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주강운이 쫓아왔고 그는 빨랫대로 남자의 손목을 가격했다. 저릿하게 전해지는 고통에 남자가 칼을 놓쳤다. 남자는 바로 몸을 돌려 주강운과 몸싸움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비록 주강운보다 키는 작았지만 살집이 있고 건장한 체격이었다. 게다가 남자는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받은 것 같은 몸놀림이었다. 몇 번의 주먹다짐 끝에 두 사람은 바닥에서 뒹굴며 몸싸움했다. 남자는 주강운의 목을 꽉 조르며 핏기가 서린 눈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저년을 도와 나랑 이혼하게 했다며. 오늘 넌 내 손에 죽는 거야!”산소 부족으로 주강운의 얼굴이 점점 충혈되었고 이마에도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는 팔꿈치로 남자의 머리를 꽉 누르고 있었다. 주강운은 잔뜩 충혈된 눈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유현진에게 소리쳤다. “가요!”유현진의 손가락이 덜덜 떨려왔다. 차미주도 겁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들은 한 번도 이런 미친놈을 본 적이 없었다. 주강운을 이기지 못한 남자가 다시 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칼과 점점 가까워지자, 주강운의 눈빛이 잿빛으로 변해갔다. 그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김치를 담근 항아리가 남자의 이마를 가격했다. 움찔 몸을 굳힌 남자는 비틀거리며 고개를 들었고, 자기 이마를 내려친 사람을 확인할 새도 없이 기절했다. 주강운의 목을 조르고 있던 손도 드디어 풀렸다. 주강운이 고개를 들자 유현진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옆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은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차미주는 얼른 옆에 있던 식칼을 한쪽으로 차 버렸다. “주 변호사님, 괜찮으세요?”그제야 정신이 든 주강운이 유현진을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나지막이 대답했다. “괜찮아요.”주강운은 몸을 돌려 쓰러진 남자를 바닥에 꽉 눌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차미주에게 말했다. “미주 씨, 끈 좀 찾아줄래요?”차미주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끈을 찾았다. 주강운이 유현진을 힐끔 쳐다보니 그녀는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유현진의 시선은
주강운의 말을 들은 차미주는 순간 변호사라는 직업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주 변호사님, 우리 방금 그건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죠? 만약 저 인간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저희가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니겠죠?”주강운이 웃으며 말했다.“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주강운이 유현진을 쳐다보자 그녀는 아직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현진 씨? 괜찮아요?”유현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개를 돌린 유현진은 주강운 손에 넥타이가 감겨있는 것을 발견했다. 넥타이는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차미주도 주강운의 손을 발견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주 변호사님. 대동맥을 찔린 것처럼 피가 왜 이렇게 많이 나는 거예요.”유현진: ...주강운은 차미주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피가 잘 멎지 않아서요. 괜찮아요.”유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미주야, 네가 먼저 주 변호사님 모시고 병원에 가서 지혈 좀 해. 내가 진술서 작성하러 갈게.”주강운은 혈우병을 앓고 있었다. 상처를 제때 치료해 지혈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차미주는 주강운과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 유현진이 그를 데리고 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강한서가 맡긴 임무를 떠올린 차미주는 그 말을 삼켜야만 했다.“그래.”주강운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같이 진술하러 가요. 전 괜찮아요.”유현진이 말했다.“먼저 지혈부터 해요. 건강이 중요하죠.”그에 주강운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는 한참 만에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오늘 일은, 두 분께 신세를 졌네요. 괜히 저 때문에...”차미주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친구 사이에 신세는요.”주강운이 웃으며 고개를 돌려 유현진을 쳐다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멈칫하던 유현진은 주강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실 애초부터 위에 올라갈 생각이 없었다. 뛰어 올라간 차미주가 걱정되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절대 끼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진술을 마치고 경찰서에서 나온 유현진은 차미주에게 문자로 그쪽 상황을 물었다. 차미주가 말했다. 「주 변호사님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아. 간호사가 꿰매는 중이야.」상처가 깊다는 말에 유현진은 깜짝 놀랐다. 차미주가 말을 이었다. 「현진아, 우리 과일바구니라도 사서 병문안 가야 하는 거 아냐? 아무래도 같이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상처를 꿰매기도 했잖아.」「이 저녁에 선물을 사 들고 병문안 가는 게 어딨어.」잠시 생각하던 유현진이 말했다. 「내가 강한서에게 주 변호사님 가족분께 연락하라고 할게. 병문안할 땐 하더라도 타이밍을 잘 봐야지.」「알겠어. 너 여기로 올 거야?」「난 안 갈래. 이따 가족분들 도착하면 너도 돌아와. 다른 건 집에 가서 얘기해.」「그래.」차미주와 문자를 마무리한 뒤, 유현진은 바로 강한서에게 전화했다. 같은 시각, 강한서는 회장실에서 앉아있었다. 그의 옆에는 강단해와 강현우가 앉아있었고 맞은편 소파에는 정인월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진씨와 강민서가 있었다. 정인월은 굳은 얼굴로 강단해와 강한서를 쳐다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내 얼굴에 먹칠을 하는구나. 임원 회의에서 싸우다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거냐?!”강한서는 시리도록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단해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어머니, 이번엔 한서가 너무했어요. 쟤 한마디로 지사와 프로젝트의 존망이 결정되면 다른 주주에게 제가 어떻게 설명하겠어요? 한성 그룹은 강씨 가문만의 것이 아니에요. 모두의 이익을 함께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요? 전에 한서가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땐 저희 주주들이 회사를 지켰잖아요.”정인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들었니? 한꺼번에 전부 문을 닫으면, 주주에게는 뭐라고 할 거니?”강한서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매 시즌마다 두 곳씩 청산하는 거로 하죠. 적자가 제일 많은 것부터 시작하면 되겠네요.”정인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방법이겠구나.”강단해의 얼굴에 당
사무실에서 나온 강한서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는 일부러 도도한 척했다. “밥은 다 먹었어? 이제야 남자친구가 있는 게 기억났나 봐?”유현진: ...‘이 질투쟁이가!’‘하지만...’“너, 우리 밥 먹으러 가는 건 어떻게 알았어?”멈칫하던 강한서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널 몰라? 일 처리가 끝났으면 네 변호사님께 한턱 크게 내려고 했겠지.”유현진: ...“밥은 못 먹었어.”유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변호사님께 일이 좀 생겼어.”움찔 몸을 떤 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강운이가 왜?”“칼에 손을 다쳤어. 지금 병원에서 봉합 중이고. 너 주 변호사님 가족분이랑 친하잖아. 집에 연락 좀 해줘.”강한서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너희 일 보러 간 거잖아. 대체 어떻게 칼에 손을 다친 거야?”유현진은 간단히 오후에 있었던 일을 강한서에게 말했다. 그녀의 말을 다 들은 강한서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유현진이 복도에 있던 항아리로 사람을 쓰러뜨렸다는 말에, 그는 씰룩 눈썹을 치켜올렸다. 강한서는 굳은 얼굴로 입을 열어 유현진은 꾸짖으려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주 변호사님은 고맙다고 하시더라고. 하지만 사실 난 처음부터 올라갈 생각이 없었어.”유현진의 말에 강한서는 의아해했다. “왜? 정의로운 네가 왕자님을 구해 네 착한 마음씨를 뽐낼 절호의 기회였잖아.”유현진: ...‘개자식, 또 비꼬네.’유현진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 망나니가 칼을 들고 있었다고. 내가 미쳤어? 칼로 위협받고 있는 사람이 너도 아니고, 내가 올라간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어?”잠시 멍해졌던 강한서가 씩 입꼬리를 올리더니 나지막이 물었다. “만약 위협받는 게 나라면, 넌 앞뒤 안 가리고 달려올 거야?”유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만약 너라면, 난 더 멀리 도망칠 거야. 넌 그 입이 문제라, 네 원수는 절대 널 용서할 리가 없잖아. 어차피 구하지도 못할 거야. 차라리 멀리 도망쳐야지. 불똥이 튀지 않게.”강한서: ...그는 바득
“헛소리 좀 하지 마.”유현진이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나 지금 너랑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잖아.”강한서는 도무지 “어두운 기운”이 어딜 봐서 진지한 얘기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현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얘기해.”유현진이 비밀스럽게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엔 말이야, 주 변호사님은 미주가 말했던 것처럼 팔자가 사납고 어두운 기운이 많고 운이 나쁜 사람인 것 같아. 이제 알고 지낸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매번 만날 때마다 다치지 않으면 사고가 생기잖아. 물론 나랑 사주팔자가 맞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어. 그러니까 만나기만 하면 재수 없는 일이 생기는 거겠지.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주 변호사님을 멀리해야겠어. 괜히 내가 병원에 갔다간 대량출혈이라도 할 것 같아.”강한서: ...강한서가 그렇게 얘기할 땐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결국엔 미신이 그녀를 설득한 셈이었다. 강한서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강한서가 앙큼하게 설득하는 척 연기했다. “너 풍수나 그런 건 다 거짓말이라며? 그러면서 이런 건 믿는다고? 강운이가 들으면 서운해할 거야.”유현진이 콧방귀를 뀌었다. “연기하지 마. 넌 내가 주 변호사님을 멀리하길 원했잖아.”강한서가 살풋 웃음을 터뜨렸다. “난 강운이가 잘 됐으면 좋겠어. 물론 너도 더 잘됐으면 좋겠고. 하지만 네가 걔한테 너무 잘해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강운이 편집증은 심한 편이야. 난 네가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아.”유현진은 진정한 편집증이 어떤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정신질환 환자의 이미지는 전부 미쳐있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그런 이미지와 주강운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현진은 비록 팔자 핑계를 댔지만, 사실 그녀는 팔자나 미신 같은 건 잘 몰랐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전형적인 이익 추구형 인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주강운과 함께 있어서 사고가 자주 난다면, 만나지
강단해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정인월은 어두운 얼굴을 한 강현우를 힐끔 쳐다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마. 네 형이 널 데리고 있는다 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 줄 알아? 네가 계속 이렇게 철이 들지 않는다면, 서부로 돌아가서 계속 성장해야지.”강현우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네, 할머니.”정인월이 잔을 내려놓았다. “한서야, 민서에게도 자리 하나 내주렴. 너무 높은 직책 말고,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거로.”강한서는 강민서를 슥 훑어보았다. 강민서는 잔뜩 움츠러든 채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다. 그녀는 심지어 강한서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강한서의 얼굴만 보면 강민서는 자기도 모르게 강단해의 집에서 자신을 경찰서로 끌고 갔던 강한서의 모습이 떠올랐다. 강민서를 향한 강한서의 사랑은, 그날 전부 강민서의 악몽이 되었다. 경찰서에서 당했던 일만 떠올리면 그녀는 끓어오르는 원망과 공포를 감출 수가 없었다. 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담담하게 말했다. “먼저 비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민 실장에게 안내하라고 할게요.”민경하: ...그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말 안 듣는 애는 그냥 베이비시터에게 맡기면 안 돼요? 여긴 유치원이 아니라고요.’민경하와 달리 정인월은 굉장히 만족했다. “그렇게 하렴. 민 실장. 민서 데리고 입사 절차 밟아요.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게.”민경하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는 강민서에게 말했다. “민서 아가씨, 같이 가시죠.”강민서를 입술을 짓이기며 민경하를 뒤따랐다. 정인월은 강단해와 강현우를 쳐다보며 이마를 어루만졌다. “너희도 이젠 가렴. 이런 작은 일로 나까지 부르다니, 너희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려. 내가 아주 수명이 줄어.”강단해는 기가 막혔다. 정인월을 부른 것은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정인월이 맏이를 편애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단해는 어두운 얼굴로 강현우를 데리고 회장실을 나왔다. 진씨도 자리를 비켰다. 그들이 회장실에서
강한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화도 나지 않았다.그야말로 유현진의 친할머니가 따로 없었다.“현진이는 예전과 많이 달라요. 이미 진짜 가족도 찾았죠. 재혼하는 건 집안 큰일이에요. 그러니 현진이뿐만 아니라 현진이 가족들 동의도 받아야 해요.”정인월은 의아한 듯 물었다.“진짜 가족을 찾았다니?”강한서는 유현진과 송씨 가문, 그리고 한씨 가문에 대해 정인월에게 말해주었다.정인월은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어쩐지 현진이 인상부터가 착한 사람 인상이라고 했어. 그 아이가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그래, 그랬군. 아람이가 낳은 아이였구나. 정말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군.”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다시 뜸을 들이다 한참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갑자기 든 생각인데, 네 재혼이 순탄치 않을 것만 같구나. 그 집안에서 네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게 아니더냐?”“...”강한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래서 말인데 할머니, 별일 없으시면 자주 한씨 집안 어르신들과 차라도 마셔주세요. 할머니 손자 35살 되기 전에는 장가가야 하지 않겠어요?”그러자 정인월은 코웃음을 쳤다.“인과응보다, 이놈아! 현진이가 너 없으면 안 된다고 하던? 네가 현진이 없으면 안 되는 거겠지! 처음부터 네가 현진이랑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부터 알아봤다! 그나마 얼굴이 보기 좋아서 결혼하긴 개뿔, 넌 그냥 현진이한테 반한 거잖아! 그래 놓고 자꾸 아닌 척할래?!”강한서는 급히 변명했다.“...처음에는 확실히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냥 그나마 눈에 거슬리지 않아서 결혼한 거예요.”“허허.”“...정말이에요, 할머니. 제가 거짓말을 해서 뭐해요.”정인월은 그를 흘겨보았다.“그래,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그럼 첫날밤을 보낼 때 뭐 그렇게 조사했어? 현진이가 다칠까 봐 감히 손도 못 대던 놈이 말이야!”강한서는 입을 삐죽거렸다.“할머니 허위 사실 유포하시면 안 돼요.”정인월은 점점 더 목소리가 커졌다.“이 집안에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은
주강운의 어머니는 입술을 틀어 문 채 나직하게 물었다.“네가 사고 났을 때, 유현진 씨랑 같이 있었니?”주강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현진 씨가 아니었다면 전 아마 병원에조차 제때 오지 못했을 거예요. 현진 씨가 절 구해 줬거든요.”그녀의 안색이 다소 이상해졌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나중에 내가 유현진 씨를 찾아가 감사 인사를 해야겠구나.”주강운은 바로 손을 내저었다.“어머니, 어머니는 이 일에 신경 쓰실 필요 없으세요. 나중에 제가 다 나으면 직접 갈 거예요.”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강운아, 유현진 씨는 한서의 전 아내잖니. 그러니 유현진 씨와 가깝게 지나지 말렴. 괜히 그러다 사람들한테 이상한 소리나 듣게 돼.”주강운은 뜸을 들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상한 소리가 대체 뭔데요?”그녀가 말했다.“한서랑 현진 씨는 이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네가 현진 씨랑 가까이 지내면 한서가 이혼한 이유가 네 탓이 되는 거야. 아니면 네가 분명 현진 씨랑 뭔가가 있다고 소문이 나겠지. 너랑 한서는 친구잖니. 그런 소문이 돌면 너한테도, 한서한테도, 누구한테도 안 좋아.”주강운은 침묵하다가 한참 후에야 말을 꺼냈다.“만약 정말로 그런 소문이 퍼지는 거라면 저한테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사실... 현진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쨍그랑-!그녀의 손에 있던 과도는 바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충격을 받은 듯한 그녀는 경직되더니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네가 현진 씨를 좋아한다고? 강운아,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혹시 머리라도 다친 거니? 어떻게 유현진을 좋아할 수가 있어?!”주강운은 충격에 휩싸인 자신의 어머니를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냉정한 모습으로 말했다.“제가 왜 좋아하면 안 되는데요?”그녀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왜라니? 그 애는 한서의 전 아내야. 네가 그 애를 좋아하면 앞으로 한서랑 어떻게 계속 지내? 세상에 좋은 여자가 그렇게 많은데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