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재언은 얼룩 고양이 같은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탄광에라도 갔다 온 고양이처럼 얼굴에 재를 묻힌 것도 모르고 있었다.반재언이 빤히 보고 있자 남우는 괜히 볼이 뜨거워졌다."왜 그렇게 봐?"반재언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명색이 스카이섬 남 도련님인데, 고양이 같지 왜?"애매했던 분위기가 그의 말에 깨졌다. 남우는 반재언을 밀쳐냈다."너야말로 고양이 같거든!"반재언은 남우를 품속으로 눌렀다."안 믿어?"남우는 힘을 주지 않고 그의 어깨를 물었다. 반재언은 그런 남우의 볼을 꼬집어 입술에 뽀뽀를 했고, 남우는 습격에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품에 들려져 있었다.남우는 반재언의 품에서 버둥댔다."반씨, 반재언, 나 내려놔!"반재언은 그녀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 남우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 후 황급히 손으로 막았다."뭐야-"반재언은 남우를 세면대 앞에 내려놓았다."나 거짓말 안 했지?"남우는 어색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오늘 쭉 이 모양 이 꼴로 있었던 거야?어쩐지 배달음식을 가질 때 배달원의 시선이 이상하다 싶었다.수건 하나가 남우의 머리를 덮었다. 수건을 들어 올렸을 땐 반재언은 이미 문을 나서고 있었다."깨끗이 씻어."반재언이 나간 뒤 남우는 욕실 문을 빠르게 닫았다. 반우는 자신의 이미지가 망가진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샤워를 한 뒤 잠옷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발견한 남우는 목욕 수건으로 몸을 감싼 뒤 고개를 반쯤 내밀고 소리쳤다."반재언!"반재언은 안방에서 걸어 나오며 답했다."왜?"반우는 어색한 듯 겨우 말을 꺼냈다."내 잠옷, 안 갖고 와서."반재언은 여성 슬리핑 가운 한 벌을 준비해 줬다.슬리핑 가운을 입은 남우는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잠깐만, 이건 반재언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스타일이잖아?커플 잠옷인 거야?욕실을 나서자 반재언이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게 보였다. 해가 지고 있어 창문 안으로 노을빛이 비쳐 반재언의 단단하고 각진 인상을 부
문이 닫히자 남우는 일어나 핸드폰을 열었다.방금 그녀는 이미 반재언이 통화하는 틈을 타 이불 안에 숨어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았다. 정민희가 반씨 가문 미래의 큰며느리라고?남우는 혀를 찼다. 미안해서 어쩌지, 그 자리, 내가 예약했는데.저녁 8시, 반재언은 골드 룸살롱의 룸에 앉아있다. 룸 안에 보디가드 외엔 아무도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 회장님이 나타났다.정 회장님은 웃으며 반재언을 향해 걸어왔다."재언 군이 찾았다면서요?"반재언은 정 회장님을 자리에 청한 뒤 술을 따르라고 보디가드에게 언질을 줬다.긴 다리를 꼬고 앉아 등받이에 기대어 있는 반재언은, 불빛 아래에서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다."정 회장님, 정 회장님은 DK그룹 합작사 측인데, 제가 따로 뵙자고 한 이유는, 다른 일이 아니라, 따님과 저의 스캔들에 대해 직접 해명해 주셨으면 해서입니다."술잔을 들고 있는 정 회장은 멈칫하다 고개를 들고 물었다."스캔들?"정 회장님이 확실히 모르는 눈치자 반재언은 핸드폰을 정 회장님의 앞에 갖다 놓았다.정 회장은 핸드폰을 들어 보고는 갑자기 멍해졌다.반재언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저와 따님은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전 이미 결혼한 상태고 따님이 절 호텔로 요청한 건, 그저 식사를 같이 하려 한 것뿐, 대화 내용도 업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정 회장님은 무슨 뜻인지 이해한듯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반재언이 기혼이라는 사실이 의아한듯했다."재언 군, 결혼했어요?""네, 혼인신고를 마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내가 공개를 바라지 않아, 이 일을 아는 건 가족과 지인 외 회장님이 처음이세요."정 회장님은 문득 깨달았다"그랬군요."하지만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정 회장이 다시 물었다."그럼 왜 공개를 통해서 해명하지 않는 건가요?"반재언이 결혼을 공개하기만 하면 이 스캔들은 저절로 해명이 된다. 정 회장도 방금 핸드폰으로 처음 자신의 딸과 반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 엮인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자신의 딸은 한 번
"음...하지 마..."남우는 그를 밀어냈다. 졸려서 눈은 뜨기도 힘들었고 의식은 혼란스러웠다.반재언은 목젖을 삼킨 후 옷깃을 살짝 풀었다."잘 자네."반재언은 침대에 올라 누워 남우를 품에 안고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대체 언제가 돼야 날 공개할 거지..."한편으로 호텔.정민희는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다. 사실 그녀는 뉴스가 실릴 것을 알고 있었다. 언론이 지어낸 반재언과의 사이를 보며 그녀는 입술을 꽉 오므렸다.정민희는 반재언이 해명하는 게 두렵고, 그가 해명을 하지 않았으면 하고 있다.그러면 반재언과 엮일 수 있는 게 아닐까?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정민희는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고 문 앞의 남자를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아빠?"정 회장은 어두운 표정을 한 채 방안으로 들어섰다.정민희가 물었다."아빠, 여긴 왜 오신 거예요?"정 회장은 소파에 앉았다."너랑 반재언군이 아는 사인 건,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정민희는 잠깐 멈칫했지만 자연스레 뉴스를 봤다고 생각한 듯 눈을 내리깔고 웃으며 답했다."안 물어보셨잖아요, 저 사실 반재언 씨랑 스카이섬에서부터 알았어요."정 회장은 미간을 문지르며 답했다."너무 신중치 못했어, 이런 스캔들이 터지다니. 내일 나랑 해명하자."해명이라는 두 글자에 정민희는 표정이 굳어졌다."해명이요?""그럼?"정 회장은 반재언이 결혼한 걸 알고 있지만, 비공개인 상태라 남으로써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이 스캔들이 너한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긴 알아? 이미 언론사에 연락했어, 내일 직접 해명하는 거야."정민희는 별안간 조급해하며 답했다."왜 저희가 해명해야 하는 건데요, 반재언 씨도 아직 해명하지 않았는데-"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 회장이 당황한 듯 정민희를 바라보았다."민희야,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정 회장은 딸이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의아했다. 더 나아가 안 좋은 예감마저 들었다."너 설마...""아빠, 저 반재언 씨 좋아해요."정민희
말이 끝나자 정 회장은 방을 떠났다.이튿날, 아침.한줄기 햇살이 커튼을 통해 침대로 비쳤다. 남우는 돌아누워 습관적으로 옆 사람을 안았고, 번득 눈을 떴다.반재언이 그녀의 곁에 옆으로 누워, 한 손으로 관자놀이 쪽을 이고 있었다. 깨어난 지 한참이 되는 듯했다.반재언은 남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키스했다."깼어?"남우는 눈을 감았다."아니."반재언은 소리 없이 웃으며 남우의 몸 위로 덮어왔다.남우는 눈을 번쩍 뜨고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이고 말했다."반재언!"그의 입술이 남우의 입가에서 멈췄다."왜?""나 세인트 레스토랑에 찹쌀 갈비 먹고 싶어."전에 배달로 한번 시켜 먹고 좋아하게 됐다.남우가 화제를 돌리는 걸 알지만 반재언은 웃으며 답했다."그래, 내가 사 올게."일어나려는 그를 남우가 끌어당겼다."나랑 같이 나가서 먹어."반재언은 깊은 눈망울을 하고 잠깐 멈칫했다."진짜?"남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왜, 데리고 나가기 부끄러운 거야?"반재언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남우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일어나, 같이 가자."어제 비가 조금 와서인지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차고 습한 바람이 불어왔고 낙엽에는 아직 물기가 묻어있다.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세인트 레스토랑 앞에 멈춰 섰고, 반재언은 먼저 내려 조수석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남우가 내려와 추위 때문에 두 손을 품에 갖다 댔다.겨울이 없는 스카이 섬에서 지내는 게 익숙해서인지, 견디기가 힘들었다.반재언이 목도리를 그녀의 목에 둘러주며 물었다."많이 추워?"남우가 눈초리를 치켜올리며 답했다."어떨 거 같아? 싸우기도 힘들어."남우는 손을 반재언의 외투 주머니에 주동적으로 넣었다."됐어, 잡을 필요 없어, 나 절로 갈게."반재언은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남우와 함께 세인트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세인트 레스토랑 직원들 중 반재언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더군다나 반재언은 ‘스캔들’이 터진 상태라, 남우와 함께 나타나자 다들 의아한 표정이었다
남우의 질투가 하늘로 솟는 걸 본 반재언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누가 나한테 공개하기 싫다고 해서. 만약 우리가 기자한테 찍힌다면, 어떻게 해석할 거야?"남우는 목이 메어왔다. 과거에 공개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들을 했었던 게 갑자기 생각이 났다.반재언은 눈썹을 추켜올렸다."할 말 없어졌어?"남우는 조금 어색했다. 그때 공개를 원치 않았던 것도 자신이고 지금 공개를 원하는 것도 자신이고. 자기 자신한테 뼈 맞은 느낌이랄까?"남우가 이랬다저랬다 하니까, 나도 이젠 어떤 말은 믿어야 하고, 어떤 말은 믿지 말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반재언은 관자놀이에 한 손을 올리고 말했다. 분명 여유로운 표정을 하고 있지만 억울함도 흘러나왔다."만약 다른 사람들 때문에 공개됐는데, 네가 후회한다고 이혼하자 그러면, 난 버림받은 남편이 되는 거야. 앞으로 서울 사람들 다 놀릴 거라고."그는 일리 있는 말들을 하며, 수시로 버림받을 가봐 걱정하는 불쌍한 사람인 척하고 있다.남우는 깊은숨을 들이쉬었다."지금 무슨 헛생각하는 거야?"반재언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다 내가 모자라서, 그래서 남우가 싫어하게 만든 거지. 아니면 왜 결혼했는데 공개도 못 하게 하고, 다른 여자랑 스캔들 났다고 바람피우는 게 아닌지 의심까지 당하면서-"남우는 일어나 반재언의 입을 틀어막았다."연기 좀 적당히 하지!"반재언은 남우의 손등을 잡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공개해?"남우는 이를 악물고 작은 소리로 답했다."공개해.""안 들려.""공개한다고!"남우의 큰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남우는 미안한 표정으로 웃어 보이며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아 상대편에서 그윽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역시 여우야!다른 한편, 정 회장은 기자들을 소집해 해명을 준비했다. 정 회장은 고개를 숙여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정민희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비서가 총총걸음을 하고 정 회장에게 다가갔다."회장님, 아가씨께선 호텔에 안 계십니다."정
#나이 많은 아버지가 최선을 다해 딸의 스캔들을 떨구어 내려고 하는 게 저만의 느낌인가요, 설마 반씨 큰 도련님 바람둥이는 아니겠죠?##맞아요, 유이의 프로그램에서 반 씨 네 큰오빠가 남 언니를 보는 눈빛도 애매했는데, 바로 다른 여자랑 단둘이 밥 먹고. 둘째랑 유이는 이미 솔로 탈출인데 첫째만 아직이라는 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소름.##반씨 네 큰오빠 가만 보니 누구한테나 다 잘해주는 스타일이네요, 어느 여자한테나 다 잘해주는 느낌...#...AM 그룹.반재언은 정 회장의 해명 뉴스를 다 본 뒤에야 컴퓨터를 닫았다.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는 유언비어 관해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양우빈이 문을 두드렸다.반재언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들어오세요."양우빈이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오며 물었다."도련님, 정민희 아가씨께서 또 찾아오셨습니다, 만나실 건가요?"반재언은 실눈을 뜨고 한참을 있다가 입을 열었다."나 없다고 그래요."양우빈이 나가려던 순간 반재언이 그를 다시 불렀다."잠깐만요."양우빈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다른 일 있으신가요?""회사 내부에서 돌고 있는 헛소문, 부탁 좀 해요."반재언이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양우빈은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양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걱정 마세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그 시각, 정민희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 손에는 직접 만든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반재언과의 스캔들을 해명했지만 정민희는 포기하지 않았다.양우빈이 정민희를 향해 걸어갔다."아가씨."정민희가 웃으며 물었다."재언 씨, 여기 있죠?"양우빈이 웃으며 답했다."죄송합니다, 도련님은 일 때문에 여기 안 계십니다.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저한테 말해주세요, 도련님이 돌아오시면 제가 대신 전달하겠습니다."정민희는 멍해 있다 답했다."하지만 데스크 직원이, 있다고 알려줬는데요."양우빈이 고개를 돌려 데스크 쪽을 바라봤다.데스크 여직원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괜히 찔리는 듯해 보였다. 설마 여
하, 반재언 이 나쁜 남자, 복은 참 많네!미녀가 도시락까지 가져다주면서!정민희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네, 하지만 지금 재언 씨가 없다고 해서요. 남우 씨가 와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회사에 없어요?"남우는 의심스러웠다."제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일이 생겨서 없다고..."정민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우가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어 물었다."거기 남자, 어디야?"정민희의 표정이 조금 굳어 보였다.남우는 전화를 끊었다."사무실에 있다는데요, 정민희 씨, 거짓말은 안 좋은 거예요."정민희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남우가 전화를 해 확인까지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체면을 세게 깎일 줄이야?반재언은 일부러 자신을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하지만 남우는 만나려 하고.설마, 진짜 사귀는 건가?남우가 들어가려 하자 정민희는 갑자기 그녀를 잡고 말했다."남우 씨, 저희 얘기 좀 해요."남우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남우는 정민희와 함께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정민희가 몸을 돌리고 물었다."재언 씨랑 사귀는 거, 맞나요?"남우는 팔짱을 끼고 답했다."이제야 안 거예요?""하지만 스카이 섬에선, 재언 씨를 좋아하진 않았잖아요?"스카이 섬에서 본 남우는 반재언을 좋아하는 모습이 없었다. 심지어 본인과 반재언을 엮어주려는 뜻마저 보였다. 그때의 생각을 떠올린 정민희는 남우의 손을 잡고 말을 이었다."저희 둘, 계속 엮어주려 했잖아요? 남우 씨, 저 진짜 재언 씨 좋아해요. 스카이섬에서부터 좋아했어요. 도와주세요, 아니면, 저한테 양보해 주세요, 네?"남우는 놀라움에 멈칫했다.스카이 섬에 있을 때, 반재언을 좋아한다는 걸 발견하기 전, 남우는 확실히 정민희와 반재언이 잘 되게 해주려 했었다. 하지만 반재언이 정민희를 거절한 걸 남우는 잘 알고 있다.그런데 정민희는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반재언을 양보해 달라고?남우는 한참을 침묵한 뒤 손을 빼고 말했다."정민희 씨, 반재언을 물건으로
"모든 사람은 다 공평하게 경쟁할 기회가 있어요, 그때 내가 기회도 줬었고. 그쪽을 선택하지 않은 건 재언이 일이고, 내가 갖고 놀았다고요? 내가 정민희 씨 선택하지 말라고 시켰어요?""너...""지금 나랑 이런 일로 언쟁을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죠, 그렇게 잘 났으면 반재언한테 직접 가서 물어봐요, 나한테 찝쩍거리지 말고. 잘 알겠지만, 스카이 섬에서 자랐다 보니 거친 게 익숙해서요, 맘에 안 들면 진짜 때릴 수도 있어요, 그쪽이 남자든 여자든."남우는 말을 끝내고 정민희를 혼자 둔 채 바로 떠났다.정민희는 자연스레 떨구어져 있는 양손을 꽉 틀어쥐었다.그녀는 내키지 않았다.남우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반재언 때문에 정민희에게 겨냥당하고. 여자 복 넘쳐나지만 혼자 나서지 않는 그 녀석 때문에 본인까지 연루되고.남우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려는 순간 누군가가 막아섰다."잠깐만요-"여직원이 어색하게 웃었다."죄송합니다, 이건 우리 회사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예요. 회사에 새로 온 직원인 거예요?"남우는 당혹스러웠다."엘리베이터도 나눠요?""회사 규정이라서요. 이 엘리베이터는 우리 직원들도 못 써요, 새로 왔어요? 어느 부문이죠, 본 적 없는데."여직원은 남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남우를 본 적 없는듯했다.남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전 회사 직원 아니에요."여직원은 소임을 다했다."그럼 더 탈 수 없죠, 사람 찾으러 온 거죠? 어느 부문이에요? 제가 통지해 드릴게요.""반재언 찾으러 왔어요.""누구... 누구요?"여직원은 넋을 잃었다.남우는 반복했다."반씨 큰 도련님, 반재언이요."여직원은 점점 어색해졌다. 아까는 정민희 아가씨가 찾아왔으나, 도련님이 만나질 않았다. 그러더니 지금, 또 다른 여자가 도련님을 찾으러 왔다."예약하셨어요?"남우는 조금 귀찮아지기 시작했다."내가 예약까지 해야 해요?""이것도 규정이라...""회사 규정은 회사 직원들한테 내린 거지, 나한테 내린 게 아니에요. 나도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