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무부 대신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진작에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름 모를 해커가 내각 내부의 안전 시스템을 전부 공격해 모든 전산 시스템이 마비되어 버렸다. 또한 그들의 공식 사이트 바탕 창에 “다음은 네 차례야.”라는 문구가 떡하니 올라있었다.의문의 해커가 벌인 행동으로 내각 임원들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내무부 대신이 주동적으로 경찰에 자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그들은 한 사람의 희생으로 다른 사람들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그런데 두 날도 채 되지 않아 해커가 또 다른 대신의 스캔들을 터뜨린 것이다.겉보기에는 내각을 상대로 폭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폭로된 대신 모두 태라 가문과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었다.크루즈 내의 한 룸.반재신은 태블릿 PC를 닫으며 한태군을 바라보았다.“진짜 이 방법이 그 늙은이한테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해?”한태군은 눈앞에 놓인 태블릿 PC를 주시하며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쳤다.“아니, 타격은 못 주겠지. 내무부 대신은 그를 위해 죄를 뒤집어썼고,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그에게 버려지게 되겠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여론과 압박을 주는 거야. 두려운 게 있어야 반항할 수 있지 않겠어?”반재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너를 이 정도까지 몰아붙이다니! 태라 가문의 그 늙은이도 참 지독한 사람이네.”한태군이 가볍게 눈을 치켜떴다. 그의 눈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아무리 오래된 고목이라 해도 언젠가는 꺾이기 마련이지.”…해커의 공격은 며칠 동안이나 계속 이어졌다. 내각 임원들의 기세는 이미 대부분 꺾인 상태였다. 그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해커를 청해와도 한태군과 반재신의 바이러스 공격을 꿰뚫지 못했다.그들은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황실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이 지경이 되니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도 그저 자기 얼굴에 침
잠시 후 그녀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신경 쓸 새도 없이 서둘러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엄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아빠한테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태라 부인은 차마 말을 꺼내기 힘들었지만, 결국은 딸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결정했다.사건의 진상을 들은 세시아의 눈에 공포심이 휘몰아쳤다. 만약 아버지가 정말로 그런 일을 했다면 태라 가문은 이제…‘안돼. 그럴 수는 없어!’태라 가문의 지위와 권력은 그녀의 자존심이었다.만약 그걸 잃어버린다면, 이제 그녀는 어쩐단 말인가?그녀는 절대 현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전부를 잃어버릴 수 없었다. 절대로!같은 시각, 한태군과 강유이는 전유준의 병문안을 오게 되었다. 전유준은 아직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의사는 상처가 너무 깊어 깨어날지 말지는 하늘에 달렸다고 말했다.강유이는 고개를 돌려 그늘진 한태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걱정 마, 유준 씨는 꼭 무사히 깨어날 거니까.”한태군이 시선을 내려뜨렸다. 꾹 닫혀있던 입술이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열렸다.“하.. 내가 너무 자만했어. 그라면 절대 무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어. 내가 자만하지 않았다면 그도 다치지 않았을 거야.”그는 자신의 결정이 정확하다는 오만에 빠져있었다. 그 결과 전유준이 적은 인원으로 조사하러 갔다가 피해를 입은 것이다.토끼몰이를 하려다가 오히려 상대가 파놓은 함정에 걸려든 것이다.한태군은 집사의 신중함을 경시했다. 그가 태라 가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잊은 것이다.태라가 곁에 둔 사람이 모자란 사람일 리가 없었다. 특히 태라는 이익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절대 누구도 자신의 이익을 훼손하는 걸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그가 내무부 대신을 희생양으로 세웠다는 건 당연히 집사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걸 말했다.그렇다면 집사는 그에게 버림받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태라의 이익을 보존하려
여준우가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지만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이건 폐하의 명령입니다. 설마 태라 가문은 폐하의 명을 거역하려는 겁니까? 아니면 오늘날 태라 가문의 권세가 막강하다고 하여 황실마저도 안중에 안 두시는 건가요?”“당신…”“세시아.”태라 대신이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여준우를 노려보았다.“전 두려울 게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함께 가시죠. 하지만 만약 나한테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게 밝혀지면, 오늘 일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여준우가 피식 웃으며 옆으로 비껴셨다.“그럼 협조 부탁드립니다.”태라 대신이 팔을 휘저으며 성큼성큼 거실을 벗어났다. 경찰도 그의 뒤를 따랐다.세시아는 아버지가 연행되는 모습에 맥이 풀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마치 시들어버린 장미꽃 마냥 축 처져있었다.자신의 아버지는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모함이 분명했다!문뜩 그녀의 뇌리에 한 사람이 스쳤다. 무조건 그 남자 짓일 것이다.한태군!…블루마운틴 저택.한태군과 강유이가 막 차에서 내리는데 갑자기 세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한태군!”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세시아가 미친 사람처럼 달려오다 경호원한테 붙잡혔다. 그녀가 소리를 마구 내질렀다.“우리 아빠 일, 다 당신이 설계한 거지? 당신이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 우리 아빠를 감옥에 보내려는 거잖아. 당신이 대체 뭔데 그런 짓을 해!”한태군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너한테 복수하기 위해서라고? 세시아 아가씨, 너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거 아닌가요?”“그럼 아니라는 거예요?”그녀가 냉소를 지었다.“당신 나한테 강제로 그런 약들을 먹여서 다시는 임신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도 다 거짓말이었어요. 저년은 실제로 유산하지도 않았잖아요!”“한태군, 이 모든 일들은 당신 계략이잖아요. 내가 당신 진짜 모습을 다 까 밝힐 거예요. 당신이 나한테 한 일 언론에 전부 공개할 거라
”내무부 대신이 스스로 원해서 죄를 뒤집어쓰겠다고 한 것 외에는 다른 사람들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태라 대신이 꽤나 믿을 구석이 있나 봅니다.”한태군이 실눈을 뜨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럼 내무부 대신한테서 돌파구를 찾아봐야겠네요.”그는 유일하게 태라 대신을 위해 죄를 뒤집어쓰겠다고 자청한 사람이었다.그렇다면 분명 태라 대신한테 약점을 잡혔을 것이다.여준우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삼 일 남았습니다. 그럼, 힘내세요.”그는 말을 마치고 방에서 나갔다.한태군은 내무부 대신이 갇혀있는 유치장 문 앞에 도착했다. 유치장 안에 갇힌 중년 남자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 자유를 박탈당했으니 속이 말이 아닐 게 분명했다.한태군을 확인한 그가 흠칫 몸을 굳히더니 시선을 피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각하께서는 정말로 그 죄명을 대신 뒤집어쓸 생각이십니까?”그가 이를 악물었다.“전하께서 무슨 말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뭐, 괜찮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잡으면 잡은 거죠.”한태군이 문에 기대섰다.“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겁니다.”내무부 대신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듣기로 각하께서는 따님을 무척 아끼신다던데.”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해버렸다.“이 일은 제 딸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무고한 사람을 엮지 말아 주세요.”“본인 딸이 무고하면, 다른 사람들은 무고하지 않습니까?”한태군이 고개를 돌려 유치장 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제가 알기로 당신들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은 무고한 사업가가 적지 않습니다. 투자 사기에 엮여 본인이 속히 운 줄도 모르고 멍청하게 당신들을 위해 돈을 벌어다 주었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재산 전부를 잃었습니다.”내무부 대신이 입을 꾹 다물었는데, 다리 위에 올려놓은 손에 힘이 실렸다.그러자 한태군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물론 그들은 스스로 원해서 그런 함정에 빠진 게 맞습니다. 이익을 탐하지 않았다면 그런 곳에 투자도 하지 않았
한편 내무부 대신의 관저.남편이 체포되고 아마 이제 곧 수감될 위험에 처하자 내무부 대신 부인은 늦은 밤 서둘러 F 국으로 떠날 비행기표를 샀다. 그녀는 딸을 데리고 일단 해외로 도피할 생각이었다.두 모녀가 서둘러 짐을 싸고 막 집에서 나가려는데 정원 밖에 여러 대의 차가 멈춰 섰다.두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차 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여러 명이 내렸다.“죄송합니다 사모님. 당신들은 떠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차 안, 경호원의 전화를 받은 한태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좋습니다. 이제 판을 뒤집을 차례군요!”그가 통화를 마치자 곧바로 조수석에 앉아있던 경호원의 전화가 울렸다. 경호원이 전화를 받더니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말을 전했다.“전하, 전유준 씨가 깨어났다고 합니다!”“그럼 당장 병원으로 가죠.”차는 곧바로 유턴하여 병원으로 향했다.병실 안, 전유준은 이제 막 의식이 돌아온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이 허약해져 있었다.한태군이 서둘러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드디어 깨어난 전유준을 확인하고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몸은 좀 어떻습니까?”전유준이 싹 말라버린 입술로 겨우 미소 지었다.“저는 괜찮습니다. 총에 맞고도 운 좋게 목숨을 건졌거든요.”한태군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절대 이 상처가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겠습니다.”“도련님을 위한 일을 하다 죽으면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겁니다.”그렇게 대답하던 전유준은 그제야 한태군에게 할 말이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참, 바덕의 형이 누군지 알아냈습니다. 태라 가문의 그 집사가 맞았습니다.”전유준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제 외투 주머니에 사진이 들어있습니다.”한태군이 그의 외투를 들고 그 안에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두 형제가 젊었을 때 찍었던 사진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확실히 태라 가문의 집사와 많이 닮아있었다.젊었을 때 모습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한태군이 그를 바라보았다.“수고하셨니다.”“아닙니다. 적어도 이제 드디어 결
그러자 세시아가 냉소를 지었고, 순간 그녀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번뜩였다.“너 강유이 옆에 있었던 그 하인이지? 지난번에 봤을 때 그년이 꽤 너를 아끼는 것 같더라고. 지금쯤 네 생사 따위를 걱정하고 있겠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미아는 곧바로 세시아의 목적을 알아차렸다. 순간 공포심으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그 시각 강유이는 침대에 누워 막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녀가 막 잠에 들려는데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휴대폰을 확인하니 미아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강유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전화를 받았다.“네 미아 씨. 무슨 일이에요?”“미아라는 여자는 그만 찾아요. 설마 그녀가 내 손에 잡힐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겠죠?”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미아가 아니었지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강유이가 표정을 굳혔다.“당신은… 세시아 씨?”“네 저예요. 제가 말했잖아요. 꼭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강유이 씨 맞죠? 당신 하녀 지금 내 손에 있어요. 만약 이 여자의 생사가 걱정된다면 나를 찾아와요.”“사장님, 이 여자 말 듣지 마세… 읍읍!”미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강유이는 휴대폰을 꽉 쥐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세시아 씨, 이건 저와 당신 사이의 일이잖아요.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거죠? 미아 씨를 놓아주…”세시아는 강유이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강유이는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 외투를 들고 침실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다급하게 집사를 불렀고, 집사가 위층으로 올라오며 물었다.“사모님, 무슨 일 이시죠?”그녀는 집사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미아 씨가 세시아한테 잡혔어요. 세시아가 절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미아 씨가 위험해요!”집사가 흠칫 놀라더니 곧바로 침착하게 그녀를 달랬다.“사모님, 일단 진정하세요.”강유이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이성을 되찾기 어려웠다.“미아 씨를 어떻게든 구해내야 해요. 부탁해요!”
”유이야…”“태군 오빠, 오빠도 절대 다쳐서는 안 돼.”강유이가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나랑 약속해.”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한태군이 그녀의 손을 감싸더니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 약속할게.”강유이가 그를 끌어안았다.“응.. 나도 오빠한테 약속할게.”…세시아는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유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받고 스피커 모드로 전환했다.“어떻게 고민은 끝나셨나요?”강유이가 답했다.“네, 끝났어요. 당신은 그저 나를 괴롭히고 싶은 것뿐이잖아요. 좋아요. 그 도전 받아들이죠.”테이프로 입이 막힌 미아가 울며 머리를 저었다. 그러나 그저 웅얼거리는 소리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세시아가 소리 내어 웃었다.“설마 다른 사람과 함께 올 건 아니죠? 뭐, 함께 와도 괜찮긴 한데, 만약 다른 사람과 함께 온다면…”그녀가 휴대폰을 철창 쪽으로 내밀었다. 강유이는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대는 소리를 똑똑히 듣게 되었다.“당장 저 여자를 철창에 넣어버릴 거예요. 며칠이나 굶은 티베탄 마스티프는 사람도 잡아먹거든요. 당신이 도착했을 때에는 뼈만 남게 되겠네요.”강유이가 숨을 깊게 내쉬었다.“세시아 씨, 저 혼자 갈 거예요. 하지만 만약 미아 씨한테 상처 하나라도 났다가는 그때는 당신이 후회하게 될 거예요.”세시아는 미친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이런 상황에서까지 나를 협박하다니! 내가 당장 저 여자를 철창에 넣어버리면 어쩌려고요?”“해봐요 어디. 만약 미아 씨가 죽으면 나도 그 장소에 나타나지 않을 거고, 그때 세시아 당신은 끝장난 거예요. 미아 씨 전화로 나한테 전화를 걸었다면, 만약 그녀가 죽었을 때 내가 신고할 수 있다는 걸 생각했겠죠. 그리고 이건 가장 유력한 증거가 될 거예요. 당신도 이 시국에 자기 아버지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겠죠.”세시아의 표정이 무서울 정도로 굳어졌다.그녀는 그저 강유이가 충분한 대가를 치르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태군이 후회하기
뒤에서 철창을 갑자기 들이받은 티베탄 마스티프 때문에 그녀는 그만 놀라 뒤로 물러섰다. 뒤에 있는 남자와 부딪히자 남자는 기세를 몰아 그녀를 껴안았다."걱정하지 마, 우린 당신 뱃속에 있는 아이까지 다치게 하지 않을 거야."강유이는 눈빛에 한기를 띠었고 메스꺼움을 참으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다."잠깐만, 이렇게 하면 별로 자극적이지 않잖아."세 남자는 멍해졌다."어쭈, 자극적인 걸 놀고 싶어?"강유이는 몸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세우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세시아 씨는 나의 결말을 직접 보고 싶지 않대? 세시아 씨가 있어야 나도 잘 발휘를 할텐데."세 남자는 그녀가 이렇게 분방할 줄 예상치 못했다. 어차피 그녀는 혼자라 도망도 못 칠 테니 남자 한 명을 보내 보고를 하게 했다.강유이는 손을 들어 한 남자의 어깨에 올려놓고 조금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이따가 가둬놓은 이 두 마리의 개가 우리를 뚫고 나와 분위기를 망치진 않겠지?"남자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풍겨 나오는 향을 맡으며 마음이 근질근질해났다."당연하지, 걱정하지 마. 이 우리는 잘 닫혀있어."강유이는 철창을 힐긋 바라보고 입꼬리를 차갑게 들어 올렸다."그럼 다행이고."세시아는 남자와 함께 걸어 나오며 말했다."강유이 씨가 이렇게 비천할 줄은 몰랐네요, 이런 일까지 방관하러 오라고 초대하시고?"그녀는 강유이가 사람을 데리고 올 가봐 꺼려져 먼저 숨어 있으며 세 남자에게 그녀를 잘 ‘모시라’ 시켰다. 만약 그녀가 정말 혼자 온 것이라면 이 세 남자의 적수가 아닐 것이다.사람을 데리고 온 게 아니란 것만 확인되면 세시아는 나타나 모든 것을 찍을 수 있다.그래야 한태군에게 보내 감상을 시켜줄 수 있지 않은가.하지만 강유이가 이렇게 주동적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강유이는 미아가 그녀의 곁에 없는 것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당신이 미아 씨가 괜찮다고 보장만 한다면, 지금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세시아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 남자를 쳐다보았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