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나고 예리한 그녀는 간혹 어리숙하기도 했다. 허나 중요한 순간에는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이고 사리 분별에 능했다. 그런 그녀가 유독 그의 앞에서는 허둥거렸다.반재언은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입꼬리를 올렸다.“아주 편안하게 잘 자고 있군.”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소파를 비췄다. 서서히 눈을 뜬 남우는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에 몸을 일으켰다.덮었던 담요을 들고 주위를 살피던 그녀는 어젯밤에 반재언을 찾았던 자신이 떠올랐다. 그녀는 하려던 말도 깜빡하고 그의 방에서 잠들어 버렸다.방문을 연 남우를 마침 지나가던 도우미들이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도... 아가씨?”“좋은 아침입니다.”그녀는 뻔뻔스럽게 인사를 하고 급히 방으로 돌아갔다.그들은 남우가 나선 방을 확인하고 몰래 미소를 지었다.“소문이 진짠가 봐요.”“아가씨가 도련님이었을 때부터 두 분 사이가 심상치 않았으니, 거짓일리는 없죠.”“회장님이 사위를 얻게 되었네요.”11시까지 방에 있던 남우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거실로 내려왔다. 막 집을 나서려는 데 남강훈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렸다.“어디 가는 거야?”놀란 그녀가 몸을 돌렸다.“밖에 가서 뭐 좀 먹으려고요.”신문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남강훈이 쏘파에 앉으며 말했다.“집에는 먹을 것이 없어?”그녀의 시선은 허공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돈 쓰고 싶어서 그래요. 아버지 돈 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어젯밤에...”남강훈은 잠시 멈칫하다가 웃으며 덧붙였다.“널 찾으러 방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어.”“재언씨를 찾으러 가지 않으셨...”“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남우는 입을 다물고 눈썹을 치켜세웠다. 잠시 당황했지만. 아버지가 그녀를 낚으려는 것을 눈치챈 그녀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넘겨짚은 거예요.”남강훈은 찻잔을 들며 말했다.“재언이가 오늘은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않을 거야.”그녀가 대뜸 물었다.“무슨 일인데요?”생각에 잠기던 그가 입을 열었다.“
둘은 방에서 오후까지 머물다가 떠났다.반재언은 연희승과 함께 그가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둘은 호텔 로비에서 지윤을 만났다. 연희승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재빨리 다가가 두 팔을 벌리며 다정하게 불렀다. “애기야!“지윤이 그런 그를 막으며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누가 밖에서 그렇게 부르라고 했어요?!”그는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포옹도 못 하게 해요?”지윤이 그를 매섭게 흘기며 말했다.“여기에 온다고 왜 말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연희승도 그 작전 무리 속에 있을 줄은 몰랐다. 연희승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당신이 걱정되어서죠.”“본인이 걱정되어서겠죠. 난 당신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걸 미리 말할게요.”연희승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는 지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몸놀림은 둔해도 좋은 머리가 있잖아요.”옆에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반재언은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프엘에서 푸조와 데이비렌지가 만났다.푸조가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데이비렌지의 행동을 추궁하자 데이비렌지가 비웃었다.“남씨가문과 결탁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 아니면 당신은 이미 죽었어.”푸조가 냉소를 지으며 받아쳤다.“이겼다고 생각하나 본데 너의 미래는 나보다 더 비참할 거야.”주변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전혀 동요하지 않는 푸조를 보던 데이비렌지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애써 푸조의 생각을 읽으려 했다.“이렇게 쉽게 패배를 인정하는 거야? 이 모든 것은 남 씨 가문이 판을 흔들어서 일어 난 일이야. 그런 그들과 손잡았다 한들 당신을 쉽게 놓아줄 수나 있을까?”“그들이 놓아 주든 말든 다른 문제야. 지금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건 너잖아?”푸조는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술을 채우며 덧붙였다.“당연히 인정하고 싶지 않아. 과거로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너부터 죽였을 거니까.”데이비렌지가 웃었다.“하지만 그러지 못했지.”푸조는 담담하게 말했다.“죽었든 살았든 상관없어. 마지막으
젓가락을 든 그녀가 야채를 짚었다.남강훈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재언이가 곧 떠나게 될 텐데 아무 생각이 없는 거야?”그는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혹시 알아? 네가 솔직해지면 여기 남을 수도 있지 않겠어?”남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남강훈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빙빙 돌리면 제가 못 알아들으니 차라리 속 시원하게 말씀하시죠? 아! 저도 예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그 사람을 아들로 삼으려는 거예요?” “...”주먹은 쥔 남강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음 같아선 어디가 문젠지 그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로 답답했다. 그는 가까스로 자신을 진정시키며 말했다.“물론 그것도 없지 않지. 하지만 이미 아버지가 있는데 어떻게 내 아들이 될 수 있겠어? 다시 잘 생각해 봐.”남우는 수프를 마시며 다시 물었다.“그럼, 역으로 그의 아들이고 싶단 말씀인가요?”남강훈, “...”만약 심장병으로 앓고 있었다면 병이 도져 죽었을지도 모른다.남강훈의 얼굴이 푸르딩딩해졌다.“이 모양 이 꼴이면 평생 결혼도 못 해.”밥그릇을 내려놓은 남우는 오래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녀는 화가 나 씩씩거리고 있는 남강훈을 바라보았다.“제가 결혼하기를 바라는 거예요?”“이제야 조금 깨달은 모양이구나.”그러자 남우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배불러요.”남강훈은 그녀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결혼 소리에 이런다고?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문에 기댔다. 그날 밤 악몽은 여태 가시지 않았다. 결혼하면 그녀는 더 이상 남씨 가문과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다. 그 악몽이 현실이 되는 걸까?정체를 밝히기 전에는 평생 남씨 가문에 머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가 ‘도련님’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여자인 그녀는 언젠가 결혼해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오후.반재언은 연희승과 함께 남강훈을 만나러 왔다. 남강훈과 처음 만난 연희승은 아주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 셋은 서재에서 담소를 나눴다.반재언의 시선은 창밖을
도우미가 웃으며 대답했다.“어떻게 감히 회장님을 의심하세요? 아가씨는 회장님의 유일한 따님인데 고작 결혼으로 연까지 끊어버리시겠어요?”다른 도우미도 거들었다.“맞아요. 속담에 결혼한 여자는 주워 담지 못하는 물이라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이고 회장님같이 아가씨를 아끼시는 분이 아가씨가 결혼한다고 해서 절대 매몰차게 인연을 끊으시지 않아요. 본가는 우리 여자에게 놓고 말하면 어디까지나 제일 든든한 버팀목인 걸요.”남우의 눈썹이 희한한 곡선을 그렸다.꿈도 항상 반대라고 하지 않았던가.아버지는 꿈에서처럼 무정한 분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다.도우미들은 서로 시선을 맞추면서 웃었다.“아가씨, 저희가 봤을 때 반 도련님도 너무 괜찮은 분 같아요.”남우는 멈칫했다.“어디가?”“외모도 출중하시고, 예의도 바르시며 무엇보다 너무 다정하잖아요! 그렇지 않나요?”반문당한 남우는 생각에 잠겼다.잘생기긴 했다.깍듯하기도 했다.하지만 다정하다는 것은 겉면뿐이다.그녀는 두 눈으로 반재언의 퉁명스럽고 사나운 면을 보았다. 그는 섬세하고 통찰력이 뛰어나 상대의 기를 죽이곤 했다. 그래서 그의 앞에서 서면 모든 걸 읽히는 기분이다.다정하다는 점은 그저 허상이다.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그저 그래.”도우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재언에 대한 그녀의 평가 그저 그렇다고?남우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잘생기면 여기저기 꼬이기 마련이야. 나보다 못생겼으면 한 번 정도 생각은 해 봤을 수도?”사실 그녀가 하고싶었던 말은 그녀보다 못 생겼으면 자신이 그 꼬임 대상이 되고 싶다는 뜻이었다.도우미들, “...”“아가씨는 못생긴 남자를 좋아했던 거군요?”깜짝 놀란 남우가 고개를 돌렸다.언제 나타났는지 반재언이 그녀의 뒤에 있었다. 아마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들은 것 같다.도우미들은 급히 자리를 피했다.남우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언제부터 여기에 있은 거예요?”그가 대답했다.“방금요.”남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남우는 입술을 깨물며 그의 눈을 감히 똑바로 보지 못했다.“알았어요. 방금 한 말은 취소할게요. 그리고 미안합니다. 됐죠?“반재언이 그녀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이 사과는 너무 성의가 없네요.”그녀가 고개를 들었다.“그럼 어쩌라는 거죠?”그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도우미들 앞에서 내 명의를 훼손시켰는데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예요?”남우는 그 자리에 완전히 굳어 버렸다.몰래 벽 뒤에 숨어 엿듣고 있던 연희승도 입이 떡 벌어졌다.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저 사람은 그가 알던 도련님이 아니다.한 여자의 마음을 여지없이 흔들고 있었다.남강훈은 오히려 흐뭇하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반재언의 여자 다루는 솜씨가 젊은 날의 그를 뛰어넘는 것 같다.입을 떼려던 남우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남강훈과 연희승이 있었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둘은 뒤늦게 몸을 숨겼다.남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왜 저기에 몰래 숨어 있는 거지?그녀가 고개르 다시 돌리자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반재언의 얼굴에 숨을 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속삭였다.“왜 대답이 없죠?”남우는 급히 고개를 돌리며 뒷걸음질 쳤다.“갑자기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면 어떡해요. 이 문제는...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꽁무니를 내빼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반재언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반응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남강훈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눈치가 없어도 저렇게 없다니!”분명히 꼬시고 있는건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연희승이 물었다.“저 아가씬 누구에요?”남강훈, “내 딸이야.”이 아가씨가 소문으로만 듣던 남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니. 그런데 연희승은 그녀가 소문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아까 반재언의 모습을 연희승은 여태 본 적 없었다. 그 정도로 이 아가씨가 매력적이란 말인가?도련님의 외모와 배경이면 서울에서나 S국에서나 모두 대쉬를 받고도 남았지
이미 원단 선택과 함께 그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된 템플릿이 있었고, 심지어 사이즈도 정해져서 재단만 하면 완성이었다. 남우는 셔츠를 다시 쇼핑백에 집어 넣었다.“진작 뀌띔해 주셨으면 치수를 재러 가지 않았잖아요.”반재언의 치수는 컴퓨터에 있었기에 다시 제공할 필요 없었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오빠 셔츠 하나에 이렇게 심혈을 기울일 줄은 몰랐어요.”“변상해야 하니깐요.”그녀는 조심스럽게 도로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럼, 이만 가볼게요.”대문 앞까지 남우를 바래다주고 멀어져 가는 그녀의 차를 바라보다 돌아서던 강유이는 저 멀리 주차되었던 두 대의 차가 남우가 떠난 직후 뒤를 따라붙는 것을 보았다.눈살을 찌푸린 강유이는 같은 방향으로 떠나는 그들의 움직임에 남우를 몰래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집으로 돌아가며 남우는 조수석에 고이 모셔놓은 선물 꾸러미를 힐끗 보았다.분명 강유이더러 반재언에게 전달할 수도 있었는데 왜 자신이 직접 먼 걸음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이러면 또다시 반재언과 마주쳐야 한다.두날 전을 떠올리면 반재언의 행동은 너무 이상했다. 마치 완전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그가 이상한 말을 해서였을까?그렇게 조금 방심한 사이에 두 대의 차가 그녀의 앞에 끼어들었고 갑작스러움에 그녀는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앞차를 박고 말았다.“쾅!” 소리와 함께 앞차의 트렁크가 움푹 파졌다. 두 대의 차는 멈췄고 남우도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남우는 상대 운전석에 다가가 창문 유리를 두드렸다.창문이 반쯤 내려가자, 남우가 말했다.“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죠? 깜빡이도 켜지 않고 끼어들면 어쩌자는 거예요?!“상대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죄송해요, 남 아가씨. 너무 급해서 깜빡했어요.”남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저를 아세요?”그녀는 그 남자를 아래위로 훑었다. 이 낯선 얼굴은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었다. 뒷좌석에도 사람이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운전수나 차에 탄 다른 누군가가 내
"감히 수작질을 부려?!"남우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눈을 가리곤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러자 남자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더니 차갑게 웃었다."남우 아가씨 실력이 워낙 좋으니 이런 수작질을 부릴 수밖에 없죠, 우리한테 진 게 마음에 안 든 눈치신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어요. 누가 당신이 남강훈 딸이래."남우는 눈을 아예 뜰 수 없었다. 떨거지들을 상대하느라 너무 방심한 듯했다."아가씨, 저희랑 한 번 같이 가주시죠."남자는 말을 마치더니 남우를 기절시켜 차에 태운 뒤, 자신도 차에 올라탔다.한편,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차 안, 조수석에 앉은 반재언이 남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는 이가 없었다."남우 아가씨한테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연희승이 운전하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지윤의 말에 의하면 남우의 실력은 그녀와 맞먹는 수준이었으니 무슨 일이 생길 이유가 없었다."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사고가 발생하는 법이니까요, 조금 더 빨리 움직이죠."반재언이 휴대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그 말을 들은 연희승이 엑셀을 밟으려다 앞에 차가 막힌 정황을 확인하고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앞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차가 멈춰서자 반재언이 내려 앞으로 다가갔다.마침 남우의 차가 길가에 세워져 있었지만 안에는 사람도 없었고 차 앞부분에 무언가와 부딪힌 정황이 보였다. 교통경찰이 차량 정리를 하며 목격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반재언이 목격자의 증언을 들어보니 현장에서 작은 사고가 일어났고 몇 명의 남자와 여자 하나가 갑자기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자들이 갑자기 여자를 데리고 현장을 떠났다고 했다.교통경찰이 목격자에게 여자를 아냐고 물어봤을 때, 반재언이 어두운 얼굴로 나섰다."제가 압니다."…한편 남우는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려고 했지만, 고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두 손은 묶여있었고 어둠속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남우 아가씨, 이런 방법으로 모셔 온 것에 대해
그때 뚱보가 갑판 위에 선 데이비 렌지에게 다가갔다."보스.""남강훈한테 딸이 내 손에 있으니까 알아서 잘 선택하라고 해."데이비 렌지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뚱보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남우는 침대 위에 앉아 손을 묶은 줄을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손은 거친 줄 때문에 이미 상처가 가득했다.눈이 여전히 아프긴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빛을 마주하기는 힘들었다.남우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침대 위로 누웠다."강 옆에서 자주 걸어도 신발이 젖을 수 있는 거네."남우가 자조적으로 웃으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그녀가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그 남자는 음식을 테이블 위로 던지다시피 올려놓고 말했다,"아가씨, 배고프면 혼자 알아서 먹어. 여기는 아가씨 시중 들어줄 사람 없으니까!"곧바로 그 남자는 문을 열고 나갔다.침대에서 일어난 남우는 눈이 빛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는 양식이 있었지만 포크와 나이프 대신 젓가락이 놓여있었다.남우에게 포크와 나이프를 줬다가 그녀가 그것을 무기로 사용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야! 손을 풀어줘야 뭘 먹을 거 아니야!"그때 남우가 갑자기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걷어차며 말했다.그러자 문밖에 서 있던 사람이 대답했다."알아서 먹으라고 했잖아요, 여긴 아가씨 시중 들어줄 사람 없다고!""개밥을 주지 그래, 개밥은 손으로 안 먹어도 되잖아. 그럴 거 아니면 손 풀어줘, 아니면 나 굶어 죽을 거야, 내가 죽으면 너희들도 곤란해질 거잖아."남우의 말을 들은 사람이 침묵하더니 결국 문을 열었다."풀어줘, 아무것도 안 보이는 사람이 뭐 눈 감고 어디 가겠어?!"남우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했다.하지만 두 남자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데이비 렌지의 명령 없이 남우를 풀어줄 수 없었다. 남 씨 집안사람은 교활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데이비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