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52화

Author: 송진
“그게...”

성유리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은 말을 끊어버리며 다시 물었다.

“아직 안에 있어? 나 이미 도착했는데.”

그의 말에 성유리는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들자 마침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고 김서영 또한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다.

성유리와 김서영이 눈이 마주치자 성유리는 오히려 아주 냉정해졌다.

“왜 오신 거예요?”

“밥 먹으러.”

박한빈의 대답은 짧고도 명료했다.

“지금 이미 엘리베이터 안이에요. 주차장에서 기다려주세요.”

성유리는 말하며 1층 버튼을 눌렀다.

김서영은 그때까지도 가만히 성유리의 앞에 서 있었다.

1층에 도착한 순간, 성유리가 내리려 하자 김서영이 발 빠르게 먼저 내렸다.

옆에 있던 남자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는지 멍해 있다가 별다른 말 없이 성유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김서영을 따라나섰다.

성유리는 바로 엘리베이터 문을 닫아버렸다.

주차장에 도착한 성유리는 박한빈의 차를 보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 있어?”

박한빈은 오늘 운전기사도 없이 혼자 운전해서 이곳에 왔다.

운전대에 올려놓은 박한빈의 팔은 핏줄도 선명해 관능적으로 보이기 그지없었다.

성유리는 그런 박한빈의 팔을 조금 바라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아무거나 다 돼요.”

그녀의 대답에 박한빈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성유리가 안전벨트를 다 메고 나서야 시동을 걸었다.

박한빈의 차가 시월 파크를 빠져나갈 때, 성유리는 길가에 서 있는 김서영과 남자를 발견했다.

운전을 하던 박한빈도 뭔가 눈치를 챘는지 성유리의 시선을 따라 그곳을 쳐다보려 했다.

그러자 성유리는 빠르게 박한빈의 손을 잡으며 그의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운전대를 잡고 있던 박한빈은 성유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하마터면 옆에 주차된 차에 부딪힐 뻔했다.

다행히 가까스로 사고를 막아낸 박한빈은 멍한 표정으로 성유리를 쳐다봤지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53화

    하지만 박한빈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유리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표현도 안 했다. 설령 박한빈이 슬쩍 감정표현을 했다 하더라도 성유리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성유리는 지금 제대로 된 답을 알고 싶어졌다. 옆에 앉아서 묻는 성유리를 힐끔 쳐다보던 박한빈이 되물었다. “성유리 네 생각엔 내가 왜 이러는 거 같은데?” 성유리는 박한빈의 애매모호한 말에 입술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 “말해주기 싫으시면 안 하셔도 돼요.” 그녀는 여전히 박한빈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박한빈은 그녀가 저항할수록 더욱 꽉 잡았다. “너 점점 더 짜증이 많아지는 것 같다?” 박한빈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박 대표님, 제 성격은 항상 이랬어요.” 반면 성유리는 그의 말에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알다시피 저는 유정이나 단예진 씨처럼 그렇게 다정한 스타일이 아니라 서요.” 그녀의 말에 박한빈은 뜨끔했는지 당황하더니 갑자기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빠르게 운전대를 돌려 길가에 차를 세웠고 성유리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를 덮쳤다. “박 대표님? 보아하니 너도 질투가 많은 사람인가 보네?” “아니거든요.” 성유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부정했다. “내가 보내준 기사 안 봤지?” 박한빈은 성유리의 턱을 손으로 살짝 들어 올리며 물었다. “나랑 단예진 씨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했을 텐데.” “그리고 성유정이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사이도 아니었고.” 성유리는 이빨을 꽉 깨문 채로 박한빈의 말에 반박했다. “하지만 유정이한테 늘 다정다감하게 잘 대해주셨잖아요.” 그녀의 말에 박한빈은 조금 멈칫하더니 고개를 숙여 성유리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며 대답했다. “앞으론 안 그럴게.” “앞으로라고요? 무슨 뜻이에요?” 성유리가 물었다. “네 생각에는 무슨 뜻인 거 같아?” 박한빈은 성유리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을 이어갔다. “유리야, 나는 너랑 숨바꼭질할 시간이 없어.” “지금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54화

    김서영의 전화가 걸려 왔을 때는 성유리는 미화로에서 지낸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시간 있니? 우리 한번 만날까?” 김서영이 물었다. 성유리는 김서영의 만남 제안을 자신은 절대 거절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성유리는 지금까지 김서영의 모든 요청과 제안에 거절한 적이 없었다. 김서영은 만남 장소를 어느 한 찻집으로 정했다. 성유리가 찻집에 도착했을 때, 김서영은 이미 조용한 방 안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하얀색의 긴 치마를 입고 머리카락은 아주 정갈하게 빚은 모습이었는데 세월을 비껴갔는지 아름답고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김서영은 성유리에게 차 한 잔을 건네주며 말을 꺼냈다. “마셔봐, 올해 새로 나온 룽징 차란다. 네가 좋아했던 게 생각이 나서 시켰어.” “감사합니다.” 성유리는 짧은 인사를 한 뒤, 차를 한 모금 마시려 했다. “너랑 한빈이 언제부터 다시 만난 거야?” 순간 김서영이 물었다. 성유리는 그녀의 물음에 잔뜩 당황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실 전부터 조금 느끼긴 했어.” 그에 반면 김서영은 평온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 “전에 둘이 크게 싸웠었니? 한빈이 얼굴에 남은 그 자국으로 회사 사람들이 꽤나 오랫동안 토론했단다.” 성유리는 진즉에 이 일을 잊어버렸지만 김서영의 말에 얼굴이 빨개졌고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눈치만 봤다. “처음엔 요즘 한빈이가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가 했는데 다시 생각 해보니 너밖에 없더라. 한빈이가 안 작가님 그림을 사는 거 있지? 그 그림 너한테 사준 거니?” ‘그림?’ 성유리는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했다. 하지만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성유리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그 그림 보지도 못했어요.” “그럼 아직 너한테 줄 시기를 못 찾았나 보구나.” 김서영은 완전히 확실하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난 알아. 무조건 유리 너한테 줄 거야.”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는...” “너 안 작가님 그림 좋아하지 않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55화

    “유리 네 양아버지 일 말이니? 나도 들었다.” 김서영의 태도는 여전히 느긋하고 담담했다. “비록 밖에 나가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너를 알고 지낸 시간도 오래됐잖니. 네가 어떤 사람인지도 내가 모를까 봐?” 김서영의 담담한 말에 성유리는 무슨 뜨거운 물건 하나가 자기 심장에 천천히 박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성유리는 두 손을 꽉 쥐며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님, 고마워요.” “응. 너랑 한빈이 일은 얘기가 끝난 것 같으니 이제 내 얘기를 좀 해볼게.” 김서영은 한껏 더 다정한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고마웠어.” “저... 아니에요.” 성유리의 긴장한 모습에 김서영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물었다. “왜? 놀랐니?” “그건 아닌데요. 그냥 조금 의외라서요.” “뭐가 의왼데? 한빈이 어머니라는 신분에 익숙해져서 나도 보통 여자라는 사실을 잊은 거야?” 성유리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 동안 조용히 앉아 있던 성유리가 김서영에게 먼저 물었다. “박한빈 씨도 아세요?” “걔는 알 필요 없어.” 김서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건 내 사적인 일이라서. 그리고 난 아직 박씨 가문을 떠날 생각이 없어.” 그녀의 대답을 들은 성유리는 김서영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아직 박씨 가문에 몸을 담그고 있는 김서영이니 다음 후계자는 당연하게도 박한빈 뿐이었다. 만약 일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박씨 가문의 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시는 것은 물론 손에 꽤 많은 지분을 쥐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알면 어떡하지?’ “혹시 박한빈 씨한테 정말 다른 형제가 있는 거예요?” 성유리는 말을 빙빙 돌려서 김서영에게 물었다. “알고 싶니?” 김서영은 고개를 들어 성유리를 쳐다보더니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 “성유정 씨.”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성유정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어느새 단예진이 성유정의 앞에 다가왔고 성유정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단예진 씨. 요즘 너무 바쁘셔서 얼굴도 못 보는 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56화

    “언니.” 청아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발걸음을 재촉하던 성유리는 천천히 멈춰 섰다. 그러나 이내 성유리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성유리는 빠르게 달려와 성유리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언니, 왜 내 말 못 들은 척해요?” “지금 여기 살아요? 왜요? 힘들지 않아요? 만약...” “손 놔.” 성유리는 성유정을 말을 여전히 무시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성유정은 성유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언니, 언니가 이렇게 나오면 재미없죠.” “집안 상황이 지금 어떤지 알기나 해요? 언니 때문에 엄마가 쓰러지셨어요. 게다가 회사 상황도 지금 말이 아니고. 이게 다...” “네가 그렇게 만든 거잖아.” 성유리는 성유정의 말을 채 들어주지도 않았다. “저...” 뭐라 변명하려던 성유정은 입을 꾹 닫았고 성유리는 담담한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날 우리 둘이 차에서 나눈 대화 기억해? 네가 말한 그 모든 것들 다 몰래 녹음해 뒀어.” “뭐라고요?” 그녀의 말에 성유정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비록 그 사람들이 내 생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해도 그들이 수년간 보물처럼 키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알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성유정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갔고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뻥긋거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성유리는 성유정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든 관심이 없어 짜증을 내며 물었다. “아직도 그 손 안 놓을 거야?” “언니, 지금 나 속이는 거죠?” 성유정은 이내 정신을 차렸고 또박또박 성유리에게 따지며 물었다. “만약 녹음했으면 진즉에 내놨겠죠. 아직도 그러지 않는 걸 보니 없는 거 아닌가요?” “내가 그 사람들한테 알리지 않았을 뿐이야. 나는 네가 가진 더러운 것들을 뺏을 생각이 전혀 없거든.” “나를 꽉 물고 놓지 않는다면 나도 더 이상 봐주지는 않을 거니까 명심하고.” 성유리의 경고와도 같은 말에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57화

    성유리와 박한빈은 이미 이혼을 한 사이인데 왜 서로 놓지를 못하는지 성유정은 이해가 안 갔다. ‘한빈 오빠가 미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지?’ ‘성유리도 지금 크고 작은 구설수 때문에 깨끗하지 않은데 왜 하필 성유리 편을 들어주는 거야?’ 몇 분이나 흘렀을까, 한참 동안 창밖만 쳐다보던 성유정이 앞에 있는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시동 거세요.” “네.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 기사는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 뒷좌석 여자가 이상해 뒤를 돌아 그녀를 쳐다봤다. 성유정은 한쪽만 주시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고 택시 기사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곳을 바라보았다. “어라? 저거 마사라제 아니에요? 이런 곳에서 저런 비싸 차를 모는 사람도 있네요?” 택시 기사는 저 멀리 보이는 외제 차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지만 성유정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차가 있는 방향을 주시하던 성유정의 입술은 이미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한빈 오빠는 아닐 거야.’ ‘절대 오빠일 리가 없어.’ 성유정은 이런 곳에 박한빈이 있을 리가 없다고 자신을 끊임없이 세뇌했다. 성유리와 박한빈 사이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성유정은 차에서 내리는 박한빈을 발견하고는 분노에 겨워 몸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한편, 차에서 내린 박한빈의 손에는 예쁘게 포장까지 된 케이크 하나가 들려있었다. ... 성유리는 밤 내내 마음이 심란해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픽 테블릿은 열려있었지만 성유리는 쉽게 손을 대지 못했고 씻고 나온 박한빈이 그녀의 뒤에 서 있는 것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무슨 생각 하고 있어?” 박한빈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깜짝 놀란 성유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테블릿 화면을 가리려 애를 썼다. 그리더니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살짝 째려보며 물었다. “언제 나오셨어요?” “방금.” 성유리는 아무 대답도 없이 자신의 화면을 꺼버렸다. 박한빈은 원래 그녀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58화

    다음날, 성유리는 결국 성유정이 말한 병원으로 찾아갔다. 마스크까지 끼고 얼굴을 완벽하게 가린 성유리는 간호사에게서 윤청하의 입원기록을 얻어냈지만 구체적인 일은 알아내지 못했다. 예를 들어 환자의 지금 상황이나 구체적인 병명 말이다. 성유리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조용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위층으로 향했다. 병실 앞에 도착하자 마침 성유정과 윤청하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진무열 그 사람 괜찮던데? 만약 네가 그 사람이랑 결혼하면 무조건...” “엄마! 근데 저는 그 사람 안 좋아한다고요.” 성유정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리고 그 사람도 나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엄마 그거 아세요? 진무열 씨가 다친 이유는 교통사고가 아니라...” 성유정은 말하다가 문득 입을 꾹 닫아버렸다. 윤청하는 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성유정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라? 뭐 때문에 다친 건데?” “아무튼 그 사람이 좋아하는 여자는 제가 아니라고요! 저도 진무열 씨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윤청하는 성유정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 성유정은 마치 기회라도 잡은 사람처럼 윤청하의 손을 꼭 잡더니 말했다. “엄마,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한빈 오빠라고요. 엄마가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진무열 씨는 지금 진씨 가문에서 아무런 권력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그런 사람한테 시집을 간다 해도 우리 성씨 가문에게 좋은 점이 없다니까요?” “하지만 한빈이는...” “한빈 오빠는 저를 좋아하는 게 확실해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인데 제가 어떻게 오빠 감정을 모를 수가 있겠어요? 엄마만 저를 도와주시면 돼요.” “도와주면 어떻게 할 생각이니?” 윤청하는 떼를 쓰며 말하는 성유정에게 단호하게 물었다. 성유정이 깊은숨을 내쉬고 자기 생각을 말하려는 순간, 성유리의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병실 입구를 막아서고 있는 거니?” 그 목소리를 들은 성유정의 안색이 삽시간에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59화

    “만약 네가 나중에 그런 일을 겪을 줄 알았다면 나는 너를 내 옆에 꼭 묶어두고 절대 한 발짝도 못 떨어지게 했을 거야.” “근데 유리야, 네가 고생한 것만큼 나도 꽤 험난하게 살고 있었단다. 너도 전에 엄마가 될 뻔했지 않았니? 너도 이제 엄마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지?” 윤청하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성유리에게 말했다. 성유리는 그런 윤청하를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더니 물었다. “그래서 도대체 목적이 뭔데요?” 그녀의 목소리는 냉정하고도 차가웠다. 마치 다들 참여하는 “연기”를 탐탁치 않아 하는 관중처럼 그들이 하는 “연극”을 멈추려 하는 것 같았다. 윤청하는 고개를 들어 한없이 냉정한 성유리를 보며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너... 너 어떻게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 “제 추측이 틀린 건가요?” 성유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계속 물었다. “괜찮나 보네요. 이제 아프지 않나 보죠? 그럼 더 다행이네요. 저는 이만.” “잠깐만!” 몸을 일으켜 떠나려는 성유리를 재빨리 불러 세운 윤청하는 결국 그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 말은 성유리의 예상에 딱 맞는 말들이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고개를 돌려 조롱의 의도가 가득 담긴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을 쳐다봤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임을 알아차렸는지 윤청하는 멈칫거리다 입을 열었다. “너... 내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는 아니?” “몰라요.” “급성 신장 손상. 그게 내 병명이야.” 윤청하는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의사가 그러더라. 이 병은 재앙과도 같은 병이라고. 치료하고 싶으면 신장 이식을 받는 방법밖에 없대.” 그녀의 말에 성유리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비록 처음부터 짧은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윤청하의 말을 들은 순간 심장이 강하게 요동쳤다. 사실 아까 한 순간이지만 성유리는 자신이 드디어 친 엄마로부터 인정을 받고 이해를 받은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건 다 성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60화

    성씨 가문 사람들의 저주와도 같은 말들에 성유리는 이미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험한 말들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 며칠간 우울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성유리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평온했다. 성유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윤청하의 말에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그때 저를 죽이시지 못하셨네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저한테 욕하는 거 빼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요.” 윤청하는 성유리의 말에 숨이 턱 막혀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아닌 마치 높은 자리에 서서 기어다니는 개미 새끼 한 마리를 보는듯한 성유리의 눈빛에 놀란 것이다. 분명히 전에 성유리는 늘 윤청하를 볼 때면 애정과 존경심이 듬뿍 담긴 눈으로 봤었는데 말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사이가 이렇게 변할 걸까?’ 윤청하는 자신이 던진 질문의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몸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점점 얼어붙어 가 움직일 수도 없는 느낌이 들었다. 성유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병실 밖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오늘 이곳에 찾아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필경 오늘 만약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실망하지 않았을 거고 그렇게 된다면 윤청하를 신경 쓰면서 살아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번 “테스트”를 통해 성유리는 자신은 절대로 성씨 가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이제 희망 따위도 없어.’ 성유리가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 저 멀리 성유정의 모습이 보였다. 성유정은 성유리를 발견한 순간 얼른 그녀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엄마랑 무슨 얘기 나누셨어요? 한다고 했어요?” 성유정의 질문에 성유리는 그녀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됐다. ‘하긴 얘가 나보고 오라고 했으니까.’ 성씨 가문이 세운 계획에 대해 성유정이 모를 리가 없었다. 성유리는 묻는 성유정을 힐끔 쳐다보고는 대답을 해주기도 귀찮아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만약 제가 언니였으면

Latest chapter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87화

    “그리고 나도 믿어. 정말 하루아침에 회사가 부도가 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때가 와도 난 잘 살 수 있을 거야. 잘 살지 못한다고 해도 절대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을 거고. 특히 유리 너를 원망할 일은 죽어도 없을 거야.”연정우의 대답에 긴장감에 바짝 굳어있던 성유리는 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래서 오늘 종일 이것 때문에 걱정했어?”“응...”성유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도 어머니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 그래도 사모님은 널 위해서 이러는 거니까.”“응. 안 그럴게.”연정우는 빠르게 대답했지만 성유리는 그의 대답이 성의 없어 보여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러자 연정우는 문득 무언가 떠오른 사람처럼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아까 화난 건 네가... 나를 버리고 떠날까 봐 그런 거야. 그렇지만 이제 보니 오해였던 것 같네. 그러니까 너도 걱정하지 마. 어머니랑 안 싸울 테니까.”연정우의 말에 성유리는 그나마 안심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너 지금 어딘데?”“회사. 근데 곧 집에 가려고.”“알겠어. 집에 가서 푹 쉬어.”“너도. 일찍 자.”연정우의 다정다감한 말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고 성유리는 간단한 대답만 마치고는 통화를 끝냈다.한편, 연정우도 회사를 떠나려고 주차장에 내려갔지만 평소와 달리 싸한 기분에 온몸에 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에 심호흡 한 번 하고는 바로 뒤돌아보았지만 텅 빈 주차장엔 아무도 없었다.연정우는 제 자리에서 한참 사방을 둘러보다 확실히 자기 빼고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요즘 너무 피곤해 환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여겼다.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차 문을 닫고는 바로 시동을 걸어 지하 주차장을 벗어났다. 하지만 연정우가 떠나자마자 기둥 뒤에 숨어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짧은 머리였고 모자까지 꾹 눌러쓴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절반쯤 드러난 얼굴에는 너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86화

    연정우가 성유리와 약속한 시간은 11시였다. 하지만 12시가 다 되어서도 연락 없는 연정우를 성유리는 뜬눈으로 기다렸다.“하늘이 잠들었어?”12시가 넘은 자정이 되어서야 연정우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응. 지금 자.”성유리는 핸드폰을 들고 거실 발코니로 향하며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미안해. 원래는 10시쯤에 전화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또 일이 생겨서 지금까지 바빴어.”“괜찮아. 나도 아직 안 자고 있었어.”연신 사과를 하는 연정우에게 성유리는 거듭 괜찮다고 강조했고 둘 사이엔 빠르게 적막이 찾아왔다.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금세 감지한 연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무슨 일 있어?”“아니.”성유리는 재빨리 대답하고는 연정우에게 물었다.“너... 요즘도 그렇게 바빠?”“응. 그렇지 뭐. 그냥 투자자들이 제일 중요한 문제야. 너도 알잖아. 아직 회사는 제대로 파산 신청도 안 했는데 그 사람들이 다 같이 발을 빼버리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래서 나...”연정우는 말하다 문득 목이 막히는지 뚝 멈추더니 이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봐. 내가 이런 말을 너한테 뭣하러 하겠어. 사실 별거 아니야. 그저 그런 평범한 과정일 뿐이지.”“요즘 너 너무 고생하는 거 아니야?”조용히 연정우의 말을 듣고만 있던 성유리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그는 입을 꾹 닫아버렸다.성유리는 연정우에게 묻고 싶은 것이 더 많았지만 이번엔 그가 먼저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인데?”이번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연정우의 말에 성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잠시 후, 성유리가 대답했다.“아무 일도 없어. 그냥... 갑자기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래. 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 힘든 것 같아서.”연정우는 대답이 없었다.“만약 나만 아니었다면 너도 아마...”성유리는 두 손을 움켜쥐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고 그때, 연정우가 뭔가 눈치 차린 듯 물었다.“우리 엄마가 너한테 찾아갔었어?”연정우는 성유리의 말을 채 들어보지도 않고 정확히 그녀에게 발생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85화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우는 너와 함께하기를 선택했어. 그러니 성유리, 너희 관계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내 아들이 끊임없이 참고 양보했기 때문 아니야? 그런데 너는 정우를 위해 뭘 했지?”금미라는 마지막 말을 툭 던지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나버렸다.그녀의 마지막 말은 전에 말보다 악독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무거운 돌덩이가 성유리의 가슴을 세게 내려친 것처럼 가슴 속에서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늘이가 방에서 나오더니 성유리를 바라보며 걱정과 의문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엄마?”하늘이의 목소리에 성유리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바라보았다.“아까 그 사람이 아저씨의 엄마야?”하늘이가 물었다.“근데 왜 그렇게 무섭게 구는 거야?”성유리는 하늘이에게 굳은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건 무서운 게 아니라 그게 바로... 엄마로서의 본능이야. 마치 엄마가 하늘이를 위해서라면 나쁜 사람을 다 쫓아낼 수 있는 것처럼, 그분도 자기 아이를 보호하려고 했던 거야.”“하지만 엄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하늘이는 여전히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내가 나쁜 사람이지 않을까?’성유리는 속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최근 며칠 동안 성유리는 스스로를 또 다른 의문 속에 가둬두고 있었다.연정우가 그 삶에 지쳤다고 말했을 때, 그리고 자신을 선택했다는 기쁨에 그녀는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하지만 금미라가 말한 것처럼 연정우가 성유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감내했는데 정작 그녀는 연정우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심지어 성유리가 연정우에게 준 감정적인 보답조차도 너무나 미미했다.“모든 일에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어.”성유리는 결국 하늘이에게 이런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나중에 네가 크다 보면 자연스레 다 알게 될 거야.”그러나 성유리의 이런 대답은 하늘이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아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왜 뭐든 다 커야지만 알 수 있는 거야? 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84화

    금미라의 말이 다 끝나자 성유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긴 침묵에 잠겼다.“그러니까 너도 결국 네가 정우를 망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지?”금미라는 그런 성유리를 쳐다보며 그녀를 비웃는 듯한 웃음을 더 크게 지었다.“그럼 사모님께서는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시는데요?”그때, 성유리가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그걸 몰라서 묻는 거니? 당연히 정우 옆에서 떠나야지!”성유리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침착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사모님, 연정우는 이제 성인이에요.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죠. 더군다나... 저희는 이미 약속을 했어요. 정우가 떠나지 않기로 했는데 제가 이런 상황에서 그런 정우를 버릴 수는 없잖아요.”“버린다고?”금미라는 더더욱 성유리를 조롱하듯이 웃음을 빵 터뜨렸다.“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너는 상황이 어떤지 잘 알잖아. 정우 회사가 왜 갑자기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말이야. 그게 다 누구 때문인 것 같아?”“바로 성유리 너 때문이잖아! 너를 만난 뒤로 정우에게 좋은 일이 있었던 적이 있었어? 매번 너 때문에 하던 일마저 다 잘못되고 있잖아! 심지어 그전에도! 정우의 외할아버지가 왜 돈세탁에 연루됐다고 고발당했을까? 그 일이 박한빈이랑 관련돼 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거야?”“그 일만 없었어도 정우는 그 누구와도 약혼하지 않았을 거야. 우리 가문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이제 겨우 정우의 삶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는 찰나에 네가 다시 나타나 버린 거야. 도대체 정우한테 힘든 시간을 얼마나 더 버텨 달라고 하려는 거지? 유리 넌 결국 정우가 죽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거니?”금미라의 목소리는 점점 더 격앙되었고 눈에는 눈물마저 고여 있었다.“그런데도 네가 무슨 자격으로 정우를 버리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건데? 너만 아니었다면 정우가 이런 일을 겪을 일이 있겠어? 정우는 원래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이야. 그런데 다 유리 너 때문에 틀려버렸다고!”금미라는 성유리 앞에서 차마 울음을 터뜨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83화

    “지금 이게 무슨 의미야?”금미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성유리에게 물었다.“정우가 며칠 전까지 여기 있었던 건 맞지만 어젯밤에 이미 떠났어요.”“그래?”금미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더니 바로 말을 이었다.“잘됐네. 사실 너한테 할 말이 좀 있어서 왔어.”성유리는 금미라의 말에 순순히 몸을 옆으로 비켜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서게 했다.금미라는 고급스러운 맞춤 드레스와 가죽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집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그녀의 표정에는 이 집에 대한 명백한 불쾌감이 드러나 있었다.“무슨 음료 드릴까요?”성유리가 물었지만 금미라는 아무 대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천천히 시선을 하늘이에게로 돌렸다.하늘이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아이의 직감은 누구보다 정확했다. 누가 선한 사람인지, 누가 날카로운 사람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금미라가 자신을 쳐다보는 동안 하늘이는 성유리 뒤로 숨으며 그녀를 몰래 쳐다봤다. 아이의 눈빛에는 평소에 잘 없던 두려움이 그득하게 서려 있었다.금미라는 그런 하늘이를 보며 비웃듯 웃음을 터뜨렸고 성유리는 하늘이의 어깨를 살며시 토닥이며 달래기 시작했다.“하늘아, 엄마 말 잘 듣고 방에 가서 잠깐만 기다려줄래?”하늘이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성유리는 그런 하늘이에게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엄마는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가.”하늘이는 여전히 내키지 않았지만 성유리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금미라를 힐끔 쳐다본 후 빠르게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아이가 문을 닫는 것을 확인한 성유리는 이내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따라 금미라 앞에 놓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집이 좀 어수선하네요. 미처 정리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방문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성유리의 말에 금미라는 갑자기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너 지금 나한테 이런 걸 묻는 거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도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닌가?”“정우를 찾으러 오신 거 아니었나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82화

    그 캡처 사진은 사하나가 박한빈에게 보낸 것이었다.그녀는 다른 말을 덧붙이지도 않았고 그저 단순히 사진 한 장만 보냈다. 하지만 그 사진 하나로 박한빈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분명했다.사하나는 박한빈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당신은 이미 게임에서 탈락했어.]박한빈은 무표정하게 그 사진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곧바로 사진을 삭제하고 사하나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했다.그리고 다시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며 일을 하려 했지만 더는 데이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휴대폰에서 사진은 삭제됐지만 그 장면은 박한빈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진 듯 사라지지 않았다.머릿속이 복잡해진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잠시 후, 버티다 못한 박한빈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차 열쇠를 손에 쥐고는 밖으로 나섰다.차는 빠르게 달리고 있었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는 박한빈 본인도 잘 몰랐다.결국 그는 한 공사 현장 앞에 차를 세웠다.이곳은 그가 1년 전에 매입한 땅이었다. 몇 달 전부터 공사를 시작했는데 설계도만 다듬는 데 반년 넘게 걸렸다.그리고 최근, 현장은 또 한 번 더 설계도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하늘이가 회전목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박한빈은 바로 앞에 예쁜 회전목마를 설치하도록 지시했다.그리고 2층에는 성유리를 위해 마련한 전용 화실도 있었다.사실 박한빈에게는 이미 여러 채의 부동산이 있다.하지만 그는 성유리가 돌아오면 이전의 별장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아파트 같은 곳에 사는 건 그녀를 모욕하는 일이라 여겼다.그래서 오직 성유리만을 위한 집을 새로 짓기로 했고 집이 완성되면 그녀의 이름으로 등록할 계획이었다.그렇게 성유리를 맞이할 모든 준비는 거의 다 끝난 상태였다.심지어 연정우 쪽에 제시할 조건까지 생각해 둔 채로 말이다.박한빈은 절대로 두 사람이 계속 연인 사이로 지내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는 성유리가 연정우를 마음속에 두고 싶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그게 아니라면 연정우가 먼저 성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81화

    연정우가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다른 사람들도 감히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적어도 성유리가 보고 들은 것들로만 해도 연정우가 여기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그가 성유리 때문에 무너져버리고 있다.그래서 만약 연정우가 자신을 밀어내더라도 성유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전혀 놀랍지도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가 한 대답은 성유리를 더 놀라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일이 아닌 자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성유리는 이를 꽉 악문 채 눈앞의 사람을 올려다봤다.“넌 싫어?”연정우가 물었다.그의 말이 끝나자 성유리는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여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후 다시 연정우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아니. 좋아.”“이런 삶은 전혀 힘들지 않아. 너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난 어릴 때부터...  가정을 꾸리고 싶었어.”“크지 않아도 되고 화려할 필요도 없었어. 가사도우미 같은 건 필요도 없고. 내 아이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만 있으면 돼.”“그게 내가 원했던 삶이야.”성유리가 할 말을 끝내자 연정우도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그럼 우리 함께 그런 집을 만들어가자.”한편, 금성.이미 늦은 밤이었지만 사무실은 여전히 환히 불이 켜져 있었다.박한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눈앞의 데이터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옆에 놓인 재떨이는 이미 꽉 차있었다.그는 현재 거의 이틀 가까이 잠을 자지 못했지만 피곤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그리고 박한빈이 바라던 그 소식 또한 전해졌다. 장성 그룹이 소유한 자금으로는 더 이상 오래 버틸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수화기 너머 그 사람은 내일 뉴스가 보도되기 시작하면 장성 그룹은 바로 붕괴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박한빈은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이 오히려 냉랭했다.그의 대답 또한 마찬가지로 간결했다.“네. 알겠습니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80화

    “실은 나도 그렇다고 딱 확신할 수는 없어.”한참을 침묵하던 연정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지만 최근 우리 회사에서 벌어진 일들이 너무 많아. 큰 문제는 아니지만 연달아 일어나는 사고들을 단순히 우연이라고 보기엔 어렵고.”연정우는 하던 말을 뚝 멈추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성유리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그리고 뭐?”“그리고 더 중요한 건 우리와 오랫동안 협력하던 은행 몇 곳이 최근 갑자기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거야. 그뿐만 아니라 나와의 협상을 아예 거부하고 있어. 누군가 뒤에서 압박을 넣고 있는 게 아니면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거지.”‘금성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이 뒷말을 연정우는 끝내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성유리라면 충분히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생각에 잠겨있던 성유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손을 꼭 쥐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바로 그때, 연정우가 성유리에게 물었다.“이 싸움에서 내가 진다면 넌 나한테 실망할 거야?”그의 물음에 성유리는 잠시 멍해졌다.그리고 바로 묻는 연정우의 눈을 바라보았고 연정우도 성유리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성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아니. 근데 넌 아마 많이 힘들 거야.”연정우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마 다시 학교로 돌아가 강의를 해야 하겠지. 그러면 가사 도우미를 둘 형편은 안 될 거야. 그래서 너는 계속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지도 몰라.”“뭐 어때? 난 이런 삶이 좋은데.”성유리는 망설임 없이 말했고 그녀의 말에 연정우는 웃음을 빵 터뜨렸다.연정우의 환한 웃음을 본 성유리는 꽉 조여 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걸 느꼈다.“나를 원망하지는 않아?”성유리가 물었다.연정우는 그녀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왜 내가 너를 원망해야 하지?”“나 때문에... 박한빈 씨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79화

    잠시 망설이던 하늘이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연정우는 성유리의 손에서 드라이기를 받아 들었다.연정우는 이런 일을 처음 해보기에 다소 서툴렀지만 하늘이는 전혀 불평하지 않았고 머리를 말리는 내내 조용히 있었다.성유리는 옆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이 장면이 너무나 따뜻하다고 느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연정우가 바로 자신에게는 최고의 선택이라는 것을.그래서 연정우를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조용히 그들을 바라보던 성유리는 휴대폰을 들어 사진 한 장을 찍었다.조명이 비추는 아래에서 연정우는 다정하게 하늘이의 머리를 말려주고 있었고 하늘이는 인형을 품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사진 속 두 사람은 누가 봐도 다정한 부녀처럼 보였다.성유리는 더 이상 지켜보지 않고 주방으로 돌아가 내일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반죽은 이미 미리 만들어 두었기에 이제 고기소를 넣고 찜기에서 찌기만 하면 되었다.성유리가 이렇게 직접 음식을 준비하는 이유는 하늘이가 달걀노른자에 약간의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이었다.외부에서 파는 만두에는 대부분 달걀물이 들어가 있어서 하늘이를 위해 성유리는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다.원래 성유리는 조금만 기다리면 자신을 부를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이는 평소에 잠자리에 들 때 늘 엄마를 찾곤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주방에서 한참 동안 기다려도 자신을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모든 준비를 마친 성유리가 하늘이 방으로 향하려 하는 순간, 연정우가 아이의 방에서 나왔다.“하늘이 잠들었어.”연정우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자 성유리는 순간 멈칫하더니 그에게 물었다.“뭐라고?”“방금 잠들었다고.”연정우는 웃으며 말했다.“책을 조금 읽어줬더니 졸린다고 하더니 바로 잠들었어.”성유리는 연정우의 말이 믿기지 않아 방을 열어 직접 확인해 보았고 그의 말대로 하늘이는 정말 침대에 누워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아까 너무 많이 놀아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