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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2화

Author: 류한나
원지훈이 난감해하며 말했다.

“백씨 기업 책임자도 누나랑 같은 생각이에요. 그런데 상대방 측에서 계약서를 수정하지 않으면 위약금을 내더라도 계약을 실행하지 않겠다면서 아무튼 손해를 보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면서 막무가내로 나오고 있다니까요.”

고은서는 이 계약을 이대로 망치는 걸 원치 않았다. 계약이 성사되어야만 백씨 기업을 제대로 무너뜨릴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상대방에서는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원지훈은 자신도 모른다면서 요즘 이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또 행여나 백유미한테 들키기라도 할까봐 부사장을 함부로 설득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금 유일한 방법은 직접 상대방을 찾아가서 이러는 원인을 캐내는 거예요. 그래야 일이 쉽게 해결될 수 있어요.”

원지훈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틀린 소리는 아니었지만 고은서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더 고려해보고 이틀 후에 정확한 답을 줄게.”

“저도 고민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에요. 상대방이 너무 강하게 나와서 저도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요. 게다가 중요한 건 더 끌다가 백유미한테 들킬까 봐 걱정이에요.”

원지훈이 조급해하며 말했다.

“저 백씨 가문을 빨리 망가뜨리고 싶어요. 그런데 이번 기회를 잃게 되면 또 다른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알겠어.”

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는 전화를 끊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정말 이 일 때문에 이상하게 군 거라고?’

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민시후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민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

“고은서, 동물원 수속이 거의 다 완성되었는데 지금 시간 있어? 네 사인이 필요한데 내가 데리러 갈게.”

이 일에 관해 고은서는 이미 대책을 생각해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동물원을 나 혼자 경영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 그래서 안전하게 ZY 그룹 명의로 하는 건 어때?”

고은서가 진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럼 내가 부담 가질 필요도 없잖아. 행여나 망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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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633화

    “고은서, 이게 그렇게 난감해할 문제야?”고은서가 한참 동안 대답이 없자 민시후가 짜증을 내며 물었다.‘비록 어이없는 요구이기는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선물 가격에는 요구가 있어?”고은서가 다시 확인했다.‘너무 비싸면 주기 싫은데.’“없어. 성의 없는 선물만 아니면 돼. 고은서, 너도 고씨 집안 아가씨잖아. 왜 이렇게 인색하게 구는 거야?”민시후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인색한 게 뭐가 어때서? 전생에 정신병원에 갇혔을 때 손에 돈만 있었으면 그렇게 하찮게 남은 인생을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그녀는 이번 생만큼은 돈을 아끼며 살 생각이었다.그런데 이런 말을 민시후한테 함부로 해서는 안 되었다.“알겠어. 내가 진짜 진심을 다해서 널 위한 선물을 준비할게.”“당연히 그래야지.”민시후가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답했다.고은서는 이 틈을 타 원지훈에 관한 얘기를 꺼내면서 자신의 의문스러움을 말했다.그녀가 선물을 준비하겠다고 약속해서일까, 민시후는 아주 흔쾌히 돕겠다고 나섰다.“걱정하지마. 내가 조사해볼게.”고은서는 마음이 한결 놓이는 것 같았다.저녁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박지연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고은서, 너 민시후한테 남다른 감정 품고 있는 것 같은데.”“남다른 감정?”“문제가 생기면 민시후한테 다 얘기해주잖아. 민시후를 엄청 신임하고 있는 것 같은데.”“사업 파트너로서 서로 신임하는 게 정상이 아니야?”고은서는 약간 어리둥절했다.“곽승재를 이렇게 신임해 본 적 있어? 이 일을 곽승재한테도 알려줄 거야?”“아니!”고은서가 단호하게 부인하며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 곽승재랑 백유미 사이 관계만 생각해도 이런 일을 곽승재한테 얘기할 리가 없잖아. 전에 여러 번 내 편을 들어줬다고 해도 백유미는 여전히 잘살고 있잖아.’“이거 봐. 이렇게 중요한 일을 곽승재한테는 안 알려주면서 민시후 하나만은 엄청 굳게 믿고 있잖아. 이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도 있다는 표현이지.”박

  • 어게인, 비긴   제634화

    “은서야, 너 곽승재랑 결혼하고 이혼한 것도 다 네 집념 때문에 그런 거잖아. 따지고 보면 너도 연애 경험이 전혀 없는 모쏠과 마찬가지야. 진짜 사랑인지 무엇인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잖아.”“민시후와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네 편을 들어주고 널 관심해주는 걸 봐서는 연애 상대로 꽤 괜찮을 것 같은데. 만약 곽승재한테 진짜 미련 남지 않았다면 민시후한테 기회를 한 번 주면서 너도 진정한 연애를 시도해보는 건 어때?”박지연이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그러나 고은서는 전혀 새겨듣지 않았다.‘민시후처럼 종일 껄렁대며 기분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어떻게 믿어. 날 좋아한다고 해도 그저 날 놀리는 게 재밌어서 생긴 일시적인 감정이겠지.’고은서는 민시후한테 놀림 받기 싫었다.“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해. 어제 온승준이 일자리를 너희 병원으로 옮겼다며? 어떻게 된 거야?”고은서가 화제를 바꾸었다.박지연이 다니고 있는 병원은 사립병원이었다. 대우가 나쁜 편은 아니었으나 온승준이 원래 다니던 대학병원과 비하면 차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온승준이 다니던 대학병원은 해성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 많은 환자가 소문 듣고 찾아갈 정도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병원이었다.의사와 간호사들도 그 대학병원에 취직하지 못해 머리를 쥐어짜는 와중에 온승준이 갑자기 이직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도 우연하게 병원 동료들이 얘기하는 걸 들은 거야. 진짜 우리 병원으로 이직했는지 안 했는지는 귀찮아서 알아보지도 않았어.”박지연이 덤덤하게 답했다.“이혼한 게 후회되어서 너랑 같은 병원에 다니면서 네 마음을 다시 돌리려는 거 아니야?”“설령 진짜 우리 병원으로 이직했다고 해도 병원 측에서 높은 연봉을 내걸면서 데려오려고 한 거겠지.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이유가 있겠지. 내가 뭐라고 일을 자기 생명처럼 아끼는 사람을 이직하게 만들어.”박지연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자신의 분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온승준은 직장 일 외의 모든 일에 관심이 없었다.사랑이든 집안

  • 어게인, 비긴   제635화

    조수연은 자신이 온승준에 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어릴 적부터 고집이 셌는지라 누군가를 위해 자존심을 꺾는 일은 절대 없었다.그 누군갈 위해 이런 이성적이지 못한 결정을 내린 적도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지금까지도 온승준이 박지연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혜린과 잘 지내보라는 자신의 말에 화가 나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박지연과 같이 살면서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생겼겠어. 나는 그것도 모르고 금방 해탈한 애한테 새 여자를 만나보라고 강요하기만 하고. 얼마나 싫었겠어. 다 내 탓이야.’“엄마가 다신 다른 여자 만나보라고 강요하지 않을게. 혜린이랑도 거리 두면서 너무 가까이 지내지 않을게.”조수연이 온승준을 계속 달랬다.“승준아, 병원에서 널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 너도 알고 있잖아. 너만 원한다면 꼭 다시 받아줄 거야. 그러니까 원래 병원으로 돌아가.”그러나 온승준은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어머니, 아까도 말했지만 저 안 돌아갈 거예요.”“그 여자가 있는 병원에 가기만 해 봐. 이젠 너 같은 아들 없는 셈 치고 살 테니까!”조수연은 더는 화를 참지 못하고 호통쳤다.“어머니, 아버지랑 돌아가서 일찍 쉬세요. 그리고 제 결정은 변하지 않아요.”온승준이 미간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이런 불효자식 같으니라고!”온범준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온승준을 때리려고 할 때 조수연이 그를 막았다.“승준아, 지금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도록 해.”온범준과 조수연이 떠난 후 온승준은 서재로 갔다.그는 책상 옆에 있는 솔로라는 글자가 새겨진 강아지 인형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그 인형은 금방 결혼했을 때 박지연이 산 인형이었다. 당시 그녀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그의 어깨에 기대어 그에게 애교를 부렸다.“여보,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꼭 행복하게 살라고 당부하셨는데 여보랑 결혼한 이후로 이미 너무 행복한걸.”박지연은 그의 어깨에 기댄 채 그의 귓가에 가까이 대고

  • 어게인, 비긴   제636화

    이튿날, 온승준은 정식 직원이라는 신분으로 이레 병원에 출근했다.서로 알고 지내던 교수 한 명이 그를 데리고 병원을 둘러보면서 병원 직원들에게 그를 소개해줬다.입원처로 가보고 싶다는 온승준의 말에 교수는 또 그를 데리고 외과 입원처로 향했다.외과 간호사실을 지나갈 때 마침 다른 간호사들과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 박지연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그와 눈이 마주친 박지연은 멈칫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옆에 있던 간호사와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갔다.이를 본 온승준은 강렬한 실망감에 휩싸이면서 발이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승준 씨, 왜 그래요?”“아무 일도 아니에요. 가시죠.”교수의 물음에 온승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수간호사님, 방금 새로 오신 의사분 너무 멋있지 않아요? 그런데 수간호사님을 빤히 바라보던 것 같던데, 혹시 아는 사이세요?”간호사 한 명이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모르는 분이에요.”박지연은 아주 덤덤하게 답했다....점심시간.온승준은 교수의 밥약을 사양하고 병원 구내식당으로 갔다.그는 점심밥을 챙기고 아주 눈에 띄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업계에서 꽤 이름 있었는지라 그를 알아보고 놀라 하며 인사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온승준은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지만 애써 예의 바르게 같이 인사했다.얼마나 지났을까, 온승준은 그제야 동료들과 수다 떨면서 구내식당에 들어서는 박지연을 보았다.“지연아.”온승준이 먼저 주동적으로 인사했다.그의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박지연을 바라보았다.“방금 들어온 간호사랑 아는 사이예요?”누군가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러나 온승준은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수간호사님, 여기 같이 앉으실래요?”또 다른 누군가가 박지연을 향해 인사하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동료들과 함께 먹을게요.”박지연은 웃으면서 사양하고는 함께 온 간호사들과 배식 창구로 걸어갔다.온승준은 원래부터 인간관계 처리에 능하지 않았고 철면피하게 누군가에게 질척거리는

  • 어게인, 비긴   제637화

    박지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온승준도 이내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이혼하기 전에는 박지연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이미 이혼한 마당에 무슨 자격으로 묻는단 말인가.“미안. 같이 밥 안 먹은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진심이야. 그러니까 밥 한 끼쯤은 괜찮지 않아?”온승준이 사과하면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그러나 그와 달리 박지연은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거절했다.“당신 부모님이 알게 되면 또 나를 찾아와서 난동을 부릴지도 몰라. 그리고 우리 이미 이혼한 사이야. 난 더는 당신이랑 엮이기 싫어.”“지연아...”“홧김에 하는 말이 아니야. 병원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사이었는지 몰라. 그러니까 오늘 점심때 같은 일이 다신 일어나지 않게 주의해줬으면 좋겠어. 예전처럼 그저 모르는 사람인 척하고 지나가면 돼. 오늘처럼 귀찮게 굴지 말고.”박지연은 말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온승준은 폰을 든 채 한참 동안 선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전에는 일부러 박지연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당시 마침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고 또 세미나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어서 별것 아닌 일로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 먼저 볼일을 보러 갔던 거였다.‘다른 사람한테 거절당하고 무시당한 느낌이 이런 거구나.’박지연은 오늘 육현석과 함께 저녁밥을 먹기로 약속했다.그녀가 이혼한 후로 육현석은 오히려 꾸준히 사업에 몰두하면서 그녀 앞에 전처럼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나 매일 그녀한테 계약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곤 했다.하지만 그녀는 종일 껄렁대며 친구들이랑 놀러만 다니던 부잣집 도련님이 왜 갑자기 사업에 이렇게 몰두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 예전부터 사업에 엄청 관심이 많았거든! 못 믿겠으면 승재 형한테 물어봐. 전에 내가 직접 도맡아서 계획서를 작성했던 LH 그룹 프로젝트도 있어.”반면 육현석은 그녀의 물음에 항상 이런 신뢰도가 일도 없는 답을 하곤 했다.그렇다고 박지연이 곽승재를 직접 찾아가 확

  • 어게인, 비긴   제638화

    온승준은 점점 멀어지는 육현석의 차를 한참 바라보다가 자신의 차에 올랐다.그는 종래로 감정에 목을 매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혼하고서도 평소처럼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얼마 전에 조수연이 했던 좋아해서 결혼했겠니라는 말을 들은 후로 시도 때도 없이 박지연이 생각났다.보고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아무리 학술 연구에 몰두한다고 해도 요동치는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그는 이레 병원으로 이직만 하면 박지연과 가까이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현실은 박지연이 종일 그를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는 것이었다.심지어 그와 통화할 때도 낯선 사람과 통화하듯이 아주 무덤덤해 보였다.그녀와 통화하면 조금이나마 진정되면서 답답하던 마음이 나아질까 했는데 통화하고 나니 더 심란해졌다....고은서는 민시후의 선물을 사주기 위해 해성에 있는 한 쇼핑몰로 갔다.어제 약속한 일을 오늘 아침부터 준비되었냐고 조르는 바람에 없던 일로 치려고 해도 칠 수가 없었다.그러나 한 바퀴를 빙 둘러보아도 민시후에게 무슨 선물이 어울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예전에 곽승재 선물을 고를 때는 항상 제일 비싸고 또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물건들로 선택했다. 예를 들면 가죽 벨트, 넥타이, 커프스단추 등을 선물했었는데 그가 싫다고 해도 그녀는 전혀 지칠 줄 모르고 계속 선물했다.하지만 민시후한테 똑같은 선물을 줄 수는 없는 법.고은서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쇼핑몰 맞은 편에 있는 력셔리 골동품 가게로 들어갔다.“손님,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실까요?”젊은 직원 한 명이 다가와서 물었다.“친구한테 줄 선물을 찾고 있는데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남자예요.”“친구분 나이랑 직업이 어떻게 되나요? 어떤 성격의 소유자신가요?”직원은 자신의 물음에 어리둥절해 하는 고은서를 보면서 설명을 보탰다.“친구분 성향에 맞춰서 선물을 추천해드리려고 물어본 거예요.”“얼굴은 엄청 잘생겼고 성격이라면 아마 종일 껄렁거리며 다니는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고

  • 어게인, 비긴   제639화

    익숙한 설송향이 고은서의 코끝을 간지럽혔는데 그녀는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이 향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어제 곽씨 가문 본가에서 만난 것 외에는 두 주일 동안 곽승재는 그녀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고은서가 그가 더는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성큼성큼 가게 안으로 걸어들어왔다.“곽 대표님, 아까 볼 일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여긴 무슨 일로?”여시은이 의외라는 듯 곽승재에게 물었다.“손님, 혹시 남자친구분이세요? 드라마에서 나오는 남주보다 더 잘생기셨어요.”젊은 직원이 부러운 눈길로 여시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염주 팔찌가 손님 남자친구분과 엄청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하나 사시지 그래요?”그 말을 들은 여시은은 황급히 팔찌를 내려놓으면서 설명했다.“어우,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제 남자친구 아니에요. 저분이 좋아하는 사람은 지금 제 옆에 서 있는 이분이라고요.”직원은 그제야 곽승재가 가게에 들어서면서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고은서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곽승재의 외모에 푹 빠진 직원일지라도 이내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했다.그녀는 황급히 입을 꾹 다물었다.“곽 대표님, 은서 씨가 여기 있는 걸 보고 내리신 거죠. 그럼 저는 이만 자리 비켜주면서 쇼핑하러 가볼게요.”여시은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은서 씨, 제가 재촉하는 게 아니라 퍼퓸 완성품이 너무 기대돼요. 그러니까 빠른 시간 내에 부탁할게요.”여시은이 나가면서 말을 보태었다.“알겠어요. 조심히 가세요.”그녀가 나간 후 고은서는 가게 문 쪽에 서 있는 곽승재랑 눈이 마주쳤다.“마음에 드는 거 있어? 내가 사줄게.”곽승재가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물었다.“필요 없어.”그녀는 고개를 홱 돌리면서 직원에게 말했다.“이 팔찌 포장해주세요.”직원은 팔찌를 포장해주면서 곽승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손님, 저분한테도 하나 선물하시는 건 어때요? 진짜 어울리실 것 같은데.”직원이 참지

  • 어게인, 비긴   제640화

    고은서의 특유한 향기가 은은하게 밀려왔는데 곽승재는 그녀를 차로 강제로 안고 가고 싶은 충동을 힘겹게 참았다.그는 그녀에게 누구한테 주는 선물이기에 직접 쇼핑몰까지 와서 선택하는 거냐고 캐묻고 싶었다.‘방금전 반응을 보아서는 고국성 생일조차 까먹고 있었던 것 같은데, 고국성을 위해 준비한 선물은 아닐 테고. 그런데 왜 저렇게 쉽게 다른 사람한테 선물을 사주는 거야. 정장을 선물한 것도 모자라 이젠 남자 팔찌까지 선물하려는 거야? 아까 직원이 분명히 나한테도 어울린다고 했는데 왜 나한테는 안 사주는 거야?’...민시후는 고은서의 팔찌를 받자마자 팔에 차고 이리저리 보면서 좋아했다.“보는 눈이 좀 있네.”그의 하얗고 가늘지만 힘 있어 보이는 팔목에 확실히 잘 어울렸다.“직원이 추천해준 거야. 내가 직접 고른 게 아니야.”고은서가 이실직고했다.“고은서, 넌 네가 직접 고른 거라고 거짓말이라도 좀 하면 안 되겠냐?”민시후가 불쾌해하며 말했다.“양심을 가책을 느껴서 못하겠어.”“...”민시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런 사소한 일로 깊게 따지고 싶지 않았던 그는 화제를 바꾸면서 그녀에게 원지훈에 관해 조사한 결과를 알려줬다.“요즘 매일 정상적으로 출퇴근하고 있어서 별로 수상한 점은 못 찾았어. 그런데 얼마 전에 얼굴이랑 손이 상처투성이가 될 정도로 다른 사람이랑 싸웠다고 하던데.”민시후는 백씨 가문 기업의 주주가 때린 거라고 설명을 보태었다.두 사람이 시비가 붙었는데 주주가 원래부터 원지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하필 그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낙하산이라고 욕하는 바람에 원지훈이 참지 못하고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고 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먹을 먼저 휘두른 것 치고는 도로 상대방한테 얻어맞기만 했다고 한다.백유미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백씨 가문 기업에서 쫓겨났을 것이라고 민시후가 말했다.고은서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얼마 전에 전화하면서 긴장해 했던 게 이 일 때문이었던 거야?’“한 가지 더 알려줄까? 곽현수가 최근에 주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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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697화

    곽승연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그녀는 혼자 앉아서 멍을 때리면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거부했다.고은서는 그녀의 가녀린 뒷모습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꽃다운 나이에 단 한 번도 활발하게 실컷 놀아보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이상하게 여기고 가여워하는 눈빛을 마주해야 한다는 게 너무도 안타깝게 느껴졌다.전에 곽승연이 그렸던 수련꽃을 떠올린 고은서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하인에게 수련꽃 몇 송이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곽승연은 수련꽃을 쥔 채 피곤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연정 몸에 기대어 있었다.눈시울이 붉어진 서연정은 가슴 아파하며 그녀를 꼭 끌어안아 줬다.고은서는 더는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곽승재는 문 쪽에 서서 서연정 품에 기대어 있는 곽승연을 빤히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이 아주 담담해 보였다.서연정은 곽승재가 열 살이 되던 해에 해외로 나간 후로 거의 해성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었고 따라서 곽승재도 단 한 번도 서연정과 화목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곽승재의 창백한 얼굴과 씁쓸한 표정을 본 고은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위안했다.“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 어머니는 그저 당신이랑 가까워지는 법을 몰라서 그러는 거야.”곽승재는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상관없어. 난 한 번도 이런 일을 마음에 둔 적이 없으니까.”‘상관없을 리가 없잖아.’그러나 고은서는 더는 그와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할머니 깨어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난 먼저 가볼게.”곽승재는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끝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을 가여워하는 고은서의 눈빛을 똑똑히 보았다.원래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녀의 눈빛을 보자마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 같았다.‘날 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한다고 해도 여전히 날 관심해 주는구나. 난 왜 이토록 착한 여자를 악랄하다고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했을까?’...한 주일 후.민시후는 이미 완쾌되었지만 별로 퇴원하

  • 어게인, 비긴   제696화

    민시후는 그저 그녀와 대화하고 싶었을 뿐이다.고은서는 웃으면서 곽씨 가문 본가에 간다면서 저녁이 되어서 시간이 된다면서 말했다.민시후는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했다.“나랑 저녁 먹어줄 사람 없는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고은서는 웃으면서 저녁 시간에 맞춰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콜록콜록.”바로 이때, 곽승재가 사레에 들린 듯 갑자기 기침 소리를 냈다.아니나 다를까 민시후는 기침 소리를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곽승재도 차에 같이 있는 거야?”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는 고은서와 달리 곽승재는 아주 덤덤해 보였다.“미안, 갑자기 목이 간질거려서.”“곽승재도 본가에 간다고 해서 같이 가는 것뿐이야.”고은서가 설명했다.“곽승재, GS그룹이 기사 한 명 못 내올 정도로 망해가는 거야? 내가 빌려줄게. 제발 고은서한테서 멀리 떨어져.”민시후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러나 곽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먼저 끊을게. 일 끝나고 다시 연락할게.”영상통화를 끊은 후 고은서는 곽승재를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적당히 하지 그래?”“목이 정말 간질거려서 그랬던 거야. 다음부터 주의할게.”그는 말로만 사과할 뿐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고은서는 더는 말하지 않고 창밖을 내다보았다.곽승재는 고은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그녀의 피부는 매우 하얗고 부드러워 보였고 속눈썹도 아주 길었으며 눈망울도 아주 맑아 보였다.차창 너머로 비춰 들어오는 햇빛 덕분에 그녀의 얼굴의 미세한 솜털까지 눈에 들어왔다.곽승재는 이 순간이 너무 고요하고 좋았다. 마치 그녀와 예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그러나 이는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현재의 고은서는 그를 만날 때마다 차가운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곽승재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 났다.“은서야, 날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하고 있는 거야?”곽승재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원망

  • 어게인, 비긴   제695화

    고개를 든 박지연의 눈에 들어온 건 곽승재였다.고은서도 곽승재를 발견했다.그는 평소와 같이 검은 맞춤 제작 정장에 곤색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마치 영화 포스터에서 걸어 나온 캐릭터처럼 잘생겨 보였다.박지연의 말을 들었는지 그의 눈빛이 약간 차갑게 느껴졌는데 얼굴빛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그는 두 사람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지연은 T국 병원에서 곽승재를 찾아가 호통친 이후로 그와 만난 적이 없었다.그런데 하필 그의 뒷담화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은서야, 나 금방 회진 돌고 올게.”박지연은 어색해하며 재빨리 자리를 떴다.“또 왜 찾아온 거야?”고은서가 곽승재를 쳐다보며 물었다.“어머니한테서 들었어. 오늘 승연이 보러 본가로 간다며. 나도 마침 본가에 들를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하는데 기사가 일이 있어서 데리러 못 온대. 그래서 너랑 같이 가려고.”고은서가 거절하려고 할 때 곽승재가 앞서 말을 보태었다.“고은서, 나도 심하게 다쳤어. 그런데 넌 한 번도 날 보러 온 적이 없고 또 나한테 아프냐고 물은 적도 없잖아. 지금은 그저 네 차에 앉아서 본가로 같이 가겠다는데 이것마저도 거절할 생각이야?”고은서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곽승재가 총상을 입은 게 확실히 그녀 탓이 맞았다.그리고 총상 때문인지 요즘 따라 많이 수척해진 것 같았다.기사가 못 온다는 게 핑계일 가능성이 컸지만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박지연에게 간다고 인사한 후 곽승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엘리베이터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박지연의 동료들을 만났다.“은서 씨, 일 보러 가시는 거예요?”동료 한 명이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동료들은 고은서와 곽승재 사이에 관해 조금 알고 있었는데 요즘 따라 고은서가 민시후를 더 돌보는 바람에 세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이 더 짙어졌다.“나오다가 만나서 같이 가는 것뿐이에요.”고은서는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먼저 엘리베

  • 어게인, 비긴   제694화

    “그럼 조금 이따 집 오는 거지?”온승준이 흥분해 하며 물었다.“응.”박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온승준은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고집부리지 않고 유혜린 따라 차에 올랐다.“지연아, 아까 그 여자 온 선생님 좋아하는 거 맞지? 전화 받자마자 달려온 데다가 엄청 걱정하는 것 같던데.”온승준이 가자마자 간호사 한 명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박지연을 보며 물었다.“아마도.”박지연은 아주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답했다.“온 선생님은 널 좋아하고 아까 그 여자는 온 선생님을 좋아하고. 이거 삼각연애 아니야?”옆에 있던 간호사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박지연은 피식 웃으면서 그녀의 말에 답했다.“이게 왜 삼각연애에요? 저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거든요.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은 그냥 없던 일로 치세요.”동료들은 다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전혀 없던 일로 칠 생각이 없었다.그중 몇몇 동료는 온승준이 취해서 박지연을 안고 여보라고 부르는 장면을 촬영해서 채팅 그룹에 올렸다.그 덕분에 병원 내의 많은 사람이 온승준이 박지연한테 구애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그러나 당사자 두 명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특히 온승준은 회식 이튿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상적으로 출근했다.인턴을 통해 동영상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예전의 차도남 모습 그대로였다.이튿날 점심, 텅 빈 간호사실.고은서도 박지연 폰에서 그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취중 진담이라는 말도 있잖아. 온 닥터가 너랑 집 가겠다고 고집부리는 거 봐서는 진짜 너랑 재혼할 생각인 것 같은데.”“뭔 소리야. 온승준은 그저 도우미처럼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어서 아직 적응이 안 돼서 이러는 것뿐이야.”박지연이 이내 부인했다.“유혜린 아직도 온승준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서야 전화를 받자마자 온승준한테 달려간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어제 온승준이 취했다며? 유혜린이 과연 가만있었을까?”고은서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박지연을 보며 물었다.“몰라. 나랑 상관없는 일이

  • 어게인, 비긴   제693화

    박지연은 남자 의사한테 부축 당하고 있는 온승준한테로 다가갔다.은색 안경 너머에 있는 눈빛에서 짙은 술기운이 느껴졌다.원래부터 얼굴이 각지고 잘생겼는지라 취해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박지연은 순간 그를 처음 만날 때 우러러보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당시 그녀는 온승준도 자신에게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결혼하는 거라 믿으면서 많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그러나 모든 게 그녀의 환상일 뿐이었다.온승준은 그저 조용하고 집안일을 잘하고 가정을 중요시 여기며 그와 그의 가족들을 잘 보살피는 동시에 성욕을 처리해줄 수 있는 여자가 필요했을 뿐이었다.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건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해주는 남편이었다.서로의 수요가 다른 탓에 시간이 지나면서 모순도 많아지고 서로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사실 구청에서 만났을 때 온승준이 이혼 서류에 사인하기 싫어한다는 걸 박지연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그녀는 사랑을 위해 많은 일을 참아줄 수 있었다. 그러나 유독 온승준이 유혜린을 약 올리기 위해 그녀와 결혼했다는 것만은 용서해줄 수가 없었다.자신을 상처투성이로 만든 결혼생활이 사랑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는데 굳이 더 이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지금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무시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온승준을 보며 박지연은 마음이 약간 흔들렸다.하지만 흔들림도 잠시뿐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랑 왜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감탄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승준아.”바로 이때, 저 멀리서 익숙한 사람 한 명이 차에 내리면서 온승준을 향해 달려왔다.다름 아닌 유혜린이었다.“왜 이렇게 많이 마신 거야?”유혜린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아까 온 닥터한테 전화했던 분 맞죠?”남자 의사 한 명이 물었다.방금 요란한 환경 속에서 마침 온승준한테 전화를 건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한테 온승준이 취해서 술주정을 부린다고 전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유혜린이었다.별로 희망을 품지 않았는데 진짜

  • 어게인, 비긴   제692화

    “여보, 내 여보 맞잖아...”온승준은 박지연의 말을 듣자마자 휘청거리며 다가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여보, 나 무시하지 말고 나랑 얘기 좀 해...”술 마신 탓인지 힘이 무척 셌을 뿐만 아니라 몸을 박지연한테 전부 기대는 바람에 그녀는 황급히 옆에 있던 동료들을 향해 도움을 요청했다.“얼른 좀 부축해 봐요. 지금 취했잖아요.”놀라움도 잠시, 동료들은 다가가 함께 온승준을 박지연한테서 떼어냈다.“지연아, 여보, 우리 집 가자...”온승준은 자신을 부축한 남자 의사의 어깨를 잡고 중얼거렸다.“나 무시하지 말아줘...”동료들은 그제야 온승준이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취했다는 걸 깨달았다.“교수님이 온 닥터랑 친하잖아. 교수님한테 연락해서 집 주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집 데려다주면 되잖아.”다른 한 의사가 제안했다.교수한테 전화하는 틈에도 온승준은 끊임없이 박지연의 이름을 부르면서 여보라고 불렀다.“아. 나 알 것 같아요. 온 선생님이 우리 병원으로 이직해 온 게 지연 간호사님한테 반해서 아닐까요? 여보라고 부르는 거 봐서는 지연 간호사님한테 확실하게 마음을 빼앗긴 것 같은데요.”“전에도 몇 번이고 우리 간호사실을 지나다니던데 지연이 보러 온 거 아니야?”다른 간호사가 맞장구를 쳤다.“그렇네. 며칠 전에 온 선생님이 나한테 지연이가 어디 갔는지 물어보던데.”“나도 기억나. 온 선생님이 우리 병원으로 처음 온 날 구내식당에서 지연이한테 인사까지 했었잖아.”간호사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박지연을 보면서 물었다.“수 간호사님, 온 선생님이랑 어떻게 알고 지낸 거예요? 수 간호사님 때문에 우리 병원에 온 거 맞죠?”박지연은 도리 머리를 하면서 부인했다.“그럴 리가요. 제가 이혼까지 했던 사람이라는 거 다들 알잖아요.”박지연이 이혼한 일을 확실히 여러 동료가 알고 있었다.심지어 상대방 탓이라고 같이 욕해준 적도 있었다.이레 병원에서 일한 지 몇 년 되기는 했으나 그녀의 남편을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어게인, 비긴   제691화

    그 누구도 일이 이렇게 전개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대부분 사람은 자신과 상관없는 회식 자리를 피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다시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그들은 어쩔 수 없이 온승준과 함께 고깃집으로 향했다.그러나 함께 술을 마시면서 게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온승준은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그는 고기도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술 게임도 하지 않았다.중요한 건 누구도 그를 끼워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그는 전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온승준에 관해 다 잘 알고 있었는데 그가 있는 한 계속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져 차마 편히 놀고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온 닥터, 우린 이미 이런 시끄러운 분위기가 익숙해서 괜찮은데 온 닥터는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그냥 일찍 들어가서 쉬어.”또 다른 의사 한 명이 말했다.온승준은 그저 사람과의 교재를 싫어할 뿐 바보는 아니었기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꺼려한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박지연을 보았는데 그녀는 동료들과 한창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술 마신 탓에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었는데 유독 시선이 자꾸 갔다.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으면서 그와 한마디 말도 섞지 않았다.“온 닥터, 안 마실 거야?”술을 권하는 사람이 물었다.“그만 권해. 온 닥터 집도의여서 술 함부로 안 마신단 말이야. 24시간 동안 정신이 말짱해야지.”옆에 있던 간호사가 그 대신 설명해줬다.“그러면 여기 계속 있지 말고 돌아가서 쉬어. 여기 계속 있어 보았자 분위기만 망치잖아.”방금전의 의사가 술기운에 저도 모르게 속심말을 내뱉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눈치 있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옳았다.그러나 온승준은 천천히 술잔을 들면서 말했다.“마실게요.”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입을 쩍 벌렸다.‘그렇게 도도하게 굴던 온 닥터가 우리 같은 사람들이랑 술을 마신다고?’“그래,

  • 어게인, 비긴   제690화

    여재훈은 예의상 고은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반면 곽현수는 성가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녀와 손잡고 있는 곽승연을 보는 순간 눈빛이 싸늘해졌다.“승연아, 낯선 사람과 함부로 손잡고 있으면 어떡해!”깜짝 놀란 곽승연은 눈에 띄게 긴장해 했다.고은서는 황급히 곽승연을 안아주면서 말했다.“곽 대표님,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세요. 승연이가 놀랐잖아요.”“버릇없는 년. 내가 내 딸이랑 얘기하는데 네가 뭔데 끼어들어.”곽현수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곽 대표님, 어린 애들한테 이렇게 엄숙할 필요는 없잖아요.”여재훈이 온화한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맞아요, 아저씨. 은서 씨도 그저 승연이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예요.”여시은도 옆에서 여재훈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곽현수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승연아!”바로 이때 서연정이 황급히 달려왔다.그녀는 곽승연의 상태를 확인한 후 곽현수를 향해 말했다.“승연이 상태가 요즘 불안정하니까 다음부터 말할 때 주의하도록 해요.”“당신이 여긴 왜 있는 거야?”곽현수가 덤덤하게 물었다.서연정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답했다.“은서랑 같이 밥 먹으러 왔어요.”곽현수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옆에 있는 여재훈과 여시은을 소개해주기 시작했다.“이분은 여재훈 여 대표님이야. 그리고 옆엔 딸 여시은이고.”“제 부인이랑 딸입니다.”그는 다시 몸을 돌려 여씨 부녀에게 서연정과 곽승연을 소개해줬다.“안녕하세요, 아주머니.”여시은이 달달한 목소리로 인사했다.서연정도 단아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사모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식사 같이하시죠.”여재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아주머니, 해성에 온 지도 꽤 되는데 언젠가 한 번 뵈러 가려고 했는데 마침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여시은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고맙지만 다음 기회에 같이 식사하도록 하죠. 승연이가 몸이 좋지 않아서 먼저 데리고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네요.”서연정이

  • 어게인, 비긴   제689화

    고서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말씀하세요.”“승연이 상황에 관해서 너도 전해 들었을 거라 믿어. 지금 승연이가 꺼려하지 않으면서도 정서 조절에 도움이 되는 향을 찾아야 하는데 승재 할머니 말씀으로는 네가 퍼퓸 제작에 능하다고 하던데 혹시 너한테 부탁해도 될까 해서.”서연정은 국내외에도 많은 퍼퓨머가 있긴 하나 곽승연이 낯선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걸 싫어해서 다른 사람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설명을 보태면서 부득이하게 고은서에게 부탁하는 거라고 했다.전에 곽씨 가문 본가에 갔을 때 곽승연 상태와 퍼퓸 제작에 관한 일을 곽승재한테서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그러나 그때 당시는 곽승연을 직접 만나보지도 못했던지라 그녀가 무얼 좋아하는지도 알 수가 없어 거절했었다.“어머니, 제가 한번 해볼게요.”“은서야, 고마워.”서연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고은서는 그녀를 보며 갑자기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면서 가슴이 찡해났다.“하지만 너무 큰 희망은 품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저도 꼭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장할 수가 없어요.”희망이 클수록 실망도 큰 법.고은서는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은서야. 내 부탁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걸. 승연이 상태는 나도 잘 알고 있어. 결과가 어떻든지를 막론하고 정말 고마워.”서연정이 진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알겠어요. 그럼 내일부터 시간 내서 승연이가 무얼 좋아하는지부터 알아보도록 할게요.”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원래도 까다로운 퍼퓸 제작이 이번엔 더 힘들 것 같았다.‘천천히 해야지.’“은서야, 잘 부탁해. 기사님한테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게 기다리라고 할게.”“괜찮아요.”고은서가 말을 계속 이어가려고 할 때 서연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넌 승연이를 도와주는 것 외에 일도 해야잖니. 기사님이 데려다주고 하면 너도 차에서 조금이나마 편히 쉴 수 있잖아.”그녀의 말에 고은서는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운전하는 게 확실히 쉬운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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