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람 빌리지의 룸 안. 정민희와 반재언은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있었다. 정민희는 긴장되기도 했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눈앞의 남자는 지금껏 그녀가 봐왔던 남자들 중 단연코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해 자칫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으나, 특유의 부드러움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찻잔을 꽉 움켜쥐었다.“반재언 씨는 이곳 스카이섬 출신인가요?”그는 차를 마시지도 않고 한참 동안이나 찻잔을 들고만 있었다.“아닙니다.”정민희가 눈초리를 휘며 미소 지었다.“그럼 어디 출신이신가요?”반재언이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서울입니다.”그녀가 미소 지었다.“저는 미나토 구 출신이에요. 우리 꽤나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네요.”문뜩 뭔가를 떠올린 그녀가 물었다.“재언 씨와 남우 씨는 친구 사이인가요?”그가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보았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정민희는 그와 남우가 아는 사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진작 알았다면 어제 남우와 단둘이 만났을 때 경솔하게 손을 올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우 그자도 남자인데, 설마 그로 그녀한테 따지지는 않겠지.그녀가 잔뜩 긴장하며 물었다.“혹시 두 분 친한 사이인가요?”반재언이 멈칫거리더니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눈살을 찌푸렸다.“정민희 씨는 왜 그게 궁금하시죠?”그녀도 이렇게 묻는 게 실례라는 걸 알았는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저는 단지 두 분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반재언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가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그런 질문은 남우 씨한테 물어보면 될 텐데요.”정민희가 흠칫하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 시각, 남우는 손에 접부채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룸 앞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부채로 반쯤 얼굴을 가리고 조용히 룸 안을 탐색했다.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있었다. 정민희는 문을 등지고
반재언이 그녀의 얼굴쪽으로 고개를 숙이자, 남우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손에 쥐고 있던 부채를 툭 하고 바닥에 떨어트렸다.마찬가지로 놀란 정민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결국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밖으로 뛰쳐나갔다.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남우는 감히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불과 1센치의 간격을 사이에 둔 채 반재언의 얼굴이 멈춰 서있었다. 당장이라도 두 사람의 얼굴이 부딪힐 것 같았다.남우의 입술 위에 반재언의 손가락이 놓여있었고, 그 손가락 위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직접적으로 입술이 닿지는 않았지만 정민희가 있던 각도에서 보면 영락없이 키스하는 모습이었다.남우가 무의식적으로 그를 밀쳐내자, 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를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이게 무슨…”그녀는 결국 뒷말을 잇지 못하고 허둥지둥 룸을 벗어났다.반재언은 물끄러미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남우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떠올라 그녀를 괴롭혔다.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녀가 그를 돌아보았다.“아무리 거절할 생각이었다고 해도… 나를 방패막으로 삼으면 안 되죠.”핸들을 잡고 있던 반재언이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피차일반이죠. 남우 씨도 본인이 싫어서 나한테 떠민 거잖아요.”그녀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저는 여자라고요. 그런 제가 어떻게 여자를 좋아하겠어요?”그가 힐끗 그녀를 바라보더니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씨 여자였어요?”남우가 정색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하, 이건 정말 순전히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서 한 일이잖아요!”그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차는 여유롭게 남 씨 가문으로 향하고 있었다.반재언이 정민희를 만나러
“저 아이가 기분이 안 좋아서 얼마나 다행인가.”남강훈이 집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난 오히려 저 애가 기뻐할까 봐 걱정했다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질투까지 해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하하.”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방금 샤워를 마친 남우는 몸에 목욕 타월을 두르고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있었다. 칫솔을 집어 들던 그녀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만약 정말로 부딪혔다면…”번뜩 정신을 차린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칫솔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자신이 미친 건가?그녀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빠르게 욕실을 벗어났다.주위가 환해지더니 남강훈이 정장 차림의 고용인들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왔다.“남우야, 드디어 깨어났구나. 빨리 일어나 단장하고 옷 갈아입어야지. 이러다 신랑이 먼저 도착하겠어.”“신랑이라뇨?”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그게 아니라 아버지, 제가 여자라는 게 언제 밝혀졌는지…”남강훈이 그녀의 말을 끊고 손짓하자, 고용인들이 웨딩드레스를 들고 활짝 웃으며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아가씨 빨리요!”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그녀는 고용인들에게 떠밀려 정원까지 나오게 되었다. 정원에는 테이블이 잔뜩 세팅되어 있었다. 그 주위로 조명과 생화가 알록달록 장식되어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결혼식의 성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그녀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데 등 뒤에 서있던 고용인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는 너무 당황스러워 반항할 힘도 나지 않았다.“아버지, 지금 저랑 농담하시는 거죠. 제가 누구랑 결혼해요!”남강훈이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따가 신랑이 오면 자연히 누군지 알게 될 거 아니니.”그녀는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순간 종소리가 울리고, 나팔 소리까지 들려왔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이 웃으며 인사하고, 박수까지 치며 축하를 보내왔다. 남우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적잖게 놀란 그녀가 유리창에 몸을 기댔다. 등줄기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이미 그녀의 옷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아침 바람이 불어오자 오한이 들었다.어떻게 그런 꿈을 꿀 수 있지?것보다 결혼 상대가 반재언이라니. 그것도 하필 첫날밤을 보내는 꿈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그 마지막 장면까지… 그녀는 이마를 짚었다. 당장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렸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이제 반재언의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그날 아침 남우는 일부러 아침 식사 시간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녀는 아홉시 반쯤 되자 식사시간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제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런데 거실에 도착하자마자 막 정원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던 남강훈과 반재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가 그 자리에 굳어졌다. 그녀와 반재언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순간 머릿속에 어젯밤 꿈속의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가 헉하고 숨을 들이켜더니 허둥지둥 다시 계단을 올랐다.“아니 저 애가 왜 저렇게 뛰어가?”등 뒤에서 남강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남우가 우뚝 멈춰 서더니 콧등을 만지작거리며 겨우 몸을 돌렸다.“피곤해서 조금 더 자려고요.”“큰일이 터졌는데 잠이 와?”그녀가 멈칫거렸다.“무슨 일인데요?”남강훈이 미간을 찌푸렸다.“데이비 렌지가 진작 백제파 사람들을 구슬려 났더구나. 부르크가 죽자 그의 밑에 있던 부하들과 자금이 다 데이비 렌지한테 들어갔어. 지금 푸조는 속수무책인 상황이야. 데이비 렌지를 치려고 해도 칠 수가 없게 되었지.”깜짝 놀란 남우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역시 아버지는 변하지 않으셨어. 아버지는 아직 내가 필요하신 거야. 흥, 꿈같은 건 다 가짜라고!’그녀가 다시 계단을 향해 내려갔다.“그러니까 푸조가 부르크를 없앤 게 결국 스스로를 궁지에 내몬 것이 되었네요?”남강훈이 뒷짐을 지고 시선을 내려뜨렸다.“부르크를 없앤 게 오히려 그의 오른팔과 왼팔을 잘라낸 것과 같게 되었지. 부르크는 진작부터 그를 배신할 마음을 먹고 있었어. 데이비 렌지는 마침 그
반재언이 그녀를 돌아보았다.“확실히 남우 도련님의 이번 계획은 좋은 것 같습니다. 현재 푸조는 데이비 렌지 때문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라 더욱 그를 없애버리고 싶을 겁니다. 푸조는 그의 실력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푸조가 완전히 그와 틀어지려면, 우선 그자가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껴야겠죠.”남강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푸조가 그를 없앨 수 밖에 없을 만큼한 충돌을 만들자는 말이냐?”반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우선 먼저 아무도 모르게 데이비 렌지가 남 씨 가문 구역에 심어놓은 끄나풀을 없애야 합니다. 끄나풀의 눈이 없어지면 데이비 렌지도 위협을 느끼게 될 겁니다. 앞에는 푸조가 지키고 있고 뒤에는 남 씨 가문이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고 있죠.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누구를 먼저 공격할까요?”그는 우선 먼저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부터 치려고 할 것이다.남 씨 가문 구역에는 그가 몰래 심어둔 심복 외에는 다른 연결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심어둔 심복으로는 절대 남 씨 가문과 대적할 수 없었다.하지만 푸조는 달랐다. 백제파와 부르크의 인맥까지 손에 넣었으니 당연히 데이비 렌지가 유리한 위치였다.남강훈이 웃음을 터뜨리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그러면 이번 일은 너희들한테 맡기겠어.”남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너희들이요?”그녀가 반재언을 바라보았다. 반재언 역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남강훈은 그녀가 자신의 말을 못 들은 줄 알고 다시 한번 말했다.“그래. 너희 두 사람 말이다.”남우가 말했다.“굳이 번거롭게 두 사람이 함께 나설 것까지 있나요. 저 혼자로 충분해요.”남강훈이 콧방귀를 뀌며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네 계획은 좋아. 하지만 거기다가 방금 재언이의 생각까지 더한다면 더욱 완벽해지겠지. 만약 그 두 사람이 충돌하지 않는다면 네가 말하는 그 계획을 실행할 수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재언이는 데이비 렌지가 우리 구역에 심어놓은 끄나풀까지
“하지만 푸조가 지면 상황이 달라지죠. 그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남 씨 가문과 협력하려 할 사람입니다. 그것도 아주 절실하게 원하겠죠. 데이비 렌지를 없애고 나면 푸조는 더욱 남 씨 가문을 상대할 기회가 없게 됩니다. 오히려 남 씨 가문에서 그를 없애기 더 쉬워지게 될 겁니다.”남석은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그렇군요.”잠시 후 남석이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와 동시에 강유이가 벽 뒤에서 걸어 나왔다. 방금 대화를 다 들은 것 같았다.강유이가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손가락으로 미간을 주무르고 있는 모습이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그녀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리고 살금살금 그의 뒤로 걸어갔다. 그녀가 그의 어깨 쪽으로 손을 뻗는데, 한태군이 가녀린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그녀를 휙 자신의 품에 끌어당겼다.“또 날 놀래키우려고?”그녀가 몸을 흠칫 굳혔다.“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어.”맑은 눈동자가 곧게 그를 마주 보았다. 곧이어 눈초리를 예쁘게 휘며 미소 지었다.“피곤해 보여서 어깨 주물러 주려고 했지.”한태군의 촉촉한 입술이 그녀의 볼에 쪽하고 입을 맞추더니 그녀를 자신의 품에 꽉 끌어안았다.“나온 지 며칠이나 됐으니, 이제 그만 남 씨 저택으로 돌아가야지.”강유이가 시선을 내려뜨렸다.“내가 있어서 귀찮아?”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더니 곧이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럴리가.”그녀가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지금 날 쫓아내고 있잖아! 이러고도 귀찮아하지 않았다고?”한태군이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품에 기대게 한 후, 복슬복슬한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기댔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네가 위험해질까 봐 걱정돼.”강유이가 자세를 바로잡으며 그의 다리 위에 앉더니, 팔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내가 위험에 처하게 되면 오빠는 내 걱정하지 말고, 일단 오빠부터 생각해. 지금
그날의 일은 정민희한테 커다란 충격으로 남았다. 그녀한테서 그날의 일을 전해 들은 서진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이 정말로 입을 맞추었다고?”“네, 제 눈으로 직접 봤어요.”정민희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이제 겨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았는데, 남자에게 빼앗기게 생긴 것이다!서진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었단 말인가..남강훈 회장의 하나뿐인 아들이 설마 그럴 줄이야. 만약 그가 이 일을 알게 되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잠시 후, 그가 엄숙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됐어.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탓도 있으니깐, 일단 너는 이 일을 철저히 비밀로 하거라. 절대 남 회장이 알아서는 안 돼.”그는 자신의 친구가 이런 일로 충격을 받는 걸 원치 않았다.정민희는 입술만 깨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룸에서 나온 그녀는 좀처럼 그 일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남우는 확실히 자신의 이상형이 아니었다. 그녀가 섬에 온 이유는 자신의 파트너로 적합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또한 서진이 항상 그녀에게 남 회장의 아들이 얼마나 우수하다는 것을 자주 어필하기도 했었다.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남우한테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의 명성을 그녀 역시 많이 들어왔었다. 그러나 반재언을 만난 순간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남우와 반재언은 한 급이 아니었다.남우는 잘생기긴 했지만 어딘가 연약한 느낌이 들었다. 일반 남자들 속에 있었다면 눈에 띄는 외모이긴 했지만, 반재언과 비교하면 남자다움과, 성숙된 매력이 부족했다.그렇다고 두 사람의 관계가 가능할리는 없었다.순간 뭔가를 떠올린 그녀가 두 주먹을 꼭 말아 쥐었다.“어쩌죠, 약속은 못 지킬 것 같아요.. 서진 아저씨.”아람 빌리지에서 나온 그녀는 곧장 차를 몰고 남 씨 가문으로 향했다.정민희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남강훈은 집사에게 잘 모셔라고 전했다.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정민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
방금 전까지 어둡게 가라앉아있었던 남강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방금까지 화를 내던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입꼬리가 자꾸만 씰룩씰룩 거렸다. “직접 찾아와서 알려주기까지 했는데, 거짓일 리가 있겠는가?”강유이 그 계집애와 한 내기의 승자는 자신이 될 게 뻔했다.집사는 그가 놀라기는커녕 좀처럼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회장님, 설마…”그가 결국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우리 남우도 이제 다 컸는데, 연애를 하는 게 정상 아니겠나.”집사가 믿기 어려운 듯이 되물었다.“그 반 씨 가문 도련님하고 말입니까?”남강훈이 느긋하게 차를 마시더니 만족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그놈처럼 내 눈에 차는 놈도 없어.”이렇게 기쁜 소식을 알게 되었다니. 이건 다 정민희 덕분이었다.하지만 그는 정민희가 왜 자신한테 그 말을 하러 왔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나서서 남우와 반재언을 떨어트리기를 원한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녀가 반재언한테 다가가기 쉬울 테니까.그는 절대로 자신이 찜해 놓은 사윗감을 순순히 정 씨 가문에게 내줄 생각이 없었다.반재언은 자신이 어떻게든 사위로 삼을 거라고 결심한 대상이었다. 아무도 자신한테서 그를 빼앗아 갈 수는 없었다.…데이비 렌지는 어항 앞에서 물고기에게 사료를 주고 있었다. 어항 속에서 앞다투어 사료를 빼앗아 먹으려는 물고기떼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뚱보가 웬 남자를 끌고 안으로 들어오더니, 남자를 데이비 렌지 발아래로 밀어 던졌다.남자가 부들부들 떨며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데이비 렌지가 사료 주머니를 내려놓았다.“안드레 씨, 내가 당신 목숨을 구해줬는데 응당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지 않나요?”안드레가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도대체 제가 어쩌길 원하시는 겁니까?”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데이비 렌지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푸조의 사람들한테서 자신을 구해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데이비 렌지가 바닥에 주저앉은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