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는 그녀가 바닥으로 부딪치게 될까 봐 얼른 팔을 뻗어 그녀를 받으려고 했다. 결국, 그녀는 그의 몸 위로 넘어지게 되었다.그녀가 다치게 될까 봐 그는 넘어질 때 휙 몸을 돌려 자신의 등이 먼저 바닥으로 떨어지게 했고 차미주는 그렇게 그의 단단한 몸에 부딪히게 되었다.‘쿵'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의 머리가 먼저 바닥에 닿았다.차미주는 얼른 그의 머리를 감싸면서 부드럽게 매만졌다. 그녀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한성우는 무의식적인 그녀의 행동에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아드는 것 같았다.“아파?”차미주가 그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물었다.“날 밀쳐내면 되었잖아. 왜 나를 안고 같이 넘어져.”한성우가 답했다.“나도 밀쳐내려고 했지. 근데 네가 날 꽉 잡고 놓아주지 않더라.”그 말을 들은 차미주는 바닥을 짚더니 그의 몸 위에서 일어나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아주 넘어져 죽어버리지 그랬어!”한성우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웃으면서 일어났다.“나 정말 아팠어.”차미주는 전혀 안쓰럽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두 글자를 내뱉었다.“쌤통!”한성우는 몸을 일으키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너 먼저 알아서 놀고 있어. 난 화장실 좀 다녀올게.”차미주는 그를 상대하기조차 싫었다.한성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 문을 닫자마자 그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고개를 숙인 채 눈치 없이 빳빳해진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예전에 그는 차미주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전혀 꼴리지 않는다는 말을 내뱉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내뱉은 말과는 달리 그저 몸이 부딪친 것만으로도 쉽게 빳빳해져 있었다.그는 심지어 이런 일에 이렇게 인내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차미주의 맑은 두 눈을 보니 순간 그녀를 보며 생겨버린 성욕이 수치스럽게 느껴졌다.거짓말을 들키게 되는 것보다 이 사실을 알고 그녀가 놀라게 될까 봐 더욱 두려웠다.그는 순간 강한서가 예전에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정말로 누군가를 사랑
주강운이 웃으며 말했다. “아뇨, 그냥 배가 안 고파서요.”주강운의 어머니가 말했다. “배가 안 고파도 먹어야지. 매일 밤을 새우면 몸이 견디겠어?”주강운은 “네.”라고 대답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요, 어머니. 조금 이따 먹을게요.”“대충 넘기려고 하지 말고, 지금 먹어. 너 안 먹으면 나도 안 갈 거야.”그에 주강운은 어쩔 수 없이 그릇을 들고 연와를 먹기 시작했다. 사실 주강운은 연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은근한 비린 맛에 예민한 편이었다. 매번 다 먹고 나면 속이 뒤집어질 듯 메슥거렸지만 그는 거절할 줄을 몰랐다. 주강운의 어머니는 말을 잘 듣는 아들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침대맡에 앉아 주강운의 옷을 갰다. 그녀는 옷을 개며 입을 열었다. “강운아, 너 여자친구 사귀었니?”주강운은 행동을 멈추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어디서 들으셨어요?”“같이 게임을 하는 친구들한테 들었어. 신진우 결혼식에서 네가 어떤 여자와 같이 참석한 걸 봤다면서. 나한테 네 여자친구인지 묻더라고.”그녀의 말에 주강운은 감정이 없는 억지 미소를 보였다. “아주머니들께서 제 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네요.”주강운의 어머니가 말했다. “전에 내가 조건이 좋은 여자애를 좀 봐달라고 했었거든. 그분들도 널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괜히 일을 그르칠까 봐.”그녀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네가 데려온 그 여자애, 어디서 일하고 있어? 나이는? 사진은 있니?”주강운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물었다. “만약 제가 좋다고 하면, 교제 허락하실 거예요? 어떤 집안 딸이든?”주강운의 어머니는 잠시 망설이더니 대답했다. “그래도 서로 부모님을 뵙고, 가족들에게 인사는 시켜야지. 아무래도 두 가정의 일이잖니.”주강운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는 어쩐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괴이함이 묻어있었다. 주강운의 어머니는 움찔하며 나지막이 물었다. “왜 그러니?”주강
유현진은 그 목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고 잠이 완전히 깨어버렸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앉아 강한서에게 자기 대표에게 허튼소리를 하지 말라고 눈짓했다. 그녀는 아직 연애 때문에 위약금을 내고 싶지 않았다. 강한서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현진이 자.”유현진: ...송민준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목소리도 변해버렸다. “자? 너랑?”유현진은 벌떡 일어나 강한서의 입을 잡고 “또 허튼소리 하기만 해 봐.”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한서의 시선은 그녀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가슴을 훑더니, 손을 뻗어 가슴을 잡았다. 그 행동에 놀란 유현진은 얼른 입을 잡고 있던 손을 거두어 가슴을 막았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혼 전, 보수적이기가 순결을 지키는 “열남”과도 같아 성관계가 끝나면 다른 짓은 전혀 하지 않던 매너남의 표본이었다. ‘지금, 이게 무슨 가벼운 짓이지? 정관수술을 하면서 매너도 잘라 버린 건가?'강한서는 유현진의 반응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꼬집으며 휴대폰 너머의 사람에게 말했다. “어젯밤 한열과 밥을 먹으면서 현진이가 술을 많이 마셔서 호텔에 데려다줬어.”송민준이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너도 거기서 잔 거야?”강한서가 입술을 앙다물더니 말했다. “설마 내가 인사불성이 된 애를 혼자 호텔에 뒀어야 한다는 거야? 넌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해?”송민준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건 확실히 안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있다고 해서 특별히 안전한 것 같지도 않았다!송민준은 지금, 강한서를 벽 틈 사이로 자기 집 마당에서 키우는 왕관앵무를 노리는 미친개 보듯 생각하고 있었다. 호시탐탐 자기 집 귀한 보물을 노리던 미친개 말이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두 눈을 똑바로 부릅뜨고 지켜도, 그의 집 왕관앵무는 결국, 그가 집을 비운 틈을 타 미친개와 놀러 옆집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는 자기 집 왕관앵무도 지키지 못했고 그의 바보 같은 동생도
그랬기에 유현진이 말했다. “네, 그래요. 주소 보내주세요. 제가 일 끝나면 갈게요.”송민준은 뒤에 있던 사람에게 “OK”라는 손짓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괜찮아요, 제가 데리러 갈게요.”전화를 끊은 유현진이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물었다. “나 선물이라도 가져가야 하지 않아?”강한서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넌 걱정 말고 촬영해. 그건 내가 준비할게.”유현진은 상으로 그에게 입을 맞추며 장난스레 말했다. “수업이 헛되지 않았나 봐.”강한서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빨리 졸업했으면 좋겠어.”말을 하고 있는데 유현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발신자 표시를 확인했다. 뜻밖에도 차이현이었다. 어젯밤 한밤중에 촬영용 옷을 샀던 일을 떠올린 유현진은 조금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차이현은 그녀가 그 옷을 왜 샀는지 모르니 자신이 이렇게 어색하게 행동하면 오히려 이상해 보일 수 있었다. 그러니 그녀는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감독님.”차이현이 “네” 하더니 말했다. “방금 회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최근 예능에 두 편 출연하셔야 해요. 시간은 제가 나중에 보내드릴게요.”유현진이 말했다. “알겠어요.”“그리고.”차이현이 잠시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현장에서 당시 극 중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해야 해서 중전마마 의상도 입어야 해요. 더럽히지 말아요.”유현진: ...그녀는 괜히 마음에 찔려 웃어 보였다. “집에 소장하려고 산 건데, 왜 더럽히겠어요?”차이현은 “그래요”라고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밤중에 소장하는 건, 또 처음 보네요.”유현진: ...어젯밤 그들은 한밤중에 차이현에게 옷을 구매했다. 여우처럼 능글맞은 차이현이 그들이 옷을 산 의도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유현진이 아무리 아닌 척 연기해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말할 낯이 없어 예능 녹화 시간을 묻고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러더니 강한서를
그 갈등은 이사라가 남자친구인 진상현의 집에서 노란색 머리띠를 발견한 후 발생했다. 비록 진상현이 그 머리띠는 담배를 살 때 거스름돈으로 받은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사라는 전혀 믿지 않았다. 그 머리띠는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이었고 가격도 싸지 않았다. 판매량도 높은 물건이라 내놓으면 무조건 돈을 벌 수 있었기에 거스름돈으로 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남자에게 말이다. 그러니 그녀는 주변에 머리띠를 좋아하는 여학생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 친구에게서 윤여령에게 똑같은 노란색 머리띠가 있었는데 1주일 전 잃어버렸다고 전해 들었다. 콧대가 높은 이사라는 진상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건드리는 것은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특히 춤으로 그녀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윤여령은 더 신경이 쓰였다. 수업 후, 그녀는 윤여령을 가로막고 그 일에 대해 물었다. 윤여령은 당연히 부인했고 두 사람은 몸싸움을 일으켰다. 밀치는 도중 발을 헛디딘 윤여령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며 계단에 놓였던 유리를 깨뜨렸고 깨진 유리 파편에 그녀는 팔을 베었다. 윤여령은 병원으로 실려 갔고 이사라는 이 일 때문에 학교에서 경고 처분을 받았고 전교에 소문이 나면서 교환생 자격을 취소당했다. 집에서 그녀를 질책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사라와 윤여령의 원한은 그로 인해 더 깊어졌다. 그러니 윤여령에게 독을 탄 뒤로, 많은 증언들이 그 사건에서 제일 혐의가 컸던 그녀를 가리켰다. 오늘 촬영할 장면은 바로 계단에서의 몸싸움 신이었다. 대사가 있는 부분은 문제가 없었고, 문제라면 송민영의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이었다. 이건 두 사람이 합을 맞추어야 했다. 유현진은 밀치는 동작을 해야 했고 송민영은 스스로 방향을 잘 조절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팔뚝의 피 주머니를 찔러야 했다. 배우의 운동신경이 중요한 장면이었다. 일반적으로 제작진은 배우에게 근접 촬영만 할 것은 요구했다. 먼 곳에서 촬영하는 계단 구르는 장면은 대역 배우가 완성해
샤워를 마친 윤여령은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샤워실에서 나오다 계단 모퉁이에서 이사라와 마주쳤다. 이사라는 아직도 연습복을 입고 곧게 서 있었다. 그들 모두 무용 전공이었지만, 그녀의 아우라는 다른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목도 길고 가늘어 서 있기만 해도 고고한 백조 같았다. 윤여령이 시야에 들어오자 이사라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었다. 윤여령이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친구들과 자리를 피하려는데, 이사라가 윤여령을 불러세웠다. “잠깐만.”함께 있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지만 그녀가 누구를 부른 것인지는 몰랐다. 이사라가 윤여령 앞으로 걸어가 노란색 머리띠를 꺼내 태연하게 윤여령을 쳐다보며 물었다. “눈에 익지 않아?”윤여령이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머리띠를 알아보고 나지막이 이사라에게 말했다.“여령아, 이거 네가 며칠 전에 잃어버린 머리띠 아니야?”윤여령이 입술을 짓이기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것 아냐. 내 것은 학교 밖에서 잃어버렸어.”“공교롭네.”이사라의 시선이 슥 그녀를 훑고 지나갔다. “이것도 학교 밖에서 주운 거야.”옆에 있던 친구들도 그제야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먼저 자리를 피했다. 그러니 그곳엔 두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윤여령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녀는 갈아입은 옷을 안고 자리를 피하려는데 이사라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 물건 안 가져가?”윤여령이 미간을 찌푸렸다.“말했잖아. 내 것 아니라고.”“그럼 네 머리띠는?”“내가 말하지 않았어? 잃어버렸다고!”“잃어버려?”이사라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너희 집 형편이라면, 이 머리띠. 너한텐 싼 물건은 아닐 텐데, 이렇게 비싼 물건을 네가 그렇게 쉽게 잃어버렸다고?”윤여령이 입술을 짓이겼다. “누구든 부주의할 때가 있잖아. 다른 일 없으면 난 갈게.”그녀가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자 이사라는 갑자기 반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상현아, 어쩐 일이야?”그 순간 윤여령은 멈칫했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에 모든 사람들이 아무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창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다들 멍하니 서서 뭐 해, 얼른 부축하고, 의사 불러!”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급히 송민영에게 다가갔다. 송민영은 기이한 자세로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몸에 매달았던 피 주머니가 터져 온몸을 적셨고 이마에는 핏자국이 나 있었는데 피가 콸콸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스태프들이 부축하려고 송민영을 잡자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녀의 왼쪽 다리의 자세가 괴이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에 사람들은 감히 그녀를 부축하지 못하고 구급차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촬영장에 와있던 송민영의 팬들은 이미 그 광경에 충격을 받았고 자기 배우가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데도 아무도 부축하지 않자 바로 달려와 송민영을 살펴보려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유현진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안창수는 행여 팬들이 소란을 피울까 안색이 어두웠다. 그는 사람을 시켜 팬들을 제지하면서 비서에게 얼른 유현진을 데리고 대기실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책임을 묻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송민영의 부상과 분노를 터뜨리는 팬이었다. 얼마 후,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고 송민영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유현진은 아무 말 없이 밴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송민영이 왜 굳이 이렇게 위험한 액션신을 직접 하겠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유현진은 송민영이 자신을 끌어들여 팬들에게 그녀가 왕따당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여 해묵은 원한을 풀려는 줄로만 알았다. 송민영이 자신을 이용해 그녀를 “다치게” 만들려는 것이 목적일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유현진이 알고 있는 송민영에게는 이런 짓을 벌일 용기가 없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연예인이었기에 자신의 외모를 소중하게 여겼다. 이렇게 자신을 다치게 해 목적을 달성하는 단순한 수단을, 유현진은 감히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크루즈 때처럼, 유현진이 송민영을 밀어 물에 빠뜨렸다고
유현진은 진희연이 시키는 대로 했다. 진희연은 유현진에게 페이스북의 댓글 기능을 잠시 꺼두라고 했다. 사건의 전말이 제대로 밝혀지기 전부터 일부 극단적인 팬들이 그녀의 페이스북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유현진이 페이스북을 열자 송민영이 다쳤다는 사실이 이미 실검에 올라 있었다.물론 그녀의 이름은 더 높은 실검 순위에 위치해 있었고 #송민영을 밀친 유현진#, #유현진 왕따#, #유현진 살해# 등이 태그되어 있었다. 페이스북에는 그녀가 손민영을 “밀친” 동영상들이 미친 듯이 나돌고 있었고 1시간 사이 조회수는 이미 몇백만이 되어 있었다.그 동영상은 유현진을 비스듬히 등지고 찍은 것인데 각도 선점이 굉장히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각도에서는 송민영의 표정이 자세히 보였지만 유현진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유현진이 사람을 미는 행동은 똑똑히 찍고 있었다. 송민영은 떨어지는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유현진은 송민영이 떨어진 뒤에도 계단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그녀의 냉담한 태도는 송민영 팬의 질타를 받았다. 심지어 송민영의 팬이 아닌 사람도 눈살을 찌푸렸다. 「저게 민 거야? 저건 살해야!」「민영 언니 떨어질 때 표정. 세상에, 완전 무방비 상태였잖아. 방금 유현진 편을 들면서 촬영장에서 준비된 액션이라고 말하던 사람 나와 봐. 정말 준비된 거였다면 민영 언니가 저런 표정이겠어?」「같은 여자끼리 어떻게 저렇게 독한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거죠?」「다들 알다시피 유재수는 오랫동안 민영 언니를 미워했었어. ‘비밀의 연인’ 때도 자주 실검을 조작하면서 민영 언니를 비하했잖아. 배우로 전향한 후엔 드라마가 방영될 때마다 꼭 민영 언니를 끌어들여 실검에 올랐잖아. 왜, 자기도 민영 언니 이름 없이는 실검에 오를 수 없다는 걸 알았나 보지?」「‘봄에 연인’도 원래 중전 역할을 하기로 했던 배우가 방송 정지를 먹은 게 다 유재수 양아버지 짓이라고 하더라고요. 민영 언니는 5년 동안 작은
막 전화를 끊으려던 그 순간, 박안수가 다시 불렀다.“아, 그리고...”“뭔데?”“오늘 경찰서에서 한현진과 마주쳤어.”서해금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한현진이 경찰서엔 왜?”“나도 자세한 건 안 물어 봐서 잘 몰라. 하지만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 혼자가 아니라 6, 7살 쯤 되는 어린 아이와 함께 왔었어.”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던 서해금이 또 물었다. “한현진이랑 얘기했어? 무슨 얘기했는데?”“괜히 의심할까봐 내가 경찰서에 간 이유를 사실대로 얘기했어. 한현진도 더 묻지 않았고.”우물 쭈물거리며 숨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당당하게 대답하는 편이 오히려 의심을 덜 사는 방법이었다. “그게 다야?”“응.”생각의 잠겼던 해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한테 손에 상처는 뭐라고 얘기했는데?”“회사에서 청소하다가 부식성 제품에 다친 거라고 했어.”서해금이 원망하듯 말했다. “왜 회사에서 다친 거라고 했어. 회사에서 그렇게 부식성이 강한 제품을 쓸 리가 없잖아.”“그렇다고 내가 집에서 다친 거라고 할 순 없잖아. 집에는 회사에서 다친 거라고 했는데. 조사 협조 요청을 나한테만 하는 게 아니잖아. 게다가 그 두 사람은 거짓말을 아예 못 해. 만약 경찰이 내 손에 관해 묻기라도 한다면 바로 들켜 버리는 거잖아.”서해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여자는 미쳤고 애는 귀가 먹었는데, 그런 병X도 제대로 통제 못 해?”순간 얼굴을 찡그린 박안수가 말했다. “말 그렇게 하지 마. 두 사람 불쌍한 사람들이야.”“뭐가 불쌍해. 도박쟁이 가정폭력범을 성실하고 부지런한데다 박학다식한 남편으로 바꿔줬는데. 우리한테 고마워해도 모자라.”서해금의 말에 박안수는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너는 대화를 이어 가고 싶지 않았던 서해금이 당부하며 말했다. “이만 끊어. 가람이한테 당신을 기사로 쓰라고 얘기하러 갈 거야. 소식 기다려.”박안수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그래.”전화를 끊은 서해금은 아무리 생
“아니.”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렸다.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경찰에겐 뭐라고 했어?”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대로 얘기했어.”“박안수!”서해금은 참기 힘들 정도로 화가 끓어올랐다. “지금이 농담할 때야?”“농담 아냐.”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더 가라앉았다. “그럼 내가 뭐라고 말할까? 네가 준 신분이니 난 당연히 주어진 대본대로 연기할 수밖에. 그럼 내가 난 박안수라고 얘기했어야 해? 죽은지 27년도 더 된 사람이야. 박안수가 어떻게 돌아와?”그의 목소리엔 고통과 원망으로 가득 했다. 그 순간, 서해금의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날 탓하는 거야?”말이 없던 상대방은 잠시 후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적 없어.”“박안수, 지금 날 탓하는 거잖아.”서해금이 공격적인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때 빚을 진 사람도 당신이고,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당신이었어. 당신이 가람이를 키울 능력이 없었던 거고, 당신이 가람이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길 바랐고, 그래서 나한테 도와달라고 사정한게 당신이었어.”“내가 당신한테 돈 안 줬어? 지금껏 내가 당신한테 준 돈이 얼만데. 당신은 얼마든지 해외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어. 굳이 한주에 남겠다고 한 건 당신이야. 내가 당신에게 그럴 듯한 신분을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당신이 무슨 명분으로 가람이 앞에 나타날 건데? 당신이 이렇게 당당하게 가람이를 만날 수나 있었을 것 같아?”목이 메인 남자는 한참만에야 눈을 감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 탓한 거 아냐. 난 그저 이렇게 조마조마 마음 졸이는 생활에 지쳤을 뿐이야. 난 집에서도 감히 옷을 못 벗어. 잠도 깊게 잘 수가 없어. 길에서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 사람은 날 보면서 반갑게 인사하는데 난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몰라. 그러면서도 아는 척, 반가운 척 인사를 해야 해. 심지어 아무리 아파도 검사도 못 해. X발, 병원도 가질 못한다고!”남자가 깊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네, 볼 일 봐요. 회사로 복귀하면 다시 얘기하죠.”한현진이 전화를 끊었을 때 차는 이미 회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한현진은 곧바로 로비로 향했다. 회사의 프런트가 한현진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짧게 인사를 받은 엘리베이터에 탄 한현진은 사무실이 아닌 2층을 눌렀다. 회사 건물은 2층부터 화장실이 있었기에 1층엔 화장실이 없었다. 한현진은 아예 2층부터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역시 공교롭게도 2층에 도착한 한현진은 마친 청소 중인 직원과 마주쳤다. 근무 시간이 화장실엔 사람이 없었다. 직원은 바닥을 닦고 있었고 세면대와 멀지 않은 곳에 청소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 위엔 청소 용품으로 가득 했다. 한현진은 고개를 숙여 청소 용품을 확인했다. 청소차엔 수많은 플라스틱 통과 병이 있었고 그 안엔 전부 액체가 담겨져 있었다. 굳이 뚜껑을 열지 않아도 소독제의 냄새가 올라왔다. 그러나 그 제품들은 그 어떤 별다른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부식성이 그렇게 강한 용액을 플라스틱 병에 담진 않았을 거 아냐.’“누구세요?”청소차를 관찰하는 한현진의 등 뒤로 사투리 억양이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현진이 몸을 돌리니 청소 중이던 직원이 보였다. 그 직원은 아래층 청소를 도맡아 하는 분이라 한현진을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한현진이 화장실을 사용하려는 것이라 생각한 직원이 말했다. “아직 소독제를 쓰지 않았으니까 볼 일 보려면 얼른 봐요.”한현진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청소차의 물건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여쭤볼게 있어요. 화장실 청소를 하실 때 어느 브랜드의 농도가 얼마인 세정제를 사용하세요?”직원이 말했다. “도매 시장에서 파는 회색통이요. 커다란 거. 엄청 싸요.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사려고요?”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이 항상 깨끗해서요. 저도 집에서 써보려고요.”청소 직원이 얼른 한현진을 말렸다. “절대 사지 마요. 변기의 때는 우리가 항상 솔로 조금씩 닦
또 다른 경찰이 물었다. “그래서 지장은 찍을 수 있어요?”“손이 그 지경인데 지장을 어떻게 찍어? 손을 보니까 지장은 무리인 것 같아서 포기했지. 어차피 지문도 완전히 회복하긴 힘들 것 같았어. 그래서 애들한테 홍채와 성문을 따라고 했어.”말을 마친 키 큰 형사가 한현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중에 회사에 가셔서 얘기 좀 하세요. 그렇게 부식성이 강한 제품은 얼른 교체하라고요. 만약 누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고 그 제품으로 가해라도 하면 회사에서도 책임지셔야 해요.”생각에 잠겼던 한현진이 그 말에 얼른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알려주셔서 고마워요.”경찰서에서 나온 한현진은 내내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은서가 본 것은 주혁의 태반이나 점이 아니라 청소 용액에 부식되어 생긴 상처였다. 어차피 납치 사건의 범인은 이미 잡혀 경찰서에 있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급해서 상처를 치료도 하지 않고 경찰서로 달려온 것일까?한현진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회사에선 그런 고농도의 부식성 제품을 구매했을 리가 없었다. 형사의 말처럼 그런 제품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한현진은 이시연의 연락처를 찾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음이 거의 끝나가도록 이시연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곧이어 강한서에게 연락했다. 몇 초 후 통화가 연결되었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강한서가 아닌 민경하였다. 강한서는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어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기에 민경하가 그의 휴대폰을 갖고 있었다. “사모님, 저예요. 대표님께서 지금 중요한 회의 중이시라 전화를 받기 힘든 상황이에요. 급한 일이시면 저에게 얘기하셔도 돼요. 급한 일이 아니면 회의가 끝나면 바로 전화 드리라고 대표님께 말씀 드릴게요.”“급한 건 아녜요. 제가 지금 급히 회사에 가봐야 하는데 아직 은서랑 같이 있어서요. 제가 조금 이따가 회사로 가는 길에 은서를 먼저 한
주혁은 한현진보다 조금 더 먼저 경찰서에 도착한 것 같았다. 한현진이 도착했을 땐 주혁은 입구에서 통화 중이었다. 안색이 어두웠지만 그는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 대화하고 있었다. 그를 먼저 발견한 한현진이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주혁이 곧 경계하듯 고개를 돌렸다. 한현진을 본 주혁이 멈칫하더니 곧 전화를 끊고 다가왔다.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한현진이 말했다. “일이 좀 있어서요. 기사님도 일 보러 오셨어요?”짧게 대꾸한 주혁이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8년 전 제 아들을 납치한 마지막 용의자가 잡혔다고 해서요. 조사에 협조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왔어요.”한현진이 놀라운 듯 물었다. “아드님이 납치되었었어요?”주혁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8, 9년 전 일이죠. 납치된 동안 납치범에게 맞아 치료 시간을 놓쳐 청력도 잃게 된 거예요. 그 사건을 맡은 형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사건이 종결되면 배상금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얘기하는 동안 주혁은 아래쪽에서 자신의 손을 지긋이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는 입술을 짓이기며 조용히 손바닥을 다리에 대고 말을 이었다. “곧 아이에게 인공 달팽이관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주혁의 이야기가 한현진의 호기심을 자극하긴 했지만 그녀는 예의상 더는 그 일에 관해 묻지 않았다. 한현진은 대화주제를 돌리며 주혁에게 물었다. “제가 전에 추천해준 의사 분께 가 보셨어요?”주혁이 멈칫하며 대답했다. “아직이요.”한현진에게는 꽤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주혁이 최대한 빨리 아이를 데리고 검사를 받으러 가 인공 달팽이관을 제작할 것이라 여겼다. 아무래도 주혁은 규정을 어기고 부업을 할 만큼 누구보다 간절하게 수술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현진이 그에게 일반 병원보다 더 싼 가격에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의사를 추천해주었음에도 지금까지 검사조차 받지 않았다고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요즘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요. 전근된 곳이 전처럼
하온이는 적합한 골수를 기다리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골수를 의식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처음으로 하은이에게 기회가 찾아 왔을 때는 골수 의식의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하온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의 집안은 이미 빚더미에 앉은 상황이라 아무리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도 수술비를 모을 수 없었다. 그러니 하온의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독하게 먹고 수술을 포기한 채 아득바득 돈을 모으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하지만 곧 있을 줄 알았던 두 번째 기회는 그리 빨리 오지 않았다. 너무 오랜 기다림을 견뎌냈지만 하온의 몸은 이미 수술을 진행 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져 있었다. 하온은 하루하루 날이 다르게 시들어 가는 꽃 같았다. 은서는 낮엔 하온이와 놀다가도 저녁엔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렸다. 하온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 은서는 강한서 품에 안겨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은서가 말했다. “삼촌, 저도 죽어요?”“삼촌, 우린 왜 이런 병에 걸린 거예요?”“삼촌 부자잖아요. 하온이 오빠가 수술할 수 있게 돈 빌려주시면 안 돼요? 제가 커서 돈 벌면서 갚을게요. 하온이 오빠 죽는거 싫어요.”강한서는 은서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은서는 아직 너무 어려서, 인생은 가끔 이렇게 운명의 장난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목숨으로 돈을 맞바꾸기는 쉬운 일이었지만 돈으로 목숨을 살 수는 없었다. 강한서는 은서가 아직까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때의 은서는 고작 5살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한현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세상에는 가여운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니 혼자의 힘으로는 고작 얼마의 힘이나 보탤 수 있을까. 그렇다고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는 아이의 기대를 깨트릴 수도 없었다. 한현진은 정중하게 물었다. “정말 이거 전부 기부할 거야? 기부하면 은서에겐 아무 것도 없는 거야.”고개를 끄덕이던 은서가 곧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저 나
“넌 원래 은서한테 엄격하게 굴었잖아. 네가 나쁜 사람 역할을 하는 건 네 이미지에도 어울려. 난 평소에 은서한테 너무 따뜻하게 대해줘서 지금 엄하게 얘기해도 내 말은 안 믿을 거야. 그러니까 나쁜 사람은 역시 네가 해야 해. 한 번 더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잖아.”강한서가 대답할 새도 없이 등 뒤로 갑자기 은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모~”“응.”얼른 대답한 한현진이 몸을 돌리자 은서가 동그랗고 큰 눈을 반짝이며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두 분 연애하시는데 방해한 거예요?”한현진: ...“그건 아닌데...”“그럼 뭐하고 계셨어요?”한현진이 강한서에게 얼른 시작하라며 눈짓을 보냈다. 강한서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한현진을 배신했다. “은서야, 현진 이모가 은서한테 할 얘기가 있대.”한현진: ...은서가 한현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가 눈빛으로 할 얘기가 뭐냐며 묻고 있었다. 한현진은 속으로 강한서를 의리도 없는 놈이라며 욕을 지껄였다. 단순하고 맑은 은서의 눈을 마주한 한현진은 그 어떤 훈육의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강한서는 그런 한현진의 속도 모르고 마음 독하게 먹으라며 뒤에서 슬며시 한현진의 허리를 다독였다. 입술을 달싹인 한현진은 계획과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그게... 사실은 별 거 아냐. 저녁에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려고 했어.”강한서:...은서가 눈웃음을 지었다. “수제비요! 할머니가 이따가 만드는 법 배워주신다고 하셨어요. 이모가 새우 수제비를 제일 좋아한다면서요. 제가 배워서 만들어드릴게요.”마음이 약해진 한현진은 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 맞다. 잠깐만 기다려요.”은서가 말하고 총총 달려갔다. 어리둥절한 한현진을 뒤로 한 채 잠시 후, 은서가 저금통을 안고 돌아왔다. 아이는 작은 돼지 저금통을 한현진 앞으로 들어 올리며 빨간 얼굴로 말했다. “현진 이모. 혹시 이 돈...”주머니에서 돈다발 하나를 꺼내 한현진에게 꺼낸 은서가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도덕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부하 직원을 잘 대할 리가 없었다. 돈만 충분히 준다면 황 닥터의 죄증을 대신 비행기에 실어줄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황 닥터는 외국인이었기에 이 곳에서 불법을 저지른다고 해도 결국 본국으로 송환되어 벌의 제재를 받을 것이 뻔했다. 그러니 황 닥터를 처단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 황 닥터의 입국이 금지 당한다면 송가람은 다른 방법으로 약을 구매할 것이다. 그때가 바로 송가람을 일망타진할 좋은 기회였다. 한현진이 알아차렸다는 듯 말했다. “결국은 돈지X로 해결한 거네.”멈칫하던 강한서가 갑자기 말했다. “너 방금 싸울 때 욕했지?”한현진이 눈을 깜박였다. “아닐걸.”“했어!”강한서가 한현진을 노려보았다. “태교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잊었어?”‘태교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데?’‘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해주고, 또 뭐가 있더라? 기억이 안 나네.’어제 들었던 태교 수업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한현진은 수면으로 채웠다. 강한서는 본인의 뱉은 말을 지켜 거금을 들여 태교 선생님을 고용해 1 대 1로 집에서 한현진이 수업을 받도록 했다. 유난히 나긋하고 부드러운 선생님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임산부와 아이들을 상대하는 본인의 직업과 찰떡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목소리에 졸음이 솔솔 쏟아졌다. 수업하는 동안 한현진은 졸음이 몰려와 몽롱한 정신 상태를 유지했다. 학창시절 제일 싫어하는 수학 시간에도 이렇게 존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 한현진과 달리 강한서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노트를 정리했다. 한현진이 하품을 하며 강한서에게 물었다. “기억력도 좋으면서 노트도 작성하는 거야?”그때의 강한서가 뭐라고 했더라?“아무리 좋은 기억력도 작성된 기록보다는 못한 법이니까.”그 한 마디가 태교 수업 중 유일하게 한현진의 기억에 남은 말이었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전부 한쪽 귀로 들어가 다른 한쪽으로 흘러나간 탓에 단 한 글자에 머리에 남지 않았
막장 소설을 거부하던 강한서는 강박적으로 소설을 듣기 시작해 결국 소설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니, 왜 막장 소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하나 같이 멍청하거나 무지하게 구는 거야? 게다가 상남자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틈만 나면 여자 주인공에게 소리나 지르면서, 왜 그러는 거야?”“남자 주인공 미친 거 아냐? 억지로 여자 주인공이 신장 기부를 하게 하다니. 조직 폭력배야?”“이쪽 세계에서는 신고를 하면 판결이라도 받아?”“대체 왜 이렇게 멍청한 거야? 여자 주인공이 밀친 거라는 서브 여주인공 말을 믿어? CCTV를 찾아보는 건 불법인가 보지?”“현진아, 지금 나 미안하라고 들려주는 거야?”“난 못 해. 이 소설에 나오는 인간들은 전부 미친 거 같아. 대체 여자 주인공은 저런 남자를 왜 좋아하는 거야.”한현진이 말했다. “미쳤든 아니든, 소설처럼만 하면 돼. 순진한 척 하는 여우는 자기를 감싸주는 남자에겐 껌뻑 죽는 법이니까.”강한서는 전혀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그의 머리는 몸보다 성실했다. 일부러 배우지 않아도 그의 머리는 이미 모든 것을 저장했다. 막장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의 대사를 완벽히 재현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표정은 여전히 어색했지만 다행히 송가람은 표정까지는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 아니라면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송가람을 보며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는 강한서의 모습을 들켜버렸을 것이다. 한현진이 눈웃음을 지었다. “너에게 소설을 들려준 내 노력이 헛되진 않았어. 진보가 빠른걸? 뭔가 유용한 팁이라도 있을까요, 강 대표님?”강한서가 말했다. “소리를 잘 지르면 돼.”그 말에 한현진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1층의 베란다 난간에 기댄 채 강한서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리 와.”“그렇게 나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강한서는 불만스럽게 투덜대면서도 한현진에게로 향했다. 베란다 밖에는 재스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한현진은 난간 너머로 강한서의 목을 끌어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