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은 그런 한열의 행동에 째려보면서 말했다.“유치해!”한열도 지지 않고 반박했다.“귀여운 척하는 너만 하겠냐?”그러자 한승은 코웃음을 쳤다.“흥, 내가 똑똑하고 귀엽지 않았더라면 형이 날 침대로 던진 거 바로 탄로 났을 거야!”“탄로 나면 탄로 나라고 해.”한열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내가 그 여자를 두려워할 것 같아?”정말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어떻게 한승을 던지자마자 바로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겠는가?한승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흥, 어쩐지 오늘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고 했더니, 이러려고 그런 거였어!”한열은 한승을 흘깃 보았다.“이런 거 말고는 다른 쓸모는 있고?”“...”한승은 할 말을 잃었다.한참 지나자 한승이 작게 말했다.“형, 이번 촬영 신하리 누나랑 같이하는 거지?”신하리를 언급하자 한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아니.”한승을 계속 말했다.“나 기사에서 봤어. 형이랑 신하리 누나 같은 작품 한다고 했어.”“그래서 뭐?”“나 내일 촬영장으로 데리고 가면 안 돼? 나 신하리 누나랑 사진 찍고 싶단 말이야.”이미 친구들 앞에서 온갖 허세란 허세를 다 부렸기에 그는 반드시 한열의 촬영장으로 따라 신하리와 사진을 찍어야 했다.“싫어.”한열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거부했다.“난 일하러 가는 거야. 일하러 가는 데 널 데려가?”그러자 한승이 빼액 소리를 질렀다.“형이 나 안 데리고 가면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한열은 코웃음을 쳤다.“네가 할아버지한테 일러도 난 너 안 데리고 가.”말을 마친 그는 생수병을 열어 물을 마셨다.‘조그만 녀석이, 감히 고자질로 날 협박해?'한승은 단호한 형을 보면서 결국 히든카드를 꺼냈다.“형이 나 안 데리고 가면 아빠한테 형이 지니 누나를 짝사랑했다고 이를 거야!”“풉, 콜록콜록.”한열은 입 안에 머금고 있던 물을 그대로 뿜어내게 되었고 이를 갈며 말했다.“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한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형 방에 있는 피규어
한열은 바로 현장을 잡았다. 매끈한 엉덩이를 드러내며 살금살금 방을 나가고 있는 한승을 붙잡고 가족들을 부르곤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그러자 한승은 바로 눈물을 흘렸다. 형이랑 더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며, 행여나 형이 자신을 싫어할까 봐 밤마다 몰래 그의 침대에 누워 그와 함께 잔 것이라면서 말이다.특히 한승의 눈물에 약했던 가족들은 한승을 혼내기는커녕 온밤을 달래주었다. 그날 이후 한열은 자신의 동생 한승이 더는 토끼처럼 약하지도, 귀여워 보이지도 않았다. 한승의 본색 또한 한열 혼자만이 알고 있었다.한승은 전혀 한열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형이 안 데려가 주면 말할 거야!”한열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신하리 씨랑 친하지 않아. 네가 촬영장으로 따라간다고 해도 신하리 씨가 너랑 사진 안 찍어줄 수도 있어.”그러자 한승이 말했다.“형은 그냥 날 데려가 주기만 하면 돼. 그럼 내가 알아서 신하리 누나랑 어떻게든 사진을 찍을 거야.”한열은 그 “사악한” 여자를 떠올리더니 이내 눈앞에 있는 “얄미운” 동생을 보곤 속으로 한승이 미리 사회의 쓴맛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답했다.“네가 아버지랑 어머니 앞에서 입만 조심한다면 내일 사람을 보낼게.”한승은 바로 활짝 웃었다.“형, 고마워.”그러자 한열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한승은 항상 부탁이 있을 때마다 형이라고 부르면서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였다....유현진은 차에 타자마자 하이힐을 벗고는 의자에 기대 한숨을 내쉬었다.“후~ 피곤해 죽겠네. 결혼할 때보다 더 피곤한 것 같아.”강한서는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해주면서 말했다.“우리가 결혼할 때는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냥 나타나 주기만 하면 돼.”“그건 안 되지.”유현진은 그를 흘깃 보며 말했다.“축의금을 꼬박꼬박 받아야지. 결혼식에 내가 좀 피곤해도 돼. 그래야 신혼 첫날밤에 내가 양손 가득 축의금을 들고 한 장 한 장 세 볼 수 있잖아.”그러자 강한서가 피식 웃었다.“지난번에는
강한서의 안색이 눈에 띄게 좋지 않았다.유현진이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한 것이었기에 강씨 가문으로 들어올 때 그녀에겐 저축된 돈도 없었다. 그리고 정인월이 챙겨준 10억과 결혼 축의금도 그녀가 살림에 보태 써야 할 돈이라는 것도 신미정은 당연히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미정은 그녀에게 땡전 한 푼 주지 않았다!강한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하지만 자신이 했던 행동도 있었기에 화를 내도 자신에게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는 남편으로서는 불합격이었다. 모든 것이 그가 짜놓은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 여겼던 그는 유현진이 낯선 곳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몰랐다. 그가 결혼식 끝나고도 계속 남아있었다면 축의금 일도 그녀는 아마 적어도 그에겐 털어놓았을 것이다.그녀는 심지어 이 모든 게 어쩌면 그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있었다.강한서는 순간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유현진도 침묵하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우리 두 사람, 참 바보 같다.”“...”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유현진의 말에 민경하가 웃음을 터뜨렸고 빈정대며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시도했다.“사모님, 나중에 대표님이랑 재혼하실 때 장부 적는 곳에 앉아있으세요. 하객들이 주는 축의금을 직접 하나하나 받고 적으시는 거예요. 돈을 받고 나면 결혼식장으로 걸어갈 때 더 힘이 나지 않겠어요?”“...”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강한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민 실장은 운전이나 똑바로 하세요!”차는 빠르게 달려 클라우드 아파트에 도착했다.7동 902호.한성우는 가쁜 숨을 내쉬며 물었다.“어때?”그러자 차미주가 미간을 찌푸렸다.“조금 아파. 그리고 뭔가 조금 불편해. 좀 더 힘을 내봐. 더 정확하게 느껴보게.”“조금 더 힘을 내라고? 너 허리 괜찮겠어?”“아놔, 묻지 말고 그냥 힘을 쓰라고 하면 써!”한성우는 입을 꾹 다물고 손에 힘을 더 주었다.“어! 어, 그래그래. 거기 맞아. 꾹꾹 눌러줘.
유현진은 하이힐을 신지 않겠다고 했다. 강한서는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곤 그녀에게 하이힐을 들고 있으라면서 유현진을 업고 집까지 왔다.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유현진은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 손목에 건 팔찌를 보여주었다.“이거 말이야. 정말로 20억 정도 할까?”그러자 강한서가 말했다.“아마 20억은 넘을 거야. 여기 팔찌에 박혀있는 보석만 해도 20억에 경매가로 나왔었거든. 이 팔찌를 만약 20억에 판다고 하면 강운이 고모님이 반대하실 거야.”유현진은 어안이 벙벙했다.“이 팔찌를 아주머니가 강운 씨 고모님한테서 산 거야?”강한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경매장에 나도 있었거든. 강운이 고모가 그 보석을 낙찰받으시는 걸 성우도 봤어. 하지만 성우는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행여나 가짜일까 봐 경매가를 넣지 않았거든. 그래서 나중에 결국 강운이 고모가 낙찰받으셨어. 그리고 경매장을 떠나셨지.”흔치 않은 자줏빛을 내는 보석일 뿐만 아니라 마치 가짜인 것처럼 아주 투명하고 깨끗하여 한성우는 의심을 하게 되었고 경매를 포기했다.아마 줄곧 보석이 눈에 아른거렸던 탓인지 한성우는 계속 주강운에게 보석에 관해 물었다. 그러나 해외에 있었던 주강운은 그 보석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 후로 반년이 지나서야 주강운이 단톡방에 그 보석으로 팔찌를 만들었다고, 완성된 팔찌는 송씨 가문에서 사 갔다고 했다.그리고 그 팔찌가 바로 서해금이 유현진에게 준 것이 분명했다.강한서는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너 설마 팔아버리려고?”유현진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내가 돈에 환장하는 사람인 줄 알아?”강한서는 차마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었다. 유현진은 돈에 환장할 뿐만 아니라 남편을 돈을 받고 빌려줄 수 있다면 분명 그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빌려주었을 것이다!유현진은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서해금을 만난 횟수가 몇 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해금은 번마다 이 팔찌를 꼭 끼고 있는 것을 보아 이 팔찌
“...”침묵하던 유현진은 강한서의 머리를 잡더니 자신에게서 떼어내고 큼큼 소리를 내며 당당하게 말했다.“얘 취했어.”강한서는 바로 반박했다.“난 안 취했어.”한성우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내가 보기에도 안 취했네.”“...”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제야 뒤에 돌하르방처럼 우뚝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고 갑자기 밀어내는 유현진의 행동도 이해가 되었다.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너희 둘은 대체 이 야밤에 잠도 안 자고 거기서 뭐 하는 거야?”‘좋은 시간 방해가 되게!'그러자 차미주가 말했다.“난 두 사람을 도와서 현진이 선물 정리해 주려고 했지.”한성우도 입을 열었다.“네 형님이 될 사람이 여기서 반 시간 넘게 뭔가를 옮기니까 혹시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서 도와주려고 나왔지. 내일까지 정리 못 할 것 같아서 도와주러 나왔더니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냐!”“오늘 정리 못 하면 내일 하고, 내일도 못 하면 모레 하면 되는 일이야. 어차피 급한 일도 아닌데 뭐 하러 나온 거냐?”한성우가 바로 반박했다.“그건 네 생각이고. 정리를 다 못하면 형수님께서 두 발 편히 뻗고 잘 수 있겠어? 잠도 자지 않고 널 깨워서라도 돈을 세어 볼 거야.”“...”강한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확실히 한성우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하간에 돈에 환장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유현진은 바로 두 사람을 열정적으로 들어오라고 하면서 강한서에겐 삐친 듯한 얼굴을 보여주었다.집 안으로 들어가고 조명을 켜자 네 사람은 놀라게 되었다.한성우가 예상했던 것은 새 발의 피였다. 집안 가득, 거실 가득 차지한 선물에 발 디딜 틈도 없었다.차미주도 놀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참 지나서야 두 글자를 내뱉었다.“대박!”유현진과 강한서도 이렇게 많은 선물을 처음 받아보았다. 하지만 한성우는 받아본 적이 있었다. 여하간에 인맥 부자였으니 말이다.그래서 그는 아주 침착하게 집안을 살펴보곤 유현진에게 말했다.“형수님,
송민준은 입술을 말아 물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그는 송가람의 앞으로 다가갔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죽을 뜯어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일어나서 이것 좀 먹어.”원래 송가람은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흐느끼고 있었지만 들려오는 송민준의 목소리에 감정이 더 북받쳐 흐느끼는 소리가 더 커졌다.그녀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잡아 올리며 말했다.“나 상관하지 마.”송민준은 침대 끝에 앉아 그녀가 뒤집어쓴 이불을 끌어당겼다.“아버지께서 널 보살피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고집 그만 부리고 얼른 일어나서 먹어.”송가람의 눈가가 빨갛게 되었다.“아빠가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오빠는 날 걱정도 안 해줄 거지? 친동생이 생겼다고 더는 내가 필요 없어진 거지? 그래서 나한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거야?”송민준은 대답하지 않고 했던 말을 반복했다.“얼른 먹어. 식으면 맛이 없어.”송가람은 더욱더 속상했다. 그래서 송민준이 들고 있던 죽그릇을 '탁' 쳐냈다.“내가 싫으면 그냥 가. 여기서 걱정하는 척 연기하지 말고!”송민준은 바닥에 쏟아진 죽을 보더니 뜻밖의 말을 꺼냈다.“네가 이도휘를 찾으러 갈 때, 정말로 그 사람이 현진이 메이크업 담당인 거 몰랐어?”송가람은 순간 흠칫 놀라게 되었다.“오빠,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송민준은 입술을 틀어 물었다.“가람아, 오늘 연회에 온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같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고용할 확률이 몇이나 될 것 같아?”송가람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덜덜 떨려오더니 무의식적으로 변명하려 했다.송민준은 그녀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우린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야. 네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넌 티가 너무 나거든.”송가람은 다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오빠, 나 진짜 고의가 아니었어. 나도 어젯밤에 알게 된 거야.”“그래?”송민준은 아주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어젯밤에 알았다면서 그럼 현진이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다
그 순간 송가람의 표정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유현진이 말했다.“오빠, 선물 장부는 어디에 있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혹시 잊은 거 아니에요?”그러자 송민준이 말했다.“아, 장부? 그거 나한테 있어. 그건 왜?”“나중에 답례의 선물을 보내야 하잖아요. 오빠, 지금 어딨어요? 내가 가지러 갈게요.”송민준은 피식 웃었다.“넌 그냥 선물이나 열어봐. 이런 건 네가 할 필요 없어. 장부는 내가 가지고 있으면 돼.”유현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마음속은 이미 송민준의 말에 요동을 치고 있었지만, 꾹 참고 말했다.“오빠, 물건이 너무 많아요. 그래도 답례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뭘 굳이 답례의 선물을 보내? 아버지가 그동안 내신 축의금이 얼마인데. 네가 받은 것보다 훨씬 더 많아. 그러니까 넌 그냥 마음 편히 선물이나 뜯어봐. 괜한 곳에 신경 쓰지 말고. 게다가 네가 결혼한 것도 아니잖아. 이런 일은 나랑 아버지한테 맡기면 되는 거야.”유현진은 순간 송민준이 자신만의 키다리 아저씨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지, 키다리 오빠였다.그녀는 소곤소곤 얘기했다.“그럼 일단 받고만 있을게. 나중에 새언니가 생기면 내가 절반 나눠줄게.”그녀의 말에 송민준은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마음대로 해.”전화를 끊은 뒤, 유현진과 세 사람은 우두커니 서서 눈만 깜박였다.“오빠가 그러는데, 전부 내 것이니까 답례 같은 건 신경 쓰지 말래.”한성우는 바로 질투했다.“오빠한테 다시 전화해서 잃어버린 남동생 없나 물어봐 줘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송민준 남동생인 것 같거든요.”강한서는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송씨 가문에서 너 같은 사람이 나오면, 그건 돌연변이 아니냐?”한성우의 입가가 씰룩거리더니 바로 욕을 뱉었다.“개자식이, 넌 언젠가 그 주둥아리로 망하게 될 거야!”그들은 한참 투덕거리다가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림뿐만 아니라 다기, 액세서리 등등 종류는 아주 다양했다. 비록 거실을 가득 채우긴 했지만 넷이 열심히 한 시간
차미주가 말했다.“이건 타히티 흑진주 세트잖아?”그러자 한성우도 입을 열었다.“이것 봐. 이건 에메랄드 귀걸이 세트야.”“이것도 좀 봐. 블루 사파이어 팔찌 세트야.”“대박, 이건 옥으로 만든 관음보살님이야.”...한성우와 차미주는 마치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하듯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마지막까지 확인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말했다.“아아아, 질투나. 우리 현진이가 고생하는 건 싫지만, 또 이렇게 좋은 선물 많이 받는 건 싫어. 어쩌지? 나 너무 나쁜 사람인가 봐. 어떡해?”“나도 질투나. 친구라는 놈이 나보다 잘생기고 심지어 평생 일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어. 곧 그렇게 된다는 게 너무 짜증이 나고 질투가 나. 어쩌지? 배가 너무 아픈데?”“...”“...”유현진과 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차미주와 한성우가 지금까지 사이좋은 데엔 역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았다.두 사람이 계속 엉엉 소리를 내며 배 아파하자 강한서는 한성우의 엉덩이를 걷어찼다.“도와줄 거야, 말 거야. 안 도와줄 거면 꺼져.”한성우는 그를 향해 중지를 날렸다.차미주와 한성우는 그렇게 한참 부러운 소리를 해대다가 인제야 진지하게 다시 도와주기 시작했다.차와 부동산, 그리고 액세서리 같은 것들은 전부 한씨 가문과 송씨 가문의 어른들이 선물한 것이다. 남은 손님들은 대부분 축의금이나 장인의 그림, 혹은 좋은 글을 써서 그녀에게 주었다.정리를 끝내니 시계는 벌써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유현진과 차미주는 이미 방전상태가 되어 러그에 대충 앉아 장부 기록하고 있었다. 한성우는 안 쓸 것 같아 보이는 물건들을 사진으로 찍어 전문 분야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들에게 가격을 물어보았다.강한서는 음식 배달을 받아 들고 냉장고에서 생수 몇 병을 든 채 유현진 곁으로 찰싹 붙어 앉았다.“어때? 다 했어?”“응, 거의.”유현진은 멈칫하더니 말했다.“스트레인지 명의 이전권만 남았어.”한성우는 그녀의 말에 바로 입을 열었다.“스트레인지요? 현진 씨 새어머니가 그 가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