 오빠 컴퓨터에서 아빠의 사진을 봤을 때도 천하제일 미남인 아빠 모습에 감탄했지만!오똑한 콧날에 굳게 닫힌 두 입술, 단정한 헤어 스타일에 온몸에 남성미가 가득한 건장한 모습!지금 그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경외심이 들면서 엄숙한 분위기였다. 이 모든 아우라는 바로 책상 앞에 앉은 무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그야말로 완벽한 남자야!’‘우리한테 이런 멋진 아빠가 있다니!’ 지금 사진은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아빠!”두 아이는 곧바로 책상 앞으로 달려갔고, 사진이 크게 외쳤다.가뜩이나 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에 ‘아빠’라는 소리가 들리자, 무진은 미간을 점점 찌푸리면서 그윽한 눈빛으로 두 아이를 훑어보았다.“어디서 온 애들이야? 언제부터 우리 회사가 아이를 데리고 출근할 수 있게 됐지?”불쾌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뒤로 젖혔다.“게다가 아무 데서나 아빠라니?”기쁨에 겨워 아빠에게 다가가려던 사진은 무진의 바로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아이의 눈에서는 순식간에 눈물이 솟아났다.애절하게 흐느끼면서 사진이 말했다.“아빠, 바로 우리 아빠잖아! 우리는 오늘 특별히 아빠를 찾으러 온 거야.”아이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자, 무진은 마치 가슴속이 꽉 막힌 듯했다. 당황한 무진은 얼른 내선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두 아이를 힐끗 쳐다보면서 말하는 무진의 목소리에는 왠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나는 너희들 아빠가 아니야. 거짓말하면 안 돼. 얼른 너희 엄마한테 가야지.”잠시 후, 수화기에서 시원스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네, 보스.]무진은 다시 두 아이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들어와서 두 아이를 데려가.”[아이들요?] 손건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반문했다.“응.”무진은 단지 한 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아빠는 우리가 그렇게 싫어요?”갑자기 사진의 옆에 서 있던 남자아이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앳된 얼굴이지만
사무가 눈을 치켜뜨면서 말했다. “그래야 해?”다시 한 번 우유 막대사탕을 입에 넣은 채, 사진이 불분명한 발음으로 말했다.“그럼, 오빠 그건 아직도 분명하지 않은데?”“하지만 내 말은 사실이야, 설마 네 오빠가 뛰어나지 않다는 거야?”사무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진지한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잔뜩 인상을 찌푸리던 사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면서 다시 빌딩을 바라보았다.“우리 그래도 일을 해야지. 사람들이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올라가게 할까?”웃음을 거둔 사무는 입술을 꼭 닫은 채 앞을 보면서 진지 모드로 돌입했다.“당연히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할 거야.”“그럼 어떡해?”사진은 바로 풀이 죽었다.‘이미 집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빠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곤란한 일이 생기면 정말 피곤해.’다음 순간.사진은 익숙한 오빠 손에 이끌려서 따라갔다.사무가 앞에 서고 사진은 따라서 함께 빌딩의 옆쪽의 작은 문으로 걸어갔다.입구에 선 두 아이는 작은 키 때문에 아주 순조롭게 입구의 경비원 순찰을 피할 수 있었다. 한바탕 민첩하게 왔다 갔다 한 끝에 이미 계단 앞에 도착했다.고개를 든 두 아이는 계단 위를 바라보았다. 입을 삐죽 내민 사진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텔레비전에 나오는 회장 사무실은 모두 맨 꼭대기층에 있어. 오빠, 아빠도 꼭대기층에 있는 건 아니겠지.”사무도 이 많은 계단을 보자 약간 풀이 죽었다.그래도 앳되지만 무게 있는 목소리로 사무가 나지막히 말했다.“그 점은 드라마도 틀리지 않았어.”“아!” 오빠가 말을 하자 사진의 작은 다리는 벌써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만약에 이렇게 높은 층을 걸어서 올라간다면, 오늘 내 다리는 아마 망가지겠지?사진이 자신의 짧은 다리를 위해 ‘묵념’을 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사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가자, 위층으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2층.지금은 출근 시간이라서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느라, 오히려 두 아이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진 오빠의 이전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면, 내가 했던 짓도 모두 드러나지 않을까?’예민주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처럼 느꼈다.‘약효가 줄어들면 그 뒤에는 반드시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거야.’ ‘안 돼. 방법을 생각해야 해. 그런 상황이 절대 일어나게 해서는 안 돼.’찢어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무진을 보자, 예민주의 머릿속에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그 약을 다시 한번 더 먹여도 될까?’‘하지만... 하지만 또 복용하면, 나도 잊어버리는 부작용이 생겨.’‘이거 어떻게 해야 해?’일시에 모든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모두 머릿속에 맴돌면서, 가뜩이나 초조한 예민주는 머리가 터질 듯했다.얼마나 지났을까? 몸을 돌린 무진의 눈은 전혀 초점도 맞지 않은 채 암울해 보였다.걸음을 떼고도 마음의 피로로 인해서 이미 얼마나 붕 떠있는지도 몰랐다.무진이 예민주의 곁으로 다가가자, 예민주가 무의식중에 무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촉을 원하지 않는 듯이 아주 교묘하게 예민주의 손길을 피했다.차로 향하면서 예민주에게 단 한 마디만 남겼을 뿐이다.“좀 있다가 너 혼자 돌아가. 오늘 일은 잠시 미루자.”그리고 곧바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남겨진 예민주만 어수선한 심정이었다.이어진 며칠 동안 무진은 여전히 평소와 마찬가지로 바빴다. 낮에는 업무를 볼 뿐만 아니라 접대도 해야 했다.그날, 산기슭의 별장 2층.위층에서 성연의 차가 점차 사라지는 걸 본 두 아이는 신속하게 작은 숄더백을 꺼냈다.사진은 동그란 두 눈을 반짝거리면서 맞은편에 있는 사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오빠, 정말로 이렇게 할 거야?”고개를 끄덕이는 사무의 눈에는 확고한 결의가 가득했다.“응, 엄마가 그날 돌아온 뒤 요 며칠 상태가 어떤지 못 봤어? 엄마는 분명히 아버지를 만났을 거야.” “내가 이미 아버지 위치를 알아냈어. 우리는 곧 아버지를 찾아갈 거야!”지금 집에 두 아이들밖에 없다. 외국에서 생활하는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성연은 낯선
“그렇게 트집을 잡겠다고?”“나는 단지 이 옷을 매우 좋아할 뿐이에요. 나와 무진 오빠의 결혼식에서 입고 싶은데 당신들도 마음에 들었는지는 몰랐는데요?”억울한 듯한 예민주의 얼굴.임서희는 마음이 우울했다. ‘무슨 이런 여우 같은 년이 다 있어? 그야말로 겉만 번드르르한 년이네!’“2억2천만 원! 빨리 카드 결제해요!”말을 마친 성연이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예민주는 마치 성연이 가는 방향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바로 성연의 앞을 막았다.짝!성연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얼굴의 통증을 느끼자 예민주는 무의식적으로 직접 만든 독약을 꺼내려고 했다. 그러나 성연은 이미 진작부터 예민주가 그럴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성연의 오른손에 갑자기 가는 은침 하나가 나타나더니, 예민주의 팔에 바로 박히면서 순식간에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좋은 개는 길을 막지 않는 법이야!”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지금 성연의 눈에서는 불꽃이 타오르면서 온몸의 피가 들끓는 듯했다.“서희야, 가자!”말이 끝나자 성연은 임서희를 데리고 웨딩 숍을 나섰다.오른쪽 얼굴의 화끈한 통증과 주위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느끼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화가 난 예민주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무진 오빠!”그러나 다음 순간, 곧바로 문밖으로 나간 무진은 차의 시동을 걸고 바로 성연을 따라갔다. 울부짖는 예민주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방금 회사를 나섰던 성연은, 임서희를 먼저 회사로 돌려보낸 뒤에 자신은 혼자 차를 몰고 떠났다.차 안.백미러를 통해 자신의 뒤를 바짝 뒤쫓는 무진을 발견하자, 성연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뭘 하려는 거야?’마음이 초조하자, 액셀러레이터를 바로 끝까지 밟았다. 성연의 차는 넓은 도로 위를 나는 듯이 달려갔다.고가도로 위.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진의 차가 성연의 차에 부딪치면서 곧바로 멈추게 만들었다. 빠른 속도로 달렸기 때문에 관성에 의해서 부딪친 것이다.성연은 입가가 찢어지면서 끈
이곳의 웨딩드레스는 모두 디자이너의 작품들로, 이 웨딩드레스도 당연히 하나밖에 없다. 이걸 예민주가 가져가면, 자신은 당연히 다른 웨딩드레스를 찾을 수밖에 없다.‘게다가 이건 분명히 우리가 먼저 보고 결정했어.’임서희가 무의식적으로 막았다.“아가씨, 이 옷은 우리가 방금 이미 고른 거예요. 면사포도 모두 골랐는데, 아가씨의 이런 행동은 우아하지 않은데요?”임서희는 아주 완곡하게 표현했다.하지만... 예민주는 임서희의 태도에 개의치 않는 듯했다.“호호, 당신이 어떻게 먼저 골랐다고 말할 수 있나요? 이 웨딩드레스는 이미 오랫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거예요.”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이건 원래 일찍부터 내 소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예민주는 임서희의 반응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피식 비웃으면서 다시 직원에게 그 웨딩드레스를 가져오라고 했다.직원이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고 고민하자, 예민주는 짜증이 난 목소리로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너 거기서 뭐하고 있어? 빨리 안 움직여?”직원은 양쪽의 손님들 사이에 낀 채 난처한 표정이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야?’‘이 두 손님들은 척 봐도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야. 지금 웨딩드레스 하나를 놓고 서로 싸우려는 기세인데, 우리는 이쪽을 도와도 안 되고, 저쪽을 위해도 안 돼.’“저는...”직원은 순간 말을 더듬으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원래 좋은 기분이던 성연은 예민주에게 방해를 받자, 아예 신용카드를 꺼내서 직원에게 건네주었다.“이 웨딩드레스는 우리가 사겠어요. 카드로 결제할게요.”성연의 목소리에는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 힘이 실려 있었다.성연의 이 말은 또 마침 직원도 정확한 답안을 제시할 수 있게 도왔다. ‘옷을 입어보는 목적은 옷이 어울리는지 보기 위한 것이고, 어울리면 사는 거야.’‘하지만 이들은 지금 입어보는 단계를 건너뛰고 구매하겠다고 하니 가장 명확한 답이겠지.’“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포장을 도와드리겠습니다.”말하면서 직원이 은행카드를 받으려고 했다.“잠깐만
지금 직원의 설명을 듣자 더욱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어때? 직원에게 한번 입어보게 가져오라고 해볼까?”임서희가 정말 마음에 들어한다는 걸 눈치챈 성연이 다가와서 건의했다.가게 앞.바로 같은 시간에 한 쌍의 남녀가 밖에서 들어왔다. 여자는 앙증맞은 표정으로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매달려 있었다.“무진 오빠, 이 브랜드의 웨딩 숍은 운성에 이곳 한 곳밖에 없어요.” “이 가게 웨딩드레스가 정말 예쁘다고 해요. 심플한 스타일이 좋을까요, 아니면 좀 화려한 스타일이 좋을까요?”예민주의 목소리는 아주 달콤했다. 마치 꼬리를 활짝 편 공작새처럼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웨딩 숍 안으로 들어섰다.예민주가 팔을 꽉 잡고 있어서 무진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천천히 팔을 풀었지만 눈빛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좀 심플한 스타일로 해. 그렇게 화려한 걸 입을 필요는 없어.”예민주는 사실 결코 온화한 사람이 아니지만, 무진의 곁에 있으면서 오히려 많이 순해졌다.하지만 평생에 한 번 밖에 없는 결혼이기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었다.무진의 말이 떨어지자, 예민주는 무의식 중에 그 말에 반박하려고 했다.“하지만...”‘지금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저건... 송성연이잖아?’머릿속에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다시 자세히 보니 정말 성연이 맞았다.말을 하다가 만 예민주가 마치 뭔가에 시선이 고정된 듯이 바라보자, 무진은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예민주의 시선을 따라갔다.‘왜 또 저 여자야?’성연을 보는 순간, 무진은 다시 한번 참기 힘든 두통을 느꼈다.‘왜, 왜 매번 저 여자를 볼 때마다 냉정을 유지할 수 없는지 모르겠어. 또 익숙한 느낌도 있지만, 분명히 저 여자를 만난 적도 없잖아.’또각또각!무진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예민주는 성연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갔다. 이미 조금 전처럼 놀라지 않았고, 온통 거만한 표정을 지으면서.“공교롭게도 이런 데서 만나게 되다니.”임서희와 함께 면사포를 고르고 있던 성연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눈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