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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작가: 송진
옥상에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불꽃 터지는 소리까지 더해져 주변이 시끄러웠다.

하지만 웬일인지 성유리는 갑자기 주위가... 조용하다고 느껴졌는데 마치 세상에 그들 둘만 남은 것 같았다.

상관없는 사람들, 심지어 머리 위의 불꽃도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얼마 전 차제니에게 했던 말이 그녀의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당시 성유리는 차제니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차제니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박한빈도 이렇게 보면... 그런 짓을 할 사람 같지도 않았다.

설령 그가 할 줄 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겨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마치 돌덩이처럼 성유리의 고요한 호수 속으로 가라앉아 파도도 일지 않고 잔잔한 물결만 남았는데 그 잔물결은 오늘 밤까지도 가시지 않았다.

순간 그녀는 박한빈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걸 보고 한 걸음 따라나섰다.

이 한 걸음은 마치 강심제처럼 성유리의 심장에 주입되어 몸을 곧게 펴고는 살며시 주먹을 쥔 채 그에게로 걸어갔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곧 몇 걸음밖에 남지 않았다.

멈출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살짝 치는 바람에 성유리는 앞으로 몇 걸음 휘청거렸다.

박한빈은 황급히 손을 뻗어 그녀를 껴안았는데 성유리의 코에는 금방 익숙한 냄새가 가득 찼다.

허리를 잡은 손을 느끼며 성유리는 그들의 첫 포옹을 떠올렸는데 그건 두 사람이 결혼사진을 찍을 때였다.

소녀의 꿈은 갑자기 현실이 되었지만 그날의 성유리는 사실 형편없었다.

화장실에서 무심코 들은 말로는 자세가 굳어 웃는 모습이 보기 싫고 줄 끊어진 꼭두각시 같다고 했다.

촬영장에 돌아오자 카메라맨도 다시 요구했다.

허리를 껴안고 키스하는 등 결혼사진의 가장 정상적인 동작이지만 그와 이렇게 가까운 거리는 처음이었다.

그때 박한빈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왔는데 미간에 은은하게 피곤으로 인한 짜증이 느껴졌다.

성유리의 긴장하고 조마조마했던 감정이 이렇게 서서히 사라졌다.

박한빈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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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유리는 가만히 앉아 있다 한참 뒤, 정신을 다잡고 박한빈을 밀어내며 입을 뗐다.“여긴 왜 오시는 거예요? 빨리 돌아가서 누워요. 손에 있던 링거는요? 미쳤어요? 지금 다친 사람이 뭐 하는 거예요!”차분하던 평소완 달리 다급한 말투로 외치는 성유리를 박한빈은 옅은 미소만 띤 채로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는 손을 뻗어 성유리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줬지만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다 그를 다시 밀어냈다.“빨리 돌아가요! 간호사는요?”성유리가 호출 벨을 누르려던 순간, 박한빈이 먼저 움직였다.그렇게 그녀는 눈 깜빡할 사이에 박한빈의 품에 안겨버렸다.“급한 일 아니야.”그가 낮은 소리로 말을 꺼냈다.“고작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인데 죽기야 하겠어?”“그리고 그때 네가 나보다 더 심하게 다쳤다는 거 몰랐어? 그때 다른 사람들은 다 대피하고 소방원마저 방독면을 낀 채로 현장에 진입했어. 근데 넌? 물불 가리지도 않고 막 달려갔다며? 진짜 죽으려고 그랬어?”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성유리를 ‘혼’내고 있는 박한빈이었지만 그녀는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치 잘못을 저지른 것을 깨달은 어린아이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 고집을 피우듯이.박한빈은 성유리의 기분을 알아차리고는 더 이상 ‘혼’ 내진 않았다.“서훈 씨가 그러던데... 그때 진병오 쪽에서 너한테 연락했었어? 넌 또 그 사람이 요구하는 돈을 다 준비했고? 정말 혼자 들어오려고 한 거야?”“네.”“안 무서웠어?”“왜 무서워해야 되는 건데요?”성유리가 되물었다.“만약 정말 원하는 게 돈이라면 주면 되잖아요. 그러면 일도 끝이 날 거고.”박한빈은 단호한 성유리의 태도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사실 그때 박한빈 씨는 다 알고 계셨죠?”한참을 박한빈과 눈을 맞추던 성유리가 갑자기 물었다.“뭐를?”“그 사람들이 원하는 게 돈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요.”성유리가 계속 말했다.“필경 정말 위약금을 원한다면 처음부터 높은 금액을 제시했을 테니까.”“이번 일에 영향도 꽤 크니까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15화

    성유리는 말하며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그러자 앞에 있던 소방원은 조용히 자신이 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어서 건넸다.그녀는 소방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지만 방독면을 건네받지 않았고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싫어요.”“만약 박한빈 씨가 안에 있다가 정말 무슨 일이라도 당한 거라면... 그냥 같이 갈래요.”성유리의 말에 소방원은 미간을 찌푸렸다.그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려는 찰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유리야.”남자의 목소리에 성유리는 행여나 자신이 환청일까 봐 두려워 고개를 돌릴 용기도 나지 않았다.“성유리.”그가 성유리의 이름을 다시 한번 외치기 전까지는.그녀가 천천히 뒤돌아보자 그토록 찾았던 박한빈이 그곳에 서 있었다.그는 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었는데 하얀 옷 위에 까만 자국 같은 것이 얼핏 보였다. 아니, 다시 말하면 까만 자국이 아닌 핏자국이었다.평소 정갈한 모습과는 달리 한껏 헝클어져 있는 머리카락은 급박했던 현장 상황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성유리는 멍하니 박한빈을 바라보다 환각이 아님을 깨닫고는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없이 달려가 그를 꽉 끌어안았다.당시 박한빈은 이미 다쳐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성유리가 달려와 끌어안을 때, 그 힘에 배 위에 나 있던 상처 부위가 찢어져 버렸다.꽤 강한 고통이 느껴짐에도 박한빈은 미간 한번 찌푸리지 않고 성유리를 안아줬다.이미 그녀의 눈물은 박한빈의 셔츠를 다 적셨고 여전히 덜덜 떨고 있었다.‘많이 무섭고 놀랐나 보네.’두 사람의 몸이 가까이 닿는 순간, 그들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걱정 많이 했어?”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박한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 난 그렇게 쉽게 안 죽어.”“난 방금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네가 어떻게 여기 있지?”박한빈의 물음에도 성유리는 대답이 없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가 고개를 숙여보자 그녀는 이미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뭐지?’그가 손에 힘을 살짝 푸는 순간 성유리는 픽 쓰러져버렸다.깜짝 놀란 박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14화

    불길은 멈출 기미가 없이 점점 활활 타올랐다.이곳의 건물들은 거의 다 붙어있는 형식이기에 어느 한 집에 화재가 발생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온 촌이 다 불타기도 했다.주위에 거주하던 촌민들은 이미 다 대피를 한 상태지만 불길이 제일 센 그 집에서는 아무도 도망 나오지 않았다.성유리는 박한빈이 집 안에 있다고 확신했다.웬일인지 순간 성유리는 이 며칠 동안 박한빈과 발생했던 일들이 떠올랐다.마지막으로 본 건 승마장에 갈 때였다.박한빈이 애써 대화를 이어 나가려고 시도했지만 성유리는 계속 그의 말을 끊어버렸었다. 그때 그녀는 화가 나 있는 상태였기에.그래서 박한빈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았지만 사실 그 또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한빈이 말을 꺼낼 때마다 성유리는 조용히 하라고 심술을 썼다.승마장 이후로 박한빈과 대화를 나눈 건, 영상통화로 자신이 있는 곳에 오라고 할 때였다.성유리는 그의 말 속에 숨은 의도를 알고 있었고 박한빈이 은근슬쩍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하지만 성유리는 듣기 좋은 말 한마디도 없이 박한빈을 거절해 버렸다.지금은?성유리가 말해주고 싶어도... 박한빈이 못 들을지도 모른다.‘지금 이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머리론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화재가 발생하면 경찰들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현장을 통제한다는 것도.그러나 성유리는 본인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엔 온통 박한빈과의 일상들이 떠올랐고 다리는 저도 모르게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이건 몸의 본능이다.마치 몇 번이고 포기하려고 애를 써도, 수백 번 박한빈에 대한 마음을 접으려고 노력해도 결국 박한빈의 옆에 돌아가 그를 사랑하는 것처럼.이런 감정은 성유리의 뼛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본능적인 마음이 되었다.화재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성유리는 호흡마저 가빠졌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박한빈의 이름을 외쳤다.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하게도 없었다.이미 마음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성유리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13화

    “진병오 씨, 이제는 어쩔 수 없습니다.”걸음을 멈춘 박세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다 당신과 피와 살을 나눈 형제들이죠. 그들이 여기서 죽기를 바라지 않지 않습니까?”“그리고 다시 말해 당신 형이 당신 때문에 죽었는데 정말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진병오 씨가 죽으면 당신 형수의 삶은... 더 좋아지겠죠.”박세빈은 말하며 옆에 있는 여자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후자는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된 얼굴로 있었는데 마치 그가 무슨 짓을 할지 안다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진병오는 이를 꽉 깨물고 있다 천천히 입을 뗐다.“나는 상관하지 말고 박한빈 이 인간부터 죽여!”그의 한 마디에 망설이던 사람들이 일제히 박한빈에게 달려들었다.결국, 박한빈은 앞에 있던 남자를 툭 차버린 뒤 의자 하나를 끌어당겼다.그리곤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사실 그는 오래전 담배를 끊은 상태였다.하지만 성유리가 선물로 준 라이터는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으니 라이터는 온전했다.박한빈이 라이터를 살짝 누르자 이내 파란 불이 나왔고 그의 행동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얼어붙었다.특히 박세빈.박한빈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챈 그는 몇 초간 굳어있더니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얼른 저 사람 막아!”다리가 불편한 박세빈은 빨리 다가가 박한빈을 막기에 부족했다.그러나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박세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박한빈은 눈앞에 있던 커튼에 불을 붙였고 문도 잠가버렸다.방안 구조를 틈틈이 관찰한 박한빈은 비록 장식이 다 새롭기는 했지만 나무판자들은 그대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렇기에 이런 집은..,불이 한번 붙으면 통제하기가 어려웠다.박한빈이 굳이 다른 짓을 더 하지 않아도 불길은 마구 솟아 집을 통째로 삼켜버렸다....“불이야!”성유리가 촌 어구에 갓 도착했을 때, 이 목소리를 마침 들었다.순간 불길한 예감이 든 그녀는 고개를 휙 돌려 촌을 쳐다봤고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12화

    그 목소리에 박한빈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그가 고개를 들 때, 사람들 틈에 있던 남자 한 명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기 시작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왜냐하면 모자 뒤에 숨겨져 있던 남자의 얼굴이... 박한빈과 똑같았기 때문이다.당연하게도 몇 년 동안 강한 햇볕 아래에서 생활한 터라 그의 피부는 눈에 띠게 건조해졌고 목소리도 예전과는 달리 듣기 싫을 정도로 잠겨있었다.사람들이 박세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때, 박한빈의 시선은 그의 다리로 향했다.하지만 그는 박한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피식 웃더니 자신의 바지를 위로 올렸다.그러자 드러난 건, 장애인들이 쓰는 가짜 다리 즉 의족이었다.“아, 안 죽었었구나.”박한빈은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한 듯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맞아요. 전 아직 안 죽고 살아있었습니다. 실망이 크십니까?”박세빈은 여전히 선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그러나 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자신에 의해 제압당한 남자를 보며 물었다.“쟤가 바로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지시한 사람입니까?”“아마 아닐걸? 당신은 쟤랑 너무 어색해 보이는데.”“게다가 이때쯤이면 해외에 있어야 하지 않나?”뒤의 말들은 박한빈이 박세빈한테 하는 말이었다.“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여기에 나타날 수 있다는 건 누가 너를 돕고 있다는 증거겠지. 내가 한번 맞춰볼까? 그 사람 혹시... 연정우 씨야?”박한빈의 말이 끝났음에도 박세빈은 그저 웃기만 했다.“역시 그 사람이 맞나보군. 근데 이제야 기사회생을 한 사람이 이런 멍청한 짓을 꾸며낼 리가 없을 거야. 그러니 너라는 패를 이용해 죄를 짓는 거겠지. 필경... 넌 정말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지?”박한빈의 말이 끝나자 박세빈은 여유롭게 박수를 치며 대답했다.“못 본 몇 년 사이에 형님은 더 똑똑해지셨습니다? 역시 이래서 박한빈 박한빈 하나 봅니다.”“사실 전 원래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이미 다리는 부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11화

    “이렇게 오래 앉아계셨는데 배고프시죠?”여자는 억지로 준비한 음식을 박한빈의 손에 쥐여주며 계속 말했다.“얼른 이거라도 드세요!”박한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가 손을 뻗어 여자가 준비한 음식을 던져버렸다.“내 몸에 손대지 마.”냉랭한 그의 목소리에 여자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바닥이 떨어지는 소리에 밖에 있던 남자가 급히 들어오며 물었다.“형수님, 무슨 일이십니까?”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으며 물었는데 어찌나 다정한지 모르고 보면 남편 같았다.하지만 여자는 당황해하며 자기 손을 빼내더니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요. 실수로 면을 쏟아버려서...”여자의 말에 남자는 밑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내 엉망진창이 된 바닥을 발견하곤 얼굴이 새빨개졌다.그리더니 박한빈을 보며 경고하듯 말했다.“이러시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박한빈은 남자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쳐다만 봤다.분명 남자가 서 있었고 밖에 그의 형제들도 어마무시한 도구들을 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박한빈의 기세에 놀란 듯 움츠러들었다.분위기는 순식간에 살얼음판이 되었고 그 순간, 밖에서 누군가가 외쳤다.“큰일 났습니다! 저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한 것 같아요.”그 목소리를 들은 남자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고 바로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쳐다봤다.“경찰에 신고하라고 시켰습니까?”이 소식은 박한빈에게도 의외였기에 그도 지금 안색이 어두워졌다.이미 몇 년 동안 자신을 따르던 비서 서훈이 이런 경거망동한 짓을 벌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게다가 박한빈이 지금 사람들에 의해 감금돼 있는 상황인데 경찰에 출동하면 더 위험해지지 않겠는가?그러니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서훈이 아닌 다른 사람일 것이다.박한빈의 앞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해 그를 죽이려는 셈이었을까?“시*!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어.”제일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박한빈을 죽일 듯 다가오는 그때, 박한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무릎을 강하게 찼다.꽤 센 힘에 남자가 바로 주저앉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10화

    박한빈은 지금 마당을 마주한 거실에 앉아 있었다. 앞쪽의 대문은 이미 닫혀 있었고 마당에는 몇 사람이 괭이와 쇠망치를 손에 들고 서 있었다.그들은 혹시라도 그가 도망칠까 봐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하지만 그 모습을 본 박한빈은 오히려 조금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들이 지키고 있지 않아도 애초에 뛰쳐나갈 생각이 없었다.왜냐하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사실 이 보상금 처음부터 저한테 얘기하셨으면 안 줄 이유가 없었습니다.”“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누군가 뒤에서 당신들을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박한빈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그 말을 들은 남자의 눈동자가 급격히 떨리고 있었다.“당신 형의 죽음, 혹시 숨겨진 진실이 더 있는 건 아닙니까?”박한빈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저희 형은 당신이 죽인 거잖아요. 당신 같은 파렴치한 개발업자들은 돈만 되면 뭐든 하는 놈들이잖아요! 안 그랬으면...”“그래요. 괜찮습니다. 당신이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전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어차피 입막음 돈을 받았으니까.”박한빈이 남자의 말을 끊으며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다만, 사람의 운명이라는 건 정해진 게 있는 법이죠. 당신이 가져서는 안 될 걸 억지로 가지려고 하면...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군요.”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놓여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쾅.작은 소리였지만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표정은 미묘하게 변했다.“제 쪽에 있는 사람이 곧 돈을 가져올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나가 보세요.”박한빈은 평소처럼 태연한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이 상대방에게는 이상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이 상황에서 그가 잡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모든 걸 장악하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09화

    성유리는 다시 하늘이를 바라보았다.하늘이는 조금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리고 있었고 성유리의 시선이 닿자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엄마, 난 동생이 갖고 싶어. 근데 남동생 말고 여동생이었으면 좋겠어.”...결국, 성유리는 혼자 공항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마침 꽃집이 보여 잠시 들러 꽃 한 다발을 샀다. 그리고 꽃을 들고 공항에서 서 있다가 문득 이상함을 깨달았다.‘내가 왜 박한빈 씨한테 꽃을 주려고 했지?’하지만 이미 꽃을 손에 든 상태였고 예쁜 꽃다발을 그냥 버리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들고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더 항공편이 도착했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나오는 게 보였다.그러나 성유리는 끝내 박한빈을 찾을 수 없었다.오랜 시간 기다린 성유리는 조금씩 지쳐가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그래서 박한빈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을 꺼내는 순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그 숫자를 보는 순간 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지만 곧장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박 대표님 부인되시죠?”상대는 여자였다.그 목소리에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누구시죠?”“하하, 당신 남편이 지금 우리 쪽에 있어요. 그렇게 잘 나신 사장님이 겨우 백만으로 우리를 내쫓으려 하다니... 이거 저희를 무시하는 거 아닌가요?”“말해두는데 제 남편이 죽었어요. 이 일... 몇백만은 받아야 끝낼 수 있을 거예요!””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대체 뭘 하려는 거죠?”순간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타고 올라온 성유리가 급히 물었다.“박한빈 씨는요?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걱정 마세요. 잘 먹고 잘 자고 있으니. 다만, 지금은 보낼 수 없다는 것뿐이죠.”“당장 돈을 들고 이곳으로 오세요. 저희는 오백만 원을 요구해요. 그것도 현금으로요. 알아들었어요?”성유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상대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멍해 있던 성유리의 핸드폰에 곧이어 서훈에게서 전화가 왔다.그녀는 망설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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