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윤은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하는 대신 되물었다.그는 자기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이 틀림없다고 점점 더 확신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기억이 어쩌면 생사를 함께 넘나들었던 차설아와 관련이 있겠다고 추측했다.서은아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점점 더 불안해졌다.“아, 아니야. 넌 나만 기억하면 돼.”병실 밖을 서성거리는 소영금의 표정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그러자 려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어요?”“아들이 갑자기 저렇게 되었는데 걱정이 안 되겠어?”소영금은 엎어진 말벌 집처럼 눈에 보이는 게 없이 심한 말을 뱉어댔다. 그녀는 려윤을 노려보며 말했다.“아까 너도 눈치챘어? 도윤이의 상태가 매우 이상해.”“도윤 도련님의 상황은 확실히 좋지 않아요. 특히 머리에 큰 타박상을 입은 것 같아요. 가능하다면 다른 의사에게 정밀 검사를 받는 게 좋겠어요.”“그렇지? 너도 도윤이의 머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의심하는 건...”소영금은 여기까지 말하고 긴장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뭘 의심하는 거죠?”려윤도 덩달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소영금은 정색하며 말했다.“난 도윤이가 귀신에 들린 것 같아. 서은아가 한 짓인 게 틀림없고 서은아는 지금 도윤이를 통제하고 있지. 아니면 도윤이가 지금처럼 서은아의 말만 듣고 그녀를 그렇게 챙겨주고 있을 수가 없어. 전혀 말도 안 돼.”“헐... 귀신에 들렸다고요?”려윤은 어이가 없었고 일이 점점 이상한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귀신에 들리든 아니든 내 아들은 절대 서은아와 함께 있을 수 없어. 만약에 서은아가 성진 그 자식의 앞잡이라면 모든 것이 끝장날 거야. 그래서 우리는 서은아를 다른 곳으로 떼어놓아야 해. 대놓고 그렇게 한다면 도윤이는 분명히 동의하지 않을 거란 말이지.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해.”소영금은 사려 깊은 사람이라서 가능한 모든 위험을 예상해야 했다.성도윤과 서은아 사이는 정말 이상했기에 서은아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깊은 밤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마치 귀신처럼 구불구불한 산길을 질주하며 숲속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차설아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멋지게 빠른 속도로 90도 가까운 커브를 가볍게 지나갔다.그녀는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반듯이 누워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남자는 약효 때문에 눈을 질끈 감은 채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차의 흔들림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정말 지독한 여자야. 자기 친아들에게 이렇게 심한 수면제를 먹였다니. 바보가 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차설아는 속으로 원망하며 신지 요양병원의 원장님인 오성문에게 전화를 걸었다.“오 원장님, 이제 곧 도착해요. 요양병원에 잠시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폐를 끼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전화기 너머로 오성문은 매우 열정적이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계집애야. 아저씨한테 무슨 예의를 갖추는 거야. 그 당시 나와 네 아버지는 의형제였고 네 아버지는 신지 요양병원 주식도 가지고 있어. 한동안 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계속 이곳에 살겠다고 해도 아저씨는 두 팔 벌려 환영이지.”“그러면 감사합니다. 아저씨.”오성문의 말을 들은 차설아는 마음이 따뜻해졌다.신지 요양병원은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고급 요양병원이었고 특수 계층 사람들만 있을 수 있는 곳이었고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았기에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이곳은 식물들이 많았고 환경이 우아한 데다 공기 중의 음이온 함량이 매우 높으며 다양한 귀중한 약초와 현재 가장 선진적인 의료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가장 중요한 건 신지 요양병원의 원장님인 오성문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전적으로 차설아를 지지하고 파산 위험을 무릅쓰고 미리 요양병원을 정리해서 성도윤만을 위해 봉사하려고 했다.“도윤 씨, 걱정하지 마. 지금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도윤 씨를 반드시 치료 해줄게.”차설아는 성도윤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맹세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차가 곧 신지 요양병원의 입구에 도착했고 중국식 정원이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민이 이모도 모든 것이 이렇게 공교롭고 순조로울 줄은 몰랐다.‘어쩌면 하늘의 뜻이겠지. 하늘이 두 사람 사이를 인정하고 아직 풀리지 않은 갈등이 있느니 두 사람의 운명을 다시 묶어 놓은 거겠지.’오성문도 열정적으로 말했다.“설아야, 너희 상황은 민이 이모가 다 알려줬어. 걱정하지 마. 요양병원은 최선을 다해서 성도윤 씨가 최대한 빨리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시간이 늦었으니 먼저 돌아가서 쉬어. 너희들을 위해 서쪽에 있는 스위트룸을 준비했어. 그 방은 가장 따뜻하고 집 분위기가 나는 방이야. 안에서 자유롭게 요리하고 쉬면서 책을 읽거나 밤에 별을 보며 반신욕도 할 수 있어.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몸과 마음이 한결 편해질 거야.”신지 요양병원의 부원장님이자 오성문의 아내인 남아름이 친절하게 소개했다.“네. 아주머니. 폐를 끼치게 되었네요.”차설아는 고마운 표정으로 우아하고 온화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남아름은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아마 이런 모습을 보고 엄청나게 기뻐하실 것이다.“바보 같은 계집애. 아주머니랑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어. 빨리 돌아가서 푹 쉬어. 이제 시간 나면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자꾸나.”남아름은 마음 아프고 불쌍한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으나 결국에는 조용히 가서 차설아를 안아주었다.요양병원 직원의 안내로 차설아는 아담한 정원을 지나 서쪽 스위트룸으로 향했다.약효가 채 가시지 않았기에 성도윤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고 스위트룸의 큰 침대에 편안하게 눕혀졌다.차설아는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로 된 인테리어와 곳곳에 우거진 식물들이 있었다. 정말 남아름의 말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나머지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차설아가 창문을 열자 밤바람이 서서히 하얀 색 커튼을 스치고 있었고 마치 비에 물든 것처럼 축축한 맑은 공기는 코에 들어와 바로 오장육부를 통해서 그녀의 지친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느낌이 들었다.“휴.
“얼굴은 여전하네요? 피부 좋은 것 좀 봐.”차설아는 만질수록 기분이 좋아졌는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평소의 성도윤은 한 마리의 맹수처럼 낯선 사람에게는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지만 지금은 온순한 고양이처럼 차설아가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저항하지 않고 있었다.머리를 만지고 있는데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던 그는 갑자기 그 깊은 눈을 떴는데 벌떡 일어나 차설아를 눕히고 본인은 그 위를 가로 탔다.그의 긴 손가락은 차설아의 목덜미를 졸랐는데 끊임없이 힘을 주며 말했다.“약골이라고요? 정신을 잃게 한 다음 마대에 쑤셔 넣겠다고요?”“당신... 콜록콜록!”차설아의 가느다란 목은 백조처럼 선이 완벽하고 연약해서 살짝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았다.남자의 긴 손가락은 힘이 너무 센 나머지 그녀는 숨을 쉴 수도 없었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사실 중상을 입은 성도윤을 상대하기엔 그녀의 솜씨로는 식은 죽 먹기였지만 그녀는 반항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남자다운 공격을 즐겼다.적어도 죽는 한이 있어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그가 약골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그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한 그는 좋아질 가능성이 있었다.“말해요, 목적이 뭐죠?”성도윤은 차설아가 거의 질식해 정신을 잃으려 하자 끝내 긴 손가락을 떼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콜록, 콜록콜록!”차설아는 크게 숨을 쉬었고 붉게 상기된 볼이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운 웃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래, 이게 내가 알던 성도윤이지, 당당한 성대 그룹 대표, 해안의 절대적인 권위자 말이에요!”“내가 하마터면 당신 목숨을 앗아 갈 뻔했는데 무섭지도 않아요?”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렸고 그의 흑 보석처럼 환한 눈매는 여전히 초점이 없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조각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그는 원래도 어리둥절했는데 여자의 방자한 웃음이 그를 더욱 의심하게 만들었다.“당연히 두렵지 않죠, 당신이 날 죽이지
성도윤 눈의 의심이 더욱 짙어졌다.“내가 당신이랑 무슨 관계인데요? 왜 당신은 이렇게 힘을 들여서 한 명의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 건데요? 당신이 이렇게 나를 몰래 빼돌리면 얼마나 큰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지는 알아요?”“당신이 나을 수만 있다면 난 어떤 결과를 감수하든 상관없어요.”차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서은아나 소영금한테 성도윤을 옮긴 걸 들키면 나중에 얼마나 귀찮을지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하지만 민이 이모는 제대로 치료하려면 외부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으니 그녀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해 볼 수밖에는.“흥,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 관계에 대해서는 계속 언급을 회피하네요? 나는 당신을 믿지 않을 거예요. 분명 이상한 점이 있어.”성도윤이 현재 유일하게 신뢰하는 사람은 서은아뿐이었다.“당신이 나를 은아 곁으로 돌려보내 준다면 이번에는 용서할게요.”“미안하지만 그 요구는 들어줄 수 없어요.”차설아는 몸을 일으켜 남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당신은 지금 내 사람이에요. 내가 당신을 빼앗아 왔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해요. 도망치려 하지 말고 외부와 연락하려고도 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을 놓아줄 생각 없으니까.”“빌어먹을!”성도윤은 화가 났다.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그에게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말을 걸지 못했다.“그렇다면... 그냥 같이 죽죠.”남자는 말을 마치고 여자의 방향을 향해 호되게 공격했다.하지만 그는 지금 두 눈이 멀었을 뿐 아니라 팔과 다리 부상도 낫지 않아 공격은커녕 차설아의 품에 안겨버렸다.“푸, 우리 서방님, 오늘은 너무 늦었어요. 다음에... 다음에 내가 다시 찾아올게요!”차설아는 웃음을 참으며 강아지 만지듯 품에 안긴 남자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 후 자상하게 솜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얌전히 자고 있어요, 내가 옆방에 있으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한테 말하고.”“차설아, 죽여버릴 거야!”성도윤은 완전히
차설아의 기색이 갑자기 긴장되었다.이상하네? 이른 아침 낯선 땅에서 그보다 눈도 먼 사람이 어디로 도망간 걸까?그녀는 서둘러 문을 열고 사람을 찾으려다가 남아름과 부딪쳤다.“설아야, 일찍 일어났네? 어젯밤 잘 잤어?”여자는 우아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뒤에서 직원이 밀고 있는 흰색 미니밴을 가리키며 열정적으로 말했다.“부서 사람들에게 너랑 성도윤 씨의 건강 상태에 따라 영양가 있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라고 했거든. 빨리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차설아는 밥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는데 표정이 안 좋았다.“아줌마, 고마워요, 마음만 받을게요. 일이 좀 생겨서 먼저 처리해야 할 것 같아요.”“서두르지 마,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아줌마가 도와줄까?”“그게...”차설아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는데 솔직히 고백해야 할지 몰랐다.어쨌든 이 일을 입 밖에 낸다는 게 너무 창피했다. 중상을 입고 시력을 잃은 사람도 잘 보지 못하는 자신이 폐인과 뭐가 다른가?남아름은 차설아의 난처함을 눈치채고 다시 입을 열었다.“아줌마한테 말하기 불편해도 괜찮아... 네가 여기 올 때면 친정으로 돌아왔다 생각해. '신지 요양병원'의 모든 인력, 물력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우리는 너의 일에 반드시 전력을 다해 협력할 거고.”여자의 진지한 말에 차설아의 거리낌이 사라졌고 그녀는 가볍게 기침을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기, 혹시 성도윤을 보신 분 없습니까?”“성도윤 씨는 너랑 함께 있지 않았어?”“아침에 일어나 보니 방에 없었고 언제 뛰쳐나갔는지도 몰라요.”차설아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볼이 불룩해지며 이를 갈았다.“제 몸 상태도 모르고 왜 이러는지... 몸에 상처도 있고 눈도 보이지 않는데 감히 사라지다니, 이건 순전히 죽으러 나간 거 아녜요?”“설아야, 일단 당황하지 마, 우리 요양원 공공 구역에 CCTV가 있어, CCTV를 보면 성도윤 씨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아마 근처에 있을 거야.”남아름은 차설아를 다독이고 있다가 안보부서 사람들을
남아름은 직원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너무 걱정하지 마. 지난 2년간 신지 요양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용음구에 산림 지킴이를 보내 안전상의 위험을 제거해 왔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그 사람도 보통이 아니니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믿어요.”차설아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고 하얗고 깨끗한 얼굴에는 별로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아줌마는 볼일 보세요. 제가 찾으러 가면 돼요.”“안 돼!”남아름은 차설아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용음구는 지세가 복잡하고 깊은 못과 구덩이가 너무 많아. 그리고 간혹 멧돼지와 늑대도 출몰한다고. 넌 가본 적이 없으니까 내가 전문요원을 보낼게.”“큰 문제가 없다고 하시더니 왜 그러세요? 사람 분명히 찾을 수 있다면서요?”“어...”남아름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도 크지 않고 사람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지만 어쩌면 백골 더미로 찾을 수도 있을 따름이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전에 이것보다 더 위험한 일도 많이 겪었어요, 정말 문제없어요.”차설아는 말을 마친 뒤 남아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용음구로 향했다.구불구불하고 질퍽한 산길을 지나 깊고 좁은 골짜기에 이르니 흐르는 계곡 소리가 귀에 맴돌고 그러다 이따금 한두 번 짐승의 울음이 들려왔는데 소름이 끼쳤다.방금 했던 말이 전혀 과장되지 않았는데 용음구는 확실히 너무 험악해서 정상인이라도 대처할 수 없었다. 성도윤은 눈까지 멀었으니 아마... 진작 죽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어 뼈다귀도 남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아니, 아니야. 성도윤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 분명 괜찮을 거야.”차설아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헛된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핏자국이나 유골만 안 보인다면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니 그는 분명 살아있을 거다!여자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성도윤이 남긴 단서를 찾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걸어오는 길에 축축한 흙바닥에 어렴풋이 난 발자국이 보였는데 이 발자국은 성도윤이 남긴 것이 틀림없었다. 이 발자국을 따라가면 남자를 찾
뼈를 갉아 먹던 반달가슴곰은 뒤에서 소리가 나자 이내 멈춰 서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입과 몸의 털은 온통 피투성이였고 곰은 발바닥으로 뼈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그 뼈 위에는 피투성이가 된 살점이 붙어 있었다.“아!”차설아는 무너져 내렸다... 성도윤의 뼈다귀와 살이 이렇게 생생하게 눈앞에 나타나다니!“쾅!”반달가슴곰도 흥분했는지 아니면 도발인지는 몰라도 차설아를 향해 소리쳤다.“죽여버릴 거야, 널 산산조각 낼 거라고!”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힘을 다해 다리를 돌려 반달가슴곰의 머리를 향해 힘껏 걷어찼다.그녀는 가냘픈 몸매에도 불구하고 매우 민첩했고 게다가 힘도 엄청났는데 반달가슴곰을 비틀거리게 차버렸다.“???”반달가슴곰은 아마 이렇게 사나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곰은 멍해졌고 손에 쥔 막대 뼈도 잊은 채 차설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는데 마치 이 여자 뭐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보긴 뭘 봐? 네가 내 남편을 먹어놓고 억울하다는 거야 뭐야?”차설아는 너무 슬픈 나머지 미치광이처럼 울면서 반달가슴곰을 마구 때렸다. “내가 경고하는데 지금 당장 뱉어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배를 찢어서라도 그를 되찾을 거니까!”“네가 그 사람이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이렇게 먹어버리다니... 이 숲에 이렇게 많은 멧돼지로도 모자라서 왜 사람은 잡아먹고 난리야! 뼈도 남기지 않고...”“쾅! 쾅!”반달가슴곰은 차설아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입을 벌리고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내고 커다란 곰 발바닥을 들어서는 차설아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차설아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는데 킬러 랭킹 1위의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가볍게 곰의 공격을 피하더니 반달가슴곰에게 또 다른 공격을 가했다.반달가슴곰의 눈, 코는 모두 차설아에 의해 여러 대를 제대로 맞았다.하지만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어찌할 수 없었는데 몇 번의 공격이 지나자 차설아는 체력이 떨어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머리카락도 땀에 젖었다.하지만 그녀는 지지 않을 거
“위치 추적 장치?”성도윤은 깜짝 놀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대단한데? 내 몸에 추적 장치를 달아놓고도 내가 전혀 몰랐다니. 영화 속 첩보 요원도 너만큼은 못 하겠다.”차설아는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하죠! 난 영화 속 첩보 요원보다 훨씬 대단하거든요. 그러니까 나 잘 모셔야 해요. 괜히 나한테 못되게 굴었다간 아주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걸요?”그녀는 자신만만하면서도 살짝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어찌 감히 여왕님께 잘못하겠습니까? 남은 생애,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흠, 그거면 됐어요. 아주 착하네!”차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성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러고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졸리고 추워 죽겠어요! 빨리 이불 속으로 안내해요.”이렇게 지내다 보니, 그녀는 어느새 그와 함께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오늘 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가 곁에 없어서일 것이다.그래서 결국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어서 와. 이불 속은 이미 따뜻하게 데워놨지.”성도윤은 능청스럽게 ‘충실한 침대 보좌관’처럼 행동하며 그녀를 이불 속으로 이끌었다.차가운 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서로를 감싸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차설아는 옆으로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린 채 마치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다.성도윤은 뒤에서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그 온기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보호막 같았고 덕분에 차설아는 금세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성도윤은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여보, 우리 오늘 밤에 그 두 유치한 녀석들 갈라놓은 거... 혹시 너무한 거 아닐까?”그가 말한 ‘두 유치한 녀석’이란 당연히 사도현과 배경윤을 뜻했다.솔직히, 그 둘은 늘 티격태격하는 사이였고 아마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할지도 모른다.하지만 오늘 밤 자신들이 개입하면서 상황은 좀 더 심각해져 이러다가 정말 절교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성도윤의 머리가 아파졌다.“혹시 사도현이 끝
“그게 뭔데?”“두 사람 서로의 감정을 확실히 깨닫고 흔들림 없이 서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줄 그 한 가지.”차설아는 이번만큼은 저 두 사람이 깨닫기를 바랐다.그녀와 성도윤도 그 기나긴 길을 돌아왔기 때문에 그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사람은 함께 많은 일들을 겪어야만 ‘이 사람을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차설아와 배경윤의 긴 대화가 이어질수록, 밤은 더욱 깊어졌다.배경윤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다 지쳐 잠들었고 그녀의 뺨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하지만 차설아는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지금의 이 고요함이 너무 불안했다. 이렇게 평온할 때일수록 더 큰 위기가 다가오는 법이었다.같은 시각, 성진의 차가 그녀의 집 아래에 멈춰 서 있었다.가로등 불빛이 차 위로 희미하게 드리웠고 차 안의 남자는 어둠과 빛 속에서 조각 같은 얼굴을 드러냈다.그 역시 때로는 빛 속에 머물고 때로는 어둠 속에 숨어 지내면서 가끔은 스스로조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사실, 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저택 안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화 소리도 들었고 차설아가 실명한 게 사실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그렇다면 그녀의 눈을 누구에게 줬을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성진은 차를 몰고 오는 동안 머릿속에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그는 여자의 어깨를 붙잡고 미친 듯이 소리치고 싶었다.“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왜 네 소중한 눈을 나 같은 인간한테 줬냐고!”하지만 정작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해 그렇게 따져 묻고 눈을 돌려주려 했던 순간, 그는 망설였다.그는 한때 지옥을 경험한 사람이었다.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 절망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얼마나 처참한지 아직도 잊지 않았다.그리고 한 남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속옷 하나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챙길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위층에서도 차설아와 배경윤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숨죽여 통곡하던 배경윤이 갑자기 흥분해서 소리쳤다.“나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말할 수 있다고! 드디어 목소리가 돌아왔어!”배경윤이 눈물을 닦고 기쁨에 겨워 차설아를 와락 끌어안으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야, 나도 목소리 되찾았으니까, 너도 분명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꼭 방법을 찾아볼게!”“잘 됐어! 네 목소리가 돌아온 건 정말 다행이야. 아니면 우리 전투력이 너무 약해질 뻔했잖아. 팬들 상대로 밀려서 너무 힘들었어.”차설아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웃었다.오늘 오전, 그녀와 배경윤이 무기력하게 몰려다니며 반격조차 못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배경윤이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이었다.대학교 시절, 차설아, 배경수, 그리고 배경윤은 유명한 삼총사였다.셋이 무적이었던 이유는 각자의 역할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차설아는 ‘물리적 공격’을 담당했고, 배경수는 ‘두뇌 플레이’를 맡았다. 그리고 배경윤은 ‘언어 공격’을 담당했다.하지만 지금 차설아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물리적 공격’ 능력이 반감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배경윤마저 목소리를 잃었으니, ‘언어 공격'도 무용지물이 된 셈이었다.그렇다 보니 팬들이 둘을 조롱하며 몰아붙이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맞아! 만약 내가 오늘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저 미친 팬들 제대로 박살 냈을 거야! 아까, 정말 속이 터지는 줄 알았어. 내가 제대로 반격도 못 했잖아! 안 되겠어, 사도현 찾아가서 다시 따질 거야!”배경윤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당장이라도 사도현과 한바탕 말싸움을 벌일 기세였다.차설아는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이기고 싶다면 지금은 절대 그를 찾아가면 안 돼. 그리고 당분간 연락도 하지 마. 만약 그가 진짜 너에게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너에게 만족할 만한 답을 줄 거야.”“그 답을 내가 받을 수나 있을까? 그냥 당장 그랑 싸우는 게 속이 더 후련할 것 같은데.”“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왜 네
성도윤이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넸다.“???”사도현은 남자의 말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형, 이게 정말 형 입에서 나온 말이야?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그럼 그게 완전 ‘호구’랑 뭐가 달라? 그렇게 냉정하고 도도하던 형이 어쩌다... 이제는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고? 이건 형답지 않아...”사도현은 여자를 쫓아다니긴 하지만 성도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여자에게 돈을 쓰고 달콤한 말을 하긴 해도 어떤 여자도 그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그의 사고를 지배할 수 없었다.어떤 여자가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순간, 그는 단호하게 다른 여자를 찾았다.배경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원칙이 걸린 문제라면 절대 양보하지 않았기에 오늘도 이렇게 끝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나도 오랜 시간 고민해서 얻은 결론이야.”성도윤이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사도현에게 연애 철학을 설파했다.“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과 일들을 만나게 되지. 그 중요도를 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어. 중요한 건, 네 마음속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아는 거야.”“네가 스스로의 자아를 지키는 것이 그 여자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 여자를 포기하면 되는 거고.”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네가 여자를 유혹하는 데 능숙한 건 알지만 결국 진정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야. 나는 아내의 말을 듣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혹시 네가 그렇게 못하는 건, 단순히 네가 상대방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성도윤은 날카롭게 바라보며 정확한 지적을 했다.“나는...”사도현은 그런 게 아니라고 바로 반박하려 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하자 말문이 막혔다.그는 다른 사람을 속일 수도 있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속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성도윤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성도윤은 누구보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자신의 마음속 가장 솔직한 감정을 그가 단번에 꿰뚫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형은 내가 좀
“내가 왜 경윤이한테 뭐라고 해야 하죠?”차설아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사도현에게 물었다.“만약 내가 도현 씨라면 이 일이 윤설과 관련이 있든 없든, 나는 단번에 배경윤을 위해 나섰을 거예요.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큰 모욕을 당했는데 괴롭힌 사람을 찾아서 따지기는커녕 내 여자에게 참으라고 한다면, 그건 도현 씨가 그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겠죠.”“지금 이간질하려는 건 아니지? 사람마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무턱대고 화를 내고 일이 커지면 더 큰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그게 과연 좋은 방법일까?”사도현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떠받들던 차설아가 자기편을 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경윤과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아직도 이해를 못 하시네요.”차설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 일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도현 씨의 태도예요. 그런 태도라면 어떤 여자라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그게 아니라...”사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설아야, 역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너뿐이구나!]배경윤은 타자한 후, 서러운 마음에 바로 차설아를 껴안았다.[이런 마음은 여자만이 이해할 수 있어! 도현 씨는 그저 내가 징징거린다고만 생각하겠지!]“도현 씨, 3일 안에 경윤이한테 사과할 기회를 줄게요. 하지만 어떻게 사과할지는 도현 씨가 알아서 해야 해요. 경윤아, 우리 오늘 같이 자자. 할 얘기가 정말 많을 것 같아!”차설아의 말에 배경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팔을 잡고 계단을 올라갔다.아래층에서는 두 남자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있었다.성도윤은 왜 남의 커플 문제에 자신이 이렇게 끼어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반대로 사도현은 왜 이해심 많던 차설아가 갑자기 이렇게 고집불통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형, 우리 커플 일에 형수가 너무 과하게 간섭하는 거 아니야? 원래 하루이틀이면 해
“그때는 그때고,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잖아.”샤워를 마친 차설아가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2층에서 사도현과 배경윤이 성도윤을 둘러싸고 다투는 소리를 듣고 성도윤 대신에 반박하며 나선 것이다.세 사람은 고개를 들어 목욕 가운을 입고 나온 차설아를 보고 급하게 다가갔다.“설아야, 너 혼자 내려왔어? 움직이지 마, 잠깐만.”성도윤이 제일 먼저 달려가 아기를 돌보듯 세심하게 챙기며 말했다.배경윤과 사도현도 마치 공주를 대하듯 신중하게 행동했다.[괜찮아? 기분 나쁘거나 불편한 거 없어?]성도윤이 차설아를 거실 소파에 앉히자 배경윤이 그녀의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난 괜찮아. 기분도 나쁘지 않고 아픈 곳도 없어. 내가 전에 겪은 일에 비하면 몇 명 애들이 장난친 정도인데 뭐가 대수겠어.”차설아가 배경윤의 손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안심시키려 했다.“경윤아, 네가 더 걱정이야. 기분 잡치게 하는 사람들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마. 그러면 오히려 너 자신이 힘들어져. 그냥 흘려보내. 신경 쓸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배경윤은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했다.[맞아, 맞아. 어떤 사람은 정말 마음에 두지 않더라고. 그 사람 때문에 화내는 내가 진짜 등신이지.]그녀는 당연히 차설아가 말한 ‘기분을 잡치는 사람’이 사도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도현은 오히려 차설아가 배경윤에게 작은 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더 관대해지라고 충고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들었어? 역시 형수가 마음이 넓어.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너도 같이 물려고?”사도현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절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 센 여자인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차설아의 말만큼은 예외라는 걸 알고 있었다.차설아는 배경윤의 정신적 지주이자 인간적 우상이었기 그녀의 말이면 배경윤은 무엇이든 믿었다.[도현 씨가 그 미친개라는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배경윤이 분노를 담아 타자기를 두드리며, 마치 사도현을 죽일 듯 차가운 눈빛
사도현은 배경윤이 적은 글을 보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윤설 씨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더 큰 사이버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어. 난 그냥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어.”[흠, 당연히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이지 않길 바랄 거야. 그 사람들 도현 씨 팬들이잖아. 게다가 윤설 씨까지 얽혀서 그 여자가 곤란해질까 봐 그런 거지?]배경윤은 그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윤설이 첫 번째이자 아마 유일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눈앞의 이 남자를 더 용서할 수 없었다.‘이런 바람둥이!’“조금만 머리 쓰면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알 텐데.”사도현은 배경윤의 ‘모함’을 듣고 이 오명을 씻을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차갑게 말했다.“네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이 사건에 연예인 본인을 끌어들이는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아.”그도 어쨌든 윈스 엔터테인먼트의 CEO였고 연예계의 돌아가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때로는 하나의 루머가 칼날처럼 되어 사람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을 수 있다.연예계에서 온라인 폭력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진 스타들이 많았고 배경윤과 차설아 같은 일반인은 그 악플의 고통을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헐, 이제 나를 협박하겠다는 거야? 도현 씨가 그렇게 말할수록 난 더 윤설을 찾아갈 거야. 날 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은 분노를 담아 빠르게 타자를 했다. 소리 없이 치는 타자 소리만으로도 그녀의 분노가 느껴졌다.성도윤은 그들 옆에서 분위기를 살피며 처음으로 연애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고 피곤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이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감정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상처가 되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망쳐가고 있었다.‘내가 보기엔 차설아와 내 관계가 훨씬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 같아. 내가 정말 운이 좋아.’차설아를 떠올리며 성도윤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지금 2층으로
“오늘 소란을 일으킨 사람 중에 내 팬도 있었던 거 확실해?”사도현은 사실 명성과 노출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배경윤 때문이 아니라면 절대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어색한 연애 프로그램 같은 것도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그가 이렇게 많은 팬을 얻게 된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조용한 성격이라 팬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팬들이... 오물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을 받았다.“믿을 수 없지?”배경윤이 오늘 자신과 차설아가 괴롭힘을 당한 영상 파일을 사도현에게 보여주었다.“봐봐, 그 팬이라는 여자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도현 씨가 잘생기고, 부유하고, 성격도 좋고, 완벽한 남자라며 윤설과 천생연분이라고 하더라. 도현 씨가 윤설의 왕자인데 내가 그 악녀가 되어 두 사람의 관계를 망쳤다고 하면서, 심지어 설아까지 모욕했어.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뭐, 우리 설아까지 욕했다고?”옆에서 무표정하게 싸움을 구경하던 성도윤은 배경윤의 말을 듣고 나서 차설아에게 더 한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는 사도현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빼앗 분노에 차서 영상을 확인한 뒤 싸늘하게 말했다.“이 사람들, 이런 짓을 할 용기가 있다면 그 자만과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이 성도윤에게 물었다. 이전과 달리 이제는 거부하는 태도가 없었다.“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이 사람들 다 찾아낸 뒤, 두 사람 앞에서 머리 조아려 사과하게 해야지.”성도윤이 이를 갈며 한 글자씩 뱉어냈다.이 말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끝까지 추궁할 수 있는 말이었다.“그나마 다행이네...”배경윤이 사도현을 보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저것 봐,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했으면 정상적인 반응은 저런 건데, 도현 씨는... 아니지. 도현 씨한테는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의 팬이 그냥 길 가던 사람을 괴롭힌 정도잖아. 이제야 왜 이렇게 무관심한지 알
[무슨 소리야, 그건 옛날얘기지. 지금은 완전히 아니라고! 나도 한때 도현 씨를 내 ‘남신’이라고 했었잖아? 그런데 그 결과가 어땠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형편없더라!]배경윤이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두 사람, 완전 끼리끼리야. 나랑 설아는 이제 두 사람이랑 거리를 둬야 해. 안 그러면 우리도 불행해질 거야. 봐, 오늘 내가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을 겪은 것도 다 네 탓이야.]“아니, 이게 왜 또 내 탓이야?”사도현은 어이없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죄인처럼 배경윤의 분노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당연히 도현 씨 탓이지! 오늘 나랑 설아에게 똥물을 뿌린 사람들이 누구인 줄 알아?]배경윤이 팔짱을 끼고 사도현을 노려봤다.“누군데?”사도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아무리 세상이 험악해졌다고 해도 앞을 못 보는 여자랑 말을 못 하는 여자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할 정도면 정말 제정신 아닌 인간들 아니야?’[한쪽은 도현 씨 팬들이고, 다른 한쪽은 윤설의 광적인 팬들이야.]“뭐?”사도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내가 도현 씨를 알지 않았으면 윤설이랑 엮일 일도 없었을 거고, 그 여자의 팬들에게 이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당신 팬들도 마찬가지야. 윤설 팬들이랑 다를 게 뭐야? 둘 다 극성맞고 정신 나간 사람들뿐이야.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도현 씨 탓이라고!]배경윤은 흥분해서 글을 계속해서 쳐냈다. 사도현은 그녀가 쓴 긴 글을 읽고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다. 글에는 온통 그에 대한 비난이 가득했다.사도현은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근데 말이야, 팬들이 한 행동을 내가 어떻게 책임져?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르고 수천, 수만 명의 팬을 내가 어떻게 다 통제해?”[핑계 대지 마!]배경윤은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팬들의 행동은 결국 본인이 책임지는 거야. 팬덤 문화 몰라? ‘팬들의 행동은 본인이 책임진다.’ 이게 기본 원칙이야! 팬들이 왜 그렇게 극성인지 알아? 그건 본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