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준이 떠난 뒤 다시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소파에 기대앉은 강유이는 네 번째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매만지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그날 밤의 악몽이 사실이라도 되는 것처럼.어색한 침묵을 깨뜨린 건 그녀의 휴대폰 벨 소리다.한태군에게서 걸려 온 전화라고 확신한 그녀가 휴대폰 화면에 반짝이는 민서율의 이름을 본 순간, 입가에 남은 웃음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강유이는 한참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서율 오빠?”한편, 창가 앞에 기대선 민서율은 깃털을 손에 쥐고 조롱 안에 갇힌 앵무새와 놀아주고 있었다. “유이야, 미안해. 우리가 함께 밥만 먹은 것뿐인데 네가 곤란해질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잘 해명할게.” 그의 말에 강유이는 싱긋 웃기만 했다. “네. 해명 기사 잘 부탁할게요.”깃털을 손에 쥔 민서율의 손이 멈칫하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유이는 해명 기사가 빨리 보도되길 바라는 거였어.’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강유이가 물었다. “다른 용건 남았어요?” 민서율은 창밖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어.” 먼저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앵무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유이! 유이!”갑자기 고개를 돌린 민서율은 부드럽게 앵무새의 털은 만지는 것 같더니 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앵무새가 힘겹게 날개를 퍼덕이는 것을 지켜보는 그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유이는 내 사람이 아니야.”민서율이 떠난 방에는 깃털만 창가에 남아있을 뿐이다.빈해 별장에 도착한 강유이를 발견한 가정부는 그녀에게 진예은이 있는 방을 가리켰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진예은은 베란다 의자에 기대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예은의 안색이 창백하게 느껴진 건 뜨거운 햇살 때문일까.“예은아.”강유이의 목소리에 진예은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돌아봤다. “왔어.”그녀의 곁에 다가간 강유이가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며칠
이것이 바로 데이비 렌지가 사람을 지시해 그녀를 데리러 온 목적이다. 진예은의 친모는 그저 그의 손에서 놀아나는 바둑알일 뿐, 그녀의 생사는 이제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데이비 렌지는 이제 한태군의 생사만 확인하면 되니까.보디가드가 한껏 눈살을 찌푸렸다.“수색대가 동강 구역에서 며칠을 수색했지만 한태군 도련님의 행적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폭우와 파도에 흑곰의 시체도 멀리 떠내려갔는데, 혹여 한태군 도련님의...”보디가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앞에서 걷고 있던 반재신이 자리에 멈춰 섰다.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강유이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오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유이야!” 한태군의 생사를 아직 정확히 모르는 그는 아직은 강유이에게 그의 소식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그는 아직도 한태군이 잘 살아 있다고 굳게 확신했기 때문이다. 강유이가 두 사람이 하는 말을 엿듣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반재신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유이야, 오빠가 하는 말...”“오빠, 태군 오빠한테 무슨 일 생긴 거야? 오빠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넋이 나간 채 멍한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모든 사람들이 한태군의 소식을 알고 있었으면서 자신만 속였다는 배신감마저 들었다.반재신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우리도 태군의 생사를 알 수 없어. 하지만 나는 태군이가 살아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너도 태군이를 믿어야 해.”“믿으라고? 어떻게?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는데?”강유이는 지난 밤의 악몽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모두가 나를 속이고 있었어. 만약 내가 오늘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태군 오빠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속였겠지?”그녀의 어깨를 세게 움켜쥔 반재신은 무기력함에 손을 떨구고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한태군이 죽었다면... 강유이는 어떻게든 알게 될 것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강성연은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태군이는 아직도 못 찾은 거야?”전화기 너머에서는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이 들려왔다.“네.”“됐다, 오늘 내가 유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야겠어. 태군이의 시체든지, 살아 숨 쉬는 사람이든지 찾아서 데리고 와.”말을 마친 강성연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통화를 들은 지윤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아가씨, 한태군 도련님한테 무슨 일 생겼어요?”강성연은 관자놀이를 꾹꾹 문질렀다.“태군이와 유이가 혼인신고를 하고도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요. 데이비 렌지가 아직도 협박을 하는 모양이에요. 태군이는 유이의 안전 때문에 목숨까지 바치며 이렇게 큰일을 벌였네요.”‘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모습은 반지훈과 꼭 닮았네.’강유이를 한태군에게 맡긴 뒤로 강성연은 완전히 시름을 놓았다고 하여도 거짓말이 아니다. 한태군은 강유이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고, 혹여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남은 강유이만 힘들어질 것이다.지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데이비 렌지를 떠올렸다.“데이비 렌지라는 사람에 대해 X의 부하한테서 들은 적 있어요.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사람한테 어떻게든 복수하는 사람이고 그 수법이 너무 잔인해 상대방이 죽기 전에는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어요.”강성연은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지윤 씨는 희승 씨와 M 나라에서 의붓아버지를 모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벌써 돌아왔어요?”그녀의 의붓아버지인 X는 최근 건강이 악화되어 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그를 모신 지윤이 회사를 그만두고 그를 간호하러 M 나라로 떠났다. 희승은 회사와 M 나라를 번갈아 가며 X를 지켰다.3년 전, 아직 국내에 돌아오지 않은 반재신을 대신해 회사를 지켜야 했던 그는 반재신이 회사를 물려받은 후, 완전히 M 나라를 떠나 지윤이를 찾았다.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은 지윤이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스카이섬에 다녀오려고 해요. 이것도 X님의 뜻이죠.”“
유럽의 블렉은 그저 총싸움이나 주먹질, 연장을 사용해 이름을 날린 탓에 많은 시민들이 언제든 참여할 수 있지만, 남씨 가문의 부하들은 힘든 교육을 토대로 의리를 중요시하여 규칙 하나만 어겨도 빈털터리로 쫓겨날 수 있었다.그것이 바로 X가 남강훈과 손을 잡겠다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배 한 척이 홀로 움직이고 있다.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침대에 기대앉은 한태군은 몸에 감은 거즈를 교환하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약 냄새와 피 냄새가 진동했다.“선생님, 깨어나셨어요?”남자는 음식을 테이블 위에 놓고 공손한 자세로 그의 곁에 섰다.“며칠 내내 열이 내리지 않았어요. 이제 좀 괜찮으신 것 같나요?”한태군은 입으로 붕대를 잡고 다친 팔을 감싸며 남자를 흘깃 쳐다봤다.“날 구한 사람이 당신이에요?”“저희 도련님께서 선생님의 목숨을 구하셨습니다.”셔츠를 입은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어느 가문의 도련님이죠?”남자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스카이섬 남씨 가문의 도련님입니다.”남자의 말에 한태군은 조금 놀란 것 같은 표정이다.“저녁 식사는 이곳에 두었습니다. 혹여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언제든 벨을 눌러 주세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방을 나선 남자는 문을 닫고 선상 본실로 향했다. 호텔 스위트룸보다 더 호화로운 본실 소파에 홀로 앉아있는 젊은 남자는 맞춤 정장을 입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남성미가 조금도 없는 남자는 여자처럼 청초한 얼굴에 가녀린 몸을 갖고 있었고, 하얗고 긴 손가락이 찻잔 뚜껑을 스쳤다.“깨어났어?”가라앉은 목소리마저 얇고 가늘었다.남자는 공손하게 그의 앞에 멈춰 섰다. “네. 깨어났습니다.”청초한 남자는 뜨거운 차를 마시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심한 상처를 입고 바다에 떠다니면서까지 죽지 않은 걸 보니 아직 죽을 운명은 아닌가 보네.”“도련님, 저 남자를 왜 구하셨어요?”며칠 전, 순찰하던 사람이 바다에 떠 피투성이 가 된 채 엎드려 있는 사람을 발
“내가 잘못 생각했겠죠.”강성연은 빠르게 젓가락을 식탁 위에 놓았다.“저는 먼저 유이 보러 올라가 볼게요.”침대 위에 무릎을 감싸 안고 앉은 강유이는 커튼도 열지 않고, 불도 켜지 않은 채 멍한 표정으로 있었다. 갑자기 환한 불빛이 그녀의 부은 두 눈을 환하게 밝혔다.강성연은 그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아직도 숨어서 울고 있는 거야?”그녀는 눈을 비비고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숨지 않았어요.”강성연은 그런 그녀의 곁에 걸터앉아 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었다. “언제까지 울 거야? 태군이 아직 죽은 것도 아닌데.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울고 있잖아.”한태군의 이름을 들은 강유이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죽은 것과 다른 점 없잖아요.”“어떻게 다른 점이 없어. 태군이는 지금 행방불명이야.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대로 희망마저 버릴 거야?”그녀의 눈빛이 다시 어둡게 가라앉았다.“희망을 가질수록 실망은 큰 법이에요.”“그래서, 태군이가 죽었다고 믿을래?”강유이는 그저 무릎을 더욱 세게 끌어안고 입술을 깨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한태군의 사망 소식이다. 이 세계에서 도망칠 수 있다면 멀리 도망쳐 그의 사망 소식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강성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옛날에 너의 아빠가 일을 나가고 연락이 되지 않을 때, 나도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보냈어. 지금 네가 느끼는 고통, 엄마도 똑같게 느꼈어.”그녀는 차가운 강유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도 희망은 가져야지. 도망 쳐봤자 아무 소용 없어. 산 사람은 희망을 갖고 살아야 돼.”강유이는 따뜻한 그녀의 품에 파고들며 눈을 감았다. “엄마, 나 태군 오빠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만약 누가 태군 오빠를 구했으면 나한테 연락할 수 있잖아요.”강성연은 그런 강유이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 유이가 하고
남자는 신문을 읽으며 뜨거운 차를 마시고 있었다.그때, 그의 부하로 보이는 남자가 그의 곁에 다가와 허리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르신, 도련님께서 돌아왔습니다.”“응.”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고개를 들자 청초한 모습의 남자가 뒷짐을 지고 걸어들어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영감, 나 보고 싶었어?”중년의 남자는 바로 찻잔의 뚜껑을 닫고 눈살을 찌푸렸다.“그새 아버지라는 단어도 잊어버린 거야?”그의 시선이 뒤에 있는 한태군에게 고정하더니 신문을 흘깃 쳐다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식, 돈을 벌어오라고 보내놨더니 어디서 이상한 사람만 데리고 왔어. 또 나를 괴롭히고 싶은 거야?”한태군은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젊은 남자는 태연하게 남강훈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주물렀다.“아버지, 왜 자꾸 화를 내시는 거예요. 저 남자는 제가 바다에서 주운 사람이에요. 아버지께서 7급 부도를 만드는 것보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아버지의 말을 들은 것뿐이에요.”능청스러운 그의 말에 남강훈은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언제부터 내 말을 잘 들었다고.”남강훈은 한태군을 빤히 쳐다보고 다시 신문의 사진을 바라봤다. 자신의 아들이 바다에서 구한 사람이 이토록 대단한 사람인 줄 몰랐다.“영국 한씨 가문의 사람이에요?”한태군은 그의 앞에 작게 고개를 숙였다. “남강훈 어르신을 뵙겠습니다. 어르신께서 이미 저를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손을 휘휘 저었다. “우리 남우가 당신의 목숨을 살리고 이리 잘 살아 계시니, 내일 사람을 시켜 집으로 보내드리죠.”그의 말에 한태군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죄송합니다, 어르신. 저는 아직 돌아갈 수 없습니다.”남강훈은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잠시 고민을 하더니 몸을 돌렸다. “나를 따르시게.”한태군은 그의 뒤를 따라 함께 저택으로 들어갔다. 남우가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볼 때, 집사가 그의 곁에 와 걱정스
데이비 렌지 아버지 세대의 백제파는 완전히 뒤집혔을 것이다. 게다가 데이비 렌지는 돈에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고 세력을 더욱 중요시했으며 귀족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 많은 돈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하세계의 유흥업소도 번창하지 않을 것이고 백제파는 그의 돈만 노렸을 것이다.백제파의 도움과 렌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동남아로 도망 온 그는 바로 신분을 노출하고 지낼 곳부터 마련해야 했다.그가 동남아에서 꼼짝하지 않으면 경찰도 그를 체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태군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도와주지 않으셨어요?”남강훈은 찻잔을 내려놓았다.“내가 렌지를 도와준 건, 그가 돈에 눈이 멀었고 사람을 해치지 않은 이유 때문이죠. 그의 아들인 데이비 렌지가 얼마나 난폭한지 이미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어요. 내 곁에 두면 그건 시한폭탄을 곁에 두는 것과 마찬가지죠.”“저는 태군 씨도 곁에 둘 생각 없어요.” 남강훈은 망설이더니 그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나는 이미 태군 씨의 신분을 알아 버렸고, 데이비 렌지가 감옥에 들어간 것도 태군 씨 때문이죠.”요. 하나의 왕좌에 데이비 렌지가 한태군 때문에 감옥에 들어간 건 비밀이 아니다. 영국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남강훈이 모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한태군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제가 귀찮은 일을 만들까 봐 그러는 거예요?”그는 바로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귀찮은 일이 싫지는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아요.”그의 맞은편에 앉은 한태군은 빈 찻잔을 손에 쥐고 물끄러미 쳐다봤다.“어르신과 푸조 사이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나 사실 허리춤에 칼을 숨기고 있잖아요. 두 명의 왕을 어떻게 용납하겠어요.”남강훈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한태군을 똑바로 바라봤다.한태군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그와 신경전을 벌였다.한참 후, 남강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음을 터뜨렸다.“한태군 씨, 역시 소문대로 날카롭네요. 방금 우리 스카이섬의 땅을 밟고 내막을 다 조사했으니.”
그녀의 대답을 들은 남자는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타시죠. 15분 후에 배가 출발할 겁니다.”기쁜 표정으로 유람선에 몸을 실은 진예은 친모를 객실로 안배한 남자가 말했다.“사모님, 죄송합니다. 휴대폰을 저한테 보관해 주셔야 합니다.”진예은 친모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왜죠?”“대표님께서 사모님 휴대폰에 위치 추적 앱으로 자신의 위치를 들킬 까 염려되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전원을 꺼두시고 우리가 보관하게 지시했습니다.”진예은 친모는 머뭇거렸지만 데이비 렌지의 철저한 성격을 잘 알고 있어 휴대폰 전원을 끄고 남자에게 건넸다. 유람선이 항구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진예은 친모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방 문을 열고 갑판 위로 올라온 그녀는 남자 두 명이 담배를 태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발견했다. 두 남자는 그녀를 객실로 안내한 사람이 아니라 동양인으로 보였다. 데이비 렌지 주위에 동양인이 없는 것을 기억한 그녀가 유람선을 의심하며 뒷걸음질칠 때, 뒤에 있는 누군가와 부딪쳤다. 깜짝 놀란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갑판 위의 층계에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진예은 친모는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누... 누구...”“여사님, 우리가 누군지 벌써 잊은 거예요?”갑판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높은 곳에 서 있는 사람의 뒷모습은 빛을 거슬러 윤곽이 흐려졌고, 계단을 내려올 때, 바닷바람에 셔츠가 휘날렸다.남자를 빤히 쳐다본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입을 막았다.“당신! 당신이 어떻게...”‘어떻게 이럴 수 있어!’경호원 앞으로 다가온 반재신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쳐다봤다.“이상하지 않아요? 내가 어떻게 데이비 렌지가 여사님을 데리러 오는 줄 알았을까요?”“당신... 나를 미행한 거예요?”진예은 친모는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나를 살려주겠다고 했잖아요!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예요.”반재신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먼저 약속을 어긴 건 여사님이잖아요. 저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