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민의 안색이 미묘하게 어두워졌다. 벌써 이런 관계라고?강유이가 주계진을 힐끗 쳐다본다.“뭘 또 그리 잘난체해요, 언젠가 임석진 매니저님께 남우주연상이라도 가져다드린대요?”그는 머리를 홱 돌렸다.“전 남우주연상에는 관심 없어요, 그냥 대충 살고 싶은 것뿐이지.” 강유이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간다.“계진 씨 정말 이렇게 쓰레기처럼 사는데 중독이라도 된 거예요?”“강유이 씨, 계진 선배한테 쓰레기라니요.”호민이 부드럽게 말하며 그의 편을 들었다.“재능이 없는 건 계진 선배 탓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계진 선배는 이미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전 계진 선배를 믿어요.”그녀의 말에 주계진이 과연 감격스러워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그럼 그렇지, 그를 정말 이해하는 건 그녀뿐이었다.강유이는 호민을 눈여겨보았다. 팀에 들어온 뒤 그녀는 호민과 아무런 만남도 없었을뿐더러 호민은 그저 조연이었고 아직 제대로 등장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녀는 그저 주계진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왜 마치 그녀가 주계진을 무시하는 것처럼 얘기한단 말인가?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계진의 안색이 확 변했다. “저 유이 씨랑 얘기하고 있는데 호민 씨랑 무슨 상관이에요?”호민은 당황했다.“계진 선배...”“그리고 제가 재능이 없다니요, 전 그저 대충 살고 싶은 거예요. 제가 정말 진지하게 영화를 찍는다면 남우주연상 받는 건 식은 죽 먹기죠, 안 그래요?”그는 팔짱을 끼고서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강유이와 가까운 사이였다. 가까운 사람이 그를 쓰레기라고 말하는 건 괜찮았지만 아무런 사이도 아닌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건 기분이 상했다.발밑이 붕 뜬 것처럼 호민의 몸이 흔들렸다. 주계진이 강유이에게 쓰레기라는 말을 듣고도 호민이 그를 위해서 하는 말을 거절하다니?강유이는 주계진의 어깨를 토닥였다.“임석진 매니저님께 이 기세를 봐야 하는데 말이에요. 아마 매니저님이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실걸요.”“그래도 전 쓰레기가 좋아요.”그는 고개를 돌리며 콧방귀를 뀌
방심하고 있던 강유이는 아파서 끙끙댔다. 팔은 얼얼했고 따끔거렸다.식은땀이 흘렀다. 얼굴은 창백해지고 어깨도 가늘게 떨렸다.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라고 소리 지르지 않았다.감독이‘컷’을 외치며 일어났다.“이번 장면 잘했어, 통과.”진예은은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가 비명을 지른다. 아무래도 팔에 난 상처를 건드린 듯하다.진예은이 물었다.“유이야, 괜찮아?”강유이가 손을 흔든다.스태프들이 그녀의 등에 있는 스펀지 패드를 꺼냈다. 강유이는 팔을 맞았다는 사실을 끝내 입 밖에 꺼내지 않고 진예은과 함께 옷을 갈아입으러 내려갔다.탈의실 안. 강유이는 옷을 벗었고 팔뚝에는 선명한 보라색 멍이 보였다. 아마도 채찍에 여러 번 맞은 듯했다. 아직도 반은 감각이 없는 느낌이었다.문을 밀고 들어오던 진예은이 푸르뎅뎅한 멍을 보고는 빠르게 다가왔다.“맞은 거야?”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괜찮아, 연기하면서 배우가 다칠 수도 있지.”“부었잖아, 잠깐만 기다려, 얼음팩 갖고 와서 냉찜질해 줄게.”진예은은 탈의실에서 나와 스태프들에게서 얼음팩을 받았다.한 승합차를 지나던 그녀의 귀에 갑자기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자천 씨, 방금 좀 심했는데 설마 의심하는 건 아니겠죠?”이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의심은 무슨, 연기하다 다치는 건 늘 있는 일이잖아요, 제가 연기에 몰입했다는 걸 의미하죠.”진예은은 멍해졌다.그녀는 발걸음을 늦추며 승합차로 다가갔다. 승합차에 가려진 시야 뒤로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서자천과 한 여자 연예인이 포옹하는 모습이 보였다. 썸 타는 분위기였다.서자천이 품에 안고 있던 여자를 껴안고 키스하려고 하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그의 입술을 막았다.“자천 씨, 이러지 마세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요.”“호민 씨, 전 호민 씨를 위해 그런 짓까지 했는데 언제 보답할 건가요?”서자천은 손바닥을 매만지며 대담하고 건방지
연기하면서 맞아본 적이 없는 배우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더구나 강유이는 여배우였다. 설령 진짜로 뺨을 때린다고 해도 뭐 얼마나 세게 때리겠어?서자천은 남자였다. 사내대장부가 이것도 못 참으면 연예계에서 그동안 헛수고를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강유이의 웃음기는 한층 더 깊어졌다. “좋아요.”촬영은 시작되었고, 강유이는 손을 들어 서자천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 그녀의 힘은 무척이나 셌다. 서자천이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정도였다. 서자천은 몸을 비틀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서자천은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강유이는 고개를 돌려 감독에게 말을 걸었다. “감독님, 한 번만 다시 가도 될까요? 제가 너무 몰입을 해서, 손에 힘을 너무 많이 실었네요.”말이 끝나자마자 강유이는 무척이나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며 서자천을 쳐다보았다. “정말 죄송해요, 서자천 선배님. 괜찮으시죠?”서자천은 강유이가 이렇게 힘이 셀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의 따귀는 아직도 그의 얼굴에 붓는 느낌을 느끼게 했다.그는 연예계를 수십 년간 종횡무진했었다. 그 많은 상대 배우와 따귀씬을 찍었어도 이렇게 심하게 때린 사람은 강유이가 처음이었다!설마 지금 회초리 사건으로 복수를 하는 건가?그럴 리가 없는데.그는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더니 억지로 웃음을 지어냈다. “괜찮아요.”다시 재개된 촬영, 강유이는 여전히 팔에 무게중심을 두며 힘차게 서자천의 뺨을 내리쳤다. 그 힘은 저번보다 더 심하고 아팠다. 서자천은 그녀의 따귀에 뺨이 부어오르고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진예은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실 강유이는 겉으로만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 몰래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조감독도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조감독은 감독 옆에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힘이 너무 센 거 아닐까요?”그 말에 감독이 대답했다. “세긴 뭐가 세. 원래 이 씬이 여주가 증오를 가지고 뺨을 내리치는 장면이야. 그럼 설마 어루만지듯 살살 내리쳐야겠어? 그리고, 서자천도 동의했어. 진
촬영팀 직원들은 줄곧 강유이가 일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서자천의 팬들이 너무 유난을 떤 게 분명했다.더구나 서자천이 뺨을 맞는 것은 배우들이 이미 상의를 다 끝낸 일이었다. 강유이가 그를 때린 이유도 연기를 더 실감 나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일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될 줄.강유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이미 예상했던 일인 것 같았다.서자천의 팬들은 촬영장 밖에 가로막혀 있었다. 팬들은 자신의 배우를 위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들은 강유이에게 해명을 하라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감독은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서자천을 앞세워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서자천과 호민과 함께 현장으로 나가 팬들의 감정을 보듬어 주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유이를 대변하고 있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는 전혀 말하지 않고 있었다.팬들은 대부분 흥분된 감정일 뿐이었다. 안 그래도 맞아서 속상한데, 그 배우가 다른 사람을 대변하고 있다니… 팬들은 더욱더 진정할 수가 없었다. “자천 오빠, 얼굴이 아직도 부어있잖아요. 분명 강유이가 잘못한 일인데 왜 그 강유이 편까지 들어주는 거예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자천 오빠가 너무 착해서 그래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괴롭힘이나 당하는 거라고요. 강유이가 뭔데요. 꼴랑 여우주연상 하나 받은 거밖에 더 있어요? 신분이랑 배경이 없었어도 여우주연상을 받았을까요?”“이 여우주연상 뭔가 음모가 있는 거 아니에요?”서자천의 팬들이 강유이를 욕하는 모습에 호민은 마음속으로 무척이나 기뻐했다.서자천은 팬이 적지 않았다. 비록 강유이를 어떻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강유이에 대한 지나가는 머글들의 호감도를 줄이기에는 충분했다.게다가 서자천이 강유이의 편을 들어주는 모습은 그의 대범함과 넓은 아량을 한층 더 강조시켜 주었다. 이는 강유이가 ‘세력만 믿고 다른 사람들은 업신여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강유이는 반 씨 가문의 규수였다.
팬들은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자천 오빠 얼굴이 아직 부어있잖아요, 우리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이게 오해라고요?"덕분에 서자천도 팬들의 장단을 맞춰 말을 했다."이번 일은 그냥 이렇게 하죠, 여러분, 제 체면을 봐서 그냥 넘어가 주세요."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화하고 마음이 넓은 척 굴어 팬들은 흐뭇한 동시에 강유이를 더욱 증오하게 되었다.그때 호민도 강유이에게 다가가 말했다."강유이 씨, 자천 오빠도 오해라고 했으니까 팬들이랑 너무 따지고 들지 마요."하지만 강유이는 그런 호민을 무시하고 서자천에게 다가갔다."선배, 제가 촬영 전에 물어본 거잖아요. 정말 때려도 되는지." 그 말을 들은 서자천이 멈칫했다 어색하게 웃었다."그랬죠, 얘기했었죠…""그러니까 사전에 미리 얘기도 했고 선배도 동의해서 제가 촬영 때 정말 때린 거잖아요, 촬영이 끝난 뒤에 사과도 했고. 이런 건 팬분들한테 얘기 안 하셨어요?"그 말을 들은 서자천의 안색이 변했다.서자천의 팬들도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팬들에게 강유이가 자신에게 사과를 했다는 일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호민도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도 강유이가 서자천에게 사과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하지만 이 일에 반전이 일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강유이 씨, 정말 자천 오빠한테 사과한 거 맞아요? 왜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는 거죠?"호민의 말 한 마디가 다시 논쟁을 일으켰다.그녀의 말은 지금 둘 중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기에 서자천의 팬들은 강유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당신이 사과했다고 해서 정말 사과한 게 되는 건가요? 우리 자천 오빠는 왜 당신이 사과했다는 말은 안 한 거죠?""지금 집안 믿고 사람 괴롭히고 있는 거죠? 우리 오빠가 착하니까 만만해서 이러고 있는 거잖아."호민은 속으로 득의양양했다. 그녀가 원하던 반응이 바로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서자천이 강유이가 사과했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강유이가
"제작팀의 호민이 서자천에게 저희 회사 연예인을 괴롭히라고 지시를 했다고 들었습니다.""그런 일이 있었다고요?"임석진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서자천, 호민 모두 유성 엔터 사람인데 팀에서 수작질을 부렸으니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서자천이 강유이가 사과를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일부러 설명도 하지 않아 강유이의 이미지를 망치려고 든 걸로 보아 그가 얼마나 위선적인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고 비서의 말을 들은 임석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뒤에서 수작질을 부리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설사 TY 엔터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른 연예인이 자기가 맡고 있는 연예인을 괴롭히는 꼴을 그는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유성 엔터에 한 번 들러야 할 것 같네요."한편 문밖에서 그 말을 들은 진예은은 소리 없이 그곳을 떠나 비상구로 와 강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내가 고 비서한테 부탁해서 임 매니저한테 말해주라고 했거든. 지금 임 매니저 유성 엔터에 찾아가려고 하고 있어. 아쉬운 건 내가 그 사람 같지도 않은 두 놈이 저지르는 짓을 동영상으로 남기지 못했다는 거야."두 사람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길 수 있었다면 분명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예은아, 너 나보다 더 나쁘구나."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사람 같지도 않은 두 사람 때문에 네가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 내가 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있었겠어? 내가 너였다면 뺨 때리는 걸로도 화 못 풀었어."진예은은 뺨을 때리는 것은 두 사람이 한 짓에 비해 너무 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예은아, 나 일 끝나고 돌아가면 같이 우리 집에 들르자.""지금 농담하는 거지?"강유이의 말을 들은 진예은이 물었다. 그녀를 데리고 반씨 본가로 가려고 하다니."우리 엄마가 계속 너 보고 싶다고 했어, 내가 이미 다 말했다고."강유이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예은은 망설여졌다."유이야, 나… 안 가면 안 돼?"그녀는 강유이의 어머니를 만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집에
"부회장님."성진이 얼른 일어서며 우성빈을 맞이했다."제가 이미 다 알아봤습니다. 서자천이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조작했으니 사과를 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그 말을 들은 성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강 회장이 유성 엔터의 관리를 전적으로 부회장에게 맡겼지만 부회장인 우성빈은 연예인들이 친 사고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그의 하층 관리층과 매니저들이 알아서 해결해 줬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이번에 부회장이 직접 나선 걸 보니 단순한 일은 아닌 듯했다."역시 우 부회장님이 현명하시네요. 그럼 돌아가서 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임석진이 일어서며 말했고 우성빈은 그를 막지 않았다.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성진이 그제야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부회장님, 임석진의 말만 듣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자천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잘 아시잖아요. 회사를 위해 돈도 많이 벌고 상도 많이 타 온 거 저희 다 같이 봤잖아요. 지금 이 사달이 벌어진 건 자천이가 일부러 사실을 숨겨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저희도 어떻게 된 건지 똑똑히 알아봐야죠.""그럴 필요 없습니다, 서자천이 무슨 일을 벌인 건지 TY 엔터에서 다 알고 온 겁니다. 공개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서자천은 매장되고 말 겁니다."우성빈의 말을 들은 성진이 멍청하게 그를 바라봤다.우성빈이 매장이라는 말을 들먹일 정도라니, 그는 일이 이 지경까지 올 줄 몰랐다. 서자천이 정말 무슨 일이라도 벌인 것일까."호민도 저희 회사 연예인인가요?"사무실을 나서던 우성빈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네, 저희 회사 2선 연예인입니다. 정현이 지금 맡고 있고요.""정현한테 제 사무실로 오라고 전하세요."우성빈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한편, 유성 엔터 근처에 세워진 차 뒷좌석에 앉은 한태군이 손안의 자료를 보고 있었다.그때 전유준이 운전석에 타며 말했다."도련님, 유성 엔터의 우 부회장님이랑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유성 엔터에서 서자천을 남겨두면 어떡하죠?""서자천
강유이는 연예계에서 스스로 일어서고 싶었기에 반씨 집안에서도 끼어들지 못하게 했다."뭐야, 둘이 여기서 밥 먹고 있었어요."그때 주계진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당신이 왜 여기에는 있는 겁니까?"강유이가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꼼꼼히 가렸지만 여전히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있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주계진을 보며 말했다."아마도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는 거겠죠."주계진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더니 제멋대로 의자를 빼내어 앉으며 말했다.하지만 말을 하는 그의 시선은 진예은에게 고정되어 진예은은 조금 난감해졌다."지금 밥 얻어먹으러 온 거예요?"강유이가 그를 보며 묻자 주계진이 혀를 차더니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어떻게 밥 얻어먹으러 온 거냐고 물을 수 있어요? 당연히 밥 얻어먹으러 온 거죠."그의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하지만 주계진은 웨이터에게 자신의 수저를 한 세트 더 달라고 한 뒤, 다시 강유이에게 말했다."서자천이 뒤에서 강유이 씨한테 수작질 부리다가 사과했다면서요?""뒤에서 저한테 수작질 부린 사람은 서자천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건 당신이랑 어느 만큼 연관이 있다고 할 수도 있죠."호민이 주계진의 팬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강유이의 말을 들은 주계진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무슨 소리예요, 저는 강유이 씨한테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렇게 사람한테 막 뒤집어씌우면 어떡해요."강유이는 더 이상 주계진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그의 생각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주계진은 그런 강유이를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진예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예은 씨, 뭐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시키세요. 제가 다 사드릴게요."그 말을 들은 강유이가 주계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진예은도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구는 주계진이 적응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배가 불러서요."진예은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그러자 주계진이 한 손으로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