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욱은 그녀의 볼에 뽀뽀를 했다.“아버지랑 어머니께 부탁해 보면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나한테도 얼마 정도 있으니 걱정하지 마요. 일단 급한 건 현아 씨 일이니까 얼른 해결해야죠. 아무리 회사에 정말 큰 일이 생긴다고 해도 조금만 버티고 있으면 해결될 거예요. 그리고 현아 씨가 날 떠날 일도 없잖아요, 그렇죠?”유현아는 바로 감동한 얼굴로 말했다.“그럼 제가 차용증을 써드릴게요. 주식 문제를 해결하면 이윤을 저랑 정욱 씨가 절반씩 나눠 가지는 거예요.”지정욱은 미소를 지었고 사양하지 않았다.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16억을 유현아의 계좌로 입금했다. 유현아도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유상수에게 연락해 주식 매매 계약서에 사인했다.한편 강한서는 미리 그들에게 사람을 심어 놓았기에 바로 이 일을 보고 받게 되었다.함께 들은 유현진도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차태오가 백혜주한테 요구한 금액은 4억인데, 백혜주는 유상수에게 10억이라고 하고 유상수는 16억에 유령 회사 주식을 유현아한테 팔다니. 무슨 마트료시카야? 자꾸 불어나게?”그러자 강한서가 말했다.“네가 그간 이상한 산수를 누구한테서 배웠는지 알 것 같아.”유현진은 그를 바로 째려보았다.“난 그래도 가족한테는 안 그래. 하지만 이 사람들은 가족이면서 서로한테 사기를 치는 거라고. 나랑 같냐?”강한서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확실히 유현진은 관념이 올곧은 사람이었다.“차태오는 현금을 원해.”유현진은 한참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몰래 돈을 가로챌까?”강한서는 눈썹을 치켜세웠다.“좀 합법적인 생각만 하면 안 돼?”그러자 유현진은 코웃음을 쳤다.“허, 그 사람들이 먼저 불법 거래를 하고 있었어. 내가 중간에서 가로챈다고 해서 정말로 신고할 수 있을 것 같아?”“돈을 가로채는 것도 불법이야!”유현진은 더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그럼 나 혼자 갈게!”하지만 강한서는 절대 그녀를 혼자 위험 속으로 보낼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차태오와 거래하
유상수의 그 검은 돈들은 모두 하현주의 피와 살을 긁어서 모은 것이었다. 그러니 그 돈은 당연히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여자친구가 유상수의 돈을 가로채 정의를 실현하려 하니, 남자친구인 강한서는 당연히 전적으로 지지해 줘야 했다. “강도 사건”도 이미 강한서가 깨끗하게 마무리 지은 상태였다. 심지어 그는 차태오의 지갑에 소형 도청기를 넣는 일까지 시켰다. 그건 강한서의 연구팀이 유관 부서와 협력해 새로 개발한 고급 장비였다. 아직 정식으로 생산이 시작되지 않은 신상품이라 마침 성능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병원에 실려 간 차태오는 돈을 도둑맞은 이유에선지 병이 갑자기 악화되었다. 의사는 그에게 빨리 선택하라고 재촉했다. 지금 수술하면 수명을 몇 년은 더 연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미루다가 암세포가 전이되기라도 한다면, 그땐 돌이킬 수 없었다. 차태오는 당연히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겐 돈이 없었다. 그렇게 비싼 수술비와 치료비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문제는 돈을 도둑맞았지만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만약 경찰이 개입하게 되면 당연히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 분명했다. 협박해 얻은 돈이라, 차태오는 당연히 신고하기를 꺼렸다. 그는 대체 왜 자신이 이렇게까지 재수가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치안이라면 어느 곳보다 좋은 한주에서 강도라니.제법 은밀했던 거래 장소를 어떻게 알고 기회를 노린 것일까? 대체 그 캐리어에 돈이 있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생각할수록 이상하다고 여긴 차태오는 끝내 뭔가를 알아차렸다. ‘제길, 강도를 만난 게 아니라, 백혜주가 일부러 꾸민 것일 수도 있잖아!’‘애초부터 나에게 돈을 줄 생각이 없었던 거야.’차태오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해갔다. 백혜주는 오히려 한결 마음이 놓였다. 유상수에게서 10억을 받아 4억으로 차태오의 입을 막았다. 나머지 6억으로 그녀는 생활의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유치원 아이들의 신체검사 결과가 나왔고, 평소 건강에 좋지 않고 비위생적인 음식을 섭취한 이유로
백혜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이 고개를 들었고, 백혜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왜 왔어요? 돈 줬잖아요.”차태오는 헬쑥해졌고 구레나루도 하얗게 변해버렸다. 툭 튀어나온 광대와 삐쩍 말라 들어간 두 볼은 사람을 말라버렸다고 표현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고작 며칠 못 봤을 뿐인데, 10년은 늙어버린 것 같았다. 백혜주의 돈이라는 말에 차태오의 눈빛에 우울감이 맴돌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모님께 드릴 얘기가 있어서요.”더 이상 차태오와 조금이라도 엮이고 싶지 않았던 백혜주가 차갑게 말했다. “난 줄 만큼 다 줬어요. 더 이상 그쪽과 할 얘기가 없는 것 같은데요. 오늘부로 그쪽은 치료에만 전념하고 전 제 삶을 살게요. 우리 사이엔 더 이상 할 얘기는 없어요.”말을 마친 백혜주가 문을 닫으려 했다. 이때 차태오가 발로 닫히는 문을 막아섰다. 그의 표정을 아까보다 더 어두워졌다. “들어가서 얘기하게 해줘.”백혜주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계속 안 가면 경비 부를 거예요.”그러더니 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그 행동은 차태오의 화를 돋웠고 그는 갑자기 품에서 칼을 꺼내더니 백혜주의 허리에 가져다 댔다. “X발, 들어가게 해달라니까!”화들짝 놀란 백혜주는 움찔 손을 떨며 휴대폰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칼날이 서슬 퍼렇게 번쩍였다. 어찌나 날카로운지 조금만 움직여도 백혜주의 피부에 상처를 낼 것만 같았다. 백혜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덜덜 떨며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자리를 내어주며 말했다. “태... 태오 씨.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우리 말로...”“닥쳐!”차태오는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백혜주를 집안으로 밀더니 쾅 문을 닫았다. “너지? 네가 돈 날치기하라고 시킨 거지?”백혜주는 차태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돈이요? 태오 씨,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모르는 척하지 마!”차태오의 눈빛에 독기가 서렸다. 삐쩍 마른 얼굴에 불뚝 튀어
10억?차태오의 낯빛이 변하더니 손을 들어 바로 백혜주에게 따귀를 날렸다. 힘이 너무 셌던 탓에 백혜주는 바닥으로 털썩 넘어지고 말았다. 백혜주는 테이블에 머리를 부딪혔고, 순식간에 부어올랐다. 눈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지만 그녀는 곧 차태오에게 머리끄덩이가 잡혀 억지로 몸을 일으켜졌다. “이 썅X이! 네 입에서 나온 말 중에 거짓말이 아닌 게 있긴 한 거야? 유 대표도 속이는 X이 날 안 속인다고?”백혜주는 고통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차태오의 손을 잡고 사정했다. “태오 씨, 태오 씨. 정말 거짓말 아니에요. 같이 은행에 가서 확인하자니까요. 전 정말 돈을 도둑질당한 줄 몰랐다고요. 이번엔 정말 제가 한게... 악!”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태오가 또 한 번 따귀를 때렸다. “다른 사람을 다 손아귀에 놓고 가지고 놀려고 드는 너 같은 X을 내가 왜 믿어?”백혜주가 얼굴을 감싸고 울면서 소리 질렀다. “정말 제가 아니에요...”차태오는 백혜주와 쓸모없는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휴대폰을 백혜주에게 던져주며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지금 당장 10억을 내 계좌로 입금해. 또 수작 부릴 생각이라면, 죽여버릴 거야.”말하며 손에 들린 칼을 소파에 푹 찔러넣자 백혜주는 온몸을 벌벌 떨었다. 백혜주에게 10억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 돈을 전부 차태오에게 입금하고 나면 그녀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태오는 백혜주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정말 돈을 준다고 해도, 그의 병은 블랙홀처럼 돈을 빨아들일 것이었고, 앞으로 돈이 부족할 때마다 그녀의 비밀로 협박할 것이 분명했다. 몇 년간, 차태오는 매번 협박으로 백혜주를 ATM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인간을 제거하지 않으면,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을 거야.’마음을 굳게 먹은 백혜주는 오히려 점차 침착해졌다. 그녀는 새하얘진 얼굴로 울먹이며 차태오에게 물었다. “태오 씨, 은행 계좌 불러줘요. 입금할게요.”저항하기를 포기한 듯 보이는 백혜주에 차
한성우는 갑자기 차가워졌다. 아니, 차가워졌다고는 할 수 없었다. 사실 한성우의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다만... 차미주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조금 속상했다. 내일은 주말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이 시간엔 한성우와 차미주는 밤을 새우며 게임을 해야 했다. 심지어 두 사람은 굳이 약속할 필요도 없이 매주 금요일 저녁 8시쯤이면 간신을 한 아름 안고 이곳에 모였다. 하지만 오늘은...차미주가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곧 10시가 되어갔지만 한성우는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차미주는 요즘 한성우가 고백하던 말을 계속 곱씹었다.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사실은 설렜다. 하지만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그녀도 그 거절은 경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승낙은 더욱 경솔한 선택일 것 같았다. 차미주는 그 순간, 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만약 그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면, 한성우는 내가 밀당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차미주에게는 몸에 문제가 있는 남자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아, 짜증나.’휴대폰을 집어 들고 유현진에게 카톡을 보냈다. 『현진아, 강한서 발기 부전은 어떻게 치료한 거야?』막 의 감독인 안창수와 통화를 끝낸 유현진이 차미주가 보낸 적나라한 카톡을 확인하고는 입에 있던 망고 주스를 휴대폰 액정에 뿜어버렸다. 사레가 들려 몇 번 기침하는 유현진에게 강한서가 종이를 몇 장 뽑아 입가의 주스를 닦아주며 나지막이 물었다. “뭔데 이렇게 흥분한 거야?”유현진이 손을 내저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숨기며 차미주에게 답장했다. 『그건 왜 물어?』차미주가 답장했다. 『개자식이... 안 돼.』유현진이 충격에 빠졌다. 유현진은 하마터면 개구리처럼 펄떡 튀어 오를 뻔했다. 『자세하게 얘기해 봐.』차미주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왜 이렇게 현진이가 잔뜩 흥분한 것 같지?’차미주가 답장했다. 『먼
차미주는 그대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한성우는 술에 취한 것 같았고 그의 온몸에서도 술 냄새가 풍겨왔다. 셔츠는 절반쯤 단추가 풀려있었고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상반신을 전부 여자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한성우를 부축하고 있던 여자는 그의 집에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지 잠시 당황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도우미... 세요?”“...”차미주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뇨. 전 얘 이모에요.”여자가 놀라워했다. “이... 이모요?”“왜요? 안 닮았어요?”여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닮진 않았어. 너무 젊잖아.’차미주의 잠옷은 전부 귀여운 컨셉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키도 크지 않았고 심지어 동안 얼굴이기도 했으니, 기껏해야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하지만 한성우 집에서 같이 사는 것으로 보아 일반적인 사이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 여자가 차미주를 훑어보고 있을 때, 차미주도 여자를 훑어보고 있었다. 170cm 정도 되는 키에 다리도 길쭉했다. 몸에 착 달라붙는 버건디 롱스커트는 섹시한 몸매를 감싸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예쁘장했고 잘록한 허리와 애플 엉덩이를 갖고 있었다. 유현진 같은 절세미인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매력 넘치게 예쁜 여자였다. 차미주는 순간 한성우의 전여자친구들을 떠올렸다. 한성우와 차미주가 알고 지낸 지 이제 6개월 정도였지만, 차미주는 전부터 한성우에 대해 알고 있었다. 5대 엔터테인먼트 대표 중 제일 어리고, 여자친구가 바뀌는 속도가 자기 회사 연예인이 뜨는 것보다 빨랐으며 심지어 하나같이 전부 미녀였다. 이 여자의 미모는 딱 봐도 한성우가 전에 사귀었던 여자들과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딱 한성우가 좋아할 것 같은 스타일.차미주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내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시선을 거두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안 닮긴 했어요. 어려 보이시는데, 막 대학 입학하셨어요? 성우 오빠에게 이렇게 어린 이모가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 없는데.”성우 오빠...‘나
‘개자식! 썩을 놈!’차미주는 화를 내며 수건을 꽉 짜고는 굳은 얼굴로 안방으로 향했다. 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안방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차미주가 손을 뻗어 문고리를 틀었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똑똑 차미주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모님, 먼저 주무세요. 여기도 화장실이 있어서 제가 하면 돼요.”“...”차미주는 어두운 얼굴로 수건을 화장실에 휙 내던지고는 문을 쾅 닫았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유현진이 보낸 카톡을 확인했다. 「그냥 안 서고 성욕이 없는 거야? 다른 증상은 없어?」「언제부터 알았어?」「너희 둘 해 봤어?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거야?」「네가 나한테 자세하게 얘기해줘야 내가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지.」「미주야.」「미주야, 자는 거야?」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은 차미주는 휴대폰을 들고 씩씩거리며 답장을 보냈다. 유현진은 한참 동안 기다려도 차미주에게서 답장이 없자 조바심이 났다. 강한서는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는 유현진을 보더니 물었다.“왜 그래?”입이 근질근질했던 유현진은 강한서가 묻자 바로 말해버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곧 달싹이던 입을 닫았다. ‘이 일은 아무래도 강한서에겐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비록 강한서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리는 없었지만 어쨌든 강한서와 한성우는 친구였으니 생각만 해도 괜히 어색할 것 같았다.유현진이 헛기침하며 말했다. “별거 아냐. 방금 인터넷에서 한 여자가 자기 의사 남편이 바람났다고 올린 저격글을 봤거든. 미주랑 그 얘기 좀 하려 했더니 답장이 없잖아.”그런 얘기엔 관심이 전혀 없었던 강한서는 다시 이메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유현진이 몸을 일으켜 소파를 딛고 강한서 등 뒤의 소파 등받이 위에 앉아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요즘 많이 힘들지?”유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매일 밤 늦게 자는 거 같던데.”요즘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갈 때마다 강한서가 거실에서 탁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강한서 탓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전에 엉망진창인 한성의 프로젝트를 처리하기 시작했을 때 민경하는 식사 자리라도 마련해 주주들의 체면을 지켜주도록 설득했었다. 나이가 제일 어린 주주도 강단해와 비슷한 또래였고 나이가 많은 사람은 정인월과 또래였다. 결국은 모두 강한서에겐 어른이었다. 게다가 어른들은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일을 너무 극단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됐다. 강한서도 민경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한세 한식당을 예약해 식사 자리를 마련하려고 주주들에게 연락을 돌리도록 했다. 분명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던 주주들은 강한서가 한세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그들은 하나둘 집에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하필 그날 일이 생길 우연이 있을까?어떻게 된 건지는, 너무 뻔한 일이었다. 주주들은 이미 모두가 이익공동체로 한 편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에게는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끝까지 맞서는 수밖에.한성의 권력다툼은 이미 시작되었다. 강한서는 당연히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가 한성의 주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회사를 끌어 나가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건 강한서는 줄곧 손에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아야만 지키고 싶은 사람과 일을 지킬 능력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전에도 그랬지만 유현진의 신분이 밝혀져 그녀가 송씨 가문의 보물이 된 지금,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만약 그가 한성을 손에 넣지 못하면 송민준에게 유현진과의 결혼을 반대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기 때문이었다. 회사도 지키지 못하는 놈이 어떻게 감히 송씨 집안의 딸을 가질 수 있겠는가.그런 이유를 알 리가 없는 유현진은 매일 잠잘 시간을 쪼개 일에 몰두하는 강한서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조금 물러서야 할 땐 너무 그렇게 강압적으로 나가지 마. 정말 그만둘 수 없을 땐 천천히 해. 오늘은 너무 늦게까지 하지 마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