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매니저가 나지막이 말했다. “전혜지 씨가 디자인한 제품에 논란이 있어요...”“아직 증거도 없는데 저 사람 말만으로 표절이라뇨? 다른 사람이 함부로 내뱉는 말을 바로 믿으시다니, 함께 몇 년을 일해 온 동료인데 계 매니저님은 전혜지 씨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세요?”말문이 막힌 계 매니저가 나지막이 변명했다. “만약 저분 말이 사실이라면, 괜히 일이 커지면 수습하기 힘들잖아요. 저도 회사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죠.”한현진은 계 매니저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방금 시비를 걸어 온 남자에게로 걸어가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전 스트레인지 대표인 한현진입니다. 우선 오늘은 스트레인지 신제품 발표회에요.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방금 저희 제품이 표절 의혹이 있다고요?”“표절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에요. 저희는 절대 그런 수단으로 소비자를 기만하지 않아요. 오늘 현장에서 공개된 제품의 표절 의혹을 뒷받침할 증거를 가져와 저희 디자이너의 표절이 확인된다면 저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 증거를 찾지 못하신다면 저희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루머를 퍼뜨린 거라고 여겨 고소할 겁니다.”상대방이 피식 비웃으며 말했다. “협박하시는 거예요?”한현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전 그저 귀띔해 드리는 겁니다.”장희진이 냉소 지었다. “제가 증거도 없이 헛소리하는 것 같아요?”말하며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 “제 휴대폰에 저희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시안이 들어있어요. 시안에는 마감 날짜도 적혀 있고요. 이걸 모두가 볼 수 있게 스크린에 공유해도 될까요?”한현진이 장희진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후, 한현진이 고개를 돌려 계 매니저에게 말했다. “이분 휴대폰 속 사진, 스크린에 띄우세요.”“대표님...”“얼른요.”계 매니저는 어쩔 수 없이 하려던 말을 삼키고 장희진 휴대폰 속 사진을 스크린을 통해 공개했다. 화면에 사진이 공개되자, 현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세상에, 너무 비슷하잖아?”“비
송병천은 입술을 짓이기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딸을 저렇게 얘기하는 것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스크린의 “증거”가 떡 하니 있었지만 그는 딸이 표절했을 것이라고 전혀 믿지 않았다. 설사 표절이 사실이라고 해도, 송병천은 한현진이 그 일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송병천이 옆에 있던 송민준이 먼저 끼어들며 말했다. “이미 여기까지 와서 소란을 피웠는데, 지금 현장을 정리하면 그거야말로 우리 디자이너가 표절했다고 인정하는 거잖아요.”서해금이 송민준을 힐끔 쳐다보았다. “상대방이 디자인 시안까지 보여줬어. 만약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발표회에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겠지. 나도 현진이가 디자이너에게 그런 일을 시켰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전말 디자이너에게 문제가 있다면, 이번 발표회의 책임자인 현진이도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거야.”송민준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게 아니면요? 만약 상대방이 일부러 루머를 퍼뜨려 누명을 씌울 생각이었다면요? 나중에 저희 측 억울함이 벗겨지더라도 그땐 이미 해명할 최적의 타이밍을 놓친 후예요. 그때 저희가 입장 발표를 한다고 하더라도 믿어주는 사람이 몇 없을 거라고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처음 보았었던 것만 기억할 거예요. 나중에 표절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무리 충분해도 그땐 그저 변명에 불과해요.”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몇 마디 더 하려는데 송병천이 서해금의 말을 가로챘다. “조금 더 지켜보고 얘기하지. 현진이가 자신있어 하는데 우리가 먼저 안절부절못하면서 현진인가 아닌 다른 사람을 믿을 수는 없어.”서해금이 입술을 앙다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디자인 시안이 공개된 후 현장은 소란스러워졌다. 장희진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한 대표님, 얘기 좀 해보세요. 우리 회사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이 어떻게 스트레인지의 10주년 기념품으로 둔갑한 거죠? 저희에게, 그리고 소비자분들께 설명을 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흥분하며 말했다. “누군가 동종 업계 사람의 기밀을 손에 넣어줬는데 안 볼 수가 있다고?”“그게 표절이잖아.”“상대방은 믿어서 보관해 달라고 한 건데 오히려 자기 걸로 만들어 버리다니.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이런 부도덕한 인간이 대체 어떻게 팀장까지 된 거예요? 한현진은 정말 인성은 보지도 않나 봐요.”...차미주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욕을 내뱉었다. “동영상일 뿐인데 대체 뭘 증명할 수 있다는 거야? 디자인 시안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저렇게 대충 의자에 올려놨다고?”한성우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비겁한 수단이긴 하지만 좋은 방법이긴 하네. 아무도 그 한 시간 동안 전혜지 씨가 디자인 시안을 봤다고 증명할 수 없지만 본 적이 없다고 증명할 수도 없잖아. 아무렇게나 지어내면 되니까.”차미주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럼 어떡해? 표절 누명을 벗지 못하는 거야?”한성우가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너 설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거야? 네가 이러고도 남자주인공이야?”강한서가 한성우를 노려보았다.“닥쳐.”한성우가 입을 삐죽였다. 안 그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강한서의 태연한 표정을 보니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위.전혜지가 마이크를 잡고 낮게 깐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열어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요.”말하며 전혜지는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크린 화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화면은 여전히 카페였다. 다만 시간대는 하설윤이 카페를 나간 후였다. 계산을 마친 전혜지가 서류를 안고 카페를 나서자 화면은 바로 전혜지가 카페를 나서는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화면은 전혜지의 행적을 따랐다. 전화를 받은 전혜지는 자전거를 타고 서류를 어딘가로 가져갔다. 그러더니 그곳에서 서서 누군가를 기다렸고 기다리는 내내 휴대폰을 확인했다. 이윽고 화면에 또 다른 사람, 하설윤이 나타났다. 전혜지는 바로 디자인 시안을 하설윤에게 넘기고 자
강한서는 무대 위에서 득의양양하게 행동하는 한현진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한성우가 이를 악물고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너 이 개자식, 아이븐 시리즈 신상 내가 그렇게 달라고 할 때는 아까워서 사용도 못 하게 하더니. 저런 첨단 기술을 저런 거나 찍게 와이프한테 빌려줘? 의리 없는 놈!”강한서가 한성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네가 뭐 정상적인 거나 찍겠어?”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 도둑이 출근길 호위하게 머리 위에 드론 띄우면 얼마나 멋있어?”강한서가 그에게 디스하는 눈빛을 보냈다. 차미주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뭐야?”한성우가 변명했다. “한서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드론이야. 생체인식이 가능해서 목표물을 지정하면 위치 추적이 가능하거든. 이 드론은 원래 소방 수색대의 보조용으로 개발된 건데, 이 자식이 글쎄 자기 와이프 복수용으로 사용했잖아. 저건 드론에겐 재능 낭비 아냐?”차미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 자식 방금 저걸로 내 출근길을 데려다주겠다고 하지 않았어?’‘무슨 염치로 강한서를 뭐라 하는 거야?’‘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중요한 건...’“강 대표, 현진이 오늘 누군가 소란을 피울 거란 걸 알고 있었어?”이렇게 완벽한 증거라니, 모르고 당했을 리가 없었다. 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저 의심이었어. 확신은 없었지만 혹시 몰라 준비해 뒀지.”이 일은 2주일 전부터 얘기가 시작되었다. 전혜지가 디자인을 완성한 다음 날 오후. 그녀는 갑자기 한현진에게 전화해 자신이 책상 위에 올려둔 디자인 시안을 누군가 건드린 것 같다고 얘기했다. 한현진은 얼른 디자인팀의 CCTV를 확인했고 우연히도 당시 카메라는 누군가에 의해 움직여져 전혜지의 자리를 찍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의 디자인 시안을 들춰본 것이 아닌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혜지는 확신했다. 그날 점심 그녀가 배달 음식을 받으러 나갔을 때 서류 위에 올려둔 그 샤프
전혜지도 처음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설윤이 디자인 시안을 자리에 두고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비우는 순간, 그녀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지금 적지 않은 디자인은 전부 컴퓨터로 진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디자이너들은 직접 손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하설윤을 오랫동안 봐왔던 전혜지도 당연히 하설윤의 습관을 알고 있었다. 회사에 있을 때도 하설윤은 잠시 자리를 비울 때 자신의 디자인 시안을 책상 서랍에 넣어 잠그곤 했었다. 그랬던 그녀가 전화 한 통 때문에 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까먹다니. 게다가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자신에게 보관해 달라고 부탁한다라...그렇게 생각한 전혜지는 얼른 한현진에게 전화했다. 마침 한현진은 강한서와 함께 있었다. 강한서는 바로 그녀를 현장에 데려다줬고 드론도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 전혜지는 그 디자인 시안을 아예 건드리지 않고 하설윤에게 직접 가지러 오라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현진은 어차피 함정이라면 이번에 낚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은 어떻게든 또 다른 함정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아예 모르는 척 당해주려고 했다. 그렇게 방금 화면에서 보았던 장면이 있게 된 것이다. 전혜지가 차가운 눈빛으로 하설윤을 쳐다보았다. “조작인지 아닌지, 우리 둘 중 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현장에 전문가를 모셔서 검증하셔도 돼요. 전 처음부터 끝까지 팀장님 서류를 들춰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팀장이 그리신 디자인도 본 적이 없고요. 그런데 표절이라니요?”동영상을 본 하설윤은 그대로 굳어졌다. 전혜지가 디자인 시안을 건드렸다는 증거만 있으면 전혜지가 표절했다는 사실은 그대로 더 이상 발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동영상으로 결백을 주장할 줄이야.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자, 준비했던 모든 말들이 전부 앞뒤가 맞지 않게 되어버렸다. 하설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며 장희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이런 동영상이 뭘 증명할 수 있어요? 사적인 만남을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치는 한현진에 장희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말싸움으로 장희진은 한현진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는 화살을 만만한 전혜지에게 돌렸다. “전혜지 씨. 소송을 그렇게 오랫동안 하시고 아직도 이기지 못하셨으니 저희에게 복수하려고 이러시는 거죠?”그녀는 마이크를 내리고 목소리를 잔뜩 깔더니 협박했다. “내 말 잘 들어. 그때 내가 널 업계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잖아.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만들 수 있어.”한현진은 전혜지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러니 한현진은 당연히 장희진이 하는 얘기를 똑똑히 들었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전혜지의 뒤로 막으며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건드리기만 해요. 손으로 하늘을 가릴 능력이 있는지 확인 좀 하게요.”전혜지는 자신을 보호하는 한현진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표절은 디자이너로는 악질적인 수단이었다. 모든 회사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했다. 그들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디자이너가 표절했는지, 모함을 당했는지 이런 것이 아니라 회사에 영향을 미칠지는 않을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가끔 이런 일을 겪을 때면 디자이너들은 결국 혼자가 되어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그러나 한현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원칙을 고수하며 끝까지 감쌌다. 전혜지는 자기보다 더 가냘픈 몸매를 가진 한현진을 보며 슬쩍 그녀를 끌었다. 고개를 돌린 한현진이 전혜지가 겁 먹은 줄 알고 나지막이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요. 그냥 말로만 그러는 거예요. 저 사람들은 혜지 씨를 어쩌지 못해요.”잠시 머뭇 거리던 전혜지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저에게 누구 누굴 표절한 것인지 증명할 방법이 있어요.”전혜지의 말에 순간 현장이 조용해졌다. 그녀가 장희진을 보며 말했다. “제가 하 팀장님과 직접 질문해도 될까요?”장희진이 하설윤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 상황에 질문이라면 기껏해야 디자인의 디테일을 묻는 것이었다. 하설윤은 이미 디자인 시안에 대해 빠삭했다. 그러니 전혀 무서울 것
전혜지가 자신의 디자인 시안으로 화면을 전환했다. “여긴 제 디자인과 달라요. 전 여기를 비우지 않았거든요.”하설윤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똑똑하게 잘 표절했다는 거죠. 하나도 변함없이 그대로 가져갔으면 그건 표절이 아니라 복사죠.”전혜지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미묘하게 다른 점을 짚어냈다. 그러자 듣고 있던 하설윤이 짜증을 냈고 사람들도 수군거렸다. “저게 무슨 대질이에요? 저건 그저 틀린 그림 찾기 하는 거잖아요.”“어이가 없네요. 저게 뭘 설명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자기가 잘 수정했다는 걸 증명하려는 걸까?”“저렇게 보니까 하설윤 디자인이 더 예쁜 것 같아요.”“당연하죠. 표절 디자인이 어떻게 원작을 따라가겠어요.”...짜증을 내고 있던 하설윤은 사람들의 여론이 점점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흐르자 득의양양해졌고 긴장도 풀렸다. “대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예요?”전혜지는 전혀 당황하지 않으며 오청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 선생님, 두 디자인 시안 제대로 보셨어요?”오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자세히 보았어요.”“그럼, 어느 쪽이 표절인지 알아보시겠어요?”하설윤이 멈칫했다. ‘알아본다고?’오청운이 두 장의 사진을 번갈아 보더니 확신하는 말투로 왼쪽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이 베낀 쪽이네요.”그러자 사람들은 왼쪽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하설윤의 디자인 시안이었다. 순간 현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어떻게 보아낸 거죠?”“저도 모르겠어요.”“설마 스트레인지에서 부탁한 건 아니겠죠?”“오청운 선생님께 그런 부탁을요? 어떻게요? 오청운 선생님 지금의 위치는 모두가 그분을 극진히 모셔야 하지, 그분이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잖아요.”“그... 그럼 정말 하설윤이 표절한 거예요?”“계속 지켜보죠.”오청운은 방금 그 대화에 불쾌한 기분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는 카리스마를 풍기며 엄숙한 말투로 말했
하설윤이 당황하며 얼른 장희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장희진 역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마음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저 멍청이가.’하지만 그는 여전히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며 인정하지 않았다. “오청운 선생님께서 직접 하신 것도 아닌데, 어떻게 사진만 보고 확신할 수 있죠?”오청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제가 경력만 40여 년입니다. 어떤 디자인은 만들 수 있고 어떤 디자인은 만들 수 없는지 바로 알아볼 수 있죠. 제 판단을 의심하신다면, 현장에서 아무나 찾아 디자인대로 샘플을 만들어 보라고 하세요. 만약 제 판단이 틀렸다면 청운헌의 타이틀을 제 손으로 부술게요.”예술가가 자신의 타이틀을 내건다는 것은 그만큼의 확신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의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래의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몰라서 그러는데, 샘플이 나올 수 없다는 건 무슨 의미예요?”“샘플을 만들 수 없다는 건 그 디자인 시안은 그저 컨셉 시안에 불과하다는 말이에요.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그저 초안일 뿐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쪽은 시험에서 100점을 맞고 상대방은 0점을 맞았는데, 상대방이 그쪽이 자기 것을 베꼈다고 해요. 그쪽 시험지 답안과 상대방이 낙서장에 적은 답안이 똑같거든요. 상대방은 그저 시험지를 바치지 않았을 뿐이죠.”“그럼 이건 그저 소란 피우는 거잖아요. 낙서장에 적힌 게 정답인지 누가 알겠어요? 누가 낙서장을 베껴요?”“예를 잘못 든 것 같은데요? 컨셉 시안도 시안이잖아요. 다른 사람을 컨셉 시안을 가져다 수정하면 그건 표절이 아닌 거예요?”“누가 표절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자기 디자인에 그렇게 자신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샘플을 만들지 않은 게 이상하지 않아요?”더 이상 그 방법이 통하지 않자, 장희진은 표절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회사에 요즘 주문이 많았거든요. 샘플을 만들 시간이 없었어요. 설마 행동이 늦어 다른 사람이 먼저 발표했다고 해서 그게 다른 사람 것이 되는 건가요? 컴퓨터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