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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작가: 송진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5 13:43:44
옥상에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불꽃 터지는 소리까지 더해져 주변이 시끄러웠다.

하지만 웬일인지 성유리는 갑자기 주위가... 조용하다고 느껴졌는데 마치 세상에 그들 둘만 남은 것 같았다.

상관없는 사람들, 심지어 머리 위의 불꽃도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얼마 전 차제니에게 했던 말이 그녀의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당시 성유리는 차제니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차제니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박한빈도 이렇게 보면... 그런 짓을 할 사람 같지도 않았다.

설령 그가 할 줄 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겨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마치 돌덩이처럼 성유리의 고요한 호수 속으로 가라앉아 파도도 일지 않고 잔잔한 물결만 남았는데 그 잔물결은 오늘 밤까지도 가시지 않았다.

순간 그녀는 박한빈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걸 보고 한 걸음 따라나섰다.

이 한 걸음은 마치 강심제처럼 성유리의 심장에 주입되어 몸을 곧게 펴고는 살며시 주먹을 쥔 채 그에게로 걸어갔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곧 몇 걸음밖에 남지 않았다.

멈출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살짝 치는 바람에 성유리는 앞으로 몇 걸음 휘청거렸다.

박한빈은 황급히 손을 뻗어 그녀를 껴안았는데 성유리의 코에는 금방 익숙한 냄새가 가득 찼다.

허리를 잡은 손을 느끼며 성유리는 그들의 첫 포옹을 떠올렸는데 그건 두 사람이 결혼사진을 찍을 때였다.

소녀의 꿈은 갑자기 현실이 되었지만 그날의 성유리는 사실 형편없었다.

화장실에서 무심코 들은 말로는 자세가 굳어 웃는 모습이 보기 싫고 줄 끊어진 꼭두각시 같다고 했다.

촬영장에 돌아오자 카메라맨도 다시 요구했다.

허리를 껴안고 키스하는 등 결혼사진의 가장 정상적인 동작이지만 그와 이렇게 가까운 거리는 처음이었다.

그때 박한빈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왔는데 미간에 은은하게 피곤으로 인한 짜증이 느껴졌다.

성유리의 긴장하고 조마조마했던 감정이 이렇게 서서히 사라졌다.

박한빈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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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빈은 계속 울리는 핸드폰을 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지만 이번엔 전화를 바로 끊어버리지 않았다. 성유리는 그 모습에 안전벨트를 풀어버리더니 말했다. “됐어요. 그냥 저 혼자 갈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차 문을 벌컥 열고 내릴 채비를 했다. 이때, 박한빈이 재빨리 성유리의 손을 꽉 잡더니 물었다. “어디 가려고?” “바쁘신 것 같아서 저 혼자 택시 타고 가려고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택시를 어떻게 혼자 타!” “길 가다 보면 널리고 널린 게 택신데 제가 왜 못 타죠?” “빨리 앉아. 나 곧...” 박한빈의 뭐라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세 번째 전화가 걸려 왔고 성유리는 그를 조롱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봐요. 많이 바빠 보이시니까 저 그냥 혼자 갈게요. 방해되지 않게.” 성유리는 박한빈의 손을 뿌리쳤지만 그는 다시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성유리의 발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차에서 내려서는 바로 길 맞은편으로 향했다. 박한빈은 그녀를 따라가려고 안전벨트를 풀어버리려고 했지만 마침 신호등 불빛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 해도 금성 도로엔 쌩쌩 달리는 차가 꽤 많았다. 그래서 박한빈은 아예 차를 몰고 그곳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빨간 불이 다시 초록 불로 바뀌는 순간, 박한빈은 재빨리 길 맞은편을 쳐다보았지만 성유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박한빈은 핸드폰을 열어 성유리에게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그녀의 폰은 여전히 꺼져있는 상태였다. 화가 난 박한빈은 옆에 있던 쓰레기통을 발로 세게 차버렸다. 그러더니 다시 차로 올라타 도연제로 향했다. 빠르게 운전을 한 박한빈이기에 그는 성유리보다 먼저 도연제에 도착했다. 그는 무서울 만큼 조용한 별장이 너무 싫어 모든 조명을 다 환하게 켜놓았다. 그리고는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성유리가 오기를 기다리려고 마음먹었다. 그때 시간은 이미 12시가 넘은 자정이었으니 박한빈의 생일이라고 해도 되는 시간이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단 한 번도 자기 생일을 이토록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42화

    박한빈은 원래 무표정한 얼굴로 사하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하나의 마지막 말에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더니 반박했다. “내가 집에 안 들어온다고?” “제 말이 틀렸나요? 정말 사람을 바보로 아시나...” 사하나는 점점 더 격분했고 성유리는 빨리 다가가 그녀를 제지하려 했다. 그러나 사하나는 성유리의 손을 뿌리치더니 계속 말했다. “언니는 상관하지 마세요! 오늘 꼭 제대로 한번 말해봐야겠어요.” 사하나는 고개를 휙 돌려 박한빈을 쳐다보며 물었다. “말씀해 보세요. 잘나신 박 대표님. 박 대표님이랑 그 여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업계에 소문이 쫙 났어요. 사람들 입이 얼마나 싼지 설마 모르고 계실 리는 없겠죠?” “아니면 그 소문이 사실이라 반박할 자격이 없는 건가요?” “정말 대단하세요. 유리 언니랑 화해하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 이러세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언니를 말렸어야 해요. 영원히 절대로 박 대표님을 용서하지 말라고 할 걸 그랬다고요!” 사하나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박한빈은 오히려 아까보다 더 평온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은 마치 그녀에게 사하나와 똑같이 자신을 의심하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성유리는 소파에 앉은 채로 침묵할 뿐이었다. “이건 저희 부부 사이의 일이니 사하나 씨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박한빈은 사하나에게 짧은 대답을 해주고는 바로 성유리의 손을 잡고 떠나려 했다. 아무렇지 않은 박한빈의 태도에 사하나는 더욱 분노가 치밀어 두 사람을 가로막아 서려 했지만 그 순간, 성유리가 사하나를 조용히 바라봐줬다. ‘뭐지?’ 사하나는 그녀의 눈빛에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성유리는 사하나를 보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박한빈은 이곳까지 직접 운전을 하고 왔기에 성유리는 순순히 그의 차에 올라타며 안전벨트까지 맸다. 이런 순한 모습에 박한빈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를 꽉 잡은 채로 입을 열었다. “사하나 씨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41화

    “난 이미 전에 한번 봤었어.” “저도 봤어요! 근데 볼 때마다 눈물이 나는 걸요?” 사하나는 뭐가 그리 슬픈지 휴지로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고 성유리는 그저 물만 마셔댔다.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됐죠?” 사하나는 순간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성유리에게 물었다. “제가 빨리 모셔다 드릴 까요?” “그럴 필요 없어.” 성유리는 여전히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고 사하나는 그 말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무슨 뜻이에요? 두 분 혹시 싸우셨어요?” 사하나는 문득 어제 자기가 해줬던 말들이 떠올랐는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계속 물었다. “아니면... 어제 제가 말한 그 일들에 관해 박 대표님께 물어보신 거예요?” 성유리는 그저 사하나만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 대표님께서 정말...” 사하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벨이 울렸다. 그녀는 늦은 시간에 들리는 벨 소리에 의아해하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아무 말 없는 성유리를 보던 사하나는 그제야 눈치챘는지 다시 말했다. “박한빈 씨 아니에요? 언니가 가서 문 열어주세요.” “나도 모르지.” 성유리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며 문을 열어주려고 몸을 일으켰지만 사하나가 그녀를 다시 앉히며 말했다. “됐어요. 그냥 제가 갈게요. 언니는 앉아계세요.” 사하나는 뚜벅뚜벅 걸어 현관으로 향했고 영화를 보려고 켜놓은 작은 조명 때문에 현관 주위는 어두컴컴했다.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마침 현관에 있던 등이 인기척을 감지하고 켜졌고 박한빈을 환하게 비췄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박한빈이 문 앞에 나타나자 사하나는 예상했음에도 화들짝 놀랐다. 잠시 멍해 있던 사하나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박한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박 대표님,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갑자기 찾아오셔서 저를 놀라게 하는 거예요?” “성유리 여기 있어?” 박한빈은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 사하나가 다른 무슨 말을 내뱉기도 전에 박한빈은 이미 집안으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40화

    비록 어젯밤 성유리가 박한빔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박한빈은 이미 온천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내일 시간을 여유롭게 쓰기 위해 오늘 일찍 도연제로 돌아온 그는 그날 밤 먼저 성유리와 함께 가려고 했다. 하지만 별장에 도착했을 때, 평소와 달리 집안은 어두컴컴했다. 얼마 전 성유리가 집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박한빈은 집안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정해진 시간에만 청소하러 오라고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 이 집에는 성유리 혼자뿐이었다. 지금 그녀가 없으니 집 안은 더욱 어두워 보였고 차가운 정적만이 맴돌았다. 그 분위기에 박한빈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고 이 늦은 시간에 그녀는 어디로 간 건지 궁금했다. 그래서 박한빈은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는 차가운 음성 안내만 들려왔다. 그는 한층 더 굳어진 얼굴로 바로 가사도우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성유리가 어디 갔는지 알고 있습니까?” “아니요. 오늘 저희가 왔을 때는 이미 집에 안 계셨어요. 요즘 도자기 수업을 계속 듣고 계셨는데 혹시 거기에 계신 거 아닐까요?” ‘도자기 수업?’ 박한빈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 수업 어디에서 하죠? 주소 좀 주십시오.” 가사도우미에게서 주소를 받은 박한빈은 곧바로 도자기 학원으로 향했고 그곳의 불은 켜져 있었지만 안을 둘러봐도 성유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박한빈은 잔뜩 불안해하며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곧 학원 직원이 다가오며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유리 씨 여기 있습니까?” “성유리 씨요?” 직원이 잠시 당황하더니 대답했다.“오늘 수업 예약은 하셨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못 오신다고 하셨어요. 혹시 남편분이신가요?” 박한빈은 직원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학원을 나섰다. 그녀가 이곳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발걸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밖으로 나왔지만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어디에 있을지 감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39화

    성유리의 눈을 마주 보게 된 순간, 최정민은 말을 잇기가 어려워졌다. “최정민 씨?” 성유리가 다시 물었다. 그제야 최정민은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고 성유리를 바라봤다. 잠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최정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박 대표님과 관련된 일로 왔습니다.”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최정민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계속 말했다. “당신들이 이미 결혼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저도 정말 방법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죄송합니다. 사모님. 혹시 박 대표님을 저에게 양보해 주실 수 있나요?” 그 말을 마친 최정민은 죄책감 탓인지 고개를 푹 떨궜다. 그녀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동공조차 흔들리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성유리는 그런 그녀를 잠시 쳐다보다 물었다. “임신했나요?” “아니에요!” 그 질문에 최정민은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고개를 연신 절레절레 저었다. “저... 저희가 만난 지 사실 고작 2주밖에 안 됐어요. 임신일 리가 없잖아요?” 성유리는 다시 침묵했다. “하지만 저희 정말로 사귀고 있어요. 믿기 힘드시면 제가 사진도 보여드릴게요.” 말을 하며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고 곧바로 화면에 두 사람이 찍은 사진이 보였다. 단 한 번 쳐다보았을 뿐인데도 성유리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한기를 느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최정민을 쳐다보던 성유리가 말했다. “우리가 결혼한 것도 알고 제가 임신 중이라는 것도 알면서 어떻게 저에게 그런 걸 요구할 수 있나요?” 최정민은 나지막한 소리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왜냐하면 당신은 진실되지 않는 남편을 곁에 두지 않을 분이니까요.” 그녀는 담담하게 계속 말했다. “전에 당신이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도 제가 직접 봤거든요.” “그때 당신과 박 대표님은 아직 화해하지 않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38화

    “모레? 왜 그래?” “괜찮아요. 바쁘시면 됐어요.” 말을 마친 성유리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지만 박한빈은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날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줘야 내가 시간을 조정하지.” “아무 일도 아니에요. 시간이 없으시면 그냥 지나가죠 뭐.” 성유리는 목소리까지 한층 냉랭해진 채로 대답했고 그녀가 돌아서자마자 박한빈은 뒤에서 팔을 뻗어 그녀를 꽉 안았다. “난 네가 잊은 줄 알았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걱정 마. 네가 기억하지 않아도 나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무슨 생일 선물을 준비했는데?” “시간도 없다면서 생일은 무슨 생일이에요?” 성유리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박한빈의 입가에는 더 짙은 미소가 번졌고 그는 손으로 성유리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건 장난친 거야. 요즘 정신없이 바쁜 것도 다 이날 시간을 비우려고 그런 거라니까.” “그럼 그날 바다 한번 가볼까?” “이런 날씨에 바다요?” 성유리는 박한빈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온천은? 내가 호텔 예약하라고 할게.” 성유리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도 않았다. “별로 가고 싶지 않다면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말해줘.” 박한빈은 인내심 있게 물었다. 성유리가 대답하려는 찰나, 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그는 즉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일부러 박한빈의 핸드폰을 보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휴대전화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보게 됐다. 최정민. 예전에 박한빈의 휴대전화에서 이 번호를 본 기억이 있다. 그때는 이름 없이 저장된 번호였는데 지금은 분명한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성유리는 발신자로 표시된 최정민의 이름을 보고는 하려던 말을 꾹 삼켰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박한빈의 미간은 더욱더 세게 찌푸려졌다. “알았어.” 그는 단 한마디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성유리 쪽으로 돌아선 그의 표정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37화

    사실 성유리는 오늘 다른 컵을 더 만들고 싶어 색깔까지 다 조합했지만 사하나의 말에 집중을 못 해 다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딱히 상관은 없다. 왜냐하면 박한빈의 생일날 줄 선물은 이미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 사하나는 요 며칠 지루한 일상에 질렸는지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성유리를 끌고 술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성유리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고려하고는 주변 백화점 안에 있는 오락실로 향했다. 성유리는 임정우와 마지막으로 오락실에 온 게 기억이 났지만 너무 오랫동안 그를 보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이상했다. 마치 바람과 같이 사라진 사람처럼 임정우는 성유리의 세상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성유리는 사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도시가 많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어찌나 큰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영원히 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날 밤, 박한빈은 또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성유리는 애초에 잠에 들지 않았던 상태라 박한빈 차의 엔진소리를 듣고는 바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평소대로라면 박한빈은 성유리가 있는 방을 꼭 들어왔었다. 성유리가 잠에 들었든 안 들었든 박한빈은 그녀를 깨우고 몇 마디 나누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성유리는 이미 습관이 됐는지 항상 저녁마다 박한빈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늘, 웬일인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박한빈은 문을 열고 들어오지를 않았다. 잠깐 고민하던 성유리는 침대에서 내려와 그가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시각 박한빈은 이미 욕실에서 씻고 있었고 흘러내리는 물줄기 소리에 성유리는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시선은 박한빈이 벗어놓은 외투로 향했고 그 외투에는 평소 못 보던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있었다. 진한 갈색빛에 노란 기가 섞어져 있는 머리카락이었는데 성유리는 한 번도 염색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박한빈의 옆을 따라다니는 비서마저도 이젠 남자이기에 이 머리카락의 주인이 누구인지 성유리는 몰랐다. 성유리의 머릿속에는 문득 오늘 사하나가 했던 말들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36화

    “이게 바로 남편을 위해 준비한 선물인가요?”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성유리는 깜짝 놀라 만들던 도자기 반죽을 망칠 뻔했고 하마터면 소리까지 지를 뻔했다. “쯧, 명색이 지화 그룹 총대푠데 고작 이런 선물로 만족하시겠어요?” 사하나는 성유리의 반응을 본 체도 안 하며 그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냥 만들면서 놀아보는 거야.” 성유리는 또다시 하던 일에 집중하며 대답했다. 입을 삐죽거리고 있는 사하나를 발견한 성유리가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요즘 많이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 시간이 있었나 보네?” “제가 하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죠. 매일같이 각종 식사 자리나 파티에 참석해야 해서 바빴어요. 아빠가 가라고 저를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전 가지도 않았을 거고요.” 사하나는 의자 등받이에 편하게 몸을 기대앉으며 대답했고 성유리는 그저 옅은 미소만 지었다. 성유리는 원래부터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별로 말을 하지 않아도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따라 사하나는 유달리 말이 적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성유리가 고개를 돌렸을 때, 사하나는 이미 멍한 눈빛으로 성유리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니야?” 성유리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사하나는 흠칫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성유리는 사하나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 요즘 박 대표님을 너무 오래 못 본 것 같은데요?” 사하나는 빠르게 화제를 돌리며 성유리에게 박한빈에 대해 물었다. “요새 박 대표님 많이 바쁘신가요?” “응. 바쁘지.” 성유리는 만들던 반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고 사하나는 그런 그녀에게 계속 질문을 퍼부었다. “요즘 뭐 하시는지 물어도 안 보셨어요?” 성유리는 사하나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왜? 요즘 그 사람한테 무슨 일 생겼어?” 사하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성유리가 사하나에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35화

    최정민이 용기를 내 다가가 박한빈을 한번 불렀지만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듯했다. 최정민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다시 한번 박한빈을 불렀다. “박 대표님!” 이번에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박한빈이 곧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녀를 본 순간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누군가 박한빈에게 장난스레 물었다. “여자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결국 너도 네 허리춤을 못 지킨 거야?” 박한빈은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은 뒤 최정민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야?” 최정민의 목소리는 쉰 듯했고 눈은 이미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부탁드릴게요. 저 좀 도와주실 수 없나요?” “저는... 저는 제 의지로 박세빈 씨와 만나는 게 아니에요. 지난번에 그가 저를 취하게 만든 뒤 호텔로 데려가서 입에 못 담을 그런 사진들을 찍었어요.” “정말 무서워요. 박 대표님, 제발 도와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최정민은 말하며 속이 많이 상했는지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들은 얼굴을 타고 목으로까지 흘러내렸다. 하지만 박한빈은 움직이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부모님께는 말할 용기도 없어요. 박 대표님 말고는 이 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말을 마치며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지만 박한빈은 빠르게 두 걸음 뒤로 물러나며 그녀와의 거리를 벌렸고 동시에 그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최정민은 그의 반응을 알아채고는 곧바로 다가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에요. 정말 어쩔 수가 없어서 그래요.” “내가 박세빈이랑 얘기해 볼게.” 박한빈의 말에 최정민의 눈빛이 즉시 반짝였다. “정말?” “응.”“고마워! 아니, 정말 감사합니다!” 최정민은 잔뜩 기뻐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순간 그의 손을 잡으려다 다시 생각난 듯 멈췄고 결국 허공에 붕 뜬 손을 가만히 내렸다. 최정민은 다시 한번 박한빈을 향해 미소를 지었지만 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지나쳐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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