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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5화

Penulis: 류한나
고은서의 말에 원지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핵심을 찔렀다는 것을 눈치챈 고은서는 계속 차분한 말로 설득했다.

“같이 해외로 나왔으니 같은 사건에 휘말렸다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겠어? 우리 둘을 같이 제거하면 백유미는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고 여전히 평온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을 거야. 백유미에게는 아버지가 있고 백씨 가문 산업이 있지만 너는 애꿎은 목숨 하나 날리는 거지.”

고은서가 말을 이었다.

“정말 백 보 물러나서 백유미가 너를 살려준다고 해도 너는 평생 숨어지내야 할 텐데 어머니는 어떻게 할 거야? 너도 그런 생활에 만족할 수 있겠어?”

원지훈은 사색에 잠겼다.

전에 내비치던 우월감과 경멸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고은서는 속으로 초조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여유로운 척하며 말했다.

“백유미가 곧 도착할 거야. 그러니 얼른 결정을 내려야 해.”

마침내 고개를 든 원지훈이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백유미 말을 따르지 않고도 살아남을 길이 있다고? 내가 너를 이런 곳에 데려왔는데 네가 날 용서해 줄 리가 있겠어?”

고은서가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가 나를 배신한 건 정말 화가 나. 앞으로도 널 신뢰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네가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했다는 건 이해해. 그리고 나는 뻔뻔하게 널 괴롭힐 생각은 없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큰돈을 줄게. 그 돈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가. 비록 영광스러운 귀향은 아니겠지만 풍족하고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테니 지금 상황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고은서는 이어 원지훈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고향은 너에게 익숙한 곳이고 백씨 가문과는 어쨌든 친척 관계잖아. 해성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백유미도 굳이 너희를 어떻게 하진 않을 거야.”

고은서의 말에 원지훈의 마음은 기울기 시작했다.

백유미의 잔혹함으로 보건대 고은서가 말한 일들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에 백유미를 배신한다면 죽을 길밖에 없겠지만 배신하지 않아도 좋은 날을 없을 거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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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지훈도 백유미를 증오하고 있었기에 고은서의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동의했다.“알았어. 그때는 내가 제일 먼저 나설게.”‘역시 원지훈은 믿지 못할 놈이야. 백유미가 먼 친척 누나라는 자각은 있나? 이런 생각을 품는다는 게 놀랍네. 아니지. 지금은 이럴 생각할 시간이 없어.’고은서는 속에서 올라오는 혐오감을 참으며 말했다.“시간 없어. 얼른 내 가방에 들어있는 호신용 무기 가져와 줘.”백유미가 다른 사람을 더 데리고 올지, 앞으로 어떤 계획으로 움직일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그래서 밖에 있는 몇몇 사람들을 매수했다고 해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원지훈도 곧 도착할 백유미를 두려워하며 고은서의 손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고 그녀에게 호신용 도구를 건넸다.밖으로 나가기 전 원지훈은 고은서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너도 알아서 살아남아. 상황이 안 좋으면 약속했던 건 나도 못 지켜.”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었다.고은서도 단지 원지훈을 이용해 백유미의 시간을 더 끌어보려 했을 뿐이었다.그렇게 하면 민시후가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해 사람을 데리고 그녀를 구하러 올 수 있을 것으로 믿었으니 말이다.돈으로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했던가, 돈의 힘으로 원지훈은 손쉽게 밖에 있던 사람들을 다시 매수했다.바로 그때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백유미가 도착했나 보네.’손에 묶인 밧줄은 느슨하게 풀어졌지만 고은서는 여전히 손발이 묶인 척하며 침대 한구석에서 긴장한 모습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누나, 드디어 오셨네요! 고은서도 이제 깨어났어요. 방금 들어가서 살짝 경고 줬는데 정말 입에 독침이라도 품었는지 험한 말을 서슴지 않더라고요.”원지훈은 아첨하는 듯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누나 기분 상하게 하면 언제든지 부르세요. 제가 대신 혼내줄게요!”“수고했어. 차에 먹을 것과 마실 것 준비해 놓았으니 가서 가져와. 조금 있다 너희 도움이 필요할 거야.”“고마워요, 누나.”곧 창고 문이 열리고 백유미가 하이힐을 신은 채

  • 어게인, 비긴   제647화

    백유미가 입을 열었다.“고은서, 여기서는 사람을 가축처럼 팔아버릴 수도 있다는 걸 몰랐어?”백유미는 마치 애완동물을 파는 이야기를 하듯 가볍게 말했다.“운이 좋으면 유흥가로 팔려 가겠지. 네 몸매와 얼굴로 부잣집 딸이라는 자존심만 내려놓으면 손님을 받기는 쉬울 거야. 운이 나쁘면 손발이 잘리고 신장이나 간이 적출되어 거지가 되거나 장난감 취급을 받을 수도 있겠지. 결과는 네 운명에 달렸어.”백유미의 부드러운 말투는 고은서에게 오히려 독을 품은 뱀이 주는 온기로 느껴졌다.그녀는 가식적인 백유미의 모습에 속이 울렁거리며 팔에 소름이 돋아났다.“미쳤어? 내가 무슨 일을 당하면 너라고 무사할 줄 알아?”백유미는 싸늘한 웃음을 흘리며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쇠막대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그녀는 그것을 한 단씩 늘려 고정한 뒤 고은서의 가느다란 목에 겨눴다.“고은서, 곽승재를 언급했지? 그 사람이 널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차가운 쇠막대가 피부에 닿자 고은서는 몸을 움찔했다.백유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곽승재가 소식을 들을 때쯤이면 넌 이미 팔려 가고 난 후일 거야. 설령 널 찾더라도 너는 이미 망가진 상태일 텐데 그 남자가 여전히 널 원하겠어?”고은서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곽승재가 날 원하든 말든 상관없어. 하지만 네가 이런 짓을 한 걸 알게 되면 분명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내가 뭘 했는데?”백유미는 마치 작은 강아지를 놀리듯 쇠막대로 고은서의 목을 쿡 찌르며 물었다.“나는 T 국에 사업차 온 거야. 증인도 있고 증거도 있어. 네가 무슨 일을 당했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고은서는 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그녀는 쇠막대기를 뿌리치고 백유미를 제압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백유미가 새로 데려온 두 사람이 바로 문밖에 있었고 그들은 무기도 소지한 듯해 보였다.혹시라도 백유미를 단번에 제압하지 못한다면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다행히 백유미는 아직 고은서가 반격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뜨리지는 않았다.고은서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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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끈은 혼자서 칼로 푼 것 같아요. 제가 얼른 다시 묶을게요! 이번에는 절대 풀 수 없을 거예요.”말을 마친 원지훈이 밧줄을 챙겨 고은서에게 다가가려 했다.“됐어!”백유미가 원지훈을 제지했다.“누나, 왜 그래요?”백유미는 쇠막대기를 거두며 얼굴에 음험한 미소를 떠올렸다.“챙겨온 술은 다 마셨어?”원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고마워요. 누나.”“뭔가 치밀어 오르는 충동이거나 특별한 감각은 없고?”백유미가 물었다.그 말을 들은 원지훈은 바로 백유미가 술에 최음제를 탔음을 눈치챘고 달아오르는 몸을 느꼈다.“안 그래도 조금 덥네요.”“그렇다면 뭘 기다리고 있어? 저기 해소할 만한 사람 하나 있잖아?”원지훈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물었다.“누나, 후에 데려온 두 사람 먼저 들여보낼까요? 하지만 두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은 것 같던데요.”“그 사람들은 놔두고 먼저 온 사람들만 들여보내.”백유미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30분 줄게. 죽이지만 않으면 되니까 원하는 대로 해.”원지훈은 고은서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불렀다.백유미는 원망과 경멸 섞인 시선으로 칼을 손에 쥔 채 구석에서 떨고 있는 고은서를 바라보았다.“밖에 있는 남자들은 네가 유흥가로 가기 전에 적응하는 단계라고 생각해.”고은서가 경악하며 물었다.“백유미,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아니면?”백유미의 얼굴에 서린 경멸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고은서, 어차피 곽승재랑도 많이 잤잖아. 유산까지 해본 사람이면 닳을 대로 닳은 여자잖아. 여기까지 와서 왜 성녀라도 되는 것처럼 하고 있어? 있는 대로 즐겨.”그때 밖에서 남자들이 걸어들어왔다.그들의 벨트는 이미 풀려있었고 흉한 뱃살과 속옷도 내놓고 있었다.원지훈은 밖에 있던 두 사람과 말을 나눈 후 이내 창고 문을 닫았다.“그래, 이참에 너도 잘 즐겨야지.”고은서는 작은 틈을 이용해 침대 위에 있던 낡은 수건을 재빨리 백유미의 입에 쑤셔넣었다.

  • 어게인, 비긴   제649화

    옆에서 손을 거들던 장정들도 그 모습에 자극이라도 받은 듯 백유미를 희롱하는 행렬에 끼어들었다.이내 백유미의 입에 물려있던 수건이 떨어졌지만 그녀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다른 것으로 입이 가득 차 버렸다.남자들의 음탕한 신음과 여자의 흐느낌 소리가 순식간에 창고를 채웠다.모든 일든 불과 일이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고은서는 구석에 숨어서 원지훈이 차버린 쇠막대기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떨리는 심장은 평온을 되찾을 수 없었다.몇 명의 남자들이 각 방향에서 백유미를 희롱하고 있었다.고은서는 모든 장면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내가 원지훈을 회유하지 않았더라면 저기에 누워있는 건 나였겠지.’백유미는 동정받을 처지가 아니었다.고은서는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비록 돈으로 매수했다고는 하나 약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시선을 그녀에게 돌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또한 밖에 백유미가 데려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뭔가 이상함이라도 눈치채고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고은서는 자신의 안전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고은서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백유미의 핸드폰을 켜려고 했지만 땅에 부딪히며 떨어질 때 전원이 나가버렸다.그녀는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겨우 핸드폰을 켤 수 있었지만 비밀번호에 막혀 뭔가를 할 수가 없었다.고은서는 백유미의 생일, 곽승재의 생일을 입력했지만 비밀번호는 맞지 않았다.절정에 다다르고 있는 남자들이었기에 고은서는 소리를 내어 그들의 시선을 끌 수조차 없었고 백유미에게 비밀번호를 물을 수조차 없었다.고은서는 긴급버튼을 눌렀지만 백유미는 긴급 연락망을 따로 작성하지 않은 상태였고 국내의 비상 번호는 해외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어떡하지?’고은서가 원지훈을 불러 도박하려고 할 때 백유미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핸드폰에는 알파벳 C만 떠 있을 뿐이었다.잠시 생각한 고은서가 전화를 받았지만 상대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고은서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핸드폰을 움켜쥐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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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칠게 다가오는 두 남자의 모습에 고은서는 놀라서 옆으로 몇 걸음 피했다.벽 끝에 닿은 그녀에게 더 이상 피할 곳은 없었다.고은서는 맞더라도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었다.남자들이 경찰봉을 휘두르는 순간 고은서는 눈을 꼭 감고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남은 방어용 스프레이를 그들에게 향해 필사적으로 뿌렸다.“악!”“멈춰!”거의 동시에 두 남자의 비명이 들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곽승재의 목소리였다.비록 경찰봉은 빗나갔지만 여전히 어깨를 맞은 고은서는 고통스럽게 눈을 떴다.문 앞에는 아니나 다를까 곽승재가 서 있었다.정장을 입고 급히 어디서 달려온 듯한 모습을 한 곽승재의 얼굴에는 급박함이 드러났다.그의 곁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몇 명의 근육질 남자들과 몇 명의 현지 경찰들이 함께 있었다.경찰들이 오자 고은서를 공격했던 두 남자는 눈을 가리며 피하기에 바빴고 백유미에게 올라타 있던 남자들도 상황을 눈치채고 일어나 무기를 집어 들며 반격하려고 했다.“은서야!”곽승재는 고은서가 다친 걸 보고 급히 그녀에게 달려갔다.그때 백유미는 누구의 옷가지에서 칼을 빼낸 건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자기 가슴을 향해 찌르려고 했다.“멈춰!”곽승재의 머릿속에 갑자기 익숙한 장면들이 스치며 강한 불안과 혼란이 밀려왔다.그는 몇 걸음 달려가 칼을 걷어찼다.팅하는 소리와 함께 백유미의 손목에서 힘이 빠지며 칼이 떨어졌다.백유미가 처량하게 울부짖으며 외쳤다.“왜 막았어! 왜! 죽게 놔두지 왜 막은 거야! 승재야...”백유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몸은 온통 멍 자국과 붉은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여기저기 흩어진 채 몸은 사정없이 떨고 있었다.곽승재도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백유미가 자살하려 한 순간 곽승재는 강한 공포감을 느꼈다.마치 이전에 누군가가 그 앞에서 자살하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지금 이 상황을 막지 않으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잃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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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성진은 곽승재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너희 나라 사람들 말은 믿을 수 없잖아. 내가 이 여자를 놓아주면 너희는 바로 나를 잡으려고 할 거야. 오늘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이 여자를 방패로 삼아야겠어.”곽승재는 재빨리 답했다.“그럼 나랑 바꿔. 내가 인질이 될게.”계성진은 비웃으며 말했다.“넌 키도 키고 보니까 몸도 좋더라. 이 여자 대신 널 쓸 필요는 없지. 내가 멍청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막지 않겠다. 밖에 있는 차 아무거나 타고 가. 은서를 다치게 하지만 않는다면 놔주겠다.”곽승재가 이내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말을 마친 곽승재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러서라고 손짓하며 계성진과 그의 동료들이 지나갈 길을 열어주었다.계성진은 고은서를 끌고 천천히 창고 밖까지 나갔다.경찰들이 총을 들고 있었지만 계성진이 인질을 잡고 있어 누구도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목이 꽉 조였던 고은서는 숨쉬기가 힘들었지만 머리에는 여전히 총이 겨눠져 있었다.오늘 하루 너무 많은 공포를 겪은 탓인지 고은서는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그녀는 질식사가 더 괴로운지 아니면 총알에 의해 생을 마감하는 게 더 괴로운지 생각하고 있었다.이내 계성진은 고은서를 데리고 차 앞까지 왔다.“악! 악! 아악!”그때 창고 안에서 백유미의 비명이 들렸다.무언가 끔찍한 일이라도 일어난 것인지 그녀의 비명이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곽승재는 미간을 찌푸릴 뿐 안쪽 상황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오로지 계성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외곽에 배치되어 있던 사람들은 곽승재가 데려온 사람들에 의해 모두 제압당했다.상황을 눈치챈 계성진의 얼굴에는 살기가 더 짙게 피어올랐다.그는 고은서의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고 그녀의 턱을 쥐고 강제로 삼키게 했다. 그러면서 옆의 동료에게 차 문을 열라고 명하며 고은서를 차에 밀어 넣으려고 했다.“고은서!”그때 앞쪽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바로 고은서가 기다리던 민시후였다.그는 지친 모습으로 뒤에 총을 든 현지 경찰들을 대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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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유일 투자은행 개업식에서 여재훈 씨가 테이프 커팅에 참석했었잖아. 그때 외할아버지와 삼촌도 있었는데 서로 아는 눈치가 아니었어.”고은서는 말을 이어갔다.“당신도 우리 삼촌을 알잖아. 조금이라도 연줄이 될 만한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지. 여재훈 씨와 단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었다면 당장 달려가서 인사하고 관계를 맺으려고 했을 거야.”사실 그날 삼촌은 여재훈과 안면을 트려고 했지만, 여재훈 주변에 중요 인물들이 너무 많아 접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외할아버지가 말리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여시은이 오직 당신 때문에 나를 저격하는 거라고 생각해.”“당신들 둘이 Y국에서 만난 적 있잖아. 여시은은 그때 당신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야.”고은서의 분석이 정확할 수도 있다.곽승재는 이전에 곽현수에게 왜 백유미를 귀국시켜 그와 고은서의 결혼 생활을 망쳤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그때 곽현수는 고씨 가문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여시은이 적합한 상대라고 말했었다.곽현수는 단지 할머니 때문에, 그리고 여씨 가문이 입방아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아서 이혼을 강요하지 않았을 뿐이다.여시은도 Y국의 파티에서 만난 두 집안 어른들이 둘을 만나게 하려 했고, 그녀도 그와의 정략결혼에 긍정적인 태도였다고 인정한 바 있다.고은서의 분석이 맞았지만 곽승재는 마음이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다.그녀의 말투가 너무나 차분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말하는 것처럼.곽승재는 고은서의 태도에서 자신을 향한 감정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가슴 속에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입을 열려는 순간, 회의실 방향에서 여시은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곽승재는 일이 있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 사이 눈앞까지 다가온 여시은이 배려심 있게 말했다.“곽 대표님, 일이 있으면 먼저 처리하세요. 10분 쉬고 회의를 계속한다고 전할게요.”여시은은 말하면서 생수 한 병을 곽승재에게 건넸다.곽승재는 거절의 뜻으로 고개를 저

  • 어게인, 비긴   제1086화

    “외할아버지, 숙모 말로는 엄마가 북성에 있을 때 가슴 아픈 연애사가 있었던 것 같대요. 제 생부는 아닐 거라고 하는데, 외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고은서는 돌직구를 날렸다.“그럴 리 없어. 네 엄마는 활발하고 낭만적인 성격이었지만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어. 쉽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한번 주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어.”고준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점에서는 네가 엄마를 똑 닮았어. 그래서 그때 곽승재와의 결혼을 허락했던 건데...”‘왜 갑자기 내 얘기로 넘어간 거지?’“북성에 연인이 없었거나, 있었다면 제 생부란 말씀인가요?”고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생부일 가능성이 낮아. 북성에서 돌아왔을 때 다른 곳에서 돌아왔을 때와 별다른 정서 변화가 없었거든.”고준석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엄마가 유부남과 엮였을 리 없어. 송민준 부모의 이혼이 엄마와 상관없을 거야.’“오히려 해외에 머물던 어느 날 전화가 와서 깜짝선물을 준비했다며 신난 목소리로 말한 적이 있어.”말을 이어가던 고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연애하는 줄 알고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될 줄은...”“은서야, 네 엄마가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네 생부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알아.”고준석은 외손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때 네 엄마는 치료가 안 되는 불치병을 앓은 것도 아니었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너무 지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지...”목이 멘 듯한 외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은서도 코끝이 찡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노인의 아픔을 다시 건드린 자신이 미웠다.고은서는 고준석의 손을 꼭 잡았다.“외할아버지,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엄마는 외할아버지같이 이해심이 넘치는 분을 아버지로 두어 너무 행복했을 거예요.”하지만 고준석은 더 슬퍼 보였다.“가끔은 내가 너무 자유를 준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도 있어. 조금 구속했으면 사랑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을 일도 없지 않았을까?”

  • 어게인, 비긴   제1085화

    고은서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엄마가 미혼모 신분으로 나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북성에 첫사랑까지 있었다고? 이렇게 복잡한 연애사가 있었다니.’“내가 그냥 제멋대로 추측한 거야. 연인 관계가 아니라 형님 마음을 아프게 한 친구일 수도 있지.”단은숙은 가방을 손에 들고 고은서에게 주의를 주었다.“이 얘기를 외할아버지나 삼촌한테 절대 하지 마. 내가 또 쓸데없는 소리 했다고 나무랄 거야.”외할아버지는 고은서의 엄마를 각별히 아꼈다. 미혼모가 됐어도 한 마디 비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슴 아파하며 그녀의 과거를 캐묻지 않았다.외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집은 따뜻한 피난처였고, 엄마는 그 안에서 조용히 상처를 치유했다. 말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털어놓을 것이고, 입을 다물고 있다면 아픈 기억일 테니 가족들이 상처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고은서의 엄마는 조향사로서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MQ의 베스트셀러 향수가 바로 그녀의 작품이었고, 이는 MQ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래서 삼촌 부부도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니 주변 사람들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은서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없는 것이 큰 결핍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씨 가문을 노리는 세력이 나타나서 진상을 파헤쳐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면, 평생 엄마의 과거를 캐지 않았을 것이다.단은숙은 가방을 부인들 단톡방에서 자랑하기 위해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고은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엄마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엄마는 북성에서 무슨 일을 겪었을까? 정말 첫사랑이 있을까? 혹시 송씨 집안 사람?’문득 송민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송민준과 송민아는 이복남매였다.‘그렇다면 송민준의 친모가 아버지와 이혼하셨다는 건데, 설마 엄마가 두 분 사이에 끼어든 건 아니겠지?’이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고은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만약 송민준이 정말 C선생이라면, 그가 고씨 가문을 증오하는 이유는 충분하다.하지만 고은서는 엄마

  • 어게인, 비긴   제1084화

    “네 엄마는 아는 사람이 많지만 송씨 집안 사람과 안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고준석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은서야, 왜 갑자기 송씨 집안 사람을 아는지 묻는 거야?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아직 모든 게 오리무중이라 고은서는 외할아버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제가 그 집안 따님이랑 친한 친구이고 아드님과도 아는 사이라 인연이 있는 것 같아서 혹시 어른끼리 아는 사이가 아닌지 여쭤본 거예요.”“집안 어른까지 알아보면서 결혼 생각이 없다고?”단은숙이 다시 흥분했다.“은서야, 솔직히 말해봐. 그 송민준이라는 청년이 너를 좋아하지? 너를 쫓아다니지?”고은서는 황당해하며 부인했다.“아니에요. 절대 그럴 일이 없어요. 저와 송민준은 그냥 친구예요. 그리고 제가 만약 결혼할 마음이 생기면 반드시 숙모께 첫 번째로 말씀드릴게요.”“여보, 자꾸 결혼 얘기로 애를 못살게 굴지 마. 우리 은서는 능력도 뛰어난데 시집가지 않아도 괜찮아.”고국성이 뜻밖에 그녀 편을 들어주었다. 영악하고 연줄을 대기 좋아하는 삼촌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더 놀라운 것은, 숙모가 화내거나 반박하지 않고 그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것이다.“당장 결혼하라고 닦달한 것도 아니잖아요. 곽승재와 비슷한 조건의 남자가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죠...”“괜찮아요. 숙모도 저를 걱정해서 그러시는 거죠.”고은서는 적당히 무마한 후 넉살스럽게 단은숙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숙모, 제가 최근에 G브랜드 핸드백을 샀는데 디자인이 예뻐요. 한번 보실래요? 마음에 드시면 드릴게요.”이렇게 좋은 일을 마다할 리 없는 단은숙은 급히 일어섰다.“아이고, 은서가 숙모 생각도 해주고! 은혜 그 계집애보다 백배 낫네.”“엄마, 다 들려!”멀지 않은 곳에 있던 고은혜가 기분 상한 듯 소리쳤다.“들리든 말든. 내가 틀린 말 했나?”단은숙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은서와 함께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고은서는 차에서 포장

  • 어게인, 비긴   제1083화

    고준석과 고국성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해성의 곽씨 일가, 북성의 송씨 가문, 민씨 가문은 모두 명문가였다.“당연히 알지.”남편과 시아버지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단은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송씨 집안의 가주가 훈훈한 외모를 가진, 유명한 독신남이라는 것도 알아.”“은서야, 송씨 가문은 왜 물어?”단은숙이 갑자기 소리 질렀다.“너 설마 송씨 가문에 시집가려고?”“맞네! 송씨 가문이 해성에 지사를 세웠다더니 너와 사업 거래가 있었구나.”단은숙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 집안 아드님이 우리 은서 얼굴을 보고 첫눈에 반한 게 틀림없어.”“...”그녀가 한 마디 물었을 뿐인데, 숙모는 기관총 쏘듯 수십 마디를 내뱉었다. ‘첫눈에 반했다’, ‘결혼한다’, 이런 말까지 나오니 고은서는 어느 것부터 반박해야 할지 난감했다.“바쁜 애가 언제 연애할 시간이 있겠어? 넘겨짚지 말고 은서 말을 들어보자꾸나.”단은숙은 화내지 않고 고은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정확한 소식을 기다렸다.명문가와의 혼인, 이에 대한 숙모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숙모, 너무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어떻게 아무 남자나 저를 좋아하고 저와 결혼하려고 하겠어요? 저는 그저 우리가 과거에 송씨 가문과 무슨 거래가 없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이 말을 듣고 순식간에 흥미를 잃은 단은숙은 모른다고 했다.고준석과 고국성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고씨 가문은 줄곧 북성에 있었던 송씨 가문과 거래할 기회가 없었다.“사업 거래도 없었어요? 송씨 가문에서 향료와 관련된 사업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고은서는 꼬치꼬치 캐물었다.“아니면 두 분이 사업차 북성에 갔다가 송씨 가문 사람과 마주친 적도 없으세요?”고국성이 입을 열었다.“송씨 가문은 줄곧 부동산 사업을 해왔고 송민준이 개척한 새로운 사업도 향료와는 무관한데, 우리와 무슨 사업 거래가 있었겠어?”고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예상했던 결과였다.‘하지만 두 가문이 아예 모르는 사이

  • 어게인, 비긴   제1082화

    건전복 상자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던 단은숙이 고은서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은서 왔어?”그녀가 고국성의 일을 도와준 뒤로 단은숙은 그녀를 훨씬 살갑게 대했다. 얼마나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를 존중하고 예의를 차리기 시작했다.단은숙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은서야, 거기 서서 뭐 해? 얼른 외할아버지 곁으로 와.”고준석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고은서는 미소 띤 얼굴로 모두에게 인사하면서 고준석 곁으로 갔다.아내의 부름을 받은 고국성은 식재료를 손질하러 주방에 갔고, 고은서는 외할아버지 곁에 앉았다.“은서야, 너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요즘 밥은 잘 챙겨 먹니?”외할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일이 바빠도 쉴 때는 제대로 쉬어야지.”“할아버지 너무 해요.”고은혜가 입을 삐죽거리며 끼어들었다.“저한테는 살이 찐 게 아니냐고 하시더니 언니한테는 살이 빠졌다고 하시고. 언니만 일이 바쁜 게 아니라 저도 바쁘거든요.”고준석이 자애롭게 웃으며 그녀를 놀렸다.“일이 바쁜지는 모르겠지만, 군턱이 진 것을 보니 끼니는 굶지 않은 것 같구나.”“할아버지, 저 군턱이 지지 않았어요.”오기가 생긴 고은혜는 증명해 보이려고 목을 쭉 빼 들었다.“보세요. 전혀 안... 콜록!”목을 너무 세게 빼든 탓에 말이 끝나기 전에 사레가 들렸다.그녀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연거푸 기침했다. 유성준이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물과 휴지를 건넸다.“회사에서 센 척하더니 집에서도 이러네.”“콜록콜록! 제가 언제 센 척했다고 그래요? 저는 그런 적이 없어요. 콜록!”고은혜는 기침하면서도 발끈했다.이 정겨운 모습을 보고, 고은서는 문득 유성준과 고은혜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은 부드럽고 세심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덜렁대는 성격이다.다만 숙모 단은숙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고은혜가 명문가에 시집가 상류층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그녀였다.유성준도 집안이나 능력이 빠지지 않았지만,

  • 어게인, 비긴   제1081화

    고은서가 이미 생각을 정했다는 것을 확인한 곽승재는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고 단지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할 말을 다 한 고은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늦었는데 일찍 들어가 쉬어.”곽승재는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억지로 머물 핑계를 찾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때마침 영상전화가 걸려 오자, 고은서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영상전화를 받았다.문 쪽으로 걸어가던 곽승재가 무심결에 돌아보니, 그녀는 어느새 소파에 벌러덩 누워 한쪽 발을 다른쪽 무릎에 올리고 흔들거리고 있었다. 진지하고 엄숙했던 조금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이었다.곽승재는 이혼하기 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한번은 그가 외할아버지 댁에 같이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은서가 삐진 적이 있었다. 그녀가 며칠째 외할아버지 댁에 머물며 집에 돌아오지 않자, 이 일을 알게 된 할머니가 그를 고씨 가문으로 보냈다.그때의 고은서도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편안한 실내복 차림으로 소파에 엎드려 두 발을 흔들거리며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맨발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곽승재는 그 순간 모든 불쾌감이 사라졌다. 원래 불만 가득했던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은서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도우미가 말을 걸어서야 정신을 차렸다.다시 모습을 드러낸 고은서는 흠 잡을 데 없이 단정한 차림에 화장도 완벽하게 끝낸 상태였다.그와 함께 마구 뛰던 곽승재의 심장도 평온을 찾았다. 고은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서 잠깐 넋을 잃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것이 실은 설렘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끝내 깨닫지 못했다...고은서와 이야기하던 중, 고은혜가 문 쪽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언니, 저기 혹시... 형부?”고은서가 몸을 뒤로 젖힌 채,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는 여전히 문어귀에 서 있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잘생긴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언뜻 보였다.‘갑자기 왜 저런 표정이지?’고은서가 자세히 보려고 일어났을 때는 그가

  • 어게인, 비긴   제1080화

    “당시 시은이가 부상당한 쿠아를 쫓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에 대한 기억이 전부 시은이가 쿠아를 구해 준 그 따뜻한 장면으로만 남아있어. 시은이가 왜 거기에 있었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고은서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곽승재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고은서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두려워하지 마, 자책하지도 마.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 거야.”곽승재가 부드럽게 위로했다. “내가 민기 씨에게 송민준과 시은 씨사이의 관계를 조사해 보라고 시켰어.”고은서는 살며시 손을 빼냈다. “그럼 부탁할게.”곽승재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시은이가 당신과 결혼을 하려 하기에 날 싫어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 하지만 송민준은 왜 나를 미워할까?” 고은서가 의문을 제기했다.비록 그녀가 예전에 민시후와 가까웠다고 해도 고씨 가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게다가 유미 씨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귀국한 것은 곽 회장님의 뜻뿐만 아니라 이 C 선생의 지시도 있었다고 했다. 그 시절 자신은 민시후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었다.‘고씨 가문이 송민준에게 크게 잘못한 거라도 있나?’고은서는 머리가 터질 정도로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곽승재도 이 일의 전후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우리의 추측일 뿐이야. 증거 없이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 서두르지 마.”고은서는 급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 숨은 검은 손을 잡아내지 못하면 그녀와 고씨 가문은 영원히 불안에 떨어야 했다.전생의 비극적 결말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범인을 색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곽승재는 고은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MQ에 관련된 일은 내가 사람을 시켜 주의 깊게 보고 있어. 무슨 움직임이 생기면 바로 나에게 보고할 거야.”고은서는 곽승재가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곽승재를 바라보았다.거실의 하얀 색 조명 아래서 그의 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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