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자식! 썩을 놈!’차미주는 화를 내며 수건을 꽉 짜고는 굳은 얼굴로 안방으로 향했다. 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안방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차미주가 손을 뻗어 문고리를 틀었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똑똑 차미주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모님, 먼저 주무세요. 여기도 화장실이 있어서 제가 하면 돼요.”“...”차미주는 어두운 얼굴로 수건을 화장실에 휙 내던지고는 문을 쾅 닫았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유현진이 보낸 카톡을 확인했다. 「그냥 안 서고 성욕이 없는 거야? 다른 증상은 없어?」「언제부터 알았어?」「너희 둘 해 봤어?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거야?」「네가 나한테 자세하게 얘기해줘야 내가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지.」「미주야.」「미주야, 자는 거야?」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은 차미주는 휴대폰을 들고 씩씩거리며 답장을 보냈다. 유현진은 한참 동안 기다려도 차미주에게서 답장이 없자 조바심이 났다. 강한서는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는 유현진을 보더니 물었다.“왜 그래?”입이 근질근질했던 유현진은 강한서가 묻자 바로 말해버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곧 달싹이던 입을 닫았다. ‘이 일은 아무래도 강한서에겐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비록 강한서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리는 없었지만 어쨌든 강한서와 한성우는 친구였으니 생각만 해도 괜히 어색할 것 같았다.유현진이 헛기침하며 말했다. “별거 아냐. 방금 인터넷에서 한 여자가 자기 의사 남편이 바람났다고 올린 저격글을 봤거든. 미주랑 그 얘기 좀 하려 했더니 답장이 없잖아.”그런 얘기엔 관심이 전혀 없었던 강한서는 다시 이메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유현진이 몸을 일으켜 소파를 딛고 강한서 등 뒤의 소파 등받이 위에 앉아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요즘 많이 힘들지?”유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매일 밤 늦게 자는 거 같던데.”요즘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갈 때마다 강한서가 거실에서 탁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강한서 탓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전에 엉망진창인 한성의 프로젝트를 처리하기 시작했을 때 민경하는 식사 자리라도 마련해 주주들의 체면을 지켜주도록 설득했었다. 나이가 제일 어린 주주도 강단해와 비슷한 또래였고 나이가 많은 사람은 정인월과 또래였다. 결국은 모두 강한서에겐 어른이었다. 게다가 어른들은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일을 너무 극단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됐다. 강한서도 민경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한세 한식당을 예약해 식사 자리를 마련하려고 주주들에게 연락을 돌리도록 했다. 분명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던 주주들은 강한서가 한세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그들은 하나둘 집에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하필 그날 일이 생길 우연이 있을까?어떻게 된 건지는, 너무 뻔한 일이었다. 주주들은 이미 모두가 이익공동체로 한 편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에게는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끝까지 맞서는 수밖에.한성의 권력다툼은 이미 시작되었다. 강한서는 당연히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가 한성의 주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회사를 끌어 나가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건 강한서는 줄곧 손에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아야만 지키고 싶은 사람과 일을 지킬 능력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전에도 그랬지만 유현진의 신분이 밝혀져 그녀가 송씨 가문의 보물이 된 지금,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만약 그가 한성을 손에 넣지 못하면 송민준에게 유현진과의 결혼을 반대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기 때문이었다. 회사도 지키지 못하는 놈이 어떻게 감히 송씨 집안의 딸을 가질 수 있겠는가.그런 이유를 알 리가 없는 유현진은 매일 잠잘 시간을 쪼개 일에 몰두하는 강한서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조금 물러서야 할 땐 너무 그렇게 강압적으로 나가지 마. 정말 그만둘 수 없을 땐 천천히 해. 오늘은 너무 늦게까지 하지 마
1분 뒤.몸을 뒤척인 차미주가 오른쪽으로 누웠다. ‘그냥 한 방에 있는 거잖아. 개자식은 할 수도 없는데. 그 여자가 뭘 어쩌겠어?’30초 뒤.차미주는 또 몸을 뒤척여 왼쪽으로 누웠다. ‘꼭 서야 뭘 할 수 있는 건가?’10초 뒤.그녀는 아예 엎드려 버렸다. 한성우는 꽤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관건적인 것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 얼굴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었다. 3초 뒤.그녀는 또, 또 몸을 뒤척여 반듯이 누워 천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당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1초 뒤, 차미주는 벌떡 침대에서 튀어 오르며 앉았다. ‘젠장. 내가 왜 둘이 좋게 놔둬야 하는 건데.’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굳은 얼굴로 경비실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어떤 여자가 제 조카를 방에 가뒀어요. 오셔서 그 여자 좀 끄집어내 주세요.”경비원을 알겠다며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곧 머뭇거렸다. ‘이미 집에 쳐들어갔는데, 이건 더 이상 경비실에서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그런 생각에 경비원은 “자상”하게도 차미주 대신 경찰에 신고했다. 십여 분 후.초인종이 울렸다. 차미주가 문을 열자 경비원이 두 명의 경찰을 데리고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순간 멍해졌고 경찰은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주택 침입한 사람이 있다고 신고받고 왔습니다.”차미주가 입을 열기도 전에, 경비원이 먼저 말했다. “어떤 여자가 이분 집에 쳐들어와서 본인과 조카를 방에 가두고 그 짓거리를 한다고 해요. 미성년자인데, 너무 추악한 짓이에요.”“...”‘아저씨, 일을 너무 부풀려서 말했잖아요. 내가 언제 그 짓거리라고 했어요? 게다가 미성년자라니?’미성년자라는 말에 경찰은 더욱 진지해졌다. “어디 있죠?”차미주는 설명하려던 말을 다시 삼키고 방문을 가리켰다. ‘어떻게든 두 사람이 같은 방에만 안 있게 하면 돼.’그러자 경찰은 바로 안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은 먼저 문을 두드리고 안에 있는 사람에게
문이 완전히 열려서야 차미주는 방 안의 상황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성우는 자신이 방을 나서던 그때 자세 그대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다만 셔츠는 완전히 벗겨져 있었고, 머리맡엔 축축한 수건이 놓여있었다. 여자의 치마와 속옷은 전부 침대 위에 던져져 있었고, 그녀는 막 수건을 몸에 두른 채 안방의 화장실에서 나오던 참이었다. 그러더니 경찰을 보고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경찰 역시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조카가 미성년자라고?’‘침대에 누워있는 이 사람이 미성년자?’경찰이 막 차미주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려는데, 경찰 중 한 명이 그 여자를 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눈에 익은 거지?”여자의 표정이 당황함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길을 피하며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가려 했다. “생각났어!”어린 경찰이 말했다. “지난번 잡혔던 사람 중에 그쪽도 있었죠? 이름이 무슨 조 무슨 정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에요?”“아니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여자가 옷으로 얼굴을 가렸다. 출동한 경찰이 여자의 외모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그럼 이름이 뭐예요? 주민등록증 확인할게요.”“안 가져왔어요.”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옷에 있던 지갑이 바닥에 떨어졌다. 경찰이 얼른 지갑을 주어 주민등록증을 꺼내더니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당신 맞네. 지난달 집단 음란죄로 잡혀 온 사람들 중에 그쪽이 있었잖아요. 지금은 또 무슨 상황이죠? 콜 서비스?”여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순간 잿빛으로 변했다. 차미주는 그만 멍해졌다. 이런 반전은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녀는 그저 경비원이 이 여자를 쫓아내 주길 바랐었는데, 경비원이 신고를 한 건 물론, 경찰은 이 여자가 성매매에 종사한다고 했다. 여자가 한성우와 함께 돌아왔으니 경찰은 당연히 두 사람이 사적으로 불법적인 거래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한성우도 함께 서로 데려가려고 했다. 차미주가 얼른 경찰을 제지했다. “형사님, 얘가 이 여자분과
차미주의 행동이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한성우는 차미주가 “얌전”하게 있자 참지 못하고 더 깊이 입 맞추었다. 전에 클럽에서 조준 앞에서 차미주에게 강제로 키스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때도 지금도 딥키스였지만, 그땐 놀란 것보다도 화가 더 많이 났었다. 하지만 이번엔, 차미주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은 쿵쾅쿵쾅 날뛰기 시작했다. 한성우는 차미주와의 키스에 심취했다. 그는 차미주의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그녀를 놓아주며 목에 얼굴을 비볐다. “도둑아...”그의 행동에 바짝 긴장하던 차미주가 곧 긴장을 풀었다. 계속 신경 쓰이던 문제들이 이젠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안 되면 말지, 뭐. 천천히 치료하면 돼. 사실 키스도 짜릿하잖아. 기분도 너무 좋은걸.’이튿날 아침. 한성우가 드디어 천천히 눈을 떴다. 딱딱한 벤치에 밤새 누워있었더니 온몸이 배겨 아팠다. 그가 몸을 일으켜 앉았지만 여전히 상황판단이 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확인해 보니, 그의 눈앞에는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었고 뒷면에는 ‘경찰 뒤에 위험은 없다’라고 쓰인 포스터가 있었다. “...”‘내가 왜 경찰서에 있는 거야?’이때, 문이 열리고 당직 경찰이 차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 한성우가 깨어난 것을 보더니 물었다. “세수하시겠습니까?”한성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찰이 자리에 앉았다.“그럼 시작하죠. 조이정 씨와는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누가 소개해 준 거죠? 몇 번이나, 어디서 만났어요?”“... 죄송하지만, 조이정이 누구죠?”경찰이 멈칫했다. “어젯밤 한성우 씨가 조이정을 집으로 데려가 여자친구와 3P를 하려고 하셨잖아요. 두 여자분께서 한성우 씨를 두고 싸우다가 여자친구가 신고하셨고요.”“...”한성우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니.경찰의 “힌트”에 한성우는 간신히 어젯밤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차미주가 신고했다는 말에 한성우는 잠
한성우는 차미주가 여자친구가 아니라고 했다. 확실히 여자친구는 아니었다. 전엔 그저 대외적으로 여자친구인 척 연기했었고, 나중엔... 차미주가 한성우의 고백을 거절했으니 여자친구일 리가 없었다. 한성우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사실이,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어젯밤 한성우는 차미주에게 키스하며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더니 모른 척하며 단지 친구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차미주는 어젯밤에야 겨우 발기부전인 이 남자의 마음을 받아주기로 다짐했는데, 한성우는 아침이 되자마자 이런 일을 저질렀다. 게다가 한성우는 조이정 그 여자 편을 들기도 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내느라 차미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끝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경찰은 이상하다는 듯 한성우를 쳐다보았다. 방금까지 자기에게 여자친구가 그 장면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었냐며 묻더니, 차미주가 들어오니 또 여자친구가 아니라고 했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그건 경찰의 수사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한성우가 클럽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은 CCTV에 제대로 찍혀 있었다. 게다가 어제 현장에 있었던 친구들도 모두 증언했으니 사건의 경위는 너무도 분명해졌다. 한밤중까지 바삐 돌아쳤지만, 결국은 오해였다. 경찰은 참지 못하고 차미주에게 한마디 했다. “다음엔 제대로 확인하시고 신고하세요. 이게 지금 얼마나 뻘쭘한 상황입니까?”차미주는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성우가 말했다. “제 친구도 제가 걱정되어서 그랬나 봐요. 괜히 저희가 폐를 끼쳤네요.”경찰은 한성우의 태도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경찰서에서 나온 한성우가 고개를 돌려 차미주에게 물었다. “어젠 일이 좀 커져서 놀랐지?”차미주가 주먹을 꽉 움켜쥐고 한성우를 쳐다보았다. “아냐. 못 보던 여자라, 누군지 몰라서 신고했어. 너랑 친한 사람인 줄 알았으면 신경 쓰지 않았을 거야.”차미주의
차미주가 어두운 얼굴로 가버렸다. 조이정이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성우 오빠. 이 부근에 호텔 있는데, 쉬었다 갈래요?”한성우의 시선이 계속 택시를 따라갔다. 그리고 택시가 시야에서 사라져서야 눈길을 거두었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여자를 쳐다보더니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 집에서 씻은 거야?”조이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한성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성, 성우 오빠. 무, 무슨 말이에요?”“성우 오빠?”한성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의 눈빛은 얼음만큼이나 싸늘했다. “우리가 그렇게 잘 아는 사이인가?”그는 앞으로 몸을 기울더니 조이정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한테 이 짓거리 한 사람이 어떻게 될 것 같아? 난 오늘 그 X을 한주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할 거야. 넌 오늘 내 기분이 괜찮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너도 그 X처럼 될 테니까.”말을 마친 한성우가 다시 몸을 바로 했다. 그는 창백해진 조이정의 얼굴을 쳐다보며 태연하게 웃었다.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경찰관님이 보시면 내가 너 괴롭히는 줄 알겠어.”조이정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녀는 공포를 참고 간신히 미소 지었다. 한성우가 요즘 성질을 죽이고 얌전히 지내고 있으니, 사람들은 그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어떻게 싸워왔는지 잊은 모양이었다. 어린 나이에 오직 자신의 실력으로 지금 이 자리에 올랐다는 건, 그가 이 바닥에서 수많은 더러운 수작은 다 봐왔다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을 품고 그에게 다가오는지, 한성우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조이정은 그제야 한성우가 자신의 혐의를 벗겨준 건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차미주는 가슴이 쿡쿡 찔리는 것처럼 아파져 괴로웠다. 휴대폰이 울리자 차미주가 액정을 확인했다. 조준에게 재검받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강한서가 막 회의를 끝내자 민경하가 사
시체가 건져 올려지던 날, 현장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캐리어에 시체를 유기한 사건은 곧 인터넷에 빠르게 퍼졌고 어떤 사람들은 팔로워를 늘리기 위해 모자이크도 하지 않은 부패한 시체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에 사람들의 마음은 곧 뒤숭숭해졌다. 한주에서는 1년 동안 그 어떤 살인, 시체 유기 같은 잔인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 조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피해자의 사진이 이미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져갔고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 그러니 위에선 이 사건을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했고 밤새 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 신우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던 고여정은 팀의 전화를 받았다. 밥을 먹을 새도 없이 신우가 그녀를 경찰서로 데려다줬다. 그날 밤, 부검 결과가 나왔다. 피해자의 몸에는 두 곳의 자상이 있었다. 두 번 모두 직접 심장을 찔렀다. 사고가 아니라 살해가 분명했다. 용의자는 피해자를 죽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피해자의 몸에는 속옷이 전부였고 다른 옷은 전혀 없었다. 시체를 담은 캐리어에도 시체의 신분을 증명할 만한 물건이 전혀 없었다. 캐리어에는 심지어 아무런 지문이나 DNA도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피해자의 손등에는 크고 작은 바늘구멍이 적지 않게 있었다. 경찰은 먼저 피해자의 마약 중독을 의심했다. 하지만 고여정은 피해자의 가슴에서 비슷한 크기의 바늘 자국을 발견했다. 그리고 피해자의 외모 특점을 토대로 가슴에 있는 바늘 자국이 생체 조직 검사를 하면서 생긴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부검 결과 고여정의 생각처럼 피해자는 폐암 말기 환자였고 암세포도 이미 전이가 되어 있었다. 팔에 있는 바늘 자국은 검사나 치료를 하면서 남은 것이었다. 고여정은 한주의 각 대학 병원에서부터 조사를 진행하기를 건의했다. 위에서 허락까지 떨어졌지만 다음 날 피해자의 얼굴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수사 단서를 제보받았다. 원인은 아주 간단했다. 캐리어 시체 유기 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전국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니 대중들에게 경찰청의 행동력을 보여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