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연은 웃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았다.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그녀는 그의 마음을 속속들이 꿰뚫어보고 있었다.그는 말로는 부정했지만, 사실 한태군을 제외하고 더 좋은 사위를 고르지도 못했다.한태군은 우수한 남자였다. 능력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으니 그런 사위를 놓치면 다른 집 자식들 좋은 노릇을 하게 될 게 분명했다.미리 손을 써 두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어느새 밤의 장막이 드리워졌다. 번화한 도시가 어느새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가득 찼다.화려한 조명이 가득한 골드 룸살롱에는 끊임없이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VIP 룸에서 반재신과 외국 투자자들이 사업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AM 그룹은 업무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 건축업, 여행, 호텔과 레스토랑, 과학기술 연구 등등… 금융계의 거물이 될 정도니 절대 만만하게 생각할 그룹이 아니었다.때문에 AM 그룹과 합작하는 건 상대방에게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특히 반재신이 3D 입체 투영 기술에 흥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자 더욱 주동적으로 다가갔다.사업 이야기를 마친 후 비서가 상대방을 밖에까지 모셔다 준 후 다시 룸으로 돌아왔다.“대표님, 반씨 저택으로 돌아가실 건가요?”반재신이 눈을 감았다.“아닙니다.”그가 술잔을 내려놓더니 외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호텔로 가죠.”비서가 차를 가지러 먼저 나갔다.반재신이 업소 밖으로 나오자 비서가 차를 몰고 반재신 앞에 멈춰 섰다.그가 차 문을 열고 올라타자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는 곧게 앞으로 나아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그와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차 안에 한태군이 다리를 꼰 채 그 위에 노트북을 얹어 놓고 있었다. 화면에는 마침 3D 입체 투영 기술 계획안이 펼쳐져 있었다.그가 왼쪽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은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상대방이 뭐라 말을 하자 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수고했어요.”통화를 마친 후 전유준이 백미러를 통해 그를 바라보았다.“왜 직접 반재신 대표님과 사업 이야기를
그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겉옷을 벗었다. 그리고 샤워하러 들어갔다.진예은은 딱딱한 침대에 앉아 입술을 깨물었다. 귓가에 들리는 샤워 소리에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그녀를 미워하는 그의 마음은 아직 여전한 것 같다.그럼 3년 전 그녀에게 목걸이를 선물하며 입을 맞춘 건 무슨 의미였을까?샤워를 마친 반재신이 샤워가운을 입고 나타났다. 따뜻한 온기가 그를 감싸고 있었고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그는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말리면서 진예은을 바라봤다.침대에 걸터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억울하다고?허, 그저 그러는 척 보여주는 거겠지.그는 수건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다가가 침대 옆에 우뚝 섰다.“샤워 안 해?”정신을 차린 그녀는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대답했다.“안 해.”“더러워.”“더러우면...”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이 위로 붕 떴다. 반재신이 그녀를 안고 욕실로 향하고 있었다.진예은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안 한다고 했잖아. 당장 내려놔!”“풍덩!”그녀의 몸이 따뜻한 물로 채워진 욕조로 들어갔다. 흠뻑 젖어버린 그녀, 새빨간 입술과 창백한 얼굴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그의 눈빛이 한결 깊어졌다. 몸을 내린 그는 예고도 없이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겨우 입을 열었다.“얘기 좀 해.”반재신이 그녀의 어깨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며 물었다.“무슨 얘기?”그녀는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책임지라고 하지 않을 거니까 오늘이 지나면 그냥 없었던 일로 하는 게 어때?”그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더니 그녀의 볼을 스치며 말했다.“내가 책임지려고 너를 불렀다고 생각해?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그러면 왜 부른 건데?”그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목을 지분거렸다. 그 덕에 욕조속의 물이 사방으로 넘쳤다.“책임지려는 게 아니고 몇 번 놀다 질리면 버릴 거야. 그러니까 진예은,
그는 팔짱을 끼고서 말했다.“대본 그까짓 거 외우면 되는 거죠. 쉬워요.”강유이는 화장을 다 하고서 대본을 들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그럼 대사 한 번 맞춰보죠?”“굳이요?”강유이는 대본으로 그를 때렸다.“오늘 우리가 함께 합을 맞추는 신을 촬영하잖아요. 이 대사 살리지 못하면 죽도록 때릴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그는 피하면서 히죽 웃었다.“네, 네! 대사 맞춰보는 건 어렵지 않죠. 특히나 저같이 훌륭한 배우는요.”15분 후.강유이는 과장되고 심지어 발연기 의혹이 들 정도로 연기를 못하는 주계진을 향해 대본을 뿌렸다.“이봐요! 대본 읽어본 거 맞아요?”주계진은 대본을 들고 이리저리 피했다.“때리지 마요! 저는 기억력이 안 좋아서 대사를 잘 잊어버려요.”그는 그녀를 피해 입구 쪽으로 달아가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다.그와 부딪힌 건 진예은이었는데 그녀는 뒷걸음질 쳤고 하마터면 복도에 놓인 도구 상자에 맞힐 뻔했다.주계진은 제꺽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조심해요!”강유이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달려 나왔는데 주계진과 진예은 두 사람이 함께 도구 상자 앞에 넘어진 것을 발견했다.진예은은 넘어졌지만 아프지 않았다. 주계진이 그녀의 아래에서 그녀 대신 충격을 흡수했던 것이다.쌓여있던 도구 상자가 흔들리면서 떨어질 것 같았다.진예은은 재빨리 손으로 떨어지려 하는 상자를 밀어 넣고는 주계진을 쳐다보았다.“저기… 괜찮으세요?”주계진은 그 자리에 굳었다.그의 앞에 서있는 청순한 외모와 분위기를 띤 이 여자는 그의 이상형이었기 때문이다.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절대 믿지 않았었던 그는 오늘 그 말을 믿게 되었다.강유이는 제꺽 달려와 진예은을 일으켜 세웠다.“예은아, 괜찮아?”“난 괜찮은데 이 분이…”주계진은 그제야 일어서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저도 괜찮아요.”진예은은 고개를 끄덕였다.“괜찮다니 다행이네요.”강유이는 주계진이 진예은한테서 눈을 떼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진예은을 자신의 뒤로
그리고 주계진 덕분에 이 극을 맡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남신이 강유이 앞에서는 아부쟁이가 되어 버렸다.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매니저가 그녀의 이상함을 보고 물었다. "호민 언니, 왜 그래요? ""강유이가 무비 퀸 하나 받고 너무 거만해진 것 같아. 내 남신도 그녀 뒤에 쫄쫄 따라다니고 말이야. 반씨 가문의 딸만 아니었다면 누가 그녀를 봐주겠어? "호민은 화가 나서 대본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매니저도 어쩔 수 없었다. "강유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많은 것을 누리고 태어났어요. 우리와는 비교가 안되죠. 게다가 주계진과 강유이 모두 상류층이어서 같이 노는 것도 당연한 거죠. "호민은 그를 째려보았다. "그래서 강유이와 내 남신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매니저가 얼른 손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 뜻은 아니에요. "호민은 "흥" 하며 시선을 그들 쪽으로 돌렸다. "강유이, 기다려.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지금, 하느님은 그녀를 돕는 것 같았다. 그녀는 주계진이 커피 주문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직원이 커피를 촬영장에 있는 주계진의 접이식 의자 옆에 놓고 떠났다.호민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눈이 반짝였다.분명 강유이에게 사줬을 것이다. 정말 하늘이 그녀를 돕는 것 같았다.제작진은 곧 촬영을 시작한다. 오늘의 신은 강유이가 연기한 여주와 서브 남주가 다방에서 자객을 만나는 신이다.이 극은 권모술수 드라마이다. 남녀 주인공은 신분 설정 때문에 감정 연기가 상당히 은밀하고 키스신도 거의 없다.남주는 여주를 입양한 킬러 조직 보스이자 현재 왕조를 뒤엎으려고 밀모하고 있는 전 왕조의 황태자이다. 여주의 명의상의 '의부'로 여주에게 무술을 가르치고 또 여주를 이용해 권세자에게 접근하여 기밀을 얻기도 했다. 그러다 나중에 여주에게 감정이 생기는 모순되고 복잡한 캐릭터이다.반면, 서브 남주는 운성 귀족의 아들이다. 방탕하지만 의리를 지키는 여주와 고난을 같이 겪은 사이이고 둘은 친구이다.원작에서 여주와 서브
한편, 호민은 의기양양하게 현장에 와서 강유이가 진도를 끌어 혼나는 모습을 보려고 했다.그러나 강유이는 다른 신을 찍고 있었고 주계진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을 보고 그는 기분이 나빴다.호민은 급히 스태프들에게 물었다. "강유이와 주계진의 신이 아닌가요? 왜 주계진이 안 보여요? "스태프가 대답했다. "주 도련님 설사를 해서 잠시 쉬고 있어요. "설마……호민은 그 제자리에 멍하니 굳어 버렸다. 발밑이 허전했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 설마 설사약을 넣은 커피를 강유이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마시려는 것이었나?그녀는 강유이가 마실 줄 알고 일부러 양을 많이 넣었다.괘씸하다.모두 강유이 탓이다!강유이는 촬영을 마치고 진예은과 함께 대기실에 주계진을 보러 갔다. 주계진은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배에선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났다. "오늘의 커피에 문제 있어요. "강유이가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커피요? "그는 주계진이 진예은에게 커피를 사줬는데 진예은이 마시지 않아 주계진이 마셨다는 것을 떠올렸다.진예은이 물었다. "저에게 준 그 커피요? "그 커피는 원래 주계진이 그녀에게 사준 것이었다. 그러나 주계진과 친하지 않아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의 커피를 마시는 것이 좀 그래서 그녀는 거절했다.주계진이 억지로 웃음을 지어내며 말했다. "다행이에요. 예은 씨가 마시지 않아서. 아님……"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또다시 숨을 참았다. "안 되겠어요! "그는 또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강유이도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촬영을 못 할 것 같네요. 제가 설사약을 좀 가져다줄게요. "같은 회사의 연예인이고 선배이기도 해서 그가 보살펴주는 것도 당연하다.그녀는 일어나서 휴게실을 떠났다.진예은은 이때 문자를 하나를 받았다. 그녀는 반재신의 이름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강유이의 신이 끝났을 때는 오후 5시였다. 강유이와 진예은이 촬영장에서 나오자 차 앞에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반재신을 보았다.진예은은 그를 보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꺼져요.”정원에서 강유이는 그의 손을 놓고는 몸을 돌렸다."온다고 미리 나한테 말도 안 해주고."한태군은 그녀의 늘어진 머리카락을 귓가로 넘겨주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렇게 어디 내놓지 못할 정도야?"“당연히 그건 아니지.”그녀가 해명하며 말했다."만약 내가 없는데 우리 아빠가 오빠를 난처하게 하면 어떡하려고."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시선을 내리며 더 깊은 웃음을 지었다."내가 난처함을 무서워할 사람으로 보여."강유이는 고개를 저었다."오빤 얼굴이 두껍지."그는 웃음을 터뜨렸다."알면 됐어."석양이 정원의 초목들 위로 드리워져 마치 한 폭의 유화 같았다. 지나가는 도우미가 정자 안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마치 하늘과 땅이 이어준 한 쌍처럼 아름다운 경치보다 예뻤다.강유이는 고개를 돌려 한태군에게 눈을 돌렸다. 분명히 본 지 3년밖에 안 지났지만, 그가 점점 더 눈부셔진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여자보다 예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렇게 우수하기까지, 관건은 유혹도 잘하는 데다 부드럽기까지 하니, 어떤 여자라도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겠지?그녀는 연예계에서 이렇게 오래 있으면서 많은 남자 연예인을 봐왔지만, 한태군같이 잘 생긴 사람이 정말 없었다.그가 데뷔한다면 비주얼 계의 원 탑이라고 할 수 있다.한태군은 머리를 갸웃거리고 그녀를 바라보았고, 옅은 눈동자에 웃음이 흘렀다."예뻐?"그녀는 무의식 중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나는 오빠 이 얼굴이 데뷔하면 틀림없이 탑 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그래."한태군은 몸을 기울며 그녀에게 절반 가까이 다가갔다. "유이는 내가 데뷔하기를 바라?"그녀는 말문이 막혔다."그냥 말해 본 거야."그가 만약 데뷔해서 사람들을 반하게 만든다면 정말 큰 일이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연적을 상대해야 할까?그의 얼굴에 비친 희미한 눈동자가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캐치하고는 눈가에 웃음을 흘렸다."난 데뷔하지 않을 거야. 왜
한태군은 나른하게 벽에 기대어 말했다."반씨 둘째 도련님 어쩌다 이렇게 늦게 돌아왔어."반재신은 멈칫하더니 표정이 담담해졌다."너 아직 안 갔어?"그는 웃었다."자고 갈 건데."그의 시선은 반재신의 비뚤어진 넥타이와 옷깃에 남은 보일 듯 말 듯한 물린 자국으로 향했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반씨 둘째 도련님과 우리 사촌 동생이 아주 빠르게 발전하고 있네."반재신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한태군은 그의 옆을 지나 뒤에 멈추고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너 진심이야?""너와 상관없어."반재신은 방으로 향해 걸어갔다.한태군은 머리를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더니 실눈을 떴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다음날, 제작팀.주계진은 약을 먹고 하룻밤을 쉬고서야 겨우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그는 트레일러 옆에 앉아 건성으로 대본을 읽으며 사람들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호민은 정교한 도시락통을 들고 그의 앞에 와서 살짝 웃으며 말했다."주 선배님, 점심 드셨어요?"주계진은 잠시 눈을 찡그리더니 말했다."누구?"호민은 난처해하며 대답했다."선배님, 저를 잊었나요? 저는 호민이에요. 우리 예능에서 짝을 이룬 적이 있어요."그는 겨우 생각났다."아, 당신이군요, 무슨 일 있어요?"그녀는 수줍게 고개를 떨구고, 손에 든 도시락 통을 꼭 쥐었다."점심을 드셨는지 여쭤보고 싶은데, 괜찮으시다면 저랑…""유이 씨, 여기요!"주계진은 누군가를 보고 눈앞이 번쩍 뜨이더니 일어서서 손을 흔들었고, 호민의 못다 한 말도 끊었다.한쪽에 내팽개쳐진 호민은 어색하고 달갑지 않아 보였다.강유이가 그에게 다가왔다."아, 회복된 것 같네요.""그럼요. 어제 거의 반 죽을 뻔했잖아요. 다행히 몸이 튼튼해요. 어젯밤 플랫폼에서 그 카페에 비추천을 백 개나 줬어요. 정말 화가 나 죽겠어요."어제의 상황을 생각하니 주계진은 짜증이 났다. 그 한 잔이 커피콩으로 된 게 아닌 것 같았다.그는 좋아하는
호민의 안색이 미묘하게 어두워졌다. 벌써 이런 관계라고?강유이가 주계진을 힐끗 쳐다본다.“뭘 또 그리 잘난체해요, 언젠가 임석진 매니저님께 남우주연상이라도 가져다드린대요?”그는 머리를 홱 돌렸다.“전 남우주연상에는 관심 없어요, 그냥 대충 살고 싶은 것뿐이지.” 강유이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간다.“계진 씨 정말 이렇게 쓰레기처럼 사는데 중독이라도 된 거예요?”“강유이 씨, 계진 선배한테 쓰레기라니요.”호민이 부드럽게 말하며 그의 편을 들었다.“재능이 없는 건 계진 선배 탓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계진 선배는 이미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전 계진 선배를 믿어요.”그녀의 말에 주계진이 과연 감격스러워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그럼 그렇지, 그를 정말 이해하는 건 그녀뿐이었다.강유이는 호민을 눈여겨보았다. 팀에 들어온 뒤 그녀는 호민과 아무런 만남도 없었을뿐더러 호민은 그저 조연이었고 아직 제대로 등장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녀는 그저 주계진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왜 마치 그녀가 주계진을 무시하는 것처럼 얘기한단 말인가?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계진의 안색이 확 변했다. “저 유이 씨랑 얘기하고 있는데 호민 씨랑 무슨 상관이에요?”호민은 당황했다.“계진 선배...”“그리고 제가 재능이 없다니요, 전 그저 대충 살고 싶은 거예요. 제가 정말 진지하게 영화를 찍는다면 남우주연상 받는 건 식은 죽 먹기죠, 안 그래요?”그는 팔짱을 끼고서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강유이와 가까운 사이였다. 가까운 사람이 그를 쓰레기라고 말하는 건 괜찮았지만 아무런 사이도 아닌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건 기분이 상했다.발밑이 붕 뜬 것처럼 호민의 몸이 흔들렸다. 주계진이 강유이에게 쓰레기라는 말을 듣고도 호민이 그를 위해서 하는 말을 거절하다니?강유이는 주계진의 어깨를 토닥였다.“임석진 매니저님께 이 기세를 봐야 하는데 말이에요. 아마 매니저님이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실걸요.”“그래도 전 쓰레기가 좋아요.”그는 고개를 돌리며 콧방귀를 뀌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