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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Penulis: 송진
last update Terakhir Diperbarui: 2024-10-29 19:06:45
“유리 네 양아버지 일 말이니? 나도 들었다.”

김서영의 태도는 여전히 느긋하고 담담했다.

“비록 밖에 나가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너를 알고 지낸 시간도 오래됐잖니. 네가 어떤 사람인지도 내가 모를까 봐?”

김서영의 담담한 말에 성유리는 무슨 뜨거운 물건 하나가 자기 심장에 천천히 박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성유리는 두 손을 꽉 쥐며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님, 고마워요.”

“응. 너랑 한빈이 일은 얘기가 끝난 것 같으니 이제 내 얘기를 좀 해볼게.”

김서영은 한껏 더 다정한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고마웠어.”

“저... 아니에요.”

성유리의 긴장한 모습에 김서영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물었다.

“왜? 놀랐니?”

“그건 아닌데요. 그냥 조금 의외라서요.”

“뭐가 의왼데? 한빈이 어머니라는 신분에 익숙해져서 나도 보통 여자라는 사실을 잊은 거야?”

성유리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 동안 조용히 앉아 있던 성유리가 김서영에게 먼저 물었다.

“박한빈 씨도 아세요?”

“걔는 알 필요 없어.”

김서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건 내 사적인 일이라서. 그리고 난 아직 박씨 가문을 떠날 생각이 없어.”

그녀의 대답을 들은 성유리는 김서영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아직 박씨 가문에 몸을 담그고 있는 김서영이니 다음 후계자는 당연하게도 박한빈 뿐이었다.

만약 일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박씨 가문의 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시는 것은 물론 손에 꽤 많은 지분을 쥐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알면 어떡하지?’

“혹시 박한빈 씨한테 정말 다른 형제가 있는 거예요?”

성유리는 말을 빙빙 돌려서 김서영에게 물었다.

“알고 싶니?”

김서영은 고개를 들어 성유리를 쳐다보더니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

“성유정 씨.”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성유정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어느새 단예진이 성유정의 앞에 다가왔고 성유정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단예진 씨. 요즘 너무 바쁘셔서 얼굴도 못 보는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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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야!” 류수미는 쏘아붙이는 사하나의 말에 너무 급한 나머지 손을 쭉 뻗어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는 자신의 말을 끝까지 이어가려 했다. “이번에 소개받은 사람은 바로 지화그룹의 박 대표야!” 사하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행동을 멈췄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류수미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이 내려간 뒤에서야 사하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누구라고요? 지화그룹에는 두 명이 있잖아요. 둘 중 어떤 박 대표 말씀이세요?” “지금 지화그룹에 박한빈 대표 빼고 대표가 또 있긴 해?”  류수미는 좀처럼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은 사하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알려줬다. “박세빈 그 사람을 몇 년 전에 박한빈이 해외로 보냈잖아. 경험을 쌓으라고 보내긴 했지만 사실상 포기나 다름없었지.” “그래서 말인데 그 사람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어쩜 친형제한테도 그럴 수 있어? 네 아버지가 그 사람을...” “잠깐만요.”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려 하자 사하나는 서둘러 류수미의 말을 뚝 끊었다. “아까 그 얘기로 돌아가요. 박한빈 씨가 저랑 맞선을 본다고요?” “맞아. 그 사람 조건 어때?” “미치셨어요?” 사하나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면 박세빈 씨가 미쳤나요? 저랑 유리 언니가 어떤 사이인지 모르는 건가요?” “그러니까 내가 이 얘길 빨리하는 거지. 네가 보기엔 이거 심각한 문제 아니야?” 류수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사하나에게 되물었고 그 말에 사하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해졌다. “그래서 넌 갈 거야 안 갈 거야?” 류수미가 다시 물었다. “당연히...” 사하나는 단호히 거절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가 맞선을 본다는 건 분명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거 아닌가요?” “누가 알겠어? 어쩌면 네가 첫 번째일지도 모르지.” “네? 그러니까 지금 박한빈 씨가 맞선을 보면서 새로운 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70화

    하늘이의 수속은 빠르게 처리되었다. 비행기가 금성시에 착륙하는 와중에도 성유리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필경 그때 금성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평생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고 다짐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찾은 금성은 별로 달라진 점이 없어 보였다. 예전처럼 화려하기 그지없었고 주위엔 높은 건물들과 늦은 시간이지만 지나가는 행인들이 많이 보였다. 성유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금성은 그녀로 하여금 제일 속상하게 한 도시이자 도망치듯 떠난 도시였다. 하지만 하늘이의 입장에서 보면 금성은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고향이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아주 좋은 하늘이는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바깥에 보이는 풍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사씨 가문의 기사였고 사하나는 조수석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히 앞만 쳐다보던 사하나는 고개를 휙 돌려 성유리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언니, 혹시... 그분한테 전화했어요?” 저번에 사하나가 말을 한번 꺼냈을 때 성유리는 바로 거절하지 않았었다. 그저 곧 연락을 해보겠다는 말로 상황을 무마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성유리는 아직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같았고 박한빈에게 연락하는 일을 미루고 또 미루고 있었다. 사하나는 좀처럼 전화를 하지 못하는 성유리를 대신해 자기가 직접 연락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두 사람 일이니 참견하지 않기로 했다. 필경 박한빈이 연락이 없다고 해도 하늘이의 친아버지는 박한빈이었고 친어머니는 성유리였으니까. 병원에 도착한 하늘이는 당일 바로 입원수속을 할 수 있었다. 사하나는 병원 주위에 성유리를 위한 집 한 채를 마련해 두었고 그녀더러 자주 집으로 돌아가 쉬라고 말해줬다. 성유리는 사하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환하게 웃어 보였지만 사하나는 그녀가 하늘이를 챙기기 위해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집에 먼저 뽀얗게 쌓이겠네.’ 병원에서 모든 절차를 마친 사하나는 차에 올라타 사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 성유리와 함께 있어 주고 싶었지만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69화

    성유리는 병원을 싫어한다. 이곳에서는 항상 소독약 냄새가 났고 여전히 이따금 슬프고 절망적인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간호사는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하늘이의 혈관은 매우 얇아서 지금 몇 바늘을 꿰매야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아이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그러나 하늘이도 어린아이일 뿐인지라 울음을 참을 수 없었고 성유리에게 아프다고 떼를 부렸다. 성유리는 아파하는 아이를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늘이의 다른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때,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주삿바늘이 성공적으로 들어갔고 코를 훌쩍거리던 하늘이도 지쳤는지 눈을 감았다. “자.” 성유리는 손을 쭉 뻗어 하늘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엄마 여기 있어.” 하늘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떴다. 성유리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왜 그래?” “엄마, 안 울 거지?” 아이의 물음에 성유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 방금 조금 아팠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으니 걱정 마.” 하늘이는 성유리가 자신을 걱정할까 봐 괜찮다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성유리는 아이 앞에서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아이의 말을 듣고 나니 더는 웃음을 지을 수가 없었다. 행여나 울음이 터져 나올까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유리의 모습을 본 하늘이는 안도의 표정을 짓더니 다시 눈을 감았고 성유리는 여전히 아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반대편에 있는 수액에 고정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더 큰 수액 병을 맞자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뭔가를 잃을까 봐 두려운 듯 시선을 떼고 싶지 않았다. 사하나가 들어왔을 때, 그녀가 본 모습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멈칫하더니 성유리에게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언니, 좀 쉬세요. 제가 여기서 지켜볼게요.” 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하나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68화

    성유리는 새벽에 집으로 돌아갔다. 하늘이는 깊은 밤이라 이미 성유리의 어깨에 기대 잠에 들어 있었는데 너무 지쳤는지 호흡이 거칠어졌다. 성유리는 한손으로 잠든 아이를 부축한 채 다른 한 손으론 문을 열려고 애를 썼다. 집으로 들어선 성유리는 다른 일을 할 새도 없이 먼저 하늘이를 침대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아이한테 이불을 덮어주고 문을 닫고 나서야 성유리는 거실로 돌아갔다. 옆에 있는 조명은 켜져 있었고 그 옆에는 나가기 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책장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책장 안에는 성유리가 그려놓은 만화 작품과 미래에 대해 세워놓은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은 마치 성유리를 비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유리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업계에서 그들은 겉으로 보기엔 아주 높게 평가받는 것 같지만 사실 제일 밑바닥에 깔린 사람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홍보나 영업, 다른 사람과 손잡고 일하기 위해 상의하는 일 또한 회사에서 하니 성유리는 그저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매일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성유리고 피곤해서 코피까지 흘리면서도 대본을 수정하는 사람 역시 성유리였다. 그리고 나중에 대중들에게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먹는 사람 또한 성유리다. 직접 그린 만화가 정말 어렵게 드라마로 제작이 되었고 쉽지 않았지만 현장으로 나가 직접 참여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름을 알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게 되었다. 성유리는 이런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너무 우스워 보였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성유리는 그 감정들을 꾹꾹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은 전에 뜬 눈으로 보낸 그 밤들과 다를 점이 없었다. 피로에 찌든 몸으로 침대에 누웠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성유리는 눈을 번쩍 떴다. 그 전날부터 호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고 게다가 어떤 사람은 방문 틈으로 물건을 집어넣기도 했다. 협박 편지와 성유리를 저주하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67화

    말을 마친 상대는 바로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성유리는 핸드폰을 손에 꽉 쥔 채 낯빛은 점점 새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하늘이는 그때까지도 얌전히 성유리의 옆에 앉아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성유리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나서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하늘이를 보며 말했다. “하늘아, 우리 집에 못 갈 것 같아.” “왜요? 우리 집에 안 가요?” 성유리의 말에 하늘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고 삐친 듯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계속 물었다. “엄마가 오늘 집에 간다고 했잖아요. 나 집에 갈래! 가서 민준 오빠랑 놀 거야.” “미안해, 하늘아. 엄마가 잘못했어.” 성유리는 떼를 쓰는 하늘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며 달랬다. “근데 지금 일이 좀 생겨서 어쩔 수 없어. 여기서 며칠만 더 있자. 엄마가 약속할게. 일이 다 해결되면 바로 집으로 가자.” 하늘이는 대답이 없었다. 성유리는 지금 아이의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 그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제작사와 이우빈 회사 쪽에서는 성유리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 따졌고 빨리 해결하라고 보챘다. 또 어떤 사람은 이우빈과 성유리가 현장에서 같이 있던 사진을 터뜨리면서 두 사람은 촬영을 핑계로 밀회를 즐겼다고 주장했다. 만약 성유리가 솔로였다면 이우빈의 팬들은 불같이 화를 내지 않았겠지만 성유리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이우빈의 회사로 찾아가 난동을 부렸다. 커다란 광장에서는 성유리를 욕하고 저주하는 목소리가 울려 펴졌고 이렇게 된 이상 성유리가 지금 만화를 베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성유리가 결백하다고 해도 죄를 지은 죄인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이우빈은 이미 잠적했고 제작사는 계속 헛돈을 쓰며 현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만약 이번 드라마가 방영을 못 하게 된다면 그 모든 비용은 다 성유리가 책임져야 했다. 그 돈은 아마 성유리가 예상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큰돈일 것이다. 성유리는 부득불 다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66화

    “선생님, 큰일 났어요.” 전화가 걸려 올 때까지 성유리는 호텔에서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미 대본은 거의 수정을 마친 상태였기에 성유리는 하늘이와 함께 집에 돌아가 살기로 결정을 내렸다. 비록 2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호텔에서 머물렀지만 짐은 생각보다 많았고 성유리는 이사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성유리는 조금 멍해진 채로 물었다. “왜 그래요?” “뉴스 안 보셨어요?” “무슨 뉴스요?” “허유라 알아요?” 성유리는 그때까지도 무슨 상황인지 눈치채지 못했었다. 통화를 하던 상대는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바로 말을 이어갔다. “빨리 뉴스 확인하세요. 전에 선생님이랑 같은 회사에 다녔다고 주장하는 사람인데 지금 선생님이 쓰신 [안개가 걷힌 뒤] 그 만화가 자기 작품이라고 우겨요. 자기 작품인데 회사가 선생님을 알리기 위해 자기한테서 뺏어갔다고 하면서요. 게다가 자기는 회사에서 잘리기까지 했대요. 난리가 났는데 못 보셨어요?” 상대는 빠르게 말을 이어갔고 성유리가 뭐라 반응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바로 통화를 끝내버렸다. 성유리는 멍하니 서 있다 천천히 핸드폰을 열어 뉴스를 확인했고 상대의 말대로 인터넷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 1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성유리는 얼굴 하나 믿고 나대는 거라고. 무조건 다른 사람들 덕을 봤다니까?] [여신 만화 작가는 무슨! 남이 쓴 작품 베끼기나 하는 주제에.] [이런 저질스러운 만화도 베껴? 낯이 얼마나 두꺼운 거야?] [소문으로는 성유리 뒤에 돈이 엄청 많은 스폰서가 있다던데?] [게다가 현장에서 남자 배우들을 계속 꼬신대. 늙은 여우 주제에 왜 저런대?]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댓글은 수도 없이 많았고 성유리는 댓글들을 확인하며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하늘이는 옆에서 조용히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성유리를 발견한 하늘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65화

    그 여자는 박한빈의 말을 듣고 상황을 이해한 듯 비웃으며 말했다. “알겠네. 당신이 저 천한 년의 친구인가 보지?” 박한빈은 변호사와 통화하던 중이었지만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목소리는 뚝 끊겼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여자는 계속해서 빈정거리며 박한빈을 조롱했다. “아니지, 친구가 아니라 새로 사귄 남자인가? 참 대단하네. 어떻게 그 많은 남자들을 동시에 농락할 수 있지? 나도 알거든, 뭐 유명한 여신 만화작가라더니 다 허상이지. 분명 뒤에서는 당신 같은 남자들이나 떠받쳐 주는 걸 거야!” 그러면서 그녀는 박한빈을 위아래로 쭉 훑어보았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그녀는 화려한 물건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그 바람에 박한빈의 옷차림과 손목에 차고 있는 고급 시계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더욱 확신을 가졌고 박한빈에게 갑자기 존댓말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당신, 저 여자 스폰서 맞죠? 그런데 그거 알아요? 저 여자는 매일 촬영장에서 내 오빠랑 엮이고 있다고요. 게다가 애까지 있어요. 누구 씨앗인지도 모르는 그 애 말이죠. 당신이 고작 저런 여자를 위해 돈을 쓰고 있다고요. 기분 더럽지 않아요?” 여자는 계속해서 험한 말을 쏟아냈지만 박한빈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여자는 점점 흥분하며 박한빈을 설득하며 성유리를 “매장”해 버리자고 했다. 그녀를 완전히 끝장내자고 말이다. 그러나 그 순간, 변호사가 현장에 도착했다. 박한빈은 변호사를 발견하고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은 건 알아서 잘 맡아주세요.”  그러면서 그녀의 카메라에서 메모리 카드를 빼냈다. 여자는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달려들어 따지려고 했지만 변호사가 그녀를 막아섰다.“안녕하세요. 저는 박 대표님의 변호사입니다. 문제 있으시면 저와 말씀 나누시죠.” ...그날, 박한빈은 결국 촬영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온 그는 메모리 카드를 꺼내 사진들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사진 속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64화

    올해의 대작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 드라마는 촬영 당시부터 철저히 현장을 봉쇄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몰래 시도한 촬영이 완전히 막히지는 않았다. 박한빈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파란 천막 근처에 몸을 숙이고 카메라로 촬영장을 겨냥하고 있는 한 여자를 발견했다. 그 모습을 본 박한빈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고 원래 그는 촬영장 안으로 바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비록 영상 산업이 그의 회사의 주요 사업은 아니지만 그는 그동안 크고 작은 영화와 드라마 투자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박한빈의 신분상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터였다. 그러나 문득 그는 자신이 안으로 들어갈 명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누군가가 왜 왔는지를 물으면 그저 심심해서 와봤다는 핑계를 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박한빈은 발걸음을 뚝 멈춘 채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그는 그 여자의 카메라가 촬영하고 있는 대상이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카메라 렌즈는 오히려 다른 방향, 즉 휴식을 취하기 위해 준비된 천막 쪽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 천막 안에는 많은 스태프들이 있었고 주위는 정돈되지 않은 장비들로 어수선했다. 하지만 거리가 멀었음에도 그는 그곳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여자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안경을 쓰고 있었고 옆 사람과 무언가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아이가 종이와 펜을 들고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와 아이는 자신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기에 박한빈은 아무 걱정 없이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벽 구석에서 조용히 자라는 식물이 되어 오랜 그늘 속에서 갈망하던 햇살과 이슬을 처음으로 맛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드리워진 그 “햇살”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때, 박한빈은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었다. “천한 여자! 염치도 없는 천한 년에다 저런 애까지!” 그는 즉시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63화

    이것은 박한빈이 처음으로 그들의 아이를 직접 본 순간이었다. 흐릿한 사진도 교묘한 각도로 찍힌 이미지도 아닌 눈앞에서 생생하게 움직이는 아이였다. 작은 소녀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박한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호기심과 함께 낯선 누군가를 관찰하는 듯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박한빈은 아이를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조심스럽게 박한빈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었고 이내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 성유리와 아이의 모습이 가려져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한참 뒤, 박한빈은 비로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죠?” 그는 자신의 감정을 빠르게 추스르며 평정을 찾으려 했지만 목소리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그날 밤, 그는 예상대로 잠에 쉽게 들지 못했다. 박한빈은 새벽녘까지 뒤척이다 결국 약을 먹고 나서야 간신히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꿈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장면이 계속 반복되었고 그 장면은 성유리가 한 소녀와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장면은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낯선 남자가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박한빈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는 강렬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옆에 둔 핸드폰은 계속해서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그는 울리는 전화를 바로 받지 않았다. 대신 창밖의 햇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방금 꾼 꿈의 장면을 머릿속에서 계속 되새겼다. 박한빈은 그 꿈을 이전에도 꾼 적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 같았다.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소녀가 다른 누군가를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박한빈의 심장과 위장은 다시금 은은히 아파지기 시작했다.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그는 그 감정을 억누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화를 받았다. 그는 이번에 경운시로 출장 온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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