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강한서가 웃었다.한현진은 바로 고개를 돌려 그를 째려보았다.“내가 실패했는데, 넌 웃음이 나와?”강한서는 다정한 눈길로 그녀를 보았다.“난 네가 성장한 것 같아서, 기뻐서 웃는 거야.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잖아. 그렇다는 건 잘못을 바로잡을 줄도 아는 사람이 되었단 소리지. 반성은 아주 어려운 거야. 너 예전만 해도 잘못을 저지르고 계속 안 그랬다고 억지 부렸잖아. 변명도 하면서.”“...그땐 네가 한 발도 양보 안 해주니까 그런 거잖아.”한현진은 그의 말에 이를 빠드득 갈면서 말했다.“그러니까 네가 성장했다고 말하는 거잖아.”강한서는 얼른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달랬다.“기억해. 이 세상엔 쉬운 사업이란 없어. 네가 어떤 고객을 원하면, 그 고객이 뭘 좋아하는지부터 파악해.”“만약 그저 인맥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거면, 언젠가 뜻밖의 일로 사이가 틀어져 고객을 전부 잃게 될 거야. 네가 파는 물건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가치를 인정하면 사람들도 구매 욕구에 지갑을 열게 될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고객을 만드는 근본이야. 그리고 인맥은 그냥 그 근본에 살짝 도움을 얹어주는 것일 뿐이야.”한현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맞아. 내가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네.”강한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괜찮아. 처음이잖아. 처음엔 다들 빨리 잘되고 싶은 마음에 그러기도 해. 게다가 나쁜 일도 아닌걸.”그는 이내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최근 가게 매출은 어때?”한현진은 고개를 저었다.“그럭저럭이야. 스트레인지가 내 손에 넘어온 뒤로 거물급 고객님이 온 적은 없어. 대부분 그냥 둘러보고 나가는 사람들뿐이야. 하지만 가게에 있는 제품들은 이미 유행을 지난 것들이긴 하지만 가게 인지도 때문인지 그래도 사는 사람은 있었어. 다만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뿐이야.”“가게 장부는 봤어? 매달 지출과 수입은 봤어?”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이틀 전에 봤어.”“어땠어?”한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
그날 이후 한현진은 다시 모든 신경을 액세서리에 쏟아부었다.그녀는 거의 매일 가게로 나와 디자이너들이 만든 시안을 보았다. 원래부터 주얼리를 좋아하기도 했고 강한서와 결혼했을 때도 강한서를 따라다니며 알게 된 지식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산 것도 많았다. 그래서 디자인에 대해 그녀만의 이해와 안목도 있었다.시간을 빠르게 흘러 두 주라는 시간이 지났다.이날도 한현진은 가게로 왔다. 디자이너가 있는 방으로 가자 계 매니저가 바로 달려와 말했다.“한 대표님,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제가 할 말이 좀 있습니다.”한현진은 마침 전날의 디자인 시안을 보고 있었고 그의 말에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그냥 여기서 하세요.”계 매니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재무에 관련된 얘기라 여기서 하기엔 좀 아닌 것 같아서요.”한현진은 멈칫하더니 시안을 내려놓고 말했다.“그럼 나가서 하죠.”밖으로 나오자 계 매니저가 말했다.“한 대표님, 곧 직원들 월급날이에요.”한현진이 물었다.“회사 카드에 돈이 없나요?”계 매니저가 답했다.“이번 달까지는 괜찮아요. 하지만 다음 달 직원들에게 줄 월급이 없어요. 이번 달 저희 가게에서 총 60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있었거든요. 원석을 들여올 돈도 모자라고 다음 달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주지 못할 정도예요. 계속 이렇게 하다간 아마 몇 달도 못 버티고 망하게 될 거예요. 한 대표님, 얼른 방법을 생각해내셔야 해요. 가게를 이렇게 망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한현진이 말했다.“기다려 봐요. 지금 생각 중이니까.”“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신제품의 반응이 어떨지도 아직 모르잖아요. 전 일단 먼저 재고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금 순환이 안 되는 상황에서 신제품이 나와봤자 생산하는 것도 문제잖아요.”한현진은 고개를 들었다.“예전엔 다 어떻게 처리했죠?”“예전에 서 대표님께선 인맥으로 처리하셨어요. 이런 제품들도 서 대표님께서 직접 하고 행사에 참여하시면 바로 이틀 정도로 다 팔렸었죠.”계 매니저
설계도의 도안은 나비 모양인 것 같기도 또 구름 모양인 것 같기도 했다. 가운데 날개 부분에 에메랄드가 박혀 있었고 주변의 구름무늬엔 자잘한 다이아몬드로 포인트를 줬다. 그 디자인은 단번에 한현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뒤로 넘기자 각 부분의 세부 사항까지 디테일하게 적혀 있었다. “예쁘네요.”한현진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예뻐요.”전혜지가 시선을 떨구며 나지막이 말했다. “대표님이 해주신 말에서 영감을 얻었어요.”나비는 새로 태어남을 의미하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의미하기도 했다. 구름은 길조의 뜻이 있으니 나비와 구름은 그녀가 생각했던 느낌과 딱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가운데 박힐 에메랄드는 만드는 것마다 다른 문양을 띄기 때문에 모두에게 유일무이한 디자인이 될 것이다. 한현진이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전 제가 원하는 걸 얘기했을 뿐이에요. 제가 얘기했던 의미를 섞어 표현한 건 혜지 씨에요. 이거로 하죠. 저장해 둬요. 먼저 샘플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죠.”전혜지는 한현진이 건넨 설계도를 받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더니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이 설계도에 디자이너 이름을 써야 하나요?”“당연하죠. 혜지 씨 작품이니까 당연히 혜지 씨 이름을 써야죠.”한현진은 전혜지가 전 회사에서의 표절 사건 트라우마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혜지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대표님, 아니면 이 디자인엔 다른 디자이너의 이름을 쓰는 게 어떨까요? 민아나 원일이요.”한현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혜지 씨 작품에 왜 다른 사람 이름을 쓰려는 거예요?”전혜지는 말을 꺼내기 곤란한 듯 잠시 주저하더니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대표님께서는 이 업계가 처음이시라 모르시겠지만, 저에겐 사정이 좀 있어요.”전혜지는 당시 있었던 일을 하나도 숨김없이 한현진에게 얘기해주었다. “제가 강제로 퇴사 당한 후 다시 취직하려고 애썼지만 번번이 어려움을 겪었어요. 전 그쪽에서 절 업계 블
“네.”디자인 시안만 있으면 조각사들은 빠른 시일 내로 샘플을 만들었다. 이틀 후, 샘플이 한현진에게 보내졌다. 샘플은 시안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눈을 사로잡았다. 한현진은 사진을 여러 장 찍더니 매니저에게 1년 사이 가게에서 재구매한 단골 명단을 리스트업 하게 한 뒤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갔다. 신제품 발표회는 절찬리에 준비 중이었다. 한현진은 휴대폰을 볼 시간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매번 그녀가 휴대폰 메세지를 확인할 때면 이미 강한서가 전화를 몇 통이나 한 뒤였다. 나중엔 강한서도 아예 전화하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 음식을 보내지 않으면 아예 가게로 데리러 왔다가 밥을 먹인 후 다시 데려다주곤 했다. 강한서는 돈을 벌든 꿈을 위해 달려들든 상관없지만 건강은 꼭 챙겨야 한다고 했다. 일을 위해 겨우 되찾은 건강을 다시 악화시킬 수는 없다며 말이다. 어떤 사람은 태생적으로 자상했지만 강한서는 하나하나 배운 것이었다. 한현진은 차에 앉아 강한서가 보내온 죽을 먹으며 갑자기 입을 열었다. “강한서, 이번 발란타인데이에 혼인신고 하러 가자.”노트북으로 한현진 대신 명단 리스트를 확인하고 있던 강한서는 그 말에 벙쪄버렸다. 그는 멍해져 말했다. “무슨 신고.”한현진이 죽을 넘기며 고개를 들어 말했다. “혼인 신고.”강한서가 조심스레 숨을 내뱉었다. “너 장난하는 거 아니지?”한현진이 웃으며 속삭이듯 강한서를 놀렸다. “넌 진보가 너무 빨라. 얼른 묶어두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눈독 들일 것 같거든.”강한서가 고개를 숙여 살풋 웃었다. “그렇게 걱정되면 내일 가서 해.”“안 돼. 첫 번째 혼인 신고도 아무 준비도 없이 했잖아. 이번엔 꼭 제대로 시간 맞춰야 할 거야.”강한서가 말했다. “곧 네 생일인데, 네 생일에 혼인 신고해도 돼.”“그럼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같이 보내야 하잖아.”강한서가 말했다. “하루에 기념일이 두 번이면 행복도 두 배잖아.”한현진이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선물도 하나 덜 준비해도 되고, 확
“택배? 나 요즘 뭐 안 샀는데.”양지원이 외투를 내려놓으며 걸어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택배엔 보낸 사람의 정보가 쓰여있지 않았다. 그녀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택배를 뜯었다. 안에는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와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거 괜찮네.”양진환이 힐끔 딸을 쳐다보았다. “남자친구 생겼어?”“내가 아빠 몰래 남자친구를 사귈 수나 있어?”양지원이 편지봉투를 뜯자 안에는 초대장과 손으로 그린 디자인 시안이 들어있었다. 초대장을 열어 본 양지원은 드디어 이 물건을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스트레인지에서 곧 신제품 발표회를 열 예정이었고 상자 안의 물건은 단골 손님에게 주는 기념품이며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한 장의 손 그림은 양지원이 전에 제작을 맡겼던 주얼리 디자인 시안이었다. 그날 한현진이 갑자기 자리를 비워 양지원을 놀라게 했다. 한현진의 밀당인 줄 알았는데, 다음 날 양지원의 계좌로 바로 계약금이 환불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한현진은 한 번도 양지원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매주 패션 잡지를 보내올 뿐이었다. 사실 양지원은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당시 그 말을 했을 때, 양시원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는데 한현진이 바로 계약금을 돌려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양지원은 한현진이 보낸 잡지를 처음엔 보지도 않고 거실에 내버려두었다. 친척 아이가 집에 놀려와 놀면서 잡지를 찢어버려 그것을 치울 때에야 잡지 내용을 보게 되었다. 그 잡지는 전부 표기가 되어있었다. 한현진이 표시해 둔 것은 전부 양지원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었다. 진심으로 자신과 친구를 하고 싶은 것이든, 아니면 단순히 비즈니스를 하고 싶든 간에, 양지원은 한현진의 세심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양지원이 한현진을 찾아갈 핑계는 이미 계약금을 환불해 주면서 사라져 버렸다. 가게에 갈 이유가 없으니 양지원은 자존심을 굽힐 수가 없었다. 다만 양지원은 한현진이 자신에게 이 초대장을 보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양지원의 말을 들은 양진환이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그런 행동을 했느냐보다는 그 사람이 한 일이 집중해야 해. 자꾸 그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거야. 널 비즈니스 상대로 생각하든, 너와 친구가 되고 싶은 거든, 어쨌든 널 해치지 않았잖니. 심지어 계속 널 도와준 거나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굳이 그런 사소한 문제로 고민할 필요 없어.”“정말 네 친구라면, 널 고객으로 대하지 말라고 할 거니? 만약 친구라면 오히려 자기 사람 비즈니스를 더 챙겨야 하지 않겠어? 네 생각은 애초부터 무순이었던 거야.”“무슨 의도인지 신경 쓰지 마. 너에게 이런 걸 보냈고 초대했어. 좋으면 가면 되고 싫으면 안 가면 그만이야. 너에게 억지로 강요하거나 협박한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이까짓 일에 고민할 필요나 있어?”잠시 멍해진 양지원은 곧 꽉 막혔던 마음이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스트레인지 신제품 발표 날, 송병천은 일부러 그날 스케줄을 전부 뒤로 미루고 행사에 참석했다. 최근 스트레인지의 매출에 관해 송병천은 들은 바가 있었다. 그는 딸의 사업에 문제가 생겨 충격을 받을까 봐 몰래 한현진에게 자신이 매출 조작을 도와줄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현진인 매출에 꽤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송병천에게 자신이 잘할 수 있다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마 송병천은 한현진을 위해 몇 개월의 매출액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가족의 돈을 벌어들이는 건 아무런 재미도 없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들켜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창피한 일이기도 했다. 비록 딸이 거절하긴 했지만 송병천은 딸의 첫 사업을 그래도 아빠인 자신이 참석해 응원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이가 가까운 친구들에게 연락해 스트레인지의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하도록 했다. 그러니 발표회가 시작도 하기 전, 한현진은 이미 발표회 현장에 업계의 적지 않은 회장님들이 참석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한현진은
그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패셔너블하게 옷을 입은 청년이 다리를 꼰 채 발표회 중앙에 앉아있었다. 새하얀 얼굴에 두꺼운 메이크업을 한 남자는 앉은 자세만큼은 누구보다도 도도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1개월 전 한현진에게 해고당한 하설윤이 있었다. 무대 아래의 두 사람을 본 전혜지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신제품 발표회에 표절이라니, 순간 회장이 소란스러워졌다. “누구야?”“뮤즈 주얼리의 디자인팀 부장인 장희진 같아요.”“동종 업계?”“오늘 동종 업계에서도 많이 왔어요. 스트레인지에서 떠들썩하게 홍보한 덕에 모두들 배우기도 하고 축하도 할 겸 온 거죠. 저도 회사에서 오라고 해서 온 건데, 이런 구경거리를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무슨 구경거리요?”“스트레인지의 전혜지라는 디자이너, 뮤즈 주얼리의 직원이었었어요. 몇 년 전 뮤즈 주얼리의 수석 디자이너의 표절 논란이 바로 저 전혜지가 폭로한 거였어요. 뮤즈 주얼리가 자기 디자인에 다른 디자이너 이름을 올려서 발표했다면서 뮤즈 주얼리를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저격하면서 회사와 트러블이 있었죠.”“그래서요, 이겼어요?’“이기긴요. 전혜지도 회사도 함께 망한 거죠. 표절이 폭로되면서 뮤즈 주얼리도 타격이 컸어요. 손해도 많이 봤고요. 전혜지도 당연히 좋을 리 없었죠. 회사를 배신했으니 저런 트러블 메이커를 어느 회사에서 받아들이겠어요? 그러더니 스트레인지에 갔을 줄이야. 메인 제품을 전 회사에서 표절이라고 폭로하다니, 정말 인생은 돌고 도나 봐요.”몇일 전, 기념품인 “길”이 하나둘 단골 손님들에게 보내졌다. 한현진의 예상대로 제품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제품 사진 역시 단골들의 그룹 채팅방에서 돌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디자이너들도 “길”의 실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가 새롭고 특이한 디자인이라 업계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 제품의 디자이너가 누군지 알지 못했고 모두들 스트레인지에서 유명 디자이너를 스카우트했다고 생각했다. 오늘 발
계 매니저가 나지막이 말했다. “전혜지 씨가 디자인한 제품에 논란이 있어요...”“아직 증거도 없는데 저 사람 말만으로 표절이라뇨? 다른 사람이 함부로 내뱉는 말을 바로 믿으시다니, 함께 몇 년을 일해 온 동료인데 계 매니저님은 전혜지 씨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세요?”말문이 막힌 계 매니저가 나지막이 변명했다. “만약 저분 말이 사실이라면, 괜히 일이 커지면 수습하기 힘들잖아요. 저도 회사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죠.”한현진은 계 매니저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방금 시비를 걸어 온 남자에게로 걸어가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전 스트레인지 대표인 한현진입니다. 우선 오늘은 스트레인지 신제품 발표회에요.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방금 저희 제품이 표절 의혹이 있다고요?”“표절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에요. 저희는 절대 그런 수단으로 소비자를 기만하지 않아요. 오늘 현장에서 공개된 제품의 표절 의혹을 뒷받침할 증거를 가져와 저희 디자이너의 표절이 확인된다면 저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 증거를 찾지 못하신다면 저희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루머를 퍼뜨린 거라고 여겨 고소할 겁니다.”상대방이 피식 비웃으며 말했다. “협박하시는 거예요?”한현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전 그저 귀띔해 드리는 겁니다.”장희진이 냉소 지었다. “제가 증거도 없이 헛소리하는 것 같아요?”말하며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 “제 휴대폰에 저희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시안이 들어있어요. 시안에는 마감 날짜도 적혀 있고요. 이걸 모두가 볼 수 있게 스크린에 공유해도 될까요?”한현진이 장희진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후, 한현진이 고개를 돌려 계 매니저에게 말했다. “이분 휴대폰 속 사진, 스크린에 띄우세요.”“대표님...”“얼른요.”계 매니저는 어쩔 수 없이 하려던 말을 삼키고 장희진 휴대폰 속 사진을 스크린을 통해 공개했다. 화면에 사진이 공개되자, 현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세상에, 너무 비슷하잖아?”“비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