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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8화

작가: 송진
연정우는 할 말을 마친 뒤 조용히 성유리를 바라보았다.

반면 성유리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긴장한 듯 주먹을 더 꽉 쥐었다.

연정우는 그녀의 손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성유리의 손을 꼭 잡았다. 성유리는 놀란 듯 연정우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그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 순간, 연정우는 그것만으로도 성유리에게 다가갈 더 큰 용기를 얻은 듯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한 연정우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그녀에게 조금씩 가까이 대기 시작할 무렵.

“엄마!”

집안을 울리는 하늘이의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고 그 소리는 마치 번개가 되어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은 것 같았다,

성유리는 깜짝 놀라 연정우를 급히 밀쳐버렸고 너무 갑작스러운 힘에 연정우는 반응할 틈도 없이 옆에 있던 찬장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쾅!

맑은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졌고 성유리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바로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미안해. 정말 괜찮아?”

“응.”

연정우는 걱정하는 성유리에게 손사래를 치며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 별로 안 아팠어.”

그의 말에도 성유리는 안심이 되지 않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서 있었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하늘이가 궁금한 듯 물었다.

“엄마, 둘이 지금 뭐 하고 있었어?”

성유리는 그제야 하늘이의 존재를 떠올리고 아이를 향해 돌아서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하늘이는 무슨 일 있었어?”

“아저씨가 준 인형 어떻게 말하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어.”

하늘이는 말하면서 손을 뻗어 연정우의 손을 잡아끌었고 연정우는 할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아이의 손에 이끌려 거실로 향했다.

혼자 주방에 남은 성유리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천천히 밖으로 나섰다.

식사 시간이 되었을 때, 연정우의 여행 가방은 여전히 현관에 놓여 있었다.

그때 하늘이가 갑자기 물었다.

“아저씨, 오늘 밤 여기서 주무실 거예요?”

연정우는 아이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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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진행자는 여전히 그 화제에서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관련 질문이 나올 때마다 성유리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부정하며 다른 억측들까지 차단해 버렸다.처음부터 끝까지 성유리는 단 한 번도 박한빈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성유리가 비협조적이라고 느껴졌던 탓인지 1시간으로 예정되어 있던 인터뷰는 30분도 진행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버렸다.인터뷰가 끝난 뒤, 성유리는 송효주에게서 사과의 메시지를 받았다.“나도 저쪽에서 이런 의도를 갖고 있을 줄은 몰랐어. 저 사람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지금 주인공들 인기가 어느 정도인데, 캐릭터 얘기나 할 것이지 왜 네 사생활까지 다 언급하고 난리래?”송효주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하지만 성유리는 그런 송효주의 연락에도 아무런 감흥 없이 묵묵히 듣기만 했다.한참이나 말을 이어나가던 송효주는 아무 대답 없는 성유리의 반응에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혹시... 화 난 거야?”“두 번 다시는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네.”그 말을 끝으로 성유리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일을 마친 그녀는 다시 불을 끄고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화가 나는 것도 맞긴 했지만 그렇다고 오래 기억될 정도도 아니었다.다음 날 아침, 눈을 뜬 그녀는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거의 다 까먹어 버렸고 뒤늦게 뉴스를 통해 자신이 어제 진행했던 라이브 방송의 채널이 정지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정지된 그 채널은 무려 출판사의 공식 계정이었다.곧 출판사에서도 다른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는 전날 진행했던 인터뷰의 진행자가 사적인 감정으로 무례한 행동을 감행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내용과, 어제 인터뷰를 진행했던 그 진행자와는 계약을 해지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성유리는 어젯밤 진행했던 인터뷰 질문이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그녀는 조용히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식사를 이어나갔다.잠시 후, 앞집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어젯밤보다는 훨씬 조용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05화

    두 팬덤의 싸움은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지만 제작사와 영상 플랫폼 측은 오히려 그런 팬덤 싸움을 반기는 모양이었다.요즘은 다들 그렇듯 차라리 시끄럽게 이슈가 되는 게 조용히 묻히기보다는 수익성이 더 크니 그럴 만도 했다.그러던 중, 편집자가 성유리에게 연락해 원고를 요청해왔다.최근 두 달 동안 성유리는 딱히 새로운 작품을 낸다기보다는 이런저런 곳에서 들어오는 작은 일만 맡아왔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만큼, 회사에서는 이 틈을 타 성유리를 한껏 밀어줄 계획이었다.“요즘은 시간도 없고 딱히 떠오르는 아이디어도 없어. 나중에 다시 얘기해.”“난 이 말만 벌써 몇 번째 듣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나도 알아. 그런데 어쩌겠어, 하늘이도 아직 어리고. 그렇다고 이 어린 애가 하루아침에 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알겠어, 신작은 없다 치고, 인터뷰나 하나 잡아줄게. 이 정도는 괜찮지?”“무슨 인터뷰인데?”“웹에서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인터뷰야. 전에 우리랑 협업한 적 있는 출판사인데, 드라마가 인기를 끄니까 원작자라도 인터뷰해서 판매량 좀 올릴 생각인가 봐.”성유리는 대충 들어주는 척만 하고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성유리의 생각을 미리 읽기라도 한 것인지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말을 꺼냈다.“걱정 마. 언니만의 원칙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언니 얼굴이 세상에 공개되는 일은 없을 거야. 이번 인터뷰도 굳이 얼굴을 노출할 필요는 없어.”그 말에 성유리는 뒤늦게 마음을 누그러뜨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오케이, 그럼 답장 보내둔다? 구체적인 시간은 내가 나중에 다시 연락해서 알려줄게.”편집자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만 성유리도 하늘이의 생체 리듬을 지켜주며 일을 해야 했던 탓에 인터뷰 시간은 밤 11시로 정해두고 아이가 완전히 잠든 후에야 인터뷰를 진행했다.성유리는 진행자가 단순히 드라마의 구상이나 여자 주인공의 성장 과정에 대한 질문만 할 것이라 예상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04화

    점심시간이 다 되었지만 앞집에서는 계속 이삿짐을 옮기고 있었다.성유리는 현관문을 꼭 잠가두었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꽤 시끄러웠고, 새로운 입주자는 집을 다시 리모델링이라도 하는지 짐 옮기는 소리와 공사 소리까지 계속해서 들려왔다.피곤했던 성하늘도 소음 때문에 침대에서 한참이나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성유리는 그런 성하늘의 곁에 누워 아이의 등을 살살 두드려주었다.성하늘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성유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성유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어쩔 수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잠이 안 와.”“눈 감고 가만히 있으면 잠이 올 거야.”성유리의 말에 성하늘은 순순히 눈을 감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말했다.“엄마, 그래도 잠이 안 와.”“그럼 뭘 하고 싶은데?”“그림도 그리고 싶고, 책도 보고 싶어.”“그러니까, 자기 싫다는 뜻이네?”그 말에 성하늘은 민망한 듯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성유리가 무슨 말을 더 꺼내려던 그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싫다며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던 성하늘은 바로 성유리의 품에 파고들어 그녀의 팔을 꽉 껴안은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그런 아이의 반응에 성유리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의 손등을 살살 두드려주었다.“괜찮아, 엄마가 나가서 확인해 볼게.”“안돼, 엄마. 나가지 마.”성하늘은 그런 성유리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성유리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품에 안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현관문 앞까지 가 스코프를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복도에서는 여전히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바쁘게 짐을 옮기고 있었다.한 건장한 남자가 문밖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어린 딸과 단둘이 살다 보니 성유리의 경계심은 자연스레 높아져 있었다. 그녀는 현관문을 꼭 잠근 채 큰 소리로 물어보았다.“무슨 일이시죠?”“저희 대표님께서 이삿짐 때문에 시끄럽게 해드려서 죄송하다고, 케이크라도 드리고 싶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03화

    “그렇긴 하죠. 노인 네 명에 어린애 둘 딸린 집인데 부부 중 한 명은 해고당하고 다른 한 명은 월급이 깎였다잖아요. 집 안 팔면 못 살죠.”“그러게요. 그러니까 직장을 들어가도 대기업으로 들어가라고 하잖아요. 대우도 좋고 안정적이니까!”“맞아요, 맞아.”“맞다, 하늘이 엄마. 그 친구분... 은 회사 운영하시죠? 요즘 어떻게 지낸대요?”성유리는 곁에서 그녀들의 대화를 한참이나 듣고 있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수다 화제가 성유리로 바뀔 때, 그녀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생각만 들었다.성유리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되물었다.“어떤 친구요?”“그냥...”“하늘이 아빠요!”곁에 있던 누군가가 마침내 적절한 표현을 찾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하지만 곧이어 후회가 들었는지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그 사람... 하늘이 아빠 맞죠?”“그 사람 일이라면 저도 잘 몰라요.”성유리의 대답은 단호했다.“이혼한 지도 꽤 됐고, 연락도 거의 안 하고 지내니까요.”“그래요? 그렇다고 하기엔... 꽤 자주 오는 것 같던데요? 혹시 모르죠, 그분이 아직도 유리 씨한테 관심이 있을지.”“제가 보기엔 두 분 꽤 어울리는 것 같던데요! 저희 시어머니도 그러셨어요. 하늘이가 예쁜 건 다 하늘이 부모님이 예쁘고 잘생겨서라고요!”“저희는 더 이상 부부가 아니에요.”성유리가 대답했다.얼핏 듣기엔 평범했지만 그녀의 말투에는 분명 약간의 경고가 담겨 있었다.갑자기 날카로워진 성유리의 말투에 시끄럽게 수다를 떨던 엄마들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이윽고 성유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저는 애 밥 차려줘야 해서요, 먼저 가 볼게요.”“저... 저기, 하늘이 엄마. 다음에 그 친구분 또 오시면 저한테도 얘기 좀 해줄래요? 우리 남편이 할 얘기가 했다고 그래서...”뒤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성유리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걸음을 이어나갔다.하늘이도 충분히 놀았는지 성유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얌전히 그녀의 손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02화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성유리는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거침없는 성유리의 행동에 오히려 전화를 건 쪽에서 멈칫하는 듯 보였다.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물었다.“아까 전화 왜 걸었어?”박한빈은 어떻게든 성유리의 입에서 먼저 어떤 말이든 나오길 기다렸고 성유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것 역시 박한빈의 일관적인 성격이었다.무슨 일이 있든 항상 타인이 먼저 다가가야만 했다.박한빈은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돌려줄지 고민해 보는 사람.심지어 자신이 주는 그 ‘조금’의 것도 마치 대단한 은혜인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전형적인 이기주의자 마인드가 아닐 수 없다.“왜 말이 없어?”박한빈은 성유리의 그 짧은 침묵도 못 참고 성급하게 그녀를 재촉해댔다.그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성유리가 대답했다.“별일 아니에요. 그냥 미안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어요.”성유리의 말과는 다르게 박한빈은 그녀의 말투에서 사과의 기미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결국, 차가운 웃음을 터뜨린 박한빈이 물었다.“성유리, 그게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야?”“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예요.”성유리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어차피 이 일도 다 대표님 때문에 일어난 일이잖아요. 대표님이 아파트단지까지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제가 대표님한테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대표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제가 무슨 오해를 하든, 그건 다 대표님 자업자득이죠. 그래도 오해했던 건 사과할게요.”성유리는 단숨에 마음속에 있던 말을 쏟아냈다.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의 기복도 없이 아주 차분했다.하지만 박한빈은 그런 성유리의 차분한 목소리 속에서 단 하나의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그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미안한 감정도 들어있지 않았다.사과의 뜻이 담긴 그녀의 말 속에도 그저 형식적인 인사말에 불과해 보였다.성유리는 박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01화

    그 탓에 성유리는 자신의 휴대폰이 어느덧 잠잠해졌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모녀가 아파트단지에 도착했을 때는 몰려있던 사람들이 전부 흩어진 후였고 남아 있던 사람들의 손에는 새로운 장난감이 들려있었다.그 모습을 보던 성유리가 잠시 멈칫했다.“하늘이 엄마, 고마워요.”누군가가 성유리에게 다가와 말했다.“그... 단톡방에서 했던 말은 신경 쓰지 마요. 사람들이 정말 못돼 먹었죠.”“그러게나 말이에요. 공짜에 눈이 멀어도 유분수지.”이윽고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와 맞장구를 쳐주었다.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성유리는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듯 물었다.“이 물건들... 다 누가 보낸 거예요?”“당연히 한빈 씨가 보내준 거죠! 일 때문에 직접 못 온다고 비서님이 대신 갖고 왔더라고요. 설마 얘기 못 들었어요?”성유리의 목소리가 다소 거칠어지기 시작했다.“그게... 대체 언제였죠?”“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받아가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렸으니까 아마 11시쯤이었을 걸요?”박한빈이 성유리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가 12시쯤이었다.그 말인즉슨 두 사람이 통화하고 있었을 때는 이미 박한빈이 물건을 보낸 뒤였다는 뜻이 된다.성유리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잠시 후, 겨우 입꼬리를 살짝 올린 성유리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 저희가 더 고맙죠. 애들이 얼마나 기뻐했는데요. 그나저나, 유리 씨 남편분... 아니, 전 남편분은 무슨 일 하세요? 장난감 사업이라고 하시나?”“그런 건 아닌 것 같던데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는데, 꽤 잘생겼어요. 연예인 아니에요?”성유리는 그녀들의 말을 모조리 무시한 채 고개만 살짝 까딱이고는 성하늘과 함께 자리를 떴다.아이와 함께 집으로 올라오자 관리사무소에서 입주민 단톡방에 공지를 올렸다.공지에는 최근 이틀간 아파트단지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전해 들었으며, 내일부터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그 공지를 확인한 입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00화

    성유리는 단체 채팅방 알림을 차단했지만 여전히 개인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다.발송자들은 다 단지에서 알게 된 아이 엄마들이 보내온 메시지였다.[박 대표님 오늘 언제 오시는지 아세요?][오늘 안 오신다면 미리 말씀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이들이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는데요.]성유리는 무표정으로 그 메시지들을 바라보았다.사실, 박한빈이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예감하고 있었다.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모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것.박한빈은 언제나 그런 일에 능숙했다.그녀가 이 단지에서 겨우 찾아낸 평온한 삶은 박한빈의 등장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박한빈에게 그 돈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결국 그는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려 하고 있었다.그리고 그것은 성유리와 하늘이의 안정된 일상을 깨뜨리고 있었다.“엄마, 엄마!”하늘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성유리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이내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엄마 햄버거는 맛없어?”하늘이는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성유리는 자신의 손에 들린 음식을 한 번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야. 그냥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 너 많이 먹어.”“엄마 오늘 이상해.”하늘이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다시 고개를 숙여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그리고 맞은편에 있던 성유리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박한빈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마치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에게서 전화가 먼저 걸려 왔다.성유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아파트 단지에 있어?”그의 첫 마디는 성유리의 행방을 묻는 말이었다.“미안해. 오늘은 일이 있어서 못 갈 것 같네.”“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성유리는 박한빈의 두 번째 말에 바로 반박했다.“그런 말은 박한빈 씨가 약속했던 사람들에게 말하는 게 맞지 않나요?”“약속? 난 누구랑 약속한 적 없는데.”“그럼 왜 저한테 전화하세요?”“혹시 기다리고 있을까 봐...”“전 당신을 기다린 적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9화

    하늘이의 단호한 대답에 성유리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그럼 우리 이제 집에 가자.”그렇게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웃음소리와 흥분된 목소리는 마치 그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그런데 다음 날, 박한빈이 또 아파트 내에 나타났다.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몇 명의 보디가드도 함께였고 그들의 손에는 묵직한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어제와 달리 박한빈이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이들이 먼저 우르르 몰려들었고 심지어는 옆 단지에서 소문을 듣고 온 아이들까지 있었다.박한빈은 찾아오는 아이들이 누구인지도 구분하지 않은 채 아이들이 오기만 하면 모두에게 선물을 나눠줬다.오늘은 그가 직접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됐기에 성유리의 반응을 살필 시간도 있었다.그러나 선물을 나눠주던 박한빈은 금세 깨달았다. 성유리와 하늘이는 이미 떠나버렸단 사실을.‘언제 떠난 거지?’그로부터 셋째 날, 넷째 날이 지나갔고 다섯째 날이 될 무렵 박한빈은 더 이상 아파트에 나타나지 않았다.하지만 며칠간의 무료 선물이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충분히 인상적이었기에 그들은 여전히 단지 아래에 모여 있었다.아이들은 기대에 들떠 있었고 부모들은 아이들만큼이나 박한빈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성유리는 그동안 하늘이를 데리고 단지 아래가 아닌 근처 어린이 공원으로 나가곤 했다.그날도 성유리는 하늘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 공원으로 가는 길이었다.그런데 단지 사람들 중 일부가 그녀와 박한빈의 관계를 알아냈는지 성유리를 보자마자 인사를 건네며 물었다.“오늘 박 대표님은 언제 오세요?”성유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저도 몰라요.”“아니, 어떻게 몰라요? 남편 일인데 모를 리가 있나요?”“저희는 이미 이혼했잖아요.”그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참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두 분은 전혀 이혼한 사람들 같지 않은데? 박 대표님 같은 좋은 사람을 왜 용서하지 않는 거예요?”“맞아요! 박 대표님 같은 분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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