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선의 안색도 어두워지긴 마찬가지였다.“병천이가 그렇게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니, 일단 들어가 보고 얘기해요.”“미련한 놈인 건 사실 아닌가요?”이때, 옆에 있던 한준웅이 입을 열었다.“아버지, 그만하세요. 이미 예약한 자리니 일단 들어가 보죠.”한준웅의 마누라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그래요, 아버님. 오늘은 좋은 날이잖아요. 마음 가라앉히시고 일단 지켜보세요.”아들과 며느리의 설득에 한태진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풀린 듯했다.호텔에 들어서자 송병천 부부도 일찍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이 호텔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송병천은 서해금에게 따져 물었다.“호텔을 왜 이런 곳으로 예약한 거야?”“전 더 좋은 데 예약하려고 했죠. 근데 현진이가 이 호텔을 고른 거예요. 현진이를 위한 자리이니 현진의 뜻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모든 걸 현진의 뜻에 맞춘 거고요.”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송병천은 유현진이 고른 호텔이라고 하자 입을 삐죽거렸다. 아이의 뜻도 중요하지만 이런 호텔을 예약한 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다. 바로 이때, 한씨 가문의 두 어르신이 걸어왔다.그들을 발견한 송병천이 급히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장인어른, 장모님. 오셨습니까?”한태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편, 공영선은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준비는 다 되었는가?”“네, 장모님.”“병천, 현진이가 송씨 가문의 자식인 건 맞지만 우리 한씨 가문의 자식이기도 하네. 자네가 그 아이의 부친이니 이번 피로연은 자네가 맡아서 하는 게 맞아. 그러나 어떻게 하든 현진이가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하네.”“걱정하지 마세요. 장모님.”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엄청 오네요. 송씨 가문에서 오늘 피로연으로 정한 게 불길한 건지?”주아름은 몸에 묻은 빗방울을 털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새로 들어온 딸이 송씨 가문과 맞지 않는 거 아니에요? 하필 이런 날에 비가 왜 이렇게 많이 오는 건지? 신
한씨 가문의 두 어르신은 원래 기분이 안 좋았지만 외손녀가 온 것을 보고는 이내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유현진과 안부를 주고받았다.유현진은 그들에게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 줬다. 잠시 후, 옆에 있던 송민준이 입을 열었다.“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현진이 데리고 먼저 올라갈게요. 메이크업 받으려면 꽤 시간이 걸릴 거예요.”“얼른 올라가거라. 예쁘게 꾸며서 이따가 손님들에게 잘 보여야지.”공영선은 잡고 있던 유현진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네.”자리를 뜨려 할 때, 서해금을 발견한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위층에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서해금은 그녀의 눈빛을 되새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유현진이 자리를 비운 뒤, 호텔 사장인 전 여사가 손님들을 접대하기 시작했다. “어르신, 일단 쉬고 계시죠. 음식들 준비해 두었으니 좀 드세요. 연회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시작할 겁니다. 두 분께서 기다리시기 조금 힘들 수도 있으실 거예요.”전 여사의 정성 어린 접대에 두 사람은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다. 열정적인 전 여사를 보며 다들 호텔을 선정한 일에 대해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송병천은 마음속에 응어리가 생겨 줄곧 얼굴이 굳어있었다 . “여보, 이 일은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현진이의 뜻에만 따르는 게 아니었어요. 어쨌거나 피로연은 우리 송씨 가문과 한씨 가문의 두 집안의 큰 행사인데. 내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어요. 지금이라도 신라호텔 사장한테 연락해 볼까요? 돈을 더 쓰더라도 현진이한테 섭섭지 않게 해줘야죠.”송병천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이제 와서 무슨. 장소를 바꾼다고 해도 언제 또 연회장을 꾸밀 거야? 복잡하게 할 거면 차라리 안 바꾸는 게 낫지.”“미안해요. 내 탓이에요.”그의 말에 서해금은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송병천은 그녀를 원망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딸아이한테 가장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일처리가 깔끔한 서해금이 스스로 호텔을 예약하고 장소
“설마 어디 시골에서 데려온 거 아닐까요? 너무 촌스러워서 어디 내놓기 부끄러워 대외에 공표하지 않은 게 아닌지?”“글쎄요. 호텔은 별로지만 연회장 인테리어를 보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뭔가 다른 생각이 있겠죠.”“미운 오리 새끼가 하루아침에 백조가 되다니. 참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시나리오네요.”“그건 아니죠. 미운 오리 새끼가 처음부터 백조였으니까.”“이 친딸이 송가람의 지위에 영향을 줄까요?”“글쎄요. 송씨 가문은 원래 아들보다도 딸들을 그렇게 중히 여긴대요. 송가람이 집안에서 송민준보다 더 대우받고 살잖아요. 양딸도 그런데 하물며 친딸은 얼마나 더 귀하게 여기겠어요?”“송가람은 송씨 가문의 딸로 20년 넘게 살았어요. 20년이라면 키운 정이 얼만데요. 게다가 딸로 얼마나 많은 총애를 받고 자랐나요. 난 친딸이 와도 송가람의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송씨 가문이 아니더라도 한씨 가문도 있잖아요. 어쨌든 인생이 환하게 폈네요.”...한편, 한성우가 술잔을 들고 강한서를 찾아갔다.“방금 너희 작은외삼촌이 호텔 때문에 하마터면 현진 씨 아버님이랑 싸울 뻔했다고 하던데.”“작은외삼촌? 한준웅?”그의 말에 한성우가 고개를 끄덕였고 강한서는 의하한 표정을 되물었다. “언제부터 친해진 거야? 그런 얘기까지 다 듣고?”한성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인격이 매력이랄까? 우리 두 사람 꽤 대화가 잘 통해. 아까는 나한테 동생이라고 부를 뻔했어. 하도 옆에서 사모님이 말리는 바람에 결국은 못 했지만. 안 그러면 너 나한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라.”“꺼져.”“대신 소식 좀 알아봐 줬더니 꺼지라고?”한성우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이어갔다.“이 호텔 말이야. 네 와이프가 새어머니한테 당한 거지? 참 대단한 분이야. 당사자에게 직접 선택하게 하고는 자신은 이 일에서 쏙 빠진 거잖아.”“전 여사라는 사람도 되게 똑똑한 사람인 것 같아. 연회장을 이렇게 꾸민 걸 보면. 그러나 아무리 꾸민다고 해도 호텔 레벨이
정인월을 생각하면 자꾸만 자신이 강씨 가문에서 쫓겨났던 일이 떠올라 원망밖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네 할머니가 날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니까 귀찮게 안 하는 게 좋겠어. 이번에 송씨 가문에서 찾은 친딸을 넌 본 적 있어?”강민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오빠는 봤어요.”“한서는 봤다고? 뭐라고 했어?”송씨 가문에서 찾은 친딸에 대해 다들 많이 궁금해했고 강민서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그날 송민준과 강한서가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을 듣다가 왜 강한서가 송씨 가문의 피로연에 대해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한 마디 물어봤었다.강한서가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예쁘고 마음씨도 착한 여인이야. 이제 보면 너도 알게 될 거야.”신미정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네 오빠가 정말 그런 얘기를 했다고?”고개를 끄덕이는 강민서를 보며 신미정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입이 무거운 아들이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칭찬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가 이 송씨 가문의 친딸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아들과 송가람에게 만남을 주선해 주었지만 그는 전혀 별다른 뜻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 송씨 가문의 친딸에 대해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걸 보면 그 여자에 대해 아들이 마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신미정은 기뻤고 마음속으로 강한서가 송가람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가짜 딸을 집안에 들였으면 얼마나 큰일인가?이따가 어떻게 하면 송씨 가문의 친딸과 친분을 쌓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중 귓가에서 송가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신미정은 고개를 돌리고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신미정의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송가람은 그녀에게로 다가와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저쪽에 금방 나온 디저트가 있어요. 저랑 함께 가요.”그녀는 담담하게 거절했다.“아니야. 요즘 혈당이 높아서 단 음식
“근데 송씨 가문에서 이 자리에 널 초대한 걸 보면 요즘 네 표현이 좋았나 보다.”“현진이가 집안사람들한테 똑똑히 말해두었거든요. 저와의 사이를 허락하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그가 아주 자랑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잠깐 침묵하던 정인월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아직 연회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한 거니?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현진이가 널 달래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어떡해?”물론 강한서도 진심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그저 한바탕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늙은이의 눈은 못 속인다고 그가 유현진의 마음속에 어떤 존재인지 할머니가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음이 조금 아팠다. “한서 오빠.”갑자기 뒤에서 송가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하던 강한서가 돌아서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정인월도 자세를 가다듬고 단정하게 앉았다. 송가람은 은은한 블루 컬러의 롱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부드러운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다. 목에는 화려한 디자인의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귀에도 같은 스타일의 블루 다이아가 박힌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기품 있는 메이크업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껏 끌어올렸다. 가냘픈 허리에 늘씬한 몸매, 스타일리쉬한 그녀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오늘 밤도 역시 그녀는 눈부신 존재였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정인월을 향해 다정하게 입을 열였다.“할머니, 언제 오셨어요?”정인월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방금 도착했어. 가람이 오늘 정말 예쁘네.”그녀의 말에 송가람은 부끄러워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여동생을 찾은 걸 축하하는 자리잖아요. 가문의 큰 경사이니 당연히 예쁘게 차려입어야죠.”유현진은 그녀보다 3개월 어렸고 나이로 따지면 그녀한테는 여동생이었다. 정인월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방금 네가 걸어올 때 정말 빛이 났어. 이 늙은이가 눈이 안 좋아서 처음에는 널 알아보지 못했지 뭐야. 이렇게 고귀한 모습의 여
‘왜 강민서랑 날 비교하는 거지?’그녀가 입을 열려는 찰나 정인월이 말을 이어갔다.“가람아, 넌 가서 손님 접대해.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오늘은 손님이 많으니까 송씨 가문의 일을 그르치지 말거라.”“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할머니,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절 부르세요.”정인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그래, 얼른 가봐.”송가람이 자리를 뜬 후, 정인월은 테이블 위에 있는 간식을 먹으며 입을 열었다.“가람이가 꽤 세심한 아이인 것 같아.”이 간식들은 모두 그녀가 평소에 즐겨 먹던 것들이었고 미리 알아본 게 아니라면 이런 것을 준비했을 리가 없었다. 정인월은 지금껏 살면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봐왔었다. 송가람이 자신을 앞쪽 테이블로 데리고 가려고 할 때 그녀는 송가람이 만만치 않은 계집애라는 걸 눈치챘다. 앞쪽 테이블들은 송씨 가문과 한씨 가문의 사람들 그리고 서해금 쪽의 친인척들이 앉는 자리였다. 만약 한서와 현진이가 이혼하지 않았다면 그녀도 자연히 앞쪽 테이블에 앉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의 관계는 대외적으로 비밀이었다.만약 그녀가 송가람의 뜻에 따라 앞쪽 테이블에 앉는다면 분명 사람들에게 한서와 송가람 사이에 대해 오해를 받게 될 것이다. 정인월은 똑똑한 아랫사람들을 좋아하지만 마음 씀씀이가 못된 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송가람은 어릴 적부터 강한서를 쫓아다녔고 민준이와 함께 집으로 놀러 와서도 무의식적으로 강서한에게로 시선을 돌렸었다. 처음에는 그저 어릴 때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 아직도 마음이 식지 않을 줄을 몰랐다. 강한서가 누구와 결혼하는지 어떤 집안의 딸과 결혼하는지 정인월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한서의 마음이었으니까.때문에 송가람을 차갑게 거절한 건 그녀가 송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어서가 아니었다. 정인월이 강한서를 힐끗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네놈이 인기가 많네.”그녀의 말투를 들어보면 전혀 칭찬 같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저렇게 뻔뻔스럽게 꼬리치는 걸 두고만 볼 수는 없잖아.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는 데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서 꼬치 쳐봐. 얼마나 밉겠냐? 저 여자가 허튼짓 못하게 내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 남의 남자는 뺏는 게 아니라고 단단히 일러주면 좋겠는데.”한성우는 가슴이 싸늘해졌다. 사귀는 사이지만 남자친구인 그는 이 여자 앞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는 듯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보다도 절친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예전에 사귀던 여자들은 행여나 그가 다른 여자와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봐 걱정하곤 했었다. 사귀면서 바람을 피운 적은 없지만 워낙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라 그를 좋아하는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다른 여자와 말을 섞으면 전 여자친구들은 질투심에 불타서 그와 자주 다투었다. 근데 이번에 이 여자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고 심지어 다른 여자에게 그를 양보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관대했다. 차미주를 강요해서 먼저 자신에게 고백하라고 한 건 맞지만 그녀가 그렇게 자신을 좋아하지 않은 줄은 몰랐다. 그냥 호감 정도에 불과한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찾아 그녀를 자극하고 그녀와 애써 거리를 두면서 그녀가 자신에 대한 마음을 깨닫게 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는 느낌에 한성우는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반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차미주는 사람들이 송가람을 둘러싸고 그녀에게 아부하는 걸 보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또 허풍 떨고 있는 거겠지.”말을 하면서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가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어봐야겠어.”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한성우가 그녀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한성우가 입술을 깨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도둑아. 너...나 좋아하긴 해?”차미주는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갑자기 왜 그래?”그는 그녀의 손을 내리며 정색하며 말했다.“똑바로 대답해 봐.”그의 이런 모습에 차미주는 어안이 벙벙해졌다.“안 좋아하는데 왜 당신이랑 사귀
고개를 돌리자 한껏 멋을 부린 한 남자가 송가람의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은 바로 송가람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도휘였다.송가람이 손을 뻗어 귀걸이를 만지려는데 이도휘가 그녀를 말렸다.“내가 할게요.”그는 송가람의 귀걸이를 정리해 주고는 그녀의 귀밑머리도 정리해 줬다.“바로 옆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날 불러요.”그의 말에 송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도휘가 자리를 뜬 후 사람들이 다시 수군대기 시작했다.“저 사람 이도휘 씨 맞죠? 업계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어쩐지 오늘 송가람 씨의 메이크업이 달라 보인다고 했어요. 이도휘 씨의 솜씨였군요. 역시 최고의 아티스트는 솜씨가 다르네요.” “이도휘 씨 예약 잡기 엄청 힘들다고 하던데. 전에 친구가 생일 때 메이크업 예약하려고 한 것도 결국은 실패했어요.”“가람 씨 오늘 메이크업 정말 예뻐요. 이따가 송씨 가문의 친딸이 가람 씨 옆에 서면 가람 씨의 미모에 묻히고 말겠는데요.”“송가람 씨가 이렇게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모셨으니 그분도 이도휘 씨 못지않은 사람으로 모셨겠죠.”“이도휘 씨는 업계에서 최고예요. 이도휘 씨보다 더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없을 거라고요.”이때, 송가람이 입을 열었다.“파티 메이크업일 뿐이에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건 송씨 가문의 피로연이었다. 친딸이 찾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만약 송가람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보다 못하면 이건 정말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 이런 수준 이하의 호텔을 정한 것도 모자라 업계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초대하지 못한다면 기른 정이 낳은 정보다 더 깊다는 걸 말해주는 꼴이 아니겠나? 아무리 친딸이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송가람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옆에서 몰래 듣고 있던 차미주는 핸드폰을 꺼내 녹음된 오디오를 유현진에게 보내줬다. 그러고는 이내 일부러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여기 지금 엄청 시끄럽고 난리니까 오지 마.”그녀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