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머뭇거리던 강유이가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매니저님, 저 그 역할 따내지 못했어요…”“처음부터 네가 그 역할을 따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어.”임석진이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네가 그 역할을 따내지 못한 건 오디션 보는 그날, 네가 제삼자의 시각으로 그 캐릭터를 봤기 때문이야. 넌 용녀 역할에 완전히 이입하지 못했어.”“용녀는 네가 이해한 것처럼 그렇게 비극적인 캐릭터가 아니야. 아무리 천도가 잘못되었다고 해도, 용녀는 명을 어기고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해서는 안 됐어.”강유이가 멈칫거렸다. 시나리오에서 용녀가 피의 학살을 할 때, 확실히 수많은 무고한 제자들이 목숨을 잃었다.종문의 제자들은 단지 천도의 명에 따라 마족들을 처단했을 뿐이었다. 나쁜 건 천도였는데 최종적인 학살을 당한 건 죄 없는 제자들이었다. 천도가 용족을 멸종시킨 것이지 종문이 한 짓이 아니었다.하지만 강유이는 용녀가 천도와 맞서면서 종문을 학살한 건 본인이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결국 용녀가 무고한 사람들을 해쳤다는 걸 놓치게 된 것이다. 그들도 그저 천도가 휘두르는 칼에 불과했었는데 말이다.강유이는 고개를 수그렸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왜 오디션에서 떨어졌는지 알게 되었다.아마 오디션 당일, 그녀가 말했던 용녀에 대한 해석 때문일 것이다.그녀는 완전한 ‘용녀’가 되지 못했다. 그저 방관자의 시각으로 ‘용녀’라는 캐릭터를 분석한 것이다. 이건 보통의 연기자들이 흔히 일으키는 실수였다.임석진이 대본을 그녀에게 건넸다.“일단 가져가. 가서 캐릭터 분석 열심히 해봐. 정 감독의 작품은 원래 따내기 어려워. 네가 그 역할을 놓친 게 어쩌면 너한테는 좋은 일일 거야.”대본을 받아든 강유이가 고개를 들었다.“그럼 저를 맡아주신다는 말씀이세요?”“쓸데없는 소릴. 난 그냥 네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실력을 보고 싶었어. 지난 시간 동안 노력한 성의를 봐서 맡아주는 거야.”임석진이 손을 휙휙 저으며 이어서 말했다.“나가봐.”
구천광이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네가 정 감독의 작품을 놓친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야.”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임 매니저님과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구천광이 피식 웃었다.“정 감독의 작품은 다 연기 경력이 오랜 실력파 배우들만 참여해. 때문에 배우들에 대한 요구가 높아. 만약 네가 참여했다면 데뷔작부터 기대를 한몸에 받게 되겠지.”“반짝 주목을 받다가 내리막길을 걷는 연예인들은 쉽게 여론의 먹잇감이 되곤 하지. 심지어 넌 반씨 가문의 딸이니까 더욱 주목을 받게 될 거야. 그 역할로 온갖 이목을 끌고 화려하게 데뷔를 해도 이미 기대치가 한껏 높아져서 조금만 실수해도 더 큰 압박을 받게 될 거야. 때문에 임석진이 네가 그 역할을 놓친 게 좋은 일이라고 한 거야. 확실히 그 말에도 일리가 있어.”강유이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임석진의 그 한마디에 이런 뜻이 담겨있었다니.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확실히 제가 너무 자만했던 건 맞는 것 같아요. 결국 오디션을 망친 건 맞으니까요.”구천광이 미소 지었다.“실패를 해야 성공이 따르는 법이야. 유이 넌 아직 배울게 많아.”식사를 마치고 구천광은 그녀를 반씨 저택까지 바래다주었다.강유이가 금방 정원에 들어섰는데 진예은한테서 문자가 왔다.-나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아.-그런데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강유이가 걸음을 멈추고 답장을 보냈다.-무슨 일 생겼어?잠시 후, 진예은한테서 답장이 왔다.-네 오빠가 나 때문에 다쳤어…병원, 진예은이 기다란 의자에 앉아 문자를 보낸 후 휴대폰을 손에 꼭 쥐었다. 의사가 병실에서 나오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저기 선생님, 저 사람은 별문제 없는 거죠?”의사가 답했다.“괜찮습니다. 가벼운 뇌진탕이라 하루 이틀 정도 쉬면 회복될 겁니다.”그녀는 그제야 조금 시름이 놓였다.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가니 반재신이 팔짱을 끼고 침대에 기대앉아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그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병실 안으로 들어온 진예은을 보
반재신이 침대 머리맡에 몸을 기대며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하긴, 넌 섬에서 보낸 그날 밤에 그런 소리를 내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니까.”진예은이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반재신, 그날에 대한 인상이 꽤 강렬했나 봐. 설마 밤에 잠 안 오면 그날 일을 떠올리고 그러는 건 아니지?”그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헛소리야?”“아니면 왜 갑자기 그날 일을 꺼내는데.”진예은이 허리를 굽히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담백한 미소가 걸렸다.“만약 내 수치심을 자극하려고 한 말이라면 소용없어. 난 정말로 수치심이 없거든. 나 여기서 네 바지도 벗길 수 있어. 한 번 해 봐?”그가 그녀를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고 가려 한다면, 그녀는 오히려 진짜 파렴치한 게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그래서 그가 당장 여기서 그녀를 쫓아내고, 나중에 길에서 그녀를 보기만 해도 먼저 피해 갈 수 있게! 그에게 이미 당할 만큼 당했기에 더 이상 참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반재신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그가 그녀의 손을 자기 바지춤으로 끌어당기더니 뻔뻔한 태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디 해봐.”진예은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너…”그가 피식 소리 내어 웃었다.“내 바지를 벗기겠다며. 자, 내가 기회를 주잖아. 어때, 할 수 있겠어?”그녀가 손을 빼내려 했지만 빠지지 않았다.“반재신, 너 이 손 당장 놓지 못해? 안 놓으면 나 소리 지를 거야!”“질러 봐.”“간호사님—!"그녀가 막 간호사를 부르던 그때, 갑자기 자신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에 진예은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반재신의 몸 위로 넘어졌다. 반재신도 갑작스러운 충격에 침대 헤드에 등을 부딪혔다. 쾅 하는 소리가 병실을 울렸다.갑작스러운 소란에 간호사가 급히 병실로 들어왔다.“무슨 일…”순간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간호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진예은이 반재신의 몸 위에 겹쳐져 있었는데, 그녀의 손이 그의
“내가 그 정도 돈이 아쉬울까 봐?”“어쨌든 진예은은 너를 다치게 했어. 그녀에게 대가를 원하지 않는 건 네 스타일이 아니잖아.”반재언의 눈빛이 의미심장했다.반재신이 고개를 돌렸다.“이깟 일로 여자와 실랑이할 생각 없어.”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네가 어디 진예은과 한두 번 실랑이질했어야 말이지.”반재신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진예은은 꽤 괜찮은 여자야.”반재신이 갑자기 그를 돌아보았다.“그게 진예은에 대한 형의 평가야?”그는 그저 웃기만 할 뿐 답을 하지 않았다.반재신이 그의 시선을 피하더니 잠깐 침묵했다.“형 혹시 걔한테 다른 마음 있어?”그가 실눈을 떴다.“네 생각에는 어떨 것 같은데?”반재신이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만약 걔가 내 형수로 들어온다면, 난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반재언은 눈이 살짝 커지더니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난 동생 여자는 안 뺏어.”반재신이 멈칫거리더니 서둘러 해명했다.“누가 내 여자라는 거야. 난 그냥 걔한테 형이 과분해서 그러지. 진예은은 내 형수가 될 자격이 없어.”반재언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 그는 모든 상황을 꿰뚫어보고 있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상대에 대한 원칙과 요구가 낮아지는 거야. 자격 같은 건 논할 필요 없어. 난 그런 시시콜콜한 건 신경 쓰지 않아.”반재신이 몸을 흠칫했다.“그래도 걔는 안돼.”그가 웃었다.“시도도 안 해봤는데, 어떻게 꼭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어?”반재신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그러면 형이 방금 전까지 했던 말은 다 거짓말인 거잖아.”반재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확실히 난 동생 여자는 안 뺏어. 그런데 진예은이 네 여자야?”반재신은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다음날 반재신은 바로 퇴원했다.스포츠머리의 남자가 차를 몰고 반재신을 데리러 왔다. 그가 차에 오르자 스포츠머리의 남자가 혀를 차며 말을 꺼냈다.“그 여자가 계단에서 너를 밀쳤다며? 그 여자 너무 한 거
그녀는 주춤하던 몸을 이끌고 계속 앞으로 걸었다. 그를 향해 안부나, 인사 같은 것도 묻지 않았다.그저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고 지나쳤다.반재신이 갑자기 그녀를 잡아세웠다.“부원장이 너한테 뭐라고 했어?”진예은이 그에게 잡혀 있던 손을 빼낸 후 그를 돌아보았다.“이게 네가 원하던 거 아니었어?”그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말이야?”“반재신, 너를 다치게 한 건 내 잘못이 맞아. 정말 미안해. 네가 내 목숨 한 번 구해준 거, 그 은혜도 이만하면 갚을 만큼 갚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제발 다시는 나를 찾아와서 힘들게 하지 마.”진예은이 한 걸음 물러서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나버렸다.반재신은 홀로 그 자리에 우뚝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순간 심장에 가시라도 박힌 것처럼 콕콕 쑤셔났다.어쩐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서울.촬영팀에 합류한 지 이틀째, 강유이는 온갖 주목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감독과 스텝들까지 그녀에게 굽신굽신거려 그녀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한 신이 끝난 후 강유이는 의자에 앉아 대본을 읽었다.이제 가을이긴 했지만 아직까지 날이 더웠다. 사극이라 옷을 몇 벌씩 껴입다 보니 퍽 불편했다.“강유이 씨, 잠깐 에어컨 있는 방으로 가서 휴식하셔도 돼요.”“강유이 씨, 뭐 좀 마실래요?”옆에 있던 스텝들이 열정적으로 챙기자 강유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며 답했다.“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이제 곧 다음 신이 시작되기도 하고, 여러분들의 귀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이틀간 함께 있으면서 스텝들은 강유이가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너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다들 그녀를 무척 좋아하고 있었다.하지만 촬영장 내 일부 ‘검은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그 장면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기도 했다.#강유이 촬영장에서 특별 대우. 스텝들을 노예로 부려#몇 장의 사진과 함께 첨부된 글은 곧바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부잣집 딸의 거짓된 선량함은 열성팬들의 극성으로 만들
그녀한테는 매력이 있었다. 의지도 강하고,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심지어 집안까지 감히 자신과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그녀는 오직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 오늘날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강유이는 그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그런데 본인이 노력까지 하니 이제 자신을 초과하는 건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었다.임석진은 너무 현명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사무실에서 나온 우영이 휴게실로 돌아갔다. 한 여자 연예인이 웃으며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우영 언니!”우영이 그녀를 돌아보았다.“무슨 일 있어?”“아직도 강유이 때문에 신경 쓰여요? 걱정 말아요. 비록 주인공 역할을 받긴 했지만 이 정도로 공격받았는걸요. 제 생각에는 분명 어딘가에 몰래 숨어서 눈물 콧물 질질 짜고 있을 거예요.”우영이 멈칫거리더니 곧바로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유이 씨는 네 생각처럼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그렇다고 해도 뭐 어쩌겠어요. 촬영팀에서 그 여자한테 특별대우를 해준 건 사실이잖아요. 지금까지 해명하지 않는 것만 봐도 뻔하잖아요. 분명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예요.”우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네가 그쪽 촬영팀 일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어?”여자 연예인이 우영의 곁에 바싹 붙으며 말했다.“강유이 그 여자가 하는 짓이 눈에 거슬리잖아요. 그래서 그쪽 촬영팀 사람한테 부탁 좀 했죠.”“그럼 이 일을 벌인 사람이 너란 말이야?”우영이 놀라 되물었다.“너 미쳤어? 임 매니저님한테 들킬 게 겁나지도 않아?”여자가 콧방귀를 뀌었다.“겁날 게 뭐가 있어요. 강유이가 거드름을 피우면 임 매니저님이 먼저 그 여자를 버릴걸요. 임 매니저님은 자기 밑에 있는 연예인이 거드름 피우는 걸 가장 싫어하시잖아요.”우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윤수아, 너 지금 당장 글 올린 사람한테 연락해서 그거 지우라고 해.”윤수아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왜 그래야 하는데요. 그게 사실이잖아요.”“내 말 들어. 임
진예은이 봤다면 한태군도 봤을 가능성이 있었다.가뜩이나 바쁜 한태군한테 그녀의 일로 걱정 거리를 더 만들어준다면 너무나 미안할 것 같았다.강유이의 걱정을 알아차린 진예은이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 아직 외부에까지 공개적으로 소문나지는 않았으니까. 나도 인스타에서 봤어. 한태군 그 일벌레는 인스타 할 시간도 없을 테니까.”강유이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못 봤다면 다행이야. 난 태군 오빠가 내 일로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어.”“유이야…”진예은이 우물쭈물하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강유이는 그녀한테 어떤 고민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왜 그래?”“예전에 네가 나보고 네 매니저 하라던 그 말, 아직도 유효해?”강유이가 잠시 멈칫거렸다.“진지하게 생각해 준거야?”그녀가 웃으며 말했다.“네가 진심으로 물어봤으니까, 당연히 나도 열심히 고민했지. 그리고 만약 내가 연예계로 발을 들이게 되면 분명 글 쓸 시간도 없게 될 거야. 그럴 바에야 연예인 매니저를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어쩌면 나중에 내가 너를 주인공으로 글을 쓸 수도 있고 말이야.”“좋아. 그럼 꼭 그렇게 하는 거다. 내 로드 매니저 자리는 너를 위해 남겨 둘게!”전화를 끊은 후 진예은은 미리 준비해둔 퇴학 신청서를 학교 메일로 전송했다.다음날 경역학과.스포츠머리를 한 남자가 반재신을 찾으러 농구장으로 들어왔다.“반재신!”다른 학생들과 한창 농구를 하고 있던 반재신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공을 팀원에게 넘기고 그에게 다가갔다.“무슨 일이야.”급하게 뛰어온 건지 남자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숨을 몰아쉬었다.“진… 진예은이 퇴학 신청했대.”반재신의 눈이 커다래지더니 남자의 말을 더 기다리지 않고 곧장 밖으로 나가버렸다.“야, 너 어디 가.”남자는 더 이상 반재신을 쫓아갈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와 함께 농구를 하던 팀원이 다가와 물었다.“재신이 왜 저래?”“나도 몰라.”스포츠머리 남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난 그냥 진예은이 퇴학
진예은이 그의 옷을 잡아당겼다.“그렇다고 해도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얼른 내 휴대폰 돌려줘.”“싫어.”“반재신, 너 정말 왜 이래!”그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럼 너 절로 가져가.”진예은이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끄덕였다.“좋아.”그녀가 곧장 그의 호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그때, 반재신이 갑자기 그녀의 팔목을 잡더니 힘껏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미처 방어할 틈이 없었던 진예은이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겼다.놀란 그녀가 순식간에 그의 품에서 굳어버렸다.반재신이 손을 들어 올리더니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번뜩 정신을 차린 진예은이 그를 밀어냈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목을 만졌다.그녀의 눈에 나침반 모양의 목걸이가 보였다.그건 분명 그날 CD 브랜드 매장에서 봐두었던 그 목걸이였다.반재신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뭐, 그럭저럭 봐줄 만하네.”진예은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네가… 왜 이걸 나한테 줘?”반재신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내가 너한테 목걸이를 선물했잖아. 아직도 그 의미를 모르겠어?”진예은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며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에게 목걸이를 선물한 의미라…설마 그녀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겠지?하지만,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반재신이 그녀 앞으로 불쑥 다가오더니, 손으로 그녀의 볼을 감쌌다. 그녀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따뜻한 온기가 입술에 전해졌다.진예은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그녀가 그의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막 밀치려던 그때, 반재신은 이미 그녀에게서 한걸음 물러섰다.“휴대폰을 찾고 싶으면 네가 직접 나를 찾아와.”그러더니 몸을 돌리고 그대로 가버렸다.진예은만이 홀로 그곳에 남게 되었다. 그녀는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두 날 뒤, 강유이는 임석진의 안배 하에 공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기자들이 각종 난감한 질문을 해댔지만 강유이는 시종일관 떳떳하게 카메라를 마주 보았다.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