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바라보는 반재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그 시각, 서남 구역 별장.“뭐? 남우가 여자라고?!”소식을 들은 푸조가 깜짝 놀랐다.남우가 남강훈의 하나뿐인 아들이라는 건 섬에서 지내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아들’이 몰래 신분을 숨긴 것도 모자라 여자의 몸을 갖고 있다니!그 소식을 전하는 경호원이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남 씨 가문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관건입니다. 안드레가 그 비밀로 남강훈을 협박하였는데, 남강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푸조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안드레가 데이비 렌지의 충실한 개가 되었구나. 데이비 렌지는 남강훈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몰라. 그렇게 하면 남강훈을 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우습구나.”데이비 렌지에 관한 일은 그가 소홀했다.수배자를 섬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이득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움까지 준 꼴이 되었다.어쩐지 하시호가 백제파의 암살자를 고용해 남 씨 가문의 구역을 공격하고, 남우의 심기를 건드린다 했었다. 이 모든 게 일찍이 데이비 렌지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데이비 렌지는 고작 몇몇 사람을 심어 둔 걸로 남 씨 가문과 대적해 이길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야말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남 씨 가문에 미리 파견한 첩자들과의 소식이 끊기자 데이비 렌지가 주위 물건을 부수며 노발대발했다.“쓸모없는 것들! 사람 하나 똑바로 간수하지 못하는게야!”누구도 말을 하지 않자 뚱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마 제일 먼저 잡힌 사람이 자백한 것 같습니다.”데이비 렌지의 손에 들린 찻잔이 당장이라도 깨질 것 같았다.그때 다급하게 달려온 한 남자가 데이비 렌지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데이비 렌지가 눈을 치켜떴다.“확실해?”“네. 제가 똑똑히 들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사람과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보스를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안색이 어두웠던 데이비
한태군이 없었다면 남 씨 가문은 데이비 렌지가 이번 싸움에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조차 없었을 것이다. 남 씨 가문은 푸조에게만 영향을 줄 수 있지 데이비 렌지에게까지 영향을 주지 못했다.그들보다 데이비 렌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한태군은 푸조와의 싸움에서 데이비 렌지가 이겼어도 그들의 허를 찔러 공격할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다.며칠 지나지 않아 BJ 창고에 큰불이 덮쳤다. 빠르게 출동한 소방원들이 불을 껐지만, 화려했떤 BJ 건물은 이미 잿더미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히 다친 인원은 없었다.그 소식을 들은 푸조가 격분하며 소리를 질렀다.“가만히 있던 BJ에 어떻게 불이 날 수 있단 말이냐. 운소는! 운소는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당장 이리로 호출해.”고개를 숙인 부하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검은 옷으로 무장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운소… 운소 씨가 사라졌습니다...”푸조는 놀라 바로 그의 멱살을 잡았다.“그게 무슨 말이야?!”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운소씨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큰일 났습니다.”서재로 쳐들어온 경호원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상회의 유동자금이 모두 동결되었습니다. 컴퓨터에 있는 서류와 업체 계약서까지 모두 말끔히 지워졌습니다!”푸조는 완전히 넋을 잃은 채 얼어붙었다. 업체 계약서는 그들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노예 계약같은 체결을 한 것이었다. 7할의 배당금으로 BJ가 70%를 받고 업체는 10%만 가질 수 있었다. 10년 유효 기간 동안 업체는 아무 이유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는 조항까지 적었는데…업체에서 계약서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멋대로 자신들의 계약서를 조작하거나 조항을 바꾸면 큰일이었다. 나중에 소송이라도 걸리면 원래 계약서를 내놓지 못하고 패소할 것이 분명했다.화제로 계약서만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유동 자금마저 이유 없이 동결된 것은 막대한 손실이었다. 그리고 BJ 상회는 스카이섬 서남 구역의 유동 금고와 마찬가지였다
......남강훈과 반재언이 서재에서 바둑을 두고 있을 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시월이 문을 열고 들어와 두 사람 곁에 멈춰섰다.“회장님, BJ 상회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남강훈은 하얀 바둑알을 판에 놓으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지윤이는 일 처리가 빨라.”반재언도 그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BJ 상회를 불태우고 푸조의 자금줄을 끊어놓았으니 빚더미에 앉은 것은 물론이고, 데이비 렌지의 공격까지 있으니 아마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입니다.”그때, 집사도 다가왔다.“회장님.”집사가 서 있는 곳을 돌아보니 그의 뒤로 나타난 건 수야였다.서재로 들어온 수야가 남강훈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너는…”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 아직도 살아있었구나.”수야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저도 제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푸조가 운소를 파견해 저를 죽이러 왔을 때, 살기 위해 비수로 상대방의 목을 그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크게 상처를 입고 저도 크게 다쳤습니다.”“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운소가 저를 도와주더니 직접 숨을 곳까지 알아봐 주는 겁니다. 그 시체도 운소가 저를 도와 위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당분간 몸을 잘 숨겨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습니다. 푸조가 저를 죽일까 걱정되었던 저는 줄곧 몸을 숨기고 있다가 이제야 회장님 앞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남강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앞에 다가와 어깨를 토닥였다.“살아있으니 그걸로 됐다. 치영강도 이 소식을 들으면 분명 기뻐할 거야.”수야는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죄송합니다. 결국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네요.”그의 말에 남강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괜찮아. 치영강은 아마 너를 제일 필요로 할 것이다. 네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기쁜 일일 테니.”시월이 수야와 함께 남 씨 가문을 벗어난 후, 남강훈도 반재언과 함께 일층으로 내려왔다.“지윤이의 계획이 조금씩 끝이 보이는구나. 이제 마지막 한 방만 남았다.”자리에
“정민희씨는 제가 마음에 드신 건가요?”갑작스러운 그의 고백에 그만 정민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약간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반재언 씨를 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이건 첫눈에 반한 느낌이겠죠.”그녀의 고백에 반재언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곳을 돌아봤다.“저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나요?”깜짝 놀란 정민희가 수줍은 듯 미소를 지었다.“사랑에 이유가 있나요?”“이유는 필요 없죠. 저는 저한테 정민희 씨가 저에게 첫눈에 반할 만큼의 매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이렇게 잘생긴 얼굴을 하고 왜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죠?”정민희가 깜짝 놀란 듯 보였다.“만약 그날, 남우 씨가 일부러 소개팅을 망치지 않고, 또 정말로 그녀가 남자였다면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하게 되었을까요?”그의 물음에 정민희는 아무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남우가 진짜 남자고, 일부러 난동을 부리지 않았다면 남우와 사귀었을지도 모른다.물론, 반재언을 만나기 전이라면.정민희는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만약 반재언씨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그랬을 거예요.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신기한 것 같지 않나요?”반재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의 정민희를 훑어보았다.“제가 순전히 아내를 고르고 있었다면, 정민희씨도 꽤 괜찮은 선택이 되었을 겁니다.”정민희의 눈가에 기쁜 기색이 언뜻 비쳤다.“반재언씨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하지만, 저와 정민희씨는 같은 편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정민희 씨는 충분히 훌륭하니까 좋은 남편감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정민희 씨가 찾는 남자는 아니에요.” 그의 말에 자리에 얼어붙은 그녀가 한참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반재언씨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천천히 알아가면…”“정민희씨는 아직 제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 것 같네요.”옅은 미소를 짓고 있던 반재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럼 다른 말로 설명해 드리죠. 만약 정민희 씨와 경호원이 동시에 위험에 빠졌습니다. 싸우시겠습
기둥 뒤에 숨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남강훈의 입이 당장이라도 귀에 걸릴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그의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따. 화들짝 놀란 그가 뒤를 돌아보니 남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외투 단추를 잠그며 팔짱을 끼고 있는 남우는 심지어 잠옷 차림이었다. 아무렇게나 걸친 외투에 머리도 빗지 않은 그녀의 몰골은 차마 눈을 뜨고 봐주지 못할 지경이었다.“아버지, 몰래 숨어서 뭐하세요?”기둥 옆으로 고개를 내미는 그녀를 남강훈이 잡아끌었다.“조심해! 들키면 안 되잖아!” 말을 마친 그가 다시 기둥에 몸을 붙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그를 따라 고개를 내민 남우가 깜짝 놀라 물었다.“반재언씨와 정민희 아가씨 아니에요? 지금 두 사람 데이트하고 있는 건가요?”남강훈은 심호흡을 하더니 버럭 화를 냈다.“데이트는 무슨 데이트냐! 정민희 양이 재언이한테 고백을 하고 있잖아!”“이렇게 빨리 고백한다고요?”남강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너도 저 두 사람 사이에 끼고 싶은 것이냐?”남우는 고민도 하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제가 왜요? 제가 왜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해요?”“화도 안나?”“제가 왜 화를 내야 돼요?”“……”화를 참지 못한 남강훈이 뒤로 물러서더니 남우가 방심한 틈을 타 발길질을 했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남우의 몸이 앞으로 쏠리더니 하마터면 기둥에 부딪칠 뻔했다.겨우 몸의 중심을 잡은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왜 이러시는 거에요?”남강훈은 이미 줄행랑을 치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잔뜩 화난 남우가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문뜩 정신을 차린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반재언과 정민희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남우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하던 거 계속하셔도 돼요. 저는 이만…”말을 마친 그녀가 막 집 안으로 돌아가려는데 반재언이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화들짝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왜…”그녀의 어깨를 감싼 반재언이 정민희 앞에 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 한편이 콕콕 찔렸다.반재언은 그저 의미심장하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남 씨 가문의 재산은 탐나지 않고, 집은 필요 없고, 돼지는, 빼앗을 수 있겠네요.”남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반재언을 쳐다봤다.“돼지를 눈독 들이고 있었어요?”반재언은 남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네요.”그의 눈빛이 의미심장한 것을 발견했지만, 딱히 반박할 수 없었던 남우는 미간만 찌푸렸다. 때마침 들려온 헛기침 소리에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강훈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남강훈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저으며 한탄했다. “어떤 일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똑똑한 것 같지만, 하필 이런 일에서는 돼지보다 더 눈치가 없는 것 같아.”남우는 그런 남강훈을 노려보며 물었다.“누굴 욕하시는 거예요?”반재언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강훈은 먼 산을 바라보며 손을 내저었다.“말을 해도 말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니, 됐다. 입만 아프게 말을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니. 그리고 네가 지금 입고 있는 옷 꼬락서니나 좀 보거라. 정 씨 가문의 아가씨는 아주 예쁘게 단장했는데, 너는 여자라고 신분을 밝히고도 옷은 왜 아저씨들이 입고 다니는 옷만 입는 것이야! 참, 부끄러워 죽겠다.”남우는 자신이 입고 있는 잠옷을 쳐다보고 다시 머리를 들더니 외투를 세게 여몄다.“내 눈에 예쁘게 보이면 되는 거 아닙니까?”말을 마친 그녀는 잽싸게 집 안으로 달려갔다.남강훈은 반재언을 쳐다보더니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물었다.“재언아, 정 씨 가문의 아가씨 고백을 거절했어?”반재언은 그의 꼼수에 걸려들지 않았다.“기둥 뒤에 숨어서 보고 있었잖아요.”그 말에 어색하게 웃음을 터뜨린 남강훈이 헛기침을 했다.“그건 또 언제 발견했러.”무언가 생각난 듯 그가 계속하여 물었다.“그런데 방금 네가 한 말 사실이니?”반재언은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고 남우가 도망
갑자기 목에서 강렬한 충격이 느껴지더니, 휴대폰을 꺼낸 남자는 바로 기절했다. 남자 뒤에 서 있던 지윤이 휴대폰을 들어 화면에 적힌 번호를 확인했다. 통화 버튼을 차마 누르지 못했던 남자는 데이비 렌지에게 전화를 하려던 것 같았다.어느새 날이 어둑해지자 여기 저기에서 간판 빛을 밝히며 어두워진 스카이 섬을 환하게 밝혔다.바다를 항행하는 유람선 몇 척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아 이틀 후면 스카이 섬 남 씨 가문 구역에 도착할 것이다.불빛이 환하게 밝힌 선실, 창가에 서 있던 희승이 차광판을 내리고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사람을 돌아봤다.“섬에 도착하면 다들 신분을 최대한 숨기고 조용히 다녀야 합니다.”“걱정하지 마세요, 명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비즈니스 때문에 스카이 섬에 왔다고 말하겠습니다. 일부 사람들을 배에서 접대하도록 남겨두면 의심을 사지 않을 것입니다.”희승은 고개를 끄덕거렸다.“그러면 다들 일찍 쉬세요.”그 시각, 남 씨 가문.마음이 심란하여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 남우가 겉옷을 손에 쥐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새벽이라 남강훈과 고용인들도 모두 잠들어 있을 것이다.어슴푸레하게 정원을 비추는 가로등과 풀숲에서 들려오는 유쾌한 벌레 소리가 유난히 정겹게 들렸다.겉옷을 걸친 남우는 도마뱀 우리 앞으로 가서 몸을 굽혀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새벽에도 너희들은 참 활동적이네.”나뭇가지가 부러진 집 위에 엎드려 있는 도마뱀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우리 문을 열어 도마뱀을 손등에 올려놓자 도마뱀은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엎드렸다.흔들의자에 앉은 그녀가 먹이를 주며 말을 걸었다.“너도 짝을 찾아줘야 되는 걸까? 꽤 외로워 보이는데, 어떤 짝이 마음에 들어? 내일 시장에 가서…”비록 그녀가 하는 말을 도마뱀이 알아들을 수 없지만, 남우는 계속하여 말을 걸었다.어느새 그녀의 뒤에 있는 기둥에 기댄 반재언이 그녀가 도마뱀 한 마리를 세뇌시키는 목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밤
남우는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화면을 확인했다.“번호를 대화로 알려 주면 되지.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그러나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남우 씨가 거절하면 저의 체면이 서지 않잖아요.”그러자 남우는 그를 흘겨봤다.“휴대폰 번호를 알려주는 것뿐인데, 제가 거절할 것 같았어요?”그때, 남우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돌아봤다.“삭제할까 봐 걱정은 안 돼요?”“네. 삭제하면 돈은…”남우의 표정이 바로 굳어지더니 연락처를 저장하고 혹여 실수로 삭제라도 할까 노심초사했다.“삭제하지 않을 거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마요.”그러자 반재언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근데, 왜 내가 손해를 더 많이 보는 것만 같지?”남우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당당하게 말했다.“다 같은 편에 있는 사람들인데 왜 그렇게 세세하게 따지려고 해요?”그러자 반재언은 다시 깊은 고민에 잠겼다.“같은 편…”“계약을 했으니 같은 편 아닌가요?”남우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도마뱀을 우리에 넣었다.“근데 BJ 상회를 무너뜨린 건 반재언 씨잖아요. 푸조의 이득은 혼자 다 가졌으면서 20억으로 쪼잔하게. 참..”반재언은 등받이에 기대앉아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그러니까 남우 씨는 남우 씨가 더 손해를 보는 것 같아요?”그러자 남우는 팔짱을 끼고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아닌가요?”반재언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이득을 제일 많이 얻은 사람이 손해를 봤다고 하니…”남우는 그런 그의 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오늘 밤 반재언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이 이상하게 멋져 보였다. 좋아하는 마음이란게 이런 걸까?하지만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그래, 아마 잘못 본 게 틀림없어.남우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 반재언이 웃는 것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또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예요?”남우가 허리를 굽히고 그에게 다가왔다.“방금처럼 한 번 더 웃어볼래요?”그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