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따 다시 연락할게.”전화를 끊자, 고여정이 신우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야?”“아무것도 아냐. 너무 오래간만이라 술이라도 마시자고.”고여정이 말했다. “그럼 여보는 가. 난 대충 먹고 택시 타고 돌아갈게.”“아니.”신우가 단칼에 거절했다. “너랑 조금 더 있다가 갈 거야.”고여정은 이렇게 붙어 있기 좋아하는 신우를 말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도 마음속으로는 이런 신우를 좋아하고 있었다. 신우가 가까이 다가와 고여정의 입술에 입 맞췄다. “여보, 힘들지 않은 자리로 가는 건 어때? 매일 새벽까지 일하면 몸이 견뎌내질 못할 거야. 너 요즘 살이 너무 많이 빠졌어.”고여정이 시선을 아래로 깔고 말했다. “난 애초부터 이 전공이었잖아. 그런데 이걸 안 하면 뭘 할 수 있을까?”“사무직으로 가도 되잖아. 힘들지도 않고.”힘들지도 않으면서 범인 잡으러 다닐 필요도 없어 쉽게 승진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고여정 그녀 만으론 직위를 옮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우의 인맥만 있으면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고여정은 사무직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사무직은 살아있는 사람과 교류해야 하잖아. 하지만 난 죽음 사람과 더 잘 맞아. 난 말도 잘 못하고 여러 사람과도 어울리기 힘들잖아. 언론을 상대할 말주변은 더 없고.”멈칫하던 그녀가 나지막이 물었다. “혹시 어머니 아버지가 나더러 직업 바꾸래?”“아니.”신우가 옴을 일으켜 고여정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너 힘든 게 싫어서 그래. 난 그냥 제안하는 거야. 만약 네가 계속 경찰을 하고 싶으면 난 계속 응원해 줄게.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냉랭하던 고여정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신우를 감싸 안고 그에게 가볍게 입 맞췄다.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고 정말 내가 힘들다고 생각되면, 그땐 내가 직접 신청할게.”신우가 멈칫하더니 이내 입꼬리를 씩 올려 웃으며 천천히 입을
잠시 침묵을 지키던 신우가 냉정하게 세글자로 평가했다. “싸구려.”강한서는 신우의 평가를 인정하지 않았다. “금은 변하지 않잖아. 현진이 마음속에 내 자리는 늘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신우가 강한서의 가슴을 쿡 찔렀다. “금이 얼마나 한다고 그래? 어찌나 아끼는지 너에게 다이아몬드도 사주려고 하지 않는데, 어디서 자랑이야?”강한서가 눈썹을 씰룩거렸다. “네가 2억짜리 다이아몬드를 산다고 해도 팔 때는 2억에 팔 수 있어?”신우는 어이가 없었다. “이미 산 걸 왜 팔아? 그 정도로 돈이 부족한 거 아니잖아. 금이 아무리 가치가 있다고 해도 100g에 고작해야 몇백만 원이야. 파티에 참석할 때 온몸에 금을 휘두르고 갈 거야? 몸에 5kg을 둘러도 겨우 4억이야. 내가 아무 반지나 골라 껴도 20억이 넘어. 누가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신우는 쉬지 않고 강한서를 공격했다. “현진 씨가 너에게 다이아몬드나 다른 보석을 사주지 않는 건 비싸기 때문이잖아. 현진 씨에게 너와의 관계는 그 정도 돈을 쓸 수준이 아니라는 거라고. 금 좋지. 싸고 너 같은 병... 멍청이를 속일 수도 있고.”신우는 병 X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강한서가 복수라도 할까 봐 말을 바꿨다. 강한서가 어두운 얼굴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 “헛소리 하지 마.”신우가 태연하게 말했다. “못 믿겠으면 전화해서 다이아몬드로 바꿔 달라고 해봐.”강한서가 굳은 얼굴로 자리를 벗어났다. 민경하는 차에 올라탄 강한서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설마 신 대표님께서 동의하지 않으신 건가?’사실 그 일은 굳이 신우가 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신우는 같은 편이고 고여정의 남편이기도 했으니, 그가 하는 것이 제일 믿음직스러웠다. 민경하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강한서가 손을 들더니 민경하에게 물었다. “금반지가 싸구려 같아요?”갑작스러운 질문에 민경하가 멍해졌다. ‘왜 이걸 묻는 거지?’민경하는 그 금반지를 선물한 사람이 누
민경하가 물었다.“먼저 사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시죠.”강한서는 그것도 말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있게 여자 친구의 전화번호를 눌렀다.오늘 가 정식적으로 재촬영에 들어갔다. 그래서 유현진은 아침 일찍 촬영 현장으로 왔다. 사전에 송민영이 맡았던 ‘윤여령’이라는 캐릭터를 대체할 다른 배우를 찾았다. 안창수 감독이 단체 채팅방에서 우물쭈물하며 둘러대자 유현진은 새로운 배우가 궁금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휴식하고 나니 조금이라도 빨리 복귀하고 싶은 마음에 아침 일찍이 현장에 도착했다.송민영이 없는 촬영장은 훨씬 화기애애했다. 유현진이 에서 중전 역할로 이름을 알리고 나서 바로 현장에 합류하니 모든 제작진들이 그녀를 보며 예의 바르게 ‘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유현진은 너무 난처했다. 그 호칭은 자신에게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유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강한서가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며 ‘보충 수업’을 한 일이 생각나서였다.다행히도 그녀의 얼굴에서 티가 나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메이크업을 하고 있을 때 유현진이 진희연에게 물었다.“여자 주인공은 아직 안 왔어요?”“이미 오셨어요. 우리보다 일찍 오셨던데요. 대기실에 있어요.”유현진이 놀라 하며 말했다.“엄청 열정적이신데요?”어쩐지 한동안 인기척이 없다 했더니, 가장 먼저 와 있었다. “누군지 아세요?”진희연이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촬영장에 대부분 사람이 모르시던데요. 조금 있다가 같이 가보려고요.”유현진은 이어서 물었다.“한열 씨는 왔어요?”“방금요. 지금 메이크업 받고 있어요.”한열과 여자 주인공의 대기실이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유현진은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해서 메이크업을 마치고 커피 두 잔과 대본을 들고 한열의 대기실로 찾아갔다.한열의 대기실 앞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스태프부터 팬들까지 모두가 여자 주인공을 궁금해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연기 상대가 송민영 같은 사
팬들이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까일 줄 알았어.”“우리 열이 오빠는 일에만 집중하느라 이런 수작은 안 먹힌다고.”“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주제도 모르나?”팬들이 유현진의 상황에 키득거리며 놀리고 있는 그때, 문이 열렸다.모두가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한열이 직접 문을 열었기 때문이었다.아무리 마음속으로 동경하던 소녀가 나이를 먹었어도 한때 한열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았던 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유현진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빠져들었고 지금 이렇게 동료 사이가 되고 나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누나...”한열은 멈칫하더니 다시 불렀다.“현진 누나.”유현진은 대본을 흔들어 보이며 물었다.“바쁘지 않으면 대본 리허설같이 해볼래?”한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활짝 열면서 반겼다.“들어오세요.”휘둥그런 팬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유현진 한열의 대기실에 들어갔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모두의 뒷담화가 다시 이어졌다.“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자야!”“한열이 전에 좋아했다던 선배 누나가 설마 유현진은 아니겠지?”“그럴 수도 있겠어. 같은 여자지만 유현진이 예쁜 건 인정해 줘야 돼. 한열 오빠가 흔들릴 정도의 미모이긴 하지...”“미쳤어? 지금 인기 급상승 중인데 연애를 해?”“무조건 그렇다고 보기도 힘들지. 열이 오빠가 데뷔하고 나서 지금까지 쉬어본 적이 없잖아. 사적인 감정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거니까, 이상한 짓 하지 않고 정상적인 연애라면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축복해 줘야겠지.”“축복은 얼어 죽을, 내가 쓴 돈이 얼만데 한열이가 연애하는 거나 보려고 온 거야?”“다들 진정해요. 이렇게 대놓고 팬들 앞에서 친한 모습을 보이는 게 어쩌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닐 수 있어요. 다른 연예계 아줌마들 보면 아무리 감추고 가린다고 해도 망하는 건 한순간이잖아요. 한열 오빠의 이런 편견 없는 모습이 오히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감정이 아닐 수 있어요.”이 말에 모두가 진정이 된 듯싶었다.“우리는 새로운 주인공이 촬
유현진은 이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 별명이 티베탄 마스티프가 아니랄까 봐, 조금만 사이가 틀어져도 상대가 누구든 대들기 일쑤였다. 여자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한 채 유현진은 진지하게 한열과 리허설을 이어갔다.한열은 비록 연극 배우 출신은 아니지만 연기에 엄청 난 소질이 있었다. 연기를 너무 좋아해서 매번 촬영할 때는 최선을 다했다.유현진은 자신이 누구를 가르칠 정도는 못 되지만 그래도 한열의 연기에 조언해 줄 만한 능력은 있었다. 연기에 소질이 있는 한열은 조금만 알려줘도 그 부분을 빠르게 터득해서 조절이 가능했다.한편의 리허설이 끝나자 매니저가 눈이 휘둥그레해져 말했다.“내가 볼 땐 조금만 더 노력하면 올해의 연기상 하나쯤은 탈 수 있을 것 같은데?”그는 한열이 완전히 연기 쪽으로 전환해서 성공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오디션 출신이지만 현재 연예계의 상태로 보면 댄스가수가 설 자리는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배우로 전향한다면 한열을 섭외하려는 로맨스 장르가 많았다.로맨스 장르는 나이의 제한이 많아서 평생 연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매니저가 올해에 한열에게 마련한 장르는 정극이나 영화를 주로 받았다. 시청률은 잘 나오는 편이지만 연기는 아직 부족했다. 하지만 방금 리허설을 보고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그때, 촬영장에서 안 감독님이 호출했다.비록 전에 크랭크인을 했지만, 안창수는 날을 잘못 고른 것 같았다. 촬영장의 뒤숭숭한 분위를 떨쳐내고 싶은 마음에 그는 일부러 무당을 불러 스태프와 출연진 모두가 절을 올리면서 차례를 지내려고 했다.유현진과 일행들이 한참을 기다린 끝에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여자 주인공이 나왔다.이 정도 환호성이면 아마 인지도가 적지 않아 보였다.한열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유현진은 호기심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돌아서서 인파 속을 헤치고 나오는 사람을 보고 움찔하며 말했다.“저 사람이라고?”“누구요?”한열이 그녀의 말소리에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어
한열은 가다가 멈칫하고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내가 촬영하지 않는 건 당신 때문이지, 하고 싶지 않아서가 절대 아니에요!”신하리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전에도 그렇게 말하더니, 결국에는 키스신 하나도 제대로 못 하고 이빨만 계속 부딪쳤잖아. 2년이나 지났는데 키스신은 좀 늘었나?”유현진은 충격받은 얼굴로 서 있었다.'대박 사건!' 이런 걸 그녀가 들어도 되는 내용인가?이 말에 한열은 언짢은 듯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한 사람은 이 시대 최고의 아이돌이고 한 사람은 최연소 여자 오스카 수상자여서 국민들의 인지도가 가장 높은 업계의 두 거장인데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끼어들었다가 불똥이라도 튀면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한열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모습을 본 매니저도 조급해 났다. 그때 유현진이 한열을 끌어당기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너무 홧김에 결정 내리지 말고 잘 생각해 봐, 이 역할이 너에게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때.”한열은 순간 울컥했다. 비록 ‘진상현’이라는 역할이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한열도 제작진의 추천으로 얻게 된 기회인 만큼 여간 심혈을 기울인 게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역할을 좋아했기에 이대로 포기한다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유현진의 말에 한열도 고민하는 듯했다.“저기에 팬들도 지켜보고 있어. 첫 촬영부터 지금까지 작품이 상영하기만을 기대하고 있는데 네가 갑자기 빠지면 팬들이 얼마나 서운해하겠어.”여론과 팬들 덕분에 최정상의 인기를 얻고 있는 한열은 이런 관심에 대해 언급한 적은 적지만 대중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한열은 다시금 진정하고 신하리를 노려보면서 안창수에게 쌀쌀맞게 말했다. “메이크업 고치고 올게요.”한열이 더 이상 발끈하지 않자, 신하리는 오히려 실망한 듯 보였다. 그녀는 뒤돌아 유현진을 노려보면서 인사했다.“현진 씨, 안녕하세요.”유현진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받았다. 신하리가 유현진을 알아본 것은 그다지 이상
“아니면 반지를 끼지 말고 집에 두면 어때?”“이건 네가 골라준 약혼반지라고!”“...”“그럼 어떻게 할 건데?”강한서는 순간 신우의 말이 떠올라 멋쩍은 듯 말했다.“백금 다이아몬드가 조금 단단하긴 한데, 우리 다이아몬드 반지로 바꿀까?”유현진이 솔직하게 말했다.“다이아몬드는 너무 비싸기도 하고 되팔려 해도 손해야.”강한서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되팔 것도 아니고.”“만약에 한성 그룹을 손에 못 넣어서 파산이라도 하면?”강한서는 시큰둥해서 입술을 움찔댔다.“좀 좋은 얘기해주면 안 되냐!”유현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난 현실적인 것뿐이야, 다이아몬드 반지를 갖고 싶으면 바꾸러 가자. 하지만 너무 큰 건 안 돼.”예상한 스토리가 이게 아닌데? 강 대표님의 위치가 돈보다 높아졌다고? 강한서는 순간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사달란 말이 아니야, 다이아몬드 반지는 남자가 할 일이지.”“결혼반지는 네가 사, 약혼반지는 내가 살게. 혼수라고 생각해. 받고 나서 환불할 수 없어.”강한서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지만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네가 하는 거 봐서.”이제 슬슬 선을 넘는 건가.전화를 끊은 강한서는 기분이 훨씬 좋아 보였다. 민경하를 힐끗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나한테 쓰는 돈은 아깝지 않은가 보네.”민경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정말로 ‘혼수’라는 두 글자를 못 들었을까? 그래, 모른척하면 그만이지.며칠 사이에 TV에는 전부 캐리어 살인사건에 대한 소식들이었다. 아침 일찍, 백혜주의 가정부가 집 안 청소를 하면서 TV 시청을 하고 있었다. TV에는 캐리어 살인사건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백혜주는 자리에 굳어버린 채로 입술을 깨물며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경찰 측은 피해자의 사망 전 사진을 공개하면서 전면적으로 단서를 수집하고 있었다. TV에는 사망자가 폐암이 있고 진찰받은 병원을 수사 중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백혜주는 손을 벌벌 떨었다. 그러면서 손에 있던 컵이 바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진 데다가 표정까지 굳어진 백혜주가 말을 더듬었다.“뭐, 뭐라고요?”가정부는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매일 출근은 물론, 퇴근 시에는 밤길을 걸어 집에 가야 했다. 혹시 묻지 마 식 범죄는 아닐지 걱정되었다. 게다가 시체유기 사건이 일어난 그 구역은 마침 가정부의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가정부는 며칠 동안 여러 경로로 사건 수색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으며, 누구보다 경찰이 범인을 빨리 검거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건이 정리되어야만 안심하고 출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오늘 아침 일찍 단톡방에 업데이트된 소식에 의하면 경찰이 경화로 일대를 통제하고 있다고 했고, 캐리어 시체 유기 사건의 핵심 증거를 찾았다고 했다. 그 증거가 고인의 휴대전화인지, 아니면 흉기인지는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백혜주는 경화로라는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던 것이었다. 일찍이 백혜주는 차태오의 휴대전화와 지갑을 훼손한 뒤 경화로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었다. 경화로는 시체가 유기된 장소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제기랄, 수사기관에 들킬까 봐 일부러 떨어진 곳에 증거물을 버려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했는데, 경찰의 업무 효율이 하현주 교통사고 건 때보다 수십 배나 높아졌을 줄이야...’극도의 불안감이 엄습해 오자, 백혜주는 서서히 두피가 저릿저릿해졌고 얼굴엔 핏기가 사라졌다.며칠이나 지났으니, 쓰레기로 버린 증거물들이 모두 깨끗하게 처리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대체 경찰은 무슨 수로 증거물을 확보한 거야?’당시 백혜주는 차태오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풀지 못하자, 휴대전화에 중요한 단서나 증거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휴대전화를 켜지지 않을 정도로 부수고 버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차태오의 지갑에는 신분증과 각종 카드 외에 별다른 증거물도 남아있지 않았다.‘깨끗하게 처리했고, 그 위에 지문이 남아있을 리 없어. 그러니 경찰이 나를 찾아올 리는 절대로 없을 거야.’백혜주는 마음속으로 끊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