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선아 그럴 필요 없어!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진씨 가문이 돌아와서 WS그룹과 계속 협력할 수 있다면, 이제 다른 사람들도 안심할 수 있을 거야!”이전에 할머니와 고모 모두 무진에게 진씨 가문이 왜 WS그룹을 배신했는지에 대해 투덜거렸다. 그때 무진은 너무 많이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진씨 가문은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두 사람을 달래기만 했다.결국, 그렇게 오래 동맹을 맺었기에 역시 정이 든 것이다. 진양산은 평소에도 노부인과 자주 어울렸다.“대표님,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제 여동생이 직면한 상황을 아셔야 합니다. 진교철 그놈이 자금을 착복해서 많은 프로젝트는 이미 전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표님, 먼저 자금을 잠시 빌릴 수 있겠습니까?”돈을 빌리는 일에 대해서 진상철은 반드시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입을 연다는 것은, 미래에 실수가 생긴다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얼마를 원해?” 살짝 웃는 무진의 모습은 도대체 거절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언제든지 OK하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진혜선은 가슴이 철렁했다. 오빠를 바라보면서 오빠가 WS그룹에서 이미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공헌했으니, 무진이 오빠의 체면을 세워줄 거라고 생각했다.“2천억 원입니다! 너무 많은가요?” 진상철은 조심스럽게 액수를 말했다.다음 순간, 무진이 시원하게 웃으면서 말했다.“2천억 원? 정말 충분하겠어? 아버님이 최소한의 액수를 말한 모양인데 그럴 필요 없어! 내 개인 명의로 진씨 가문에 4천억 원을 빌려줄게!”무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승낙하자, 놀라서 서로 마주보던 진상철과 진혜선의 눈빛에서는 곧 기쁜 기색이 드러났다.“그럼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무진아, 정말 고마워. 이렇게 내가 받은 자금이 충분하니까, 더 확실하게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어!”진상철은 정말 하루 만에 두 가지 큰일을 이렇게 쉽게 마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진혜선의 마음속은 오히려 다른
커피숍에서 나온 무진은 WS그룹 본사 건물로 돌아갔다.곧 손건호가 여러 서류들을 가지고 대표 집무실로 올라왔다.“보스, 이건 연운그룹이 쓰러진 후, 우리가 인수한 여러 회사들과 프로젝트입니다. 모두 보스의 확인과 서명이 필요합니다!”무진은 머릿속에서 아직도 진상철이 언급했던 일을 깊이 생각하면서, 손에 펜을 들고 서명하기 시작했다.“보스, 안 보셔도 됩니까? 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저가로 인수한 것이지만, 혹시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됩니다!”비록 자신이 하나씩 살펴봤지만, 손건호는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좀 부족했다.“필요 없어, 잘못되면 네가 짊어져!” 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서명했다. 서명하는 동작이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워서, 마치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보일 정도였다.무진의 생각은 전적으로 유럽 업무에 쏠려 있었다.‘진상철은 유럽 지역 책임자인 소태경이 어디에서 저가로 화물을 인수했는지 모르지만, 최근 다소 비정상적으로 이윤이 갑자기 높아졌다고 언급했지.’‘돈을 버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야. 그러나 갑자기 많은 돈을 벌었다면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을 거야.’반드시 정확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한 무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목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현수 씨, 당신 도움이 필요한 게 있는데요...”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자, 목현수도 거절하지 않았다.“그럼 고마워요! 만약 샤넬 씨가 외국에서 아이를 낳는 게 여전히 걱정된다면, 국내로 오세요. 우리 집 쪽에 고급 산후조리원이 있어요.”항상 목현수에게 도와달라는 말만 하는 게 좀 미안해서, 무진도 목현수에게 제의했다.[제가 고민을 좀 했는데... 무진 씨도 막내 사매에 관한 걸 눈치챘겠지요!]목현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가라앉았다.“눈치챘습니다!”무진도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이렇게 대답하면 목현수도 알 수 있을 것이기에.전화를 끊은 후, 무진은 서둘러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 사매하고 함께 검사 받으러 병원에 왔어요. 지금 병원인데, 무슨 일이 있어요?]
“태아의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책자에 적힌 대로 따라 하면 됩니다. 일상 생활에서 너무 조심하지만 말고 적당한 활동을 유지해야 합니다.” “자극적인 음료를 마시지 않는 걸 제외하면, 다른 건 주의할 것도 별로 없습니다!”의사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당부하자, 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실제로 성연 자신도 의사지만, 처음 엄마가 되기에 자신도 모르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느낌으로 판단하지 말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배를 어루만지며 행복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선 성연은, 아기의 심장 박동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언니, 검사는 다 했어요? 아무 문제없을 거예요!” 성연이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자, 예민주의 마음은 정말 언짢았다.친절하게 묻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문제없어, 아기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 사매, 비록 우리 모두 의술을 배웠기에 출산이라는 것도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임신을 해 보니 정말 기묘한 느낌이야!”성연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진심으로 말했다. ‘이 아이가 바로 나와 무진 씨의 아이야!’“그래요. 그런데 지금은 언니처럼 그렇게 깊은 느낌은 모르겠어요. 앞으로 저도 임신하면 아마 이해할 수 있겠지요.” 예민주는 좀 귀찮아서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그럼 계속 국내에 머무르면, 분명히 자신에게 맞는 짝도 찾을 수 있을 거야. 만약 안 된다면, 내가 사매에게 소개를 시켜줄 수도 있어!”“그래요? 언니가 누구를 소개해 줄 건데요?”성연은 정말로 이 문제를 깊이 생각했다. ‘사매 예민주의 배우자가 될 수 있는 우수한 남자도 없지는 않겠지.’‘예를 들어 바이올린의 대가인 루카는 우아하고 신사적이야.’‘또 심우재도 분명히 그렇게 대단한 남자인데도, 하루 종일 돈만 벌면서 일생의 큰일인 결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이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또 그래함과 유채연을
“예민주라...”애써 기억을 더듬던 그래함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왜 그래요?”“성연이가 이번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 자신의 사매라는 예민주를 데려왔어요. 그리고 7명의 임원들이 감쪽같이 실종됐던 일은 이 예민주와 관계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쩌면 예민주가, 그 7명의 임원들이 말하는 그 신비한 조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무진이 시원스럽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무진도 정 이사 등이 말한 것처럼 실혼전의 캐서린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캐서린에게는 그럴 동기가 없었다. ‘설사 진교철이라면, 만약 이런 기회가 있다면 7명의 임원들을 더더욱 국내로 돌아오지 못하게 했을 거야. 그들을 모두 가둬둬야 비로소 WS그룹에 진정한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유채연은 여전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최근에 발생했던 이런 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래함은 WS그룹의 그 어떤 움직임도 국제 뉴스에서 보도가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7명의 임원들이 무진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그러고 보니 지금 예민주가 강 대표 집에 머무르고 있지요.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는 걸까요?” 그래함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아직 조사 중입니다. 그날 성연이가 전화를 하면서, 다른 일을 언급했는지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시겠습니까?”무진은 그래함이 정신을 집중해서 기억을 완전히 되살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래함의 눈빛에 집중했다.한참 뒤 그래함이 뭔가를 떠올렸다. “그때 어쩐지 성연이 심리 상태가 아주 당황스러웠고, 심지어 두려워한다는 느낌도 들었어요.”...무진의 마음은 더욱 어지러웠다.‘아내가 이번에 나가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지? 그런데 무슨 중대한 사건을 겪고도 왜 돌아와서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걸까?’‘예민주가 아내를 대하는 눈빛은 늘 좀 어딘가 이상해. 그러나 아내는 예민주에 대해서 오히려 아주 사실적이야. 선배와 후배 사이
그래함과 유채연이 떠난 뒤 무진은 집으로 돌아왔다.마침 성연과 예민주도 함께 돌아왔다. 성연은 신이 난 모습으로 진료 결과를 무진에게 알려주었다.“의사가 아무 문제도 없다고 했어요. 전에 일이 너무 많아서 할머님과 고모님에게 말할 겨를도 없었어요. 그래서 오늘 밤, 본가로 돌아가서 말씀드려야겠어요!”무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힐끗 예민주를 보았다.예민주는 눈치채지 못한 채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푸른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싸늘한 기운이 번뜩였다.“사매, 저녁에 나하고 무진 씨가 본가에 가야 해서 저녁은 같이 못 먹겠어. 혼자 괜찮겠지?” 성연이 예민주를 바라보며 물었다.예민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마음을 숨겨야 했다.“괜찮아요. 언니, 무진 오빠,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저는 이제 익숙해졌어요. 게다가 빌라 사람들의 태도도 정말 좋아서 문제는 전혀 없어요!”말이 끝나자 예민주는 손목시계를 한번 보았다. 또 성연에게 약을 먹일 시간이 된 것이다.한 번만 더 약을 먹이면 프로방스 여행에 대한 성연의 이 기억은 완전히 굳어질 것이다. 거짓 기억을 영원히 갖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약을 세 번 먹으면 한 번의 고정된 기억을 변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예민주의 기억 통제법이다.이런 방식으로 예민주는 심지어 자신을 받아줬던 아버지의 오랜 친구를 통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친구는 예민주에 의해 기억이 수정되었다. 분명히 한 번 술에 취했을 뿐인데 예민주를 강X한 기억이 심어졌고, 아버지 친구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이렇게 한 것은 전적으로 예민주가 자신의 과거의 모든 흔적을 지워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친구를 제거한 뒤, 예민주가 방대한 재산과 신비한 팀을 물려 받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예민주는 마음이 좀 조급해졌다. ‘곧 송성연은 강무진과 함께 강씨 가문 본가로 가야 해. 제때에 약을 먹이지 않으면 기억이 느슨해지면서 진정한 기억과 거짓된 기억이 끊임없이 충돌하게 돼.’그
무진은 의심하는 마음을 숨긴 채 예민주의 방을 쳐다보았다. ‘아내가 마신 약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하지만 아내의 상태에 부적당한 부분이 없어서 그나마 좀 안심이 되었다.“가요! 빨리 본가로 돌아가서, 할머니와 고모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야지요! 할머니가 얼마나 기뻐하실 지 모르겠어요!”성연은 앞서 할머니가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지금 내가 정말 임신한 데다가 쌍둥이야. 할머니는 너무 기뻐서 그저 입만 벌리실지도 몰라.’“그래, 내가 운전할게.”대답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간 무진이 서한기의 곁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당부했다.“잘 들어. 반드시 전력을 다해서 예민주를 주시하고, 모든 행적을 기록해야 해!”서한기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보스, 알겠습니다!”무진은 뒷좌석에 있는 아내가 편안하도록 벤틀리를 천천히 몰았다. 임신을 했기 때문에 큰 진동은 위험하기 때문이다.30분도 안 되어 벤틀리는 본가에 도착했다.건성으로 차에서 내린 성연이 쏜살같이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뛰지 마! 조심해야지!” 무진이 뒤에서 신신당부했다.저택 거실에서 강운경이 안금여에게 차를 우리고 있었다. 성연을 본 두 사람의 얼굴에는 활짝 미소가 피었다.“성연이가 왔구나! 어쩐지 아주 즐거워 보이는데? 무슨 기쁜 일이 있니?” 강운경이 물었다.할머니가 손짓해서 성연을 옆에 앉게 했다.“정말 잘 왔어. 올해 막 출시된 철관음인데, 가장 빨리 나오는 여름차이기도 해. 앉아서 차 맛을 감상하자꾸나!”성연이 생긋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할머니, 저 이제 차는 못 마셔요.”“못 마실 게 뭐 있어? 어디 아프니? 위장이 안 좋아?” 할머니는 진심이 담긴 관심을 보였다.이때 걸어 들어온 무진의 온몸에 즐거운 기운이 가득 배어 있었다.“귀염둥이 우리 손자도 왔구나. 와서 차를 마셔. 그 일곱 임원들의 일을 네가 해결한 덕분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틀림없이 또 끊임없이 걱정했을 거야!” 할머니가 중얼거렸다.무진이 바로 자
“할머니, 거의 석 달이에요!”성연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할머니는 마치 몇 살이나 젊어진 것처럼 활짝 웃었다.“얼른, 얼른 똑바로 앉아야지! 어쩐지 차를 마실 수 없다더니. 그건 당연해. 확실히 차에는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어서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니까 말이야.”말이 끝나자 무진을 힐끗 쳐다본 할머니는, 성연의 손을 잡고서 얼른 성연이가 앉게 일어나라고 무진에게 손짓했다.무진은 즐거운 표정으로 얌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마침 내가 오늘 아침에 닭 한 마리를 샀어. 원래 할머니 드시게 하려고 샀는데, 정말 잘 됐구나. 내가 바로 성연이가 먹기에 적합하게 만들어 줄게.”강운경의 반응도 빨랐다. 차도 타지 않고서 곧바로 주방으로 달려갔다.“고모, 괜찮아요. 할머니가 드시면 돼요! 음식으로 몸을 보양하는 건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성연이 소리쳤다.그러나 할머니가 바로 반박했다.“내가 뭐가 중요해! 네가 몸을 보양하는 게 중요한 거지. 내 이 보배 증손주들이 바로 영양이 필요할 때야!”할머니는 기뻐서 온몸에 힘이 나는 것처럼 다시 말했다.“성연아, 네가 의술을 안다는 것도 알지만, 이 태아를 돌보는 경험이 나보다 많지는 않잖아. 예전에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돌봤는데.” “무진이도 내가 이렇게 돌봤어. 태어났을 때는 거의 4kg이나 나갔어. 얼마나 건강하고 활발한지 건물이 다 울릴 정도로 울었단다!”“그래요? 무진 씨가 그렇게 잘 울었어요?” 성연은 눈썹을 치켜 뜨면서 무진을 보았다.할머니가 또 회상하기 시작하자 무진은 좀 난처했다. 회상할 때마다 매번 자신의 어린 시절 우울했던 일들을 꺼내기 때문이다.“애기니까 당연히 힘있게 우는 거지 뭐. 뭐 아무것도 아니야! 왜 날 그렇게 보는데?” 무진이 입을 삐죽거리며 성연에게 대답했다.“울 수 있지! 그리고 하루에 몇 끼나 먹고 게다가 바지에 자주 오줌을 싸서 정말 걱정이 됐어!”“할머니, 차를 좀 드시면서 목을 축이세요. 제 얘기 말고 증손자 얘기를 하셔야죠!”무진이 얼른 할머니
이씨 가문의 저택. 화가 난 이상효가 찻잔을 집어 던져서 박살이 나게 만들었다.티테이블 위에는 파산한 연운그룹의 회계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이 티테이블과 연운그룹 빌딩의 임대 보증금을 제외하면, 연운그룹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남은 자산은 은행의 대출금을 갚기도 부족했다. 이것들은 이상효가 필사적으로 확보한 것이다.‘그래도 수억 원 밖에 안 돼.’‘지금 연계진은 체포되어 정식으로 조사를 받고 있으니, 경제적 갈등 외에 형사 책임도 지게 되겠지. 적어도 징역 15년 이상의 판결을 받게 될 거야.’‘유럽으로 보낸 화물들은 모두 물거품이 된 거나 마찬가지야.’‘화물의 원가만 해도 60억 원이 넘는데, 결국 이 수억 원만 돌려받을 수 있었어!’운성 전체에서 중간 정도에 불과한 이씨 가문이 이런 큰 손실을 보게 되자, 이상효는 그야말로 살을 베는 듯이 고통스러웠다.요 며칠 가문에서는 자신을 향해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에, 이상효도 이 화물을 되찾겠다고 다짐했다.“안 되겠어. 유럽에 가서 그 진교철을 찾아야겠어! 그놈이 감히 내 물건을 꿀꺽하게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분노가 좀 진정이 되자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소지연은 바닥이 엉망진창인 걸 봤지만, 끽소리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청소만 계속했다.“당신이 그래도 예전에는 WS그룹 유럽 지역의 책임자였는데, 왜 이번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던 거야?”소지연의 배가 이미 불룩해졌지만, 이상효는 여전히 이상한 표정을 하고서 조롱했다.며칠 전만 해도 진교철과의 협력이 잘 되게 하라고 소지연에게 지시했던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이상효를 바라보는 소지연의 눈빛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만약 뱃속의 아이만 아니라면, 투신이라도 해서 삶을 마감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왜? 내가 한마디 했다고 이런 반응을 보여? 우리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도 편하게 지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이상효는 코웃음을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
그렇게 친했던 두 사람이기에, 낯선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는 심정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 수 있었다....손건호는 지난 5년 동안 여전히 무진의 곁을 따랐다.당연히 무진의 성질을 잘 알고 있다. ‘지금 만약 아이들이 여기에 더 오래 머무른다면, 일을 수습하기가 곤란해질 거야.’결국 손건호는 서한기의 눈빛을 피해서 다른 곳을 보면서, 그들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게 작은 목소리로 재빨리 말했다.“빨리 가지 않고 뭐 해? 잠시 후에 경비원이 오면 처리하기 곤란하단 말이야.”약간 떨어져 있는 무진을 바라보는 서한기의 그윽한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과 더불어 여전한 존경심도 담겨 있었다.‘지금은 일을 크게 해서는 안 돼. 지금 가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겠지.’여전히 억울한 표정의 두 아이를 바라보자, 서한기는 자책감이 들었다.그러나 결국 감정을 억누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위로했다.“사진아, 사무야, 우리 가자.”세 사람은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무진 오빠, 저 두 아이는 누구에요?”바로 그때, 서한기와 아이들이 막 떠나려고 했을 때, 다른 한쪽에서 한 여자가 이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무진의 곁에 와서 서한기를 바라보면서, 아리따운 여자는 자연스럽게 무진의 팔짱을 꼈다.요염한 눈길로 두 아이를 바라보던 여자는, 두 아이의 모습을 자세히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변의 공기마저 순식간에 싸늘해진 듯했다.‘저, 저 두 새끼는 무진 씨하고 똑같이 생겼어. 완전히 무진 씨 판박이야!’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예민주의 머릿속도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지금 예민주는 표정을 전혀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분노와 당황스러움, 증오와 초조함이 교차했다.‘왜?’‘송성연은 그렇게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왜 여전히 이 두 아이를 낳는 걸 선택했지?’‘강무진이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포기한 뒤로는 더 이상 아무 접촉도 없었던 게 분명해.’‘애초에 그렇게 단호하게 헤어졌기 때문에, 송성연은 당연히 절망 속에 빠졌어야 해. 더 이상 강무진에게
말을 마친 사무는 옆의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던 뚱뚱한 남자를 재빠르게 발견했다.“아저씨, 바로 저 사람이 사진이를 이렇게 다치게 했어요!”사무는 우렁찬 목소리로 방금 엘리베이터를 나온 남자를 가리켰다.팍!쿵!서한기가 재빨리 깔끔하게 손을 쓰자, 남자의 커다란 몸은 바로 바닥에 쓰러졌다.심지어 미처 반응하지도 못한 채, 남자는 온몸의 뼈마디가 어긋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 아이들은 네가 감히 건드릴 수도 감당할 수도 없어! 꺼져!”피에 굶주린 듯 핏발선 눈으로 쏘아보면서, 서한기가 나지막하게 외쳤다.쓰러져 있던 남자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온몸의 통증을 느끼면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다.그러나 막 일어나려던 남자는 등줄기의 시큰한 통증에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아!”다시 몇 번이나 일어나려고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결국 주저앉은 채 고통스럽게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다른 쪽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오던 무진은 자연스럽게 이쪽의 소동에 시선이 향했다.사람들 속에서 처참한 모습의 마케팅팀 팀장과, 그 앞에 서서 온몸에서 싸늘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미간을 찌푸린 무진은 고개를 살짝 돌려서 뒤를 바라보았다.“아이들이 아직 안 갔어?”그리고 무진이 엘리베이터 문을 나설 때, 손건호는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던 서한기를 알아차렸다.두 사람은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그들 두 사람은 예전 진성 조직의 공동 대장이었다. 여러 해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전우인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지난 일 때문에 서로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이 가슴이 찢어질 듯한 느낌도 그들 두 사람만 알 수 있을 뿐...왜인지는 모르지만 서한기의 망설임이 느껴지자,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약간 초조한 기색으로 말했다.“아직도 안 가보고 뭐 해?”‘저 두 아이는 뭔가 나와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머릿속에서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