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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3화

작가: 조십일
한아람이 창립한 센트는 서해금이라는 파트너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조향 기술도, 회사를 일으킬 자금도 한아람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해금은 일반적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재능이 타고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처세에 능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기에 비즈니스를 하기엔 최적의 인물이었다. 게다가 한아람과는 동창이기도 했다. 아마 그 이유로 한아람의 부모님은 서해금을 사업 파트너로 골랐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질투심이라는 건 무서운 것이었다.

한아람에게는 그녀를 사랑하는 부모님과 남편이 그리고 똑똑한 아들이 있었다. 심지어 조향 쪽으로도 재능이 뛰어났다. 그에 반해 서해금은 여기저기 돈을 빌려 겨우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회사에 수익을 내기 전까지는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문제였다. 게다가 전남편이 일찍 사망한 탓에 서해금은 죽은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채로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이런 비교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 누구든 모든 것이 더 원망스럽고 비참하기만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 질투심을 억눌러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삼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뺏어오기 위해 수작을 부렸다.

한아람이 사망한 후 비록 송병천이 깔린느 대부분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조향 업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송병천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사실상 깔린느는 서해금 혼자 모든 실권을 손에 쥐고 관리하고 있었다. 서해금은 깔린느와 송씨 가문의 사모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재벌가로 출세했다.

만약 한아람이 죽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모든 것은 한아람이 누리고 있어야 했다. 만약 서해금이 정말 한아람을 죽인 진범이라면, 그렇다면 서해금과 송가람은 바로 한아람의 사망의 최대 수혜자였다.

서해금은 그 당시의 질투심을 누르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심지어 회사의 기업사에 한아람을 언급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서해금은 본인의 야망을 숨기는 것에 누구보다 능숙했다. 그녀는 송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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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 한현진을 마주칠 줄은 몰랐던 은서하는 황급히 얼굴의 눈물자국을 닦아냈다. 그녀는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안녕하세요.”은서하는 주세은보다 고작 몇 살 더 많았다. 한 눈에 봐도 앳되보이는 얼굴이었다. 말간계란형 얼굴은 심지어 창백해 보이기도 했다. 툭 치면 무너질 것 같은 가녀린 모습에 한현진은 문득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래서 은서하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기도 했다. 한현진이 티슈를 뽑아 은서하에게 건네며 다정하게 말했다. “닦아요.”티슈를 건네받은 은서하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현진은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전 화장실로 들어설 때 한현진은 어렴풋이 병원과 통화 중인 은서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화 내용엔 결제와 수술비 등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저도 모르게 하현주가 입원해 있을 당시 엄마를 살리고 싶었지만 병원비용을 지불할 수 없던 무력감을 떠올린 한현진이 저도 모르게 질문했다. “집에 힘든 일 있어요?”그 질문에 울음을 멈추었던 은서하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은서하는 눈물을 꾹 참으려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뇨, 괜찮아요.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대표님. 전 먼저 가볼게요.”말을 마친 은서하는 다급하게 화장실을 벗어났다. 은서하가 화장실을 나서자 또 다른 칸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칸막이 문이 열리고 조향팀 B구역 1팀 팀장인 이시연이 모습을 드러내며 한현진을 불렀다. “대표님, 묻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더 캐물으셔도 어차피 서하 씨는 대표님께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예요. 이 일은 대표님이 관련된 일이기도 하니까요.”멈칫한 한현진이 물었다. “저와 관련이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이죠?”이시연도 오지랖이 넓거나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은서하는 재무팀에서 그나마 얘기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평소 영수증을 청구하러 가면 다른 직원들인 이런저런 이유로 일을 미루기 일쑤였다. 경비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저녁을 사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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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만 아니라 재무팀의 모든 직원이 서하 씨를 따돌리고 있어요. 심지어 서하 씨와 친하게 지내던 다른 부서의 직원들도 이젠 감히 서하 씨에게 말을 걸지도 못하고요. 행여나 자기에게 불똥이 튈까 두렵기 때문이겠죠.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서하 씨는 아마 두 달이면 사직서를 내게 될지도 몰라요. 빠른 시일 내로 서하 씨에게 맞는 직장을 찾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 사이 생기는 병원비를 서하 씨는 지불하기 어려울 거예요.”굳은 얼굴을 한 한현진의 표정이 침울하게 변해갔다. “이 팀장님, 은서하 씨와 친하세요?”이시연이 말했다. “그럭저럭요. 저희 B구역의 영수증 관리는 제가 담당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서하 씨와는 제가 제일 많이 얘기하는 편이예요. 밥도 자주 같이 먹었고요.”한현진이 속삭이며 이시연에게 몇 마디 건네자 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해볼게요.”화장실에서 나오자 박해서가 한현진을 불렀다. 깔린느의 중요 고객 중 한 명인 홍혜림이 곧 회사에 도착한다며 한현진이 직접 마중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현진은 로비로 걸음을 옮기며 박해서에게 물었다. “오늘 손님이 오신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박해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비서실에서 공지한 거라 저도 잘 모르겠어요.”한현진의 손에는 중요 고객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녀는 심지어 홍혜림이 누군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특수 주문 제작을 하는 고객들은 일반적으로 서해금이 직접 접대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서해금은 인스타그램에 몰디브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사진을 업로드 했으니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지금 이 시점에 회사에 방문할 리가 없었다. 서해금은 절대 한현진에게 자신의 인맥에 가까워질 기회를 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의심스러운 마음을 잠시 접어둔 채 한현진은 응접실 문을 열었다. 응접실은 화려하게 인테리어가 되어있었다. 가죽 소파에는 단아해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앉아있었다. 비록 나이가 있긴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26화

    성월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이분이 바로 얼마 전에 송씨 가문으로 돌아왔다는 잃어버렸던 딸이군요. 그러니 부대표도 하는 거지.”한현진이 씩 미소 지으며 화를 내지 않았다. “죄송해요, 사모님. 제가 아직 회사 상황을 잘 몰라서 결례를 했네요. 시향하고 싶은 제품을 말씀해주시면 제가 준비해드릴게요.”한현진의 단정한 태도에 홍혜림의 날이선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다. 홍혜림이 태연하게 말했다. “얼마 전 새로 만든 운천, 그걸 시향해 보고 싶어요. 정말 당신들이 얘기한 것처럼 그렇게 좋다면 아들 결혼식 때 손님들께 드릴 답례품으로 주문하려고요.”“운천”이라는 향수를 몰랐던 한현진은 성월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성월이 나지막이 말했다. “한 대표님, ‘운천’은 파시면 안 돼요. 그건 얼마 전 민주련 사모님께서 주문하신 향수예요. 민주련 사모님은 다른 분과 같은 향수를 쓰는 걸 제일 싫어하세요. 저희쪽에서도 2차 판매는 하지 않을 거라고 계약을 체결했고요. 그리고 아무리 홍혜림 사모님께서 ‘운천’이 마음에 드셨다고 해도 결혼식 전에 제작을 완성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어려워요.”한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2차 판매도 할 수 없을 만큼 진귀한 향수를 홍혜림 씨는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성월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녀 역시 대체 누가 “운천”의 존재를 누설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운천”을 시향하러 회사에 방문한 홍혜림에게 시향조차 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면 그녀의 미움을 살 것이 분명했다. 지금 홍혜림이 이 자리에 있다는 건 분명 누군가 시향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일 테였다. 홍혜림을 대하는 성월의 태도로 보아 그 VVIP 고객이 서해금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사람 같았다. 서해금은 향수를 판매할 수 없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홍혜림에게 회사에 방문해 시향해 보라고 했을 리가 없었다. 한 번의 선택으로 두 명의 고객에게 밉 보일만큼 서해금은 멍청하지 않았다. 이 일은 송가람과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현진을 홍혜림의 눈밖에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27화

    그러나 홍혜림은 한현진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전 시향을 꼭 해야겠어요. 향이 좋고 우리 집안 체면을 살릴 수 있는 제품이라면 그게 얼마가 됐든 지불할 수 있어요.”한현진이 해명을 시도했다. “저는 절대 그런 뜻이...”홍혜림이 한현진의 말을 자르며 짜증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런저런 헛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요. 딱 한 가지만 물을게요. 시향할 수 있어요, 없어요?”주먹을 꽉 움켜쥔 한현진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가능하죠.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말하며 고개를 살짝 숙인 한현진이 몸을 돌려 응접실을 나섰다. 한현진은 재빨리 강한서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한현진의 말을 들은 강한서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일단 ‘운천’이라는 향수가 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향수 진열대 앞에선 한현진은 ‘운천’이라는 향수를 찾을 수 있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청량한 향이 물씬 풍겨왔다. 그건 고요한 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코를 찌르는 짙은 향은 아니었고 어떤 식물에서 추출해 낸 향인 것 같았다. 굉장히 천연적이고 자연스러웠다. 이 향수를 뿌린 사람이 옆을 스쳐지나간다면 그녀는 아마 이 향이 그 사람 본연의 체향이라고 느껴질 것 같았다.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극강의 자연스러움이었다. 한현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홍혜림은 이 향수를 당연히 마음에 들어 할 것이라고. 한현진 자신 역시 이 향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이 향수로 홍혜림 씨를 유혹할 수 있었던 거야. 너무 독특해.”한현진이 조심스레 샘플 뚜껑을 닫으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제 어떡하지? 아니면 내가 지금이라도 가서 이 향수는 제작시간이 오래 걸려서 아드님 결혼식 전까진 출고가 어렵다고 얘기할까?”강한서가 말했다. “만약 처음 그 분이 시향 하겠다고 했을 때 아예 그렇게 말했다면 어쩌면 그냥 넘겼을 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돌아가 만들 수 없다고 얘기한다면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28화

    송가람도 걸음을 옮겨 홍혜림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한현진에게 이 상황을 대처할 만한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홍혜림은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운천”을 시향하기만 하면 홍혜림은 절대 다른 향을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다. 홍혜림이 시향실에 도착했을 때, 한현진은 이미 준비를 마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현진의 옆 테이블에는 수십 병의 향수가 진열되어 있었다. 홍혜림이 미간을 찌푸렸다. “전 ‘운천’을 시향하겠다고 했을 텐데, 왜 이렇게 많이 꺼내놓은 거죠?”한현진이 미소 지으며 못생긴 유리병 하나를 가리키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바로 ‘운천’이예요. 혹여 사모님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싶어 다른 것도 시향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봤어요.”“주도면밀하긴 하네요.”홍혜림은 다리를 꼬고 앉아 好整以暇道말했다. “시작하죠.”고개를 끄덕인 한현진이 시향지에 향수를 묻혔다. 그 모습을 본 주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먼저 ‘운천’부터 시향해야 하는 거 아인가요?”멈칫하던 홍혜림은 그제서야 한현진이 가져온 향수가 “운천”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수작인 거죠?”한현진이 태연하게 설명했다. “좋은 건 당연히 제일 마지막에 시향 하셔야죠. 그래야 사모님께서 ‘운천’이 얼마나 특별한 향수인지 아실 수 있잖아요.”말하며 한현진이 홍혜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모님, 이 향수는 ‘인 드림’이라는 제품이에요. 저희 회사의 수석 조향사의 작품이에요. 이 향수 역시 ‘운천’과 마찬가지로 아직 출시되지 않았어요.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시리즈의 향수로 아직 시향하신 고객님이 없어요. 사모님께서는 수많은 향수를 사용해 보셨으니 향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모님께 피드백을 구하고 싶었어요. 사모님 같은 VVIP 고객님의 조언은 저희가 향을 제조함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피드백이 되거든요.”그 말에 홍혜림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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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현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 응접실에서 사모님을 처음 봤을 때 사모님께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메이크업은 한 상태였고 저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화장품은 조금씩이라도 향이 있기 마련인데 사모님께는 화장품 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사모님은 향을 싫어하는 분도 아니셨죠. 그래서 전 사모님께서 시향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신 거라고 생각했어요.”홍혜림은 순간 한현진이 달리 보이는 것 같았다. 고객의 사소한 부분까지 캐치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고객의 입장에서 상품을 고를 줄 알았다. 단지 상품을 팔기 위한 목적으로 아무 소리가 지껄이지는 않는다는 얘기였다. 홍혜림이 덤덤하게 말했다. “계속 하죠.”송가람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시선을 내린 한현진이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계속 시향을 이어갔다. 한현진은 연속 9개의 향수를 홍혜림에게 건넸다. 그녀는 화려한 언변으로 모든 상품이 홍혜림의 마음에 쏙 들게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향을 맡으면 사람의 후각은 점점 둔해지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모든 향수의 첫 번째 향, 중간향, 잔향까지 전부 느껴야 했으니 걸리는 시간이 너무 짧은 편도 아니었다. 반복되는 시향으로 홍혜림은 마지막엔 모든 향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한현진이 아무리 얼마나 좋은 향이라 칭찬 일색이어도 홍혜림에겐 그저 평범한 향 같을 뿐이었다. 홍혜림의 표정에 드리운 지루함을 보아낸 한현진이 시기적절하게 입을 열었다. “사모님, 일단 물이라도 마시면서 좀 쉬세요. 잔향이 가시면 ‘운천’을 시향해 드릴게요.”손을 내저은 홍혜림이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바로 시작하죠.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조금 피곤하거든요.”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지금 바로 시향해 드릴게요.”한현진이 향수를 시향지에 묻히는 순간,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송가람은 “운천”을 시향한 홍혜림이 감탄하는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향기가 시향실 가득 퍼지는 동안 홍혜림은 아무 말도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30화

    한현진은 얼마 전 탕비실에서 조향사 몇 명이 모여 후각에 대한 대화를 나눈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조향하면서 너무 많은 향료의 냄새를 맡아 후각이 둔해진다며 일반적으로 냄새를 맡는 작업은 3시간 이상 지속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한현진이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시향한지 2시간 30분이 흘러가고 있었다. 홍혜림은 전문적인 조향사가 아니었으니 2시간 30분이면 후각이 둔해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망설이며 결정하지 못하는 홍혜림의 모습에 한현진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홍혜림에게는 먹히지 않았을까 불안해졌다. 홍혜림은 “인 드림”과 “운천”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결국 “운천”으로 향했다. 한현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홍혜림이 입을 열려는 그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가방을 열어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한 홍혜림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홍혜림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나왔어? 오늘 수업 안 해? 아, 그래? 좀 기다려야 할 거야. 아직 시향 중이거든.”“전에 쓰던 것들은 너무 오래 되서 지겨워졌어. 다른 거로 바꿔볼까 해. 좀 젊어 보이는 거로.”“자식, 아무튼 말은 예쁘게 한다니까.”“마음에 드는 건 있는데 고민 중이야. 둘 다 괜찮은 것 같아.”“다 사라고?”홍혜림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네 돈 아니라고 쉽게 얘기하네.”“돈의 문제가 아니라 샀다가 뿌리지 않을까 봐 그러지. 네 할머니가 보면 또 잔소리하시잖아. 할머니 잔소리가 지나면 네 아빠가 또 시작할 거고. 머리 아파.”“네가 골라준다고? 네가 향수에 대해 알기나 해? 전엔 향수 바꾼 것도 눈치 못 채던 놈이.”“알면서 모른 척 한 거라고? 그 말을 내가 믿어? 내가 널 몰라?”“그래, 알겠어. 그럼 네가 와서 골라. 네 마음에 드는 거로 살게. 운전 조심하고. 나까지 걱정할 일 만들지 마.”전화를 끊은 홍혜림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잠깐 기다리죠. 아들이 와서 골라준다네요.”한현진은 여전히 마음을 놓을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31화

    금발의 소년이 홍혜림의 팔을 덥석 잡았다. “그건 걔가 죽음을 자초한 거고요. 터널에서 역주행하면서 시속 160까지 딛으니까 그렇죠. 제가 120km/h 초과하는 거 보셨어요?”홍혜림이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120이 느려?”“안 느려요, 안 느려.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딱 이번 한 번 만요. 너무 타고 싶어서 그랬어요. 엄마가 이번만 모른 척 해주면 다시는 안 탈게요.”금발의 소년은 홍혜림이 대답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엄마, 요즘 화장품 바꾸셨어요? 피부가 왜... 이렇게 이상하지?”그 말에 홍혜림이 순간 긴장한 표정으로 얼굴을 만졌다. “아닌데, 줄곧 쓰던 브랜드야. 내 얼굴이 왜? 어디가 이상한데?”금발의 소년이 옅은 주황색의 눈을 똑바로 뜨고 홍혜림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 예쁘네.”홍혜림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는 금발의 소년을 한 손으로 툭 밀어냈다. “자식, 엄마를 놀리기는.”금발의 소년은 쪼르르 달려와 홍혜림의 팔을 끌어안았다. “진심이에요. 다른 애들 엄마는 점점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엄마는 점점 더 젊어지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 옷 가져다주시려고 학교에 왔을 때 다들 엄마가 제 누나인 줄 알았다니까요. 제 친구는 저한테 엄마 전화번호를 물어보기도 했었다고요. 제 매형이 되고 싶다면서요. 생각해 보니까 아빠가 절대 동의할 리가 없어서 단호하게 거절했어요.”예의 없다며 아들을 꾸짖는 홍혜림의 말과는 다르게 그녀는 전혀 화가 나 보이지 않았다. “됐어. 장난 그만해. 엄마 향수 골라준다며? 자, 얼른 고르고 집에 가자. 네 아빠 곧 퇴근할 시간이야. 식사할 시간까지 집에 없으면 또 그 더러운 성질부릴 거야.”금발의 소년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현—”말을 다 내뱉기 전에 멈칫하던 소년이 홍혜림에게 물었다. “엄마, 이 누나는 뭐라고 부르면 돼요?”“이 분은 깔린느의 부대표님이신 한현진 씨야.”홍혜림이 간단하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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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67화

    주현의 생각은 성월과 달랐다. 송가람은 사랑에 눈이 멀어 남자의 사랑을 바랐지만 주현은 아니었다. 그녀의 목표를 애초부터 매우 명확했다. 주현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신분과 지위를 노렸다. 그건 20년, 30년을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 주현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 눈앞에 놓였는데 그 기회를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주현은 성월의 성격을 잘 알았다. 성월은 반평생을 야심으로 가득 찬 서해금 곁을 지키며 진작 서해금의 충직한 개가 되었다. 성월에게 신분은 뛰어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거였고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기회를 잡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해금 역시 자신의 두 손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송병천과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서민 출신에 남편을 잃고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무슨 수로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웃기지 말라 그래.’하지만 그 말을 주현은 감히 성월 앞에선 할 수 없었다. 주현은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이모, 도와줘요. 신씨 가문으로 돌아가든 아니든 저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송가람 씨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할 수 있는 일로 부탁해요. 활동이든 파티든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자리로요. 그래야 신씨 가문에 호감을 살 수 있죠.”성월의 학창 시절, 그녀의 집안은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주현의 부모님이 빌려주신 돈으로 급한 불을 끈 덕에 성월은 늘 주현의 집안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주현의 애교에 견디지 못한 성월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송가람 씨 비서로 전근 보내볼게. 너, 네 남자친구한테 기본적인 건 잘 가르쳐. 묻는 말에 아무 것도 대답 못하면 안 돼.”주현이 순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성월에게 팔짱을 끼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이모! 역시 이모가 날 제일 예뻐할 줄 알았어. 주말에 집에 와서 식사해요. 안 가신지 꽤 됐잖아요...”한편, 사무실로 돌아온 한현진의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만약 어제 바로 세정제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66화

    서해금이 입술을 짓이기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냉정하다니, 한현진 답지 않아.”성월이 말했다. “사실 전 그렇게 냉담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오일을 깨뜨린 것도 주혁 씨였고 몰래 부업을 하다 한 대표님 얼굴에 먹칠한 것도 주혁 씨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원망하는 마음이 있을 거예요.”말이 없던 서해금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인사팀에 잠깐 다녀와요. 일단 주혁을 가람이 운전기사로 전근시켜요.”성월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대표님, 가람 아가씨에게 운전기사를 붙일 생각이시면 제가 다른 기사님을 찾을게요. 회사에는 지금 마침 새로 입사한 젊은 신입사원들이 많아요. 어리고 건강하고 운전 경력도 전부 5년이 넘었어요. 주혁 씨는 한현진 곁에서 한동안 일을 하신 분인데, 가람 아가씨 운전기사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아요.”“전근시키라고 하면 시켜요. 제가 이렇게 하는 덴 이유가 있어요. 그러니 성 비서는 나서지 말아요.”성월이 다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성월이 사무실을 나서자 주현이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모, 어떻게 됐어요? 대표님께 말씀 드렸어요?”성월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대표님께서 이미 송가람 씨에게 다른 운전기사를 붙이셨어. 이미 결정된 일이야.”순간 주현은 조바심이 났다. “왜 갑자기 결정 난 거예요? 회사에서 요즘 새로 신입사원 모집했잖아요. 보안팀은 싫어할 거란 말이에요.”성월이 말했다. “대표님께서 주혁을 송가람 씨 운전기사로 전근시켰어. 지금 인사팀에 가서 그 일부터 처리해야 해.”그 말을 들은 주현이 투덜거렸다. “한현진 밑에 있던 사람이잖아요. 게다가 본인 상사를 배신까지 했고요. 대표님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람을 딸 운전기사로 쓰시겠다는 거예요?”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린 성월이 주현을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성월은 주변을 확인하고 나서야 주혁의 팔을 내치며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너 미쳤어? 여긴 회사야. 여기서 집인 줄 알고 그렇게 큰 소리로 대표님 뒷담화를 하는 거야?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65화

    직원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어떤 직원은 회사의 조치가 꽤 인간적이라며 칭찬했고 또 어떤 직원은 아무리 화장실 청소라도 그렇게 부식성이 강한 세제를 쓰진 말았어야 했다며 안전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회사의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이번 일은 단순히 청소 직원이 화상을 입은 것으로 그쳤지만 만약 누군가 범행을 저지르려고 한다면 부식성이 강한 세정제는 범죄자에게 칼을 준비해준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꼴이었다. 의문을 제기하던 직원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한현진과 눈을 마주쳤다. 그제야 실언했다는 것을 인지한 직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대표님, 전 회사에서 조치를 제대로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요. 단지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저도 모르게 제일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본 거예요.”한현진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위험 요소요?”그 직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못... 못 들으셨어요?”“죄송해요.”한현진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 친구 문자에 답장하느라 못 들었어요.”직원이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직원이 얼른 말을 이었다. “회사에서 며칠 동안 청소하시는 직원분들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잖아요. 그 일 때문에 다들 마음이 뒤숭숭해요.”한현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직원이 말을 이었다. “아, 맞다. 대표님. 다치신 분 중에 대표님이 아는 사람도 있어요. 전에 대표님 운전 기사셨던 주혁 기사님이요. 그 분이 제일 심하게 다치셨어요.”한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기사님이요? 확실해요? 어제 볼 일 보러 갔다가 기사님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셨는데. 언제 다치신 거예요?”한현진의 말에 직원이 멍해졌다.“그럴 리가요. 며칠 전에 이미 다치셨어요. 대표님과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내셨어요.”한현진이 곰곰이 생각했다. “그날 제가 급한 일 때문에 길게 얘기를 나누진 못했어요. 손에 붕대 같은 건 본 기억도 없고 기사님께서도 저한테 그런 얘기는 없으셨는데... 심하게 다치셨어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64화

    막 전화를 끊으려던 그 순간, 박안수가 다시 불렀다.“아, 그리고...”“뭔데?”“오늘 경찰서에서 한현진과 마주쳤어.”서해금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한현진이 경찰서엔 왜?”“나도 자세한 건 안 물어 봐서 잘 몰라. 하지만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 혼자가 아니라 6, 7살 쯤 되는 어린 아이와 함께 왔었어.”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던 서해금이 또 물었다. “한현진이랑 얘기했어? 무슨 얘기했는데?”“괜히 의심할까봐 내가 경찰서에 간 이유를 사실대로 얘기했어. 한현진도 더 묻지 않았고.”우물 쭈물거리며 숨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당당하게 대답하는 편이 오히려 의심을 덜 사는 방법이었다. “그게 다야?”“응.”생각의 잠겼던 해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한테 손에 상처는 뭐라고 얘기했는데?”“회사에서 청소하다가 부식성 제품에 다친 거라고 했어.”서해금이 원망하듯 말했다. “왜 회사에서 다친 거라고 했어. 회사에서 그렇게 부식성이 강한 제품을 쓸 리가 없잖아.”“그렇다고 내가 집에서 다친 거라고 할 순 없잖아. 집에는 회사에서 다친 거라고 했는데. 조사 협조 요청을 나한테만 하는 게 아니잖아. 게다가 그 두 사람은 거짓말을 아예 못 해. 만약 경찰이 내 손에 관해 묻기라도 한다면 바로 들켜 버리는 거잖아.”서해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여자는 미쳤고 애는 귀가 먹었는데, 그런 병X도 제대로 통제 못 해?”순간 얼굴을 찡그린 박안수가 말했다. “말 그렇게 하지 마. 두 사람 불쌍한 사람들이야.”“뭐가 불쌍해. 도박쟁이 가정폭력범을 성실하고 부지런한데다 박학다식한 남편으로 바꿔줬는데. 우리한테 고마워해도 모자라.”서해금의 말에 박안수는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너는 대화를 이어 가고 싶지 않았던 서해금이 당부하며 말했다. “이만 끊어. 가람이한테 당신을 기사로 쓰라고 얘기하러 갈 거야. 소식 기다려.”박안수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그래.”전화를 끊은 서해금은 아무리 생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63화

    “아니.”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렸다.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경찰에겐 뭐라고 했어?”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대로 얘기했어.”“박안수!”서해금은 참기 힘들 정도로 화가 끓어올랐다. “지금이 농담할 때야?”“농담 아냐.”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더 가라앉았다. “그럼 내가 뭐라고 말할까? 네가 준 신분이니 난 당연히 주어진 대본대로 연기할 수밖에. 그럼 내가 난 박안수라고 얘기했어야 해? 죽은지 27년도 더 된 사람이야. 박안수가 어떻게 돌아와?”그의 목소리엔 고통과 원망으로 가득 했다. 그 순간, 서해금의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날 탓하는 거야?”말이 없던 상대방은 잠시 후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적 없어.”“박안수, 지금 날 탓하는 거잖아.”서해금이 공격적인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때 빚을 진 사람도 당신이고,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당신이었어. 당신이 가람이를 키울 능력이 없었던 거고, 당신이 가람이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길 바랐고, 그래서 나한테 도와달라고 사정한게 당신이었어.”“내가 당신한테 돈 안 줬어? 지금껏 내가 당신한테 준 돈이 얼만데. 당신은 얼마든지 해외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어. 굳이 한주에 남겠다고 한 건 당신이야. 내가 당신에게 그럴 듯한 신분을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당신이 무슨 명분으로 가람이 앞에 나타날 건데? 당신이 이렇게 당당하게 가람이를 만날 수나 있었을 것 같아?”목이 메인 남자는 한참만에야 눈을 감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 탓한 거 아냐. 난 그저 이렇게 조마조마 마음 졸이는 생활에 지쳤을 뿐이야. 난 집에서도 감히 옷을 못 벗어. 잠도 깊게 잘 수가 없어. 길에서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 사람은 날 보면서 반갑게 인사하는데 난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몰라. 그러면서도 아는 척, 반가운 척 인사를 해야 해. 심지어 아무리 아파도 검사도 못 해. X발, 병원도 가질 못한다고!”남자가 깊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62화

    “네, 볼 일 봐요. 회사로 복귀하면 다시 얘기하죠.”한현진이 전화를 끊었을 때 차는 이미 회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한현진은 곧바로 로비로 향했다. 회사의 프런트가 한현진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짧게 인사를 받은 엘리베이터에 탄 한현진은 사무실이 아닌 2층을 눌렀다. 회사 건물은 2층부터 화장실이 있었기에 1층엔 화장실이 없었다. 한현진은 아예 2층부터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역시 공교롭게도 2층에 도착한 한현진은 마친 청소 중인 직원과 마주쳤다. 근무 시간이 화장실엔 사람이 없었다. 직원은 바닥을 닦고 있었고 세면대와 멀지 않은 곳에 청소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 위엔 청소 용품으로 가득 했다. 한현진은 고개를 숙여 청소 용품을 확인했다. 청소차엔 수많은 플라스틱 통과 병이 있었고 그 안엔 전부 액체가 담겨져 있었다. 굳이 뚜껑을 열지 않아도 소독제의 냄새가 올라왔다. 그러나 그 제품들은 그 어떤 별다른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부식성이 그렇게 강한 용액을 플라스틱 병에 담진 않았을 거 아냐.’“누구세요?”청소차를 관찰하는 한현진의 등 뒤로 사투리 억양이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현진이 몸을 돌리니 청소 중이던 직원이 보였다. 그 직원은 아래층 청소를 도맡아 하는 분이라 한현진을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한현진이 화장실을 사용하려는 것이라 생각한 직원이 말했다. “아직 소독제를 쓰지 않았으니까 볼 일 보려면 얼른 봐요.”한현진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청소차의 물건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여쭤볼게 있어요. 화장실 청소를 하실 때 어느 브랜드의 농도가 얼마인 세정제를 사용하세요?”직원이 말했다. “도매 시장에서 파는 회색통이요. 커다란 거. 엄청 싸요.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사려고요?”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이 항상 깨끗해서요. 저도 집에서 써보려고요.”청소 직원이 얼른 한현진을 말렸다. “절대 사지 마요. 변기의 때는 우리가 항상 솔로 조금씩 닦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61화

    또 다른 경찰이 물었다. “그래서 지장은 찍을 수 있어요?”“손이 그 지경인데 지장을 어떻게 찍어? 손을 보니까 지장은 무리인 것 같아서 포기했지. 어차피 지문도 완전히 회복하긴 힘들 것 같았어. 그래서 애들한테 홍채와 성문을 따라고 했어.”말을 마친 키 큰 형사가 한현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중에 회사에 가셔서 얘기 좀 하세요. 그렇게 부식성이 강한 제품은 얼른 교체하라고요. 만약 누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고 그 제품으로 가해라도 하면 회사에서도 책임지셔야 해요.”생각에 잠겼던 한현진이 그 말에 얼른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알려주셔서 고마워요.”경찰서에서 나온 한현진은 내내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은서가 본 것은 주혁의 태반이나 점이 아니라 청소 용액에 부식되어 생긴 상처였다. 어차피 납치 사건의 범인은 이미 잡혀 경찰서에 있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급해서 상처를 치료도 하지 않고 경찰서로 달려온 것일까?한현진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회사에선 그런 고농도의 부식성 제품을 구매했을 리가 없었다. 형사의 말처럼 그런 제품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한현진은 이시연의 연락처를 찾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음이 거의 끝나가도록 이시연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곧이어 강한서에게 연락했다. 몇 초 후 통화가 연결되었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강한서가 아닌 민경하였다. 강한서는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어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기에 민경하가 그의 휴대폰을 갖고 있었다. “사모님, 저예요. 대표님께서 지금 중요한 회의 중이시라 전화를 받기 힘든 상황이에요. 급한 일이시면 저에게 얘기하셔도 돼요. 급한 일이 아니면 회의가 끝나면 바로 전화 드리라고 대표님께 말씀 드릴게요.”“급한 건 아녜요. 제가 지금 급히 회사에 가봐야 하는데 아직 은서랑 같이 있어서요. 제가 조금 이따가 회사로 가는 길에 은서를 먼저 한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60화

    주혁은 한현진보다 조금 더 먼저 경찰서에 도착한 것 같았다. 한현진이 도착했을 땐 주혁은 입구에서 통화 중이었다. 안색이 어두웠지만 그는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 대화하고 있었다. 그를 먼저 발견한 한현진이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주혁이 곧 경계하듯 고개를 돌렸다. 한현진을 본 주혁이 멈칫하더니 곧 전화를 끊고 다가왔다.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한현진이 말했다. “일이 좀 있어서요. 기사님도 일 보러 오셨어요?”짧게 대꾸한 주혁이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8년 전 제 아들을 납치한 마지막 용의자가 잡혔다고 해서요. 조사에 협조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왔어요.”한현진이 놀라운 듯 물었다. “아드님이 납치되었었어요?”주혁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8, 9년 전 일이죠. 납치된 동안 납치범에게 맞아 치료 시간을 놓쳐 청력도 잃게 된 거예요. 그 사건을 맡은 형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사건이 종결되면 배상금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얘기하는 동안 주혁은 아래쪽에서 자신의 손을 지긋이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는 입술을 짓이기며 조용히 손바닥을 다리에 대고 말을 이었다. “곧 아이에게 인공 달팽이관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주혁의 이야기가 한현진의 호기심을 자극하긴 했지만 그녀는 예의상 더는 그 일에 관해 묻지 않았다. 한현진은 대화주제를 돌리며 주혁에게 물었다. “제가 전에 추천해준 의사 분께 가 보셨어요?”주혁이 멈칫하며 대답했다. “아직이요.”한현진에게는 꽤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주혁이 최대한 빨리 아이를 데리고 검사를 받으러 가 인공 달팽이관을 제작할 것이라 여겼다. 아무래도 주혁은 규정을 어기고 부업을 할 만큼 누구보다 간절하게 수술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현진이 그에게 일반 병원보다 더 싼 가격에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의사를 추천해주었음에도 지금까지 검사조차 받지 않았다고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요즘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요. 전근된 곳이 전처럼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59화

    하온이는 적합한 골수를 기다리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골수를 의식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처음으로 하은이에게 기회가 찾아 왔을 때는 골수 의식의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하온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의 집안은 이미 빚더미에 앉은 상황이라 아무리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도 수술비를 모을 수 없었다. 그러니 하온의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독하게 먹고 수술을 포기한 채 아득바득 돈을 모으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하지만 곧 있을 줄 알았던 두 번째 기회는 그리 빨리 오지 않았다. 너무 오랜 기다림을 견뎌냈지만 하온의 몸은 이미 수술을 진행 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져 있었다. 하온은 하루하루 날이 다르게 시들어 가는 꽃 같았다. 은서는 낮엔 하온이와 놀다가도 저녁엔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렸다. 하온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 은서는 강한서 품에 안겨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은서가 말했다. “삼촌, 저도 죽어요?”“삼촌, 우린 왜 이런 병에 걸린 거예요?”“삼촌 부자잖아요. 하온이 오빠가 수술할 수 있게 돈 빌려주시면 안 돼요? 제가 커서 돈 벌면서 갚을게요. 하온이 오빠 죽는거 싫어요.”강한서는 은서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은서는 아직 너무 어려서, 인생은 가끔 이렇게 운명의 장난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목숨으로 돈을 맞바꾸기는 쉬운 일이었지만 돈으로 목숨을 살 수는 없었다. 강한서는 은서가 아직까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때의 은서는 고작 5살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한현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세상에는 가여운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니 혼자의 힘으로는 고작 얼마의 힘이나 보탤 수 있을까. 그렇다고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는 아이의 기대를 깨트릴 수도 없었다. 한현진은 정중하게 물었다. “정말 이거 전부 기부할 거야? 기부하면 은서에겐 아무 것도 없는 거야.”고개를 끄덕이던 은서가 곧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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