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계속 나가라고 보채는 거 혹시 무슨 나쁜 일이라도 한 거야?”한성우의 과거를 떠올린 차미주가 그를 노려보았다. “너 설마 사무실에 여자라도 숨겼어?”한성우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야?”“아니면 왜 자꾸 보내려는 건데?”한성우는 말문이 막혔다.‘보양탕 먹고 흥분하는 꼴을 들킬까 봐 그런다고 얘기할 순 없잖아?’입술을 짓이기며 한성우가 입을 열었다. “정말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서 그래. 넌 아직도 날 몰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게 아니라면 내가 야근하겠어?”한성우를 훑어보던 차미주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입을 열었다. “넌 야근해. 난 옆에서 조용하게 있을게. 방해하지 않을 거야.”옆에 꼭 붙어있고 싶어 하는 여자친구를 둔 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한성우는 그 복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안에 휴게실 있어. 침대도 있고. 넌 들어가서 쉬어.”“피곤하지 않아.”한성우는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그럼 내가 먼저 들어가서 쉴게. 피곤해.”그가 막 몸을 일으켜 들어가려는데 차미주가 그의 샤워가운을 덥석 잡았다. 샤워를 마치고 한성우는 샤워가운의 끈을 대충 묶고 나왔다. 그러니 차미주가 잡아당기자 샤워 가운이 그대로 벗겨지고 말았다. 한성우는 순간 벌거벗은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 완전히 벌거벗은 건 아니었다. 최소한 속옷은 입은 상태였다.그 모습에 차미주는 할 말을 잃었다. 얼굴을 붉힌 그녀는 어버버거렸다. “일부러 그런 거 아냐. 그러게 왜 꽉 묶지 않었어.”말하며 차미주는 손에 들렸던 샤워 가운으로 한성우의 몸을 감싸려 했다.허둥대던 차미주는 오히려 샤워 가운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샤워 가운을 주우려던 차미주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멈칫하던 차미주가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대박, 선 거야?”“...”한성우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샤워 가운을 주워 몸을 감쌌다. 차미주는 변태처럼 몸을 가린 한성우의 손을 떼어냈다. “움직이지 마. 사진 찍어서 의사
국물까지 다 마시고 나서야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 “피로연 날짜가 정해졌던데 민준이가 너한테 얘기했어?”유현진이 말했다. “말했어. 오빠가 난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래. 그냥 그날 오기만 하면 된다고. 그래도 조금 불안한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될까?”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마음의 준비만 하면 돼. 민 실장이 주문한 드레스도 곧 도착할 거야. 그때 예쁜 드레스로 골라서 부잣집 딸 다운 면모를 잘 보여주면 돼.”그 말에 유현진이 웃어버렸다. “부잣집 딸 다운 면모가 뭐야. 창피한 일만 없어도 감지덕지할 것 같아. 송가람 씨가 옆에 서 있으면 난 고상한 척이라도 해야지.”이 바닥에 오래 있으니 유현진도 사람 보는 눈이 늘었다. 진짜 부잣집 자식과 가짜 부잣집 자식, 그리고 한 사람의 교양은 입고 있는 옷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분위기만 보아도 알아볼 수 있었다. 송가람에게는 부잣집 딸의 특유의 분위기와 기품이 흘러넘쳤다. 특출난 외모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남다른 기품은 한눈에 보아도 옆에 있는 사람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하현주도 유현진에게 앉는 자세, 서 있는 자세와 식사 예절을 가르치는데 많은 돈을 썼었다. 그런 것들을 배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몸에 배도록 습관 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유현진은 기껏해야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제법 부잣집 딸들처럼 연기할 수는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송가람은... 그녀는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예절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던 제일 정확한 매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교양은 이미 송가람의 뼛속 깊은 곳에까지 자리 잡고 있어 그녀는 쉽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강한서는 유현진의 손등을 살며시 어루만지더니 손등에 가볍게 입 맞추었다.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가람에게 천 가지, 만 가지 좋은 점이 있다고 해도 너에겐 어림도 없어. 나에게나, 너희 가족들에게 모두.”유현진이 피식 소리 내 웃더니 갑자기 확 다가와
「송가람이 송씨 집안 딸이 아니었어요? 언제 작은딸이 있었다는 거예요?」「장 여사님, 소식이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송가람은 서해금 씨와 전남편 사이의 딸이에요. 송씨 가문에서 자란 건 사실이지만 송병천 씨의 친딸은 아니에요.」「그러면 송병천 씨가 서해금 몰래 딴 여자와 딸을 낳았다는 건가요?」「그런 말 마세요. 송병천 씨가 유상수 같은 쓰레기인 줄 아세요? 이 딸은 송병천 씨와 전 아내 사이에서 낳은 딸이에요. 송민준 친동생이죠. 틀림없는 송씨 가문 핏줄이라고요.」「그러니까, 한아름 딸이라는 거예요?」「네.」「말도 안 돼요. 당시 한아름은 난산으로 죽었다고 하지 않았어요?」「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아이도 죽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송씨 가문에서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니에요?」「피로연까지 준비하고 있는데 설마 착오가 있겠어요? 핏줄이 어디 그렇게 쉽게 속일 수 있는 문제겠어요.」「이번에 데려온 그 아이가 바로 당시 한아름 씨가 난산으로 낳았던 그 아이라도 하더라고요. 그때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면서 한씨 가문에서는 아이가 죽은 줄 알았던 것 같아요. 사실 아이는 멀쩡하게 살아있었는데 말이에요.」「역시 될 사람은 어떻게든 되는 것 같아요. 몇십 년이 지났는데 찾을 수 있다니, 정말 믿을 수 없어요.」「친딸이 돌아왔으니 송가람 씨 자리가 흔들리겠네요. 한주시에 송가람이 송씨 집안 딸이라 장가가고 싶어 하는 있는 집안 자제들이 얼마나 많은데요.」「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누구에게 더 안 좋은 일이 될지는 아직 모르죠.」...그룹 채팅방의 문자를 보며 신미정이 미간을 찌푸렸다. ‘송씨 가문 친딸?’‘대체 어느 때 일인데 소문조차 없었던 거야?’신미정은 입술을 짓이기며 양시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파티 준비를 하고 있던 양시은은 신미정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자 휴대폰을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그녀는 일을 마무리한 뒤에야 신미정에서 콜백했다. 양시은이 전화를 받지 않아 조금 화가 난 신미정이 나지막이 말했다. “뭐 하느라 이제야
양시은이 말을 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송가람 씨는 어렸을 때부터 그 집에서 딸처럼 컸는데, 친딸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절대 푸대접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예요. 가람 씨를 며느리로 들이는 데 문제 될 건 없어요.”신미정이 눈을 씰룩거렸다. ‘송씨 가문이 친딸이 돌아왔는데 내가 왜 송가람과 다리를 놔주겠어?’‘우리 한서 정도면 결혼을 해도 송씨 가문 친딸과 해야지.’문제는 지금 강씨 집안에서 쫓겨났으니 그 피로연에 참석할 초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직접 피로연에서 친딸이 누군지 확인하려고 해도 기회조차 없다는 말이었다. “시은 씨, 피로연 초대장 받았어요?”양시은이 말했다. “저도 가고 싶었는데, 전 송씨 가문과는 전혀 연이 없어서요. 당연히 전 초대받지 못했죠. 가고 싶으시면 어르신께 부탁해 보세요. 어르신은 송씨 가문과 한씨 가문 모두 연이 있으시잖아요. 어르신이라면 아마 초대받으셨을 거예요. 아니면 강 대표에게 부탁하셔도 되잖아요. 강 대표는 송민준 씨와 친구 사이시니 당연히 갈 거예요.”양시은이 한마디 할 때마다 신미정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녀는 요즘 양시은이 일부러 자신이 아픈 곳을 쿡쿡 찌르는 말만 골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비꼬는 말투는 아니라 신미정은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입술을 짓이긴 신미정이 말했다. “시은 씨는 아는 사람도 많고 수완도 좋으니까 저 대신 초대장 좀 구해줄 수 있는지 알아봐 줘요. 전 의원 투표는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요.”양시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개 같은 X! 아직도 날 속이려고!’그러나 양시은은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말했다. “그래요. 제가 물어볼게요.”전화를 끊고 한참이나 욕을 지껄이던 양시은은 유현진에게 전화했다. 막 촬영을 끝내고 강한서와 드레스를 고르기로 약속한 유현진은 이제 강한서에게 가고 있는 길이었다. 양시은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미정이 양심도 없는 XX X..
양시은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 사람인데, 유현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현진 씨에요?”유현진이 말했다. “제가 여신 뺨치는 외모라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인가 보네요.”양시은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그 뻔뻔함만은 모두가 인정하긴 하죠.’남자 여럿 울릴 유현진의 미모와 지난번 파티에서 봤던 송민준의 얼굴을 떠올린 양시은이 생각했다. ‘어쩐지 송 대표는 만난 적도 없었는데 얼굴이 눈에 익다 했더니, 눈매가 아주 현진 씨 판박이잖아?’양시은은 처음부터 하현주의 불륜 사실을 믿지 않았다. 비록 그녀는 하현주와 친분이 깊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봤던 하현주는 강인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현주는 유상수가 바람피운 사실을 알고는 바로 증거를 모아 이혼을 결심했었다. 그런 사람이 본인이 먼저 배우자를 배신하는 일을 저지를 리가 없었다. 그러니 양시은은 너무도 쉽게 유현진이 하현주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는 곧 송씨 가문의 친딸에게 빌붙으려던 신미정을 떠올리곤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신미정은 줄곧 강한서에게 집안을 비롯한 모든 것이 어울리는 여자를 찾아주려고 유현진과의 결혼을 망치는 일까지 불사했다. 하지만 신미정이 눈독 들이던 송씨 집안 친딸이 바로 그녀가 그토록 무시했던 전 며느리였다. 송씨 가문 친딸의 정체를 확인하게 된다면 신미정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양시은은 자신이 유현진과 연맹을 맺은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저 신미정에서 복수할 생각밖에 없었는데, 인제 보니 대어를 낚은 것 같았다. 송씨 가문에서 피로연을 자기 호텔로 예약한 것을 떠올린 양시은이 물었다. “저희 호텔에 예약한 건 현진 씨 생각이에요?”유현진이 말했다. “제 생각이라기보단, 그냥 살짝 귀띔했을 뿐이에요.”유현진은 적에게는 누구보다 독하게 굴었지만 자기 사람은 누구보다 잘 챙겨주었다. 이소원 자살 사건이든, 유치원 식품 안전 사건이든 양시은은 그녀의 인맥을 이용해 널리 소문을 내준 덕에 일이 수월하게
유현진이 돌아오면 손해를 제일 많이 보는 것은 서해금과 송가람이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유현진을 환영하는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이 추측이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일지도 몰랐지만 어쩌면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었다. 양시은의 추측을 들은 유현진이 침묵했다. 그날 식사 자리에서 서해금은 친절하게 유현진을 대했다. 송가람 역시 예절 바르게 유현진을 대했고 그날은 제법 화목한 분위기에서 식사 자리를 마무리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호텔 예약에 관해 얘기를 꺼낸 서해금은 세심하게도 미리 알아본 호텔 몇 곳을 유현진에게 보여주었다. “현진아, 이 몇 곳은 내가 이미 가서 확인했어. 모두 각자의 분위기가 있더라고. 이번 피로연은 아무래도 네 생각이 중요하니까, 네가 한 번 봐봐. 네가 마음에 드는 곳으로 예약해야지.”대충 훑어보던 유현진의 눈에 양시은의 호텔이 들어왔고 그녀는 곧 양시은의 호텔로 정했다. 그땐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송민준이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며 또 호텔 얘기를 꺼냈다. 송민준은 용호나 신라호텔을 추천했다. 용호의 야외 장소는 한주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신라호텔은 한주의 최고급 호텔이었다. 이미 11월이라 야외는 추웠고 신라호텔이 제일 좋은 선택지였다.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던 유현진은 송민준에게 그랜드호텔은 지인이 하는 호텔이라 어차피 호텔에서 할 거라면 지인에게 맡기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송민준도 더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송민준이 유현진에게 신라호텔을 추천했던 건 아마 양시은과 같은 생각에서였던 것 같았다. 유현진은 똑똑하긴 했지만 그쪽으로는 전혀 머리를 굴리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양시은이 이렇게 언질을 주니 그녀의 마음에도 파란이 일었다. 잠시 후에야 유현진이 입을 열었다. “어떤 의도에서였든, 이미 결정된 일이에요. 인제 와 얘기해 봐야 늦었단 소리죠. 내일이 피로연인데 지금 장소를 옮긴다는 건 불가능해요.”옮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손님들 초대도
강한서는 이미 한참 전에 도착해 있었다. 유현진이 들어갔을 때, 강한서는 소파에 앉아 패션 잡지를 보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었다. 인기척이 들리자 고개를 든 강한서는 유현진임을 확인하고는 얼른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가 덥석 손을 잡았다. 막 촬영장에서 나온 유현진은 옷을 얇게 입고 있었다. 차에 한참 앉아있었지만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강한서는 다른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유현진의 손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히터도 아까워서 켜지 않은 거야?”유현진이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십 분이면 도착하는데 필요 없어.”손을 꼭 잡고 있던 강한서는 아예 외투를 벗어 유현진의 어깨에 걸쳤다. 두 사람이 알콩달콩하며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주인공이지, 내가 주인공도 아닌데 내가 왜 드레스를 골라?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돼?”“호박이라니? 그건 누굴 디스하는 거야?”한성우는 차미주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내일 피로연엔 한주의 많은 명문가에서 참석할 거야. 내가 연애한다는 걸 믿지 않으니까 널 데려가 눈으로 확인시켜 줘야지. 그래야 이 남신에게도 임자가 있다는 걸 다들 알지 않겠어?”차미주가 한성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무슨 신? X 신?”한성우가 피식 웃었다. “호박이랑 딱이네.”차미주가 주먹을 꽉 쥐고 한성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 차미주의 눈에 유현진과 강한서가 들어왔다. 차미주는 한성우를 때리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유현진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현진아. 너도 여기서 드레스 고르는 거야? 골랐어?”유현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차미주가 얼른 유현진에게 팔짱 끼며 말했다. “잘됐다. 같이 고르자.”그렇게 두 사람은 사이좋게 드레스를 고르러 떠났고 두 남자만 덩그러니 남겨져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성우가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내일이 피로연인데 이제야 드레스 고르러 온 거야?”차미주에게 드레스를 골라주고 지퍼도
이번 달에 들어서야 조금 나아지고 있었다. “나 이젠 건강해요.”은서가 고집스레 말했다. “그래?”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운동장 두 바퀴 뛰어봐. 아주머니에게 동영상 찍어달라고 하고. 운동장 뛰고 줄넘기 200개 하고도 괜찮으면 데리러 갈게.”은서는 할 말을 잃었다. “현진 이모도 이렇게 괴롭히는 거예요?”강한서가 피식 웃었다. “당연히 아니지. 내가 현진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현진이 힘들게 안 해.”“그럼 저는요?”강한서가 말했다.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나 보지.”은서가 불퉁하게 입을 삐죽였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날 챙겨줘요?”강한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투정 부리지 마. 약 잘 먹고 얼른 나아야 내가 빨리 데리러 가지.”은서가 여전히 입을 삐죽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 입양할 거예요?”강한서가 말했다. “아니. 넌 가족이 있어.”“그럼 그 사람들은 왜 날 신경 쓰지 않는 거예요?”“그 사람들은...”멈칫하던 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다칠까 봐 겁나서 그래.”조금 슬퍼진 은서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왜 삼촌이 내 아빠가 아닌 거예요?”강한서는 아이를 달래줄 재간은 없었다. 게다가 이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훌쩍이는 은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한서가 다정하게 말했다. “네 아빠는 대단한 사람이야.”아빠라는 말에 은서가 참지 못하고 울먹였다. “삼촌보다 더요?”“나보다 엄청 더.”“그럼 난 언제 아빠를 만날 수 있어요?”입을 뻐금거리던 강한서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언젠가는 만날 거야.”결국은 단순한 아이인지라, 강한서의 말에 곧 해맑게 말했다. “현진 이모가 나온 드라마 봤어요.”“현진 이모 너무 예뻐요.”“저도 크면 현진 이모처럼 예뻐질까요?”강한서가 말했다. “그럴 수는 없을걸. 네 엄마가 현진만큼 예쁘지가 않거든.”은서는 그만 말문이 턱 막혔다. “삼촌 미워!”...강한서가 고른 드레스는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