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희는 가까스로 눈을 떴지만,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아 다시 들어올리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잠들면 안 돼!!” 윤호의 단호한 목소리가 가희의 귀에 박혔다. ‘나도 안 자고 싶어... 근데 너무 춥고... 너무 피곤해.’ 가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한기가 가희의 뼛속까지 스며들었고,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그 순간, 윤호는 거의 반사적으로 가희의 턱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차가운 입술이 내려앉았다. 순간적으로 두 사람의 숨이 뒤섞였고, 가희는 눈을 천천히 크게 떴다.
막 직원이 돌아서려던 찰나, 윤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가며 낮게 입을 열었다. “저희 실수로 안에 갇혔습니다.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직원의 얼굴에 잠깐 놀란 기색이 스쳤지만, 곧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같이 오셨던 여성분은 어디 계십니까?” 윤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처음부터 우리가 둘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그때, 가희가 힘겹게 걸어나왔다. “여기 있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나직하고도 힘이 없었다.
“상대측이 배상하는 계약서를 준비하라고 전해주세요.” 윤호의 말을 들은 주성은 순간적으로 놀라 멍해졌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지시대로 따랐다. 한편, 윤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뭔가 답답함을 느끼는 자신이 점점 더 거슬렸다. ‘대체 뭐가 이렇게 신경 쓰이지...?’ 무언가 가슴 한가운데를 막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데 윤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윤호와 가희는 AW그룹의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알렌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질렸다. 그러
알렌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예은정은 아무런 감정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재산 분할 서류를 그대로 알렌의 얼굴에 던졌다. “네가 그동안 AW그룹을 위해 헌신한 걸 봐서, 직접 네 눈으로 확인할 기회를 주는 거야. 믿든 안 믿든 네 마음대로 해. 끝까지 버티고 싶으면 마음껏 해 보라고.” 그러고는 손짓 한 번으로 경호원들을 불러 알렌을 끌어냈다. 알렌이 몸부림을 쳤지만,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예은정은 알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AW그룹은 이미 수익보
윤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가희와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 그런데 막 올라타자마자, 그녀가 의료진에게 나지막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안 되면... 제 장기 기증할게요. 꼭 필요한 분들에게요.” 순간, 윤호의 속이 새카맣게 타고 있었다. 그는 한걸음에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봤다. 윤호의 눈빛에는 명백한 분노와 위협이 서려 있었다. “한가희, 그렇게 빨리 죽고 싶어?” “세상에 너한테 중요한 게 하나도 없어?” 이미 처음이 아니었다. 가희는 생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녀는 마치... 언
친구들은 예나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역시 예나 마음 넓은 건 알아줘야 해. 괜히 우리가 오해했네.” 예나는 우아한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고고한 분위기를 풍겼다. 잠시 후, 예나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녀가 문을 나서자마자, 안에서 들려온 비웃음 섞인 목소리. “아니, 근데 장예나는 도대체 자기가 뭐라고 그렇게 고귀한 척이야? A 시에서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하루 종일 이윤호 대표 주변에 얼쩡거리는 거.” 다른
의사는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병원에서는 매일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오고 가는데, 매번 그 모든 감정에 일일이 휩쓸릴 여유 따위 없었다. 하지만 의사는 가희가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너무도 힘들게 살아왔다.’ ‘위암 말기, 몸 곳곳에 남아있는 총상 자국, 그리고 이제는 교통사고까지.’ ‘대체 이 여자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디며 살아왔던 걸까?’ 의사는 짙은 한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병실 앞. 윤호는 어떻게 발걸음을 옮겨 걸어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가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지만, 이내 찌르는 듯한 두통이 몰려왔다. 미간을 찌푸리는 그녀를 본 윤호는 즉시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는 가희의 상태를 점검한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환자분은 깨어났지만, 아직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과격한 움직임은 피하세요. 뇌진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틀 동안은 포도당 링거만 맞아야 하고, 이후에 유동식을 조금씩 섭취하는 게 좋습니다. 보호자님도 환자 회복에 더 신경 써 주세요.” 윤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차분하게 설명을 듣는 모습이었다. 그러
가희는 창백한 얼굴로 이정의 뒤를 따라 걸었다. 막다른 길목에 다다랐을 때, 가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감사합니다.”이정은 가희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었다.“한가희 씨지요? 나도 가희 씨 알아요.”가희는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나를 안다는 건, 아마도 최근의 뜨거운 실시간 검색어 때문이겠지.’ 가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정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도 눈앞에 있는 여성을 알아봤다. 소이정, 과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다. 다만,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B 국으로 떠났
“아가, 엄마는 오늘 술 안 마실 거야. 엄마가 널 지켜줄게.”하지만, 가희는 바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셀레나가 있는 룸의 문을 열자, 중심에 앉아 있던 장예나가 가희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가희는 본능적으로 셀레나를 경계하고, 본능적으로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셀레나가 가희의 손목을 붙잡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여기 앉아. 다들 몰랐겠지만, 이 사람이 내 새 매니저야. 꽤 유능하다고.”예나는 가희의 옆자리를 내주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한 실장님, 이렇게 또 만나네요. 정말 우연
“너...”셀레나가 여전히 당황하며 몸부림치는 동안, 가희는 망설임 없이 옆에 있던 바늘과 실을 집어 들었다. 가희는 빠른 손놀림으로 실밥이 풀린 셀레나의 드레스를 즉석에서 꿰매기 시작했다.셀레나는 숨이 막히는 듯 분노했다. 순간적으로 손을 들어 가희를 때리려 했지만, 가희는 셀레나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는 그대로 무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시간 없어요.”셀레나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저항할 틈도 없이 가희에게 떠밀리듯 런웨이 위로 올라갔다.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셀레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이 드레스가 스
셀레나는 자신이 분노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문 앞에 서 있던 강지섭이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셀레나 얼굴에서 이런 표정을 보다니, 참 보기 드문 광경이네.”셀레나는 순간적으로 표정을 바꾸고, 아부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 대표님, 이런 우연이 있나요?”지섭은 소파에 앉아 가희가 작성한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남자의 눈에 순간적으로 감탄의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웃었다.“우연은 아니고. 가희 씨 보러 온 거야. 첫날이라 혹시나
가희는 몸이 거의 회복되자, 퇴원 후 바로 셀레나의 작업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은 이미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희는 노트북을 들고 셀레나의 대기실로 들어섰다. 셀레나는 대기실로 들어오는 가희를 무심하게 쳐다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신입이야? 와서 옷 정리 좀 해.”가희는 꿈쩍도 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저는 셀레나 씨 매니저입니다. 이런 일은 제 업무가 아닙니다.”‘흥.’셀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희를 압도하는 기세로 다가왔다.여자는 키가 180cm 정도 되었고, 하이힐을 신은 상태에서 가희를 아래로
“예나와의 결혼은 할머니의 유언입니다. 전 그 뜻을 어길 생각이 없습니다. 한가희와 관련된 일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겁니다.”윤호는 자신이 가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오직 물질적 지원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희를 아내로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그는 말을 마치고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떠났다.이영국은 윤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 그는 혈압약을 삼키고 나서야 가슴이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가슴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나 젊었을 때
윤호는 가희의 턱을 거칠게 잡으며 눈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손아귀는 점점 더 강하게 조여졌다.“한가희,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마. 최근에 지섭이 모델을 구하는 일이 있다던데, 너는 거기 가서 지원 업무 해.”윤호는 눈을 감았다. 그는 가희가 외부에서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지섭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가희를 계속 집안에만 가둬둔다면, 결국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가희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가희의 감정 없는 얼굴을 보며, 윤호의 가슴속에서는 불같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가워졌
예나는 눈물을 흘리며 점점 더 흐느꼈다.“오빠, 혹시 인터넷에 뜬 실시간 검색어를 보고, 그게 내가 조작한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일은 정말 나랑 아무 상관 없어요!”그녀는 오늘 가희와 준서의 스캔들이 터진 걸 보고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이미 이영국이 윤호에게 결혼을 서두르라고 압박하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그런 스캔들이 터진다면 누가 봐도 자신이 꾸민 일이라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윤호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떼어내며 냉랭하게 말했다.“그딴 거 신경 안 써. 예나야,
준서의 눈앞에서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졌다. 핏방울이 번진 그의 얼굴 위로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가 계속해서 빛났다. 진민주는 숨을 헐떡이며 현장으로 뛰어왔다. 민주의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이를 악물고 현장에 있는 모든 기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이 사람들, 단 한 명도 그냥 보내지 마.”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곧바로 의사들에게 준서를 응급실로 옮기라고 지시했다.그 후, 그녀는 거침없이 가희의 병실로 향하며, 병실 문 앞에서 강지섭과 마주쳤다. 지섭은 민주를 보자마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민주