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난 질투 때문이 아니야!”“그럼 뭐 때문인데. 말을 해야 알 거 아니야!”그녀는 오는 길 내내 오늘 일을 어떻게 가볍게 설명할 수 있나 생각했다. 강한서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데 위로를 받을 것으로 생각한 그녀와 달리 강한서는 주강운을 만났다는 일로 따져 묻고 있었다. 유현진의 마음도 어느 정도 차갑게 식어버리게 되었다.“넌 나한테 아무것도 안 말해주잖아. 강운 씨와 멀리하라는 것도, 결혼식에서 나만 남겨두고 간 일도 무슨 이유였는지 안 말해주잖아! 넌 영원히 너만의 이유가 있고, 영원히 너만 힘들겠지! 난 애초에 너한텐 믿음이 가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강한서는 다소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그녀와 다툴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이건 믿음과 상관없는 일이야. 난 그냥 널 위해서...”“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 그 말이야!”유현진은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넌 항상 날 위해서 그랬다고 말하지. 정말 나를 위한다면 나한테 이유를 알려줘.”강한서는 입술을 달싹이더니 한참 후에야 말했다.“강운이는 해리성 장애가 있어. 나도 언제부터 그랬는지 정확히는 몰라. 그냥 네가 다칠까 봐 멀어지라고 한 거였어.”유현진은 벙찐 표정이었다.“해리성 장애가 뭐야?”강한서는 몇 분간 그녀에게 해리성 장애에 관해 설명을 했고 유현진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해리성 장애는 일종의 정신질환이었다. 발병할 때 자신을 마치 다른 하나의 인격처럼 분리하고 그 기간 이루어진 행동은 본인도 어떻게 억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성격도 평소 그의 성격과 완전히 달라 다중인격장애라고 볼 수 있었지만,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였다.유현진은 이런 질환을 처음 들어보았다. 너무나도 황당한 증상에 그녀는 강한서가 꾸며낸 게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얼른 검색해 보았고 확실히 이런 병이 있었다.유현진은 곰곰이 주강운의 그간 행동을 생각해 보았다. 그의 행동은 정상인보다 더욱 정상적이었고 전혀 해리성
강한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내가 살아있어서 걸림돌이라도 된 거야?”유현진이 살짝 웃음을 지었다.“내 말은, 네가 있는데 내가 누굴 선택해? 비록 강운 씨는 얼굴이 잘생겼지만 내 최애는 여전히 너야.”강한서는 그녀의 달콤한 말에 화도 순간 싹 가셨다.유현진이 이어서 말했다.“네가 정말로 강운 씨의 또 다른 인격이 공격성을 보일 거라 생각한다면, 내가 보기엔 제일 걱정해야 하는 건 너야. 난 강운 씨랑 기껏해야 몇 달 정도 안 사이잖아. 연락도 자주 안 하고 말이야. 넌 강운 씨 소꿉친구고 너랑 강운 씨 집안도 왕래가 잦잖아. 강운 씨가 정말로 증세를 보인다면 제일 먼저 찾아가는 게 너일 확률이 더 높지 않아?”강한서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걘 어차피 날 이기지 못해.”“그건 모르는 일이지. 강운 씨 근육이 너보다 훨씬 많은 것 같은데. 심지어 복싱 대회에서 우승도 했었잖아. 넌 평소에 운동이라곤 그저 뛰고 가볍게 아령을 드는 정돈데, 강운 씨를 상대할 수 있겠어?”강한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강운이 몸에 근육이 나보다 많다는 거, 네가 어떻게 알아?”“...”유현진이 말했다.“그냥 때려 맞춘 거야.”그녀는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나 오늘 컵을 두 개 샀는데.”그녀는 뒤에 있던 주머니를 들고 안에 있던 상자를 꺼내 포장을 풀었다. 그리고는 눈을 반짝이며 그의 앞에 내밀었다.“예쁘지?'강한서는 그녀가 내밀 컵을 보았다. 커플 컵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저도 모르게 힘주었던 미간이 스르르 풀리게 되었다.그는 컵을 다시 원래 있던 포장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많이 아파?”유현진이 바로 대답했다.“엄청. 아주 많이 아파.”“그럼 내가 호 해줄까?”“내가 애야?”유현진은 비록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얼굴은 이미 그에게 들이밀고 있었다.“해줘.”강한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넌 애가 아니라며.”유현진은 눈을 감았다.“비록 애들 달래기엔 조금 유치하지만, 나한텐 아주 딱 맞아.”
유현진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주먹을 들어 그를 퍽 때렸다.“내 가르침이 부족한 게 아니라 네가 재능 없는 거겠지!”강한서가 미소를 지었다.“그래, 알았어. 내가 재능이 없어서 선생님께 폐를 끼쳤네요.”“그만하고 얼른 시동이나 걸어.”유현진은 안전벨트를 했다.“생선이 싹 썩겠네.”강한서도 더는 별말 하지 않고 바로 시동을 걸어 떠났다.집에 도착한 유현진은 바로 방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강한서가 겉옷을 벗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송민준의 연락이었다.전화를 받기도 전에 송민준이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예상이 갔다.역시나 전화를 받자마자 송민준은 그에게 따져 물었다.“현진이를 네 집에 있게 내버려 줬더니, 이런 일을 당하게 해?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데려갔을 거야!”강한서는 휴대폰을 대충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물 마시러 갔다.휴대폰 너머로 송민준이 투덜대는 소리와 원망 섞인 소리가 들려왔지만, 강한서는 아예 듣지도 않고 있었다.어차피 듣지 않아도 송민준이 무엇 때문에 욕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현진이가 송민준의 친동생일 거라는 것을 알아맞힌 뒤, 송민준은 더는 강한서에게 숨기지 않았다.최근 며칠 동안 송민준은 종일 괴상한 어투로 그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고 저녁에는 심지어 유현진이 남자 모델과 함께 찍은 스킨십이 심한 광고 영상을 보내며 그를 자극했다.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소꿉친구였기에 그는 송민준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바로 눈치챘다.분명 일부러 그를 자극해 화를 내게 한 다음, 기회를 틈타 유현진 앞에서 억울한 척 연기하려는 것이었다. 유현진은 가족이라면 엄청 신경 썼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출생을 알게 되고 원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여우 같은 송민준에게 세뇌당해 그와 멀어지게 될까 봐 걱정이었다.그래서 그는 송민준이 아무리 시비를 걸었고 계속 평온한 모습을 유지했고 가만히 그가 퍼붓는 원망과 욕을 듣고 있었다.그리고 이번에 유현진이 그런 일을 당했으니 송민준은 바로 기회라는 듯 그에게
송민준은 코웃음을 쳤다.“누구는 말이야. 그곳에 코빼기도 나타나지 않았으면서 뻔뻔하게 다른 사람을 뭐라 하더라.”정곡을 찔린 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송민준은 그제야 속이 상쾌해지는 기분이었고 심지어 더 강한서를 자극하려 했다.“강운이는 그래도. 중요한 순간에 아주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니까. 우리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께서도 강운이를 엄청나게 좋아하셔. 역시 너보단 강운이가 현진이한테 더 어울려.”강한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 좀 작작 해! 현진이는 강운이 같은 타입 안 좋아하니까!”송민준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네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현진이가 강운이랑 이어지지 못한 거잖아. 네가 현진이랑 이혼할 때 깔끔하게 마음도 정리했다면 현진이는 아주 자유롭게 강운이를 만났을 거야. 강운이도 분명 현진이를 좋아할 거라고. 한번 해볼래?”강한서는 그런 송민준의 말에도 자극을 받지 않았다. 그는 제일 힘이 있는 목소리로 바로 꼬리를 내렸다.“안 해볼래.”송민준이 그를 욕했다.“겁쟁이 자식!”송민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유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민준 오빠는 왜 자꾸만 널 욕하는 거야?”강한서는 고개를 들고 아까와는 달리 아주 부드럽고 다정한, 소심한 한 마리의 새끼 양 같은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몰라, 내가 싫은가 봐.”“...”송민준은 어처구니가 없었다.‘이 여우 같은 놈!'더는 강한서를 욕하기도 귀찮았던 송민준은 바로 물었다.“현진 씨, 괜찮아요? 왜 연락을 안 받았어요?”“아, 전 괜찮아요.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제가 휴대폰을 꺼두고 있었어요. 그래도 이준 씨한테만 답장을 해드렸는데, 말씀 안 하시던가요?”“말했어요. 하지만 그래도 현진 씨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연락했었어요.”유현진은 미소를 지었다.“전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 아니에요. 다만... 또 회사에 피해를 끼쳤네요.”“이건 피해가 아니에요.”송민준은 이 일을 부추긴 사람을 떠올리더니 안색이 잔뜩 어두워
강한서도 그릇을 다시 그녀의 앞으로 밀었다.“에이, 선생님이야말로 고생하셨죠. 그러니 첫입은 역시 네가 먹어야지.”유현진은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그냥 옆에서 말만 했잖아. 제일 많이 고생한 건 너지. 그러니까 사양하지 말고 먹어.”강한서도 다시 한번 사양했다.“생선은 상처 회복에 잘 되니까 네가 먹어야 해.”유현진은 물러나지 않았다.“아니지. 생선은 두뇌를 활성화해 준다고 했으니까 매일 출근하며 머리를 쓰는 네가 먹어야 해.”강한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앞으로 온 구린 매운탕을 보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우리 그냥 배달 음식 시켜 먹자.”유현진은 고집스럽게 말했다.“이 매운탕 버리기는 아깝잖아. 꽤 비싼 물고기였단 말이야.”“그렇긴 하지.”강한서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나에게 낭비하지 않는 방법이 있어.”유현진은 아주 궁금했다.“뭔데?”강한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휴대폰을 들고 와 매운탕을 사진으로 찍더니 한열에게 전송했다.한열은 마침 소파에 누워서 휴대폰으로 낮에 있었던 쇼핑몰 사건에 대해 검색하고 있었다. 그러다 뜬금없이 강한서가 보낸 사진을 받게 되었다.「뭐예요?」강한서가 답장했다.「이소원 씨 자료를 제공해 줘서 고맙다고. 이건 네 현진이 누나가 직접 만든 매운탕이야. 그러니까 주소 찍어. 이따 사람 시켜 보내줄게.」한열은 바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누나가 한 거라고요?」강한서는 아주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그래. 현진이가 오후에 특별히 시장에 손수 장을 봤어. 신선한 민물고기를 사 오기 위해 말이야. 직접 사러 가지 않았다면 오늘 그런 일도 없었겠지.」한열은 순간 죄책감이 들었다.「누나가 나한테 만들어 줄 매운탕을 위해 직접 장 보러 갔다고요?」「당연하지.」조금 전까지 감동을 하던 한열은 뭔가 찝찝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이내 보기 드물게 머리를 굴리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답장했다.「그런데 그걸 흔쾌히 나한테 정말 준다고요?」한열은 강한서의 질투를 본 적
“...”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윽고 반 시간 후, 그 매운탕은 한열의 집으로 배송되었다.한열은 슈퍼 아이돌로서 항상 몸매 관리에 신경을 써왔고 자신에 대해서도 아주 엄격했다. 그는 아이돌이 된 후로부터 방송이 아니라면 저녁에 음식을 아주 적게 먹었고 8시가 되면 바로 모든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밤샘 촬영을 할 때도 모든 스태프가 야식을 시켜 먹기도 했지만, 그는 절대 음식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그래서 초인종 소리가 울리자마자 이미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있던 매니저가 문을 열어주려고 했지만, 한열이 잽싸게 뛰쳐나와 문을 열었다. 한열은 바로 커다란 냄비와 과일을 한가득 들고 들어왔고 매니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던 매니저는 배달 음식을 우물거리며 말했다.“아까 물어볼 때는 안 먹는다며. 그래서 내 것만 시켰는데, 너 새로 시킨 거야?”한열은 조심스럽게 냄비를 들고 코웃음을 쳤다.“누가 배달로 냄비까지 배달해 줘요?”매니저는 다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설마 팬이 보낸 건 아니지? 이 자식, 너 설마 팬이랑 연락하고 있었던 거야? 그간 팬이랑 사적으로 연락하다가 들키고 망한 연예인이 몇이 되는 줄 알아? 당장 그 팬이랑 연락 끊어!”한열은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뭐래!”말을 마친 그는 냄비를 안고 주방으로 갔다.매니저는 바로 그를 따라갔다.“그럼 누가 너한테 선물한 건데?”기분이 아주 좋았던 한열은 자랑스럽게 말했다.“여신님이 직접 나를 위해 만들어 준 매운탕이에요.”매니저는 당연히 안 믿는 눈치였다.“갑자기 왜 너한테 매운탕을 끓여준 건데?”“당연히 이소원 씨 사건 자료를 찾아줘서 그런 거죠. 고맙다고 보답으로 끓여준 거래요.”매니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나한테 말 안 했어? 이소원 씨 사건에 대한 증거는 애초에 별로 없었는데, 너 대체 뭘 찾아준 거냐?”“찾고 싶으면 당연히 증거쯤이야 쉽게 찾을 수 있죠.”한열은 더는 이소원에 관해 얘
비록 국물 색깔은 그럴싸했지만 맛은 비리고, 짜고, 맵고, 심지어 이상한 탄 맛도 났다.오묘하고 기이한 맛에 그는 한가지 결론밖에 내릴 수 없었다.이건 먹으면 안 된다!한열은 믿을 수가 없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맛없고 이상한 음식은 처음이었다.“왜 그래, 맛없어?”매니저는 반응 차이가 심한 한열을 보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한열은 ‘선셋스타'의 골수팬이었고 어떻게든 유현진의 이미지를 지키려 했다.이윽고 그는 양심에 찔린 거짓말을 했다.“아니요, 엄청 맛있어요.”“그럼 왜 뱉어?”한열이 여전히 뻔뻔하게 말했다.“뜨거워서요. 안 돼요?”매니저는 머리가 단순한 한열을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난 먼저 씻고 잘 거니까 너도 얼른 먹고 일찍 자. 내일도 스케줄이 있어.”“네, 네. 알았어요.”한열은 매니저를 주방에서 쫓아내곤 매운탕을 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버리기엔 여신님의 성의라 차마 버릴 수가 없었고, 안 버린다고 하기엔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어떻게 이 눈앞에 있는 매운탕을 처리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순간, 강한서의 말이 떠올랐다. 송민준에게 나눠주는 것이다.방금까지 그는 절대 나눠줄 생각 없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다!이 고통을 그 혼자만 느낄 수 없다.이윽고 그는 빠르게 다시 포장하여 사람을 불러 브랜드 뉴 엔터로 보냈다.송민준은 사무실에서 여전히 야근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박해서는 물건을 받은 후 송민준의 집에서 보내온 것으로 생각해 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그의 사무실로 들고 왔다.그렇게 그날 밤, 송민준은 바로 차로 한열의 집까지 찾아갔고 그 집에서는 한열의 비명만 울려 퍼졌다.요리를 만든 진정한 범인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다.유현진이 세수를 하고 있을 때, 강한서는 민경하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강한서는 안방에서 나가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CCTV는 확인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있던 어떤 꼬마가 사모님 마스크를
#전화를 끊기 직전에 민경하가 갑자기 물었다.“대표님, 대표님께선... 괜찮으시죠?”강한서는 뜬금없는 그의 말에 되물었다.“뭐가 괜찮다는 거죠?”민경하는 헛기침을 내뱉었다.“큼, 그러니까 인터넷에 떠도는 건 전부 사실이 아니니 믿지 마세요. 여론 때문에 화를 내지도 마시고요. 전부 헛소리이니까 굳이 화낼 필요 없다고 봐요.”“???”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민경하는 멈칫하였다.“설마, 아직 기사를 확인하지 않으신 겁니까?”“무슨 기사가 났다고 그러는 거죠?”민경하는 침묵했다.“대표님께서 직접 보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전 마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먼저 끊겠습니다.”강한서가 화를 내기 전에 민경하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강한서가 페이스북을 확인했을 때 안색이 서서히 어두워졌다.실검엔 #금욕적인 변호사와 미모의 여배우 커플 주식 당장 사#가 차지하고 있었다.그는 그 해시태그를 눌렀다. 그러자 주강운이 유현진을 뒤에 숨기고 지키는 사진과 영상이 그의 화면 전체를 지배하였다.주강운이 유현진을 위해 안티팬과 적대하고 있을 때 지은 냉정한 표정과 지적인 모습은 그의 우아한 품위를 보여주었다. 특히 훤칠하게 생긴 외모 덕에 유현진과 함께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선남선녀였다.이윽고 그 영상이 인터넷 곳곳에 퍼지게 된 후, 당시 상황을 제외한 변호사와 유현진의 관계도 화젯거리가 되었고 네티즌들이 열렬히 토론하고 있는 화젯거리 중 하나이기도 했다.강한서는 해시태그를 클릭하자마자 바로 꺼버렸어야 했지만, 마음과 달리 손은 이미 댓글을 눌러 확인하고 있었다.「3분! 3분 내로 당장 이 변호사의 신상정보 나한테 알려줘!」「변호사가 같이 쇼핑도 해주나? 혹시 남자친구인 거 아니야?」「아직은 사귀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아요. 변호사가 유현진을 지킬 때 손은 유현진 어깨에 올려뒀거든요. 만약 정말로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라면 더 다정하게 안고 있지 않았을까요?」「와, 분노치가 극에 달했으면서도 매너손을 유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