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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1화

작가: 류한나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0 19:00:00
“자? 우리 얘기 좀 할까?”

곽승재의 낮고 짙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조금 전, 두 사람은 크게 다툰 상태였다. 고은서는 더 남은 힘도 없는 상태에 곽승재에게 끌려가 한 번 더 그 짓을 해야 할 판이었다.

“나 너무 피곤하고 졸려. 말 있으면 내일 해.”

고은서는 차가운 음성으로 곽승재를 거절했다.

고은서는 자신이 곽승재를 거절한 순간, 그가 당장 문을 열라고 강요하거나 협박이라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예상과는 다르게 곽승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알겠어. 푹 쉬어.”

대화가 끝나자 문밖은 다시 조용해졌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침묵에 고은서가 놀란 기색을 보였다. 곽승재가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게다가 그의 차분하고 평온한 목소리는 화를 억누르는 것 같지도 않았다.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뀐 걸까?

됐다, 어차피 그녀와는 무관한 일이다.

더 이상 깊게 생각할 기력조차 없을 정도로 지쳐버린 고은서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에 빠졌다.

그렇게 잠이 든 고은서는 다음 날, 날이 밝고 나서야 잠에서 깼다.

어제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아니면 너무 빨리 달린 탓인지 힘을 너무 많이 쓴 다음의 피로감이 몸에 축적되어 있었다.

몸이 너무 나른했고, 움직이기도 싫었다.

잠시 더 누워 있던 고은서는 간단히 먹을 것을 챙겨 짐 정리를 마친 후, 오늘 밤이나 내일 돌아갈 생각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간단히 외투를 걸치고 바닥에 발을 디뎠다. 어제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 같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않기로 했다.

문을 열고 방을 나선 그녀는 천천히 주방으로 향했다.

몇 걸음 떼지 않아 반 오픈형으로 되어있던 주방 안에 곽승재가 있는 것이 보였다.

아직도 나가지 않은 건가?

곽승재는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간이 조리대 앞에 서 있었다. 전기밥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향긋한 죽 냄새가 풍기고 있었고 곽승재는 숟가락으로 음식의 간을 보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창을 뚫고 사선으로 들어온 햇볕은 곽승재의 몸을 비추며 그의 수려한 얼굴 반쪽을 비추고 반쪽 얼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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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연은 또 다른 한 가지 소식을 고은서에게 전했다.범가온이 원지훈 유품을 확인할 때 그의 폰에서 백유미가 성폭행당하는 동영상을 발견했다고 한다.아마 원지훈이 자신의 앞날을 위해 그 동영상으로 백유미를 협박하려고 했던 모양이다.동영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었다.백유미한테는 기필코 아주 큰 타격이 될 것이다.범가온은 동영상을 확인한 후 아들의 죄를 덮어주기는커녕 사람을 찾아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했다고 한다.그 동영상은 업데이트되자마자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었고 여론이 점점 커져갔다.“조회수가 어마어마하대. 특히 외국 사이트는 심사가 별로 엄하지 않아서 벌써 T국 여러 사이트 실검에 올랐어. 비록 국내에서는 동영상 풀버전을 볼 수는 없지만 전파 속도가 하도 빨라서 이미 본 사람들이 꽤 많을 거야. 백유미 이번엔 진짜 끝장이야.”그러나 고은서는 마음이 별로 놓이지 않았다.백유미에겐 곽현수라는 조력자가 있었고 그가 직접 나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 누구도 보장하지 못한다.아니나 다를까, 오후쯤이 되어서 고은서는 휠체어에 앉은 백승엽과 곽현수가 T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비록 이미 GS그룹 경영권을 곽승재에게 물려주고 회사 일에서 손을 뗐다고 하지만 T국 상류계층 사람들마저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명성은 여전했다.그 사람들과 곽현수의 참견으로 T국 경찰 측에서는 얼마 되지 않아 원지훈을 죽인 백유미의 행위가 정당방위라는 조사결과를 공포했다.왜냐하면 원지훈이 찍은 동영상에서 백유미를 죽이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그의 목소리가 함께 녹음되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경찰 측에서는 원지훈이 앙심을 품고 백유미를 죽이려 하다가 도리어 칼을 들고 정당방위 하는 그녀에게 목이 찔려 죽었다고 판단했다.고은서 납치 사건에 관해서는 녹음 파일과 증인이 다 있었기에 백유미는 거의 유죄 선고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다.그러나 백승엽이 이름 있는 정신병원 진단서를 내밀며 백유미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 어게인, 비긴   제664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는 차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았다.“형, 전생이 존재한다는 게 말이 돼? 요즘 스트레스 너무 받아서 그저 악몽 꾼 걸 거야.”비록 고은서의 변화와 곽승재의 말들을 잘 되새겨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육현석 또한 전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형수님처럼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가 자살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자신의 주장도 과감하게 제기할 줄 알고 또 하고 싶은 일도 한다면 하는 사람인 데다가 자신을 꾸미는 것도 좋아하고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사는 사람이 왜 자살을 한다는 거야?”그러나 곽승재는 전혀 위안이 되지 않은 듯했다.‘육현석의 말대로 고은서는 자신을 꾸미는 것도 좋아하고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살한다는 건 얼마나 큰 절망을 느껴서였을까?’“형, 방금전에 백유미 찾아가지 않았어? 어떻게 됐어?”육현석이 일부러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손에 있는 증거를 경찰 측에 넘기면 되잖아. 왜 굳이 직접 찾아간 거야?”곽승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증거가 나타난 타이밍이 너무 수상해.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자꾸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뭐? 누군데?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 건데?”육현석은 놀라움을 참지 못했다.“그저 내 직감일뿐이야. 자세한 건 더 조사해봐야 해.”곽승재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이튿날, 고은서는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약 효과가 아직도 남아있는 탓인지 머리가 계속 띄엄띄엄 어지러워 났다.“고은서!”그녀가 누워서 좀 더 쉬려고 할 때 박지연이 흥분해 하며 병실로 달려 들어왔다.“빅뉴스야!”반면 고은서는 약간 풀이 죽어 있었다.“뭔데?”“백유미가 다른 사람한테 맞아서 지금 중환자실에 들어갔대.”고은서는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누가 때린 건데?”“누가 때렸는지 한 번 맞춰봐.”박지연이 웃으면서 일부러 뜸을 들였다.고은서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T국에 있는 백유미랑

  • 어게인, 비긴   제663화

    곽승재는 육현석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아직도 아침의 그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했다.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은서는 정신병원 환자복을 입고 있었는데 뼈밖에 안 보일 정도로 살이 빠져있었고 얼굴도 전과 다르게 핼쑥해져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그가 알고 있는 그녀의 똘망똘망한 눈빛과 다르게 꿈속의 그녀는 절망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냉소를 흘리면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고은서는 이미 피바다 속에 쓰러져있었다.그 순간 그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형, 왜 그래...”육현석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곽승재를 보며 물었다.‘내가 잘못 본 거겠지. 형 지금 눈시울이 빨개진 거야?’오랫동안 곽승재와 지내오면서 그의 이런 모습은 육현석도 처음이었다.마치 하나뿐인 동반자를 잃은 늑대처럼 처절하고 비참하면서도 후회막심해 보였다.“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육현석이 위안했다.곽승재는 또다시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목이 쉰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어제 백유미가 칼을 들고 자살하려고 할 때 유난히 당황스러웠어. 마치 백유미를 막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아침에 이 꿈을 꾸고 난 후로 그 이유를 알겠더라. 고은서도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 그땐 내가 미처 구하지 못했다는 걸.”“그러니까 지금 전생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거지? 방금전에 말한 일도 전생에 발생한 일이고.”육현석이 물었다.그러나 곽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또한 전생이 존재한다는 게 아주 황당한 생각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꿈에서 봤던 일들이 진짜 현실에서 발생한 것처럼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졌다.육현석은 곽승재의 이런 모습이 약간 적응되지 않았다.항상 강인한 모습만 보이며 할 줄 모르는 게 거의 없었던 곽승재가 갑자기 전생이라는 말을 꺼내면서 이토록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형, 그저 꿈일 뿐이야. 너무 자책하지마.”육현석이 애써 그를 위안

  • 어게인, 비긴   제662화

    목소리가 별로 크진 않았지만 민시후는 아주 똑똑히 들었다.그는 육현석을 힐끗 째려보고는 고은서를 향해 아양을 떨며 말했다.“은서야, 방금 깎아준 사과 엄청 달고 맛있는데 한 조각만 더 먹여주면 안 될까?”나머지 세 사람은 충격적인 그의 모습에 입을 쩍 벌렸다.육현석은 진저리를 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민 대표님, 은서랑 얘기 더 나누세요. 저는 먼저 밥 먹으러 가볼게요.”박지연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하고는 쌩하고 달아났다.병실 안에는 고은서와 민시후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러는데 다음에는 연기하기 전에 나한테 미리 따로 신호 보내주면 안 될까?”고은서는 아직도 방금전의 놀라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곽승재 껌딱지 새끼를 가만두면 안 되지.”민시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한 시간 후, 육현석은 곽승재가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형, 민시후 그 새끼 진짜 사람 약 올리는 데는 짝이 없어. 형수님 옆에 꼭 붙어있으면서 심지어 사과까지 먹여달라고 한다니까.”방금전 민시후의 모습을 떠올린 육현석은 씩씩거리며 말했다.“형수님을 바라보는 눈길은 또 어찌나 오글거리던지. 형수님을 완전히 자기 소유로 생각하고 있다니까. 환자만 아니었으면 정말 달려가서 한 대 치는 건데.”그는 말하면 말할수록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그 많은 여자 중에서 왜 하필 형수님을 좋아한다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다니까.”그러다 육현석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곽승재를 보며 물었다.“형, 내 말 듣고 있어? 형은 화 안 나?”곽승재는 방금전부터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육현석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형,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하필 그 위급한 상황에 백유미를 구하려고 한 거야?”육현석은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속이 답답해 났다.“그 많은 인력과 재력을 소모하면서 힘겹게 형수님을 찾았으면 당시 상황이 어떻든지를 막론하고 형수님 곁

  • 어게인, 비긴   제661화

    민시후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뭐가?”고은서는 고개를 들고 의문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우리 서로 알고 지낸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잖아. 내가 다른 사람보다 매력이 철철 넘쳐흐르는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날 좋아하게 된 거야?”“왜 갑자기 널 좋아하게 됐다니?”민시후는 거동만 불편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이라도 일어나 그녀의 이마를 한 대 콩하고 치고 싶었다.“그러니까 지금 내 마음을 의심하는 거야? 지금까지 내가 널 좋아한다는 말을 거짓말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고은서는 헛기침을 하면서 대답했다.“종일 껄렁대고 다니는데 뭐가 진심이고 뭐가 거짓말인지 어떻게 구분해.”“고은서, 너 진짜 한 대 맞을래?”민시후가 화를 내면서 얼굴을 홱 돌렸다.고은서도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는 걸 알고 있었다.민시후가 그녀를 도와 백유미한테 함정을 파줄 뿐만 아니라 집까지 사주고 또 서운도 함께 가주고 심지어 동물원까지 선물하는 걸 봐서는 그는 처음부터 진심이었다.그저 그녀가 계속 의심하면서 그의 진심을 의심했을 뿐.고은서는 씩씩거리고 있는 민시후를 보면서 조심스레 사과 한 조각을 그의 입 가까이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맛 좀 보지 않을래?”“싫어.”민시후가 그녀를 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고은서, 넌 확실히 너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매력적이기는커녕 보는 사람 화날 정도로 멍청해. 내가 순간 눈이 멀고 머리에 문제가 생겨서 널 좋아하게 되었나 봐. 됐지?”“...”고은서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넌 왜 자꾸 너 자신을 비하하는 거야? 대체 곽승재한테서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으면 자신을 그 정도로 내리까냐고.”민시후가 씩씩거리며 물었다.“어느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다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어? 최선을 다해 그 여자를 지키려 하는 게 정상이 아니야? 그런데 왜 너는 자꾸 그걸 부담으로 생각하는 건데?”민시후는 자책하는 고은서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화가

  • 어게인, 비긴   제660화

    박지연과 육현석이 나간 후 고은서는 민시후가 계속 마음에 걸려 그의 병실로 갔다.하지만 병실 앞에 도착한 그녀는 한참 동안 머뭇거렸다.박지연의 말대로 목숨 바쳐 자신을 구한 민시후의 마음이 가식일 리가 없었다.그러나 고은서에게 있어 이건 하나의 부담과도 같았다.그녀는 민시후가 단지 자신을 놀리게 재밌어서 좋아한다고 하면서 그녀에게 집착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곽승재를 엿먹이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단 한 번도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고은서?”바로 이때, 병실 안에서 민시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지금 문밖에 있지?”고은서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내가 밖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의사와 간호사들은 문을 지키는 습관이 없거든.”민시후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그런데 안 들어오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민시후가 무언갈 눈치챈 듯 물었다.고은서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병상 옆으로 다가가 되물었다.“분명히 심하게 다쳤으면서 왜 거짓말한 거야?”‘아니지. 그저 스치면서 상한 거라는 말을 믿은 내가 바보지. 심하게 다치지 않았으면 병상에 누워서 꼼짝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민시후의 성격으로 내 병실로 찾아오지 않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너무 심하게 다치지 않았어. 적어도 곽승재보다는 심하지 않아.”“...”고은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젠 이런 것까지 비기는 거야?’민시후는 한참 동안 말이 없는 고은서를 보면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 내가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걱정하고 있는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 그리 쉽게 죽을 인간이 아니야. 너한테 오랫동안 붙어 다닐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헛소리 좀 그만 쳐!”고은서가 화를 내며 말했다.“알았어. 안 말하면 될 거 아니야.”민시후가 먼저 꼬리를 내렸다.“먹을 거 가져왔다며. 뭘 가져왔는데?”“이거.”고은서가 손에 있는 사과를 들어 보

  • 어게인, 비긴   제659화

    곽승재의 차갑고 결연한 표정을 본 백유미는 순간 불안해졌다.‘어느 부분에서 문제라도 생긴 건가? 고은서는 원지훈이 직접 T국으로 데려온 거고 프로젝트도 확실히 존재하는 거여서 내가 T국에 온 것도 아주 마땅한 일일 텐데. 심지어 이렇게 심하게 다쳤을 뿐만 아니라 원지훈도 이미 죽었는데 곽승재는 왜 자꾸 이 모든 게 다 내가 꾸민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아니면 고은서의 말이라면 이젠 굳게 믿는다는 건가?’백유미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있을 때 곽승재는 폰을 꺼내 녹음 파일 하나를 재생했다.“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해. T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절대 고은서한테 들켜서는 안 돼. 이번 일까지 망치면 너랑 네 엄마 진짜 감방으로 보내버릴 테니까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다름 아닌 그녀와 원지훈의 대화 내용이었다.백유미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등골이 오싹해 나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이건 어디서 난 거야... 누군가 날 모함하려고 하는 거야! 이거 합성한 거야. 승재야, 다시 한번 조사해봐. 난 억울하다고!”백유미가 소리쳤다.그러나 곽승재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다른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그녀가 T국에 있는 사람과 협상한 내용부터 그녀가 짠 상세한 계획까지 다 녹음되어 있었다.그녀의 섬뜩한 목소리가 병실에서 유난히 잘 들렸다.“똑똑히 들었어? 다신 한 번 더 재생해줄까?”곽승재가 물었다.얼굴이 삽시에 창백해진 그녀는 더는 새로운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승재야, 난... 난 그저 은서 씨를 간단하게 겁만 주려고 했어. 진짜 해칠 생각은 없었어.”“온갖 방법으로 은서를 속이면서 T국으로 데려간 것도 모자라 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찾아놓고서 그저 겁만 주려고 했다고?”곽승재의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졌다.“승재야, 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용서해줘.”백유미는 상처투성이인 몸을 이끌고 병상에서 일어나 곽승재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내가 거짓말을 했어. 난 지금도 널 사랑하고 있어. 네가 고은서랑 이혼하면 나

  • 어게인, 비긴   제658화

    고은서는 서로 물러서지 않으며 계속 다투려 하는 두 사람을 보다 못해 입을 열었다.“두 분 싸울 거면 나가서 싸우시지 그래요? 저 환자예요.”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그제야 방금전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유치했는지를 깨달았다.“지연아, 미안해. 내가 너무 흥분했나 봐.”육현석이 먼저 사과했다.“나 급하게 오느라고 밥도 못 먹었는데 넌 안 배고파? 같이 나가서 밥이라도 먹고 들어올래?”박지연은 갑작스레 바뀐 육현석의 태도에 약간 어색해졌다.“난...”그녀가 거절하려고 할 때 옆에 있던 고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둘이 같이 가서 먹고 와. 나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박지연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다른 병실.백유미는 혼자 병상에 누워있었다.그녀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제일 심한 상처는 가슴 부근에 있는 자상이었는데 수술하면서 여러 바늘을 꿰맸다고 한다.바로 이때 누군가가 병실로 들어왔다.백유미가 눈을 뜨고 확인해보니 곽승재가 휠체어에 앉은 채 차가운 표정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약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고 허약하고 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승재야...”백유미가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움직일 때마다 밀려오는 고통에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그러나 곽승재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백유미는 포기하고 병상에 누운 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승재야, 지금 내 죄를 물으러 온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원지훈이 날 죽이려고 할 때 반항하지 말았던 거...”“원지훈이 널 죽이려 했는지 아니면 네가 원지훈을 죽이려 했는지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어.”곽승재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백유미는 눈이 휘둥그레서 의아해하며 물었다.“승재야, 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살기 위해서 실수로 원지훈을 찌른 거야.”“그건 경찰 측에서 알아서 판단하겠지.”곽승재의 얼굴빛이 더 어두워졌다.“T국에서 일어난 이 모든 일 다 네가 꾸민 거잖아. 왜 은

  • 어게인, 비긴   제657화

    박지연의 물음을 들은 고은서는 그녀를 힐끗 째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럼 물음 바꿔볼게. 깨어났을 때 민시후에 관해 먼저 물어봤잖아. 곽승재는 걱정되지 않았어?”박지연이 또다시 물었다.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쳤다.‘굳이 피곤하게 걱정할 필요가 있나.’그녀는 자신을 뚫어지라 쳐다보는 박지연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박지연 씨, 그냥 민시후랑 곽승재 중에서 누가 더 그쪽 마음에 드는지 직설적으로 말씀하시죠.”“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야. 아직도 곽승재한테 미련이 남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 미련 남지 않았다면 민시후랑 사귀어 봐도 괜찮지 않아?”박지연이 헤헤거리며 말했다.“안 돼! 민시후랑 사귀면 안 된다고!”박지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병실 밖에서 육현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내 그가 병실 문을 열고 걸어 들어왔다.“여긴 어쩐 일이야?”“승재 형이랑 형수님한테 이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 당연히 보러 와야지. 지연아, 넌 왜 나한테 안 알려줬어. 알려줬으면 같이 왔을 텐데.”“미안, 나도 너무 급해서 미처 생각 못 했어.”비록 박지연이 자신에게 너무 의지하지 않는 게 정상이긴 했지만 육현석은 저도 모르게 약간 속상했다.“형수님, 괜찮아요? 크게 다치진 않았죠?”“계속 형수님이라 부를 거면 나가요. 진짜 형수님은 다른 병실에 있으니까.”고은서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그런데 고은서 씨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서먹해 보이잖아요. 게다가 제가 두 살 더 많은데 누나라고 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생이라고 부르기에는 또 너무 오글거리잖아요. 그럼 그냥 말 놓으면서 은서라고 부를까요?”고은서는 형수님만 아니라면 호칭에 관해 별다른 요구가 없었다.“그냥 형수님만 아니면 돼요.”‘몇 달 전까지만 해도 형수님이라는 호칭에 엄청 집착했는데 이젠 형수님이라고 부르기만 해도 진저리치네. 승재 형은 대체 형수님한테 얼마나 큰 상처를 준 거야.’“은서야, 승재 형 널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어. 그러니까 승재 형한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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