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언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저번에 생긴 일은, 하준이 자처한 일이니, 난 상관할 생각 없어. 하지만..."그는 남우를 향해 걸어가,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우리 사이의 원한은, 청산 한번 해야지 않나?"남우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 그를 보았다."어떻게 청산하고 싶은데?"종언은 몸을 숙여 그녀에게 다가가 그윽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남 도련님의 솜씨가 늘었는지 모르겠네, 남 도련님과 몇 수 겨뤄보고 싶긴 한데."...강유이는 도장을 떠난 뒤, 남우가 걱정되어 반재언에게 전화를 해, 남우가 도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었다.반재언은 듣고 난 뒤, 손에 쥔 잉크 펜을 멈추었다."도장 사장님과 남우 사이에 원한이 있다고?""아마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강유이는 눈을 내리깔았다."오빠, 남우 씨 걱정돼. 아무리 남우 씨가 세다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아. 남우 씨 혹시 당하면 어떡해?"반재언은 반 초간 침묵했다."그래, 알았어."통화가 끝난 뒤, 반재언은 서류를 모으고, 양우빈에게 오라고 전화를 했다.양우빈이 사무실에 들어서며 물었다."도련님, 찾으셨습니까."반재언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잠깐 일이 있어 나갈 거예요, 그리고, 도장 사장님인 종언이라는 사람 좀 알아봐 줘요."양우빈은 잠깐 멈칫했다.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반재언은 이미 떠났다.그와 동시, 도장 안.남우는 종언과 링에서 몇 수 겨루었다. 두 사람의 실력은 공포스러웠고, 거의 막상막하였다. 동훈도 링 아래에서 마음을 졸이며 긴장한 채 보고 있었다. 남우의 동작은 변화무쌍하며 예상하기 어려웠고 공수가 굉장히 신중했다. 종언도 소홀하지 않고, 연달아 강한 공격을 해, 남우는 숨돌릴 틈조차도 없었다.종언은 남우의 공격을 피해 두 걸음 물러서, 입술을 닦으며 웃었다."몇 년이 지났는데, 남 도련님 별로 진보가 없네."남우는 옆으로 돌려차기를 했고, 상대는 두 손으로 막아섰다. 만약 그가 장기간 훈련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녀의 힘은 그의 팔뼈를 부서지게 할
"누가 비겁해, 인정해, 종 사장님은 내 상대고, 싸움에선 적을 속여 넘길 수도 있지. 이 도리를 종 사장, 모르는 건 아니지?"남우는 당당하게 답했다.종언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잠시 후, 그는 웃으며 말했다."생각지 못했는데, 여전히 교활하네, 이런 수법까지 쓰고."남우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소매를 거두며 말했다."예전의 나는 이런 수법을 쓰는 게 싫었지만,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지. 그냥, 본인이 적을 얕본 거야."동훈은 화를 못 이겨 몸을 떨고 있었다."너... 너 진짜 뻔뻔스럽네."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사람이 뻔뻔하면 천하무적이랬어."아무튼 남우는 반재언을 따라 한 것이다."너..."종언이 손을 올려 동훈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남우를 바라보며 웃었다."남 도련님 말이 맞아, 내가 적을 얕봐서, 수를 쓸 기회를 준거야.""그럼 우리의 원한은 청산하죠?"그는 눈썹을 치켜들고 말을 하지 않았다.동훈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너무 기어오르네!"남우는 귀를 긁적이며, 손을 자연스레 종언의 어깨에 걸 터 올렸다. 마치 사이가 좋은 형제처럼 보였다."저기, 이 제자 좀 별로인데, 상관 안 해?"종언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시선은 그녀가 어깨에 올려놓은 손으로 옮겨졌다. 자연스레 친한 척하는 것, 그녀가 항상 잘하는 행동이다. 예전에 그녀를 알고 지낼 땐, 그녀는 아직 남가 도련님, 스카이섬 패왕이었다.경박하고, 껄렁했다. 일하는 풍격도 괴이했고, 마음이 독하며, 관례대로 패를 내지 않는, 그의 인상 속 남 도련님에게, 그는 한 번도 호감을 느껴본 적 없었다. 그들의 관계는 항상 대립하였었다.수년간 만난 적 없어, 다시는 못 볼 거라 생각했었다. 스카이섬에서의 소문을 들었지만, 그는 그저 웃기기만 했다.그날이 되기 전까진. 하준이 사고를 쳐 가게의 CCTV를 돌려 보았다. 그리고 무의식 간에 그녀에게서 익숙한 수를 보았고, 그의 추측에 큰 검증이 되었다.남우는 확실히 여자
종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언제든지 기다릴게요."반재언은 남우를 데리고 갔다.도장을 나오자 남우가 반재언의 품에서 나와 그를 보며 물었다."종언 씨를 알아?"반재언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멈추어보았다."내 앞에서 다른 남자 얘기하는 거. 나 질투할 가봐 무섭지 않아?"남우는 말문이 막혔다."저 사람 때문에 질투할 게 뭐가 있어?"반재언은 남우를 차 앞으로 밀고, 그녀의 턱을 쥐고 가까이 다가갔다."저 사람이랑 사이좋아?"남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별로."반재언은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이리도 당당히, 거짓 없이 대답해, 그는 더 할 말이 없어 보였다.반재언은 손끝으로 그녀의 입가를 매만지다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 남우는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었다."사람 있잖아- 읍!"반재언은 그녀의 뒤통수에 손을 대고, 그녀의 틈 하나하나를 차지하려 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시선은 도장의 유리창을 스쳐 지났다. 마치 누군가가 보는 걸 아는듯했고, 보여주는 걸 개의치 않는듯 했다.동훈은 문어구 차 앞에 서 있는 둘의 그림자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뭐예요 저게, 남의 문 앞에서 애정행각이라니, 진짜 부끄러운 줄도 모르네요."종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해갔다.전경 저택.그림자 두 개가 언 듯 언 듯 겹쳐진 채 현관에 있다. 반재언은 남우를 신발장에 안아 올렸다. 꽃병이 흔들대다 카펫으로 떨어졌다.그는 그녀에게 일말의 준비도 주지 않은 채 깊숙이 덮어갔다. 남우는 그의 어깨를 물고, 그의 셔츠에 구겨진 주름이 생길 정도로 두 손을 꽉 쥐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반재언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남우를 감싸 안고 욕실로 들어섰다. 남우는 손을 확 잡아당겨 그를 욕조에 빠트렸다.물은 ‘촤악’ 사방으로 튕겨서 나갔다.반재언이 입고 있던 슬리핑 가운은 다 젖어들었고, 물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남우는 이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해 ‘하하’거렸다.반재언은 손가락을 머리카락 사이로 집어넣
반재언은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 안고 그녀를 덮어왔다. 남우는 화가 나 그를 깨물려 했고, 그는 마치 그럴 걸 알았다는 듯이 재빨리 빠져나갔다.남우는 슬리퍼를 들어 그를 향해 냅다 뿌렸다.반재언은 문 옆으로 비켰고, 날아온 슬리퍼는 그의 발 옆을 지나 날아갔다. 그는 소리 내어 웃어 보였다."화내는 것도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반재언, 당장 나가!"반재언이 떠나가고, 남우는 욕조 벽에 몸 전체를 엎드린 채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분명 반재언에게 현혹된 게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방금은 왜...왜 하마터면 자신을 억누르지 못할 수 있지?한편 서재에서. 반재언은 책상 앞에 앉아 양우빈이 보내온 자료를 보고 있다. 도장 사장 종언은 동남아에서도 꽤나 알려진 인물이었다.종가는 동남아에서 일떠섰다. 종부는 퇴역 후 경찰 잠임 수사로 마약 밀매를 처단하는 데에 공을 세워 관직에 올랐다. 그리고 종모 오효윤은 중국인 변호사이다. 삼촌인 오빈은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엄청난 인맥들을 소유해 선악 세력을 전부 꿰차고 있다.종언은 치앙마이 대학에서 졸업 후, 삼촌 오빈을 따라 유흥업소를 운영했었다. 그리고 오빈의 인맥 중엔 남 회장님도 있었다.오빈은 종언을 남 회장님께 소개해 드렸다. 그리고 남 회장님은 종언을 중시해 그를 제자로 삼았고, 종언의 무술 사부님이 바로 남 회장님이었다.반재언은 등받이에 기대어 눈살을 찌푸렸다.종언과 남우가 전부터 아는 사이라니.그와 남우가 비기는 모습을 반재언은 모두 보았다. 종언의 솜씨는 확실히 좋았다. 두 사람의 무술은 전부 남 회장님이 전수하셨다. 그러므로 종언이 남우의 수를 알아차린 것도 의아한 일은 아니었다.다음날, 남우는 다시 강유이를 찾아왔다. 그녀는 다시 도장으로 가겠다 했고, 강유이는 듣고 경악했다."어제 그렇게 위험했는데, 또 간다고요?"남우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위험할 거 없어요, 사실 저 종언이랑 잘 알아요."강유이는 의아했다."잘 안다고요?"남우가 답했다."잘 알죠, 종언
남우는 유유히 차를 마시며 말했다."괜찮아, 난 시간 많아."동훈은 그녀가 눌러앉아 가지 않을 듯해 보이자, 눈을 희번덕였다."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우리 관장님이 좋게 넘어가 줬다고 기어오르지 마."남우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관장님이랑 거래를 좀 하고 싶어서. 기어오르다니, 왜, 돈 너무 많이 벌어서 싫은 거야? 내가 아무리 싫어도 돈이랑 못 넘어갈 건 없잖아?"동훈은 멈칫했다."무슨 뜻이야?"그녀는 손을 내저었다."너랑 말해도 몰라, 가서, 종언이 나오라고 해."동훈은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위층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동훈아, 아가씨 올라오시라 해."동훈은 입술을 삐쭉 내밀고 원치 않는 투로 말했다."가시죠."남우는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그래, 이래야지."그녀는 고개를 돌려 강유이를 바라봤다."여기서 기다려요."강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남우는 계단을 올라 종언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종언은 갓 내린 커피를 들고 소파를 향해 걸어가 앉았다."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남우는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두리번대며 말했다."얘기를 해볼 게 있는데."그는 멈칫하고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남우는 그를 바라보며 히죽 웃어 보였다."여기, 위치가 참 좋던데."종언은 컵을 내려놓았다."무슨 뜻이야?""아니면, 이 도장...""꿈도 꾸지 마."그가 단칼에 거절했다.남우는 말문이 막혔다."나 아직 말도 다 못했어!""다 말하길 기다릴 거 있어? 이 위치가 맘에 들었으니, 내 도장을 어쩌기라도 할 생각 아니야?"그는 냉소를 지었다."남 도련... 아, 아니지. 남 아가씨 도장 열 돈 없는 것도 아니잖아?""이론상으론 부족하지 않지, 하지만 좋은 위치가 없잖아."남우는 몸을 일으켜 그의 곁에 앉았다. 종언은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봤고,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우리 합작하는 게 어때, 이봐, 우리 이래 봬도 잘 아는 사이고, 남 좋은 일 할 거 있어? 아니야?"종언은 갑자기 웃으며 그녀를
종언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언제부터 다른 사람을 대신해 말했었지?"남우는 멈칫했다."내가 말한 건 다 사실이야."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남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설마 아직도 뒤끝 있는 건 아니지?"그가 눈살을 찌푸렸다."뭐?""알아, 내가 예전엔 좀 과했어, 사과할게, 아무래도 그땐 어리고 철없을 때잖아."남우는 말한 뒤 웃으며 그에게 갑자기 다가갔다."이 도장도 남가권 가르치고, 나랑 너무 어울리지 않아? 아니면, 네가 계속 관장해, 난, 주주 같은 거 하고, 가끔 코치도 하고, 어때?"한참 뒤, 남우는 사무실에서 쫓겨났다.남우는 망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아우성쳤다."왜 쫓아내는 거야, 야, 종언아, 도대체 허락한 거야 만 거야, 말 좀 해봐!"도장에 투자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다니, 벌 수 있는 돈을 마다하는 건 바보 아닌가?종언은 빨개진 귀를 하고 문 뒤에 기대어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강유이는 남우가 투덜대며 계단에서 내려오는 걸 보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남우 씨, 얘기는 어떻게 됐어요?"남우는 심호흡을 했다.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났다."바보 아닌지 봐봐요, 내가 합작하려고 투자하겠다는데 거절했어요, 날 쫓아내기까지 하고. 저 사람, 구할 길 없어요."강유이는 멈칫했다."거절했어요?""그럼요?"남우는 팔짱을 끼고 무언가 생각하는듯했다."설마, 날 못 믿는 걸까요?"강유이는 난감한 듯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남우 씨, 아니면 저희 다른 곳 알아보러 가요."남우는 한참을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수밖에요."그녀들이 떠나려고 할 때 종언이 계단에서 내려왔다."잠깐만."남우와 강유이가 고개를 돌리자, 그가 계단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합작, 동의할게."남우와 강유이는 시선을 마주하고, 눈썹을 올리며 웃었다.세 사람은 소파에 앉았다. 종언은 동훈에게 계약서를 갖고 오라 했고, 동훈은 입을 내밀고, 어쩔 수 없는 듯 계약서를 넘겼다.남우가 받아 쥐었지만, 상대는 손을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앞에서 달리고 있던 차량 한 대가 갑자기 충돌해왔다. 남우는 급히 핸들을 돌렸고, 브레이크 소리가 바닥을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강유이는 안전띠를 꽉 부여잡고, 배를 움켜쥐고 놀라 눈을 꼭 감았다.차는 결국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앞 차량을 박았다.그리고 곧 여러 대의 차량이 연달아 추돌하는 사고를 일으켰다.남우는 아픔을 참고, 강유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유이 씨, 괜찮아요?"남우는 고개를 돌려 강유이를 향해 보았다. 강유이는 조수석에 앉아, 놀라움으로 인해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녀가 떨며 말했다."나... 나 괜찮아요, 그저 배가 조금 아파요."남우는 그녀의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는 핏자국을 보고, 재빨리 안전띠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상황을 보러 온 운전자 한 명을 붙잡고 말했다."우리 병원으로 데려다 주세요, 친구한테 문제가 생겼어요!"남우는 강유이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그녀 다리 사이의 핏자국을 본 마음씨 착한 기사분이 재빨리 그녀들을 싣고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반재언은 회의실에서 회의 중이다. 회의가 한창 진행될 때쯤, 그의 핸드폰이 갑작스레 진동했다.핸드폰을 보니, 남우의 전화였다."미안해요, 잠시 전화 좀 받고 올게요."반재언은 몸을 일으켜 양우빈의 어깨를 툭툭 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양우빈은 그를 대신해 회의를 계속했다.반재언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남우가 무언가 말하자, 반재언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주소 보내줘, 지금 바로 갈게."그 시각, 남우는 복도에서 초조히 배회하고 있다. 병원 소독수의 냄새가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태군과 강성연, 반지훈이 먼저 도착했다.강성연은 빠른 걸음으로 남우 앞에 다가와 물었다."유이는, 지금 어때요?""아직 안에 있어요..."남우의 목소리는 힘없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죄책감과 자책을 느꼈다. 이 사고에 자신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한태군은 어두운 표정
반지훈은 강성연을 품으로 감싸 안았다."됐어, 유이 이젠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반재언과 남우가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어머니, 아버지."강성연은 반지훈의 품에서 빠져나와 눈가를 슬쩍 닦으며 웃었다."네 동생과 조카는 다 괜찮대."반재언은 웃어 보였다."다행이네요."남우는 병실 안을 힐끗 쳐다봤다. 강유이와 아이한테 아무 일 없다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여전히 부담감이 느껴졌다....강유이는 오후 한 시가 되도록 자고서야 깨어났다. 한태군이 침대맡에 기대어 함께인 걸 보고,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한태군이 천천히 눈을 뜨자, 그녀와 시선이 맞닿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얼굴에 갖다 댔다."깼어?"그녀가 눈을 깜빡였다.한태군은 그녀의 손끝에 키스하며 말했다."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강유이는 몸을 옮겨 그를 마주하며 웃어 보였다."나 괜찮아.""웃음이나?"한태군은 그녀의 머리를 살짝 치고 몸을 숙여 그녀에게 다가갔다."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난 미쳐버릴지도 몰라."강유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몸을 확 일으켜 배를 매만졌다."아기는?"한태군은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는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머리 위를 어루만졌다."걱정하지 마, 우리 아기 아직 있어."강유이가 그의 손을 잡아당기고 진지하게 말했다."그리고, 남우 씨 탓하지 마, 이 일은 남우 씨 탓이 아니야."한태군은 그녀를 바라봤다."이걸 걱정한 거야?""당연히 걱정되지, 남우 씨가 제때에 피하지 못했다면 이 정도 상처로 끝나지 않아. 만약 무슨 일 생겼다 해서 남우 씨를 탓한다면, 내 마음도 안 좋아질 거야."그녀가 이리도 진지하게 해석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태군은 웃음을 참지 못해 고개를 돌렸다.강유이는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왜 웃어?"한태군은 웃음을 터뜨렸다.강유이는 그를 밀쳐냈다."왜 웃는 거야?"그는 손을 뻗어 그녀를 단번에 품속으로 안았다. 입술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