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수색이 계속되었다.마침내 부하로부터 조수경의 소식이 전해졌다.부하의 보고에 따르면 조수경과 손민철이 북성 옆의 도시에 나타났다고 한다.무진은 본래 혼자 가려고 했다.이 소식을 듣고도 성연이 어떻게 기꺼이 집에서 기다릴 수만 있겠는가!성연은 정말 간절하게 조수경을 죽도록 고생하게 만들고 싶었다.“나 무진 씨하고 같이 갈래요!” 성연은 정말 화가 났다.다행히 조수경에 대해서 그래도 약간의 믿음은 가지고 있었다.‘조수경은 그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결국 마지막에 조수경 때문에 한바탕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조수경은 우리 모두를 바보라고 여긴 거야!’그리고 조수경은 일이 실패했다는 걸 알게 된 후에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걱정조차 하지 않았다.조수경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쇼핑을 하고 있었다.손민철은 여전히 조수경의 뒤에서 큰 가방을 들고 따라다녔다.미니버스를 몰고 간 무진의 부하들이 길에서 바로 두 사람을 잡아왔다.두 사람은 한바탕 망연자실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전혀 몰랐다.조수경과 손민철은 무의식적으로 발버둥쳤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빨리 나를 풀어줘, 빨리 풀어줘!”부하들은 더 이상 설명도 하지 않고 그냥 데려갔다.조수경과 손민철은 뒷좌석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손민철, 혹시 당신이 건드린 사람 아니야?” 손민철은 무고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내가 북성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살 수 있겠어?”“누가 알겠어, 당신은 나날이 분수를 모르잖아.” 조수경은 손민철을 원망하며 바라보았다.손민철은 조수경에게 조금도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단지 한 마디만 말했다.“당신이 다른 사람의 미움을 샀는지 생각해 보는 게 나을 텐데?”“내가 어떻게...”막 반박하려던 조수경이 갑자기 무슨 뭔가 떠올리고 말을 뚝 그쳤다.‘내가 저지른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강무진이 틀림없이 진상을 알았을 거야.’‘이 사람들은 아마도 강
어느 창고 안.무진과 성연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하들이 조수경과 손민철을 그들 앞에 데려왔다.“조수경, 조수경, 당신 심보는 정말 지독했어! 왜 나한테 약을 쓴 거야!”조수경을 보는 성연의 눈빛은 예리했다.‘같은 여자로서, 조수경은 이런 일이 한 여자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알고 있었어.’‘그러나 조수경은 여전히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내게 손을 댔어.’조수경의 추측대로였다.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은 역시 성연과 무진이었다.조수경은 무서워서 벌벌 떨며 눈물을 흘렸다.“성연 씨, 난 아니에요, 난 정말 아니에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자신이 결백하다는 걸 밝히고 싶었다.“아니라고? 조수경, 사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당신 거짓말이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성연은 냉소를 지었다.“나, 나는 무심코 그런 거예요. 내가 한 게 아니라 커피숍 종업원이 그랬어요. 나는 강요를 받고 그런 거예요.” 조수경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성연과 무진은 조수경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조수경 이 여자의 말은 모두 의문투성이야.‘아무런 원한도 없는 커피숍 종업원이 왜 내게 약을 먹였을까?’‘게다가 조수경은 현장에 있었어.‘저 여자야말로 가장 범행 동기가 있는 사람이야.’무진은 고개를 돌려 손민철에게 물었다.“저 여자는 다른 사람에게 사주를 받았다는데? 당신 아니야?”잡혀온 이후 지금까지 손민철은 줄곧 망연자실한 상태였다.조수경이 단지 자신을 이용했고,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또 강무진을 유혹하려고 했다는 걸 손민철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손민철은 조수경에게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손민철이 입을 열었다.“이 일은 나와 상관없습니다.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조수경이 떠나려고 한다는 걸 알고서 데리고 갔을 뿐입니다.”“정말인가요?” 무진이 자세히 보니 손민철의 표정은 진실했고 거짓말 같지도 않았다.‘그럼 지금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조수경밖에 없어.’“정말 확실합
무진은 손민철이 줄곧 조수경을 대신해서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그들이 결국 함께 쇼핑도 했다는 건, 조수경이 말했던 그런 상황은 애초에 없었다는 걸 말해주고 있어.’‘지난번에 조수경은 또 손민철을 무서워했어.’무진은 보고 있으면서 상황이 아주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무진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손씨 가문과 조씨 가문은 원한이 있지 않나요?”손민철은 의아한 표정으로 무진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성연이 제대로 보았다.‘이 모든 게 다 조수경의 거짓말이었어.’‘손씨 가문에 업신여김을 당해서 강씨 가문에 의탁하게 되었다고 말한 것도 사실 모두 거짓이었어.’‘즉, 조수경은 결국 할머니까지 속인 거야.’‘할머니가 이전에는 정말 조수경을 좋아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할머니가 조수경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조수경은 자신이 이렇게 판을 짜고 모든 사람을 속인 거야.’‘조수경이 어디가 단순하다는 거야. 그야말로 뱀이나 전갈과 별 차이가 없어.’성연은 바로 조수경에게 다가가서 뺨을 때렸다.“빨리 진실을 말해. 네 목적이 도대체 뭐야?”조수경은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지금은 일이 모두 발각되어서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어.’‘나와 무진 씨 사이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결국 조수경은 손민철에게 희망을 걸었다.그녀는 구조를 요청하는 것처럼 손민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민철 씨, 빨리 나를 도와줘. 저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게 전혀 아니야. 저 사람들은 고의로 나를 해치려는 거야.”조수경의 목소리를 듣자 손민철의 마음은 심란했다.‘강무진은 큰 인물이야. 절대 시간을 헛되이 소비하지 않아. 오해해서 조수경을 데려오는 번거로운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어.’‘모든 일이 조수경을 향하고 있어.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니야.’손민철은 갑자기 좀 실망스러웠다.조수경과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지만, 자신은 거의 조수경에게 코가 꿰인 채 다닌 것이었다.이제서야 자신이 조수경을 조금도
조수경이 어떻게 모든 일을 말할 수 있겠는가?더욱이 성연의 앞인데.‘송성연에게는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겠어.’조수경은 성연에게 바로 욕설을 퍼부었다.“송성연, 너는 정말 뭐라도 된 줄 아는 거야? 내가 왜 너한테 말해야 돼? 시골에서 올라온 촌닭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말하는 거야? 운이 좀 좋아서 강씨 가문에 들어가더니, 정말 자기가 작은 사모님이라도 된 걸로 생각하는 거야?”성연은 차갑게 입술을 깨문 채 조수경을 보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보아하니 조수경은 내 뒷조사를 한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으면 내 출신까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그날 못 알아봤다고 했지.’‘그것도 조수경이 거짓말을 한 거야!’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것을 본 조수경은 계속 비웃으며 조롱했다.“너희 강씨 가문의 할머니는 아직도 그렇게 순진한 걸 보면 정말 바보 같은 늙은이야. 그리고 너희 고모는 사업에서는 여걸이라고 하지만, 줄곧 내 손에서 놀아났으니 사실은 더 멍청해. 강씨 가문 전체에 똑똑한 사람은 한 명도 없어!”조수경이 한 말을 들은 성연은 그야말로 화가 나서 온 몸이 떨렸다.성연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조수경, 네가 강씨 가문에 왔을 때 고모와 할머니 모두 박하게 대하지 않았어. 그런 말을 하다니 양심에 찔리지 않아아?”“양심? 호호호.” 조수경은 무슨 우스운 농담을 들은 듯이 크게 웃었다.“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내가 양심을 가져서 무슨 소용이 있어?” ‘아쉽게도 그렇게 많은 일들을 심혈을 기울여 계획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어.’‘강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속이기 쉬웠어.’‘모두 송성연 때문이야. 송성연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강씨 가문 사람들은 여전히 내 손바닥 위에 있지 않겠어?’“송성연, 송성연, 왜 돌아왔어? 왜 돌아와서 내 길을 막은 거야?” 차가운 표정으로 성연을 바라보는 조수경의 눈빛은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조수경은 이미 숨기지 않았다.“내가 너의 길을 막았어? 네가 내 자리를 빼앗은 게 아니라? 네가 분수에 맞
성연과 무진은 조수경에 대해서 할 말도 없었다.조수경을 바로 본가로 데리고 간 뒤, 조수경의 진짜 모습과 그 범법 행위들을 일일이 안금여에게 말해주었다.안금여는 그렇게 믿었던 조수경이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은 전혀 몰랐다.게다가 오랜 친구의 손녀라서 자신이 직접 받아들인 것이다.안금여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일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네 할머니도 속였니?” 조수경을 원망하면서 안금여가 말했다.‘뛰어난 줄 알았던 아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우리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어요. 당신은 그래도 할머니의 오랜 친구라고 하면서 결국 그 소식도 몰랐군요.” 조수경은 안금여를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게다가 얼마나 사이가 좋다고 했어.’‘결국, 우리 할머니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지.’“너, 너, 돌아가신 네 할머니가 알면 얼마나 네가 부끄럽겠어!” 안금여는 바로 지팡이를 들고 조수경을 세게 때렸다.한바탕 맞은 조수경이 아픔을 참고 말했다.“때려봐요, 나이를 먹고도 이러고 있으니 죽지도 않는 늙은이야!”“너, 너...”회개할 줄 모르는 조수경의 모습을 보자 안금여는 한바탕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제 모든 게 명백해졌어.’‘조수경은 할머니를 내세우고 스스로 강씨 가문에 왔지.’‘단지 자신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어.’‘저 아이의 목적은 무진이였어. 강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이 되는 거야.’안금여는 조씨 가문의 내력을 알고 있었다.예전에는 한동안 그곳에 있었던 적도 있다.‘가풍과 가정교육도 좋은데 어떻게 조수경 같은 아이가 나온 걸까?’“할머니, 이런 사람 때문에 화내지 마세요. 이런 사람은 할머니가 화를 내실 가치도 없어요.” 안금여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걸 본 성연이 서둘러 가서 안금여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면서 말했다.가슴을 치던 안금여가 조수경을 가리키며 화를 냈다.“어쩌다 너 같은 흉악한 사람을 강씨 가문에 들어오게 했을까?”“아쉽게도 나는 들어왔고, 멍청한 당신들은 아직도 내게 놀림을 당하고 있지요. 강씨
쌍방이 대치하면서 얻은 결과는 비할 데 없이 실망스러웠다.그때 손민철의 집에서 사람이 왔다.바로 손민철의 친동생이었다.무진도 막지 않고 바로 들어오게 했다.손민철의 동생은 점잖고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강 대표님, 형님을 훈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이 여자에 홀려서 본업에 힘쓰지 못했습니다.”“됐습니다. 당신네 손씨 가문에서 좀 더 엄하게 가르침을 주기 바랍니다.” 무진이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사실 이 일은 완전히 손민철의 잘못도 아니었다.그래서 무진도 손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인상을 쓸 생각은 없었다.“당연히 그래야지요. 저희 형님이 고집이 세셔서, 제가 오기 전에 아버지께서 형님에게 강 대표님에게 인사하라고 특별히 신신당부하셨는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손민철의 동생도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형이 강씨 가문에 끌려갔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강씨 가문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으려 했다.아버지가 가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괜찮습니다.”무진은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사람을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먼저 하지도 않았다.손민철의 동생은 이를 악물었다.‘강무진이 대처하기 어렵다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결국 이렇게 맞추기 어렵다니.’‘보아하니 오늘 뭔가 내놓지 않으면 강무진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어렵겠어.’손민철의 동생은 손민철을 노려보았다.‘온종일 일을 성사시키지는 못하고 오히려 망쳤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형님을 감싸야 해.’손민철은 어깨를 으쓱거렸다.손민철의 동생이 앞으로 나와서 무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강 대표님, 형님이 잘못하셨으니 저희 손씨 가문에서는 북성에 추진 중인 큰 프로젝트를 강 대표님에게 양보하려고 합니다. 강 대표님께서 가볍게 처벌해 주셔서 형님을 데려가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집에 돌아가면 저희 부친께서 반드시 잘 가르치실 겁니다.”‘이번에 손씨 가문은 바로 이 프로젝트로 북성에 발을 붙이려고 했어.’‘지금 이 프로젝트를 포기한 것은 그들이 북성
곧, 조씨 가문에서도 사람이 왔다.아마도 손씨 가문에서 알려주었을 것이다.조수경과 손민철 이 두 사람의 사소한 일이 없어도, 손씨 가문과 조씨 가문은 관계가 아주 좋았다.온 사람은 조수경의 부친이었다.조수경의 부친은 딸의 얼굴에 난 손바닥 자국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누가 조수경에게 이런 잘못을 저지르라고 했는가?조수경의 부친이 안금여를 향해 끊임없이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했다.“노마님, 노마님, 정말 죄송합니다. 모두 제가 엄하게 가르치지 못해서 수경이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제 딸을 엄하게 가르치지 못했으니 만약 처벌하신다면 제게 벌을 내려주세요.”“이번에 사고가 날 뻔한 사람이 우리 강씨 가문의 며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해. 만약 우리 강씨 가문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어?” 안금여는 매서운 표정이었다.일찍이 조수경이 그런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자신들은 여전히 조수경이 회사에서 배울 수 있게 기회를 주었다.그러나 조수경은 조금도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네, 저희 잘못입니다. 수경이가 철이 없습니다. 노마님, 수경이의 나이가 어린 것을 봐서 용서해 주십시오.” 조수경의 부친은 끊임없이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그런 모습을 보자 안금여도 동정심이 들었다.‘자식의 잘못을 나이든 아버지가 짊어지게 해서는 안 돼.’‘하지만 반드시 조수경에게 오늘의 교훈을 기억하게 해야 해.’‘다행히도 성연이는 아무 일도 없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안금여는 평생 자책했을 것이다.“나는 용서하지만 내 손주며느리가 받은 놀라움은 누가 달래주겠어? 수경이에게 물어봐. 아직 어린 아가씨일 뿐인데, 어떻게 그렇게 독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조수경을 보자 안금여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수경이가 잠시 뭔가에 홀렸을 뿐입니다. 수경이도 정말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조수경의 부친이 얼른 해명했다.그리고 옆에 있는 조수경을 잡아당겼다.“수경아, 빨리 할머님에게 사과를 드려야지
특별히 외국에서 돌아온 그래함이 성연을 방문했다.성연에게 재미있는 선물도 많이 가져왔다.의심의 여지없이 모두 성연이 좋아하는 것이다.성연은 선물을 들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그래함은 성연을 아주 잘 알고 있다.선물한 물건은 그야말로 모두 성연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려고 고른 것이다.“네가 좋아하니 됐어, 내가 이번에 괜히 오지는 않았구나.” 그래함이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바쁜 사람인데 시간을 내서 저를 보러 온 걸로 이미 만족해요. 또 무슨 선물까지 가지고 왔어요?” 성연은 그래함이 정말 바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매일 발을 땅에 댈 사이도 없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한가할 때가 드물었다.“다 들었어. 우리 성연이가 약혼자를 정했다고. 나는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한번 보러 온 거야.”그래함이 담담하게 말했다.오히려 목현수처럼 무진에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성연이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모두 믿을 만하다고 여겼다.‘성연이가 행복하면 돼.’그 이유를 들은 성연은 좀 어이가 없었다.“좋아요. 저녁에 데리고 와서 보게 해 줄게요.”“기다릴게.” 그래함의 말은 온화함이 가득했다.성연은 조치하기 전에 먼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렸다.성연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들었을 때 무진은 한순간 멍해졌다.“그 그래함 씨야?”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무진 씨가 생각하는 그 사람 같네요.”무진은 잠잠해졌다.‘성연이가 도대체 또 얼마나 많은 큰 인물을 알고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건가?’그러나 성연이 소지한과 목현수와 아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된 뒤에, 그래함을 아는 걸 기이하게 여기는 것도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다.“오늘 저녁에 시간이 돼요?” 성연이 물었다.“돼, 걱정하지 마. 내가 준비할게.” 무진이 바로 대답했다.‘만약 정말 그 그래함이라면, 어쨌든 예의를 잃어서는 안 돼.’저녁.성연, 무진과 그래함이 식당에서 만났다.‘자료상으로는 그래함은 줄곧 미국에서 거주해왔어.’‘그가 국내에 왔지만 국내 음식에 익숙하
이튿날 오후, 가게문을 닫은 뒤 유채연은 성연의 안내로 그래함을 만났다.이번에는 유채연의 수줍은 성격을 고려해서, 밀크티 가게가 아니라 칸막이가 있는 식당을 골랐다.엉성한 칸막이지만 그래도 모두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우아한 분위기가 넘치는 잘생긴 그래함을 보자, 유채연의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유채연이 그래함에게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없었다면 그 옥노리개도 간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채연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래함이 유채연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나는, 다 괜찮아.” 유채연은 그래함을 똑바로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래함은 이렇게 멋스러운데, 나는 진흙밭의 진흙일 뿐이야.’요 몇 년 동안 유채연은 전혀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다.날마다 그럭저럭 지냈을 뿐이다.지금은 그래함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도 없었다.‘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래함에게 어울릴 수 있겠어?’그래함이 종업원을 불러서 가정식 요리를 몇 개 시켰다.모두 유채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래함이 시키는 요리 이름을 들으면서, 유채연은 놀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그래함이 유채연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걸 내가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겠어?”“당신...”그래함이 자상하게 대할수록 유채연은 더 열등감을 느꼈다.‘나한테 무슨 덕과 능력이 있어서 이런 사람에게 어울리겠어?’“애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음식부터 먹자.” 그래함의 마음은 더 긴장하면서 안절부절 못했다.이번에 또다시 거절 대답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성연은 턱을 괸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그다지 먹고 싶은 것 같지 않았다. 그래함은 수시로 유채연에게 음식을 집어 줬지만, 식사하는 내내 유채연을 쳐다보느라 음식도 그다지 먹지 않았다.안타까움이 가득한 식사였다.가까스로 식사를 마친 뒤, 그래함은 종업원에게 앞의 음식을 치우고 주스와 과일을 내오도록 했다.그래함이 유채
“나도 모르겠어.” 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이 옥노리개를 보고 유채연은 큰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그러나 여전히 모든 걸 맡길 용기를 내지 못했다.“언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만약 언니가 사형을 믿지 않는다면, 먼저 사형을 좀 지켜보다가 적당할 때 다시 승낙하면 돼요.” 성연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유채연을 너무 팽팽하게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언니의 마음속에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천천히 진행할 수밖에 없어.’“하지만...”유채연은 입술을 깨물었다.“별거 아니에요, 이건 언니하고 사형 두 사람의 일이잖아요.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좋겠지만, 그래도 사형을 한번 만나보세요.” 성연은 입이 닳도록 말하면서 언제 유채연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느꼈다.합쳐진 옥노리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채연이 마침내 용기를 냈다.“알았어. 그래함과 얘기해 볼게.”유채연도 그래함이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말만 하는 거니까 별거 아니야.’마침내 이 말을 듣자 성연은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드디어 유채연을 설득한 것이다.“그래요. 언니에게 기회를 주고 그래함 사형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만 그래도 고려해 봐야겠지요.” 성연은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했다.‘오늘 헛걸음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야.’“고마워.” 유채연은 손에 든 옥노리개를 꼭 쥐었다.‘만약 성연이가 내게 그렇게 많이 권하지 않았다면.’‘아마 그래함을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하지만 이렇게 비참해진 나한테 더이상 비참한 일은 없을 거야.’‘그러니 나도 한번 노력해보겠어.’“언니, 자신의 마음을 존중하고 선택하면 좋겠어요.” ‘채연 언니가 사형에게 아무런 느낌도 없는 건 아니야.’“그럴게.” 유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유채연이 성연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성연은 그래함 때문에 사양했다.유채연도 더는 붙잡지 않았다.호텔로 돌아온 성연이 문을 열자, 그래함이 옆방에서 걸어 나왔다.‘사형이 계속 이쪽의
성연이 보니 이제 때가 된 듯했다.그래서 유채연에게 그래함 얘기를 꺼냈다.“채연 언니, 사형이 이번에 돌아온 건 바로 언니 때문이에요. 사형은 바로 언니를 찾으려고 온 거죠. 사형이 언니한테 어떻게 너에게 대하는지 언니도 봤을 거예요. 사형은 정말 언니를 좋아해서 언니한테 잘해주는 거예요. 언니도 앞으로 결혼하겠죠, 그렇죠? 그런데 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아요?”성연이 한 말도 일리가 있지만 유채연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그동안 자신의 모든 것이 소멸되다시피 했다.유채연에게는 전혀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유채연이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래함에게 어울리지 않아.”말을 마친 유채연이 또 눈물을 흘렸다.그래함의 찾아와서 유채연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그러나 유채연은 자신과 그래함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다.자신은 이미 감히 그래함을 원할 수 없었다.성연은 유채연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감정의 일이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어.’‘좋아하는데 그냥 함께 하면 돼잖아.’‘게다가 두 사람은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어.’‘하지만 지금 채연 언니에게는 사형의 신분이 큰 문제야.’성연도 이해할 수 있었다.‘미래가 정말 너무 막막할 거야.’성연이 갑자기 반쪽짜리 옥노리개를 꺼냈다.옥노리개를 본 유채연은 깜짝 놀라면서 뭔가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이 옥노리개를 뜻밖에도 그래함이 여전히 가지고 있었어.’성연이 옆에서 말했다.“그래함 사형은 줄곧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여자친구도 없이 줄곧 언니를 기다린 거예요.”유채연이 목에 차고 있던 다른 반쪽의 옥노리개를 이어 붙이자, 완전한 옥노리개가 되었다.흥분한 유채연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나는 원래 그리움에 이 옥노리개를 남겨 두었을 뿐이야.’‘그동안 그래함도 나와 같은 생각일 줄은 전혀 몰랐어.’“그동안 그래함에게 정말 여자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 유채연
저녁 무렵에 성연이 다시 왔다.두 사람이 이번에 온 목적이 유채연을 데려가는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그래함도 오고 싶었지만, 유채연의 감정이 너무 격해질까 봐 성연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메로나 두 개요.” 카운터 앞으로 바로 간 성연이 유채연을 향해 말했다.성연의 출현에 유채연의 마음도 흔들렸다.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동요하는 모습을 본 성연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유채연은 말없이 묵묵히 냉장고에서 메로나 두 개를 꺼냈다.“여기 있어. 돈은 필요 없어.”성연은 미소를 지었다. ‘채연 언니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든 언니 마음은 항상 착해.’성연도 계산을 하지 않고 포장을 뜯고 먹으면서 나머지 한 개는 유채연에게 주었다.“채연 언니, 여기요.”성연이 자신에게 줄 줄은 몰랐기에 유채연은 놀라서 성연을 바라보았다. 성연이 웃으면서 말했다.“예전에 언니도 우리에게 하드를 많이 사줬잖아요.”유채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과거의 기억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사람이든 일이든 다 똑같아.’유채연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성연이 주는 하드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성연이 고개를 돌려 유채연을 보면서 감탄했다.“채연 언니, 언니는 이전보다 더 예뻐졌어요.”‘채연 언니는 정말 예뻐.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도 여전히 부드럽고 아름다워.’‘이전과 달리 언니의 미모가 세월 속에 쌓였어.’유채연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붉혔다.“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이렇게 거친 얼굴이 어디가 예쁘겠어.”‘내가 좀 더 나은 모습이라면 그래함과 함께 할 용기가 있을 텐데.’‘그러나 세상 일은 종종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피부 관리만 잘하면 돼요. 화장만 하면 천상의 선녀보다 더 예뻐요.” 성연은 유채연의 바로 옆에 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때때로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오거나 손님이 많은데 유채연이 바쁠 때면, 성연도 옆에서 도와주었
이때 산책하고 돌아오던 외삼촌이 성연을 보고는 불만을 표시했다.“걔가 원하지 않으면 그만둘 것이지, 왜 또 강요하는 거야? 나는 성질 좋은 사람이 아니야. 채연이를 괴롭히지 마.”외삼촌의 말을 들은 성연은 유채연을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성연도 중재자일 뿐이기에 유채연을 대신해서 결정할 수는 없었다.지금 유채연의 외삼촌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가 더 불편했기에, 돌아가서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성연이 나간 뒤 외삼촌을 보면서 유채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그 자리에 선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더없이 가슴 아프게 했다.유채연의 이런 모습을 본 외삼촌은 크게 화를 냈다.바로 유채연을 향해 화를 내며 소리쳤다.“너 왜 그래? 아까 그 남자가 바로 네 사진 속에 있던 걔가 맞지? 그 사진을 몇 년이나 보고 있었는데, 그 남자를 좋아하는 거지? 그럼 나가. 이 작은 가게는 나 혼자서도 관리할 수 있어.”예쁘고 부지런한 유채연이 요 몇 년 동안 일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유채연에게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유채연은 응하지 않았다.맞선을 볼 때마다 유채연은 자기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언젠가 문을 잠그는 걸 깜빡했을 때, 외삼촌이 무심코 유채연의 손에 든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유채연은 마치 보물을 대하듯이 사진을 보고 있었다.그때 외삼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그 사람이 정말 나타났는데 조건도 아주 좋아 보여.’‘채연이가 그 남자와 함께 한다면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거야.’외삼촌의 말에 유채연은 순간 멍해졌다.유채연은 자신이 나간다고 하면 외삼촌이 제일 먼저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다.자신이 떠나면 외삼촌을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유채연의 눈에 외삼촌은 줄곧 나쁜 사람의 모습이었다.하지만 그래도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외삼촌이 자신을 돌보고 보호해줄 거라고 생각했다.‘외삼촌이 가끔씩 말을 거칠게 해도 속마음은 부드러워.’
다음 날 아침 일찍 성연이 왔다.성연은 바로 가게에서 유채연과 이야기하고 싶었다.“채연 언니.”어제 두 사람에 대한 유채연의 태도는 좋았다.그러나 오늘 유채연은 냉담하게 거부하는 모습이었다.성연을 보고 정색을 하면서 미소도 전혀 짓지 않았다.“성연아, 물건을 사지 않으면 나가. 우리 가게는 작으니까 여기에 있지 마.” 축객령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그런 유채연을 보면서 성연은 단지 가슴이 아팠을 뿐이다.‘두 사람에게는 분명히 좋은 미래가 있어.’‘그러나 채연 언니는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해.’“채연 언니,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 사이에 분명히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잘 이야기하면 오해도 잘 해결될 거예요.” 성연도 두 사람이 잘 지내면서 행복하게 함께 있기를 바랐다.하지만 매번 뜻대로 되지 않았다.“우리 사이에 무슨 이야기할 만한 게 있겠어. 나를 찾아온 거라면 돌아가. 만약 나를 찾으러 온 게 아니라면, 여기서 즐기면서 나한테는 더 이상 오지 마.”이렇게 말하면서, 유채연은 마음속으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그러나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돼.’‘그래함과 성연만 여기서 나가면 돼.’‘이렇게 하면 나도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지 않을 거야.’‘예전의 꿈만 기억하면 돼.’‘나는 다시 내 생활을 계속할 수 있어.’“언니, 언니는 지금 사형에게 정말 아무런 느낌도 없어요?” 성연은 유채연이 그래함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걸 믿지 않았다. 유채연의 눈빛이 반짝거렸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성연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더욱 분발해서 열심히 권유했다.“채연 언니, 언니의 생각이 어떤 지를 떠나서 나는 단지 언니가 사형하고 잘 얘기하고, 무슨 문제가 있으면 함께 해결하기를 바랄 뿐이에요.”유채연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자신과 맺어질 수 없는 그 사람을 지나치게 원하지 않기 위해서, 아예 생각을 끊으려는 것이다.“나는 여기에 남아서 가게를 봐야 해. 성연아, 네
외삼촌에게 밥을 차려준 뒤 유채연은 혼자 가게를 지켰다.손님에게 물건을 가져다주면서.오늘 밤, 유채연은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을 좀 연장했다.외삼촌이 의심할까 봐 유채연도 너무 오래 끌지는 못했다.마침내 작은 슈퍼마켓의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유채연은 혼자 길모퉁이까지 걸어가 보았다.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갑자기 더없이 서글퍼지자, 유채연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그래함은 납득했겠지.’‘내가 지금 어떤 처지인데, 또 어떻게 그래함을 연루시킬 수 있어?’‘나도 너무 뜬구름 잡는 생각만 한 거야.’유채연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하긴, 그래함이 왜 내게 반했겠어?’‘지금의 내게 그래함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겠어.’유채연은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방 문을 잠근 뒤 이불 속에 눕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마음속으로는 모든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마음은 그래도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그때 어머니의 병이 아니었다면 집안이 망하지는 않았을 거야.’‘아마도 나도 대학에 갔을 거고, 그래함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겠지.’‘어쩌면 모든 게 달라졌을지도 몰라.’‘그런데 지금 이런 생각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어.’‘나와 그래함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이제 나는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고 살아가면 돼.’‘지금의 나는 이전처럼 헛된 망상을 할 자격도 없어.’‘현실로 돌아가는 게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야.’유채연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똑똑똑- 넓은 방안에 문 밖의 노크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유채연은 이런 장면에 익숙한 듯 눈물을 닦고 침대에서 일어났다.“외삼촌, 무슨 일이세요?”약간 갈라진 듯한 유채연의 목소리는 특히 표시가 났다.하지만 유채연은 그렇게 많은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맘대로 하면 돼.’“너 오늘 저녁 안 먹었지?” 밖에서 외삼촌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먹을래요.” 생각할수록 슬퍼서 유채연은
다시 유채연이 고함을 치자 외삼촌은 크게 놀랐다.‘요 몇 년 동안 채연이는 내 앞에서 줄곧 순종했어.’‘지금 뜻밖에도 두 명의 외부인 때문에 감히 말대꾸를 하고 있어.’갑자기 외삼촌이 또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보니까 네가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내가 그동안 너를 거뒀는데, 너는 전부 너는 짖어라 라는 식이야?”“나 아니면 누가 너를 신경이나 쓰겠어. 그 사람들은 돈이 있잖아. 진작에 갔다가 왜 이제야 온 거야?”“만약 또 내게 이렇게 말할 거면, 앞으로 너를 상관하지 않아도 탓하지 마.”외삼촌은 유채연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서 심하게 말을 했다.유채연은 그 말들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마음속으로는 온통 그래함을 생각하고 있었다.‘예전에 나와 그래함은 죽마고우여서 다른 사람에겐 하지 않았던 일도 많았지.’‘그래함이 병이 났을 때 내가 그래함을 돌보았어.’‘그때 사랑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그래함에게 감정이 생겼어.’‘그래함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내가 맞은편 마을로 가지도 않았을 거야.’‘심지어 그래함은 나중에 나하고 결혼할 거라고 예전에 말하기도 했어.’나중에 일어난 그 일들이 오히려 유채연을 심연 속으로 매섭게 끌고 갔다.만약 유채연의 집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유채연도 그래함과 함께 하는 걸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그래함은 내가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럴 리가 없어.’‘그래함은 단지 일시적으로 감정이 복받쳤을 뿐이야.’‘곧 후회할지도 몰라.’그들의 처지가 너무나 현격하게 차이가 나기에.유채연은 감히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할 수 없었다.일을 너무 좋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간직할 것이다.‘빛나는 보석이 된 그래함은 가장 높은 위치에 서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거야.’‘그러나 지금 진흙투성이인 유채연은 그저 서민들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어.’‘지금까지 그렇게 좋지 않았던 내 처지가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어.’‘예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자포자기하기도
유채연은 넋이 나간 채 슈퍼마켓으로 돌아왔다.머릿속에 맴도는 건 그래함의 자신에 대한 태도와 자신에게 했던 말뿐이다.슈퍼마켓을 지키던 외삼촌은 유채연이 오는 것을 보고는 가게에서 나가며 야단쳤다.“누구를 만났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집안 일은 할 필요가 없어?”“이 정도로 시간을 잡아먹을 거면 차라리 집에 잘 있는 게 낫겠어.”유채연은 반박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숙이고 서 있었다.유채연이 돌아왔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뜻밖에도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났어.’‘지금은 확실히 시간이 좀 늦었어.’평소에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주 엄격했다. 유채연은 오랫동안 바깥에 나가지 않은 채 매일 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유채연이 감히 항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 외삼촌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너를 찾아왔던 그 두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야?”유채연은 건성으로 대답했다.“그저 고향 사람일 뿐이에요.”“고향 사람이 왜 너를 찾아왔어?” 외삼촌은 여전히 예민했다.유채연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너무 오랫동안 나를 보지 못했으니까 나를 찾아왔지요.”“너는 지금 류씨 집안에 사는 게 아니야. 너를 찾아오려면 시간이 더 걸렸을 텐데, 그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한가해서 너를 찾아온 거야?” 외삼촌은 계속 꼬치꼬치 캐물었다.유채연의 상태가 아직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외삼촌이 그렇게 묻는 말을 듣자 외삼촌에게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평소에 외삼촌은 자신의 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렇게 세세하게 물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야.’“그때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 사람들이 구태여 알아볼 필요도 없이 조금만 물어봐도 알 수 있지요. 외삼촌, 그걸 왜 물어보세요?” 유채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외삼촌이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 사람들이 정말 호사스럽게 손을 쓰던데, 부자인 모양이야. 그 사람들한테서 돈을 좀 구할 수 없을까?”방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