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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0화

작가: 류한나
“시은 씨, 전 괜찮아요.”

고은서는 팔이 조금 아팠지만 상처를 보니 긁혔을 뿐 살까지 깊게 파고들지 않아 구급차를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약국에 가서 씻고 약만 바르면 돼요.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래도 병원에 가는 게 좋겠어요!”

여시은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혹시라도 감염되면 큰일이에요! 제 기사님이 앞에 있어요. 그분이 병원에 데려다 줄 거예요. 저가 대신 여기서 경찰을 기다릴게요!”

말을 마친 여시은은 고은서가 거절할 새도 없이 자기 사를 부르러 갔다.

“은서 씨?”

도로 옆에서 깜짝 놀란 듯 급하게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은서가 고개를 돌리니 하얀색 캐주얼 슈트를 입고 차에서 뛰어 내려오는 민시후의 모습이 보였다.

개업식 때 민시후가 고은서를 도와 성동욱 일을 처리해 준 후, 그녀와는 거의 연락 하지 않았다. 그의 비서가 두 번 전화를 걸어 도와줄 일이 있는지 물어왔으며 민시후가 최근 업무 때문에 너무 바빠서 살도 빠졌다는 얘기를 했었다.

눈앞에서 다가오는 민시후를 보고 고은서는 갑자기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왜 여기에 있어? 손은 왜 그래?”

민시후는 고은서의 손을 잡고 긴장하며 물었다.

“별거 아니 야.”

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노숙자들과 싸우다 철판에 긁혔어. 다행히 살까지 파고들지 않은 것 같아. 시후 씨는 어떻게 여기 있어?”

“고객과 약속이 있어서 지나가던 길이야!”

그때 여시은의 운전기사가 다가왔다.

“지금 병원에 모셔다드릴까요?”

여시은이 웃으며 말했다.

“민시후 씨가 계시니 저는 빠져도 될 것 같아요. 빨리 은서 씨를 병원에 데려다주세요!”

“시은 씨는 어떻게 여기에 계세요?”

민시후가 물었다.

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이 여시은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녀의 가정부가 관련되었기 때문에 민시후는 그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어쩔 수 없이 차가워졌다.

여시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여기 유명한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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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마침 라이트문 아파트에 가려던 참이야.”고은서가 거절할 틈도 없이 곽승재는 낮고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주머니가 국을 끓였다고 하더라. 나한테 와서 가져가라고 했어.”원래 기분이 좋지 않던 민시후는 곽승재가 고은서네 가정부를 핑계 삼아 온 것을 보고 더 답답해졌다.“그래도 곽 대표가 데려다줄 필요는 없어!”그리고 이어 고은서를 향해 투정 부렸다.“나도 배고픈데. 내가 집까지 데려다주고 나도 뜨끈한 국 한 그릇 먹어도 될까?”민시후가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고은서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그렇게 해.”그리하여 곽승재의 복잡한 표정 속에서 고은서는 민시후의 차에 올랐다.민시후의 차가 점점 멀어져갔지만 곽승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주민기는 밤바람 속에서 쓸쓸해 보이는 곽승재를 바라보며 안쓰러워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애써 여기까지 찾아왔건만 아내가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함께 있는 걸 목격하고 말았으니...’곽승재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심지어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하아... 대표님의 아내 되찾기 여정은 끝도 없이 험난하구나.’주민기가 속으로 한탄하던 중, 갑자기 곽승재의 시선이 그를 스쳤다.주민기는 몸을 바로 세우며 물었다.“대표님, 그래도 가시겠습니까?”곽승재는 입술을 꾹 다물고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사고가 났던 골목에 CCTV 설치해요. 그리고 사모님한테는 실력 좋은 운전사를 붙이도록 하세요.”“네, 대표님.”주민기가 고개를 끄덕였다.민시후는 그 길로 차를 몰아 고은서의 집에 도착했다.차를 세우고 막 올라가려는데 저쪽에서 막 도착한 곽승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직접 운전해서 온 듯했고, 비서는 곁에 없었다.민시후는 그가 거슬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다행히 고은서는 곽승재를 기다릴 생각이 없어 보였고 결국 두 사람은 먼저 위층으로 올라갔다.집에 들어서자 이미숙은 같이 들어온 두 사람을 보고 살짝 놀랐다.“사모님, 곽 대표님도 오신다고 하셨는데 같이 안 오셨나요?”

  • 어게인, 비긴   제832화

    고은서는 일부러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시후 씨,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재벌가 아들이라는 신분이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거야?”“시후 씨가 가족 앞에서 나에 대한 감정이 없다고 말하면 아버님과 형도 그냥 이성 친구라 생각하고 괴롭히지 않을 거야.”민시후는 그녀의 농담에 신경 쓰지 않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포기하기를 원하는 거야?”고은서는 다소 수척해진 민시후의 얼굴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사실 시후 씨도 잘 알잖아. 1년이 지나도 가족분들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걸.”“민씨 가문에선 나와 곽 씨 집안의 혼인 관계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거야.”만약 고은서가 예전에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다면 민씨 가문에서도 그걸 덮을 수 있었겠지만 곽승재의 전처라는 신분은 그들에게 너무 민감하고 큰 문제였다.민씨 가문 같은 재벌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체면이기에 그녀가 며느리가 되는 걸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고은서는 진지하게 말했다.“그러니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예전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아.”“은서 씨, 아직도 내 마음을 믿지 못하는 거야?”민시후의 눈에 어두운 그늘이 깔렸다.“아니, 시후 씨 마음을 알아. 문제는 나야.”고은서가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내가 정말 시후 씨를 사랑했다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함께할 수 있었을 거야. 시후 씨 가족의 태도나 외부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말이야. 하지만 내게는 그만큼 시후 씨에 대한 감정이 부족해. 그래서 시후 씨 가족분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다른 외부적인 이유도 나를 주저하게 만들지. 그래서 나는...”민시후가 갑자기 고은서를 끌어안으며 급하게 말했다.“그러지 마, 나에게 기회를 준다고 약속했잖아.”고은서는 마음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그녀는 살며시 민시후를 밀어내며 말했다. “내가 한 말이 다 사실이라는걸 시후 씨도 알 거야. 그러니 그런 고집은 의미가 없어.”민시후는 여전히 고은서를 끌어안고 있었

  • 어게인, 비긴   제831화

    고은서가 계속해서 뒤를 보고 있자 민시후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매번 여시은이 나타나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고은서가 민시후를 바라봤다. 설마 그렇겠냐고 말하다 곧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처음 여시은을 만난 건 고양이 쿠아를 구할 때였다. 그 후 서운에서 여시은의 방에서 불이 났고, 이사 파티에서는 민시후가 함정에 빠졌다.유일 투자은행 개업식에서 페인트가 뿌려졌고 지난번 골프장에서는 곽현수와 골프를 치던 장우현도 다쳤었다.모든 사건이 여시은이 직접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이렇게 많은 우연이 있을까?’‘하지만 만약 우연이 아니었다면 여시은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고은서는 더 이상 추측하지 않기로 했다. “고객을 만나러 간다며? 나를 병원 앞에 내려주면 돼.”민시후는 약간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깟 고객 때문에 다친 너를 그냥 두고 가는 사람 같아 보여?”고은서는 헛기침을 한 번 하며 말했다.“중요한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민시후가 고은서를 바라보며 감정을 억누른 채 물었다.“왜 혼자 이런 곳에 왔어? 비서도 기사도 없이?”“새 프로젝트 때문에 온 거야. 그 회사의 작업실이 근처에 있거든.”고은서는 사실대로 말했다.“운전기사 부를 시간이 없었고 송민아는 다른 프로젝트로 바빠서 이번엔 그냥 혼자 왔어.”민시후는 다시 한번 말없이 고은서를 바라보았다. 다만 조금 더 차분해 보였고 무언가 애써 참는 것처럼 보였다.고은서의 요청대로 민시후는 그녀를 근처의 한 동네 병원에 데려갔다.동네 병원은 예약이 필요 없었고 진료도 비교적 간편했다.다행히 고은서의 팔에 난 상처는 깊지 않았다. 하지만 약 10cm 정도 되는 길이의 상처였고 지금은 더 이상 피가 나지 않았지만 주변이 이미 검붉게 부어 있어 보기에 꽤 충격적이었다.의사는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준 후, 파상풍 예방주사도 맞혔다.고은서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 어게인, 비긴   제830화

    “시은 씨, 전 괜찮아요.”고은서는 팔이 조금 아팠지만 상처를 보니 긁혔을 뿐 살까지 깊게 파고들지 않아 구급차를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약국에 가서 씻고 약만 바르면 돼요.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그래도 병원에 가는 게 좋겠어요!” 여시은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혹시라도 감염되면 큰일이에요! 제 기사님이 앞에 있어요. 그분이 병원에 데려다 줄 거예요. 저가 대신 여기서 경찰을 기다릴게요!”말을 마친 여시은은 고은서가 거절할 새도 없이 자기 사를 부르러 갔다.“은서 씨?”도로 옆에서 깜짝 놀란 듯 급하게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고은서가 고개를 돌리니 하얀색 캐주얼 슈트를 입고 차에서 뛰어 내려오는 민시후의 모습이 보였다.개업식 때 민시후가 고은서를 도와 성동욱 일을 처리해 준 후, 그녀와는 거의 연락 하지 않았다. 그의 비서가 두 번 전화를 걸어 도와줄 일이 있는지 물어왔으며 민시후가 최근 업무 때문에 너무 바빠서 살도 빠졌다는 얘기를 했었다.눈앞에서 다가오는 민시후를 보고 고은서는 갑자기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왜 여기에 있어? 손은 왜 그래?” 민시후는 고은서의 손을 잡고 긴장하며 물었다.“별거 아니 야.” 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노숙자들과 싸우다 철판에 긁혔어. 다행히 살까지 파고들지 않은 것 같아. 시후 씨는 어떻게 여기 있어?”“고객과 약속이 있어서 지나가던 길이야!”그때 여시은의 운전기사가 다가왔다. “지금 병원에 모셔다드릴까요?”여시은이 웃으며 말했다. “민시후 씨가 계시니 저는 빠져도 될 것 같아요. 빨리 은서 씨를 병원에 데려다주세요!”“시은 씨는 어떻게 여기에 계세요?” 민시후가 물었다.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이 여시은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녀의 가정부가 관련되었기 때문에 민시후는 그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어쩔 수 없이 차가워졌다.여시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여기 유명한 동물

  • 어게인, 비긴   제829화

    게임 회사의 작업실은 다소 오래된 작은 아파트 단지에 위치해 있었고 단지에는 경비나 순찰을 하는 경비원도 없었다.골목에는 가로등이 있었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비해 꽤 외진 곳이었다.차는 골목에 주차되어 있었고 고은서는 핸드폰에 집중하느라 주변 상황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두 남자를 알아챘을 때는 이미 그들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다.두 남자는 하나는 마르고 키가 컸고 다른 하나는 까무잡잡했다. 그들은 헤진 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 든 짐 꾸러미에는 많은 쓰레기가 담겨 있었다. 아마도 근처에서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잇는 사람들인 듯했고 몸에서는 고약한 악취가 났다.고은서는 속으로 구역질을 참으며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그녀는 차 옆에 서 있었기 때문에 한발 물러서자 차에 기대게 되었다.이제 차 문을 열고 들어가기는 이미 늦었고 두 남자가 점점 다가오고 있어 도망칠 수도 없었다.두 남자의 눈가는 이상하리만치 붉었고 고은서를 발견하자 점점 더 흥분된 듯 보였다. 그들은 입에서 지저분한 욕설을 뱉으며 다가왔다.“젠장, 오늘 운이 정말 좋아! 이 근처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울 수 있을 줄 몰랐네. 게다가 이렇게 예쁜 여자도 만날 줄은!”“그렇지, 도시의 여자는 역시 다르네. 이 피부를 보라고. 아주 보드라워! 하하하, 집으로 끌고 가서 잘 놀아보자고!”그때, 악취 나는 마르고 키 큰 남자가 더럽게 손을 뻗으려 했고 고은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남자의 아랫배를 향해 강하게 발길질했다!갑작스러운 공격에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아랫배를 움켜잡고 무릎을 꿇었다.까무잡잡한 남자는 그제야 반응해 고은서를 잡으려 했고 고은서는 틈을 타 재빨리 몸을 틀어 그에게 발차기를 날렸다!하지만 남자는 상대적으로 더 강한 체격을 가졌고 고은서는 서 있는 자세 때문에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없어 그를 넘어뜨리지 못했다.그러자 남자는 화가 난 듯 욕설을 퍼부으며 팔을 휘둘러 고은서를 향해 달려왔다.고은서는 민첩하게 몸을 낮추며 땅에 떨어진

  • 어게인, 비긴   제828화

    육현석은 박지연의 말을 듣고 눈이 반짝였다.“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줘!”박지연은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그를 바라보며 더 분명하게 말했다.“말했잖아, 현석 씨가 너무 보고 싶다고. 만약 빨리 돌아올 수 없다면 내가 당장 현석 씨를 찾아갈 거야!”육현석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듯, 바로 대답했다.“정말? 그럼 내가 비행기 표 예약해 줄게! 짐 싸고 있어, 내가 기사 불러서 병원으로 데리러 갈게!”“응!”박지연은 행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미처 멀리서 혼자 서 있는 온승준을 보지 못했다.박지연이 남자 친구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온승준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파졌다. 예전에, 그녀도 그렇게 그를 바라봤었고 그를 볼 때마다 눈이 반짝였었다.그는 그를 위해 L 국까지 갔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다른 남자에게로 돌아갔고 박지연의 마음속에 그의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그 순간, 온승준은 박지연을 완전히 잃었다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얼마나 그녀에게 차가웠고 무관심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박지연이 원한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는 그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전화를 끊은 박지연은 복도에 서 있는 온승준을 발견했다. 그는 마치 서리 맞은 배추처럼 기운이 빠져서 문을 붙잡고 있었다.“괜찮아? 의사 불러줄까?”박지연은 그가 몸이 불편해 보여 물었다.온승준은 그녀의 촉촉한 눈과 입가의 미소를 보며 가슴이 더 아파졌다.“지연아, 미안해.”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박지연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우리 사이는 이제 끝났어. 그러니 더 이상 나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지금의 아내를 소중히 여기길 바라.”그 말을 끝으로 박지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급히 떠났다.저녁 무렵, 게임 회사에서 나온 고은서는 박지연의 전화를 받았다.그리고 해주시로 간 박지연이 육현석과 이모와 함께 셋이서 식사를 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이제 양가 부모님을 만나는 단

  • 어게인, 비긴   제827화

    박지연은 온승준이 휴대폰을 꺼내 드는 모습을 무심코 바라봤다. 화면에 나타난 발신자는 온승준의 어머니였고 박지연은 유혜린과 관련된 일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온승준은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말을 이어갔다.“지연아, 우리 부모님이 약속하셨어. 내가 유 닥터랑 결혼만 하면 더 이상 너한테 연락하지 않겠다고.”그는 간절히 부탁했다.“나도 이제 곧 이 병원을 떠날 거고, 그러면 우리는 만날 기회가 없을 거야. 그냥 마지막으로 선물을 하나 주고 싶은데, 정말 안 받을 거야?”“응, 받을 수 없어.”박지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무엇이든, 결혼을 하기로 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고 잘 살아. 나에게 상처를 줬으니 이제 다른 여자에게는 더 이상 상처 주지 말았으면 해.”온승준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사실 그가 할 말은 더 이상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한 건 그 자신이었다. 박지연과 재혼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부모님의 뜻에 따라 타협했던 것이었다.그때, 안소희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지연 언니, 잠깐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안소희의 얼굴에 떠오른 흥분을 본 박지연은 의아해하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안소희는 온승준을 한 번 쳐다본 뒤 박지연을 문밖으로 끌고 가며 말했다.“저쪽이요. 배달원이 본인 사인이 필요하다 해서요. 전화가 무음이라서 연결이 안 되길래 제가 배달원 데리고 왔어요!”“여기요! 여기로 가져다주세요!”안소희가 말을 마치자 배달원이 큰 꽃다발을 들고 다가왔다.“박지연 씨, 본인 맞으시죠? 육 대표님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여기다 사인해 주세요.”박지연은 서명을 마친 후 꽃다발을 받았다. 그 안에는 푸른 장미가 들어 있었고, 그 속에 길고 정교한 보석 상자가 들어 있었다.“빨리 열어보세요! 안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요!”안소희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육현석과 박지연의 연애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달콤한 순간을 보는 걸 좋아했다.박지연은 천천히 상자를 열

  • 어게인, 비긴   제826화

    박지연은 순간 온승준이 술에 취했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그날 밤, 유혜린은 그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밤새 그를 돌봐주었다.‘그날 밤, 무언가 일이 생겼던 걸까?’“그날, 나는 유 닥터가 단순히 나를 돌봐준 거라고만 생각했어.”온승준은 마치 박지연의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근데 유 닥터 말로는 내가 유 닥터를 너로 착각했다고 하더라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자기를 방으로 끌고 갔다고...”“나는 술에 취해본 적이 없어서 술 취한 후 행동이 어떤지 몰라. 그런데 다음 날 출근했을 때 설민희 씨가 내가 술에 취해 너를 끌어안고 집에 데려가겠다고 하는 영상을 보여줬어. 그래서 내가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긴 해.”온승준은 이미 이 사실을 받아들인 듯했고 그의 목소리는 감정 없이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차분했다.“유 닥터는 원래 그 일을 없었던 걸로 하려고 했대. 나한테 말할 생각도 없었는데 며칠 전에 자기가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된 거야.”“유 닥터가 그 소식을 보냈을 때 나는 병원에서 어머니 퇴원 수속을 돕고 있었어. 그때 마침 어머니가 그 메시지를 봤고 그 후 나한테 유 닥터랑 결혼하라고 하셨어...”온승준은 박지연에게 설명하는 동안,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박지연은 그가 반항하려 했을 수도 있었지만 손주를 원하는 부모님을 이기기엔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담담하게 말했다.“굳이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 우리는 이미 이혼했잖아. 결혼이든 재혼이든 그건 자유야. 게다가 나는 이미 남자 친구가 있어.”‘남자 친구’라는 말에 온승준의 표정이 잠시 흐려졌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박지연 앞에 놓았다.“이거 주고 싶었어.”박지연이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어제 악세서리 가게에서 봤던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목걸이에 박힌 다이아몬드는 하나하나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었고 조명 아래서 반짝이고 있었다.진열장에 전시된 다이아몬드 목걸이라는 건, 그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걸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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