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현진이가 강한서라면 정신을 못 차린다 했더니, 개자식 꾸미니까 세상 사람 다 기죽게 멋있잖아.’워낙 키가 컸던 터라 강한서는 어디를 가도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러나 지금 강한서는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입꼬리를 내리고 인상을 쓰고 있는 강한서의 날카로운 눈빛이 한성우와 차미주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성큼성큼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 “어딨어?”강한서가 입을 열자 차미주는 곧 그가 온몸으로 내뱉고 있는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성우는 굳게 닫힌 수술실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갔어.”강한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왜 막지 않은 거야.”그러더니 그는 더 이상 한성우를 신경 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수술실 문 앞으로 걸어가 있는 힘껏 문을 두드렸다. “한현진, 나와!”“대체 언제 임신한 거야. 왜 나에게 말 안 했어?”“내가 파혼하겠다니까 아이를 지우려는 거야? 왜 이렇게 멋대로 굴어?”“아이는 그쪽 혼자만의 것이 아니야. 나랑 상의했어? 왜 그쪽 마음대로 결정해.”“한현진. 나와서 똑바로 설명해.”높게 울려 퍼지던 강한서의 목소리가 나중에는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무슨 설명을 하라는 거야.”등 뒤로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움찔, 몸을 굳혔다. 그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한현진이 환자복을 입은 채 팔짱을 끼고 덤덤한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강한서가 빨개진 눈으로 멍하니 한현진을 쳐다보며 웅얼거렸다. “안에 있는 거…”그러더니 그는 홱 고개를 돌려 지금 이 상황의 원인 제공자인 한성우를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아니었어요?”한성우가 눈을 깜빡였다. “화장실 간건데?”강한서의 분노가 화르르 끓어오르더니 열이 치솟는 것 같았다. 강한서는 순간 한성우를 수술실로 끌고 가 없애버리고 싶었다. 얼어붙은 분위기 속, 간호사가 서류를 들고 다가왔다. “한현진 씨?”한현진이 고개를 돌렸다. “제예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강한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좀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 돼요?”“생각할 필요 없어요.”한현진이 냉담한 눈빛으로 말했다. “강한서 씨가 힘들게 뭔가를 조정할 거 없어요. 파혼하고 아이를 지우면 우린 더 이상 아무 상관없는 사이가 되는 거예요. 간단한 일을 왜 복잡하게 만들려는 거예요?”한현진의 태도에 화가 난 것인지 강한서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한현진 씨, 그건 생명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어요?”“그러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제가 아이를 낳아주면 돈이라고 주실 건가요?”한현진의 눈빛이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안 될 것도 없죠. 말해 봐요. 얼마나 줄 건데요? 제가 출산의 고통을 느낄 만한 가격인지 들어나 보죠.”강한서의 얼굴이 더 무섭게 일그러졌다. 한현진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이혼할 때 2000억 준다고 하셨잖아요. 아이를 낳는 건 결혼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니 그 2배는 주셔야겠죠? 아니면 제가 왜 아이를 낳아드리겠어요? 전—”“결혼해요.”강한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한현진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라고요?”강한서의 목젖이 꿀렁 움직였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혼해요. 결혼하면 한현진 씨는 미혼모가 될 필요가 없잖아요. 나중에 이혼하고 싶으면 저도 원하는 대로 해드릴게요. 재산분할도 절대 섭섭지 않게 해드릴 겁니다.“기뻐서 널뛰던 한현진의 기분이 순간 차게 가라앉았다. 강한서가 여전히 말을 이었다. “허락하시면 지금 바로 민 실장에게 변호사님을 모셔서 계약서를 작성—”“허락은 개뿔.”한현진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는 강한서에게 잡힌 손을 획 빼냈다. “결혼하고 싶으면 무릎이라도 꿇어 청혼부터 해야 할 거예요.”말을 마친 한현진이 어두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차미주가 그런 한현진을 쫓아갔다. “현진아, 수술 안 해?”한현진이 이를 악물었다. “할 거야. 하지만 강한서 때문에 피가 거꾸로 솟아 과다 출혈로 죽을 것
한성우가 콧방귀 뀌며 말했다. “내가 정말 이번 일을 빌미로 널 비난하고 싶었던 거라면 형수님이 수술을 마친 뒤에 너에게 알려줬을 거야.”굳은 얼굴을 한 강한서의 눈빛은 우울로 가득 찼다. 한성우가 차가운 태도로 말했다. “그냥 그 아이를 원하는 거라면 더 이상 형수님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이는 없어도 상관없잖아. 넌 어차피 형수님을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나중에 다른 여자 만나. 너에게 아이를 낳아줄 여자는 많아.”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관자놀이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다. 그는 손을 들고 힘을 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더니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나 지금… 머리가 너무 복잡해.”“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한성우가 강한서를 훑어보았다. “강한서. 하필 형수님만 전부 잊어버렸어.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강한서는 말이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 어느 한 구역은 마치 잠겨있는 것처럼 그 구역을 건드리려고만 하면 머리가 찢어지듯 아파졌다. 그의 대뇌는 무의식적으로 한현진을 밀어냈다. 하지만 완벽하게 컨트롤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강한서는 자기도 모르게 한현진의 행동을 관찰했다. 예를 들면 어제저녁처럼 말이다. 그는 한현진이 주강운이 집어준 음식을 젓가락으로 뒤적거리기만 할 뿐 사실은 한 입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계속 식탁의 담백한 음식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매번 그 음식들이 그녀 앞으로 돌려질 때면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러다 다른 사람에 의해 음식이 다시 돌아가면 한현진은 또 두 눈을 멀뚱히 뜨고 음식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원형 식탁을 자주 돌리는 것은 아무래도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한현진의 모습에 강한서는 어쩐지 조금 그녀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매번 우연하게도 한현진이 원하는 음식을 그녀 앞에 돌려주었다. 맛있게 음식을 먹는 한현진의 모습을 보는 강한서는 자기 기분마저도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현진이 먼저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올 때면 강한
차미주가 말했다. “엄마가 네가 임신한 시간에 맞춰서 점쟁이에게 물어봤대. 아이 낳으면 너랑 우리 딸 데리고 집으로 오라던데? 그 점쟁이랑 식사 자리도 가졌어. 아이 점 좀 잘 봐달라고 하려고.”말하던 차미주는 안타깝다는 태도로 말했다. “네가 아이를 지우면 엄마는 그 애를 만날 기회도 없는 거네.”한현진이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누가 애 지운대?”“너 방금 강한서한테는 다른 병원으로 가서 수술한다며.”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 나빠지라고 한 말이야.”“뭐?”한현진이 냉소 지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다음 이혼하라잖아.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이를 빌미로 발목 잡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차미주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현진아. 너도 강한서가 다시 마음을 돌리길 바랐잖아. 지금 너와 결혼하겠다고 하는 거면 네 목적도 이룬 거 아냐? 왜 그런 말을 해서 화를 돋우는 거야?”“내가 임신했기 때문에 결혼하려는 거잖아. 진심으로 나와 결혼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차미주는 어리둥절해졌다. “너 오늘 이런 일 벌인 거, 네가 임신했다는 걸 강한서에게 알려주고 널 잡게 하려고 그런 거 아니었어?”“그랬지.”한현진이 모자를 쓰며 말했다. “내가 그런 목적이었다고 해도 강한서 입에서 아이를 낳으면 이혼하겠다는 말이 나온 이상 절대 그러겠다고 할 수 없어. 설사 아이가 있더라도 난 굳이 네가 아니어도 된다는 걸 강한서도 알게 만들어야 해. 날 잡고 싶고, 이 아이를 원하면 성의를 보여야지.”차미주가 말하려는데 벌컥, 병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니 강한서와 한성우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을 본 차미주는 얼른 입을 닫고 옆으로 비켜섰다. 한현진은 강한서를 쓱 훑더니 개의치 않고 양말을 신기 시작했다. 강한서는 옆에 서서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급해진 한성우가 옆에서 강한서를 걷어찼다. “말해. 그새 할 말을 까먹은 거야?”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다른 병
차미주는 한성우의 말에 감탄했다. ‘역시 입만 번지르르한 쓰레기 같은 자식이 있어서 다행이네.’강한서가 혀로 입술을 훑더니 말했다. “그럼… 이혼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요.”한현진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어쩔 수 없다는 태도네요.”“…”강한서는 순간 곤혹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전엔 왜 이렇게 말발이 센 와이프를 만난 거야?’강한서가 막 입을 열려는데 누군가에 의해 병실 문이 열렸다. “현진아, 현진아.”정인월이 잰걸음으로 황급하게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아직 환자복을 입고 있는 한현진을 본 정인월이 순간 심장 부근을 움켜쥐었다. “내가 그래도 한발 늦은 거니? 아직 얼굴도 못 본 우리 귀한 증손주, 벌써 지운 거야?”말을 하는 정인월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했다. 가까이 있던 한성우가 얼른 정인월을 부축했다. “아뇨, 아뇨. 아직 형수님 배 속에 있어요.”정인월은 순간 심장의 통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직 있어?”한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위기는 넘겼어요. 다음 위기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요. 아이 엄마와 아빠가 지금 어쩔지 상의하고 있어요.”그 말에 정인월은 또 쓰러지고 싶어졌다. 이때 강한서도 정인월 앞으로 다가갔다. “할머니, 여긴 어쩐 일이세요?”정인월이 가슴을 움켜쥐고 화를 냈다. “그 말은 내가 물어야 할 말 같은데? 넌 현진이 데리고 여긴 어쩐 일인 거냐?”강한서는 어리둥절해졌다. “제가 데리고 온 거 아니에요. 전 한현진 씨 만나려고 여기 온 거라고요.”“그게 무슨 말이야? 현진이가 우리 귀한 증손주를 지우려고 했다는 거야?”정인월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현진이가 얼마나 오랫동안 임신을 바랐는데, 이제 겨우 아이를 가졌는데 지우려고 할 리가 있어? 네 놈이 현진이를 여기로 데리고 온 게 틀림없어. 기억을 잃고 현진이를 기억하지 못해 파혼하고 쫓아내려고 하더니, 이젠 아이까지 지우려고 하는 거냐? 어떻게 너 같은 놈이 있을 수 있어.”강한서는 억울해 미칠 지
정인월은 한현진을 품에 안고 꽤 오랫동안 그녀를 위로했다. 한현진은 한참 동안을 훌쩍거리며 은연중에 강한서 흉을 봤다. “할머니에게 말해보렴. 한서가 아이 지우라고 데려온 거 맞지?”정인월이 이렇게 물으면 한현진은 울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강한서도 절 위해 그런 거예요. 아무래도 저희는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요...”정인월이 또 한현진에게 물었다. “현진아, 임신이 얼마나 큰일인데, 왜 이 할미한테 얘기하지 않은 거니?”그러면 한현진은 대답했다. “지난번에 갔을 때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들어가자마자 강한서와 가람 언니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한현진은 말끝을 흐리며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 강한서와 송가람이 한 얘기나 행동 때문에 한현진이 충격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정인월의 지팡이는 또다시 자기 의무를 다할 수밖에 없었다. 하도 매를 맞은 강한서는 나중에는 감각이 마비된 것 같았다. ‘이렇게 교활하고 폭력적인 여자를 대체 어떻게 임신까지 하게 한 거야?’‘나 정말 m 성향이었던 거야?’그는 정말이지 과거의 자신에게 엄지를 치켜올려 주고 싶어졌다. ‘용사네, 용사야.’한현진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정인월이 강한서에게 물었다. “한서야, 말해 보렴. 어쩔 생각이니?”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 “할머니께서 날을 정해주세요. 제가 선물을 준비해서 현진 씨 댁으로 결혼 허락받으러 갈게요.”정인월이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강한서는 그 눈빛에서 정인월이 하려는 말을 읽을 수 있었다. ‘네 놈이 어쩌다 인간다운 말을 하는구나.’“할머니, 저 저 인간이랑 결혼 안 해요.”한현진의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한성우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니, 잠깐만. 오늘 이 모든 게 다 강한서가 결혼하겠다는 말을 꺼내게 하려고 그런 거 아니었어? 목적 달성이 눈앞에 있는데 왜 거절하는 거야?’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리고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정인월도 한현진을 바라
강한서는 입술을 짓이기더니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네. 할머니 말씀대로 할게요.”정인월이 한현진의 손을 잡아당기며 나지막이 말했다. “정말 쟤가 기억을 찾지 못하면 어쩌려고 그래.”한현진이 정인월을 다독였다. “할머니, 설사 강한서가 절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절 다시 사랑하게 만들 거예요. 안심하시고 증손주 볼 준비하고 계세요.”확신이 가득한 한현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인월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한현진은 애초부터 아이를 지울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오늘 이 모든 건 차미주의 협박을 받은 한성우가 자신을 도운 한 편의 연극이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강씨 가문의 저택에서 정인월에게 자기가 임신한 사실을 은근히 흘렸을 때부터 한현진의 계획은 시작된 것이다. 한현진이 대놓고 임신한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지만 신중한 정인월의 성격상 사람을 시켜 한현진을 지켜보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현진이 아이를 지우러 갔다는 사실에 정인월은 아마 깜짝 놀라 병원으로 달려올 것이었다. 강한서는 머리가 정상은 아닌데다 한현진에게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강한서를 누구보다 아끼는 정인월은 아무리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지라도 결국은 강한서의 뜻을 따를 것이었다. 그러니 한현진은 아이로 정인월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강한서는, 한현진은 여전히 그가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는 강한서가 자기에 대해 전혀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어도 특정 사람과의 모든 기억만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강한서가 돌아온 후 보여준 송가람에 대한 알 수 없는 무조건적인 신뢰는 특히나 이상한 부분이었다. 한현진은 그 모든 것을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강한서를 곁에 두어야만 기회가 있었다. 재혼은 그녀의 모든 계획 중 제일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한 말 중, 한 마디만은 진심이었다. 결혼을 하더라도 강한서와
정인월은 워낙 사리에 밝은 사람이었기에 한현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가 이렇게 꿍꿍이가 많은 애라는 걸 할미가 왜 예전엔 몰랐을까?”한현진이 씩 웃더니 다정하지만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전엔 한서가 저를 지켜줬잖아요. 이젠 제가 한서를 지켜줘야죠. 전에 할머니도 그러셨잖아요. 부부는 서로 감싸줘야 하는 거라고.”정인월의 눈빛이 따듯하게 빛났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한서의 사람을 보는 눈에 모든 장점이 쏠린 모양이구나.”한현진이 그 말에 누구보다 깊이 공감했다. 강한서가 다시 병실로 돌아왔을 때 한현진은 이미 단정하게 옷을 입고 있었다. 몇 마디 더 당부한 정인월은 먼저 진씨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았던 정인월은 강씨 가문 자손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러 사찰에 가려고 했다. 한현진은 천천히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시간을 확인하며 물었다. “조금 서두르죠?”한현진은 여전히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움직였다. “못 기다리시겠으면 먼저 가요.”강한서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닫고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정리되지 않은 물건을 한현진에게 건넸다. 고맙다고 말한 한현진은 물건을 안에 넣어 정리하더니 갑자기 또 전부 쏟아버렸다. 그 행동에 강한서가 어리둥절해졌다. 한현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무언가를 찾는 듯 가방을 뒤적거렸다. 조용히 있으려던 강한서는 한참을 찾으면서도 찾아봐 달라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현진의 모습에 조금 불쾌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진심이길 바란다고 하지 않았어? 날 무시하면 내가 변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목소리를 가다듬은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 “뭐 찾아요?”한현진이 고개도 들지 않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걸이요.”“무슨 목걸이요? 어떻게 생겼어요?”“실버 목걸이에요. 직사각형 모양의 펜던트가 있어요.”강한서가 병실 곳곳을 살피며 한현진을 도와 목걸이를 찾아보았다. 병실을 한 바퀴 다 둘러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