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가 차갑게 말했다. “쟤가 독을 타와도 넌 맛있다고 할 거야, 그렇지?”차미주는 아예 한성우를 무시해 버렸다. “현진아, 너도 마셔봐.”한 모금 마시던 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달아. 난 못 마시겠어. 너 마셔.”차미주가 말했다. “달콤해야 술 냄새가 가려지지.”그녀는 그대로 술을 원샷해 버렸다. 모델 공연 뒤엔 마술쇼와 인플루언서가 준비한 공연이 이어졌다. 볼 생각이 사라진 유현진은 강한서를 데리고 몰래 방 하나를 더 잡고 온천하러 갔다. 무슨 인연인지, 하필 2년 전 예약했었던 그 방이었다. 유현진은 강한서 품에 안겨 온천을 즐길 때쯤에야 그에게 지난 일을 꺼냈다. “너 2년 전에 우리가 여기 온천하러 왔던 거 기억해?”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진이 불퉁하게 말했다. “너 여기서 하루 종일 자기만 했던 거 알아?”강한서가 소리 내 웃었다. “그날은 정말 너무 피곤했거든.”유현진이 콧방귀를 뀌었다. “나 그날 너 보여주려고 옷 엄청 많이 가져왔었는데. 네가 그렇게 돼지처럼 자기만 할 줄 몰랐지.”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물었다. “이번에도 가져왔어?”“무슨 생각 하는 거야? 그땐 데이트였고 오늘은 다른 사람 생일 파티에 온 건데,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가져오겠어?”강한서가 조금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니면... 민 실장에게 가져오라고 할까?”유현진이 눈을 씰룩거렸다. “인간적으로 좀 굴어.”강한서는 그저 유현진을 놀리고 싶을 뿐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다른 사람이 주인공인 이런 장소에서 하고 싶은 취미는 없었다. 그는 잠자리를 갖는 것보다 그저 유현진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즐겼다. 물의 온도는 꽤 뜨거웠다. 몸을 담근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너무 더운 이유에서인지, 유현진은 조금 어지럽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강한서의 손을 밀어내고 유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어야겠어. 조금 어지러워.”알겠다고 대답한 강한서가 유현진을 따라
“현진아...”강한서가 다급하게 유현진의 이름을 불렀다. 유현진은 창백한 얼굴로 목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난 괜찮아. 도망 못 가게 잡아.”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한서는 온천탕에 던져졌던 형체가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강한서가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 남자의 목덜미를 붙잡아 휙 잡아당겼다. 유현진도 가만히 있지 않고 얼른 일어나 불을 켰다. 강한서는 이미 남자의 팔을 뒤로 꺾어 바닥에 누르고 있었다. 다가가 남자를 확인한 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람이 왜...?”유현진을 급습했던 남자를 다름 아닌 방금 파티장에서 그녀에게 술을 건넸던 혼혈 모델이었다. 강한서가 너무 세게 그를 온천탕으로 던진 건지 그의 이마에는 어딘가에 부딪혀 혹이 나 있었다. 혼혈 모델의 눈은 충격과 공포로 가득했다. 그는 말을 더듬으며 한국어와 영어가 엉망으로 뒤섞인 말을 내뱉었다. 도무지 들어줄 수 없었던 유현진은 모델의 아래를 힘껏 걷어차며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똑바로 말해.”유현진의 행동에 강한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모델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한참 만에야 어설픈 한국어로 요즘 상황이 좋지 않아 돈이 될 만한 물건을 훔치러 들어왔다고 했다. 유현진은 그 변명을 전혀 믿지 않았다. “훔치러 왔다면서, 사람이 있는 걸 확인했으면 얼른 도망가야지 왜 날 그렇게 오래 빤히 보고 있었던 거야?”유현진은 처음엔 강한서가 들어온 줄 알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대방이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자,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요즘의 강한서는 어떻게든 그녀와 붙어있으려고 했다. 그러니 강한서였다면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을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고만 있던 사람이 고작 물건이나 훔치려고 했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모델은 자신이 깜짝 놀라 그런 거라고 했다가, 또 유현진이 너무 예뻐서
모델은 감히 숨길 수 없어 말을 더듬었다. “그... 그리고 최음...”‘이딴 수단을 쓰다니.’어쩐지 물에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아 온몸이 뜨거워지고 힘이 빠지더니, 아마 그 약 때문인 듯했다. 한 모금만 마셨을 뿐인데 이 정도라면, 차미주는...유현진은 모델에게 따질 겨를도 없이 얼른 차미주에게 연락했다. 차미주가 전화를 받지 않자 그녀는 곧 한성우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그는 유현진의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유현진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전화를 끊어?”강한서가 말했다. “아마 둘이 같이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강한서가 아는 한성우라면 그는 아마 차미주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유현진의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유현진이 괜히 조바심을 낼까 봐 강한서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해 볼게.”일단은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유현진은 계속 모델 입에서 정보를 캐내려 했다. 예를 들면 주아름이 왜 자신을 해하려고 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유 따위는 전혀 모른 채, 그저 돈을 받고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는 술을 마신 유현진이 그때쯤이면 인사불성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강한서가 방을 나서자 바로 들어와 유현진을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려니 마음에 찔려 덜컥 겁이 났고 잠시 머뭇거리고 있던 그때, 유현진이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순간 당황한 그는 주아름이 맡긴 일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도망치려 했다. 유현진은 이렇게 멍청한 인간은 또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약을 탄 술을 건네며 마셨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그저 자기 생각대로 일을 실행하려 하다니.물론 주아름이 이런 멍청이에게 일을 맡겨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니면 이대로 그녀의 인생은 끝장났을 수도 있었다. 유현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녀와 주아름은 접점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신진성의 결혼식에서 쥐 주아름을 골려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빚쟁이들의 수단이 얼마나 악독한지, 모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겐 빌려준 돈을 돌려받은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모델이 돈을 벌 수 있는 건 온전히 그의 외모 때문이었다. 그러니 얼굴이나 몸이 다치는 일은 당연히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아름은 주씨 가문의 귀한 딸이었다. 그녀 역시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유현진은 그가 저울질하기를 기다려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내리 깔고 말했다. “3초 줄게. 날 선택하지 않으면 안 하는 줄로 알고 바로 전화할 거야.”‘젠장! 이 X이!’모델이 얼른 입을 열었다. “해요.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유현진은 강한서에게 그를 풀어주라고 눈짓했다. 그녀는 휴대폰으로 모델의 사진을 몇 장 찍더니 바로 강한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모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어쩐지 눈에 익었다. 게다가 강한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무시무시했다. 그가 협박당한 건, 30% 만이 유현진 때문이었고 오히려 아무 말도 없이 있던 강한서에게 대한 두려움이 나머지 70%를 차지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주아름 사촌 오빠 주강운이야. 주씨 가문 도련님. 이 사람이 있는 한, 주아름이 감히 널 건드릴 수 없을 거야.”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 모델이 가자 강한서가 화가 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주강운이야?”유현진이 얼른 강한서의 팔을 안으며 그를 달랬다. “기생 오라비 같은 놈이, 딱 봐도 믿을게 못 되잖아. 주아름이 만약 괜히 복수라도 하려고 했다간 바로 우리를 불어버릴 거야. 내가 널 주 변호사님이라고 했으니까 주아름은 아무리 화가 나도 주 변호사님께 어쩌지는 못할 거잖아. 그랬다간 날 모함하려고 했던 일을 숨길 수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널 너라고 말해버리면, 그 멍청한 X이 널 걸고넘어질 게 뻔해. 그러니 주씨 집안 사람끼리 싸우라고 해.”주아름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주시윤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문제는 주시윤이
친구들의 부름에 송가람은 드디어 정신이 들었다. “왜?”“네 오빠랑 아름이는 대체 어때? 잘될 것 같아?”송가람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나중에 한번 떠볼게.”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주아름은 휴대폰을 보면서 방으로 향했다.그녀는 등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방문 앞에 도착한 주아름이 방 카드로 문을 열자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손을 뻗어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과 코를 막았다.순간 주아름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그러나 곧 손수건에 묻은 약 때문에 주아름의 동작은 서서히 느려졌다. 점차 움직임이 줄어들었고, 주아름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술을 마신 지 30분 정도가 지나자, 차미주는 온몸에 땀이 나고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무대 위에서는 마술쇼가 한창이라 한성우는 차미주의 손을 잡고 보러 가려고 했다.차미주는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한성우를 따라갔고 있었다. 그녀의 눈엔 모든 것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무대에선 어떤 마술쇼가 펼쳐지는지, 차미주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성우가 잡고 있는 손이 굉장히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었다. 차미주는 참지 못하고 한성우의 손을 들어 자기 얼굴에 가져갔다.움찔한 한성우가 고개를 돌리자 차미주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옆으로 젖혀 그의 손에 얼굴을 문지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차미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손이 너무 차네.”사실 한성우의 손은 그리 차갑지 않았고 오히려 정상 체온이었다. 차미주의 얼굴이 이상할 정도로 뜨거운 것이었다.한성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뻗어 차미주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도둑아, 너 왜 이래?”차미주가 고개를 가로 젓더니 몇 초 후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 너무 마신 것 같아. 머리가 어지러워.”머리가 어지러울 뿐 아니라 몸도 이상했다. 뜨겁고 텅 비어버린 듯 허전했다. 왠지 한성우를 안고 싶어졌다.하지만 아직 완전히 이성을 잃지는 않았던 터라
그 사실을 깨닫자, 한성우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허리를 숙여 차미주를 공주님 안기로 안고 들어갔다.한성우의 품에 안긴 차미주는 풍겨오는 남성 호르몬 냄새에 참지 못하고 한성우의 가슴에 비비적거렸다.한성우는 상의를 입고 있지 않았고, 차미주의 부드러운 입술이 가슴을 스치자 순간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움찔 손을 떤 한성우가 자기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그가 나지막이 경고했다. “움직이지 마.”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한 차미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개자식! 네가 감히 나에게 명령을 해?”말하며 차미주는 일부러 한성우의 가슴을 꼬집었다. “어디서 순결한 척이야? 네 그 여자친구들은 널 만져도 되고, 나도 네 여자친구인데, 왜 난 못 만지게 해?”그녀의 말에 한성우는 어이가 없었다. “얌전하게 있어. 큰일 나.”차미주는 한성우가 말하는 “큰일”이 뭘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아마 약효 때문인지, 차미주는 괴로워하며 몸을 비볐다. 엘리베이터가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성우는 방문을 열고 차미주를 침대에 눕혔다. 몸을 일으키려던 한성우는 차미주가 그의 목을 끌어안고 그녀 몸 위로 잡아당긴 덕에 일어나지 못했다. 한성우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이런 시련은 또 처음이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이토록 무방비 상태로 그의 아래에 누워있었다. 심지어 최음제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섹시한 자태로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내심 테스트를 당하는 중이었다. 차미주는 너무 괴로웠다. 그녀는 한성우를 안은 채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한성우. 나 이상해.”“어디가 이상한데?”한성우의 목소리가 허스키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뜨거운 열기가 차미주의 귓가를 간지럽히자 그녀는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차미주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목을 움츠렸다. 하지만 약 때문에 그녀는 또 참지 못하고 한성우에게 다가갔다. “우... 우... 우리 처음 했을 때 좋았어?”
하지만 한성우는 아무리 그녀를 꼬실 방법이 많지 않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 억지로 그녀를 취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원한 건 차미주의 마음 전부였다....정신이 흐릿해진 주아름은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누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그녀는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떴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엔 낯선 남자가 그녀를 깔고 누워 이리저리 몸을 더듬고 있는 모습이었다.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진 그녀는 바로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보안 요원이 쳐들어왔고 방안에 펼쳐진 낯 뜨거운 장면에 그들은 바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아주 큰 소란이었기에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서서히 방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그렇게 그 층의 모든 사람이 방안의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주아름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하였고 게다가 이게 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되지도 않았다.그제야 상황 파악이 끝난 주아름은 급히 침대에 널브러진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고 한편으로 욕을 퍼부었다.“꺼져! 다 꺼지라고!”그러나 그녀가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고 부잣집 딸은 역시 노는 방식도 다르다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도 이런 장면을 처음 목격한 것이었기에 대부분 사람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된 것처럼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세상에, 정말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네요.”“역시 재벌가 사람들은 노는 방법도 여러 가지네요. 소리를 지르길래 전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잖아요.”“그런데…. 저분은 송민준 씨를 좋아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요? 어떻게 저런 다른 남자랑 뒹굴 수가 있는 거죠?”“뭐, 미리 내연남을 만드나 보죠. 안 그래요?”“에이, 뭘 다들 그렇게 놀라고 있어요? 저 여자 엄마도 어린 남자랑 재혼했잖아요. 당연히 그 엄마에 그 딸이겠죠.”“제기랄, 전에 저 여자가 좋다고 쫓아다녔던 제가 정말 한심스럽게 느껴지네요. 저한테 온갖 도도한 척은 다 했었는데, 이렇게 음탕한 여자일 줄이야!”...주아름의 안색은 여전히 사색이었다. 구
“오빠, 일단 구경꾼들부터 돌려보내 줘. 여하간에 이 일은 아름 씨 명성과 관련된 일이잖아.”송가람은 갑자기 끼어들며 주아름의 말을 끊어버렸다.주아름도 순간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하마터면 사람을 시켜 유현진을 함정에 빠뜨리려던 일까지 입 밖에 꺼낼 뻔한 것이다.송민준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서로 말이 다른 것 같으니 신고해서 경찰에게 이 일을 맡기는 게 좋겠군.”신고하자는 말에 두 사람의 안색이 변해버렸다.한 명은 감방에 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약을 타 강간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들킬까 두려웠다.주아름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살짝 잠겨버린 목소리로 말했다.“신고하지 마요. 민준 오빠. 전 이 일을 다른 사람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아요.”송민준이 해결책을 찾고 있을 때 유현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주아름 씨, 강간은 법을 어긴 행위예요. 아름 씨가 신고 안 하면 범죄자를 그대로 풀어준다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안 그래요? 만약 저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리고 다른 여자한테도 이러면 어떡하죠?”혼혈이었던 모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하지만 유현진 옆에 서 있는 강한서를 보니 감히 나설 수가 없어 다시 얌전히 있었다.주아름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음험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주아름은 확실히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도 분별하지 못할 정도의 바보천치는 아니었다.지금 이곳에 응당 정신을 못 차리고 침대 위에 누워있어야 할 사람은 바로 유현진이라는 것만큼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유현진은 그녀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멍청하게 당해버리고 말았다.주아름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유현진의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이 판국 또한 그녀가 계획한 것이었기에 정말로 추궁한다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만약 송민준이 알게 된다면 분명 그녀를 혐오스러워할 것이다.주아름은 주먹을 꽉 쥐더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렀다.눈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