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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2화

Author: 류한나
원지훈이 난감해하며 말했다.

“백씨 기업 책임자도 누나랑 같은 생각이에요. 그런데 상대방 측에서 계약서를 수정하지 않으면 위약금을 내더라도 계약을 실행하지 않겠다면서 아무튼 손해를 보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면서 막무가내로 나오고 있다니까요.”

고은서는 이 계약을 이대로 망치는 걸 원치 않았다. 계약이 성사되어야만 백씨 기업을 제대로 무너뜨릴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상대방에서는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원지훈은 자신도 모른다면서 요즘 이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또 행여나 백유미한테 들키기라도 할까봐 부사장을 함부로 설득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금 유일한 방법은 직접 상대방을 찾아가서 이러는 원인을 캐내는 거예요. 그래야 일이 쉽게 해결될 수 있어요.”

원지훈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틀린 소리는 아니었지만 고은서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더 고려해보고 이틀 후에 정확한 답을 줄게.”

“저도 고민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에요. 상대방이 너무 강하게 나와서 저도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요. 게다가 중요한 건 더 끌다가 백유미한테 들킬까 봐 걱정이에요.”

원지훈이 조급해하며 말했다.

“저 백씨 가문을 빨리 망가뜨리고 싶어요. 그런데 이번 기회를 잃게 되면 또 다른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알겠어.”

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는 전화를 끊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정말 이 일 때문에 이상하게 군 거라고?’

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민시후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민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

“고은서, 동물원 수속이 거의 다 완성되었는데 지금 시간 있어? 네 사인이 필요한데 내가 데리러 갈게.”

이 일에 관해 고은서는 이미 대책을 생각해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동물원을 나 혼자 경영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 그래서 안전하게 ZY 그룹 명의로 하는 건 어때?”

고은서가 진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럼 내가 부담 가질 필요도 없잖아. 행여나 망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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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633화

    “고은서, 이게 그렇게 난감해할 문제야?”고은서가 한참 동안 대답이 없자 민시후가 짜증을 내며 물었다.‘비록 어이없는 요구이기는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선물 가격에는 요구가 있어?”고은서가 다시 확인했다.‘너무 비싸면 주기 싫은데.’“없어. 성의 없는 선물만 아니면 돼. 고은서, 너도 고씨 집안 아가씨잖아. 왜 이렇게 인색하게 구는 거야?”민시후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인색한 게 뭐가 어때서? 전생에 정신병원에 갇혔을 때 손에 돈만 있었으면 그렇게 하찮게 남은 인생을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그녀는 이번 생만큼은 돈을 아끼며 살 생각이었다.그런데 이런 말을 민시후한테 함부로 해서는 안 되었다.“알겠어. 내가 진짜 진심을 다해서 널 위한 선물을 준비할게.”“당연히 그래야지.”민시후가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답했다.고은서는 이 틈을 타 원지훈에 관한 얘기를 꺼내면서 자신의 의문스러움을 말했다.그녀가 선물을 준비하겠다고 약속해서일까, 민시후는 아주 흔쾌히 돕겠다고 나섰다.“걱정하지마. 내가 조사해볼게.”고은서는 마음이 한결 놓이는 것 같았다.저녁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박지연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고은서, 너 민시후한테 남다른 감정 품고 있는 것 같은데.”“남다른 감정?”“문제가 생기면 민시후한테 다 얘기해주잖아. 민시후를 엄청 신임하고 있는 것 같은데.”“사업 파트너로서 서로 신임하는 게 정상이 아니야?”고은서는 약간 어리둥절했다.“곽승재를 이렇게 신임해 본 적 있어? 이 일을 곽승재한테도 알려줄 거야?”“아니!”고은서가 단호하게 부인하며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 곽승재랑 백유미 사이 관계만 생각해도 이런 일을 곽승재한테 얘기할 리가 없잖아. 전에 여러 번 내 편을 들어줬다고 해도 백유미는 여전히 잘살고 있잖아.’“이거 봐. 이렇게 중요한 일을 곽승재한테는 안 알려주면서 민시후 하나만은 엄청 굳게 믿고 있잖아. 이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도 있다는 표현이지.”박

  • 어게인, 비긴   제634화

    “은서야, 너 곽승재랑 결혼하고 이혼한 것도 다 네 집념 때문에 그런 거잖아. 따지고 보면 너도 연애 경험이 전혀 없는 모쏠과 마찬가지야. 진짜 사랑인지 무엇인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잖아.”“민시후와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네 편을 들어주고 널 관심해주는 걸 봐서는 연애 상대로 꽤 괜찮을 것 같은데. 만약 곽승재한테 진짜 미련 남지 않았다면 민시후한테 기회를 한 번 주면서 너도 진정한 연애를 시도해보는 건 어때?”박지연이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그러나 고은서는 전혀 새겨듣지 않았다.‘민시후처럼 종일 껄렁대며 기분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어떻게 믿어. 날 좋아한다고 해도 그저 날 놀리는 게 재밌어서 생긴 일시적인 감정이겠지.’고은서는 민시후한테 놀림 받기 싫었다.“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해. 어제 온승준이 일자리를 너희 병원으로 옮겼다며? 어떻게 된 거야?”고은서가 화제를 바꾸었다.박지연이 다니고 있는 병원은 사립병원이었다. 대우가 나쁜 편은 아니었으나 온승준이 원래 다니던 대학병원과 비하면 차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온승준이 다니던 대학병원은 해성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 많은 환자가 소문 듣고 찾아갈 정도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병원이었다.의사와 간호사들도 그 대학병원에 취직하지 못해 머리를 쥐어짜는 와중에 온승준이 갑자기 이직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도 우연하게 병원 동료들이 얘기하는 걸 들은 거야. 진짜 우리 병원으로 이직했는지 안 했는지는 귀찮아서 알아보지도 않았어.”박지연이 덤덤하게 답했다.“이혼한 게 후회되어서 너랑 같은 병원에 다니면서 네 마음을 다시 돌리려는 거 아니야?”“설령 진짜 우리 병원으로 이직했다고 해도 병원 측에서 높은 연봉을 내걸면서 데려오려고 한 거겠지.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이유가 있겠지. 내가 뭐라고 일을 자기 생명처럼 아끼는 사람을 이직하게 만들어.”박지연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자신의 분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온승준은 직장 일 외의 모든 일에 관심이 없었다.사랑이든 집안

  • 어게인, 비긴   제635화

    조수연은 자신이 온승준에 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어릴 적부터 고집이 셌는지라 누군가를 위해 자존심을 꺾는 일은 절대 없었다.그 누군갈 위해 이런 이성적이지 못한 결정을 내린 적도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지금까지도 온승준이 박지연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혜린과 잘 지내보라는 자신의 말에 화가 나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박지연과 같이 살면서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생겼겠어. 나는 그것도 모르고 금방 해탈한 애한테 새 여자를 만나보라고 강요하기만 하고. 얼마나 싫었겠어. 다 내 탓이야.’“엄마가 다신 다른 여자 만나보라고 강요하지 않을게. 혜린이랑도 거리 두면서 너무 가까이 지내지 않을게.”조수연이 온승준을 계속 달랬다.“승준아, 병원에서 널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 너도 알고 있잖아. 너만 원한다면 꼭 다시 받아줄 거야. 그러니까 원래 병원으로 돌아가.”그러나 온승준은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어머니, 아까도 말했지만 저 안 돌아갈 거예요.”“그 여자가 있는 병원에 가기만 해 봐. 이젠 너 같은 아들 없는 셈 치고 살 테니까!”조수연은 더는 화를 참지 못하고 호통쳤다.“어머니, 아버지랑 돌아가서 일찍 쉬세요. 그리고 제 결정은 변하지 않아요.”온승준이 미간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이런 불효자식 같으니라고!”온범준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온승준을 때리려고 할 때 조수연이 그를 막았다.“승준아, 지금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도록 해.”온범준과 조수연이 떠난 후 온승준은 서재로 갔다.그는 책상 옆에 있는 솔로라는 글자가 새겨진 강아지 인형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그 인형은 금방 결혼했을 때 박지연이 산 인형이었다. 당시 그녀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그의 어깨에 기대어 그에게 애교를 부렸다.“여보,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꼭 행복하게 살라고 당부하셨는데 여보랑 결혼한 이후로 이미 너무 행복한걸.”박지연은 그의 어깨에 기댄 채 그의 귓가에 가까이 대고

  • 어게인, 비긴   제636화

    이튿날, 온승준은 정식 직원이라는 신분으로 이레 병원에 출근했다.서로 알고 지내던 교수 한 명이 그를 데리고 병원을 둘러보면서 병원 직원들에게 그를 소개해줬다.입원처로 가보고 싶다는 온승준의 말에 교수는 또 그를 데리고 외과 입원처로 향했다.외과 간호사실을 지나갈 때 마침 다른 간호사들과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 박지연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그와 눈이 마주친 박지연은 멈칫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옆에 있던 간호사와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갔다.이를 본 온승준은 강렬한 실망감에 휩싸이면서 발이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승준 씨, 왜 그래요?”“아무 일도 아니에요. 가시죠.”교수의 물음에 온승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수간호사님, 방금 새로 오신 의사분 너무 멋있지 않아요? 그런데 수간호사님을 빤히 바라보던 것 같던데, 혹시 아는 사이세요?”간호사 한 명이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모르는 분이에요.”박지연은 아주 덤덤하게 답했다....점심시간.온승준은 교수의 밥약을 사양하고 병원 구내식당으로 갔다.그는 점심밥을 챙기고 아주 눈에 띄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업계에서 꽤 이름 있었는지라 그를 알아보고 놀라 하며 인사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온승준은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지만 애써 예의 바르게 같이 인사했다.얼마나 지났을까, 온승준은 그제야 동료들과 수다 떨면서 구내식당에 들어서는 박지연을 보았다.“지연아.”온승준이 먼저 주동적으로 인사했다.그의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박지연을 바라보았다.“방금 들어온 간호사랑 아는 사이예요?”누군가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러나 온승준은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수간호사님, 여기 같이 앉으실래요?”또 다른 누군가가 박지연을 향해 인사하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동료들과 함께 먹을게요.”박지연은 웃으면서 사양하고는 함께 온 간호사들과 배식 창구로 걸어갔다.온승준은 원래부터 인간관계 처리에 능하지 않았고 철면피하게 누군가에게 질척거리는

  • 어게인, 비긴   제637화

    박지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온승준도 이내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이혼하기 전에는 박지연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이미 이혼한 마당에 무슨 자격으로 묻는단 말인가.“미안. 같이 밥 안 먹은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진심이야. 그러니까 밥 한 끼쯤은 괜찮지 않아?”온승준이 사과하면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그러나 그와 달리 박지연은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거절했다.“당신 부모님이 알게 되면 또 나를 찾아와서 난동을 부릴지도 몰라. 그리고 우리 이미 이혼한 사이야. 난 더는 당신이랑 엮이기 싫어.”“지연아...”“홧김에 하는 말이 아니야. 병원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사이었는지 몰라. 그러니까 오늘 점심때 같은 일이 다신 일어나지 않게 주의해줬으면 좋겠어. 예전처럼 그저 모르는 사람인 척하고 지나가면 돼. 오늘처럼 귀찮게 굴지 말고.”박지연은 말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온승준은 폰을 든 채 한참 동안 선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전에는 일부러 박지연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당시 마침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고 또 세미나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어서 별것 아닌 일로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 먼저 볼일을 보러 갔던 거였다.‘다른 사람한테 거절당하고 무시당한 느낌이 이런 거구나.’박지연은 오늘 육현석과 함께 저녁밥을 먹기로 약속했다.그녀가 이혼한 후로 육현석은 오히려 꾸준히 사업에 몰두하면서 그녀 앞에 전처럼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나 매일 그녀한테 계약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곤 했다.하지만 그녀는 종일 껄렁대며 친구들이랑 놀러만 다니던 부잣집 도련님이 왜 갑자기 사업에 이렇게 몰두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 예전부터 사업에 엄청 관심이 많았거든! 못 믿겠으면 승재 형한테 물어봐. 전에 내가 직접 도맡아서 계획서를 작성했던 LH 그룹 프로젝트도 있어.”반면 육현석은 그녀의 물음에 항상 이런 신뢰도가 일도 없는 답을 하곤 했다.그렇다고 박지연이 곽승재를 직접 찾아가 확

  • 어게인, 비긴   제638화

    온승준은 점점 멀어지는 육현석의 차를 한참 바라보다가 자신의 차에 올랐다.그는 종래로 감정에 목을 매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혼하고서도 평소처럼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얼마 전에 조수연이 했던 좋아해서 결혼했겠니라는 말을 들은 후로 시도 때도 없이 박지연이 생각났다.보고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아무리 학술 연구에 몰두한다고 해도 요동치는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그는 이레 병원으로 이직만 하면 박지연과 가까이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현실은 박지연이 종일 그를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는 것이었다.심지어 그와 통화할 때도 낯선 사람과 통화하듯이 아주 무덤덤해 보였다.그녀와 통화하면 조금이나마 진정되면서 답답하던 마음이 나아질까 했는데 통화하고 나니 더 심란해졌다....고은서는 민시후의 선물을 사주기 위해 해성에 있는 한 쇼핑몰로 갔다.어제 약속한 일을 오늘 아침부터 준비되었냐고 조르는 바람에 없던 일로 치려고 해도 칠 수가 없었다.그러나 한 바퀴를 빙 둘러보아도 민시후에게 무슨 선물이 어울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예전에 곽승재 선물을 고를 때는 항상 제일 비싸고 또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물건들로 선택했다. 예를 들면 가죽 벨트, 넥타이, 커프스단추 등을 선물했었는데 그가 싫다고 해도 그녀는 전혀 지칠 줄 모르고 계속 선물했다.하지만 민시후한테 똑같은 선물을 줄 수는 없는 법.고은서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쇼핑몰 맞은 편에 있는 력셔리 골동품 가게로 들어갔다.“손님,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실까요?”젊은 직원 한 명이 다가와서 물었다.“친구한테 줄 선물을 찾고 있는데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남자예요.”“친구분 나이랑 직업이 어떻게 되나요? 어떤 성격의 소유자신가요?”직원은 자신의 물음에 어리둥절해 하는 고은서를 보면서 설명을 보탰다.“친구분 성향에 맞춰서 선물을 추천해드리려고 물어본 거예요.”“얼굴은 엄청 잘생겼고 성격이라면 아마 종일 껄렁거리며 다니는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고

  • 어게인, 비긴   제639화

    익숙한 설송향이 고은서의 코끝을 간지럽혔는데 그녀는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이 향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어제 곽씨 가문 본가에서 만난 것 외에는 두 주일 동안 곽승재는 그녀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고은서가 그가 더는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성큼성큼 가게 안으로 걸어들어왔다.“곽 대표님, 아까 볼 일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여긴 무슨 일로?”여시은이 의외라는 듯 곽승재에게 물었다.“손님, 혹시 남자친구분이세요? 드라마에서 나오는 남주보다 더 잘생기셨어요.”젊은 직원이 부러운 눈길로 여시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염주 팔찌가 손님 남자친구분과 엄청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하나 사시지 그래요?”그 말을 들은 여시은은 황급히 팔찌를 내려놓으면서 설명했다.“어우,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제 남자친구 아니에요. 저분이 좋아하는 사람은 지금 제 옆에 서 있는 이분이라고요.”직원은 그제야 곽승재가 가게에 들어서면서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고은서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곽승재의 외모에 푹 빠진 직원일지라도 이내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했다.그녀는 황급히 입을 꾹 다물었다.“곽 대표님, 은서 씨가 여기 있는 걸 보고 내리신 거죠. 그럼 저는 이만 자리 비켜주면서 쇼핑하러 가볼게요.”여시은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은서 씨, 제가 재촉하는 게 아니라 퍼퓸 완성품이 너무 기대돼요. 그러니까 빠른 시간 내에 부탁할게요.”여시은이 나가면서 말을 보태었다.“알겠어요. 조심히 가세요.”그녀가 나간 후 고은서는 가게 문 쪽에 서 있는 곽승재랑 눈이 마주쳤다.“마음에 드는 거 있어? 내가 사줄게.”곽승재가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물었다.“필요 없어.”그녀는 고개를 홱 돌리면서 직원에게 말했다.“이 팔찌 포장해주세요.”직원은 팔찌를 포장해주면서 곽승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손님, 저분한테도 하나 선물하시는 건 어때요? 진짜 어울리실 것 같은데.”직원이 참지

  • 어게인, 비긴   제640화

    고은서의 특유한 향기가 은은하게 밀려왔는데 곽승재는 그녀를 차로 강제로 안고 가고 싶은 충동을 힘겹게 참았다.그는 그녀에게 누구한테 주는 선물이기에 직접 쇼핑몰까지 와서 선택하는 거냐고 캐묻고 싶었다.‘방금전 반응을 보아서는 고국성 생일조차 까먹고 있었던 것 같은데, 고국성을 위해 준비한 선물은 아닐 테고. 그런데 왜 저렇게 쉽게 다른 사람한테 선물을 사주는 거야. 정장을 선물한 것도 모자라 이젠 남자 팔찌까지 선물하려는 거야? 아까 직원이 분명히 나한테도 어울린다고 했는데 왜 나한테는 안 사주는 거야?’...민시후는 고은서의 팔찌를 받자마자 팔에 차고 이리저리 보면서 좋아했다.“보는 눈이 좀 있네.”그의 하얗고 가늘지만 힘 있어 보이는 팔목에 확실히 잘 어울렸다.“직원이 추천해준 거야. 내가 직접 고른 게 아니야.”고은서가 이실직고했다.“고은서, 넌 네가 직접 고른 거라고 거짓말이라도 좀 하면 안 되겠냐?”민시후가 불쾌해하며 말했다.“양심을 가책을 느껴서 못하겠어.”“...”민시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런 사소한 일로 깊게 따지고 싶지 않았던 그는 화제를 바꾸면서 그녀에게 원지훈에 관해 조사한 결과를 알려줬다.“요즘 매일 정상적으로 출퇴근하고 있어서 별로 수상한 점은 못 찾았어. 그런데 얼마 전에 얼굴이랑 손이 상처투성이가 될 정도로 다른 사람이랑 싸웠다고 하던데.”민시후는 백씨 가문 기업의 주주가 때린 거라고 설명을 보태었다.두 사람이 시비가 붙었는데 주주가 원래부터 원지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하필 그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낙하산이라고 욕하는 바람에 원지훈이 참지 못하고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고 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먹을 먼저 휘두른 것 치고는 도로 상대방한테 얻어맞기만 했다고 한다.백유미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백씨 가문 기업에서 쫓겨났을 것이라고 민시후가 말했다.고은서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얼마 전에 전화하면서 긴장해 했던 게 이 일 때문이었던 거야?’“한 가지 더 알려줄까? 곽현수가 최근에 주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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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088화

    “곽 대표님은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병뚜껑 열어주는 것조차 꺼릴 만큼?”여시은의 말투에는 약간의 유감과 억지로 짜낸 서운함이 섞여 있었다.곽승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시은 씨가 원하는 건 물을 마시는 결과가 아닌가요? 물을 마실 수 있으면 되지, 누가 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잖아요.”“왜 중요하지 않아요?”여시은은 눈을 깜박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저는 곽 대표님이 열어준 병의 물만 마시고 싶은데요.”노골적인 애정 공세에 곽승재는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여시은은 전혀 민망한 기색이 없이 여전히 공세를 이어갔다.“솔직히 말할게요.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집안 어른의 뜻대로 조금씩 알아가면 안 될까요?”곽승재는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우리 집안에서 할머니와 어머니는 정략결혼을 반대하세요. 아버지의 일방적인 희망 사항일 뿐이죠.”“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는 재혼 계획이 없습니다.”여시은은 여전히 달콤한 미소를 유지했다.“당장 결혼하자는 뜻은 아니에요. 어쩌면 만나다가 전혀 안 맞는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잖아요?”“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시은 씨와 맞지 않아요.”곽승재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고은서는 원래 활발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저와 결혼한 후 시들어버렸고,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방법을 다해 저한테서 도망쳤어요. 이혼한 후 그 여자는 다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됐죠. 그러니 저는 남편으로 자격 미달이에요.”“시은 씨는 여 회장님께서 애지중지하는 따님이고 조건이 우월하니 더 나은 남자를 만나셔야죠.”여시은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저는 고은서와 달라요. 고은서는 완전한 사랑을 원했지만 저는 조건이 맞는 파트너면 돼요.”“사랑이 있으면 금상첨화이고 없어도 상관없어요.”그녀는 돌직구를 날렸다.“제가 고은서보다 승재 씨에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고은서 만큼 똑똑하거나 유능하지는 않지만, 이게 남자들에게는 장

  • 어게인, 비긴   제1087화

    “아니, 유일 투자은행 개업식에서 여재훈 씨가 테이프 커팅에 참석했었잖아. 그때 외할아버지와 삼촌도 있었는데 서로 아는 눈치가 아니었어.”고은서는 말을 이어갔다.“당신도 우리 삼촌을 알잖아. 조금이라도 연줄이 될 만한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지. 여재훈 씨와 단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었다면 당장 달려가서 인사하고 관계를 맺으려고 했을 거야.”사실 그날 삼촌은 여재훈과 안면을 트려고 했지만, 여재훈 주변에 중요 인물들이 너무 많아 접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외할아버지가 말리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여시은이 오직 당신 때문에 나를 저격하는 거라고 생각해.”“당신들 둘이 Y국에서 만난 적 있잖아. 여시은은 그때 당신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야.”고은서의 분석이 정확할 수도 있다.곽승재는 이전에 곽현수에게 왜 백유미를 귀국시켜 그와 고은서의 결혼 생활을 망쳤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그때 곽현수는 고씨 가문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여시은이 적합한 상대라고 말했었다.곽현수는 단지 할머니 때문에, 그리고 여씨 가문이 입방아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아서 이혼을 강요하지 않았을 뿐이다.여시은도 Y국의 파티에서 만난 두 집안 어른들이 둘을 만나게 하려 했고, 그녀도 그와의 정략결혼에 긍정적인 태도였다고 인정한 바 있다.고은서의 분석이 맞았지만 곽승재는 마음이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다.그녀의 말투가 너무나 차분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말하는 것처럼.곽승재는 고은서의 태도에서 자신을 향한 감정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가슴 속에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입을 열려는 순간, 회의실 방향에서 여시은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곽승재는 일이 있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 사이 눈앞까지 다가온 여시은이 배려심 있게 말했다.“곽 대표님, 일이 있으면 먼저 처리하세요. 10분 쉬고 회의를 계속한다고 전할게요.”여시은은 말하면서 생수 한 병을 곽승재에게 건넸다.곽승재는 거절의 뜻으로 고개를 저

  • 어게인, 비긴   제1086화

    “외할아버지, 숙모 말로는 엄마가 북성에 있을 때 가슴 아픈 연애사가 있었던 것 같대요. 제 생부는 아닐 거라고 하는데, 외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고은서는 돌직구를 날렸다.“그럴 리 없어. 네 엄마는 활발하고 낭만적인 성격이었지만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어. 쉽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한번 주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어.”고준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점에서는 네가 엄마를 똑 닮았어. 그래서 그때 곽승재와의 결혼을 허락했던 건데...”‘왜 갑자기 내 얘기로 넘어간 거지?’“북성에 연인이 없었거나, 있었다면 제 생부란 말씀인가요?”고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생부일 가능성이 낮아. 북성에서 돌아왔을 때 다른 곳에서 돌아왔을 때와 별다른 정서 변화가 없었거든.”고준석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엄마가 유부남과 엮였을 리 없어. 송민준 부모의 이혼이 엄마와 상관없을 거야.’“오히려 해외에 머물던 어느 날 전화가 와서 깜짝선물을 준비했다며 신난 목소리로 말한 적이 있어.”말을 이어가던 고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연애하는 줄 알고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될 줄은...”“은서야, 네 엄마가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네 생부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알아.”고준석은 외손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때 네 엄마는 치료가 안 되는 불치병을 앓은 것도 아니었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너무 지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지...”목이 멘 듯한 외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은서도 코끝이 찡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노인의 아픔을 다시 건드린 자신이 미웠다.고은서는 고준석의 손을 꼭 잡았다.“외할아버지,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엄마는 외할아버지같이 이해심이 넘치는 분을 아버지로 두어 너무 행복했을 거예요.”하지만 고준석은 더 슬퍼 보였다.“가끔은 내가 너무 자유를 준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도 있어. 조금 구속했으면 사랑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을 일도 없지 않았을까?”

  • 어게인, 비긴   제1085화

    고은서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엄마가 미혼모 신분으로 나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북성에 첫사랑까지 있었다고? 이렇게 복잡한 연애사가 있었다니.’“내가 그냥 제멋대로 추측한 거야. 연인 관계가 아니라 형님 마음을 아프게 한 친구일 수도 있지.”단은숙은 가방을 손에 들고 고은서에게 주의를 주었다.“이 얘기를 외할아버지나 삼촌한테 절대 하지 마. 내가 또 쓸데없는 소리 했다고 나무랄 거야.”외할아버지는 고은서의 엄마를 각별히 아꼈다. 미혼모가 됐어도 한 마디 비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슴 아파하며 그녀의 과거를 캐묻지 않았다.외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집은 따뜻한 피난처였고, 엄마는 그 안에서 조용히 상처를 치유했다. 말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털어놓을 것이고, 입을 다물고 있다면 아픈 기억일 테니 가족들이 상처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고은서의 엄마는 조향사로서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MQ의 베스트셀러 향수가 바로 그녀의 작품이었고, 이는 MQ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래서 삼촌 부부도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니 주변 사람들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은서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없는 것이 큰 결핍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씨 가문을 노리는 세력이 나타나서 진상을 파헤쳐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면, 평생 엄마의 과거를 캐지 않았을 것이다.단은숙은 가방을 부인들 단톡방에서 자랑하기 위해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고은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엄마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엄마는 북성에서 무슨 일을 겪었을까? 정말 첫사랑이 있을까? 혹시 송씨 집안 사람?’문득 송민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송민준과 송민아는 이복남매였다.‘그렇다면 송민준의 친모가 아버지와 이혼하셨다는 건데, 설마 엄마가 두 분 사이에 끼어든 건 아니겠지?’이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고은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만약 송민준이 정말 C선생이라면, 그가 고씨 가문을 증오하는 이유는 충분하다.하지만 고은서는 엄마

  • 어게인, 비긴   제1084화

    “네 엄마는 아는 사람이 많지만 송씨 집안 사람과 안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고준석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은서야, 왜 갑자기 송씨 집안 사람을 아는지 묻는 거야?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아직 모든 게 오리무중이라 고은서는 외할아버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제가 그 집안 따님이랑 친한 친구이고 아드님과도 아는 사이라 인연이 있는 것 같아서 혹시 어른끼리 아는 사이가 아닌지 여쭤본 거예요.”“집안 어른까지 알아보면서 결혼 생각이 없다고?”단은숙이 다시 흥분했다.“은서야, 솔직히 말해봐. 그 송민준이라는 청년이 너를 좋아하지? 너를 쫓아다니지?”고은서는 황당해하며 부인했다.“아니에요. 절대 그럴 일이 없어요. 저와 송민준은 그냥 친구예요. 그리고 제가 만약 결혼할 마음이 생기면 반드시 숙모께 첫 번째로 말씀드릴게요.”“여보, 자꾸 결혼 얘기로 애를 못살게 굴지 마. 우리 은서는 능력도 뛰어난데 시집가지 않아도 괜찮아.”고국성이 뜻밖에 그녀 편을 들어주었다. 영악하고 연줄을 대기 좋아하는 삼촌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더 놀라운 것은, 숙모가 화내거나 반박하지 않고 그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것이다.“당장 결혼하라고 닦달한 것도 아니잖아요. 곽승재와 비슷한 조건의 남자가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죠...”“괜찮아요. 숙모도 저를 걱정해서 그러시는 거죠.”고은서는 적당히 무마한 후 넉살스럽게 단은숙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숙모, 제가 최근에 G브랜드 핸드백을 샀는데 디자인이 예뻐요. 한번 보실래요? 마음에 드시면 드릴게요.”이렇게 좋은 일을 마다할 리 없는 단은숙은 급히 일어섰다.“아이고, 은서가 숙모 생각도 해주고! 은혜 그 계집애보다 백배 낫네.”“엄마, 다 들려!”멀지 않은 곳에 있던 고은혜가 기분 상한 듯 소리쳤다.“들리든 말든. 내가 틀린 말 했나?”단은숙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은서와 함께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고은서는 차에서 포장

  • 어게인, 비긴   제1083화

    고준석과 고국성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해성의 곽씨 일가, 북성의 송씨 가문, 민씨 가문은 모두 명문가였다.“당연히 알지.”남편과 시아버지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단은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송씨 집안의 가주가 훈훈한 외모를 가진, 유명한 독신남이라는 것도 알아.”“은서야, 송씨 가문은 왜 물어?”단은숙이 갑자기 소리 질렀다.“너 설마 송씨 가문에 시집가려고?”“맞네! 송씨 가문이 해성에 지사를 세웠다더니 너와 사업 거래가 있었구나.”단은숙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 집안 아드님이 우리 은서 얼굴을 보고 첫눈에 반한 게 틀림없어.”“...”그녀가 한 마디 물었을 뿐인데, 숙모는 기관총 쏘듯 수십 마디를 내뱉었다. ‘첫눈에 반했다’, ‘결혼한다’, 이런 말까지 나오니 고은서는 어느 것부터 반박해야 할지 난감했다.“바쁜 애가 언제 연애할 시간이 있겠어? 넘겨짚지 말고 은서 말을 들어보자꾸나.”단은숙은 화내지 않고 고은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정확한 소식을 기다렸다.명문가와의 혼인, 이에 대한 숙모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숙모, 너무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어떻게 아무 남자나 저를 좋아하고 저와 결혼하려고 하겠어요? 저는 그저 우리가 과거에 송씨 가문과 무슨 거래가 없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이 말을 듣고 순식간에 흥미를 잃은 단은숙은 모른다고 했다.고준석과 고국성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고씨 가문은 줄곧 북성에 있었던 송씨 가문과 거래할 기회가 없었다.“사업 거래도 없었어요? 송씨 가문에서 향료와 관련된 사업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고은서는 꼬치꼬치 캐물었다.“아니면 두 분이 사업차 북성에 갔다가 송씨 가문 사람과 마주친 적도 없으세요?”고국성이 입을 열었다.“송씨 가문은 줄곧 부동산 사업을 해왔고 송민준이 개척한 새로운 사업도 향료와는 무관한데, 우리와 무슨 사업 거래가 있었겠어?”고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예상했던 결과였다.‘하지만 두 가문이 아예 모르는 사이

  • 어게인, 비긴   제1082화

    건전복 상자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던 단은숙이 고은서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은서 왔어?”그녀가 고국성의 일을 도와준 뒤로 단은숙은 그녀를 훨씬 살갑게 대했다. 얼마나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를 존중하고 예의를 차리기 시작했다.단은숙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은서야, 거기 서서 뭐 해? 얼른 외할아버지 곁으로 와.”고준석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고은서는 미소 띤 얼굴로 모두에게 인사하면서 고준석 곁으로 갔다.아내의 부름을 받은 고국성은 식재료를 손질하러 주방에 갔고, 고은서는 외할아버지 곁에 앉았다.“은서야, 너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요즘 밥은 잘 챙겨 먹니?”외할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일이 바빠도 쉴 때는 제대로 쉬어야지.”“할아버지 너무 해요.”고은혜가 입을 삐죽거리며 끼어들었다.“저한테는 살이 찐 게 아니냐고 하시더니 언니한테는 살이 빠졌다고 하시고. 언니만 일이 바쁜 게 아니라 저도 바쁘거든요.”고준석이 자애롭게 웃으며 그녀를 놀렸다.“일이 바쁜지는 모르겠지만, 군턱이 진 것을 보니 끼니는 굶지 않은 것 같구나.”“할아버지, 저 군턱이 지지 않았어요.”오기가 생긴 고은혜는 증명해 보이려고 목을 쭉 빼 들었다.“보세요. 전혀 안... 콜록!”목을 너무 세게 빼든 탓에 말이 끝나기 전에 사레가 들렸다.그녀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연거푸 기침했다. 유성준이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물과 휴지를 건넸다.“회사에서 센 척하더니 집에서도 이러네.”“콜록콜록! 제가 언제 센 척했다고 그래요? 저는 그런 적이 없어요. 콜록!”고은혜는 기침하면서도 발끈했다.이 정겨운 모습을 보고, 고은서는 문득 유성준과 고은혜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은 부드럽고 세심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덜렁대는 성격이다.다만 숙모 단은숙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고은혜가 명문가에 시집가 상류층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그녀였다.유성준도 집안이나 능력이 빠지지 않았지만,

  • 어게인, 비긴   제1081화

    고은서가 이미 생각을 정했다는 것을 확인한 곽승재는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고 단지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할 말을 다 한 고은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늦었는데 일찍 들어가 쉬어.”곽승재는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억지로 머물 핑계를 찾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때마침 영상전화가 걸려 오자, 고은서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영상전화를 받았다.문 쪽으로 걸어가던 곽승재가 무심결에 돌아보니, 그녀는 어느새 소파에 벌러덩 누워 한쪽 발을 다른쪽 무릎에 올리고 흔들거리고 있었다. 진지하고 엄숙했던 조금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이었다.곽승재는 이혼하기 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한번은 그가 외할아버지 댁에 같이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은서가 삐진 적이 있었다. 그녀가 며칠째 외할아버지 댁에 머물며 집에 돌아오지 않자, 이 일을 알게 된 할머니가 그를 고씨 가문으로 보냈다.그때의 고은서도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편안한 실내복 차림으로 소파에 엎드려 두 발을 흔들거리며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맨발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곽승재는 그 순간 모든 불쾌감이 사라졌다. 원래 불만 가득했던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은서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도우미가 말을 걸어서야 정신을 차렸다.다시 모습을 드러낸 고은서는 흠 잡을 데 없이 단정한 차림에 화장도 완벽하게 끝낸 상태였다.그와 함께 마구 뛰던 곽승재의 심장도 평온을 찾았다. 고은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서 잠깐 넋을 잃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것이 실은 설렘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끝내 깨닫지 못했다...고은서와 이야기하던 중, 고은혜가 문 쪽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언니, 저기 혹시... 형부?”고은서가 몸을 뒤로 젖힌 채,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는 여전히 문어귀에 서 있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잘생긴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언뜻 보였다.‘갑자기 왜 저런 표정이지?’고은서가 자세히 보려고 일어났을 때는 그가

  • 어게인, 비긴   제1080화

    “당시 시은이가 부상당한 쿠아를 쫓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에 대한 기억이 전부 시은이가 쿠아를 구해 준 그 따뜻한 장면으로만 남아있어. 시은이가 왜 거기에 있었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고은서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곽승재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고은서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두려워하지 마, 자책하지도 마.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 거야.”곽승재가 부드럽게 위로했다. “내가 민기 씨에게 송민준과 시은 씨사이의 관계를 조사해 보라고 시켰어.”고은서는 살며시 손을 빼냈다. “그럼 부탁할게.”곽승재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시은이가 당신과 결혼을 하려 하기에 날 싫어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 하지만 송민준은 왜 나를 미워할까?” 고은서가 의문을 제기했다.비록 그녀가 예전에 민시후와 가까웠다고 해도 고씨 가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게다가 유미 씨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귀국한 것은 곽 회장님의 뜻뿐만 아니라 이 C 선생의 지시도 있었다고 했다. 그 시절 자신은 민시후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었다.‘고씨 가문이 송민준에게 크게 잘못한 거라도 있나?’고은서는 머리가 터질 정도로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곽승재도 이 일의 전후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우리의 추측일 뿐이야. 증거 없이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 서두르지 마.”고은서는 급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 숨은 검은 손을 잡아내지 못하면 그녀와 고씨 가문은 영원히 불안에 떨어야 했다.전생의 비극적 결말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범인을 색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곽승재는 고은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MQ에 관련된 일은 내가 사람을 시켜 주의 깊게 보고 있어. 무슨 움직임이 생기면 바로 나에게 보고할 거야.”고은서는 곽승재가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곽승재를 바라보았다.거실의 하얀 색 조명 아래서 그의 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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