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3화

작가: 불닭김치
“맞아! 저 나이에 이미 자수성가한 재벌이라니, 정말 대단해! 그 수완을 보면 전혀 상상도 못 했어. 당장이라도 만나보고 싶어질 정도야!”

주변 사람들이 고시환을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시선이 고영훈 쪽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고영훈이 몰래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게 보였다. 그의 눈빛에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고영훈의 이런 모습이 몹시 흥미로웠다.

‘예전에 내가 알던 고영훈은 그저 욕심 없이 자기 일에만 충실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고영훈이 욕심 없이 자기 일에만 매진하는 모습이 내 마음을 끌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 보니,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이런저런 뒷모습이 꽤 많았던 것 같다.

과거의 나는 사랑에 눈이 멀어, 고영훈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은 고시환은 고정한 앞으로 다가가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그는 시선을 돌려 곧바로 고영훈을 보더니, 미소를 띠며 조카에게 다가갔다.

“영훈아, 너 신혼인데, 결혼식 때 내가 너무 바빠서 축하를 못 했네. 너무 섭섭해하지 않길 바란다.”

“괜찮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고영훈은 어쩔 수 없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며 손을 흔들며 답했다.

그리고 그도 신혼 첫날에 벌어진 일을 딱히 설명할 수도 없어서, 그저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듯했다.

하지만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시환은 인사만으로 이 상황을 넘기려 하지 않았다.

고시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고영훈 옆에 서 있는 강주희로 옮겨졌고, 이어 그의 손짓에 비서가 검은색 선물 상자를 앞으로 내밀었다.

고시환은 약간의 미안함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조카며느리에게 주는 신혼 선물이다. 꼭 받아줬으면 좋겠네.”

강주희는 얼굴 가득 기쁨을 띠며 마음속으로 몹시 들떠 있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영훈을 살짝 쳐다보고는 선물을 받으려고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고영훈은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24화

    원래 재미있게 구경만 하고 있던 나는, 고시환의 말이 끝나자마자 긴장해 몸이 굳어졌다. ‘이 사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강주희 건으로 끝난 줄 알았더니, 이번엔 또 내 이야기를 꺼내다니.’ ‘설마 고영훈이 마음에 안 들어서, 주변 사람들까지 싸잡아 다 미워서 그러는 건가?’ 긴장한 나는 본능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고영훈이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해지다가, 문득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이미 죽었는데, 이런 걸 왜 신경 써? 고영훈이 뭐라든 내 운명이 달라질 것도 아닌데.’ 고시환은 연회장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근데 이상하네. 여기 조카며느리의 부모님도 와 계시는데, 조카며느리는 안 왔네. 혹시 나 같은 삼촌이 싫어서 안 온 건가?” 갑작스러운 그의 발언에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섰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고영훈, 나의 부모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았다. 고시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자, 놀란 우리 부모님은 황급히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난감한 눈빛으로 고영훈에게 도움을 청하는 듯했다.“저... 그게, 우리 딸이 결혼하고 나서는 한 번도 집에 돌아오질 않아서요...” 우리 어머니는 얼굴에 싫은 내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그러게요. 심지어 결혼식을 마친 후 친정에 오는 그 관례조차 안 지키더라니까요. 원래 시골에서 자란 애라 예의 같은 건 없어요. 지금도 어디서 놀고 있는지 알 길이 없고요.”어머니의 말투에 비꼼과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민아도 주희처럼 똑똑하고 사려 깊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주희는 늘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잖아요.”“그런데 민아는, 제발 사고만 안 치면 감사할 따름이에요.” 고영훈은 우리 부모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약간 불쾌한 내색을 했다. 하지만 내가 실종되거나 심지어 해를 입었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는 아직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민아는 요즘 공부에 전념하느라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25화

    “솔직히, 그 년을 시골에 그냥 놔뒀다가 뒷말 나올까 봐 데려온 거지, 아니었으면 평생 데려올 일도 없었을 거야.” 어머니는 혀를 차며 말했다. 어머니의 독설에 강주희는 살짝 미소 지으며 바로 어머니를 만류하며 부드럽게 안았다. “엄마,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 누가 들으면 언니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줄 알잖아요.” 그러면서도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에요, 언니가 신혼 첫날 이후로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잖아요. 혹시 우리한테 서운해서 그러는 건 아닐까요?” “언니가 우리가 평소에 잘해 주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앞으로는 우리를 아예 보지 않으려는 거면 어쩌죠?” 강주희의 말에 어머니는 곧바로 얼굴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흥! 서운하긴 뭘 서운해! 그년은 살아 있어도 강씨 집안의 딸이고, 죽어도 우리 집안 귀신이야!” “이 연회만 끝나 봐라. 내가 꼭 그년을 찾아서 단단히 혼쭐낼 거야!”나는 이 광경을 보며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예전에 부모님과 강주희의 대화에서 나는 어떤 문제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제삼자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즉, 강주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나를 위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다는 사실을.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시골에서 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나를 대하는 부모님의 태도는 나름 나쁘지 않았다.부모님은 나에 대해 그다지 정이 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예의를 지키며 나를 대했고, 서먹한 사이지만 적당히 존중도 해주었다.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강주희가 이런저런 일에 끼어들면서, 그녀와의 비교 속에서 부모님은 점점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대놓고 싫어하며 경멸하기에 이르렀다.그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나를 진심으로 아껴준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고, 내가 고영훈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자, 옛날 고씨 가문을 도운 은혜를 언급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26화

    막 고영훈과 고정한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살펴보려던 찰나, 우연히 임하나가 조심스럽게 구석으로 숨어드는 모습을 발견했다.임하나에게 빠르게 다가가자, 그녀가 서빙 직원에게 은밀히 말을 걸고 있었다.“잠시 후에 이 물을 고시환에게 가져다줘. 반드시 이분이 마시는 걸 직접 확인하고, 돌아와서 이분이 어느 휴게실에 있는지 알려줘야 해.”임하나는 현금을 한 뭉텅이 꺼내 서빙 직원의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덧붙였다.“일만 잘 처리하면, 추가 보상도 넉넉히 챙겨줄게.”서빙 직원은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키더니, 앞에 놓인 약물이 든 물을 바라보며 신중히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직원은 심호흡을 하더니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계단을 올라갔다.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상황을 지켜봤다.‘대체 이게 뭐야? 임하나가 약물까지 사용하려고 들다니!’임하나는 불안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2층을 향해 초조한 시선을 던지며, 손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미안해요, 시환 오빠. 나도 어쩔 수 없었어요.”나는 임하나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혹시, 이 약물을 사용하는 일이 임하나의 진짜 의도가 아닌 건가?’하지만 나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빠르게 2층 휴게실로 향했다. 고시환이 정말로 속을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고시환이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니, 설마 이런 데 넘어가겠어?’ 나는 서빙 직원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고, 눈앞에서 고시환이 그 약물이 든 음료를 마시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뭐야? 진짜로 마셔버린 거야?’ ‘자기가 직원을 불렀는지 안 불렀는지도 구분 못 해?’‘아니, Y 시 최고 재벌이라는 사람이 이 정도의 상황 판단도 못 한다니, 너무 실망스러운데?’ 서빙 직원은 일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을 확인하자마자 아래층으로 내려가 임하나에게 보고했다. 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매끄럽게 진행됐다. 돈을 받아 든 직원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27화

    한참을 숨을 고르고 난 뒤, 고영훈은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이 침실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그는 꿈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결국 무참히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았다. 내 몸이 칼에 찔려 쓰러지는 것도 모자라, 마지막엔 사방으로 조각나 흩어지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고영훈은 그 모든 걸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강민아, 제발 무사히 있어야 해!” “너는 죽으면 절대 안 돼, 내가 허락하지 않아! 반드시 널 찾아낼 거야!!”...“으악!” 나는 갑작스럽게 눈을 번쩍 뜨며, 눈앞의 밝은 불빛에 반사적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잠시 적응한 후 천천히 눈을 떴다.내 눈길을 돌리자, 땀에 흠뻑 젖고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고통을 억누르고 있는 고시환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깜짝 놀라 온몸이 굳어버렸다.‘이게 뭐야? 지금 무슨 상황인 거지?’‘여긴 어디고, 고시환은 왜 저러고 있는 거야?’주위를 둘러본 나는, 내 눈에 들어온 하얗고 고운 손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뭔가 불길한 생각이 스치며 나는 급히 화장실로 뛰어갔다.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본 순간, 나는 숨이 막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이게... 이게 임하나잖아?’‘내가... 내가 임하나의 몸으로 환혼한 거야?‘그렇다면, 임하나는 어디로 간 거지?’‘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고시환이 비틀거리며 욕실로 들어왔다.그는 갑자기 내 목을 움켜쥐었고, 눈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남자의 손을 떼어낼 수 없었다.“삼...” 입 밖으로 단어가 나오자마자 나는 깨달았다.‘지금 나는 임하나잖아! 삼촌이라고 부르면 안 돼!’“시환 오빠, 정신 좀 차려!”“나는 아주 정신이 맑아.”고시환의 목소리는 쉰 듯이 거칠었다.“약을 먹일 용기가 있었다면, 그 대가는 치러야지!”나는 점점 숨이 막혀 오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고시환의 힘을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28화

    나는 몸이 뒤로 넘어가 침대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머리가 어지럽고 멍한 느낌에 뒷머리를 몇 번 두드리다가, 손에 느껴지는 축축한 감촉에 깜짝 놀랐다.나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정신을 차리려 노력한 후, 손을 내려다보자 온통 피투성이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급히 수건을 집어 들고 상처 부위를 감싸고 나서 그제야 뒷머리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아보니, 테이블 위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설마...’나는 상황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임하나가 어떻게든 이 휴게실에 들어와 고시환에게 접근하려 했던 거겠지.’ ‘그런데 고시환이 강한 자제력으로 임하나를 거부하고 밀쳐냈고, 그 과정에서 임하나가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래서 죽게 된 거고?’내가 생각할수록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임하나가 비록 재벌가 아가씨로 평판이 좋지 않았어도, 그렇다고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었는데...’‘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는 없었으니까.’‘이제 내가 임하나의 몸으로 다시 환혼한 이상, 임하나 대신 제대로 살아야겠지.’나는 속으로 임하나를 위해 잠시 묵념하며 조용히 말했다.‘임하나, 이제는 편히 쉬어. 네 몫까지 내가 잘살아 볼게.’1분 뒤, 나는 손에 묻은 피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지금 나도 당장 이 뒷머리 상처를 처리해야 해.’‘겨우 다시 살아났는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또 죽을 순 없잖아.’겨우 몸을 일으켜 나가려던 찰나, 바닥에 떨어진 지갑이 눈에 들어왔는데, 지갑 사이로 1인치 크기의 증명사진이 살짝 보였다.‘저게 뭐지?’호기심에 나는 반쯤 몸을 구부려 지갑을 집어 들었다.그리고 그 안에 든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멍해졌다.‘이게... 이게 내 어릴 적 사진이잖아?’나는 지갑을 뒤적이며 안에 든 다른 사진도 찾아냈다.이번에는 어린 남자아이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그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나는 갑자기 욕실 쪽을 향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29화

    ‘설마? 뚱보가 날 좋아했던 거야?’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나는 급히 고개를 흔들었다.‘그럴 리 없어!’‘이 사람은 단지, 걱정 없이 지냈던 어린 시절의 시골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뿐이야!’나는 조금 전부터 이상하게 자만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경악했다.‘막 환혼을 끝내자마자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이건 분명 임하나의 몸에 들어갔던 후유증 때문이야!’원래는 고시환과 최대한 거리를 두고 이 상황을 벗어나려 했지만, 지금의 분위기를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나는 그대로 옆에 놓인 소파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시환 오빠, 우리 대화 좀 해보자.”고시환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느긋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좋아. 나도 마침 너와 얘기하고 싶었어.”그는 내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나는 무심코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뭐야? 관종이야? 왜 이러는 거야?’고시환은 내 반응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뭐가 그렇게 긴장돼? 어차피 뭘 볼 게 있다고.”나는 몰래 눈을 조금 떠서 손가락 틈 사이로 고시환의 하반신을 살폈다. 남자가 옷을 입고 있는 걸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시환을 보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하지만 남자의 단호한 표정을 보자마자 웃음을 싹 거두고 헛기침했다.“저기, 오빠, 아니... 고 대표님, 우리 거래 하나 할래요?”고시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긴장한 나는 주먹을 꽉 쥐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H 시로 돌아온 건, 분명히 목적이 있는 거죠?”“그렇다면 우리 둘이 협력하는 건 어때요?”“고 대표님이 나랑 결혼해 주시면, 저는 우리 집안의 배경을 이용해서 고 대표님께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드릴게요. 고 대표님이 원하시는 걸 얻을 수 있게 도와드리는 거죠.”고시환은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더니 다리를 내리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대단한 임하나가 굳이 그렇게까지 나를 돕겠다고 나서는 이유가 뭔데?”“아니면, 단지 나랑 결혼해서 날 이용하고 도망치려는 속셈이야?”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30화

    고시환은 내 눈에 서린 의문을 알아챈 듯 천천히 손을 놓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그는 여유로운 태도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웃듯 입을 열었다.“임씨 가문의 따님, 역시 머리는 단순하고 힘만 세군. 이런 어설픈 추측으로 날 협박할 생각을 한다니.”다시 숨 쉴 수 있게 되자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고시환을 노려보았다.고시환의 태도는 한결같이 태연하고 가벼웠다. 나는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이런 일로는 이 사람을 위협할 수 없다는 건가?’‘설마, 내가 잘못 짚은 거야?’“어떻게 그게 어설픈 추측일 수 있죠?”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오빠, 내가 알기로 남자가 지갑 가장 깊숙한 곳에 그런 사진을 넣어두는 건, 절대로 아무나한테 하는 짓이 아니거든?”“게다가 오빠가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걸 보면, 혹시 강민아 씨가 오빠 조카며느리라서? ‘그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처음에는 잠시 흥분한 듯 보였던 고시환의 표정이 이내 싹 사라졌다.그의 얼굴에는 무미건조한 냉소만이 남아 있었고, 심지어 지루해 보이기까지 했다.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걸치고 있던 가운을 가볍게 여미고 나를 바라보았다.“하나야, 그런 쓸데없는 추측에 시간 낭비할 바에야, 차라리 네 목숨을 어떻게 구할지나 고민하는 게 낫지 않겠어?”나는 고시환의 눈과 마주친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며 온몸이 떨렸다.실은 나도 전혀 놀랍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남자라면 정말로 나를 죽일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이 멍청아, 제발 머리 좀 굴려 봐!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내가 착각한 게 아닐 텐데. 내가 아무리 자의식 과잉이 아니라 해도, 누군가가 어린 시절의 사진을 소중히 간직한다는 건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잖아!’무언가 떠오른 듯, 나는 갑작스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문을 열려던 고시환의 발걸음이 멈췄고,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가라는 신호를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31화

    “지금 나 놀리는 거야?” 여전히 협상 중이라는 걸 깨닫고, 나는 웃음을 억누르며 다시 고시환을 쳐다봤다. “오빠, 이번에 H시로 돌아온 이유, 결국 강민아 찾으려고 온 거잖아.”“오빠 쪽 사람도, 고영훈 쪽에서도 다 강민아를 못 찾았잖아. 해코지를 당했다는 것만 알지, 지금은 생사조차 모르고.” 내 말에 고시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제야 심각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봤다. “강민아가 어디 있는지는 지금 오빠에게 말할 수 없어.”“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오빠가 나와 결혼하는 거야.” ‘나는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어. 임하나와 고시환의 힘을 잘 이용하면, 상대가 눈치채기 전에 모든 걸 마무리할 수 있을 거야.’ 고시환은 내 말을 한참 동안 곱씹는 듯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 우리 잘해보자.” 나도 고시환의 손을 잡고 미소 지었다. “잘해보자.”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심한 어지러움이 몰려왔으며, 몸이 그대로 뒤로 기울었다. ‘고시환이 나를 잡아준 건가?’ 예상했던 바닥의 충격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피로가 몰려오자 나는 눈을 감았다....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침대 주위에는 낯선 사람들이 서 있었고, 그들 뒤쪽에는 고시환이 보였다. “딸!! 드디어 깨어났어!!! 엄마는 네가 정말 걱정돼서 혼이 나갈 뻔했어!!!” 눈앞에 서 있는 우아한 중년 여성을 보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아름다운 사모님, 바로 임하나의 어머니, 장해선이었다. ‘눈이 빨갛게 부어 있고, 얼굴 가득한 걱정과 안타까움... 진짜 걱정하는 표정이네.’ 내 가슴 한구석이 순간에 따뜻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따뜻함...’ 나는 늘 재벌가에는 가족 간의 정 같은 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 사람에 따라 다른 법이지.

최신 챕터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100화

    강주희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 이를 악물었지만, 나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고마워요, 작은어머니. 저 꼭 오래오래 살게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잔을 부딪쳤다. “그야 그렇겠죠. 욕 많이 먹을수록 오래 산다잖아요.” 강주희는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눈가가 붉어지더니, 곧 고영훈을 바라봤다. “오빠, 작은어머니가 나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거예요?” “우리 강씨 집안이야 임씨 가문만큼은 못하겠지만, 제가 오빠랑 함께하는 게 이런 식으로 압박을 받아야 한다면, 이 약혼은 하지 않는 게 낫겠어요.” 강주희는 일부러 술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약간 숙이며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아휴, 저 눈물 연기 몇 번이나 본 거야? 이제는 좀 지겹다.’ 나는 하품을 참지 못하며 고개를 돌렸다. “굳이 내 앞에서 이런 연극을 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앞으로 우리가 서로 엮일 일도 없을 거잖아요.” 나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고시환을 힐끔 바라보고, 의자를 당겨 일어섰다. “오늘 약혼식에 온 건 우리 남편 때문이야. 우리가 서로 얼굴 보기 싫어하는 건 분명하니까, 미안하지만 이만 갈게.” 뒤돌아 나가려는 순간, 고영훈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는 내 얼굴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곧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작은어머니, 주희한테 사과하세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오며 손가락으로 귀를 파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 “제가 주희한테 사과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작은어머니, 아까 말씀이 너무 지나치셨잖아요.” 고영훈의 말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으며 주변 사람들을 둘러봤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 다 들으셨죠? 제가 누구한테 무례했다는 건데, 당사자 말고 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 계시면 말씀 좀 해보세요.”나는 손가락으로 강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9화

    ‘어차피 곧 이혼할 사인데, 앞으로는 서로 얽힐 일도 없겠지. 아마 두 번 다시 마주칠 일도 없을 거야.’ 주요석에 앉아 있던 고정한이 그 순간 고시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다 들리도록 크게 말했다. “시환아, 너 하나 양과 벌써 혼인신고까지 했다며? 결혼식은 언제 올릴 거니? 이왕 여자 쪽에서 허락한 건데, 절대 서운하게 하면 안 된다.” 고정한의 말이 떨어지자, 이미 조용했던 예식장은 더더욱 적막에 휩싸였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고시환을 바라보며, 속으로는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뭐? 고시환이랑 임씨 가문의 임하나 양이 혼인신고를 했다고?” “전부터 그런 소문이 살짝 돌긴 했는데, 진짜였네.” “근데 아까 보니까 둘이 말도 안 하고, 웃는 얼굴도 안 보였는데. 둘이 대체 왜 갑자기 혼인신고를 한 거야?” “에휴, 너 그거 모르지? 고시환은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H 시에서는 힘이 없잖아. 그래서 H 시에 발붙이려고 그런 거지.” “임씨 가문이 고씨 가문만큼은 아니어도, H 시에서는 알아주는 집안이잖아. 고시환 저 사람, 야망이 대단하네.” 예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런 계산에 밝은 사람들이었다. 단 몇 초 만에 고시환과 나의 관계를 파악한 듯, 각자의 추측을 마친 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나는 주변의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미소를 띤 고정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단하네. 그때 고시환이랑 고씨 가문의 본가에서 그렇게 싸우고,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으면서도, 지금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들 행세를 하고 있잖아.’ 나는 옆에 있는 고시환을 힐끗 보았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결국 내가 먼저 나서기로 했다. “아버님, 저희 젊은 사람들 문제에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우리 영훈 조카 약혼식부터 잘 챙기시는 게 우선 아니겠어요?” 고정한은 한때 고씨 가문에서 그야말로 전설로 불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8화

    고시환은 손에 들고 있던 혼인관계증명서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 순간에 우리 사이에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기, 약혼식 곧 시작할 것 같은데, 당신 빨리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고씨 가문의 일원인 고시환이 아무리 고영훈과 사이가 안 좋더라도, 주요 가족 행사에서 가족석에 앉지 않고 나와 이 구석에 있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내 말을 들은 듯 주위를 한번 훑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어? 뭐 하는 거야?” 고시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 이혼 안 했잖아. 내 아내로서 나랑 같이 가야지. 괜히 뒷말 나오게 만들 순 없으니까.” “곧 이혼할 건데...”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 결혼 소식은 이 상류층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고시환이 내 손을 잡고 주인석에 앉자,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수군거리며 고시환과 나의 관계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그때 손을 뿌리쳤어야 했는데... 이제 이혼하면 뒷말이 더 많겠네.’ ‘고시환이랑 엮였다는 걸 이제 알았을 텐데, 오늘 밤에 이혼 소식까지 돌면 얼마나 말이 많아질까?’ 나는 마음속으로 임씨 가문의 내 부모님에게 미리 사과와 기도를 했다. ‘제발 이 험담들을 잘 견뎌내게 해주세요...’ 고시환은 주인석에 앉아도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지만, 눈썹 사이엔 살짝 드러나는 불쾌감이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눈길을 주자, 그 순간 사람들이 수군거리던 소리가 뚝 끊기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고시환의 대응에 속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웃음을 참았다. ‘정말 대단하긴 하네.’ 그에게 한마디 장난스럽게 말하고 싶었다.‘이제 곧 남이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7화

    장연희의 한마디가 내 혼란스러운 마음을 단숨에 정리했다.‘맞아, 난 이미 죽음을 한 번 경험한 사람이잖아. 뭘 그렇게 겁먹고 있는 거지?’ ‘어릴 적 친구 하나쯤이야,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니잖아.’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는 서둘러 준비를 마친 뒤, 고영훈과 강주희의 약혼식에 가기로 했다. 청첩장을 들고 예식장에 들어서자,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스쳤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고시환을 찾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안도감을 느끼는 동시에, 묘하게 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다. ‘애초에 고시환은 고씨 가문을 싫어하고, 자신의 성을 혐오하는데, 여기 올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왜 이렇게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걸까?’ 며칠 동안 나는 일에 몰두하며 고시환에 대한 생각을 잊으려 애썼지만, 잠깐이라도 쉬는 시간이 생기면 그의 얼굴과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문제는 내 마음이겠지.’ ...나는 예식장 한쪽 구석에 앉아 조용히 쉬고 있었다. 그때, 샴페인 잔을 든 남자 몇 명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가씨, 전에 본 적 없는 얼굴인데요?” “H 시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계시다니, 어디 가면 또 뵐 수 있을까요?” 나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둘 다 잘생긴 편이긴 했지만, 고시환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나는 차갑게 말했다. “만나볼 마음 없으니까 돌아가세요.” 이런 상류층 모임에서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섞여 있는 법이다. 특히 조금이라도 돈이 있는 이른바 ‘재벌 2세’들은 자신들이 평범한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두 사람을 단칼에 거절하자, 그들의 표정에 약간의 불쾌함이 스쳤지만, 공공장소라 억지로 화를 참는 듯했다. “아가씨, 참 성격 있네요. 그런데 어느 집안의 아가씨예요? 혹시 내가 누군지는 알아요?” 나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 기억을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6화

    청첩장에 적힌 내용을 읽으며 나는 살짝 놀랐다. ‘고영훈이랑 강주희 사이에 뭔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약혼까지 하다니.’ 며칠 사이에 둘이 약혼식 날짜까지 잡았다니, 정말 예상 밖이었다. 강주희는 웃으며 청첩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작은어머니, 꼭 시간 맞춰 오셔야 해요.” 약혼식은 열흘 뒤로 정해져 있었다. ‘그때쯤이면 나도 고시환과 이미 이혼했을 거야.’ ‘그땐 고씨 가문이랑 완전히 남이겠지.’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청첩장을 다시 강주희에게 밀어 돌려주었다. “나 지금 네 작은어머니 아니야. 곧 고시환 씨와 이혼할 거고, 그 이후로는 너희 고씨 가문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을 거야.” 나는 강주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약혼 축하해. 네 약혼식이 순조롭길 바랄게.” 강주희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다시 한번 청첩장을 내 손에 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언니잖아요. 반쪽짜리 언니라도, 꼭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초대하려는 모습에, 나는 웃으며 청첩장을 받아들었다. “알았어. 그렇게 간절히 부탁하니까 가줄게.” ...강주희의 약혼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고, 인터넷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모두 이 잘 어울리는 커플에게 축하를 보내느라 바빴다. 하지만 한때 고영훈과 결혼을 약속했던 ‘강민아’에 대한 기억은 모두 완전히 잊은 듯했다. 약혼식 당일, 나는 가게에 앉아 청첩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장연희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사장님,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잖아요. 누가 칼 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요.”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넌 나를 몰라.” 강주희의 약혼식에 가든 안 가든 사실 내겐 상관없었다. 이미 고영훈에 대한 미련은 다 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문제는, 거기서 혹시 고시환을 마주치게 될까 봐였다. 그날 이후 고시환은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5화

    “우리, 이제 끝낼 때가 된 것 같아...” 고시환의 말을 들은 나는 순간 멍해졌다. ‘끝내자고? 이혼을 하겠다는 뜻인가?’ 나는 한참을 머릿속에서 되새기다가, 그가 정말 떠나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고시환이랑 이혼할까?’ 실은 나도 처음 고시환과 결혼한 것도 단지 이 사람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강주희, 그녀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는 한, 나는 임씨 가문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그녀를 상대할 수 있었다. 이제의 나는 고시환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다가 일부러 웃는 얼굴로 말했다. “맞아, 끝내야지. 그럼 좋은 날 골라서 이혼하러 가자.” 고시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재산 분할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필요 없어.” 나는 남자의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원래부터 비즈니스 관계였잖아. 임씨 가문 정도면 날 먹여 살리기 충분해.” 나는 일부러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내가 널 찾은 이유는 따로 있어. 나 H 시로 돌아가려고 해.” “이혼 절차는... 오늘 바로 끝내는 게 어때?” 고시환은 눈을 깜빡이며 헛기침을 했다. “오늘? 오늘은 안 될 것 같은데...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밤까지 걸릴 거야.” “괜찮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시간 날 때 말만 해. 언제든 내가 맞출게.” 고시환이 답하기도 전에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이만 갈게. 우리 엄마가 집에서 밥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셔.” 나는 문을 나섰고, 고시환은 내 뒷모습을 보며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비서가 허둥지둥 들어왔다. “보스, 방금 그분... 그 사진 속 사람이잖아요?” “그분... 이미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고시환은 액자 속 소녀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요, 이미 떠났어요.” 비서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이미 사무실을 떠난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4화

    고시환의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왜 비서가 나를 보고 그렇게 놀랐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길을 끈 건 고시환이 아니라,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커다란 액자였다. 나는 그 액자 속 사진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저 사진...’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은 열 살 때로 돌아갔다. 열 살...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중요한 나이였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생일축하는커녕 내 생일이 언제인지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고시환만 빼고. 나도 그날이 기억난다. ‘뚱보’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나 이제 떠나야 해. 아마 다시는 못 돌아올 거야.”나는 ‘뚱보’를 진심 어린 친구로 여기고 있었기에, 그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며 ‘뚱보’의 가슴을 두드렸다. “다들 나를 떠나는데, 너마저 떠난다고? 너만은 친구라 생각했는데, 너도 나 버리고 갈 거야?” “오늘이 내 생일인데, 다들 케이크를 먹을 때 나는 못 먹어. 이제 내 유일한 친구인 너까지 떠나는 거야?” 그때, 내가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우는 모습을 본 ‘뚱보’는 나를 꼭 안아주며 위로했다. ‘뚱보’는 내 눈물을 닦아주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슈퍼 막대사탕을 사와 내게 내밀며 말했다. “생일 축하해. 하지만 난 정말 떠나야 해. 해야 할 일이 있거든.” “내가 성공하면 꼭 널 찾으러 올게. 여기서 나 기다려 줄래?” 그때의 나는 ‘뚱보’의 눈빛 속 진심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친구가 날 속인다고 생각했다. ‘뚱보’가 날 달래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사진 한 장 찍어줄게. 내가 너 보고 싶을 때마다 이 사진을 볼 거야.” “이 사진 앞에서 맹세할게. 내가 꼭 돌아와서 너 데리러 갈 거라고!” 그 말에 속아 넘어간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예쁜, 하지만 지금 보면 우스꽝스러운 미소를 카메라 앞에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3화

    나는 고시환의 눈을 마주치다가 어색해서 고개를 돌렸다. ‘분위기가 왜 이리 묘하지?’ 결국 나는 가볍게 두어 번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저기, 나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 힘들었거든. 우선 올라가서 쉬어야겠어.” 말을 마치자마자 헐레벌떡 위층으로 올라갔지만, 막상 내 방이 어딘지 몰라서 다시 내려와야 했다. “그... 어디서 자면 돼?” 고시환은 나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자고 싶은 방에서 자. 당신이 이 집의 주인인데.” 그 말에 나도 순간 눈썹이 꿈틀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적당한 방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나는 넓고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지금 고시환한테 갖고 있는 감정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예전처럼 그저 복수를 위해 이용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지금 내 육체는 임하나고, 영혼은 강민아잖아.’ ‘내가 정말 어린 시절의 정 때문에 고시환을 좋아하게 된 건지, 아니면 지금의 또 다른 고시환에게 끌리는 건지 헷갈려.’ 고시환도 똑같이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날 보는 이유가 이 얼굴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의 나 때문인지 모르겠어.’ 다시 한번 몸과 영혼 사이의 갈등에 빠진 나는 하늘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복잡한 거 그만 생각하자.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야지.’ 며칠 동안 꽉 조였던 긴장감이 풀린 탓인지, 나는 모처럼 완전히 편히 쉬었고 눈을 떠보니 이미 정오가 넘어 있었다. 내가 낯선 침실을 잠시 바라보다가 지금 어디 있는지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집 안을 돌아다녀 봤지만 고시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었는데, 또다시 통화 중이라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대체 뭘 하길래 통화 중이야?’ 나는 찡그린 얼굴로 SL 그룹의 주소를 검색했고,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SL그룹 건물 앞에 도착해 KM 그룹보다도 훨씬 크고 높은 건물을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2화

    고시환은 두 팔로 나를 끌어안으며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 너는 알기나 할까...” 나는 코끝을 훌쩍이며 남자의 품에서 몸을 빼내면서 고시환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남자의 얼굴이 창백한 것 말고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이자 안도의 숨이 나왔다. “그동안 어디 있었어? 왜 내가 그렇게 전화했는데 단 한 통도 안 받았냐고!” “대체 나를 당신의...” 내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췄다. “나의 뭐?” 고시환이 장난스레 물었다. 나는 얼굴이 조금 달아오르며 말했다. “당신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 거야?” “민아의 시신을 찾아주자마자 나 같은 파트너는 버리고 팽개치려는 건 아니겠지?” “아직 민아를 죽인 범인을 못 찾았잖아. 우리의 비즈니스 관계는 끝난 게 아니야!” 고시환은 나를 바라보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 같은 파트너를 잊을 리가. 다만 내가 재벌이니까 쉬고만 있을 순 없잖아.” “안 그러면 재벌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힘들겠지. 그러면 너, 임씨 가문의 귀한 딸의 얼굴에 먹칠하게 될 텐데.” 나는 고개를 홱 돌려버리고, 고영훈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고영훈이 했던 말은 뭐야? 얼른 솔직히 말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고시환은 나를 Y 시의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본인의 입을 통해서야 나는 고시환이 자리를 비웠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장례식이 열리고 있던 동안, 고시환의 회사인 SL 그룹에서 개발한 약품이 누군가를 죽게 만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족들이 SL 그룹에 찾아와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이 사건이 커지면서, 주가도 끝없이 추락했다. 결국 고시환은 회사를 수습하고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급히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고영훈이 했던 말도 이와 관련 있었다. 유족들은 고시환의 제안에 불만을 품고 사람을 시켜 그를 납치하려 했지만, 고시환은 이를 미리 알아채고 역으로 유족 측을 잡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