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한이 피식하고 웃었다. ‘앞으로 은퇴할 테니 배워 둬야 할 것들이 많군.’‘앞으로 지금처럼 얘기할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소지한은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앞으로 관심이 있으면 같이 투자할 수도 있어.”성연은 웃음 띤 얼굴로 거절하지 않았다.소지한이라면 주변에서 서로 같이 합작하려고 혈안이 될 터. 굳이 성연 자신과 합작할 필요가 없다.단지 친구로서 성의 표시일 뿐. “참, 너 귀국했다는 소식, 아직 강씨 집안에 알리지 않았니?” 소지한이 궁금해서 물었다.성연이 있다면 그 여자가 무슨 대수겠는가. ‘사람들 정말 음흉해. 성연의 부재를 틈타 파고 들어가려 하다니.’그러나 잘 생긴 외모에, 북성 제일의 명문가라는 강무진의 조건은 사람들에게 너무 매력적이다.‘어쩐지 그렇게 많은 벌과 나비들을 끌어 들이더라니.’ “아니.” 성연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기에, 강 대표는 그 여자에게 별 관심 없어. 그러니 그 여자 때문에 다툴 필요 없어. 서로 감정만 상해. 그러면 그 여자의 계략에 놀아나는 거야.”성연이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 소지한은 무진과 갈등을 빚을까 걱정했다.성연은 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말했다.“네 눈에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그런 뜻이 아니야. 그 여자, 고단수로 보여서 네가 속 상할까 걱정이야.” 소지한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소지한의 말을 듣던 성연은 실눈을 뜬 채 입 꼬리를 올렸다. 입가에는 냉소가 넘쳐흘렀다.“만나면 그 여자에게 똑똑히 알려 줄 거야. 자신의 것이 아닌 것들은 어떤 계략을 쓴다 한들 절대 뺏어갈 수 없다는 걸.”순간 성연의 음성에 패기가 실리자 소지한이 박수를 쳤다.“맞아, 바깥의 저 사람들이 어떻게 너와 비교가 되겠니?”성연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너 진짜...”커피를 거의 다 마셨을 때, 마침 소지한의 에이전시에서 전화를 해서 온 사방에서 소지한을 찾았다.에이전시가 소지한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았다.결국 참지 못한 소지한이 낮게 혀를 찼다.성연이 입을 열었
성연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성연을 본 무진은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어 비척비척 흔들리는 몸으로 소파에서 일어섰다.이것이 무진의 몸 안에 들어간 알코올이 일으킨 작용이라는 걸 조수경은 이미 잘 알고 있다.자리에서 일어난 조수경은 일부러 무진에게 가까이 다가가 비틀비틀 넘어지려는 무진을 부축했다.자신을 부축하는 사람이 성연이라고 생각한 무진은 거부하지 않은 채 몸을 맡기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성연아, 돌아왔어?”평소 무진은 잘 웃지 않는다.웃는다 해도 옅은 웃음만 지을 뿐.그러나 지금 강무진의 얼굴에 핀 웃음은 마치 녹아 흐르는 북극의 얼음 같았다.그윽한 눈동자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지니 부지불식간에 그 안으로 뛰어들고 싶게 한다.강무진이 송성연 앞에 보이는 모습은 모두 자신이 처음 보는 것들이다.무진의 깎은 듯이 잘생긴 옆모습에 조수경은 흠뻑 빠진 눈을 하고 있었다.‘이런 부드러운 표정은 내 것이어야 해.’‘오래지 않아 금세 내 바램을 이룰 수 있을 거야.’무진을 부축한 조수경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페로몬에 다리가 풀리려고 했다.곧 있을 일을 생각하자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하는 조수경.참지 못한 그녀가 무진에게 속삭였다.“무진 오빠, 취했어요. 내가 부축해 줄게요.”“그래.” 성연의 곁에 있을 때면 착하게 말 잘 듣던 무진의 모습 그대로.앞에 있는 사람이 성연이라면 뭐든지 할 태세다.성연은 가족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무진은 지금 성연이 먼저 자신에게 다가왔다는 기쁨에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다.게다가 알코올의 작용으로 사고력도 잃은 상태.조수경은 속셈이 있었다.무진이 자러 가게 도와준다고 해놓고는 무진을 자신의 침실로 데려갔다.조수경의 침실에는 짙은 향수 냄새가 풍겼다.로즈마리 향을 베이스노트로 한 향수는 조수경이 침실에 들어오면서 뿌린 것.지금 온 방 안이 로즈마리 향으로 진동을 했다.조수경의 체취와 뒤섞인 향은 무척 뇌쇄적이었다.그 향내가 무진의 코를 찌르
무진에게 바짝 다가선 조수경은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지 손을 내밀어 무진의 뺨을 쓸어내렸다.무진은 정말 많이 취했는지 의식이 혼미했다.뺨을 쓰는 조수경의 손이 무척이나 가볍고 부드러워서, 무진은 내내 앞에 있는 사람이 성연이라고 생각했다.침대에 앉은 상태의 무진은 자신의 약혼녀 성연에게 다가가고 싶었다.마치 오랫동안 자신의 여자를 보지 못했음을 기억하면서.그저 자신이 성연일 무척이나 그리워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다.지금 눈앞에 그리던 사람이 나타나니, 마음속에 감춰두었던 감정이 폭발해 버렸다.자리에서 일어난 무진이 ‘성연’의 얼굴을 만지려 손을 내밀었다.자리에서 일어나다 하마터면 비틀거리다 넘어질 뻔했다.옆에서 보고 있던 조수경이 앞으로 다가서 무진을 안은 채 부축했다.무진이 간신히 몸을 바로 세웠다.조수경이 무진의 어깨에 기댄 채 유혹하는 음성으로 말했다.“무진 씨, 내가 옷을 벗겨 줄게요. 우리 씻으러 갈까요?”그녀는 알아서 무진을 부르는 호칭을 바꾸었다.어차피 강무진은 결국 자신의 것이 될 터이니 아무렇게 부른들 어떠리.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수경도 거기에 신경쓰지 않은 채 말을 마치자마자 손을 뻗어 자켓에서 무진의 팔을 빼낸 후 옷을 벗겼다.무진의 자켓을 벗기니 흰 와이셔츠가 나타났다.늘 운동을 하는 무진. 광택이 도는 흰색 실크 셔츠 위로 가슴 근육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났다.좀 더 담이 커진 조수경은 셔츠 위로 손을 올려 쓰다듬기 시작했다.셔츠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너무 매끄러웠다.희멀건 손민철 같은 놈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조수경은 손끝으로 무진의 가슴을 쓸어내렸다.‘오늘밤만 지나면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어. 더 이상 손민철에게 협박을 받지 않아도 돼.’‘그럼 우리 집안도 다시 일어날 테고.’강씨 집안의 사모님은 모든 여성들이 부러워하는 대상, 아무도 자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조수경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환상이 펼쳐졌다.그래서 자신의 계획이 모두
성연의 힘이 어찌나 센지 조수경의 얼굴이 한쪽으로 홱 돌아갔다.얼굴에 엄청난 통증이 퍼지며 자신의 계획이 까발려지자, 조수경은 속으로 다시 난감함을 느꼈다.이어서 분노의 감정이 속에서 불쑥 솟구쳤다.‘송성연은 강무진의 약혼녀일 뿐, 아직 아무것도 아니잖아?’‘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손을 대?’조수경은 이를 갈면서 바로 성연에게 달려들었다. 긴 손톱을 앞으로 뻗어 성연의 얼굴을 할퀴려 했다.성연은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조수경이 하는 동작을 그냥 내버려두었다.조수경이 자신을 건드린다면 성연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고통을 맛보게 해 줄 수 있었다.이미 성연의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온 은침이 침실의 조명 아래에서 예리한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은침을 보지 못한 조수경은 눈에는 사생결단의 빛을 띠고 성연과 같이 죽을 작정이었다.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가지게 할 수 없었다.조수경이 다가서며 성연의 손에 있던 은침이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가려던 순간.불쑥 나타난 신형에 의해 떠밀린 조수경이 바닥에 주저앉았다.가뿐히 위기 상황을 넘긴 성연은 아무런 흔적 없이 은침을 거둬들였다.중간에 끼어든 사람은 손건호.주먹을 꽉 말아 쥔 조수경의 눈에 원망의 빛이 가득 차 있었다.“당신은 단지 일개 비서일 뿐이야. 그런데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그 말을 하는 조수경은 손건호가 얼마나 오랜 시간 무진의 곁을 지켜 왔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그에 비해 그녀 자신은 잠시 강씨 집안에 얹혀 사는 사람일 뿐이면서.강씨 집안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해 주니 의기양양한 나머지 자신의 진짜 신분을 잊은 것.조수경을 상대하기도 귀찮아서 그녀를 지나쳐 바로 무진의 곁으로 다가간 손건호. 무진을 부르는 손건호의 눈에 걱정의 빛이 어렸다.“보스, 괜찮으십니까?”그때쯤 무진은 정신이 좀 들었다.하지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직 잘 모르는 상태.성연의 음성을 들은 자신의 감각만 아주 뚜렷하게 느껴졌다.잠시 멍하니 있던 무
가방에서 숙취해소제를 꺼낸 성연이 무진의 어깨를 두드렸다.“숙취해소제예요. 얼른 먹어요.”고개를 든 무진은 아무런 반항 없이 성연이 직접 입에 넣어주는 숙취약을 받아먹었다.이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조수경은 눈이 시뻘개졌다.자신은 강무진과 같이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고 그토록 애를 썼건만.강무진은 인 듯 아닌 듯 거절하며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만 했다.그러나 지금 강무진은 온 몸으로 송성연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이 모두 조수경의 눈에 거슬렸다.‘왜, 왜!’‘송성연이 도대체 뭐가 좋다고!’이제 갓 성인이 된 여자애가 성숙한 여자보다 더 매력적일 수 있을까?성연은 자연스럽게 조수경의 눈빛을 보게 되었다. ‘마음에 안 들면 뭐 어쩔건데?’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결코 가질 수 없는 법.손건호는 성연 옆으로 걸어갔다.“작은 사모님, 이 여자는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요?”차가운 눈빛으로 조수경을 보던 성연이 바로 지시했다.“가서 물을 가져오세요.”살짝 고개를 끄덕인 손건호는 이유도 묻지 않은 채 바로 욕실로 들어가서 작은 통에 물을 절반 받아와서 성연에게 건넸다.보고 있던 조수경이 연신 몸을 뒤로 물리며 두려운 눈빛으로 소리쳤다.“너 지금 뭐 하려는 거야? 내가 말하는데, 난 강씨 집안의 손님이야. 만약 네가 이렇게 나를 대한다면, 집안 어른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두렵지도 않아?”성연에 대한 자료를 보고 단정했었다. 강무진의 약혼녀로 팔리다시피 강씨 집안에 온 송성연은 집안 어른들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했을 거라고. 또 강씨 집안 어른들에게 자신을 잘 보이기 위해 아주 신경 썼을 게 분명하다고. 그래서 자신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고 말이다.그러나 조수경의 계산은 틀렸다.성연은 결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일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성연의 눈에 비웃음이 떠올랐다.“당신이 강씨 집안의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네요.”그 말을 끝낸 성연
성연이 건넨 숙취해소제는 성연이 직접 연구해서 만든 것으로 안에 약간의 수면 성분도 포함되어 있었다.먹은 후에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숙취는 모두 사라진다.무진은 알코올이 작용하는 가운데 숙취해소제의 수면 작용으로 깊이 잠들었다.호흡도 서서히 고르게 바뀌었다.성연은 무진의 손을 살짝 풀고 이불 안에 넣어 준 후에 침실 문을 열고 나갔다.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안금여, 강운경 그리고 조승호와 시선을 마주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조금 전의 소란이 그들을 모두 깨운 것.무슨 큰일이 생긴 줄 알고 나와서 살피던 중에 돌아온 성연을 보게 된 것이다.성연의 등장에 다들 눈에 놀랍고 기쁜 빛이 어렸다.성연을 보고 다들 몹시 기뻐했다.그 중에서도 특히 안금여가 가장 기뻐했다.모두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소파에 앉자마자 지체없이 성연을 옆으로 끌어 앉힌 안금여. 성연의 손을 잡은 채 입을 열었다.“성연아, 너 언제 돌아온 거야? 어째서 돌아온다고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거니? 네가 공부하러 간 이후로 나 혼자서 어찌나 적적하던지.”할머니의 관심과 애정에 성연은 모처럼 마음이 따뜻해졌다.하지만 가족들 곁에 조수경이 함께 있던 장면을 떠올리던 순간 성연의 눈이 가라앉았다.성연이 불퉁한 모습으로 툴툴거렸다.“아니, 조수경 씨가 있잖아요?”성연이 조수경의 이름을 언급하자, 안금여는 잠시 멍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내 웃으며 말했다. “수경이는 내 오랜 친구 손녀야. 어떻게 너하고 비교할 수 있겠니?”성연은 자신의 진짜 가족이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 않는 손녀며느리.성연에 대한 애정은 조수경과는 또 달랐다. 당연히 성연에게 더 무게가 실렸다.강운경도 성연의 말에서 불안한 마음을 읽은 듯 설명했다.“수경이는 잠시 와서 머무는 아이일 뿐이야. 당연히 진짜 가족인 너와는 다르지.”그제야 기분이 좀 좋아진 성연이 고개를 내려 시간을 확인했다.“너무 늦었어요. 할머니, 고모, 고모부, 일단 다시 가서 주무시는 게 좋겠어요. 내일 제가 세 분을 위해 준비한 선
조수경은 밤새도록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거의 새벽녘 날이 밝아오도록 뒤척이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침실 밖으로 나갔다.아직 시간이 일러서인지 조용한 거실에는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조수경은 주방에 들어가 앞치마를 찾아 허리에 둘렀다. 냉장고와 펜트리에서 식재료를 꺼낸 후,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자신을 구제하기 위해 밤새도록 생각해낸 유일한 방법이다.가장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온 사람은 성연이었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는 성연의 온몸에서 자긍심이 흐르고 있었다.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함과 뒤섞여 마치 어느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는 모습처럼 보였다.겨우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인 주제에...자신은 최고의 교육을 받지 않았나, 그런데 송성연은 무슨 자격으로?조수경은 접시를 쥐고 있던 손을 꼭 말아 쥐었다. 접시를 식탁 위에 올린 후,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성연에게 친근한 음성으로 말했다.“성연 씨, 제가 아침 식사 준비를 했어요. 당신이 한번 맛을 봐 줘, 입에 맞는지.”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조수경이 이러는 속셈이 한 눈에 보였다. 오로지 자신의 비위를 맞출 생각인 듯하다.싸늘한 시선으로 조수경을 흘겨본 후, 성연은 조수경을 무시한 채 거실에 가서 소파에 앉았다.원래 조깅하러 갈 생각에 일찍 내려왔다가 조수경을 보니 가기 싫어졌다.조수경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두고 볼 셈이다.조수경은 비록 속으로 화가 났지만, 여전히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송성연에게 사과할 생각이다. 강씨 집안에 남을 수 있다면 향후의 일을 장기적으로 도모할 수 있을 터.주방에서 나온 조수경이 손에 묻은 물기를 닦은 후에 성연의 맞은편에 앉았다.조수경의 얼굴에 약간 구차한 표정이 떠올랐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해 창백한 혈색은 썩 보기 좋진 않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좋았다.한참을 망설이던 조수경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성연 씨,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어젯밤에는 기분이 좋아 무진 오빠와 와인을 좀 마셨
성연은 냉담한 태도로 조수경이 하는 말을 모두 듣기만 하고 있었다.한참 혼자 얘기하던 조수경은 성연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이어지는 어색한 분위기.조수경은 성연이 일부러 유세 떨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직접 사과한 데 이어서 아침까지 차려 주었는데 송성연은 또 뭐가 불만이란 말인가?게다가 어제 밤 자신과 강무진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지 않았나 말이다.시간이 좀 지난 후, 성연이 느긋한 음성으로 말했다.“그러니까 조수경 씨의 말은 내가 아량이 부족하다는 말인가요?”혹여 성연이 화가 난 건 아닐까 마음이 조급해진 조수경이 얼른 팔을 들어 휘휘 저었다.“나, 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그냥 송성연 씨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만약 무진 오빠가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게 했더라면 그런 오해는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모든 책임은 술에 있다는 의미.자신의 음험한 욕심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조수경.조수경, 이 여자 확실히 보통내기가 아니었다.하지만 성연이 보기에는 그저 가소로울 뿐.더 이상 조수경의 연극을 구경하는 것도 귀찮아진 성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조수경 씨, 모두가 인정하는 무진 씨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는 나예요. 만약 조수경 씨가 계속 더티하게 나온다면, 나도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줄 밖에요.”순간 조수경의 얼굴에 덧씌워졌던 호의와 친절의 가면이 하마터면 깨질 뻔했다.조수경의 두 눈에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가며 성연에 대한 원망이 더 커졌다.‘바로 이 여자가 내 계획을 다 망쳤어!그것도 잠시, 이 모든 감정을 싹 지운 조수경은 평소의 연약하고 나긋나긋한 모습을 회복했다.입술을 지그시 깨문 조수경이 입을 열었다.“송성연 씨가 무진 오빠의 약혼녀라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어요. 나는...나는 무진 오빠에게 다른 마음을 품은 적이 없어요. 나는 그저 무진 오빠가 고마울 뿐이에요. 그래서 어떻게든 오빠에게 보답할 방법하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