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아...”강한서가 다급하게 유현진의 이름을 불렀다. 유현진은 창백한 얼굴로 목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난 괜찮아. 도망 못 가게 잡아.”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한서는 온천탕에 던져졌던 형체가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강한서가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 남자의 목덜미를 붙잡아 휙 잡아당겼다. 유현진도 가만히 있지 않고 얼른 일어나 불을 켰다. 강한서는 이미 남자의 팔을 뒤로 꺾어 바닥에 누르고 있었다. 다가가 남자를 확인한 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람이 왜...?”유현진을 급습했던 남자를 다름 아닌 방금 파티장에서 그녀에게 술을 건넸던 혼혈 모델이었다. 강한서가 너무 세게 그를 온천탕으로 던진 건지 그의 이마에는 어딘가에 부딪혀 혹이 나 있었다. 혼혈 모델의 눈은 충격과 공포로 가득했다. 그는 말을 더듬으며 한국어와 영어가 엉망으로 뒤섞인 말을 내뱉었다. 도무지 들어줄 수 없었던 유현진은 모델의 아래를 힘껏 걷어차며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똑바로 말해.”유현진의 행동에 강한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모델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한참 만에야 어설픈 한국어로 요즘 상황이 좋지 않아 돈이 될 만한 물건을 훔치러 들어왔다고 했다. 유현진은 그 변명을 전혀 믿지 않았다. “훔치러 왔다면서, 사람이 있는 걸 확인했으면 얼른 도망가야지 왜 날 그렇게 오래 빤히 보고 있었던 거야?”유현진은 처음엔 강한서가 들어온 줄 알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대방이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자,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요즘의 강한서는 어떻게든 그녀와 붙어있으려고 했다. 그러니 강한서였다면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을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고만 있던 사람이 고작 물건이나 훔치려고 했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모델은 자신이 깜짝 놀라 그런 거라고 했다가, 또 유현진이 너무 예뻐서
모델은 감히 숨길 수 없어 말을 더듬었다. “그... 그리고 최음...”‘이딴 수단을 쓰다니.’어쩐지 물에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아 온몸이 뜨거워지고 힘이 빠지더니, 아마 그 약 때문인 듯했다. 한 모금만 마셨을 뿐인데 이 정도라면, 차미주는...유현진은 모델에게 따질 겨를도 없이 얼른 차미주에게 연락했다. 차미주가 전화를 받지 않자 그녀는 곧 한성우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그는 유현진의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유현진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전화를 끊어?”강한서가 말했다. “아마 둘이 같이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강한서가 아는 한성우라면 그는 아마 차미주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유현진의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유현진이 괜히 조바심을 낼까 봐 강한서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해 볼게.”일단은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유현진은 계속 모델 입에서 정보를 캐내려 했다. 예를 들면 주아름이 왜 자신을 해하려고 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유 따위는 전혀 모른 채, 그저 돈을 받고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는 술을 마신 유현진이 그때쯤이면 인사불성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강한서가 방을 나서자 바로 들어와 유현진을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려니 마음에 찔려 덜컥 겁이 났고 잠시 머뭇거리고 있던 그때, 유현진이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순간 당황한 그는 주아름이 맡긴 일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도망치려 했다. 유현진은 이렇게 멍청한 인간은 또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약을 탄 술을 건네며 마셨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그저 자기 생각대로 일을 실행하려 하다니.물론 주아름이 이런 멍청이에게 일을 맡겨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니면 이대로 그녀의 인생은 끝장났을 수도 있었다. 유현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녀와 주아름은 접점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신진성의 결혼식에서 쥐 주아름을 골려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빚쟁이들의 수단이 얼마나 악독한지, 모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겐 빌려준 돈을 돌려받은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모델이 돈을 벌 수 있는 건 온전히 그의 외모 때문이었다. 그러니 얼굴이나 몸이 다치는 일은 당연히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아름은 주씨 가문의 귀한 딸이었다. 그녀 역시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유현진은 그가 저울질하기를 기다려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내리 깔고 말했다. “3초 줄게. 날 선택하지 않으면 안 하는 줄로 알고 바로 전화할 거야.”‘젠장! 이 X이!’모델이 얼른 입을 열었다. “해요.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유현진은 강한서에게 그를 풀어주라고 눈짓했다. 그녀는 휴대폰으로 모델의 사진을 몇 장 찍더니 바로 강한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모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어쩐지 눈에 익었다. 게다가 강한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무시무시했다. 그가 협박당한 건, 30% 만이 유현진 때문이었고 오히려 아무 말도 없이 있던 강한서에게 대한 두려움이 나머지 70%를 차지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주아름 사촌 오빠 주강운이야. 주씨 가문 도련님. 이 사람이 있는 한, 주아름이 감히 널 건드릴 수 없을 거야.”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 모델이 가자 강한서가 화가 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주강운이야?”유현진이 얼른 강한서의 팔을 안으며 그를 달랬다. “기생 오라비 같은 놈이, 딱 봐도 믿을게 못 되잖아. 주아름이 만약 괜히 복수라도 하려고 했다간 바로 우리를 불어버릴 거야. 내가 널 주 변호사님이라고 했으니까 주아름은 아무리 화가 나도 주 변호사님께 어쩌지는 못할 거잖아. 그랬다간 날 모함하려고 했던 일을 숨길 수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널 너라고 말해버리면, 그 멍청한 X이 널 걸고넘어질 게 뻔해. 그러니 주씨 집안 사람끼리 싸우라고 해.”주아름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주시윤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문제는 주시윤이
친구들의 부름에 송가람은 드디어 정신이 들었다. “왜?”“네 오빠랑 아름이는 대체 어때? 잘될 것 같아?”송가람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나중에 한번 떠볼게.”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주아름은 휴대폰을 보면서 방으로 향했다.그녀는 등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방문 앞에 도착한 주아름이 방 카드로 문을 열자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손을 뻗어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과 코를 막았다.순간 주아름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그러나 곧 손수건에 묻은 약 때문에 주아름의 동작은 서서히 느려졌다. 점차 움직임이 줄어들었고, 주아름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술을 마신 지 30분 정도가 지나자, 차미주는 온몸에 땀이 나고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무대 위에서는 마술쇼가 한창이라 한성우는 차미주의 손을 잡고 보러 가려고 했다.차미주는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한성우를 따라갔고 있었다. 그녀의 눈엔 모든 것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무대에선 어떤 마술쇼가 펼쳐지는지, 차미주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성우가 잡고 있는 손이 굉장히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었다. 차미주는 참지 못하고 한성우의 손을 들어 자기 얼굴에 가져갔다.움찔한 한성우가 고개를 돌리자 차미주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옆으로 젖혀 그의 손에 얼굴을 문지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차미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손이 너무 차네.”사실 한성우의 손은 그리 차갑지 않았고 오히려 정상 체온이었다. 차미주의 얼굴이 이상할 정도로 뜨거운 것이었다.한성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뻗어 차미주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도둑아, 너 왜 이래?”차미주가 고개를 가로 젓더니 몇 초 후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 너무 마신 것 같아. 머리가 어지러워.”머리가 어지러울 뿐 아니라 몸도 이상했다. 뜨겁고 텅 비어버린 듯 허전했다. 왠지 한성우를 안고 싶어졌다.하지만 아직 완전히 이성을 잃지는 않았던 터라
그 사실을 깨닫자, 한성우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허리를 숙여 차미주를 공주님 안기로 안고 들어갔다.한성우의 품에 안긴 차미주는 풍겨오는 남성 호르몬 냄새에 참지 못하고 한성우의 가슴에 비비적거렸다.한성우는 상의를 입고 있지 않았고, 차미주의 부드러운 입술이 가슴을 스치자 순간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움찔 손을 떤 한성우가 자기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그가 나지막이 경고했다. “움직이지 마.”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한 차미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개자식! 네가 감히 나에게 명령을 해?”말하며 차미주는 일부러 한성우의 가슴을 꼬집었다. “어디서 순결한 척이야? 네 그 여자친구들은 널 만져도 되고, 나도 네 여자친구인데, 왜 난 못 만지게 해?”그녀의 말에 한성우는 어이가 없었다. “얌전하게 있어. 큰일 나.”차미주는 한성우가 말하는 “큰일”이 뭘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아마 약효 때문인지, 차미주는 괴로워하며 몸을 비볐다. 엘리베이터가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성우는 방문을 열고 차미주를 침대에 눕혔다. 몸을 일으키려던 한성우는 차미주가 그의 목을 끌어안고 그녀 몸 위로 잡아당긴 덕에 일어나지 못했다. 한성우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이런 시련은 또 처음이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이토록 무방비 상태로 그의 아래에 누워있었다. 심지어 최음제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섹시한 자태로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내심 테스트를 당하는 중이었다. 차미주는 너무 괴로웠다. 그녀는 한성우를 안은 채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한성우. 나 이상해.”“어디가 이상한데?”한성우의 목소리가 허스키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뜨거운 열기가 차미주의 귓가를 간지럽히자 그녀는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차미주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목을 움츠렸다. 하지만 약 때문에 그녀는 또 참지 못하고 한성우에게 다가갔다. “우... 우... 우리 처음 했을 때 좋았어?”
하지만 한성우는 아무리 그녀를 꼬실 방법이 많지 않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 억지로 그녀를 취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원한 건 차미주의 마음 전부였다....정신이 흐릿해진 주아름은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누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그녀는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떴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엔 낯선 남자가 그녀를 깔고 누워 이리저리 몸을 더듬고 있는 모습이었다.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진 그녀는 바로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보안 요원이 쳐들어왔고 방안에 펼쳐진 낯 뜨거운 장면에 그들은 바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아주 큰 소란이었기에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서서히 방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그렇게 그 층의 모든 사람이 방안의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주아름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하였고 게다가 이게 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되지도 않았다.그제야 상황 파악이 끝난 주아름은 급히 침대에 널브러진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고 한편으로 욕을 퍼부었다.“꺼져! 다 꺼지라고!”그러나 그녀가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고 부잣집 딸은 역시 노는 방식도 다르다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도 이런 장면을 처음 목격한 것이었기에 대부분 사람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된 것처럼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세상에, 정말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네요.”“역시 재벌가 사람들은 노는 방법도 여러 가지네요. 소리를 지르길래 전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잖아요.”“그런데…. 저분은 송민준 씨를 좋아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요? 어떻게 저런 다른 남자랑 뒹굴 수가 있는 거죠?”“뭐, 미리 내연남을 만드나 보죠. 안 그래요?”“에이, 뭘 다들 그렇게 놀라고 있어요? 저 여자 엄마도 어린 남자랑 재혼했잖아요. 당연히 그 엄마에 그 딸이겠죠.”“제기랄, 전에 저 여자가 좋다고 쫓아다녔던 제가 정말 한심스럽게 느껴지네요. 저한테 온갖 도도한 척은 다 했었는데, 이렇게 음탕한 여자일 줄이야!”...주아름의 안색은 여전히 사색이었다. 구
“오빠, 일단 구경꾼들부터 돌려보내 줘. 여하간에 이 일은 아름 씨 명성과 관련된 일이잖아.”송가람은 갑자기 끼어들며 주아름의 말을 끊어버렸다.주아름도 순간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하마터면 사람을 시켜 유현진을 함정에 빠뜨리려던 일까지 입 밖에 꺼낼 뻔한 것이다.송민준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서로 말이 다른 것 같으니 신고해서 경찰에게 이 일을 맡기는 게 좋겠군.”신고하자는 말에 두 사람의 안색이 변해버렸다.한 명은 감방에 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약을 타 강간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들킬까 두려웠다.주아름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살짝 잠겨버린 목소리로 말했다.“신고하지 마요. 민준 오빠. 전 이 일을 다른 사람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아요.”송민준이 해결책을 찾고 있을 때 유현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주아름 씨, 강간은 법을 어긴 행위예요. 아름 씨가 신고 안 하면 범죄자를 그대로 풀어준다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안 그래요? 만약 저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리고 다른 여자한테도 이러면 어떡하죠?”혼혈이었던 모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하지만 유현진 옆에 서 있는 강한서를 보니 감히 나설 수가 없어 다시 얌전히 있었다.주아름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음험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주아름은 확실히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도 분별하지 못할 정도의 바보천치는 아니었다.지금 이곳에 응당 정신을 못 차리고 침대 위에 누워있어야 할 사람은 바로 유현진이라는 것만큼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유현진은 그녀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멍청하게 당해버리고 말았다.주아름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유현진의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이 판국 또한 그녀가 계획한 것이었기에 정말로 추궁한다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만약 송민준이 알게 된다면 분명 그녀를 혐오스러워할 것이다.주아름은 주먹을 꽉 쥐더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렀다.눈
강한서는 그녀의 손을 살짝 꼬집으며 일부러 입을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송민준은 너무나도 이 일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하필이면 송가람의 생일 연회에서 생긴 것이었기에 도저히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구경꾼들이 점차 사라지자 그제야 주강운에게 물었다.“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 신고할까?”주강운은 주아름을 보며 물었다.“넌 어떻게 해결하고 싶은데?”그러자 주아름은 이를 갈며 소리를 질렀다.“내 눈앞에서 꺼져버리라고 해!”모델은 바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도망치듯 나가버렸다.유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범죄자를 봐주는 걸 선택하셨네요.”주아름의 눈가가 표독스럽게 변하였고 당장이라고 유현진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듯한 마음이었다.주강운은 주아름을 보며 말했다.“우린 먼저 나가 있을 테니까 씻어. 내가 이따 집에 데려다줄게.”주아름은 여전히 이를 갈며 대답했다.그들은 그렇게 방에서 나왔다. 주강운은 송민준에게 말했다.“민준아, 나 대신 CCTV 좀 확인해 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줘.”송민준은 가볍게 응답을 하곤 몸을 틀었다. 그리고 유현진 옆에 서 있는 강한서를 보더니 뜸을 들이면서 말했다.“강한서, 너도 따라와. 넌 눈썰미가 좋잖아.”강한서는 멈칫하게 되었다. 송민준에게서 인정을 받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강한서는 아무런 대답하지 않았다.‘흠, 이런 것도 괜찮네.'그렇게 그는 송민준을 따라갔다.세 사람이 자리를 뜬 후 유현진도 흥미가 떨어져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그러나 몸을 틀자마자 송가람이 그녀를 불러세웠다.“현진 씨, 잠시만요.”유현진은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아까 불똥을 송가람에게 던졌었다. 모델과 주아름이 대화하는 모습을 송가람이 목격했다고 말이다.그녀는 주아름이 사람을 시켜 자신에게 약을 타려 했다는 사실을 송가람이 알 거라곤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방금 주아름이 말실수를 할 뻔한 상황을 떠올리니 송가람이 완전히 개입되지 않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송가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