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서함은 강유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을 줄 몰랐던 사람처럼 멈칫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재신 씨처럼 우수한 사람을 안 좋아하기는 조금 힘들 것 같은데요.""저희 오빠랑 꽤 오래 알고 지낸 건가요?"강유이는 반재신에게 이런 친구가 있는 줄도 몰랐다."최근에 알게 됐어요. 저희 아버지께서 제가 운경그룹을 인수해 줬으면 해서 지금 저를 데리고 가르치고 있거든요."하서함의 말을 들은 강유이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주차장에 도착한 반재신은 마침 주계진이 차를 빼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가지색의 스포츠카는 유난히 눈에 잘 띄었다.주계진이 차를 빼내자 반재신이 빠르게 그의 차 옆으로 다가가 차창을 두드렸다."무슨 일 있으신가요?"주계진이 차창을 내리고 반재신을 보며 물었다.반재신은 열린 차창 너머로 안을 들여다봤지만 차 안에는 주계진 혼자였다."사람 데려다 드린다고 하지 않았나요?""내려와 보니 벌써 가버렸더라고요."주계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주계진이 나왔을 때, 진예은은 이미 택시를 타고 떠난 뒤였다.굳어있던 반재신의 얼굴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아무 일도 아닙니다."그 말을 들은 주계진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고작 이걸 묻자고 자신을 찾아온 거라니.한편, 호텔에 도착한 진예은은 직원에게 종이와 딱풀을 달라고 한 뒤, 방으로 돌아가 종이 위에 글을 써서 그 종이를 붙이곤 문을 쾅 닫았다.그리고 짐을 정리하더니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반재신이 진예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반재신은 그녀가 물건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호텔에 도착한 반재신이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사이, 그의 비서가 하서함을 만났다고 전해왔다."먼저 데려다 드리세요, 제가 지금 일이 좀 있어서."반재신이 전화를 끊고 룸 앞에 도착했을 때, 문에 붙어있는 종이를 보게 되었다. 그 위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강아지랑 반재신 출입 금지]A4용지를 가득 채운 글씨를 확인한 반재신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종이를 떼어냈다
"너랑 자는 거, 그걸로는 부족해?"진예은이 반재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너는 너를 그렇게 보고 있던 거였구나."그는 진예은을 파트너로 삼을 생각이 없었다. 정말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강유이의 비서로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예은이 보기에 반재신의 행동은 자신을 그의 파트너로 삼겠다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중요해? 그럼 너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건데?"진예은이 반재신의 손을 뿌리치며 물었다. 하지만 반재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침묵이 길어지려고 할 때쯤, 반재신이 먼저 한걸음 물러서더니 태도를 낮춰 물었다."지낼 곳은 찾은 거야?"순순히 물러나는 반재신을 본 진예은이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 "아직 못 찾았어, 일단 잠시 동안 여기서 지낼 거야.""나 요즘 바빠서 못 올 것 같아. 필요한 거 있으면 프런트에 말해, 나 찾아도 되고."반재신이 강유이의 손에 들린 가방을 가져오며 말했다.진예은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었다.그동안 반재신은 진예은에게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었다. 그저 자신이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갔다.그런데 진예은이 반재신의 체면도 봐주지 않고 난리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참아주고 있었다."그리고."말을 하던 반재신이 진예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주계진이랑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반재신은 주계진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물건을 물 들이려고 하는 눈빛이 그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다.하지만 진예은은 그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이틀 뒤, 서자천과 호민은 인터넷에서 격렬하게 싸웠다, 두 사람은 철저하게 서로에게서 등을 돌렸다. 호민은 SNS에 서자천이 오래전부터 자신에게 불순한 의도를 품고 집적거렸다고 암시하는 글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메시지까지 공개했다.서자천은 위선적인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데다가 호민이 공개한 메
"태군 씨 약혼녀라고 하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죠?"회장님이 약간 놀란 얼굴로 물었다."TY 엔터의 무비 퀸이 제 약혼녀입니다."회장님은 그제야 알게 된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회장님의 사무실에서 나온 한태군은 곧바로 강유이의 작업실로 향했다.작업실에는 탈의실, 메이크업을 하는 곳, 그리고 촬영 세트장까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강유이와 관련된 잡지와 개인 포스터가 걸려있었다."주계진 씨, 제발 좀 진지하게 할 수는 없어요?"작업실 안에서 강유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안으로 들어서려던 한태군이 작업실을 들여다보니 강유이가 양반다리를 하고 소파 위에 앉아 대본을 들고 있었다.강유이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여유로운 얼굴이었다."그렇게 진지할 필요 있어요? 아직 며칠 더 있잖아요, 걱정하지 마요. 그전까지 꼭 다 익혀 올 테니까.""당신이 하는 그 개소리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요.""그런데 오늘 예은 씨는 왜 여기 없는 거예요?"주계진이 말을 돌리며 물었다."예은이 쫓아다니려고 하는 거예요?""그런 생각이 조금은 있어요."주계진이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안 돼요, 당신 예은이랑 전혀 안 어울리니까.""왜 안 어울린다는 겁니까? 저 잘생겼잖아요."주계진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강유이가 그를 훑어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잘생긴 걸로 치면 우리 오빠들이랑 제 약혼남이 주계진 씨보다 훨씬 더 잘생겼어요."강유이의 말에 주계진은 할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때 문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태군 오빠?"그 소리를 들은 강유이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한태군을 불렀다.주계진도 고개를 돌리고 봤지만 문 앞의 이는 그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연예인 인줄로만 알았다.그런데 자기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라니!"내가 두 사람 방해한 거야?"한태군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아니야, 그냥 대본 보면서 합 맞춰보고 있었어."강유이는 혹시나 한태군이 오해를 할까 봐 그의 앞으로 다가가 설명
"이제 곧 알게 될 거야."한태군이 강유이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간지러운 그의 숨에 강유이의 귀가 빨개졌다.한태군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며칠 만에 보는 거라 아쉬움이 가득한 강유이와 달리 한태군은 미련 없이 떠났다.진예은이 돌아온 뒤, 강유이는 한태군이 했던 말을 그녀에게 말해줬다."태군 오빠 설마 이제 나 안 좋아하는 거 아니겠지? 이제 질린 건가?"커피를 마시던 진예은이 그 말을 듣더니 웃었다."유이 너 한태군한테 완전 꽉 잡혔구나.""…그런 거 아니야."강유이가 작은 목소리로 반박했다."인정해, 한태군은 강태공이고 너는 물고기야. 너 이제 한태군한테 잡아먹힐 일만 남은 거라고."한태군은 확실히 사람을 잘 홀렸다. 관건적인 건 사람을 홀리는 수단이 다양했다는 것이었다.만약 그가 나쁜 남자였다면 어장관리를 기가 막히게 잘했을 것이라고 강유이는 생각했다. 사람을 홀릴 때에는 정도를 잘 지키고 있다가 이제 걸려들 때쯤, 다시 일부러 사람을 애 태우기 일쑤였으니 그 어느 여자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사람을 붙잡고 늘어지기 좋아하지 않는 강유이도 한태군 덕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사실 한태군은 일부러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뜻을 강유이도 어느 만큼 보아낼 수 있었다.그는 강유이가 조금 더 주동적으로 굴고 자신을 더 필요로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한태군이 강유이와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서울에 온 지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강유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강유이가 주동적으로 결혼 얘기를 꺼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너네 둘째 오빠도 한태군 같은 EQ랑 수단이 있었다면 욕까지 먹진 않았을 텐데."진예은이 중얼거렸지만 강유이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우리 둘째 오빠가 뭐?""아니야, 그런데 유성 엔터에서 호민의 활동을 금지하기로 했다던데. 촬영에서도 곧 쫓겨날 예정이래, 호민 역할 이제 윤수아가 맡는대.""이렇게
대단한 인물이 새 회사라는 이름을 걸고 차린 새 회사는 아무것도 없이 새 회사에 비해 걱정해야 할 것이 없었다."그런데 저희 넥스 그룹의 대표님이 누구인지도 모르잖아요. 이렇게 신비하게 구는 걸 보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까요?" "넥스 그룹 뒤에 대형회사가 얼마나 많은데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반재신이 서류를 훑어보며 말했다."대표님이 일부러 신분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뭐 얼마나 오래 갈 수 있겠어요." 양 비서도 나름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사무실을 나서려고 할 때, 반재신이 갑자기 그를 불렀다."양 비서님, 잠깐만요.""대표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요즘 괜찮은 별장 있는지 좀 알아봐 줘요.""대표님 별장 사시려고요?"비서가 물었지만 반재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비서는 자신이 쓸데없는 질문을 했음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비서가 금방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하서함이 걸어 내려왔다.그녀를 보고서야 비서는 2시간 전, 하서함이 예약을 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안녕하세요, 하서함 씨."그가 정중하게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자 하서함도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재신 씨 사무실에 있죠?"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데리고 반재신의 사무실 앞으로 가 노크를 했다.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하서함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제가 방해한 거 아니죠?"비서가 문을 닫고 사무실을 나서자 반재신이 서류를 내려놓았다."하서함 씨가 일이 있어서 저를 찾아온 건데 어떻게 방해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날은 제가 일이 있어서 그렇게 가버린 거라 하서함 씨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네요."반재신이 예의를 차려 말했다."재신 씨가 일이 있다고 했으니 저도 당연히 이해하죠.""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그날 저랑 얘기를 하시려고 찾아오신 거죠?"반재신은 하 회장님의 소개를 받고 하서함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딸이 경운그룹을 인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반재신
하서함의 말을 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웃었다."그럼 거기에서 잘 배우도록 해, 네가 익숙해진 뒤에 정식으로 경운그룹을 맡게 할 테니까.""네, 아버지. 재신 씨 소개시켜준 거 너무 감사해요, 저 재신 씨 너무 마음에 들어요."하서함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지막 말을 하는 그녀의 말투에 부끄러움이 담겨있었다."마음에 든다고? 우리 서함이도 이제 컸으니 결혼을 고민할 나이가 되긴 했지. 그럼 내가 시간을 찾아서 LY랑 얘기해 보마."하 회장이 자기 딸의 뜻을 알아차리고 말했다."감사합니다, 아버지."하서함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촬영장.윤수아가 강유이의 옆에 앉아 그녀에게 연기 방면의 경험을 묻고 있었다.강유이를 싫어했던 예전과는 달리 강유이의 옆에 딱 붙어있는 모습을 보면 아예 다른 사람 같기도 했다."유이 씨 덕분에 호민 역할을 이렇게 거저 얻어먹게 되었어요."윤수아도 서자천과 호민의 싸움을 눈여겨보고 있었다.유성 엔터에서 서자천을 남겨뒀지만 그가 저지른 행동 때문에 향후의 사업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호민도 마찬가지였다, 설사 계약을 해지한다고 해도 다른 회사에서 그녀를 가질지도 미지수였다.대단한 배경을 가지지 않고서는 다른 회사와 계약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그럼 기회 잘 잡으셔야 하겠네요."강유이가 윤수아를 보며 말했다."네, 저 열심히 해서 이 기회 꼭 잡을 거예요."윤수아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때 마침 진예은이 커피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제 몫도 있나요?"윤수아가 묻자 강유이가 커피를 그녀에게 건네줬다."유이 씨, 제가 사랑해요."커피를 건네주는 강유이를 본 윤수아가 말했다. 곧 그녀를 부르는 스탭의 목소리가 들렸고 윤수아는 얼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일어섰다."네, 지금 가요. 유이 씨, 저 촬영 갔다 올게요."윤수아의 모습을 본 강유이가 불현듯 웃음을 터뜨렸다."왜 웃어?"진예은이 강유이를 보며 물었다."수아 씨 열심히 하는 모습 나 닮은 것 같아서
"엄마한테 소개해 주겠다고 하더니 너 다 잊고 있었지."강성연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진예은을 보며 말했다.강유이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얼른 진예은을 데리고 강성연의 앞으로 갔다."엄마, 내가 소개해 주겠다고 했던 예은이.""안녕하세요."진예은이 조금 어색한 모습으로 강성연에게 인사를 건넸다."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제가 사람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유이가 영국에 있을 때, 예은 씨 얘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우리 유이 많이 도와줬다고 해서 만나보고 싶었어요."강성연이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진예은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큰일도 아닌데요 뭐, 이런 말 들을 정도 아니에요.""저한테는 작은 일 아니에요."그 말을 들은 진예은이 강성연을 바라봤다."유이 혼자 나가본 적도 없고 집에서 너무 오냐오냐해서 사실 오빠랑 같이 해외로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걱정 많이 했어요. 혹여나 또 리사 때처럼 다른 사람한테 이용당할까 봐. 그런데 예은 씨가 영국에서 유이 많이 도와주고 진심으로 대해줬다는 얘기를 들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유이가 먼저 저한테 잘해주고 도와준 거예요.""엄마, 이제 제 안목 믿을 수 있겠죠?"강유이가 강성연에게 팔짱을 끼며 물었다."이런 친구가 서울에 왔는데 집에 데리고 와서 밥도 한 끼 먹을 생각 안 하고.""그건 예은이가 좀 멋쩍어해서 그런 거죠. 어디 누가 다 둘째 오빠 같은가요?""지금 재신이 욕하는 거야?""원래 그렇잖아요. 제가 예은이랑 주계진이랑 밥을 먹고 있었는데 오빠가 물어보지도 않고 하서함 씨 데리고 합석한 거 있죠, 뻔뻔하게."강유이는 그날만 생각하면 진예은에게 미안해졌다. 진예은이 반재신 때문에 화가 나 먼저 자리를 떠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하서함 씨가 누구야?"강유이의 말을 들은 강성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하 회장님 딸이라고 하던데요.""하 회장님 딸, 재신이 이 자식이 언제 하 회장 딸이랑 그렇게 친해졌대."하서함은 하 회장의 딸이었으니 자신의 아들과 친한 것
반재신이 평소 어떤 모습인지 강성연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일부러 진예은을 화나게 했을 리가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반재신은 리사를 무척 싫어했었지만 그때는 말은커녕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그로부터 알 수 있다시피 반재신은 싫어하는 사람은 아예 무시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반재신과 티격태격할 수 있는 이는 달랐다.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강성연을 보니 진예은은 더욱 난감해졌다.그녀는 이미 반재신과 애매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일들을 반 씨 집안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강유이는 진예은을 생각해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지만 반씨 집안사람들이 보기에 그녀가 강유이에게 고자질을 부추긴 걸로 보이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었다.반재신은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고 진예은은 생각했다.하지만 이런 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았다.그녀는 이 일을 계기로 애매하던 반재신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그 일을 마음속의 비밀로 묻어두기로 했다."예은 씨, 시간 있을 때 유이랑 같이 밥 먹으러 와요. 아는 사람도 없는 서울까지 와서 유이랑 같이 있어 주는데 같이 오면 외롭지 않잖아요.""네, 사모님. 다음에 시간 날 때 들르겠습니다.""그래요, 예은 씨 시간 될 때 보죠."강성연은 진예은을 강요하지 않았다.저녁, 반씨 저택.반지훈과 반준성은 군오로 가 며칠 지나야 올 수 있었다. 반재신이 집에 도착했을 때, 강성연과 강유이는 이미 저녁을 먹고 있었다."오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강유이가 묻자 외투를 벗어 집사에게 건넨 반재신이 손을 씻고 식탁 앞에 앉았다."일 없길래 일찍 왔지.""나 오늘 촬영장에 유이 보러 갔다 왔어."그 말을 들은 반재신이 강유이를 바라봤다. 강성연이 촬영장으로 갔다면 분명 진예은을 만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반재신과 눈이 마주친 강유이가 그를 향해 얄밉게 혀를 내밀었다."예은이 불러서 밥이라도 한 끼 같이 하려고 했는데 예은이가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더라고."강성연이 강유이에게 음식을 집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