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예은이 이를 악물었다.“어머니, 연서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연서를 이렇게 대해서는 안 돼요!”“잘못이 없어?”친모가 피식 냉소를 짓더니 담배 파이프로 진예은의 턱을 들어 올렸다.“그 천한 계집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낳은 자식인데 이렇게나 쓸모없을 수가, 자기 아버지의 총명함을 하나도 물려받지 못했어, 그러니 누구를 탓해.”진예은이 너무 화가 나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오빠를 죽게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제 오빠의 유일한 핏줄까지 사지로 내몰 생각이세요?”“짝!”친모가 진예은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뺨이 반쯤 돌아간 그녀의 모습이 더욱 처량하게 느껴졌다.“그 더러운 입 다물지 못해!”친모의 얼굴이 기괴하게 이그러졌다.“찬이는 한태군이 죽인 거야!”진예은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퉁퉁 부어오른 한쪽 뺨을 신경 쓰지도 않고 웃기 시작했다.“미쳐도 단단히 미치셨네요. 어머니는 말끝마다 한태군이 오빠를 죽였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말을 하면서 자기 위로하는 것뿐이에요.”“버르장머리 없는 년!”친모가 진예은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천한 년이 감히 나한테 대들어?”진예은이 애써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맞아요. 저 천해요. 하지만 이 천한 년은 어머니 뱃속에서 떨어져 나온 혈육이에요. 사랑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요. 굳이 낳아서 저한테 이런 고통을 안겨 줄 바에는, 그때 진작 목 졸라 죽이지 그러셨어요.”그녀의 눈에 가득 차오른 원망은 친모 못지않았다.하루하루 참아낸 증오와 원망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것이다. 그녀는 이런 친모한테서 태어난 것 자체가 후회스러웠다. 이런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이럴 바에는 애초에 태어나지도 말게, 그녀의 뱃속에 있을 때 죽었어야 했다.’그녀는 태어나서부터 한 번도 친모의 따뜻한 눈길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 집안에서 진예은은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녀는 그 집에서 한 번도 따뜻한 애정을 느껴본 적 없었고, 오직 차가운 눈길과 냉대만 받으며 자랐다. 분명 자기 집이지만 입
친모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진예은을 바라보았다.“내가 틀린 말 했니? 반 씨 집안에서 저런 혹이 달린 너를 받아들일 리가 없잖니? 예은아, 사람이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친모가 진예은의 턱을 들어 올렸다.“정신 차려, 네가 그 집안에 들어갔다고 나한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그녀는 진예은의 턱을 으스러뜨릴 듯이 힘을 실었다. 그녀의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네 오빠가 죽었어. 그런데 네까짓 게 감히 행복해지려고 해? 넌, 네 오빠가 살아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낳은 존재일 뿐이야. 얌전히 네 오빠의 디딤돌로 살았으면 얼마나 좋아? 하필 그 한 씨 놈과 한통속이 되어 네 오빠를 죽게 만들고!”친모가 진예은을 뿌리쳤다. 진예은은 바닥에 넘어지며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를 감싸 안았다.친모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난 더 이상 너를 봐줄 생각 없단다. 연서를 살리고 싶으면 네 뱃속의 아이를 죽여.”진예은의 동공이 확장되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뭐라고요…”“네가 반 씨 집안에 들어가는 꼴을 내가 가만히 지켜만 볼 것 같아? 그럴 리가 없잖아.”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진예은을 바라보았다.“애초에 한태군 그놈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지 않았다면, 넌 진작 데이비 씨의 여자가 되어있었어. 내가 그분한테 입은 은혜를 갚을 수가 없으니 너 같은 딸이라도 바쳐야지 않겠니?”진예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당신은 미쳤어!”‘어머니가 자식을 데이비 렌지 그 악마 같은 놈에게 바친다고?’친모가 손짓하자 두 명의 장정이 다가와 진예은을 제압했다. 친모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시선이 표독스럽게 진예은의 배에 꽂혔다.“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조금만 있어. 곧 끝날 테니까.”그녀가 다리를 들고 그녀의 배를 짓밟으려고 했다.진예은이 허우적거리며 저항했다.“그러지 말아요. 안돼!”친모의 발이 그녀의 배에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나타나 그녀를 발로 차버렸다.진예은을 붙잡고 있던 남자들도 어느새 다
진예은은 고개를 들고 반재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분명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어쩐지 멀게 느껴졌다.어쩌면 처음부터 두 사람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자기처럼 이기적인 여자는 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반재신이 고개를 돌려 보디가드에게 말했다.“일단 먼저 아이를 병원으로 옮기세요.”친모가 흠칫 거리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뭐요? 지금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낳은 딸을 살리려고…”“여사님 눈에는 남이 낳은 딸이나, 자기가 직접 낳은 딸이나 똑같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나 보네요. 그렇게 자기 딸이 못마땅합니까? 당신도 누군가에게 귀한 딸이었을 텐데,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죽이지 않고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는데, 왜 당신은 자기 딸을 죽이지 못 해 안달이 나셨습니까?”반재신이 무표정한 얼굴로 친모를 직시했다.친모의 얼굴이 점점 이그러지더니 호흡마저 거칠어졌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반재신이 진예은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여사님의 좋은 날도 오늘부로 끝입니다.”보디가드가 친모를 붙잡자 그녀가 있는 힘껏 발버둥 쳤다.“진예은, 넌 절대 행복해질 수 없어. 한평생 절대 네가 원하는 행복을 누릴 수 없을 거야!”반재신의 품에 안겨있던 진예은이 몸을 흠칫거렸다. 그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끝없는 절망에 빠져버렸다.연서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진예은은 다시 빈해 별장으로 돌아왔다.그가 진예은을 안고 침실로 들어섰다. 그는 오는 길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분위기가 너무 무거워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가 그녀를 내려놓은 순간 진예은이 무의식적으로 그를 잡아당기며 해명했다.“나 연서를 위해 우리 아이를 포기할 생각은 한 번도 한적 없어…”그녀의 머리는 한껏 흐트러져있었고 한쪽 뺨이 퉁퉁 부어있었다. 눈물을 가득 머금은 눈동자는 톡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았다.“하지만 연서를 구하려고 나갔다가 우리 아이를 위험에 빠트린 건 사실이야. 안 그래?”반재신이 새빨개진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처음부터 그녀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딱 한 번,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적이 있었다. 바로 술에 취해 미친 척 일을 저지른 삼 년 전 그날 밤이었다.어쩌면 어머니의 말대로 자신은 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연서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녀는 연서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들 사이에 연서가 껴있는 한 그녀는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어쩌면 이게 가장 좋은 결말일 수도 있었다.그녀가 눈을 꼭 감고 억지로 자기감정을 숨겼다.“반재신, 나 이 아이 낳을 거야.”반재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그녀는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무기력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을 마치자 끝없는 소용돌이 속에 갇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넌 분명 좋은 아빠가 될 거야. 아이도 너와 함께 사는 게 더 행복하겠지.”“진예은!”반재신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녀를 붙잡은 손에 힘이 잔뜩 실리며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멋대로 그런 선택을 해? 그럼 삼 년 전 그날, 왜 날 끌어들였는데. 내 진심을 갖고 노니까 재밌었어?”그에게 붙잡힌 진예은이 무력하게 이불자락만 붙잡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다른 사람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네 고집대로만 행동해? 어떻게 연서를 위해 자기 친자식까지 버릴 생각을 해. 부모 없는 연서가 불쌍하면, 네 뱃속에 있는 아이는? 그 아이도 태어나서 부모 없는 자식으로 크게 할 거야?”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이불자락을 붙잡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순간 숨이 턱하고 막혀 허겁지겁 숨을 들이마셨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도우미 아주머니가 문 앞에서 그를 불렀다.“도련님, 병원에서 연락 왔는데…”반재신이 문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어찌나 사나웠던지 아주머니가 채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그가 진예은을 놓아준 후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반재신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걸 확인한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려 침대 위에
순간 그녀의 뇌리를 번뜩 스치는 생각이 떠올랐다. 창백한 그녀의 얼굴에 비열한 미소가 걸렸다.“도련님, 아주 지독한 속셈을 품고 있나 봅니다. 지금 연서를 죽이고 저한테 뒤집어 씌울 생각인가 봐요?”그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제가 아무리 지독해도 여사님만큼 지독하겠습니까?”친모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가 반 씨 집안사람들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이다.그녀는 한태군이 충분히 지독한 놈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반 씨 가문의 둘째 아들이 자신을 감옥에 보내기 위해 연서를 죽이고 그 죄를 자신한테 뒤집어 씌우려 했다. 문뜩 뭔가를 떠올린 그녀가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진예은 그 천한 년이 연서를 끔찍하게도 아끼잖아요. 그 아이를 위해 자기 뱃속의 아이도 뒤로하는데. 도련님은 진작부터 연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겠죠. 만약 도련님이 연서를 죽이면 진예은은 아마 평생 당신을 미워할 거예요. 하하하.”그는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대답했다.“미워하라고 하세요. 자기 본분도 지키지 않는 여자가 저를 미워한들 또 어떻겠습니까?”친모가 입을 다물었다.반재신이 그녀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태도가 너무나 평온했다.“왜요, 이제 와서 자기 딸이 불쌍해지기라 했습니까?”“내가 그 애를 불쌍히 여긴다고요?”친모가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그녀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왜 그 천한 계집을 불쌍히 여겨야 하는데요. 난 그 애를 낳은 걸 평생 후회할 거예요. 포대기에 싸인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당장이라도 아이의 목을 조를 뻔했죠. 특히 그 애가 나한테 다가오며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볼 때마다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어요.”반재신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친모는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그 애가 커서 어느 정도 태가 나면 우리한테 이득이 될만한 남자한테 시집을 보내는 게 그 애의 유일한 쓰임이었어요. 만약 그때 찬이가
데이비 렌지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사모님, 한태군이 죽은 게 확실합니까?”친모가 우물쭈물했다.“제… 제 눈으로 직접 시체를 확인한 건 아니지만, 제가 흑곰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했었는데 계속 전화기가 꺼져있었어요. 무슨 사달이 난 게 분명해요.”데이비 렌지가 답했다.“흑곰은 분명한 실력자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한태군이 그의 적수가 될 리 없죠. 쳇, 보아하니 그놈이 한태군을 너무 얕보았나 보네요. 흑곰이 희생한 건 어쩔 수 없지만, 한태군은 절대 살아있어서는 안 됩니다.”친모가 물었다.“그러면 이제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데이비 렌지가 답했다.“한태군이 정말로 죽었는지 알아보세요. 25일에 제가 사모님을 스카이섬까지 모셔올 사람을 부둣가에 보내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사모님께 약속했던 일은 무조건 해결할 겁니다. 스카이섬에서 푸조 씨의 지지만 얻게 된다면 영국의 차기 왕은 제가 될 겁니다.”통화가 끝나고 반재신이 이어폰을 뺐다.데이비 렌지의 야심이 이 정도로 컸다니. 그는 황실을 손에 넣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스카이섬이라, 보아하니 한태군이 조사했던 내용이 거짓이 아니었다. 오늘이 20이니 이제 앞으로 5일이 남아있었다.“사람을 시켜 한태군이 죽었다는 소식이 진예은의 어머니한테 전해지게 만드세요. 어떻게든 그녀가 한태군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게 만들어야 합니다. 오일 뒤, 데이비 렌지 쪽 사람이 그녀를 데리러 오면, 바다 위에서 그들의 배를 막으세요. 그리고 데이비 쪽 사람들로 위장해 그녀를 데려갈 겁니다.”데이비 렌지가 외교관으로 위장해 친모를 데려갔던 것처럼, 똑같은 방법으로 독안의 든 쥐를 잡을 것이다.친모를 붙잡아 외교부에 넘긴 후, 외교부에서 직접 그녀를 황실에 넘기게 할 것이다. 데이비 렌지가 별의별 수작을 다 부리며 계획했던 야심은 친모의 손에서 망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그가 스카이섬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영국의 정사에까지 손을 뻗은 걸 들키면, 스카이섬 사람들도 이 문젯거리를 책임질 생각을 못 할 것이다
전유준이 떠난 뒤 다시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소파에 기대앉은 강유이는 네 번째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매만지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그날 밤의 악몽이 사실이라도 되는 것처럼.어색한 침묵을 깨뜨린 건 그녀의 휴대폰 벨 소리다.한태군에게서 걸려 온 전화라고 확신한 그녀가 휴대폰 화면에 반짝이는 민서율의 이름을 본 순간, 입가에 남은 웃음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강유이는 한참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서율 오빠?”한편, 창가 앞에 기대선 민서율은 깃털을 손에 쥐고 조롱 안에 갇힌 앵무새와 놀아주고 있었다. “유이야, 미안해. 우리가 함께 밥만 먹은 것뿐인데 네가 곤란해질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잘 해명할게.” 그의 말에 강유이는 싱긋 웃기만 했다. “네. 해명 기사 잘 부탁할게요.”깃털을 손에 쥔 민서율의 손이 멈칫하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유이는 해명 기사가 빨리 보도되길 바라는 거였어.’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강유이가 물었다. “다른 용건 남았어요?” 민서율은 창밖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어.” 먼저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앵무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유이! 유이!”갑자기 고개를 돌린 민서율은 부드럽게 앵무새의 털은 만지는 것 같더니 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앵무새가 힘겹게 날개를 퍼덕이는 것을 지켜보는 그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유이는 내 사람이 아니야.”민서율이 떠난 방에는 깃털만 창가에 남아있을 뿐이다.빈해 별장에 도착한 강유이를 발견한 가정부는 그녀에게 진예은이 있는 방을 가리켰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진예은은 베란다 의자에 기대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예은의 안색이 창백하게 느껴진 건 뜨거운 햇살 때문일까.“예은아.”강유이의 목소리에 진예은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돌아봤다. “왔어.”그녀의 곁에 다가간 강유이가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며칠
이것이 바로 데이비 렌지가 사람을 지시해 그녀를 데리러 온 목적이다. 진예은의 친모는 그저 그의 손에서 놀아나는 바둑알일 뿐, 그녀의 생사는 이제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데이비 렌지는 이제 한태군의 생사만 확인하면 되니까.보디가드가 한껏 눈살을 찌푸렸다.“수색대가 동강 구역에서 며칠을 수색했지만 한태군 도련님의 행적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폭우와 파도에 흑곰의 시체도 멀리 떠내려갔는데, 혹여 한태군 도련님의...”보디가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앞에서 걷고 있던 반재신이 자리에 멈춰 섰다.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강유이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오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유이야!” 한태군의 생사를 아직 정확히 모르는 그는 아직은 강유이에게 그의 소식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그는 아직도 한태군이 잘 살아 있다고 굳게 확신했기 때문이다. 강유이가 두 사람이 하는 말을 엿듣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반재신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유이야, 오빠가 하는 말...”“오빠, 태군 오빠한테 무슨 일 생긴 거야? 오빠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넋이 나간 채 멍한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모든 사람들이 한태군의 소식을 알고 있었으면서 자신만 속였다는 배신감마저 들었다.반재신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우리도 태군의 생사를 알 수 없어. 하지만 나는 태군이가 살아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너도 태군이를 믿어야 해.”“믿으라고? 어떻게?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는데?”강유이는 지난 밤의 악몽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모두가 나를 속이고 있었어. 만약 내가 오늘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태군 오빠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속였겠지?”그녀의 어깨를 세게 움켜쥔 반재신은 무기력함에 손을 떨구고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한태군이 죽었다면... 강유이는 어떻게든 알게 될 것이다.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