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군은 당황하지 않고 다시 파일의 비밀번호를 풀어내기 시작했고 반 시간 뒤, 성공했다. 하지만 파일을 확인한 한태군이 눈을 가늘게 떴다.잠시 후, USB를 뽑아낸 그가 컴퓨터를 끄고 룸을 나섰다.남석은 호텔 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태군은 가발을 벗고 차 안으로 들어섰고 남석은 백미러로 그를 힐끔 봤다. 남자가 여장을 하고도 저렇게 예쁠 수 있는 건 아마 한태군 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들키신 거 아니죠.""많이 취해서 생각난다고 해도 누구인지 모를 겁니다."한태군이 화장을 지우며 말했다."푸조가 BJ의 관리를 다른 이에게도 맡겼으니 부르크가 분명 불만을 품고 있을 겁니다."한태군은 차 안에서 옷까지 바꿔 입고 여유로운 얼굴로 단추를 채웠다."운소가 부르크보다 푸조의 믿음을 더 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위해 길을 남겨두지 않는다면 부르크도 언젠가는 실권을 잃게 될 테니 데이비 렌지가 그걸 이용한 겁니다."부르크는 데이비 렌지와 연락하고 있었지만, 그는 데이비 렌지를 믿지 않았고 그가 자신을 가까이한 것이 푸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운소 신분에 대해 부르크가 의심을 하고 있든 말든 적어도 그는 푸조의 중시를 받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게다가 지금 그는 반기를 들 마음마저 생긴 상태였다.삼활에 도착한 한태군은 홀로 휴게실로 향했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온 불빛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그 모습에 미간을 찌푸린 한태군이 휴게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불이 밝혀진 휴게실을 보며 그는 의아함에 빠졌다. 그가 나설 때, 불을 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리고 흔들리는 커튼을 보곤 그가 가까이 다가갔다."나와."머지않아 커튼 뒤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고 웃었다.그 얼굴을 확인한 한태군이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늦었는데 여기는 왜 왔어, 숨어서 나 놀리려고?""오빠 나 때문에 놀랐어?""유치하긴."눈을 깜빡이며 묻는 강유이를 보며 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나 9
하지만 강유이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듯 한태군의 품에서 벗어났다."똑바로 얘기 안 하면 나 안을 생각하지 마."한태군은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그리고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오더니 밖에서 남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태군 씨, 옷을 차에 두고 오셨어요."그 목소리를 들은 한태군이 문을 열고 남석이 건네는 봉투를 건네받았다."감사합니다."한태군이 문을 닫자마자 강유이는 가방을 들고 휴게실을 나서려 했다. 하지만 한태군이 그녀 앞을 막아섰다."비켜, 갈 거야.""화났어?"한태군이 웃으며 물었다."내가 오빠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오빠 마음이 변한 거지, 나쁜 놈!"강유이가 한태군을 밀어내고 문고리를 잡았다. 그때 한태군이 봉투를 강유이에게 건네줬다."이거 볼래?""뭐?"강유이가 봉투를 열어보니 안에 여자의 옷과 가발, 향수, 그리고 화장품까지 있었다.강유이가 향수를 들고 냄새를 맡아보니 확실히 한태군에게서 나던 향수 냄새였다.봉투를 뒤져보던 강유이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놀란 얼굴로 한태군을 바라봤다."오빠, 설마…""네가 생각한 거 맞아, 하지만 나, 정말 일 때문에 필요해서 그런 거야.""오빠 다른 남자랑 바란 핀 거야?"강유이가 한태군을 훑어보며 물었다.한태군은 그 말을 들으니 기가 차 웃음이 나왔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한태군이 강유이의 볼을 잡고 묻자 강유이가 그제야 웃었다."장난이지, 그런데 나도 오빠 여장한 거 본 적 없는데.""…볼 필요 없어."한태군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왜?"강유이가 불만스럽게 물었다."우리 유이 열등감 가질 것 같아서."강유이는 그 말을 듣더니 봉투를 홱 버리고 휴게실을 나서려고 했다."뭐야, 고작 이걸로 화난 거야?"한태군이 그런 강유이를 뒤에서 안아 그녀의 머리카락에 코를 묻었다.강유이가 그제야 득의양양한 얼굴로 한태군을 바라봤다."오빠가 여장한 거 보여주면 화 안 낼게.""까분다?""왜?"강유이
"두 계집애가 선을 볼 생각을 하니 웃기구먼."남강훈의 말을 들은 반재언이 시선을 거두고 웃었다."그 아가씨가 정말 남우 씨를 마음에 들어 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그 말을 들은 남강훈이 손을 저었다."걱정하지 마, 저놈 차림새만 봐도 이 선 자리 망하게 될 게 분명하니까."반재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머지않아 남우가 있던 룸으로 우아한 분위기를 가졌지만 예쁜 축에 끼지는 않는 한 여자가 들어왔다."남우 씨?"여자가 웃으며 남우에게 물었다."네, 서진 아저씨가 말했던 정민희 씨?"정민희가 자리에 앉더니 가방을 옆에 내려놓았다."남우 씨 이름 들어본 적 있는데 제가 상상했던 거랑 많이 다르네요.""저를 처음 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아주 잘생겨서 그런 건가."남우가 웃으며 머리를 뒤로 넘기더니 등받이에 기대어 앉았다.그 말을 들은 정민희의 표정이 이상해졌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걸고 있었다."농담도 잘하시네요."음식이 올라온 뒤, 남우가 젓가락을 들더니 말했다."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민희 씨 제가 마음에 드시나 봐요.""자신감이 넘치시네요."정민희가 웃음을 짜내며 말했다."저는 늘 자신감이 넘치거든요,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그 어느 여자가 안 좋아하겠어요."정민희는 그 말을 듣더니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무슨 일 해요?"남우가 찻잔을 들고 갑자기 물었다."당연하죠."정민희가 멈칫하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우리 결혼하고 애 낳으면 누가 애를 봐요, 그건 안 되죠. 저는 현모양처를 원하거든요, 결혼하고 나면 제 아내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저는 나가서 돈을 버는 거예요."남우는 굳어가는 정민희의 표정을 보며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 웃었다."물론 저랑 결혼하고 나면 밖으로는 나돌아다니지 않았으면 해요, 바람이라도 피면 그거 곤란해지는 거니까. 저 말고 다른 남자는 거들떠볼 생각도 하지 마요, 제가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라 내 사람이 이상한 생각하는 거 받아들일
한쪽으로 돌아간 남우의 뺨 위로 새빨간 손자국이 났다."지금 저를 때린 겁니까?"남우가 자신의 뺨을 만지며 물었다.정민희는 화가 나 빨개진 눈으로 소리쳤다."제 몸에 손을 댔으니 맞는 것도 당연한 거 아닌가요?"그리고 다시 남강훈을 보며 말했다."남씨 가문은 이렇게 자식을 가르치나 보죠, 남씨 가문에서 여자한테 이런 추잡한 짓을 할 줄 몰랐네요."남강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남우를 쏘아보더니 그녀를 대신해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가르쳤습니다.""오늘 이 자리는 없던 걸로 하죠."정민희가 남강훈의 사과를 받아들이곤 룸을 나섰다.하지만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는 반재언을 마주친 정민희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렸다.스카이섬에 이런 남자가 있었다니. 그녀는 잘생긴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오늘 남우를 만나고 난 그녀는 무척 후회되었다. 그녀는 역시나 소문은 가짜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저 남자는 누구일까?한편, 남우는 룸 안에서 부은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고 있었다."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얼굴이 다 부었다고요."그 말을 들은 남강훈은 그녀를 밉지 않게 흘겨봤다."그러게 왜 그런 짓을 해, 맞아도 싸."남우가 거울을 꺼내 새하얀 피부에 남은 자국을 바라봤다."남 도련님 연기가 우리 유이랑 비길 만하던데요."반재언이 문에 기대어 남우를 보며 말했다.그녀의 실력으로 정민희의 손찌검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남우는 일부러 뺨을 맞아 바람둥이의 이미지를 만들었던 것이었다."네 서진 아저씨를 만나러 가봐야겠구나, 괜히 네가 일부러 그런 거로 생각하실라."남강훈이 지팡이를 짚은 채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제가 맞고 있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던 거예요? 좀 도와줘야죠."남우가 거울을 거두며 말하자 반재언이 웃었다."남 도련님 선 자리를 어떻게 방해할 수 있었겠어요?"반재언의 말을 들은 남우가 분홍색의 와이셔츠를 벗어내자 하얀색의 티셔츠가 드러났다."그래도 거저 맞지는 않은 것 같아요."남우가 룸을 나서자 반재언도 웃으
그 말을 들은 반재언이 찻잔을 들고 천천히 차를 들이켰다."이게 다 선 때문이잖아요, 앞으로 아버지한테 마음대로 허락하지 말라고 하세요."남우가 뺨을 문지르며 말했다."서진 회장님도 도련님 생각해서 그런 거니까요."서진은 남우의 신분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반 도련님한테 저 대신 선보러 나가라고 해야 했는데, 도련님은 진짜 남자잖아요."남우가 차를 홀짝이고 있는 반재언을 보더니 말했다.이 선 자리는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재언은 남자였다."저는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반재언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그러자 남우가 그의 옆으로 다가가더니 다시 말했다."그 권리 제가 드릴게요. 반재언 씨도 이제 결혼할 나이잖아요, 사람은 제가 다 봐 드렸으니까. 참하고 상냥하잖아요, 스카이섬까지 왔는데 와이프까지 데리고 가면 더 좋잖아요."집사는 그런 남우를 바라보기만 했다. 분명 자신에게 들어온 선 자리를 반재언에게 밀어주려고 하다니."정말 그렇게 생각해요?"반재언이 남우를 보며 물었다."당연하죠, 얼마나 좋아요."남우가 웃으며 대답했다.그리고 그때, 남강훈이 어두워진 얼굴로 거실로 들어섰다."남우 너, 내가 사고 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그 말을 들은 남우가 남강훈을 보며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제가 왜요?""자기 선 자리 망친 걸로도 모자라서 재언이까지 끌어들였으니!"남강훈이 씩씩거리며 말했다.반재언은 그 말을 듣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마 그 여자 반 도련님이 마음에 든대요?"남강훈의 말을 들은 남우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남우의 말을 들은 남강훈이 콧방귀를 뀌었다."그럼 잘됐네요, 반 도련님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제가 나설 필요도 없겠네요."남강훈은 그런 남우의 말을 들으며 그녀를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제가 걱정할 일은 없는 것 같으니 올라가 볼게요."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남우를 보니 남강훈은 답답해졌다.심지어 남우를 남자아이로 키운
"이게 다 오빠 때문이잖아."강유이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 맞네. 나 때문이네."한태군이 이마를 짚고 웃었다.그때 남석이 안으로 들어서며 강유이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태군 씨."남석이 한태군을 부르자 한태군이 그를 따라 문 앞으로 다가갔다. 남우가 방 안을 한 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푸조가 사람을 보내 부르크를 찾으러 갔습니다, 아마 그놈에게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부르크가 사라지면 누가 BJ를 물려받게 될까요?"한태군이 진지하게 고민했다."아마 운소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맞네요."남석의 말을 들은 한태군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한편, 부르크는 떨리는 몸으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컴퓨터에 있던 서류들이 푸조에게 넘어갔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푸조는 뒷짐을 진 채 커다란 창문 앞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부르크, 내가 BJ를 너한테 맡겼는데 나한테 이렇게 보답을 해?"그 말에 부르크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대부님, 저는 정말 대부님을 배신한 적 없어요, 누군가 저를 모함하려고 하는 게 분명해요!""그럼 말해 봐, 누가 너를 모함하려고 한 건지."푸조가 그 말을 듣더니 몸을 돌려 부르크에게 다가갔다.하지만 부르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그러자 푸조의 눈빛이 사나워졌다."부르크, 나 몰래 인맥을 모으더니 내가 정말 그게 무슨 의도인지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아?"부르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그때, 운소가 다가왔고 푸조가 운소에게 물었다."조사해 낸 건 있어?""부르크 씨 그 사람들이랑 연락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데이비 렌지도 있었고요.""당신…"부르크가 그 말을 듣곤 놀라서 운소를 바라봤다.하지만 운소는 부르크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푸조 씨 옆에 첩자가 이렇게 드러난 것 같아요, 데이비 렌지가 꺼낸 얘기잖아요. 일부러 저를 의심하게 해서 푸조 님이 넘어가면 도망치려고
...다음날, 아람 빌리지의 룸 안. 정민희와 반재언은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있었다. 정민희는 긴장되기도 했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눈앞의 남자는 지금껏 그녀가 봐왔던 남자들 중 단연코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해 자칫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으나, 특유의 부드러움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찻잔을 꽉 움켜쥐었다.“반재언 씨는 이곳 스카이섬 출신인가요?”그는 차를 마시지도 않고 한참 동안이나 찻잔을 들고만 있었다.“아닙니다.”정민희가 눈초리를 휘며 미소 지었다.“그럼 어디 출신이신가요?”반재언이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서울입니다.”그녀가 미소 지었다.“저는 미나토 구 출신이에요. 우리 꽤나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네요.”문뜩 뭔가를 떠올린 그녀가 물었다.“재언 씨와 남우 씨는 친구 사이인가요?”그가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보았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정민희는 그와 남우가 아는 사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진작 알았다면 어제 남우와 단둘이 만났을 때 경솔하게 손을 올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우 그자도 남자인데, 설마 그로 그녀한테 따지지는 않겠지.그녀가 잔뜩 긴장하며 물었다.“혹시 두 분 친한 사이인가요?”반재언이 멈칫거리더니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눈살을 찌푸렸다.“정민희 씨는 왜 그게 궁금하시죠?”그녀도 이렇게 묻는 게 실례라는 걸 알았는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저는 단지 두 분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반재언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가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그런 질문은 남우 씨한테 물어보면 될 텐데요.”정민희가 흠칫하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 시각, 남우는 손에 접부채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룸 앞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부채로 반쯤 얼굴을 가리고 조용히 룸 안을 탐색했다.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있었다. 정민희는 문을 등지고
반재언이 그녀의 얼굴쪽으로 고개를 숙이자, 남우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손에 쥐고 있던 부채를 툭 하고 바닥에 떨어트렸다.마찬가지로 놀란 정민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결국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밖으로 뛰쳐나갔다.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남우는 감히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불과 1센치의 간격을 사이에 둔 채 반재언의 얼굴이 멈춰 서있었다. 당장이라도 두 사람의 얼굴이 부딪힐 것 같았다.남우의 입술 위에 반재언의 손가락이 놓여있었고, 그 손가락 위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직접적으로 입술이 닿지는 않았지만 정민희가 있던 각도에서 보면 영락없이 키스하는 모습이었다.남우가 무의식적으로 그를 밀쳐내자, 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를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이게 무슨…”그녀는 결국 뒷말을 잇지 못하고 허둥지둥 룸을 벗어났다.반재언은 물끄러미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남우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떠올라 그녀를 괴롭혔다.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녀가 그를 돌아보았다.“아무리 거절할 생각이었다고 해도… 나를 방패막으로 삼으면 안 되죠.”핸들을 잡고 있던 반재언이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피차일반이죠. 남우 씨도 본인이 싫어서 나한테 떠민 거잖아요.”그녀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저는 여자라고요. 그런 제가 어떻게 여자를 좋아하겠어요?”그가 힐끗 그녀를 바라보더니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씨 여자였어요?”남우가 정색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하, 이건 정말 순전히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서 한 일이잖아요!”그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차는 여유롭게 남 씨 가문으로 향하고 있었다.반재언이 정민희를 만나러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