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 도서관.진아연은 학교에서 저녁을 먹은 후 계속 도서관에서 책을 봤다.한창 책에 몰입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눈 온다! 올해 첫눈이야! 진짜 크게 오네! 나가서 눈싸움하자!""알겠어! 난 사진 찍어야지!"...도서관에 있던 사람들은 절반 이상이 밖으로 나갔다.진아연도 창가로 걸어가 창밖의 흩날리는 눈을 내다보았다.엄청 크게 오네. 너무 예쁘다!인터넷에서 첫눈이 올때 고백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게 괜히 한 소리가 아니었다.아름다운 것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때문이다."이봐요, 전화 왔어요!" 누군가 아연의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정신을 차리고 나니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고마워요!"그녀는 절뚝거리며 창가에서 자리로 돌아왔다.지난번에 산에서 발을 삔 후 너무 늦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너무 심하게 부어서 아직까지도 낫지 않았다.다행히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전화 반대편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눈꼬리가 올라갔다.그녀의 눈에서 빛이 났다.전화를 끊은 후에도 그녀 얼굴의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사람에게 항상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행운의 신이 지금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그녀는 물건을 챙겨 가방을 메고 최대한 빨리 밖으로 나갔다.잠시 후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그녀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진아연! 눈 오고 있어! 아직 도서관에 있는 거 아니지!" 전화에서는 여소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정아, 나 대학원 가기로 했어!""어어? 너 어떻게 된 거야? 대학원 안 간다고 하지 않았어?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거야?!" 놀란 여소정의 목소리는 순간 커졌다.진아연은 휴대폰을 귀에서 멀리 가져갔다. 아니면 고막이 견딜 수 없었다."너 노경민 교수님을 알아?!""글쎄! 여소정은 아무 생각 없이 답했다. "엄청 유명한 교수야?""당연하지! 그분은 나의 우상이셔! 방금 교수님 조수분이 내게 전
"내 생각엔 시준 형은 화나서 아연이를 만나지 않는 게 아닌거 같아… 경호원에게 물어봤는데 나뭇가지에 얼굴이 많이 긁혔대. 워낙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얼굴의 상처가 낫기 전까지는 누구도 만나지 않을 거 같애.""그런 거구나! 아연이에게 알려줘야지! 아니면 걘 별의별 생각을 다 할 거야!" 여소정은 아연에게 하준기가 한 말을 문자로 보냈다.진아연은 답장으로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소정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2주 후면 박시준의 생일이라는데, 무슨 선물 줄지 생각했어?""아니, 나도 뭘 줄지 모르겠어.""날씨도 추운데, 스웨터를 떠 주는 게 어때?""진심이야? 지금도 직접 뜬 스웨터를 입는 사람이 있어??" ..."내가 뜨라면 떠. 남자는 그런 거 좋아한다니까.""문제는 나 뜨개질 할 줄 몰라!""털실 파는 사람이 가르쳐 줄 거야! 정 안 되면, 동영상 보며 배우든가 해! 넌 똑똑하니까 금방 배울 거야!""다른 건 없어? 왜 굳이 스웨터를 뜨라는 거야?""남자들이 좋아하니까! 준기 오빠는 첫사랑 여자친구가 떠준 스웨터 때문에 그 여자를 잊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대… 질투 나지만, 나는 떠주지 않을 거야!"진아연은 눈 내리는 거리에 서서 소정이 보낸 문자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그녀 앞에 차가 멈춘 차가 경적을 울리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그녀가 부른 택시였다.한 시간 후, 그녀는 털실 한 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장희원은 그녀에게 다가가 봉투 속 털실을 보고는 물었다. "목도리 뜨려고?"아연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답했다. "스웨터를 뜨려고."희원의 눈빛은 순간 의미심장해졌다. "누굴 주려고? 나 주려고 뜨려는 건 아닐 테고. 시준이 주려는 거지?""엄마도 떠줄 건데… 곧 박시준의 생일이라 먼저 박시준 주려고. 내가 좀 더 익숙해지면 더 좋은 걸로 떠줄게."장희원은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근데 스웨터를 떠주는 거 요즘도 유행이니? 나 때는 꽤 유행했는데…""소정이가 지
"아침에 항우울제를 드렸는데 안 드셨어요." 의사의 얼굴에는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약을 안 드시면 안 되는데!""내일 얘기를 나눠봐야겠어요.""제가 듣기로는 회장님께서 진아연의 말이라면 잘 듣는 편이라고 하던데요. 아니면…""안 돼요! 내 아들이 이렇게 된 게 누구 탓인데. 그 여자는 내 아들에게 불행만 가져다 줄 뿐 입니다!" 박 부인이 흥분해 하며 말했다.의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사는 박시준의 건강 상태만 책임질 뿐이다."일부러 진아연 얘기를 꺼낸 게 아니란 걸 알아요… 내일 다시 봅시다! 시준이가 내 말을 들을지 한번 보죠." 박 부인은 누그러든 어투로 말했다.그녀는 아들이 빨리 나을 수 있기를 바랐고, 그럴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용납할 수 있었다....진아연은 샤워를 한 후 창가로 걸어가 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지면은 새하얀 이불을 덮었고, 어두운 밤도 조금 밝아져 있었다.마음속에는 말못할 충동이 솟구쳤다.전화기를 들고 박시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이리저리 생각한 후 혹시나 그가 전화를 받지 않을까 봐 그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로 그녀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거라도 좋을 것 같았다. 계속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 이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메시지를 보낸 후 그녀는 거실로 가서 털실을 꺼내 뜨개질을 시작했다.주위는 고요했고, 마음도 잠잠해졌다. 새벽 2시, 박시준은 악몽에서 깨어났다.이마에는 땀이 질벅하였고, 눈에는 보기 드문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요즘 그는 매일 밤 자신이 죽는 꿈을 꾸고 있었다.그보다도 더 무서운 게 있었다.꿈속에서 그의 시체는 완전하지 않았고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그렇게 그는 썩어가고 있었다!주위에는 파리와 구더기가 가득했다.깨어날 때마다 그는 자신에게서 혐오감을 느꼈다!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실수로 카톡을 터치하였더니, 진아연의 프로필
"알겠습니다."잠시 후 박시준 앞에 커피 한 잔이 놓였다.조지운이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마침 이쪽으로 오고있는 강진을 만났다.강진은 화장을 하지 않았고, 얼굴은 유난히 초췌해 보였다.조지운은 그녀 앞에 다가가 입을 열려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진이 사무실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시준 오빠…미안해."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다 주승 오빠의 음모였어. 오빠 다리가 안 좋은 걸 알고 의도적으로 오빠를 속여 산에 오르게 한 거야. 그 산은 너무 가팔라 평소에 등산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오빠를 죽이려고 했던 거야."박시준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알고 있어.""미안해! 주승 오빠는 사과하러 오지 않을 거야. 해외로 도피했어." 강진은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시준 오빠, 제발 우리 가족에게는 손 대지 말아줘. 아빠는 연세가 많으셔서 집안에 변고가 생기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실 거야. 복수하고 싶다면 나한테 해. 달게 받을게."박시준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본 건 처음인 것 같았다.과거에는 항상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는 최고의 컨디션으로 그의 앞에 나타나곤 했던 그녀였다."강진아,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내 곁에 있어준 건 고마워." 그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했고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았다. "여기서 떠나고,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네가 해낼 수 있다면 나도 너의 가족들에게는 손대지 않을게."그의 말이 끝나자, 강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끝났다!그녀는 이제 완전히 그와 끝난 것이다!심호흡을 하며 눈물을 참아 보려 했지만 이내 눈물이 터졌다.그녀는 마지막으로 그를 바라보고는 돌아서서 뛰쳐나갔다.강진이 ST그룹을 떠난 후 성빈이 박시준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그는 박시준이 강진과 관련된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강진은 언급하지 않았다."시준아, 일주일 뒤면 네 생일인데, 호텔에서 파티하는 게 싫으면 그냥 집에
성빈은 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지냈지만 성빈은 그가 스웨터를 입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그러나 진아연이 그를 위해 뜬 스웨터라면 의미가 다르다."그리고 어머님이 네 조카 퇴원했다고 나한테 전화 하셨어. 너 보고 저녁에 밥먹으러 오래." 성빈이 말했다."내게 직접 말할 수도 있을 텐데.""어머님이 전에 널 화나게 하셨어? 내게도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더라고. 시준아, 너 어머니한테 그럴 필요까지 없어. 세상에서 널 제일 아끼는 사람은 어머님이잖니…""아, 제발. 그만 말해."성빈은 껄껄 웃었다. "저녁 식사에 아연이도 데려가지 그래?"박시준은 몇 초 동안 생각했다. "뜨개질 하느라 매우 바쁘다며?""그건 그래! 아직 일주일이 남았는데 어디까지 완성했는지 모르겠네."...저녁.박시준은 어머니의 집으로 갔다.박 부인은 매우 기뻐했고,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조심스러워했다.박시준의 차가운 시선은 진희연의 얼굴에 떨어졌다.이 가족 모임에 그녀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시준아, 얘는 진아연의 동생 진희연이야… 처음에는 나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우진이가 입원하는 동안 계속 옆에서 우진이를 돌보고 있었어…" 박 부인은 아들이 진희연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말했다.진희연은 박시준의 눈빛에 겁을 먹었지만, 용기를 내서 그에게 인사를 했다. "삼촌, 안녕하세요? 그냥 희연이라고 불러주세요. 전 진아연의 동생이에요. 오늘 언니도 함께 올 줄 알았는데!"박시준은 그녀를 무시했고 눈길은 다시 박우진을 향했다.박우진의 얼굴은 수척했고 안색은 풀이 죽어 있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었다."삼촌, 진아연과 전 반년 전에 벌써 헤어졌어요. 제가 희연이와 함께 있는 걸 알고는 절 매우 증오했어요. 절대로 제가 삼촌 옆에 붙인 거 아니에요." 박우진은 애써 해명했다.박시준이 얇은 입술을 뗐다. "나도 알아." 잠시 후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지난번 박우진의 도박 빚 때문에 박한은 크게 손해를 봤다."도련님이 주시는 거니 받아야죠!" 박한의 아내가 입을 열었다. "다 가족인데, 가족끼리 사양할 필요가 있나요."박한은 주름진 얼굴을 붉히며 수표를 받았다. "시준아, 다음에는 이러지 마.""잘 먹었습니다. 저 먼저 갈게요."박 부인이 일어나 직접 그의 휠체어를 밀며 배웅했다.그들이 나간 후 박우진은 숟가락을 땅에 세게 내던졌다!"아버지! 그 돈은 왜 받는 거예요?!" 박우진은 체면이 매우 구겨졌다고 생각했다.동정을 받은 느낌이었다."이 못난 놈! 아직도 그런 말을 할 낯짝이 있는 거냐! 능력 있으면 먼저 네 도박 빚 40억 부터 내놔 봐!" 박한이 화가 나 소리쳤다.박우진의 어머니도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 아들을 나무랐다. "우진아, 네 삼촌이 우릴 우습게 보는 건 맞지만, 주는 돈을 거절할 필요는 없어! 얼마를 줬는지 알아? 10억이야 10억! 지금 네 아버지 회사는 1년에도 이만큼 못 벌어!"박우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 집 지금 그 정도로 몰락했어요?" "그게 아니면? 우리 회사 절반 이상의 고객이 네 삼촌 체면을 보고 우리와 협력하고 있었던 거야. 올해 하반기부터 그 고객들이 우리와 협력을 중단했어…" 박우진의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진희연은 우리 집안의 실태를 모르니까 네 곁에 붙어 있는 거야. 우리가 돈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네 시중을 계속 들 거 같니?"박우진은 큰 타격을 받았다.다친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그는 그동안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아왔다.그를 둘러싸고 있던 보호막은 이미 사라졌고, 가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시간이 흘러 박시준의 생일날이 되었다.진아연은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한 선물을 확인했다.그러고는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그 시각 박시준은 옷장에서 티셔츠를 꺼내 입고 있었다.셔츠를 입고 위에 스웨터를 입는다면 불편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또한 그녀가 뜬 스웨터가 타이트할지도 모르기 때문
박시준은 그녀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스웨터를 입어보니 생각보다 편안하고 따뜻했다.진아연은 의외로 그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스웨터를 잘 뜬 건지 아니면 박시준의 잘생긴 외모 때문인지 몰랐다.그녀는 쇼핑백에서 작은 선물 케이스를 꺼냈다. "이것도 선물이에요. 혹시나 스웨터를 좋아하지 않으까 봐 작은 선물을 하나 더 샀어요."박시준은 그녀의 손에 있는 선물 케이스를 보았다."라이터예요. 뭘 줄지 몰라서 결국은 이걸 샀어요. 소모품이니까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담배는 적게 펴요. 건강에 안 좋으니까."말하며 그녀는 그에게 선물 케이스를 건넸다.그가 케이스를 열고 라이터를 꺼내 가볍게 누르자 한 줄기의 불꽃이 솟아올랐다."원래 많이 피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낮고 섹시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만 피거든."진아연은 약간 놀랐다. "하지만 전에 당신 집에 있을 때 매일 담배를 피웠잖아요.""그거야 네가 매일 나를 화나게 만들었으니까."아연은 아무 말 하지 못했다."나가서 바람 좀 쐬자." 그는 조금 더웠다.방 안에는 히터가 있어 그의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네. 내가 밀어줄게요." 그녀는 휠체어 뒤로 갔다."괜찮아. 전동 휠체어야." 그는 말하며 버튼을 눌러 휠체어를 작동시켰다.진아연이 그를 따라나갔다. "전에는 경호원이 계속 밀어줬잖아요.""경호원이 밀어주면 내가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나도 밀어줄 수 있어요…""필요 없어.""하지만 밀어주고 싶어요." 그녀는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휠체어를 밀었다. "다리는 어때요? 의사가 뭐래요?""왼쪽 다리 골절, 오른쪽 다리 타박상."아연은 마음이 아팠다. "많이 아프죠?""괜찮아."아연은 그를 밀고 호텔 밖으로 나왔고, 차가운 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그녀는 휠체어를 길가에 세우고 그의 코트를 그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전에 메시지 보냈는데 왜 답장을 안 했어요?" 아연이 용기를 내 물었다.그가 답장하지
"나도 몰라. 걔네들 신경 쓸 필요 없어.""그럼 좀 큰 걸로 사죠! 10인치 어때요?"박시준이 점원에게 말했다. "10인치로 할게요."점원은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두 분 연애 중이신가 봐요? 보기 너무 좋아요."진아연의 얼굴이 확 빨개졌다.박시준은 옆에 있는 선반을 보며 물었다. "다른 건 필요 없어? 집에 갖고 가.""필요 없어요…""아무거나 골라 봐! 가서 어머님께 드려."아연은 그의 볼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했다. "네! 아무거나 살게요."한 시간 후.아연은 휠체어를 밀며 케이크 가게에서 나왔다.케이크는 박시준이 안고 있었고, 그의 표정은 약간 부자연스러웠다.다행히 거리에는 행인이 많지 않았다.오늘 바깥 기온은 5도 정도 밖에 안 되었다.하지만 그는 불을 쬐는 듯 했고 전혀 춥지 않았다.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왔다.룸에는 사람들이 모두 도착해 있었다.원래 시끌벅적하던 룸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베이지색 스웨터를 입고 있는 박시준은 분위기가 확 바뀌어 마치 몇 년 더 젊어진 듯했다.게다가 품에는 큰 케이크를 안고 있었다…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그가 디저트를 먹지 않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둘이서 케이크 사러 간 거야?" 성빈은 목을 가다듬고 두 사람 앞에 다가갔다. "나도 케이크 사 왔는데. 둘이 산 것보다는 작지만."진아연은 자신을 향하는 시선에 부끄러워하며 설명했다. "시준 씨가 케이크 먹고 싶다고 해서 하나 샀어요."성빈은 헛기침을 했다. "시준이 케이크를 먹고 싶다 했다고요?"진아연이 답했다. "네. 다 왔나요? 다 모였으면 케이크를 열게요."그녀가 케이크 포장을 풀러 간 후 성빈은 손을 뻗어 박시준이 입은 스웨터를 만지며 장난쳤다. "오, 매우 부드러운데. 아연 씨 솜씨 좋네! 근데 이거 실내에서 입기엔 너무 덥지 않아? 내가 벗게 도와줘?"박시준은 그의 손을 밀쳐냈다. "만지지 마."성빈은 웃으며 그를 밀어 상석에 앉혔다.아연이 케이크를 테이블에 놓은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