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008화

Author: 류한나
고은서는 그 일로 곽승재의 뺨까지 내리쳤었다.

‘그러니까 내가 마재경을 해치려 할까 봐 다른 곳으로 옮겨준 게 아니라 내 말을 듣고 정말 라이트문에서 쫓아냈단 말이야?’

곽승재는 고은서의 표정 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기억났으면 계속해도 되지?”

그는 고은서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또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곽승재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둘러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목을 부축한 채 방금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숨이 막혀온 고은서는 부득이하게 고개를 들고 그의 키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키스가 끝난 후, 고은서는 곧 질식할 것만 같았다.

곽승재의 몸은 점점 더 뜨거워 났고 그곳도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를 발견한 고은서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곽승재, 당신 정말 변태야?”

그녀의 발그스름한 얼굴과 촉촉한 입술을 바라보고 있던 곽승재는 욕구가 억누를 수 없을 만큼 거세져 가는 것 같았다.

“은서야, 난 그저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정말 곧 터질 정도로 네가 그리웠어...”

곽승재는 말하면서 또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

그러나 고은서는 더는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던지라 이내 고개를 홱 돌렸다.

“잊지 마. 우리 이미 이혼한 사이야. 게다가 당신도 새로운 여자가 생겼잖아. 선 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고은서는 애써 덤덤한 척하면서 말했다.

곽승재는 그녀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고은서의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아니면 무언갈 떠올렸는지 그는 이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눈빛도 점점 어두워졌다.

마침 퀸이 뒤에서 야옹거리는 바람에 고은서는 그 틈을 타 곽승재를 밀어냈다.

“얼른 놔.”

그는 고은서를 잡고 있던 손의 힘을 풀면서 뒤로 한발 물러서더니 끝내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고은서가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할 때 뒤에서 곽승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은서, 이건 네가 나한테 진 빚이야. 난 그저 마땅하게 돌려받을 뿐이고. 절대 집착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어.”

고은서는 그의 말에 응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어게인, 비긴   제1009화

    발신자는 다름 아닌 송민준이었다.“민준 씨, 무슨 일이죠?”“민아한테서 들었는데 새 폰을 거절했다면서요?”고은서는 이내 웃으면서 답했다.“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요. 그저 폰일 뿐인데 여분으로 둔 폰이 하나 더 있어서 그냥 그 폰을 쓰면 돼요.”“제가 폰에 손이라도 댔을까 봐 걱정되어서 그러는 건가요?”송민준이 갑자기 예상치 못한 질문을 투척했다.고은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확실히 걱정되긴 했지.’그녀는 지금까지도 송민준이 어떤 사람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어떨 땐 위험하게 느껴지다가도 간혹 젠틀한 면을 보일 때도 있었다.그러나 폰만은 마음 놓고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어보면 나더러 어떻게 대답하라는 거지?’“장난이에요.”고은서가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송민준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폰은 거절했으니 다른 선물로 골라볼게요. 어떻게서든 제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어서요.”“민아를 봐서 도와준 건데 괜찮아요. 민아 오빠만 아니었더라면 아마 상관하지도 않았을 거예요.”고은서가 사실대로 말했다.“제가 민아 덕분에 살았네요. 시간 편할 때 민아도 불러서 같이 밥 한 끼 먹죠.”고은서는 흔쾌히 승낙했다.송민준은 이어 어젯밤에 도주한 세 사람이 이미 경찰에 잡혔는데 응당한 벌을 받게 될 거라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은서에게 전해주었다.전화를 끊은 후 텔레파시라도 통한 건지 이내 박지연한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누구랑 통화하고 있었어? 계속 부재중이라고 뜨던데.”고은서는 송민준이랑 통화하고 있었다면서 어젯밤에 있었던 일까지 다 그녀에게 알려주었다.박지연은 이내 걱정하면서 다친 곳은 없냐고 물었다.그녀는 괜찮다는 답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 진짜 절에라도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자꾸 재수 없는 일만 생기는 거야?”“시도 때도 없이 이런 사고가 자꾸 생기는데 나도 왜 이렇게 재수 없는지 모르겠어. 보살님한테 빌어서 해결될 일이라면 네가 대신

  • 어게인, 비긴   제1010화

    고은서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정말 절에 가는 거야?”“당연하지. 마침 육현석도 시간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같이 절에 가서 간절하게 빌고 주변에서 놀다 돌아오자. 일도 쉬면서 해야지.”박지연이 답했다.‘육현석도 같이 가는 거구나. 쉬는 게 아니라 그냥 데이트하러 가는 거겠지.’“난 굳이 두 사람 사이에 끼고 싶지 않은데.”“괜찮아. 너도 이젠 습관 될 때가 되지 않았니?”박지연이 웃으면서 말했다.“...”고은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박지연과 시간을 정한 후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그러나 뜻밖으로 곽승연과 마주치게 되었다.품에 퀸을 안고 있는 걸 봐서는 아마 곽승재 집에서 나온 듯했다.“언니! 언니도 여기 살아요?”곽승연은 그녀를 보자마자 무척 기뻐했다.‘따지고 보면 승연이를 못 만나지도 꽤 됐네.’곽승연의 상태는 전보다 훨씬 좋아졌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눈에 띄게 좋아하며 총총 달려왔다.“응. 승연이는 여기에 왜 온 거야?”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엄마가 오늘 바빠서 같이 못 있어 준다고 나갔는데 마침 오빠를 너무 오래 못 본 것 같아서 기사님 차에 오빠 찾으러 온 거예요.”곽승연의 말하는 속도도 전과 달리 많이 빨라졌다.마침 곽승재가 집에서 걸어 나왔다.그는 고은서를 보고 입술을 달싹이더니 끝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틀 전의 키스를 떠올린 고은서도 그한테 별로 인사하고 싶지 않았다.“승연아, 언니는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그러자 곽승연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언니, 어디 가는 거예요?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고은서는 전에 편한 시간에 그녀를 데리고 놀러 가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아무튼 박지연이랑 육현석 두 사람과 나가는데 승연이를 데리고 가도 괜찮겠지?’“승연이 데리고 어디 갈 생각이었어?”고은서가 곽승재를 향해 물었다.“판주에 처리할 일이 생겨서 사무실에 데려가려고.”곽승재가 덤덤하게 답했다.‘굳이 휴식일에 동생을 데리고

  • 어게인, 비긴   제1011화

    고은서는 곽승재의 표정 변화를 눈치챘지만 그에게 더 설명해줄 생각은 없었다.고은서는 곽승연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곽승재도 고은서에게 있어서 곽승연이 본인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었다.아마 누가 곽승연을 데리러 올지 물어도 고은서는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곽승재는 그저 퀸을 품에 안은 채 우두커니 서서 고은서와 곽승연이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언니, 오빠도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엘리베이터에 오르자 곽승연이 소곤대며 말했다.“아니야, 너희 오빠는 일이 바빠서 안 가고 싶을 거야.”이윽고 곽승연이 또 물었다.“언니랑 오빠는 다시 화해할 거예요?”곽승연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작게 웃고는 곽승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답했다.“승연아, 언니가 말했지? 언니랑 승연이 오빠의 관계가 어떻든지 우리 둘 사이의 우정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고 말이야.”곽승연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느새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고 고은서는 곽승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고은서는 데리러 온다던 박지연이 도착했는지 몰라 연락을 하려고 핸드폰을 꺼낸 찰나에 마침 검은색 차 한 대가 천천히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였다.운전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송민준이었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송민아였다.“짜잔! 놀랐지?”송민아는 냉큼 조수석에서 내려 고은서를 놀래줬고 덕분에 고은서는 어리둥절한 채 송민아에게 물었다.“여긴 어떻게 온 거야?”“어떻게 오긴, 당연히 너 데리러 왔지!”송민아가 해석을 덧붙였다.“지연 언니가 같이 참배하러 가자고 연락이 왔었는데 오빠도 시간이 빈다길래 같이 왔어!”알고 보니 박지연이 송민아도 함께 부른 것이었다. 고은서에게 한 가지 의문이 있다면 박지연이 남자친구를 챙기느라 자신을 챙기지 못할까 봐 송민아를 부른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여긴 누구야?”송민아는 얌전하고 순한 곽승연을 보고 물었다.고은서는 웃으며 곽승연을 그들에게 소개해주었다.“승연이라고 해. 곽승재 여동생이야.”

  • 어게인, 비긴   제1012화

    고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마 그럴 일 없을 거야. 곽승재 말로는 회사에 급히 볼 일이 있다고 그랬거든.”박지연은 흥하고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제일 좋기는 오지 말았으면 해. 최근에 그 인플루언서랑은 아직도 안 헤어졌지? 오기만 해, 뭐가 됐든 내가 그 사람을 보고도 욕을 참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고은서는 작게 웃고 대답했다.“가자, 현석 씨가 표를 샀대.”육현석은 표를 손에 쥐고 다가왔고 송민준은 일행들에게 줄 물과 기도할 때 사용하게 될 향을 사 들고 다가왔다.“송민준 씨가 너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귀한 쉬는 날에 우리랑 같이 절에 오는 고생을 찾아서 한다는 게 말이 돼?”박지연은 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고은서는 박지연을 한번 흘기고는 대답했다.“그래, 네 말대로 지금 나한테 눈이 멀어서 다른 건 다 안중에도 없어서 내가 어딜 가든 다 따라오나 봐. 어떻게 좀 만족스러운 대답인가, 박지연 씨?”“...”박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때마침 육현석이 다가온 덕분에 둘의 대화는 그쯤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다.절은 엄숙하고 고요했으며 종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절에 들어서니 거대한 고목 몇 그루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들은 바에 의하면 이 절은 당나라 때부터 존재해왔다고 한다. 몇 번의 격변을 겪으며 예전만큼 성대하지는 못하나 여전히 그 명성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발길이 끊기지 않는 곳이었다.박지연과 육현석이 앞장섰다.송민아와 곽승연은 생각보다도 더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았다. 모든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고 심지어는 땅에 떨어진 은행나무 잎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둘이 딱 붙어 관찰하고 다시 걸어가곤 했다.그리고 고은서와 송민준이 제일 뒤에서 함께 그들을 따라갔다.고은서는 가장 영험하고 중생을 두루 보살핀다는 X신전에 도착해서 평안등 하나를 띄웠다.그러면서 타국에 있는 민시후가 무탈하게 수술을 마치고 얼른 몸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신전에서 나왔을 때 송민준이 고은

  • 어게인, 비긴   제1013화

    고개를 들어 곽승재의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과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동자를 확인한 고은서는 그의 알 수 없는 어색함과 조금은 강압적인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고은서는 굳이 곽승재와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다.“민준 씨가 말한 그대로야. 승연이가 민아랑 노는 걸 좋아해서 내가 내내 승연이 옆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뿐이야.”곽승재는 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고은서의 말에 트집을 잡았다.“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았어야지.”갑작스러운 곽승재의 태도에 고은서는 어이가 없다 못해 그가 일부러 시비를 거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은서는 곽승재를 상대해주기도 귀찮아 퉁명스럽게 말했다.“미안, 내 잘못이야. 지금 당장 승연이를 찾으러 갈게.”말을 마친 고은서는 곧장 옆에 있는 사찰로 들어갔다.여시은은 눈을 두어 번 끔뻑거리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곽승재에게 물었다.“곽 대표님, 왜 은서 화를 돋우고 그러세요!”곽승재는 고은서가 향한 곳을 바라보며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내가 승연이를 보러 가야겠어요.”곽승재까지 자리를 뜨자 사찰 앞에는 여시은과 송민준 둘만 남게 되었다.여시은은 송민준을 향해 웃어 보이며 물었다.“송 대표님, 아까 은서 머리카락에 붙은 나뭇잎을 떼주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은서의 마음을 사려는 노력이라고 봐도 되는 부분인가요?”송민준은 여전히 온화한 태도로 여시은의 말에 대답했다.“마침 눈에 보여서 도와준 것뿐이에요.”“듣자 하니 며칠 전에 송 대표님한테 작은 사고가 생겼다고 그러던데요, 게다가 상처도 입으셨다고요?”여시은이 계속해서 물었다.“제 부상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큰일이라면 저한테 무작정 시비를 걸다가 경찰에게 잡혀간 사람들에게나 생겼겠네요.”여시은은 작게 웃었다.“일부러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라면 골치가 아파도 싸죠.”여시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송민아와 곽승연이 둘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승연아, 오빠가 지금 승연이 찾고 있는데 나랑 같이 오빠 찾으러 갈래?”여시은은 산뜻한 미

  • 어게인, 비긴   제1014화

    “...”그제야 고은서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승연이가 아까까지 여기 있었는데 아마 민아랑 다른 곳에 갔나 봐. 내가 전화해서 물어보면 될 일이야!”말을 마친 고은서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을 때, 곽승재가 조롱하듯 말했다.“민시후가 가니까 이젠 송민준이야?”그 말에 고은서는 행동을 멈추고 곽승재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는 넌 지금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딴 걸 묻는 거지?”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낀 곽승재는 차분하게 대꾸했다.“고은서, 넌 정말 독한 사람이야. 사람을 다루는데 무서우리만치 인정사정없을 뿐만 아니라 손에 쥐고 있는 게 누구의 감정이든지 참 쉽게 휘둘러. 네가 놓고 싶을 때 놔버리면 그만이지.”“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고은서가 바로 반박했다.“너야말로 어제는 마재경을 옆에 끼고 다니더니 오늘은 시은이랑 보란 듯이 이곳에 찾아왔잖아. 네가 그러고도 나한테 뭐라 할 자격이 있냐고!”“은서야 넌 지금 곽 대표님을 오해하고 있어.”곽승재가 말문이 막혀 어버버 거리고 있을 때 여시은이 갑자기 튀어나왔다.여시은이 고은서에게 설명했다.“오늘 곽 회장님께서도 판주 투자은행에 가셨는데 곽 대표님께서 나갔다 올 거라는 걸 알게 되셨고 내가 심심해할까 봐 나랑 같이 나갔다 오라고 하신 거였어. 절대 은서 네가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게 아니야!”고은서는 원래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여시은을 보니 기분이 더할 나위 잡쳤다.고은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시은아, 마침 곽승재도 함께 있으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짚고 넘어갈게. 난 곽승재에게 일말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고 다시 결혼할 생각은 더더욱 없으니까 날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로 생각하지 않아도 돼!”그 말을 들은 여시은은 단 한 번도 둘 사이에 본인이 껴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해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은서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렇구나. 그럼 시은이 너도 곽승재와 거리를 좀 두는 게 좋겠어. 나랑 곽승

  • 어게인, 비긴   제1015화

    여시은은 솔직하고도 재치있게 곽승재의 말을 받아쳤다. 그런 여시은의 태도에 곽승재의 미간이 묘하게 찌푸려졌다.“시은 씨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당분간은 결혼 생각이 없고 시은 씨가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시은 씨도 저한테 너무 많은 감정을 기대하지 말아요.”곽승재의 말에 여시은의 얼굴에 드물게 상실감이 드리웠다. 하지만 여시은은 화를 내지 않았고 그저 입술을 삐죽이고는 투덜거릴 뿐이었다.“곽 대표님, 이렇게나 무뚝뚝해서야 되겠어요? 저도 제가 잠깐 뭐에 홀린 건 아닌지 반성 좀 해봐야겠어요!”곽승재는 여시은의 농담을 받아주지 않았다.“승연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얼른 가봐야겠어요.”여시은은 굳이 곽승재를 따라가지 않았다.“곽 대표님, 은서도 절 반기지 않는 것 같고 대표님도 저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으니 전 먼저 돌아갈게요.”곽승재는 여시은을 말리지 않았다.“기사님은 밖에 있어요. 제가 기사님한테 시은 씨 모셔다드리라고 말해둘게요.”여시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리고 곽 대표님, 나중에 은서한테 제가 은서 향수 완성품을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다고 좀 전해주실래요? 항상 기다리고 있다고도 말이에요!”여시은은 가려다 말고 상냥한 목소리로 곽승재에게 말했다.곽승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은행나무 잎이 여시은의 팔에 떨어졌다. 팔에 붙은 나뭇잎을 떼서 본 여시은은 웃으며 나뭇잎을 부스러기로 만들어버리고는 털어버렸다.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이른바 소원 나무는 엄청나게 거대했다. 나무 기둥은 여러 사람이 둘러싸야만 안아지는 정도였고 나무뿌리는 화단에 둘러싸여 있었다.나무에는 목재로 된 소원패가 가득 걸려 있었고 바람이 불면 딸랑거리며 듣기 좋은 소리를 냈는데 그것도 나름대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곽승재가 도착했을 때, 송민아는 송민준을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고 고은서는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일찌감치 다 쓴 곽승연이 있었다.곽승연은

  • 어게인, 비긴   제1016화

    고은서는 민망하긴 했지만 곽승재가 이미 이렇게나 높게 들어 올렸겠다, 기회를 틈타 더 망설이지 않고 소원패를 제일 높은 나뭇가지에 걸었다.“언니 소원패는 엄청 높은 곳에 걸었으니까 소원이 꼭 이뤄질 거야!”곽승연은 꺄르르 웃으며 손뼉까지 쳤다.때마침 송민아와 송민준도 안에서 나와 그 둘을 향해 다가왔다.고은서는 정말 민망하기 짝이 없어 곽승재한테 어서 내려달라고 사인을 보냈다.멀지 않은 곳에서 박지연과 육현석도 둘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둘이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본 육현석은 당연하게도 기뻤지만 박지연은 불쾌하다는 듯 곽승재의 손을 내치고는 고은서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그리고는 곽승재에게 그 인플루언서와의 관계를 언급하며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 고은서에게 찝쩍대서야 되겠냐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박지연의 말을 들은 곽승재는 별다른 변명을 하지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전 그냥 은서가 키가 작아 높은 곳까지 닿지 않는 것 같아서 도와준 것뿐이지 찝쩍거린 게 아니에요.”박지연은 곽승재의 말을 믿지 않았다.“그러시구나, 참 마음씨도 좋네요? 그러면 여기서 인간 사다리나 하시면 되겠어요. 높은 곳에 닿지 않는 사람은 다 도와주시지 그래요?”숨도 안 쉬고 몰아붙이는 박지연에 곽승재는 찍소리도 할 수 없었지만 육현석도 그를 달리 도와줄 수 없었다.육현석은 몰래 곽승재를 부른 것만으로도 이미 크나큰 모험을 한 격인데 박지연의 심기를 더 건드렸다간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송민준이 와서야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곽 대표님도 도와주려고 그런 거잖아요.”“곽 대표님, 여시은 씨는 함께 오지 않은 건가요?”송민준이 무심결에 곽승재에게 물었다.이에 곽승재가 고은서를 한번 보고는 대답했다.“시은 씨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요.”곽승재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본능적으로 어딘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곽승재를 따라 굳이 이곳까지 함께 온 여시은이 얼마 있지도 않고 바로 이렇게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1052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늘 규칙적이던 생리가 이번 달은 불규칙해졌다. 일주일이나 늦춰진 건 둘째치고 여태 한 번도 아픈 적 없었던 아랫배가 아프기 시작했다.몸에 이상이 있는 걸 눈치챈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고은서는 죽다 살아난 경험을 한 뒤로 자연스레 건강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결국 고은서는 가방을 챙겨 나와 차에 타서 기사에게 근처의 산부인과로 가달라고 말했다.아랫배가 자꾸 은근하게 아파 고은서는 가는 내내 손으로 아랫배를 어루만졌다.차에서 내렸을 때 코를 쿡 찌르는 과일 썩은 냄새에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고은서는 병원에 들어가서 재빨리 진료 접수를 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산부인과 층이라 그런지 역시 여성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진료 접수도 했겠다, 고은서는 그저 복도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생각처럼 빠르지 않은 진료 속도에 조금 답답해진 고은서는 사람이 적은 앞쪽으로 가서야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은서는 복도에 소음이 아까보다 커진 것을 느꼈고 그 속에서 여자들의 “잘생겼다”, “키 엄청 크네”와 같은 감탄 소리도 들었다.산부인과에도 남자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같이 온 가족들이었다.‘남자도 같이 온 가족이 있을 텐데 저렇게 대놓고 감상을 해도 되는 거야?’고은서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대체 남자가 얼마나 잘생겼길래 산부인과에서 여자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오는지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고은서가 금방 몸을 돌렸을 때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가 고은서의 앞에 나타났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곽승재였다.곽승재의 뒤를 따른 건 사복을 입은 체격이 우람한 남자 두 명이었다.고은서는 잠깐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잔뜩 어리둥절해 있었다. 고은서의 환각이 아니라면 곽승재가 정말 산부인과에 나타난 것이다.“따라와!”곽승재는 고은서가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 많은 사람의 시선 속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고은서를 비상계단으로 데려갔다.“왜 이러는 거야, 곽승재. 왜 또 멋대로

  • 어게인, 비긴   제1051화

    고은서는 박지연이 깜짝 놀라는 소리에 덩달아 소스라치게 놀랐다.“뭘 알아냈는데 이렇게 놀라는 거야?”박지연이 다급히 대답했다.“여시은이 대놓고 너를 겨냥하는 건 어쩌면 곽승재 때문만이 아니라 여 대표님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고은서는 잔뜩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는 박지연을 쳐다봤다.“잘 생각해봐. 여시은은 자기보다 뛰어나고 능력 있는 네가 여 대표님 관심까지 한 몸에 받으니까 못마땅한 거야.”박지연은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말을 이어갔다.“여시은은 너한테 불리한 일들을 계속 꾸며서 네 이미지를 망치고 싶은 거야. 그러면 여 대표님도 너를 싫어하게 되겠지. 여시은이 제일 바라는 건 아마 여 대표님 앞에서 네 이름을 거론만 해도 대표님이 질색하는 거일 거야!”고은서는 여시은이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여 대표님은 여시은의 아버지야. 여시은을 끔찍이 사랑하고 여시은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주는 그런 사람이란 말이야. 여 대표님은 그냥 날 아끼는 후배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테고 그런 마음에서 나한테 더 잘해주는 거라고 해도 어떻게 딸을 대하는 태도랑 비교하겠어. 여시은이 고작 이런 거로 날 못살게 군다는 건 좀 억지 아닌가?”박지연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은서의 말도 도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럼 설마 네가 자기보다 예뻐서?”“... 특별한 게 떠오르지 않으면 억지로 생각해내지 않아도 돼.”“억지로 생각해내다니! 여자의 질투심만큼 무서운 게 또 어디 있다고 그래. 곽승재랑 여 대표님은 모두 너한테 친절하고 게다가 자기보다 예쁜데 질투가 안 나는 게 더 어렵지. 아마 생각하면 할수록 분해서 널 제대로 밟아버리고 싶을 거란 말이야!”“...”고은서는 어이가 없어 잠깐 말을 잃었다.“너 현석 씨랑 같이 있더니 쓸데없는 상상만 늘어난 것 같아.”“이게 왜 쓸데없는 상상이야. 여시은이 여태 널 물고 질척거리면서 놓아주지 않는 이유는 딱 두 가지야. 네가 의도치 않게 여시은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너한테 복수를

  • 어게인, 비긴   제1050화

    여시은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물론이지!”카페를 나온 고은서는 마음속 답답함을 털어내려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여시은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여시은의 배경이 워낙 큰지라 당장 대항하기 어려웠다.고민 끝에 고은서는 KK에게 전화를 걸어 여시은의 요 며칠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달라고 부탁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차로 향하던 그녀는 앞쪽에서 곽승재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발견했다.여재훈이 전날 곽승재도 경찰서에 갔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불러들인 걸까?딸의 일에 여재훈은 여간 신경 쓰는 게 아니었다. 고은서가 멍때릴 때 곽승재도 그녀를 발견했다.한 걸음 머뭇거리던 곽승재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그녀의 냉담함을 떠올리고는 아무 말 없이 카페로 향했다.운전기사가 대기 중이었던 차에 몸을 실은 고은서는 카페 창문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의젓한 자태의 곽승재가 예의 바르게 여재훈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그 옆에서 여시은이 달콤하게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다. 각도로 인해 곽승재의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여재훈의 만족스러운 미소는 선명하게 보였다.여재훈은 자신의 미래 사윗감에 대해 아주 만족해하고 있었다....박지연은 고은서와 여시은이 경찰서까지 갔다는 소식을 듣고 유일로 직접 찾아왔다.“이런 큰일을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박지연이 물었다. “어떻게 현석이에서 듣게 해.”고은서가 대답했다. “크게 문제 되지 않았고 이미 해결됐어.”“경찰서까지 간 게 큰 문제가 아니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빨리 말해봐!”고은서는 공원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박지연에게 설명했다.박지연은 듣자마자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시은 씨가 진짜 네 앞에서 고양이를 학대했어?”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뿐만이 아니야. 지난번 쿠아가 건물에서 떨어진 것도 그녀가 한 짓이야. 그래서 쿠아가 볼 때마다 여시은을 두려워하는 눈치더라고.”“그 여자 정말 변태야!”박지연이 분노를 표출하며 말했다. “여씨 가문도 대

  • 어게인, 비긴   제1049화

    여시은은 고급 맞춤 제작인 샤넬 원피스를 입고 귀여운 클러치 백을 든 채, 얼굴엔 여전히 달콤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그녀가 무표정으로 쿠아를 찌르던 장면이 떠오르자 고은서의 가슴속에서 다시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아빠.”여시은이 여재훈을 부르고 나서 이내 고은서를 바라보았다. “은서 씨도 계셨네요.”전날의 일로 마음이 편치 않은 듯 그녀의 말투엔 평소의 친근함이 사라지고 호칭도 서먹한 ‘은서 씨’로 돌아왔다.가식적인 친절을 가장하는 여시은보다 이렇게 냉정한 모습이 오히려 고은서에겐 더 나았다. 적어도 속이 덜 뒤집혔으니까.“시은아, 지금 은서 씨와 다 설명했어. 네가 쿠아를 정말로 아껴서 절대 일부러 다치게 한 게 아니라고.”여재훈이 말을 이었다. “너희가 다툰 건 분명 네 탓이 더 많을 테니 네가 은서 씨에게 사과해.”여시은은 입술을 삐죽이며 반박했다. “아빠, 제가 팔꿈치도 다쳤는데 그래도 제 잘못이 더 커요?”여재훈이 꾸짖듯 말했다. “은서 씨가 얼마나 차분하고 예의 바른 분인데, 네가 화나게 만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없잖니?”“시은아, 네가 해성에서 친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어. 네가 항상 아빠한테 은서 씨를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그래서 오늘 이 자리도 특별히 마련한 거야.”여재훈이 달래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소한 일로 불편한 관계가 되면 안 되지. 사과만 하면 이 일은 지나가.”여시은은 마치 설득당한 듯 고은서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말했다. “은서야, 미안해. 화 풀어줄 수 있겠니?”고은서는 여시은과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전날 사건에 곽 회장이 개입했다는 게 확인됐다. 본인은 상관없었지만 곽 회장이 다시 고씨 집안을 겨냥할까 봐 그게 두려웠다. 게다가 여재훈이 직접 만나 중재를 시도한 것만 해도 이미 양보한 거나 다름없었다. 설사 지금 여시은과 대립해도 여시은은 전혀 피해 볼게 없었다.겉보기에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적어도 여재훈에게는 좋은 인상을 남길

  • 어게인, 비긴   제1048화

    “여재훈 씨.” 고은서가 다가가 부르자 여재훈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고은서 씨, 어서 앉아요.”여재훈의 표정에서 고은서는 그가 질책하려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대화를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고은서가 앉자 여재훈은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으면서 주문하라고 했다.바쁜 오전 일과를 보낸 후라 에너지를 보충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여재훈과의 교류도 꽤 에너지 소모가 필요할 것 같아 고은서는 평소 좋아하는 커피와 디저트 두 가지를 주문했고, 꿀 프렌치토스트를 보자 추가 주문했다.프렌치토스트가 나오자, 고은서는 꿀을 조금씩 발라 먹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본 여재훈은 약간 의아해하더니 말을 이었다. “일반적으로는 꿀을 위에 뿌리는데, 은서 씨의 방식은 좀 특이하네요.”고은서가 대답했다. “어머니께서 프렌치토스트에 꿀을 이렇게 바르셨어요. 달콤함이 골고루 스며든다고 하셨는데 저도 어머니와 같은 습관이 몸에 배었네요.”이 말을 들은 여재훈은 무언가가 떠오르는 듯 사색에 잠겼다. 고은서는 꿀을 다 바르고 한입 베어 물었다. 정말 맛있었다. 여재훈과 한 조각 드셔볼지 물으려는 순간, 혼이 나간 듯한 그의 표정을 발견했다.고은서는 자신이 먹는 데에만 너무 열중한 것 같아 죄송함을 느꼈다. 여재훈이 딸의 문제를 논하고자 마련한 자리인데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실례했어요.” 고은서는 프렌치토스트를 내려놓으며 말을 꺼냈다. “저를 찾으신 건 시은이의 일을 말씀하시려는 건가요?”여재훈은 정신을 차리고 고은서가 한입 베어 먹은 프렌치토스트를 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먼저 드세요. 서두를 필요 없어요.”고은서는 더는 먹기만 할 수는 없어 대답했다. “제가 전날 공원 벤치를 걷어차서 따님을 넘어뜨린 점은 인정해요. 하지만 시은이가 쿠아를 다치게 하는 바람에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에요.”“경고를 하시려는 건지, 아니면 제가 시은이를 모함한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서 후회

  • 어게인, 비긴   제1047화

    고은서는 본래 고은혜를 놀려보려던 참이었다.그러나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은혜가 어딘가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친절하아양을 떨며 “성준 오빠, 그거 내려놓으세요! 제가 할게요!”라고 하는 통에 고은서는 할 말을 잃었다.전생에서는 고은혜가 비록 그녀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고은서와 마찬가지로 순수하고 마음에 꾸밈이 없었기에 원지훈에게 속아 그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이번 생에서 자매 관계가 개선되자 고은서는 그 부분이 약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이렇게 순진무구해서 여전히 사기당하기 쉬운 것은 아닐까?......변호사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변호사는 고양이가 확실히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으나, 조사 결과 하인이 학대하며 약물을 주입한 것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하인도 직접 시인했다고 한다. 고양이 입술의 상처는 외부 물체에 의한 것이지만, 좋아하는 음식을 급하게 먹다가 실수로 다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여시은의 반려묘인 쿠아가 평소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것은 펫숍 직원들도 증명할 수 있었다. 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렸다. 남들 보기에는 흠잡을 데 없이 쿠아를 사랑하는 척하던 여시은이, 알고 보니 고양이를 학대하고 모든 책임을 하인에게 전가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물며 고은서 자신도 예전에는 여시은이 쿠아를 진심으로 아낀다고 느꼈으니 말이다.변호사는 추가로, 여시은이 팔꿈치 부상을 당한 사건에 대해 고은서의 ‘무심코 한 실수’라는 이유를 사용했으며 공원에 CCTV가 없고 목격자도 없어 상해죄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곽 회장님이 이미 소식을 접하고 연락해 온 사실을 전하며, 최선의 결과는 양측 화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왔다. 고은서는 더 이상 여시은이 쿠아를 학대한다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쿠아를 여시은에게서 구출해 낼 수는 없을까?이때 고은서의 전화기에 여재훈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변호사와의 통화를 마치고, 고은서는 여

  • 어게인, 비긴   제1046화

    고은서는 서연정에게 어제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시은이 고양이를 다치게 했고 두 사람이 다툰 것만 언급했을 뿐, 다른 세부사항은 말하지 않았다. 여시은은 곽 회장이 마음에 들어 하는 며느릿리감이었기에, 고은서가 사모님 앞에서 그녀를 헐뜯는 건 뒤에서 고자질하는 것 같아 왠지 꺼려졌다. 고은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서연정은 사정이 이렇게 단순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았지만 묻지 않았다.“승재 아버지는 여씨 가문과의 혼사를 반드시 성사하려고 해. 여씨 가문 편을 드는 건 회장님의 성격상 당연한 일이니, 회장님의 태도는 신경 쓰지 마.”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곽 회장의 태도에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다. 단지 곽 회장이 다시 고씨 가문을 표적으로 삼을까 봐 걱정될 뿐이었다.아침 식사 후, 서연정은 곽승연과 함께 가자고 제안했고 곽승연은 예상대로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언니, 자주 찾아와도 돼요?”떠나기 전 곽승연이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전화하면 내가 마중 나갈게.”약속을 받은 곽승연은 서연정과 함께 떠났다.고은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유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MQ의 근황과 삼촌 내외의 상황을 물어보자, 유성준은 모든 게 정상적이며 삼촌이 최근 의사결정 시 독단적이지 않고 직원들과 상의한다고 답했다. 이 말에 고은서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은서 씨, 지난번 시은 씨가 향수 제작을 부탁했던 건 어떻게 됐어?”유성준이 묻자, 고은서는 그가 걱정할까 봐 이미 완성했고 문제없다고 둘러댔다.“성준 오빠, 커피 좀 끓여줘! 내가 만든 건 맛이 하나도 없어!”전화 너머에서 고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시만, 난 지금 은서랑 통화 중이야.”유성준은 온화하게 응답했다.“그래? 그럼 나도 통화할래!”곧바로 고은혜가 전화를 받아 말했다. “언니, 왜 성준 오빠에게만 전화하고 나한텐 안 해? 너무 편애하는 거 아냐!”고은서는 일부러 놀리며 말했다. “네가 MQ 모든 업무를 책임

  • 어게인, 비긴   제1045화

    고은서는 이런 일에 맞서 그 누구도 굴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방금 여시은과의 썰전을 끝낸 고은서는 곽승재와 다투고 싶지 않았다.‘변호사까지 데려와 날 도왔는데 이번엔 그냥 참고 넘어가자.’고은서는 눈치 있게 화제를 바꾸려 했다.“여시은 집안 하인에 관해 조사한 건 왜 나한테 말 안 했어?”그러나 곽승재는 조금 전에 고은서가 했던 말이 아직도 마음에 걸렸다.“고은서,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이번 일은 절대 너더러 날 다시 사랑해달라고 도와준 게 아니야.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승연이까지 널 얼마나 아끼는지 너 자신도 잘 알고 있잖아. 내가 나서지 않거든 절대 날 가만두지 않을 거야.”‘곽씨 집안 사람들 때문에 날 도운 거였어?’고은서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답했다.“힘들었겠네. 내가 한 가지 방법을 알려줄까? 다음부턴 입으로만 알았다 하고 굳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돼.”“...”곽승재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라이트문에 도착한 후 고은서는 차에서 내리면서 곽승재한테 말했다.“나 혼자 올라가도 돼. 마재경 씨가 다쳤다던데 얼른 가서 간호해줘.”고은서는 곽승재랑 올라가는 걸 원치 않았다. 그가 곽승연을 핑계로 자꾸 자신의 집에 드나드는 것도 싫었다.그래서 일부러 마재경에 관한 얘기를 꺼내며 그를 자극했다.아니나 다를까, 고은서의 말을 들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내 화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다가 쌩하고 떠났다....이튿날, 인터넷에서는 곽승재가 저녁에 마재경을 보러 병원으로 갔다는 기사가 떴다.스캔들 기사에 관심이 없던 곽승연도 우연히 보게 되었다.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오빠는 분명히 언니를 좋아하는데 왜 인터넷에서는 오빠가 이 언니랑 같이 있었다고 하는 거예요?”고은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답했다.“오빠랑 언니는 이미 이혼한 사이야. 그러니까 오빠가 누굴 좋아하든 누구랑 함께 있든 다 오빠의 선택이라는 거지. 언니랑 상관없는 일이야.”두 사람이

  • 어게인, 비긴   제1044화

    “R국에 있는 계좌인데 누가 이체했는지는 알 수 없더군요. 하지만 잘못을 저지른 하인의 아들이 갑자기 거금을 받았다는데 정말 우연일까요, 여시은 씨?”여시은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무언갈 떠올렸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곽 대표님, 설마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곽승재는 부인하지 않았다.여시은은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격동해 하며 반박했다.“저 아니거든요! 곽 대표님, 은서 씨를 도우려 하는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저를 모함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고 이런 말을 하는 목적이 대체 뭐죠? 계속 이러시면 저도 아버님을 찾아갈 수밖에 없어요.”곽승재는 아주 담담하게 화제를 바꾸었다.“전에 은서랑 함께 물에 빠진 걸 보았다는 직원 한 명을 찾았는데 은서가 밀어서 빠진 게 아니라 여시은 씨가 은서를 잡아당기면서 같이 빠진 거라고 하던데. 이건 증거가 확실하죠?”옆에서 듣고 있던 고은서는 약간 놀랐다.‘정말 목격자를 찾은 거야?’농장은 면적이 하도 커서 다른 레스토랑처럼 웨이터가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지 않았다.고은서는 어렴풋이 당시 물에 빠지고서야 소식을 접한 직원들이 달려온 걸 기억하고 있었다.‘목격자는 대체 어떻게 찾은 거지?’곽승재의 말을 들은 여시은은 씩씩거리면서 호통쳤다.“증거가 확실하다뇨? 이건 명백한 모함이에요. 그 사람 누구예요? 지금 당장 마땅한 벌을 받게끔 고소할 거예요.”그리고 이내 뒤돌아 변호사한테 말했다.“합의가 불가능하다면 그냥 조사하게 내버려둬요. 고은서 씨의 고의상해죄는 끝까지 추궁하도록 하고요.”‘반응을 보아서는 목격자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네.’고은서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얼마든지 추궁해 보세요.”이를 본 곽승재는 더는 여시은과 대화하지 않고 자신의 변호사에게 이번 일을 전적으로 맡겼다.고은서는 경찰을 도와 사건 경과를 기록했다.쿠아는 경찰서에 있다가 곧 감식 센터로 보내질 예정이었다.모든 절차가 끝나고 나니 시간도 꽤 늦어졌다.곽승재는 고은서와 함께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