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전말을 듣게 된 학부모들은 순간 정의감이 불타올랐다. 「이건 너무 막무가내잖아요. 대출도 백 원장님께서 갚으신 건데, 무슨 자격으로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거예요?」「이건 너무 쉬운 문제잖아요. 재판에서 대출 상환 자료를 제출하면서 대출금을 갚으라고 하면 되죠. 돈 한 푼 내지 않고 땅을 뺏으려는 게 어딨어요?」「유치원 측에서도 여태 하지 못한 명의 변경을 그 사람은 어떻게 했대요? 명의 변경,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거 아니잖아요.」한 학부모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문자를 남겼다. 「백 원장님 양딸, 연예인인 것 같던데.」「연예인? 연예인이 이런 짓거리를 한단 말이에요?」「이름 좀 알려줘요. 그 회사 대표도 찾아가고, 인터넷에 폭로도 해야겠어요. 설마 연예인이라고 어쩌지 못하겠어요?」「백 원장님 양녀 이름이 유현진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요즘 방영 중인 “봄의 연인”에서 그 중전 아니에요?」「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 사람이 연예인이라고요? 드라마 하나에 몇천억씩 벌어들이면서, 애들 유치원 땅에 소유권 분쟁을 해요?」「연예인에 대한 제 생각에 완전히 못을 박네요. 조작과 탐욕이 끝없는 판이네요.」「어쩐지 그렇게 쉽게 명의 변경을 하더라니, ‘연예인 특혜’네요.」「언론사에 연결해서 폭로하죠. 설마하니 아무도 이 일에 관여하지 않겠어요?」...채팅방에 오가는 문자를 보며 백혜주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학부모들이 이렇게 앞장서는데, 유현진이라고 별 수 있을까?...클라우드 아파트.유현진은 박부자가 보내온 채팅방 캡처를 보더니 물었다. 「이 학부모들은 왜 이렇게 유치원 측의 얘기를 절대적으로 믿는 거예요?」박부자가 말했다. 「제가 미리 사람을 써서 학부모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좀 진행했거든요. 게다가 교육 문제는 원래 학부모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니, 유치원에 문제가 생겼으니 당연히 쉽게 여론에 끌려 가게 되어있어요.」「무슨 교육이요?」박부자가 간단하게 설명하고 나서야 유현진은 오늘 경찰이 출동했을 때, 박부자
“난 유치원 쪽 일이 해결될 때까지만 있으라는 거였어. 누가 오래 있으래?”유현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테이블과 컴퓨터 등 설비들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 광경에 유현진의 눈매가 치켜 올라갔다. “아예 들어와서 살게?”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미주도 나간 마당에 너도 월세를 같이 부담해줄 사람 필요하잖아.”유현진이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이건 우리 오빠 집인데 내가 월세를 내?”강한서가 차근차근 설득했다. “넌 월세를 낼 필요가 없긴 하지만 집이 이렇게 큰데, 혼자 살면 나머지 방은 낭비잖아. 너 낭비하는 거 제일 싫어하잖아. 네가 나한테 월세를 주면, 내가 시가의 3배의 가격으로 월세를 낼게. 어때?”유현진이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한성이 전부 내껀데, 내가 이깟 월세가 눈에 찰 것 같아?”“...”“먼저 날 가져야 한성도 네 것이 되는 거야.”“말 같지도 않은 얘기 좀 작작 해.”유현진이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여긴 우리 오빠 집이야. 네가 이렇게 당당하게 들어와 살면, 뭐가 돼? 소문이라도 나면 네가 우리 집 데릴사위인 줄 알겠어.”강한서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럼 데릴사위 기분 좀 느껴보지 뭐.”“...”이때, 민경하가 방에서 걸어 나왔다. “사모님, 오셔서 사운드 카드 테스트해 보세요.”유현진이 당황하며 물었다.“무슨 사운드 카드요?”“대표님께서 사모님께 프로들이 사용하는 더빙 설비를 주문하셨어요. 나중에 사모님께서 더빙 작품을 업로드하시거나 라이브로 팬 서비스하실 때면 집에서 녹음하시면 돼요.”유현진이 놀라운 표정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네 컴퓨터가 아니야?”강한서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내 컴퓨터를 사용하고 싶으면 여기로 가져올 수 있어.”“...”민경하와 함께 온 사람들은 프로패셔널한 솜씨로 유현진의 녹음실을 꾸몄다. 방음장치와 반사판까지 전부 설치하니 창고 같던 방은 어느새 모양을 갖추었다. 기계의 성능을 테스트하던 엔지니어가 유현진을 불러 테스트해 보도록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다행히 강한서는 아닌 척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데 능숙했다. 그는 태연하게 유현진의 옷깃에 손을 올려 그녀의 겉옷을 벗겨주며 그녀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민 실장도 아직 있는데, 체면 좀 지켜주지?”유현진은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가 겉옷을 다 벗기기를 기다린 유현진이 강한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사람이 많으면 못 안아?”강한서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안을 수 있지. 너만 원하면, 언제든지.”민경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프로 정신으로 콩깍지가 씌어버린 강한서를 놀릴 말들을 삼켜냈다. 30분 뒤, 장비 설치가 끝나자 민경하가 사람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유현진은 얼른 녹음실로 들어가 새 장비를 확인했다. 강한서는 텀블러를 들고 그녀 뒤를 따랐다. 유현진은 헤드셋을 만지고 마이크를 건드렸다. 그녀는 녹음실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곧 설비를 켠 유현진은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물었다. “팬 서비스 해줘?”강한서는 멈칫했다. “무슨 팬 서비스?”유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성우 팬 서비스. 좋아하는 여자 목소리 있어?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목소리로 여신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해줄게.”유현진은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오자 바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강한서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댔다. 그의 눈빛은 더 그윽하고 깊어졌다. 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목소리든 다 따라 할 수 있어?”‘이 개자식, 진짜 이상형이 있었어?’유현진은 티 내지 않고 말했다. “성우는 전부 괴물이라는 말도 있잖아. 네가 상상 못 할 뿐이지, 우리가 못하는 건 없어.”강한서는 눈을 깔고 잠시 생각에 빠진 듯했다. 잠시 후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딱히 좋아하는 목소리는 없고, 듣고 싶은 책은 있어. 그것도 돼?”좋아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말에, 유현진의 기분은 꽤 좋아졌다. “책을 읽어주는 크리에이터가 꼭 성우인 건 아니야. 네가 나한테 책을
유현진은 내용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책의 시대적 설정은 조선시대였다. ‘그 시절에 이렇게 개방적이었다고?’그녀는 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강한서는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어쩐지 아무런 이상한 낌새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자 유현진은 계속 읽어 내려갔다. “수건이 턱에서부터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서생은 불편한 느낌에 몸을 뒤척였고, 그 덕에 옷은 완전히 벌어지고 말았다.”“서생의 피부는 새하얗고, 건장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연약한 몸매도 아니었다. 성월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경성에서 온 사내라 그런지, 피부도 새하얗고 부드럽네. 평소 주막에 술 마시러 오는 뱃살 피둥피둥한 인간들과는 차원이 달라.’”“오래전 죽은 주모의 남편도, 원래는 서생이었다. 안타깝게도 몸이 허약해 혼인한 지 걷 달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주모는 남편과 몇 번의 잠자리 밖에...”유현진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멈췄다. 강한서는 뒤 내용이 들리지 않자 고개를 들어 유현진을 쳐다보았다. “왜 그래?”그는 너무 평온한 표정이라, 멈칫한 유현진이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유현진의 머릿속에는 “이거 불건전한 책이야.”와 “이건 너무 정상적인 거야. 문학 작품도 성이라는 화제를 굳이 피하지는 않으니까.”라는 두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결국은 강한서의 독서 스타일을 믿고 계속 읽기 시작했다. 팬 서비스를 하겠다고 약속했기에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몇 번의 잠자리밖에 가지지 못했지만, 그마저도 대충 끝나 버렸던 탓에, 부인들이 얘기하는 너무 좋아서 죽어버릴 것 같은 기분은 느껴보지도 못했다.”“그 일이, 그렇게나 좋은 걸까?”“주모의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서생의 허리춤에 멈췄다. 순간 주모의 볼을 뜨거워졌고, 그녀는 서생의 어깨를 살포시 밀며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날도 더운데, 소인이 몸을 닦아 드릴겠습니다. 시원하실 겁니다.’”“서생은 주모의 말을 못 들은 것인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성월은
그 “팀”에서는 한성우에게 초보, 일반, 고수, 레전드급의 여러 대필 작가를 추천했다. 소설은 교양 수업의 학점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고, 한성우도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기에 그는 당연히 거금을 들여 레전드급의 대필 작가를 고용했다. 상대방은 꼭 한성우가 A+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며 호언장담했다. 역시나 레전드급의 작가라 그랬던 건지, 입금한 3일 뒤, 소설을 완성했다. 그 작가는 한성우에게 소설을 확인하도록 했다. 막힘없이 써 내려간 몇천 자의 소설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역시 레전드네.’한성우는 앞부분만 대충 읽고 바로 나머지 돈도 입금했다. 그리고 자기 이름으로 파일을 저장한 뒤 교수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소설 감성 수업의 교수는 여자였다. 교수님은 한성우가 보낸 “거작”을 보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바로 교장에게 한성우의 행실이 바르지 않고 교수를 희롱한다며 사실을 알렸다. 희롱은 범죄였다. 학교 측에서는 바로 한성우를 불렀고, 엄숙한 태도로 문제를 처리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교장실에 불려 간 한성우는 자신의 “죄”를 알게 된 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누명을 벗기 위해 그는 결국 대필 작가를 고용한 일을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을 확인한 학교는 한성우를 경고했고, 그 수업은 당연히 F 학점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번 일로, 전교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신우의 동생 신학은 한성우와 동기였고, 그는 한성우의 컴퓨터를 해킹해 그의 “거작”을 손에 넣어 채팅방에 공유했다. 강한서는 “추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제껏 그 “거작”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성우에게 말발로 완전히 밀릴 때면, 강한서는 그 “거작”을 한성우에게 보내 추억 여행을 시켜줬다. 한성우는 그때마다 노발대발했다. 한성우의 흑역사에 유현진은 한참 동안 폭소를 멈추지 못했다. “당하고는 못사는 인간이 그 대필 작게에게 복수 안 했어?”“하려고 했지.”강한서는 코끝으로 유현진의 귀를 비비며 나지막이 말했다. “환불해 달라고 했지만
유현진은 입을 닫더니 눈빛이 흔들렸다.“그, 뭐야. 쓰레기를 아직 안 버려서, 쓰레기 버리고 올게.”유현진은 바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강한서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여자가 도망가도록 놔둘 리가 없었다. 그는 유현진의 손목을 꽉 잡고 굳은 얼굴로 물었다. “언제부터 알았어? 누가 얘기해 준 거야? 설마 민 실장?”유현진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민 실장님도 알아?”“...”“...”‘이놈의 주둥이, 민 실장님에게 덮어씌웠어야지.’강한서의 따가운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유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말해 준 거야.”강한서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럴 리가.”“정말 네가 말해 준거야.”유현진이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취해서 얘기해 줬어.”강한서는 움찔 몸을 굳히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현진이 멈추지 않고 팩트 폭행을 날렸다.“네가 직접 수술 자국도 보여줬잖아. 비록 내가 계속 거부했지만 네가 굳이 보여주겠다면서.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그녀는 말하며 손으로 크기를 가늠했다. “이만큼 길었어.”강한서의 표정이 굳어졌다. 유현진을 놀리려던 장난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술에 취헤 그런 비상식적인 짓을 저질렀을 줄은 미처 몰랐다. 자기가 바지를 벗어 직접 유현진에게 상처를 보여줬다는 것만 떠올리면 술기운에 두꺼워졌던 얼굴이 다시 얇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수치스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유현진을 놓고 굳은 얼굴로 나가버렸다. 유현진은 강한서를 놀릴 흔치 않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강한서를 뒤따라가 쫑알거렸다. “수술대 위에서 무섭진 않았어? 전신 마취한 거야, 아니면 부분 마취? 그곳 수술을 하려면 브라질리언 왁싱해야 하는 거 아냐?”말을 늘어놓던 유현진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말했다. “너 전에 몇 개월 동안 나랑 잠자리를 가지지 않으려고
멈칫하던 강한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왜 그런 일로 널 속이겠어?”유현진이 얼른 손을 저었다. “난 그냥 물어본 거야. 그런 뜻으로 한 얘기 아니야.”강한서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그럼 무슨 뜻인데?”유현진은 몰래 강한서를 쳐다보더니 발꿈치를 들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강한서의 표정은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고, 그는 진지한 유현진의 표정을 보며 입술을 달싹이다, 한참 만에야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너 생물 안 배웠어?”“뭐?”유현진이 멍청한 표정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강한서는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유현진을 쳐다보며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너한테 생물 상식을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유현진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한서가 갑자기 다가와 공주님 안기로 유현진을 안아 올렸다. 깜짝 놀란 유현진이 강한서의 어깨를 때리며 소리쳤다. “대낮부터 뭐 하는 짓이야? 내려줘.”강한서는 시선을 내리깔고 품에 안긴 여자를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꼭 너한테 상식을 가르쳐야겠어. 만약 나중에 우리가 딸을 낳아서 너한테 성교육을 받으면 큰일이잖아.”유현진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버둥거리며 강한서의 머리카락을 잡으려고 했다. 이때 강한서가 유현진을 침대 위로 던져버렸고, 손을 뻗어 안방의 문을 닫았다. 유현진은 반항 속에서 강한서에게 “정관 수술 후 사정할 수 있을까”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박부자의 예상대로 다음 날 햇살 유치원 휴교가 실검에 올랐다. 학부모들은 굳게 닫힌 유치원 앞에서 촬영했고, 눈물로 유치원이 휴교하게 된 정황을 호소했다. 곧이어 요즘 제일 핫한 크리에이터인 17이 각 SNS에 “누구는 출연료만 100억, 누구는 아이들 교육 문제로 애끓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부자를 저격한 글의 조회수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아침 일찍부터 그 글을 본 차미주는 얼른 유현진에게 보내주었다. “이 17이라는 크리에이터,
올해 초의 대학교 고양이 학대 사건, 대학교 학식 사건, 지하철 몰카 사건, 모 대학교 비리와 모 셀럽 자살 사건 등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사건은 전부 17의 콘텐츠가 되었다. 그는 긴 글로 이런 사건의 발단이 된 사회의 문제점을 밝혀냈다. 살기 어려운 요즘 세월에 진실을 말하려는 언론사는 많이 없었다. 17은 수많은 시민의 마음속 얘기를 전해주었으니 한순간에 명성을 얻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차미주는 줄곧 그 계정의 주장은 너무 주관적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어느 정도 여론몰이를 하려는 성향도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17은 언제나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발언을 했던 터라, 결국 차미주도 참지 못하고 17의 계정을 팔로우했다. 17의 계정은 개설하고부터 지금까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팔로워 수가 몇천만 명에 달했고, 팬들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유치원이 휴교한 일은 원래 실검에 오를 정도로 이슈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17이 업로드한 글 때문에 사건은 이슈화되었고 결국 실검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유현아 사건에 대해 글을 썼을 때부터 조금 이상했어. 유현아도 분명 잘못이 있지만 어려운 네티즌들을 도운 것도 사실이라면서 유현아가 악플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선행을 했다는 건 충분히 칭찬받을 일이라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잘못을 저질렀어도 뉘우쳤으면 그만이다.’ 따위의 말로 유현아를 포장하더라니까. 그때 하마터면 언팔로우할 뻔했어.”“그땐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까 이 자식은 그저 관종이었던 거야. 정상적인 매체라면 절대 조사도 거치지 않고 저런 글을 쓸 리가 없잖아. 그래서 난 언팔로우해버렸잖아. 팬클럽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차미주는 자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누가 봐도 “칭찬해 줘”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하는 사이 차미주가 보내온 글을 다 읽은 유현진은 차미주의 말을 듣고 웃음을 흘렸다. “인터넷에 떠도는 매체가 얼마나 좋을까 기대하지 마. 이걸로 밥벌이 하는 사람은 다 순수하지만은 않아.”유현진이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