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 정도의 괴롭힘은 범죄에 속하지 않았다.“글쎄. 쭉 그렇지 않을까? 왜냐면 감방에 갈 사람은 내가 아니니 혐의를 벗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 단지 내가 그걸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가 중요한 거지.”그녀가 차갑게 비웃으며 이를 악물었다.“그만 현실을 직시해요, 한태군 씨. 지금 당신은 감옥에 갇혀 자기 몸 하나 지키지 못하는 실패한 황자일 뿐이에요. 나 말고 아무도 당신을 구해줄 수 없어요!”그때, 갑자기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한태군 씨, 이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세시아의 표정이 급변했다.“그럴 리가 없어요!”그가 가장 확실한 용의자인데 어떻게 이대로 석방될 수 있단 말인가?한태군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경찰이 이어서 말했다.“와이프 분께서 당신을 위해 당신이 유옥을 독살하지 않았다는 유력한 증거를 제공하셨습니다.”한태군의 몸이 살짝 굳어졌다.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취조실을 재빨리 벗어났다.세시아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경찰이 돌아가려고 할 때 그녀가 이를 악물며 물었다.“저 사람 와이프가 대체 무슨 증거를 제공했다는 거죠?”그러자 경찰이 답했다.“유옥은 그녀를 유산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한태군 씨가 와이프를 위해 유옥한테 복수했다는 동기는 성립되지 않습니다.”세시아는 두 주먹을 꼭 말아 쥐고 화가 나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강유이가 유산하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한태군이 작정하고 그들을 속였다는 말이었다!하지만 한태군은 강유이를 숨기기 위해 자신에게 억지로 약까지 먹였었다.이제 그녀는 더 이상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자신은 이 모양이 되었는데 그년의 아이는 아직도 살아있다니!그녀는 강열한 증오심에 휩싸였다. 세시아는 어떻게든 그 두 사람에게 대가를 치르게 만들 거라고 다짐했다.한태군은 곧장 로비로 달려갔다. 오고 가는 인파 속에서 익숙한 여자가 눈에 안겨들어왔다.
여기서 더 화나게 하면 달래기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전유준은 그제야 말을 꺼냈다.“단서를 찾았는데, 태라 집안 집사도 북부 출신이었습니다. 바덕과 같은 마을 출신입니다.”한태군은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북부라, 꽤 좋은 좋은 단서인 것 같네요. 지금 북부로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도록 하세요. 참, 이 정보는 일부러 흘리는 게 좋겠어요.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갈 수 있도록.”전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전유준이 떠나자 강유이가 한태군의 팔을 잡아당기며 물었다.“태군 오빠, 집사가 죽은 거 태라 가문과 정말 관련 있는 거지?”한태군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더니 그녀의 손을 잡았다.“십중팔구고 그렇다고 봐. 하지만 증거가 필요해.”그가 그녀를 품에 끌어안더니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걱정 마. 난 자신 있으니까.”…경찰서를 다녀온 후 세시아는 더욱 난폭해졌다. 그녀는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고, 아무 사람이나 때리고 욕했다.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몰래 화를 낼뿐 감히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다들 뒤에서 수군거렸다.“아가씨 성질이 점점 더 고약해 지는 것 같아. 이제 더는 못 참겠어.”“이해들 해. 어쩔 수 없잖아. 아가씨는 이제 아이도 갖지 못하는 몸인데, 왕비의 꿈을 버리지 못했으니.”“그러게 누가 전하의 심기를 건드리래? 자업자득이잖아!”그런데 하필 그녀들이 주방에 모여 수군거리는 소리를 세시아가 듣게 되었다. 그녀들이 등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늦은 뒤었다.세시아는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여자 고용인을 발로 걷어찼다. 고용인이 바닥에 쓰러지자 남은 사람들은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두려움에 떨었다.“아가씨…”“누가 너희들한테 내 험담을 해도 된다고 허락했어?! 네까짓 것들이 뭔데 감히 지금 내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거야?”세시아의 표정이 무서울 정도로 흉악하게 이그러졌다.“죄송해요.. 아가씨, 저희들이 잘못했어요. 절대 다시는 안 그
그러자 태라 대신의 얼굴이 살짝 이그러졌는데, 그가 감정을 숨기며 대답했다.“그 일이라면 세시아와 아무 상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여자가 세시아를 이용한 겁니다. 우리 세시아는 절대 감히 황자 자손을 해칠 일을 저지를 아이가 아닙니다.”“그래요?”정연이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시선이 맑게 우러난 찻물에 고정되었다.“그렇다면 제 아들 태군이 그 여죄수의 죽음을 밝히려다가 오히려 용의자로 모함당한 건요?”“폐하, 전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어쩌면 정말로 와이프 분 대신 복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감옥에서 아직 범인도 못 밝히고 있을 때 전하께서는 사람을 시켜 범인을 찾아내셨습니다. 그런데 범인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살해당했더군요. 이 일은 확실히 전하의 혐의가 큽니다.”“태군이한테 혐의가 있다면, 세시아 아가씨는 정말로 혐의가 없는 건가요?”태라 대신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정연이 고개를 들고 태라 대신을 똑바로 직시했다. 그녀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그 여죄수가 세시아 아가씨를 이용했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만약 그 여자가 세시아 아가씨를 이용해 왕자의 자식을 해치려 했다면 그녀한테 이득이 되는 건 뭐죠? 만약 배후가 없었다면 그녀가 정말로 그런 짓을 했을까요?”“폐하, 가당치도 않은 얘깁니다.”태라 대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확실하게 언짢음을 나타냈다.정연이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저는 사실만 말했습니다. 태라 경, 제가 이 자리를 계승 받은 지 이제 얼마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태라 경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속여 넘겼을지 몰라도, 저는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그녀는 자신의 뜻을 명확히 밝혔다.태라 대신이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폐하께서는 지금 황자 전하의 잘못을 감싸는 겁니까?”“태라 경, 경께서 세시아 아가씨를 감싸는데 저라고 왜 제 아들을 감싸지 못하겠습니까?”정연의 표정이 엄숙해졌다.“제 아들은 범인을 조사하다 오히려 용의자로 몰렸습니다. 지금 그 일로 여론이 떠들썩한데
노인은 그를 집안으로 청했고, 노인의 아내가 전유준한테 차를 따뜻한 차를 건네주었다. 노인은 아내한테 먼저 쉬어라고 전한 후 그에게 물었다.“뭘 물으러 오셨습니까?”“그게 말입니다. 바덕 씨가 며칠 전 총에 맞아 사망하셨습니다. 저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바덕 씨의 죽음에 대해 조사 중입니다.”노인은 바덕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 되물었다.“그게 무슨 소립니까. 바덕이 죽었다고요?”전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과 바덕 씨는 예전에 이웃사촌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르신은 바덕 씨의 일에 대해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의 가족도 포함해서 말입니다.”창밖에는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져갔다.한참이 지나서야 전유준은 노인과 작별하고 집에서 나왔다. 차 앞에까지 도착한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빗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여러 명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태라 가문 서재에는 늦은 밤까지 불이 밝혀져 있었다. 태라 대신은 창문 앞에 멈춰 선 채 알 수 없는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그의 표정이 밤하늘과도 같이 어두웠다.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 그가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받았다. 상대편에서 뭐라고 말을 했는지 태라 대신이 휴대폰을 꽉 움켜잡았다.잠시 후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알았어. 그리고 사람을 시켜 내각 쪽 대신들을 잘 지켜보라고 해. 소문내는 놈이 있으면 바로 죽여버릴 테니까.”‘그 여자는 오랜 시간 동안 황실에 공헌한 태라 가문을 무시했어. 그럼 이제 어떤 상황이 닥치든 나를 원망하지 말라고.’…다음날 궁중 회의실.내각 대신들이 회의실에 모여들어 정연이 살인 용의자인 한태군을 감싸주고 있다고 항의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태라 가문을 옹호하며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정연이 응당 선왕을 따라배워야 한다며,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해 귀족과 대신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소리쳤다.정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여준우가 고개를 들며 대신들을 바라보았다.“그러니까, 전하의 아이와 부인 모두 무사한데 왜 전하께서 복수를 하셔야 하죠?”회의실에 모여있던 대신들이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한태군은 확실히 여죄수를 독살할 가능성이 낮았다. 여죄수의 범행은 완벽하게 성사되지 못했고 비극을 초래하지도 않았으니까.한태군은 더 이상 여죄수를 독살할 이유가 없었다.정연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며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럼, 다들 잘 알아 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제 아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아들의 죄를 덮어주는 걸 선택했다면, 왜 아들한테 경찰 조사까지 받게 했겠습니까?제 아들과 며느리가 이런 억울한 일을 겪었는데 저라고 왜 나서서 이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나라의 일도 일이지만 집안일도 일입니다. 만약 제가 집안도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자리에 앉은 후로 줄곧 억압을 당해왔습니다. 이게 대신들이 말하는 충정인가요? 아니면 제가 이 자리에서 물러나 여러분들한테 황실을 넘겨야 직성이 풀리시겠습니까?”“폐하, 저희는 그런 뜻이 아니라…”“그 뜻이 아니라면, 설마 태라 가문이 찔러주는 뇌물을 하도 많이 받다 보니 내 권력도 대신들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정연의 말에 좌석에 앉아있던 대신들의 간담이 서늘해졌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각에 태라 가문 그 늙은 여우가 자리 잡고 있으니 황제의 말도 이제 먹히지 않는군요. 그렇다면 그자를 이 자리에 앉히시지요.”“폐하, 태라 각하는 정말로 황실에 충심을 다 하는 자입니다.”“충심이라. 그 자가 지금 내 머리 꼭대기에서 춤을 추려고 하는데 아직까지 충심이라는 말이 나옵니까?”정연이 화를 내며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쳤다. 그녀가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그자의 딸이 여죄수를 매수해 왕자의 자손을 해하려 했을 때에는 왜 그 충성을 보이지 않았지요?”대신들이 또다시 침묵했
”비가 너무 세게 내려서 얼굴은 자세하게 보지 못했습니다만 하는 행동으로 봤을 때는 무서울 것 하나 없는 무법천지로 날뛰는 놈들이었습니다. 마치 목숨도 아깝지 않은 것처럼 달려들더라고요.”한태군이 한참 동안 병실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여러분들은 병원에서 그를 잘 지켜주세요.”“걱정 마세요 전하.”한태군은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그가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꽉 움켜쥔 주먹에 핏줄이 불뚝 튀어나와있었다.하지만 이로써 그는 더욱 확신했다.이번 일이 확실히 태라 가문 집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하지만 지금은 전유준이 혼수상태였기에 증거가 없었다. 그러면 경찰도 그를 체포해 조사할 수 없게 된다.그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벌어진 손 틈 사이로 그가 전방을 주시했다. 그의 눈빛에서 냉기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며칠 후 파격적인 녹음 파일이 웬 이름 모를 해커로 인해 공개되었다. 내무 대신과 태라 대신 사이에 있었던 비밀스러운 거래가 갑자기 폭로된 것이다. 그 파일은 단번에 뉴스 일면을 장식했다.그들이 아무리 거금을 들여 여론을 잠재우려 해도 뉴스가 실린 신문은 이미 하룻밤 사이에 만 부나 인쇄되어 전부 매진된 상태였다. 심지어 해외에까지 퍼져나가고 있었다.태라 대신은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몹시 노여워했다.“대체 누가 터뜨린 거야!”집사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저… 그게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 그래서 이미 사람을 시켜 철저히 알아보라고 지시했습니다….”“하나같이 쓸모없는 것들!”태라 대신이 팔을 휘저으며 서재를 나섰다.마침 태라 부인이 커피를 들고 서재로 오고 있던 참이었다. 기사를 보지 못한 그녀는 현재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여보, 혹시 무슨 일 생겼어요?”태라 대신은 이번 일로 충분히 심기가 어지러웠기에 아예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친 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쟁반을 들고 있던 태라 부인의 손에 힘이 실렸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여론의 영향이 어찌나 컸던
내무부 대신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진작에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름 모를 해커가 내각 내부의 안전 시스템을 전부 공격해 모든 전산 시스템이 마비되어 버렸다. 또한 그들의 공식 사이트 바탕 창에 “다음은 네 차례야.”라는 문구가 떡하니 올라있었다.의문의 해커가 벌인 행동으로 내각 임원들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내무부 대신이 주동적으로 경찰에 자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그들은 한 사람의 희생으로 다른 사람들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그런데 두 날도 채 되지 않아 해커가 또 다른 대신의 스캔들을 터뜨린 것이다.겉보기에는 내각을 상대로 폭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폭로된 대신 모두 태라 가문과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었다.크루즈 내의 한 룸.반재신은 태블릿 PC를 닫으며 한태군을 바라보았다.“진짜 이 방법이 그 늙은이한테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해?”한태군은 눈앞에 놓인 태블릿 PC를 주시하며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쳤다.“아니, 타격은 못 주겠지. 내무부 대신은 그를 위해 죄를 뒤집어썼고,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그에게 버려지게 되겠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여론과 압박을 주는 거야. 두려운 게 있어야 반항할 수 있지 않겠어?”반재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너를 이 정도까지 몰아붙이다니! 태라 가문의 그 늙은이도 참 지독한 사람이네.”한태군이 가볍게 눈을 치켜떴다. 그의 눈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아무리 오래된 고목이라 해도 언젠가는 꺾이기 마련이지.”…해커의 공격은 며칠 동안이나 계속 이어졌다. 내각 임원들의 기세는 이미 대부분 꺾인 상태였다. 그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해커를 청해와도 한태군과 반재신의 바이러스 공격을 꿰뚫지 못했다.그들은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황실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이 지경이 되니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도 그저 자기 얼굴에 침
잠시 후 그녀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신경 쓸 새도 없이 서둘러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엄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아빠한테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태라 부인은 차마 말을 꺼내기 힘들었지만, 결국은 딸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결정했다.사건의 진상을 들은 세시아의 눈에 공포심이 휘몰아쳤다. 만약 아버지가 정말로 그런 일을 했다면 태라 가문은 이제…‘안돼. 그럴 수는 없어!’태라 가문의 지위와 권력은 그녀의 자존심이었다.만약 그걸 잃어버린다면, 이제 그녀는 어쩐단 말인가?그녀는 절대 현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전부를 잃어버릴 수 없었다. 절대로!같은 시각, 한태군과 강유이는 전유준의 병문안을 오게 되었다. 전유준은 아직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의사는 상처가 너무 깊어 깨어날지 말지는 하늘에 달렸다고 말했다.강유이는 고개를 돌려 그늘진 한태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걱정 마, 유준 씨는 꼭 무사히 깨어날 거니까.”한태군이 시선을 내려뜨렸다. 꾹 닫혀있던 입술이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열렸다.“하.. 내가 너무 자만했어. 그라면 절대 무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어. 내가 자만하지 않았다면 그도 다치지 않았을 거야.”그는 자신의 결정이 정확하다는 오만에 빠져있었다. 그 결과 전유준이 적은 인원으로 조사하러 갔다가 피해를 입은 것이다.토끼몰이를 하려다가 오히려 상대가 파놓은 함정에 걸려든 것이다.한태군은 집사의 신중함을 경시했다. 그가 태라 가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잊은 것이다.태라가 곁에 둔 사람이 모자란 사람일 리가 없었다. 특히 태라는 이익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절대 누구도 자신의 이익을 훼손하는 걸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그가 내무부 대신을 희생양으로 세웠다는 건 당연히 집사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걸 말했다.그렇다면 집사는 그에게 버림받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태라의 이익을 보존하려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