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 서준혁은 야근을 마치고 병원에 도착했다. 그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도시락통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 걸 보았다.“왜 그래? 이제 과학이 발달해서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기라도 한 거야?”준혁은 내 기분이 좋지 않은 걸 알아차리고 일부러 장난치듯이 말했다.나는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너무 걱정하지 마, 의사 말로는 그냥 영양 부족이라니까 곧 괜찮아질 거야.” 준혁이 나를 끌어 안자 나는 그의 어깨에 몸을 맡겼다. 그 순간, 깊은 안정감이 밀려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준우는 우리의 아이니까, 설사 이 말이 황당하게 들리더라도 준혁 씨는 분명 믿어줄 거야, 그치?’마음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사실 준우가 병든 이유는...”그러나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준혁이 핸드폰을 꺼내자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이 빠져나와 내 발밑에 떨어졌다.그는 그것을 다시 주머니 속에 넣으려 했지만, 나는 이미 먼저 그것을 집어 들었다.그것은 복권이었다. 당첨이 된다면 꽤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고, 시간은 오늘 밤 7시 23분으로 적혀 있었다.서준혁은 병원에 오기 전에도 복권을 사러 간 거였다.나는 씁쓸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에게 모든 걸 말하려 했던 내가 우스울 뿐이었다.“수영아, 내 말 좀 들어봐. 마침 지나가는 길이라 한 장 산 것뿐이야.”준혁은 내 표정을 보더니 급히 전화를 끊고 나서, 서둘러 해명하려 했다.나는 계속해서 복권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준혁이 다시 무언가 말하려 했을 때, 나는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듣든 말든 상관없었고, 나는 더 이상 그와 싸울 힘도 없었다.“당신은 집에 가.”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준혁은 여전히 자리에 서서 떠나지 않았다.내가 테이블 위에 있던 도시락통을 쾅 하고 내려치자 밥과 반찬이 땅바닥에 흩어졌다.준혁은 상황을 보더니 결국 한숨
그제야 나는 마음을 놓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나는 영화 속 장면이 실제로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고, ‘그것’의 섬뜩한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그것’이 내 아들의 몸을 빌려 살아날 거라고 생각하자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안 돼! 절대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어!’나는 곧바로 한소은이 지내던 방으로 달려갔다. 미친 듯이 방안을 뒤지며 단서를 찾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결국, 나는 무기력하게 바닥에 주저앉았다.서준혁은 음식을 차린 뒤 나를 불렀다. 그날 이후로 그는 줄곧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나에게 다가오려고 애썼다.그러나 나는 그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내 마음은 오로지 준우에게만 집중돼 있었다.“좀 먹어, 당신 너무 말랐어.” 준혁은 내게 음식을 챙겨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밥을 먹으며 핸드폰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하진 않을까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결국, 나는 모든 희망을 지민에게 걸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아직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그렇게 또 이틀이 지나자 준우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처음에는 주로 의식을 잃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의 모습이 점점 더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나는 급히 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고는 뭔가 이상하다고 말했다.[죽은 아이의 영혼이 엄마와 분리된 상황에 젖을 먹이지 않으면 점점 더 약해져야 하는 게 정상이야. 그런데 왜 점점 더 자주 나타나기 시작한 거지?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민지는 내일 오겠다며 나더러 좀만 버티고 있으라고 말했다.나는 전화를 끊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준우를 안고 있었다. 내일 유골을 찾지 못하면, 더 이상 준우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준우의 입가가 조금 튼 것을 보며 나는 물을 좀 먹여주었다. 그런데, 내가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에 컵이 바닥에 떨어졌다.나는 급히 허리를 굽혀 컵을 주었지만
결혼한 지 8년, 난 서준혁과 가정에 미안할 짓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8년 동안 최선을 다한 날 배신했다.준혁은 나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빚을 갚기 위해서지. 네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되잖아.” “뭐? 또 빚을 졌다고? 당신, 이제 도박 안 한다고 했잖아!”나는 또 도박을 했다는 그의 말에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결혼 전, 서준혁은 도박으로 인해 1,000만 원을 빚지고 있었다. 그때 준혁의 부모님이 대신 빚을 갚아주었고, 그는 나에게 두 번 다시 도박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나는 서준혁의 청혼에 동의했다. 역시 도박꾼의 말은 믿어선 안 됐다.“내가 계속 이렇게 운이 나쁠 리가 없잖아! 다른 사람들도 더 이상 날 무시하지 않을 거야!”서준혁은 말을 마치고, 병원에서 봤던 그 복권을 꺼냈다.“내가 이 복권으로 얼마 벌었는지 알아? 하하, 너 몇 달 치 월급이랑 맞먹어. 돈은 이렇게 쉽게 벌 수 있는 거야. 내가 소은 씨랑 손잡고 난 후부터 운이 정말 좋아졌어.”준혁은 복권을 손에 쥔 채 뽀뽀를 하며, 마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처럼 소중히 여겼다.“고작 돈 때문에 우리 아이를 해치는 걸 허락한 거야?”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추잡한 모습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그렇게 말하지 마. 소은 씨네 집이 곧 재개발될 거야. 우리 아들이 소은 씨와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야. 소은 씨가 성공하면 재개발 보상금 반을 나한테 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너무 괴로워하지 마, 아이는 나중에 또 낳으면 되잖아.”준혁은 아이를 낳는 게 아주 쉬운 일인 것처럼 말했다. 나는 묶여있지 않았다면 당장 달려가 그를 쥐어뜯고 싶었다. 다행히 그는 아직 한소은이 준우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나는 서준혁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기로 결심했다. 그의 양심이 아직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서준혁, 네가 얼마를 빚졌는지는 상관없어. 이 집을 너한테 넘길 테니가, 제발 준우를
“아니! 내 아이는 죽지 않았어! 죽었다고 하지 마! 내 아이는 죽지 않았다고, 지금 여기 있거든...”소은은 준우를 꽉 껴안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미친년들.” 준혁이 불만을 토로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내 손을 잡아 서류에 도장을 찍게 하려고 했다.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준혁은 고개를 돌려 눈동자가 없는 아이를 보더니 놀라 기절하고 말았다.소은은 애초에 준혁을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준혁은 그저 이용한 뒤 버려질 도구뿐이었다.소은은 품속의 아이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다정하게 속삭였다.“아가야, 곧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거야.”소은은 현관 쪽으로 다가가 이 집을 떠나려 했다.나는 고개를 들어 거실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시계에는 11시 12분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늦었어...’이때 갑자기 노란색 부적이 소은을 향해 날아갔고, 그녀는 즉시 멈춰 섰다.민지가 스승을 모시고 달려온 것이었다.“다행이야.” 민지는 급히 나를 부축한 뒤 내 얼굴의 상처를 보고 화를 냈다.“정말 잔인한 여자네, 어떻게 너를 이 모양으로 만들 수가 있지!”나는 서준혁이 때린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민지는 나와 준혁의 결혼을 처음부터 강력하게 반대했었기에 나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우선 이것 좀 풀어줘.”내가 곧 한소은와 준우가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은 창백하고, 눈썹 사이로 검은 기운이 서서히 떠돌고 있었다.“안 돼! 죽은 아이의 기운이 이미 침식하기 시작했어. 유골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유골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나도 도와줄 수 없어.”스승이 고개를 돌려 민지에게 말했다.나는 이전에 놓쳤던 점을 떠올렸다. 나는 급히 앞으로 달려가, 소은의 옷을 찢었다. 민지가 놀란 눈빛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소은의 속옷에서 유골 한 통을 꺼냈다.“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민지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전에 내가 소은의 옷을 세탁기에 넣어주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내 남편, 서준혁은 아기를 돌보느라 고생한 나에게 미안하다며 나 대신 아이를 돌봐줄 베이비시터를 구해줬다.한 번은 그녀가 멍하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얼굴은 희미하고 잠든 것 같은 아기 사진이 핸드폰 화면에 놓여있었다.“소은 씨 아이에요? 너무 귀엽네요.”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네, 하지만 아쉽게도 아주 먼 곳으로 갔어요.” 한소은의 표정은 매우 침울해 보였다.나는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얼어붙어 재빨리 사과했다.그러나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하하, 농담이에요. 아이는 할머니 집에서 지내고 있어요.”그 말을 듣고 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곧 명절인데 아이 보러 집에 가실래요?”소은은 핸드폰 사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네, 곧 만날 수 있을 거예요.”밤에 준혁은 감기에 걸린 듯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감기약을 챙겨 남편에게 건넨 뒤 옆에 누워있는 준우를 보았다.준우는 세 살밖에 안 되었기에, 혹시라도 감기가 옮기라도 할까 봐 나는 준우를 소은의 방으로 데려갔다.이미 한밤중이었는데도 소은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아이를 안았다. 마치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기뻐하는 눈치였다.나는 의심스러운 마음에 다시 눈을 깜빡였고, 소은의 표정이 여느 때와 다름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방을 나섰다.‘아마도 내가 잘못 본 거겠지.’며칠 후 준혁의 감기가 마침내 나았고 나는 준우를 다시 우리 방으로 데리고 오려 했다.그러나 준우는 갑자기 내 손길을 피하더니, 내가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은의 뒤로 숨었다. 소은은 아이가 잠시 낯을 가리는 거라며 곧 괜찮아질 거라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준우를 맡긴 적 있었지만 이번처럼 갑자기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멀리하는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준우는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졸음이 많아지더니 식욕도 좋지 않아 식사량이 이전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예전에 베이비시터가 아이들에게 약물을
“이게...” 준혁은 오히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물으려 했다.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서준혁! 이게 네가 말한 베이비시터야? 당장 우리 집에서 내쫓아!”그러자 소은은 나에게 달려와 무릎을 꿇고 빌었다.“정말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제 아이를 너무 오래 보지 못해서 그리운 마음에...”나는 그녀의 설명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 아이를 자기 아이처럼 대한 거예요? 도대체 절 도우러 온 거예요, 아니면 본인 욕심을 채우러 온 거예요?”내가 용서해 줄 기미가 없어 보이자 그녀는 계속 내 바지를 잡아당기며 울부짖었다.“다 제 잘못이에요, 저 혼자서 부모님과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이 일자리를 꼭 지켜야 해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애석하게도 나는 한 번 내린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다.“안 나가면 경찰을 부를 거예요!”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려는 제스처를 취했다.이 상황을 본 준혁은 급히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 나섰다.“소은 씨, 제 아내도 그렇게 매정한 사람은 아니니 먼저 돌아가 보세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소은은 고개를 들어 나와 준우를 한 번 쳐다본 뒤 마지못해 집을 나섰다.이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다음 날 아침 준우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아이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줄 알고 웃으며 물었다.“준우야, 아침에 뭐 먹고 싶어?”그러나 준우는 한참이 지나도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당황한 마음에 몇 번을 반복해서 질문한 후에야 준우가 옹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갑자기 말을 못 한다고?내가 충격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준우는 ‘아아' 소리를 몇 번 내더니 침대에서 몸을 비틀고는 바로 오줌을 쌌다.나는 놀란 마음에 바로 준우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고, 의사는 검사를 통해 영양실조일 뿐이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입원해서 관찰해도 된다고 했다.나는 즉시 입원 절차를 밟고 준혁에게 이
간호사가 떠난 뒤 난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소은과 간호사가 했던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도대체 누구 말이 진짜일까?’간호사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으니, 분명 소은이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 사실을 숨긴 걸까?나는 갑자기 어젯밤 소은의 이상한 행동이 떠올랐다.‘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정신이 나간 걸까? 그래! 분명 그런 걸 거야!’나는 즉시 절친 김민지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한소은이 미치기 시작하면 혼자서 감당할 수 없으니까.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마음이 더욱 초조해졌다.나는 핸드폰을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소은에게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런 행동이 그녀를 자극할까 봐 겁이 났다.마침내 용기를 내어 통화 버튼을 누르자 소은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거두고 아무 일도 없는 척했다.소은은 도시락을 들고 다가오더니 말했다.“몇 가지 요리를 준비해왔는데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그럴 리가요, 수고 많으셨어요.”나는 미소를 지었지만 사실은 무서운 마음에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소은은 자신이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면서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럴수록 나는 더 겁이 났다.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겨우 식사를 마쳤다. 소은은 내가 준우 때문에 걱정되어 입맛이 없는 줄 알고 의심을 하지 않고 도시락통을 챙기고 나갔다.소은이 떠나자마자 민지가 병실에 도착했다.나는 화가 나서 민지를 노려보며 말했다.“왜 이제야 왔어? 내가 방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민지는 나와 대화를 나누려 했지만 준우를 본 순간 미소가 얼어붙었다.“최근에 준우가 다른 사람과 가까이한 적 있어?” 민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나는 깜짝 놀란 뒤 곧바로 말했다.“마침 말하려던 참이었어. 집에 새로 온 베이비시터가 있는데, 그 사람이 엄청 이상하거든...”나는 요 며칠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말했
“아니! 내 아이는 죽지 않았어! 죽었다고 하지 마! 내 아이는 죽지 않았다고, 지금 여기 있거든...”소은은 준우를 꽉 껴안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미친년들.” 준혁이 불만을 토로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내 손을 잡아 서류에 도장을 찍게 하려고 했다.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준혁은 고개를 돌려 눈동자가 없는 아이를 보더니 놀라 기절하고 말았다.소은은 애초에 준혁을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준혁은 그저 이용한 뒤 버려질 도구뿐이었다.소은은 품속의 아이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다정하게 속삭였다.“아가야, 곧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거야.”소은은 현관 쪽으로 다가가 이 집을 떠나려 했다.나는 고개를 들어 거실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시계에는 11시 12분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늦었어...’이때 갑자기 노란색 부적이 소은을 향해 날아갔고, 그녀는 즉시 멈춰 섰다.민지가 스승을 모시고 달려온 것이었다.“다행이야.” 민지는 급히 나를 부축한 뒤 내 얼굴의 상처를 보고 화를 냈다.“정말 잔인한 여자네, 어떻게 너를 이 모양으로 만들 수가 있지!”나는 서준혁이 때린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민지는 나와 준혁의 결혼을 처음부터 강력하게 반대했었기에 나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우선 이것 좀 풀어줘.”내가 곧 한소은와 준우가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은 창백하고, 눈썹 사이로 검은 기운이 서서히 떠돌고 있었다.“안 돼! 죽은 아이의 기운이 이미 침식하기 시작했어. 유골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유골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나도 도와줄 수 없어.”스승이 고개를 돌려 민지에게 말했다.나는 이전에 놓쳤던 점을 떠올렸다. 나는 급히 앞으로 달려가, 소은의 옷을 찢었다. 민지가 놀란 눈빛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소은의 속옷에서 유골 한 통을 꺼냈다.“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민지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전에 내가 소은의 옷을 세탁기에 넣어주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결혼한 지 8년, 난 서준혁과 가정에 미안할 짓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8년 동안 최선을 다한 날 배신했다.준혁은 나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빚을 갚기 위해서지. 네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되잖아.” “뭐? 또 빚을 졌다고? 당신, 이제 도박 안 한다고 했잖아!”나는 또 도박을 했다는 그의 말에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결혼 전, 서준혁은 도박으로 인해 1,000만 원을 빚지고 있었다. 그때 준혁의 부모님이 대신 빚을 갚아주었고, 그는 나에게 두 번 다시 도박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나는 서준혁의 청혼에 동의했다. 역시 도박꾼의 말은 믿어선 안 됐다.“내가 계속 이렇게 운이 나쁠 리가 없잖아! 다른 사람들도 더 이상 날 무시하지 않을 거야!”서준혁은 말을 마치고, 병원에서 봤던 그 복권을 꺼냈다.“내가 이 복권으로 얼마 벌었는지 알아? 하하, 너 몇 달 치 월급이랑 맞먹어. 돈은 이렇게 쉽게 벌 수 있는 거야. 내가 소은 씨랑 손잡고 난 후부터 운이 정말 좋아졌어.”준혁은 복권을 손에 쥔 채 뽀뽀를 하며, 마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처럼 소중히 여겼다.“고작 돈 때문에 우리 아이를 해치는 걸 허락한 거야?”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추잡한 모습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그렇게 말하지 마. 소은 씨네 집이 곧 재개발될 거야. 우리 아들이 소은 씨와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야. 소은 씨가 성공하면 재개발 보상금 반을 나한테 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너무 괴로워하지 마, 아이는 나중에 또 낳으면 되잖아.”준혁은 아이를 낳는 게 아주 쉬운 일인 것처럼 말했다. 나는 묶여있지 않았다면 당장 달려가 그를 쥐어뜯고 싶었다. 다행히 그는 아직 한소은이 준우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나는 서준혁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기로 결심했다. 그의 양심이 아직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서준혁, 네가 얼마를 빚졌는지는 상관없어. 이 집을 너한테 넘길 테니가, 제발 준우를
그제야 나는 마음을 놓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나는 영화 속 장면이 실제로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고, ‘그것’의 섬뜩한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그것’이 내 아들의 몸을 빌려 살아날 거라고 생각하자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안 돼! 절대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어!’나는 곧바로 한소은이 지내던 방으로 달려갔다. 미친 듯이 방안을 뒤지며 단서를 찾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결국, 나는 무기력하게 바닥에 주저앉았다.서준혁은 음식을 차린 뒤 나를 불렀다. 그날 이후로 그는 줄곧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나에게 다가오려고 애썼다.그러나 나는 그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내 마음은 오로지 준우에게만 집중돼 있었다.“좀 먹어, 당신 너무 말랐어.” 준혁은 내게 음식을 챙겨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밥을 먹으며 핸드폰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하진 않을까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결국, 나는 모든 희망을 지민에게 걸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아직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그렇게 또 이틀이 지나자 준우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처음에는 주로 의식을 잃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의 모습이 점점 더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나는 급히 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고는 뭔가 이상하다고 말했다.[죽은 아이의 영혼이 엄마와 분리된 상황에 젖을 먹이지 않으면 점점 더 약해져야 하는 게 정상이야. 그런데 왜 점점 더 자주 나타나기 시작한 거지?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민지는 내일 오겠다며 나더러 좀만 버티고 있으라고 말했다.나는 전화를 끊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준우를 안고 있었다. 내일 유골을 찾지 못하면, 더 이상 준우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준우의 입가가 조금 튼 것을 보며 나는 물을 좀 먹여주었다. 그런데, 내가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에 컵이 바닥에 떨어졌다.나는 급히 허리를 굽혀 컵을 주었지만
내 남편, 서준혁은 야근을 마치고 병원에 도착했다. 그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도시락통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 걸 보았다.“왜 그래? 이제 과학이 발달해서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기라도 한 거야?”준혁은 내 기분이 좋지 않은 걸 알아차리고 일부러 장난치듯이 말했다.나는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너무 걱정하지 마, 의사 말로는 그냥 영양 부족이라니까 곧 괜찮아질 거야.” 준혁이 나를 끌어 안자 나는 그의 어깨에 몸을 맡겼다. 그 순간, 깊은 안정감이 밀려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준우는 우리의 아이니까, 설사 이 말이 황당하게 들리더라도 준혁 씨는 분명 믿어줄 거야, 그치?’마음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사실 준우가 병든 이유는...”그러나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준혁이 핸드폰을 꺼내자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이 빠져나와 내 발밑에 떨어졌다.그는 그것을 다시 주머니 속에 넣으려 했지만, 나는 이미 먼저 그것을 집어 들었다.그것은 복권이었다. 당첨이 된다면 꽤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고, 시간은 오늘 밤 7시 23분으로 적혀 있었다.서준혁은 병원에 오기 전에도 복권을 사러 간 거였다.나는 씁쓸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에게 모든 걸 말하려 했던 내가 우스울 뿐이었다.“수영아, 내 말 좀 들어봐. 마침 지나가는 길이라 한 장 산 것뿐이야.”준혁은 내 표정을 보더니 급히 전화를 끊고 나서, 서둘러 해명하려 했다.나는 계속해서 복권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준혁이 다시 무언가 말하려 했을 때, 나는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듣든 말든 상관없었고, 나는 더 이상 그와 싸울 힘도 없었다.“당신은 집에 가.”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준혁은 여전히 자리에 서서 떠나지 않았다.내가 테이블 위에 있던 도시락통을 쾅 하고 내려치자 밥과 반찬이 땅바닥에 흩어졌다.준혁은 상황을 보더니 결국 한숨
민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가 말했던 대로, 죽은 아이는 단지 몇 달밖에 안 된 갓난아이야. 그러니까 영혼이 분명 준우보다 약하니 엄마가 옆에서 달래줘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불안감을 느끼고 영혼이 해이해질 거야.”“어쩐지...” 어젯밤 이불 밑에 수많은 간식과 장난감이 있었던 건 분명 소은이 준우와 친해지기 위해 쓴 수단일 것이다. “그럼 두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면 괜찮아지는 거야?”민지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야. 두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죽은 아이의 유골을 찾아내야 해.”“유골?”“맞아, 준우가 전화된 반응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먼저 죽은 아이의 유골을 찾아내 제도한다면 준우도 정상으로 회복될 거야.”민지의 말에 나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하지만 그 여자가 이 방법을 사용한 만큼 유골은 분명 은밀한 곳에 숨겨두었을 거야. 그 여자가 너희 집에 온 시간부터 계산해 본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5일밖에 남지 않았어.”“만약 5일 안에 유골을 찾아내지 못했다면...”나는 두려움에 떨며 이 질문을 했다.“유골을 찾지 못하면 죽은 아이의 영혼은 계속 준우의 몸에 빙의될 거고, 엄마의 젖을 먹지 못한다면 준우와 죽은 아이의 영혼이 모두 준우의 몸에 남아있을 거야.”이제 막 타오르던 희망은 순식간에 무너졌다.5일, 이제 5일밖에 안 남았다니...민지는 걱정이 가득한 내 표정을 보더니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해 주었다.“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 볼게.” “그럼 난 뭘 하면 되는 거지?”나도 엄마로서 뭔가를 하고 싶었기에, 민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일단은 밥을 좀 먹여야 해. 그 여자가 가져온 것들은 산 사람이 먹는 게 아니니까 준우는 먹을수록 몸이 허약해질 거야. 그리고 이 부적으로 당분간 준우의 영혼을 안정시킬 수 있어.”“지금 가장 중요한 건 죽은 아이의 유골을 찾아내는 거야. 내가 스승님한테서 법기를 빌려올 테니 그 여자
간호사가 떠난 뒤 난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소은과 간호사가 했던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도대체 누구 말이 진짜일까?’간호사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으니, 분명 소은이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 사실을 숨긴 걸까?나는 갑자기 어젯밤 소은의 이상한 행동이 떠올랐다.‘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정신이 나간 걸까? 그래! 분명 그런 걸 거야!’나는 즉시 절친 김민지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한소은이 미치기 시작하면 혼자서 감당할 수 없으니까.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마음이 더욱 초조해졌다.나는 핸드폰을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소은에게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런 행동이 그녀를 자극할까 봐 겁이 났다.마침내 용기를 내어 통화 버튼을 누르자 소은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거두고 아무 일도 없는 척했다.소은은 도시락을 들고 다가오더니 말했다.“몇 가지 요리를 준비해왔는데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그럴 리가요, 수고 많으셨어요.”나는 미소를 지었지만 사실은 무서운 마음에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소은은 자신이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면서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럴수록 나는 더 겁이 났다.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겨우 식사를 마쳤다. 소은은 내가 준우 때문에 걱정되어 입맛이 없는 줄 알고 의심을 하지 않고 도시락통을 챙기고 나갔다.소은이 떠나자마자 민지가 병실에 도착했다.나는 화가 나서 민지를 노려보며 말했다.“왜 이제야 왔어? 내가 방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민지는 나와 대화를 나누려 했지만 준우를 본 순간 미소가 얼어붙었다.“최근에 준우가 다른 사람과 가까이한 적 있어?” 민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나는 깜짝 놀란 뒤 곧바로 말했다.“마침 말하려던 참이었어. 집에 새로 온 베이비시터가 있는데, 그 사람이 엄청 이상하거든...”나는 요 며칠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말했
“이게...” 준혁은 오히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물으려 했다.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서준혁! 이게 네가 말한 베이비시터야? 당장 우리 집에서 내쫓아!”그러자 소은은 나에게 달려와 무릎을 꿇고 빌었다.“정말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제 아이를 너무 오래 보지 못해서 그리운 마음에...”나는 그녀의 설명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 아이를 자기 아이처럼 대한 거예요? 도대체 절 도우러 온 거예요, 아니면 본인 욕심을 채우러 온 거예요?”내가 용서해 줄 기미가 없어 보이자 그녀는 계속 내 바지를 잡아당기며 울부짖었다.“다 제 잘못이에요, 저 혼자서 부모님과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이 일자리를 꼭 지켜야 해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애석하게도 나는 한 번 내린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다.“안 나가면 경찰을 부를 거예요!”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려는 제스처를 취했다.이 상황을 본 준혁은 급히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 나섰다.“소은 씨, 제 아내도 그렇게 매정한 사람은 아니니 먼저 돌아가 보세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소은은 고개를 들어 나와 준우를 한 번 쳐다본 뒤 마지못해 집을 나섰다.이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다음 날 아침 준우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아이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줄 알고 웃으며 물었다.“준우야, 아침에 뭐 먹고 싶어?”그러나 준우는 한참이 지나도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당황한 마음에 몇 번을 반복해서 질문한 후에야 준우가 옹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갑자기 말을 못 한다고?내가 충격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준우는 ‘아아' 소리를 몇 번 내더니 침대에서 몸을 비틀고는 바로 오줌을 쌌다.나는 놀란 마음에 바로 준우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고, 의사는 검사를 통해 영양실조일 뿐이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입원해서 관찰해도 된다고 했다.나는 즉시 입원 절차를 밟고 준혁에게 이
내 남편, 서준혁은 아기를 돌보느라 고생한 나에게 미안하다며 나 대신 아이를 돌봐줄 베이비시터를 구해줬다.한 번은 그녀가 멍하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얼굴은 희미하고 잠든 것 같은 아기 사진이 핸드폰 화면에 놓여있었다.“소은 씨 아이에요? 너무 귀엽네요.”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네, 하지만 아쉽게도 아주 먼 곳으로 갔어요.” 한소은의 표정은 매우 침울해 보였다.나는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얼어붙어 재빨리 사과했다.그러나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하하, 농담이에요. 아이는 할머니 집에서 지내고 있어요.”그 말을 듣고 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곧 명절인데 아이 보러 집에 가실래요?”소은은 핸드폰 사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네, 곧 만날 수 있을 거예요.”밤에 준혁은 감기에 걸린 듯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감기약을 챙겨 남편에게 건넨 뒤 옆에 누워있는 준우를 보았다.준우는 세 살밖에 안 되었기에, 혹시라도 감기가 옮기라도 할까 봐 나는 준우를 소은의 방으로 데려갔다.이미 한밤중이었는데도 소은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아이를 안았다. 마치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기뻐하는 눈치였다.나는 의심스러운 마음에 다시 눈을 깜빡였고, 소은의 표정이 여느 때와 다름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방을 나섰다.‘아마도 내가 잘못 본 거겠지.’며칠 후 준혁의 감기가 마침내 나았고 나는 준우를 다시 우리 방으로 데리고 오려 했다.그러나 준우는 갑자기 내 손길을 피하더니, 내가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은의 뒤로 숨었다. 소은은 아이가 잠시 낯을 가리는 거라며 곧 괜찮아질 거라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준우를 맡긴 적 있었지만 이번처럼 갑자기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멀리하는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준우는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졸음이 많아지더니 식욕도 좋지 않아 식사량이 이전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예전에 베이비시터가 아이들에게 약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