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낮은 목소리로 욕을 뱉었다.“젠장.”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차를 에워쌌다.“오늘이 당신의 제섯날이에요.”그가 아무 반응 없자, 그들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푸조가 나타났고 뒤늦게 반응한 남자들이 총을 쐈지만 모두 빗나갔다.순식간에 총까지 빼앗긴 남자는 푸조에게 역습당해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그 광경에 한 무리의 다른 이들도 달려들었다.푸조는 차뒤에 몸을 숨기며 총알을 피했다. 하지만 깨진 유리로 팔에 상처를 입어 피가 흘러나왔고 그때 차를 밟고 올라선 남자가 푸조에 덥쳤다.남자가 총을 쏘려는 순간 누군가가 소리쳤다.“큰일 났어.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살짝 당황하던 남자는 푸조의 발길질에 옆으로 밀려났고 푸조의 총에 머리를 가격당하고 말았다. 바닥은 피로 빨갛게 물들었다.멀리에서 한 대의 차량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방탄 차량이었고 그들을 상대하러 온 것 같았다.그들은 공격을 멈추고 도로 봉고차로 도망치기 바빴다.차에서 내린 남자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다. 익숙한 동양인 얼굴을 보고 남씨 가문에서 사람을 보낸 것으로 착각해 푸조는 격강성을 늦추었다.하지만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기절 봉의 가격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손에 쥐어졌던 총도 저 멀리 날아갔다.바닥에 엎드린 그는 온몸에 마비가 와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익숙한 실루엣이 다가오자, 그는 고개를 들었다.“운소? 나를 배신한 네가 버젓이 여기에 나타난다고?!”지윤이 그의 앞에 멈춰 섰다.“당신에게 충성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배신할 수 있겠어요?”푸조는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이런 날이 올 줄 알았더라면 너희들을 먼저 죽였어야 했어.”“불행하게도 당신의 적은 애초부터 우리가 아닌 데이비렌지였죠.”지윤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데이비 렌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씨 가문에 자신의 사람을 심어 하시호와 은밀히 결탁했고 그를 이용해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있었죠. 남씨 가문이 눈치채지 못했다면 당신도 그의 가장 중요한 말 중에 하나가 되었을
푸조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남우가 돌아왔다.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던 남강훈은 고개를 들어 집에 들어온 사람을 보며 말했다.“대체 어디서 뭐 하다 이제 들어오는 거야?”그녀는 계단 앞에 멈춰서더니 말했다.“삼활구에 갔었어요.”남강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그럼, 오늘 그렇게 이른 아침에 재언이 방에는 왜 간 거야?”“그걸.. 어떻게 아셨어요?”반재언은 수다스러운 사람이 아니기에 도우미들이 보고 말을 전한 것 같다.남강훈은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다 큰 여자가 함부로 남자 방에나 들어가고! 설마 딴마음을 품고 있는 거야?”“그런 게 아니니 넘겨짚지 마세요.”“그럼, 뭐 하러 갔어?”“사이즈 재러요.”찻잔을 들고 있던 그의 손이 떨렸고 뚜껑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어디를 재?”아버지가 오해했다는 것을 남우도 알았다. 얼굴이 빨갛게 다라올랐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며 침착하게 설명했다.“뭘 생각하시는 거예요. 전 그저 허리둘레를 쟀을 뿐이에요.”남강훈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허리둘레를 방에 직접 가서 문을 닫고 쟀단 거야?”“됐어요.”그녀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아버지가 더 이상 묻지 못하게 재빨리 위층으로 올라갔다.남강훈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턱을 쓱 만졌다. 허리둘레를 재러 방에까지 들어가는 건 뭔가 있어도 단단히 있다고 확신했다.그때 시월이 들어왔다.“회장님, 데이비렌지가 오늘 끝내 푸조를 쳤습니다.”시월의 보고를 들은 남강훈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기다릴 수 없었던 모양이야.”시월, “작전에 실패해서 푸조의 반격을 당할 거라는 걸 데이비렌지도 알고 있는 눈치입니다. 푸조도 원하든 원치 않든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푸조는 남씨가문이 먼저 공격하도록 하고 자신은 상황을 보며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에 동의할 남씨 가문이 아니다. 데이비렌지를 이용해 그를 공격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반재언은 소파에 걸쳐놓은 가운을 느긋하게 입으며 웃었다.“이렇게 내 방에 막무가내로 들어온거 벌써 두 번째네요.”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했다.“노크했는데 응답이 없었어요.”그는 허리끈을 묶고 있었다.“응답이 없다고 해서 막 들어오면 되나요?”잠시 생각하던 남우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여기는 내 집이에요. 내가 내 영역에서 그쪽 방에 들어가는데 누가 감히 뭐래요?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봐 버려도 그렇게 억울할 입장은 아니잖아요.”그는 움직임을 멈추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내 모든 것을 볼 생각이었어요?”“아니요.”“아침에는 여기저기를 만지더니 지금은 보려고 하네요?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많이 억울할 것 같은데요?”“헛소리하지 마요.”“재언아!“그때 문밖에서 남강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남우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반재언이 문으로 향하려 하자 남우가 급히 그를 잡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아버지를 들이지 말아요.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도 절대 말하면 안 돼요. 알았죠?”그가 잔뜩 긴장한 그녀를 내려다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내 기분을 봐서요.”“당신...”반재언은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벽 쪽으로 몸을 숨긴 남우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망했다. 이러면 건물에서 뛰어내려도 결백을 주장할 길이 없다.문밖에 서 있는 남강훈은 방안을 쓱 한번 살폈다.“방금 남우의 목소리가 들리던데 여기 있는 건 아니지?”반재언이 미소를 지었다.“잘못 들으셨나 보네요.”“그래?”그것은 분명히 남우의 목소리였다. 남강훈은 반신반의했지만, 그가 말하려 하지 않으니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푸조에 대한 일을 너도 알고 있었지?”반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푸조가 일주일후에 유인 할 거란 것을 지윤 아줌마에게서 들었어요. 국제 경찰에게 알리니 일주일후에 스카이섬에 도착하겠다고 했어요.”“그럼 됐어.”남강훈이 다시 한번 방안을 힐끗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방해하지 않을게.
뛰어나고 예리한 그녀는 간혹 어리숙하기도 했다. 허나 중요한 순간에는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이고 사리 분별에 능했다. 그런 그녀가 유독 그의 앞에서는 허둥거렸다.반재언은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입꼬리를 올렸다.“아주 편안하게 잘 자고 있군.”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소파를 비췄다. 서서히 눈을 뜬 남우는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에 몸을 일으켰다.덮었던 담요을 들고 주위를 살피던 그녀는 어젯밤에 반재언을 찾았던 자신이 떠올랐다. 그녀는 하려던 말도 깜빡하고 그의 방에서 잠들어 버렸다.방문을 연 남우를 마침 지나가던 도우미들이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도... 아가씨?”“좋은 아침입니다.”그녀는 뻔뻔스럽게 인사를 하고 급히 방으로 돌아갔다.그들은 남우가 나선 방을 확인하고 몰래 미소를 지었다.“소문이 진짠가 봐요.”“아가씨가 도련님이었을 때부터 두 분 사이가 심상치 않았으니, 거짓일리는 없죠.”“회장님이 사위를 얻게 되었네요.”11시까지 방에 있던 남우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거실로 내려왔다. 막 집을 나서려는 데 남강훈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렸다.“어디 가는 거야?”놀란 그녀가 몸을 돌렸다.“밖에 가서 뭐 좀 먹으려고요.”신문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남강훈이 쏘파에 앉으며 말했다.“집에는 먹을 것이 없어?”그녀의 시선은 허공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돈 쓰고 싶어서 그래요. 아버지 돈 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어젯밤에...”남강훈은 잠시 멈칫하다가 웃으며 덧붙였다.“널 찾으러 방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어.”“재언씨를 찾으러 가지 않으셨...”“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남우는 입을 다물고 눈썹을 치켜세웠다. 잠시 당황했지만. 아버지가 그녀를 낚으려는 것을 눈치챈 그녀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넘겨짚은 거예요.”남강훈은 찻잔을 들며 말했다.“재언이가 오늘은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않을 거야.”그녀가 대뜸 물었다.“무슨 일인데요?”생각에 잠기던 그가 입을 열었다.“
둘은 방에서 오후까지 머물다가 떠났다.반재언은 연희승과 함께 그가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둘은 호텔 로비에서 지윤을 만났다. 연희승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재빨리 다가가 두 팔을 벌리며 다정하게 불렀다. “애기야!“지윤이 그런 그를 막으며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누가 밖에서 그렇게 부르라고 했어요?!”그는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포옹도 못 하게 해요?”지윤이 그를 매섭게 흘기며 말했다.“여기에 온다고 왜 말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연희승도 그 작전 무리 속에 있을 줄은 몰랐다. 연희승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당신이 걱정되어서죠.”“본인이 걱정되어서겠죠. 난 당신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걸 미리 말할게요.”연희승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는 지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몸놀림은 둔해도 좋은 머리가 있잖아요.”옆에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반재언은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프엘에서 푸조와 데이비렌지가 만났다.푸조가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데이비렌지의 행동을 추궁하자 데이비렌지가 비웃었다.“남씨가문과 결탁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 아니면 당신은 이미 죽었어.”푸조가 냉소를 지으며 받아쳤다.“이겼다고 생각하나 본데 너의 미래는 나보다 더 비참할 거야.”주변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전혀 동요하지 않는 푸조를 보던 데이비렌지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애써 푸조의 생각을 읽으려 했다.“이렇게 쉽게 패배를 인정하는 거야? 이 모든 것은 남 씨 가문이 판을 흔들어서 일어 난 일이야. 그런 그들과 손잡았다 한들 당신을 쉽게 놓아줄 수나 있을까?”“그들이 놓아 주든 말든 다른 문제야. 지금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건 너잖아?”푸조는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술을 채우며 덧붙였다.“당연히 인정하고 싶지 않아. 과거로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너부터 죽였을 거니까.”데이비렌지가 웃었다.“하지만 그러지 못했지.”푸조는 담담하게 말했다.“죽었든 살았든 상관없어. 마지막으
젓가락을 든 그녀가 야채를 짚었다.남강훈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재언이가 곧 떠나게 될 텐데 아무 생각이 없는 거야?”그는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혹시 알아? 네가 솔직해지면 여기 남을 수도 있지 않겠어?”남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남강훈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빙빙 돌리면 제가 못 알아들으니 차라리 속 시원하게 말씀하시죠? 아! 저도 예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그 사람을 아들로 삼으려는 거예요?” “...”주먹은 쥔 남강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음 같아선 어디가 문젠지 그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로 답답했다. 그는 가까스로 자신을 진정시키며 말했다.“물론 그것도 없지 않지. 하지만 이미 아버지가 있는데 어떻게 내 아들이 될 수 있겠어? 다시 잘 생각해 봐.”남우는 수프를 마시며 다시 물었다.“그럼, 역으로 그의 아들이고 싶단 말씀인가요?”남강훈, “...”만약 심장병으로 앓고 있었다면 병이 도져 죽었을지도 모른다.남강훈의 얼굴이 푸르딩딩해졌다.“이 모양 이 꼴이면 평생 결혼도 못 해.”밥그릇을 내려놓은 남우는 오래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녀는 화가 나 씩씩거리고 있는 남강훈을 바라보았다.“제가 결혼하기를 바라는 거예요?”“이제야 조금 깨달은 모양이구나.”그러자 남우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배불러요.”남강훈은 그녀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결혼 소리에 이런다고?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문에 기댔다. 그날 밤 악몽은 여태 가시지 않았다. 결혼하면 그녀는 더 이상 남씨 가문과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다. 그 악몽이 현실이 되는 걸까?정체를 밝히기 전에는 평생 남씨 가문에 머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가 ‘도련님’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여자인 그녀는 언젠가 결혼해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오후.반재언은 연희승과 함께 남강훈을 만나러 왔다. 남강훈과 처음 만난 연희승은 아주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 셋은 서재에서 담소를 나눴다.반재언의 시선은 창밖을
도우미가 웃으며 대답했다.“어떻게 감히 회장님을 의심하세요? 아가씨는 회장님의 유일한 따님인데 고작 결혼으로 연까지 끊어버리시겠어요?”다른 도우미도 거들었다.“맞아요. 속담에 결혼한 여자는 주워 담지 못하는 물이라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이고 회장님같이 아가씨를 아끼시는 분이 아가씨가 결혼한다고 해서 절대 매몰차게 인연을 끊으시지 않아요. 본가는 우리 여자에게 놓고 말하면 어디까지나 제일 든든한 버팀목인 걸요.”남우의 눈썹이 희한한 곡선을 그렸다.꿈도 항상 반대라고 하지 않았던가.아버지는 꿈에서처럼 무정한 분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다.도우미들은 서로 시선을 맞추면서 웃었다.“아가씨, 저희가 봤을 때 반 도련님도 너무 괜찮은 분 같아요.”남우는 멈칫했다.“어디가?”“외모도 출중하시고, 예의도 바르시며 무엇보다 너무 다정하잖아요! 그렇지 않나요?”반문당한 남우는 생각에 잠겼다.잘생기긴 했다.깍듯하기도 했다.하지만 다정하다는 것은 겉면뿐이다.그녀는 두 눈으로 반재언의 퉁명스럽고 사나운 면을 보았다. 그는 섬세하고 통찰력이 뛰어나 상대의 기를 죽이곤 했다. 그래서 그의 앞에서 서면 모든 걸 읽히는 기분이다.다정하다는 점은 그저 허상이다.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그저 그래.”도우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재언에 대한 그녀의 평가 그저 그렇다고?남우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잘생기면 여기저기 꼬이기 마련이야. 나보다 못생겼으면 한 번 정도 생각은 해 봤을 수도?”사실 그녀가 하고싶었던 말은 그녀보다 못 생겼으면 자신이 그 꼬임 대상이 되고 싶다는 뜻이었다.도우미들, “...”“아가씨는 못생긴 남자를 좋아했던 거군요?”깜짝 놀란 남우가 고개를 돌렸다.언제 나타났는지 반재언이 그녀의 뒤에 있었다. 아마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들은 것 같다.도우미들은 급히 자리를 피했다.남우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언제부터 여기에 있은 거예요?”그가 대답했다.“방금요.”남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남우는 입술을 깨물며 그의 눈을 감히 똑바로 보지 못했다.“알았어요. 방금 한 말은 취소할게요. 그리고 미안합니다. 됐죠?“반재언이 그녀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이 사과는 너무 성의가 없네요.”그녀가 고개를 들었다.“그럼 어쩌라는 거죠?”그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도우미들 앞에서 내 명의를 훼손시켰는데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예요?”남우는 그 자리에 완전히 굳어 버렸다.몰래 벽 뒤에 숨어 엿듣고 있던 연희승도 입이 떡 벌어졌다.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저 사람은 그가 알던 도련님이 아니다.한 여자의 마음을 여지없이 흔들고 있었다.남강훈은 오히려 흐뭇하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반재언의 여자 다루는 솜씨가 젊은 날의 그를 뛰어넘는 것 같다.입을 떼려던 남우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남강훈과 연희승이 있었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둘은 뒤늦게 몸을 숨겼다.남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왜 저기에 몰래 숨어 있는 거지?그녀가 고개르 다시 돌리자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반재언의 얼굴에 숨을 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속삭였다.“왜 대답이 없죠?”남우는 급히 고개를 돌리며 뒷걸음질 쳤다.“갑자기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면 어떡해요. 이 문제는...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꽁무니를 내빼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반재언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반응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남강훈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눈치가 없어도 저렇게 없다니!”분명히 꼬시고 있는건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연희승이 물었다.“저 아가씬 누구에요?”남강훈, “내 딸이야.”이 아가씨가 소문으로만 듣던 남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니. 그런데 연희승은 그녀가 소문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아까 반재언의 모습을 연희승은 여태 본 적 없었다. 그 정도로 이 아가씨가 매력적이란 말인가?도련님의 외모와 배경이면 서울에서나 S국에서나 모두 대쉬를 받고도 남았지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